계릉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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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배경
3. 전투 경과
4. 결과



1. 개요[편집]


전국시대 시기인 기원전 353년 손빈이 이끄는 제나라군이 방연이 이끄는 위나라 군을 격파한 전투. 이 전투에서 위위구조라는 고사성어가 유래했다.

2. 배경[편집]


전국시대 초기, 위나라는 위문후의 개혁으로 강성해져 중원을 호령했다. 이에 이웃 제후들은 경계를 품었고, 기원전 356년 조성후가 제나라, 송나라와 평륙 땅에서 회맹하고 연나라와 아 땅에서 회맹했다. 이에 위나라 군주 위혜왕은 여러 나라에게 공격당할 수 있겠다는 위기감을 느끼고, 그 전에 선제 공격할 계획을 품었다.

기원전 354년, 조나라가 위나라의 동맹국인 위나라를 공격하여 칠과 부구를 공략했다. 위혜왕은 이를 빌미 삼아 방연이 이끄는 군대를 파견해 조나라의 수도 한단을 포위하게 하였다. 이에 조성후는 기원전 353년 제나라에 사신을 보내 구원을 요청했다. 제위왕이 신하들을 모아놓고 어찌할 지를 묻자, 추기는 위나라는 강성하며 자국과 사이가 좋으니 굳이 싸울 이유가 없다며 조나라 구원을 반대했다. 하지만 단간붕은 군대를 둘로 나눠서 하나는 양릉을 쳐서 위군을 피로하게 하고, 다른 부대로 조나라를 구원하자고 제안했다.

제위왕은 단간붕의 제안을 받아들여 군대를 둘러 나눠서 한 부대는 위나라의 양릉을 포위하고, 다른 부대는 전기손빈의 지휘하에 조나라를 구원하는 임무를 맡았다. 영릉으로 진군한 제나라군은 송나라 경적, 위나라 공손창이 이끄는 부대와 합세한 뒤 위나라의 영릉을 포위했다. 한편, 전기가 주장, 손빈이 군사를 맡은 제나라군은 조나라 구원에 나섰다.

이때 방연이 이끄는 위나라군 8만 명은 이미 조나라의 수도 한단을 함락시켰고, 조성후는 멀리 피신했다. 제나라-위나라 국경지대에 이르렀을 때 이 소식을 접한 전기는 위군과 전면전을 벌이려 했다. 그러자 손빈이 반대했다. 그는 위나라가 조나라를 장기간 공격해서 주력군이 밖에서 소모되고, 노약자가 국내에 남아 있어서 방위가 허술하므로, 위나라 수도 대량을 공격해 위군을 철수시키게 한다면, 조나라는 자연히 구원받을 거라고 주장했다.

또한 손빈은 전기에게 위나라의 평릉성을 직접 치지 말고, 평릉 남쪽을 경유하라고 조언했다. 평릉성은 비록 작지만 인구가 많고 병력이 강해 동양 지역(위나라의 수도 대량 동쪽 지역)의 전략적 요충지라 함락하기 어려우며, 평릉 남쪽은 제나라의 동맹은 송나라의 영역이니, 별 문제 없이 지나갈 수 있다는 것이었다. 전기는 손빈의 계책을 받아들여 평릉으로 진군하였고, 이 소식을 접한 방연이 귀환하면서 계릉 전투의 막이 올랐다.

3. 전투 경과[편집]


제나라군이 평릉에 가까워졌을 때, 손빈은 전기에게 임치, 고당 두 성의 대부로 하여금 평릉을 직접 공격해 위군 주력군을 유인하게 하자고 건의했다. 이에 따라 평릉을 직접 공격한 제나라군은 패퇴했다. 또한 손빈은 전기로 하여금 가볍게 무장한 전차를 보내 위나라의 수도 대량 외곽까지 쳐들어갔다가 도로 물러가게 했고, 소규모 병력을 파견해 방연의 부대와 싸우는 척 하다가 퇴각하게 했다.

방연은 제나라군을 쉽게 물리치자 그들을 얕잡아봤다. 그는 휘장을 거두고 병사들을 가볍게 무장시켜 밤낮으로 제군을 추격했다. 이에 손빈은 주력군을 이끌고 계릉에 복병을 매복시켰다. 기원전 353년 10월, 위군은 제군을 추격하던 중 계릉에서 매복에 걸려들었다. 위군 장병들은 장기간 전쟁을 치른 데다 급히 행진한 터라 크게 피로했기에, 제나라군의 습격에 재대로 대항하지 못하고 크게 패했다. 이리하여 계릉 전투는 제나라군 의 승리로 막을 내렸다.

4. 결과[편집]


손빈은 비록 계릉 전투에서 완승을 거뒀지만, 대량을 당장 공격하지 않고 물러갔다. 방연은 전투에서 패했지만 한단을 함락시킨 공적이 인정되어 위혜왕의 용서를 받았다. 그 후 기원전 352년, 방연은 한나라군과 연합하여 양릉을 포위한 제나라, 송나라, 위나라 연합군을 요격해 승리를 거뒀다. 이에 제나라는 초나라에게 중재를 설 것을 요청했고, 초나라는 제나라, 위나라를 비롯한 여러 나라를 중재해서 각국이 휴전을 맺게 했다. 기원전 351년, 위혜왕은 조성후와 장수 변에서 회맹하고 조나라 수도 한단을 돌려줬다.

그러나 휴전은 오래가지 않았다. 기원전 340년 위나라가 조나라와 동맹을 맺고 한나라를 공격하자, 한나라는 제나라에 구원을 요청했다. 이에 전기와 손빈은 재차 출격해 마릉에서 방연의 위군과 일대 결전을 벌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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