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곤 덴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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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조 초대 천황
고곤 덴노
光嚴天皇


파일:광엄천황.jpg

출생
1313년 8월 1일
야마시로국 교토 교토 어소
(現 교토부 교토시)
사망
1364년 8월 5일 (향년 51세)
북조 야마시로국 교토 상조황사
(現 교토부 교토시)
능묘
야마쿠니능(山國陵(산국릉)
재위기간
일본 황태자
1326년 7월 24일 ~ 1331년 10월 22일
북조 초대 천황
1331년 10월 22일 ~ 1333년 7월 7일
북조 상황
1333년 7월 7일 ~ 1364년 8월 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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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통
지묘인통(持明院統(지명원통)

카즈히토(量仁(량인)
부모
부황 고후시미 덴노
모후 사이온지 야스코
형제자매
10남 5녀 중 3남
배우자
긴시 내친왕, 쥬시 내친왕
자녀
4남 8녀
종교
불교
법명
쇼코치(勝光智(승광지), 코치(光智(광지)
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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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쿄코테에(正慶皇帝(정경황제)
지묘인호오(持明院法皇(지명원법황)
지묘인죠코(持明院上皇(지명원상황)
지묘인죠도노(持明院殿(지명원전)
아마노호오(天野法皇(천야법황)
아마노도노(天野殿(천야전)
코쿠라호오(小倉法皇(소창법황)
코쿠라도노(小倉殿(소창전)
후시미다이호오(伏見大法皇(복견대법황)
무노리카즈(無範和尙(무범화상)

원호
고곤인(光嚴院(광엄원)
시호
고곤 덴노(光嚴天皇(광엄천황)
연호
쇼쿄(正慶(정경, 1332년 ~ 1333년)


1. 개요
2. 생애
3. 가계도
4. 일화



1. 개요[편집]


일본 난보쿠초 시대 북조의 초대 덴노로 지묘인 황통이었다. 이름은 카즈히토(量仁)였다.

1313년 고후시미 덴노와 뇨고인 사이온지 비의 사이에서 3남으로 태어났다. 그의 동복 아우로 유타히토(豊仁)가 있는데, 그는 훗날 북조의 제2대 덴노인 고묘 덴노가 되었다.


2. 생애[편집]


1331년(겐코 원년) 다이카쿠지 황통고다이고 덴노겐코(원홍)의 변을 일으켜 가마쿠라 막부를 타도하려 하다가 발각되어 오키 섬으로 유폐되었고, 카즈히토 친왕이 가마쿠라 막부에 의해 고곤 덴노로 추대되었다. 그러나 1333년 고다이고 덴노가 오키 섬을 탈출하고, 그와 손잡은 아시카가 다카우지가 교토를 장악하여 고곤 덴노는 즉위한 지 2년 만에 폐위되어 버렸다.

하지만 다카우지의 반란이 일어나 고다이고 덴노는 다시 폐위된 후 유폐되었고, 고곤 덴노의 아우인 유타히토가 새로운 덴노가 되었다(고묘 덴노).

1351년, 아시카가 다카우지와 다다요시 형제 간의 내분인 간노의 요란으로 북조가 항복하고 남조가 일시적으로 세력을 회복했다. 남조의 제2대 덴노인 고무라카미 덴노가 교토에 입성하여 북조의 스코 덴노를 폐위시키고 고곤 상황 및 고묘 상황을 함께 남조로 끌고 갔다. 그후 고곤 상황은 남조의 거점인 도조, 아노, 곤고지 등을 전전하는 가운데 선승이었던 무소 소세키에게 귀의하여 출가하고 법명을 '쇼코치'로 했다. 그는 교토에 돌아온 후 조쇼코지에서 선에 정진하면서 여생을 보냈다. 일기로 《고곤천황신기》(光厳天皇宸記)가 전해지고 있다.


3. 가계도[편집]


  • 비(妃) : 센세이몬인(宣政門院) 요시코(킨시) 내친왕(懽子 内親王) (1315-1362) - 고다이고 덴노의 황녀
    • 제3황녀 : ? (1335-?)
    • 제4황녀 : 히가코(코우시) 내친왕(光子 内親王) (1337-?)
  • 비(妃) : 키안몬인(徽安門院) 코토코(쥬시) 내친왕(壽子 内親王) (1318-1358) - 하나조노 덴노의 황녀
  • 텐시 : 산죠(후지와라) 히데코(三条(藤原) 秀子) (1311-1352) - (오기마치)산죠 킨히데{(正親町)三条 公秀}의 딸
    • 제2황녀 : ? (1333-?)
    • 제1황자 : 오키히토 친왕(興仁 親王) - 스코 덴노
    • 제2황자 : 이야히토 친왕(弥仁 親王) - 고코곤 덴노
    • 황녀 : ?
  • 후궁 : 킨온카타(今御方) 사이온지(후지와라)씨{西園寺(藤原)氏} - 사이온지 사네히로(西園寺実衡)의 딸
  • 후궁 : 타이온카타(對御方) 사이온지(후지와라)씨{西園寺(藤原)氏} - 사이온지 사네아키라(西園寺実明)의 딸
    • 제4황자 : 손쵸 법친왕(尊朝 法親王) (1344-1378)
    • 황녀 : ?
  • 후궁 : 이치죠노츠보네(一条局) 오기마치(후지와라)씨{正親町(藤原)氏} - 오오기마치 킨카게(正親町公蔭)의 딸
    • 제3황자 : 오기마치노미야(正親町宮) 요시히토 친왕(義仁 親王) (?-1415)
  • 후궁 : 오오이노미카도(후지와라)씨{大炊御門(藤原)氏} - 오오이노미카도 후유우지(大炊御門冬氏)의 딸
    • 황녀 : ? (1331-1402)
  • (생모 미상)
    • 황녀 : 카린에겐(華林恵厳) (?-1386)


4. 일화[편집]


1342년 9월, 고곤 상황의 행차가 지나갈 무렵에 마침 무로마치 막부측 무사인 미노국의 슈고 도키 요리토의 행렬과 마주치게 되었는데, 어가 행차측에서

"원(院, 인)의 행차이니 말에서 내리시오"

라며 예를 갖출 것을 요구하자 도키 요리토는

"인의 행차? 개(이누)의 행차라고?. 개(이누)라면 활로 쏘아야지"

라며 어가를 발로 걷어차며 활로 쏘았다. 쇼군 아시카가 다카우지의 동생이었던 아시카가 다다요시는 이를 알고 격노해 도키 요리토를 체포할 것을 명령했고, 요리토는 일단 미노로 돌아가서 모반을 계획했지만 실패하고 선승인 무소 소세키가 있었던 임천사로 도망쳐 구명을 호소했다. 또 각지에서도 앞서 막부를 도와 전공을 세운 도키 요리토의 구명을 호소하는 목소리가 많았으나, 다다요시는

"국사를 봐서 요리토는 엄벌에 처하되 도키씨의 자손은 용서하겠다"

라며 일축했고, 결국 요리토는 임천사를 포위하고 있었던 무로마치 막부군에 연행되어 사무라이도코로노카미인 호소카와 요리우지에게 신병이 넘겨져 12월 1일, 교토의 로쿠조 강변에서 처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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