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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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고금도(古今島)는 전라남도 완도군 고금면에 속한 섬으로 면적 43.23km2, 해안선 길이 80.3km이며 완도 동북쪽에 위치해 있다. 섬의 동쪽으로는 조약도[1] 와 연도교로 연결 되어 있고, 더 동쪽에는 평일도[2] , 생일도, 금당도가 위치해 있다. 북쪽으로는 강진군 마량면과 고금대교로 연륙되어 있다. 남쪽으로 접해있는 신지도와는 장보고대교[3] 로 연결되어 있으며, 차량으로 이동 할 경우 신지도를 거쳐 15분 정도면 완도 읍내까지 갈 수 있다.
2. 지명의 유래[편집]
예로부터 섬 내에 군자(君子)가 많이 살았다 하여 고금도(古今島)라 불렀다고 한다.
3. 묘당도 이충무공 유적[편집]
고금도는 이순신 장군이 정유재란 당시 조선 수군 통제영을 새로 설치한 곳이고, 노량해전에서 전사한 충무공을 유해를 임시로 안치했던 곳이기도 하다. 원래는 한산도에 있었으나 칠천량해전때 파괴되었다.
이러한 인연으로 고금도에는 이충무공의 사당과 충무공을 임시로 안치했던 가묘지가 남아 있으며, 이 유적들은 사적 제114호 완도 묘당도 이충무공 유적(莞島 廟堂島 李忠武公 遺蹟)으로 지정되어 있다. 묘당도라는 이름처럼 본래 사당이 있던 곳은 별개의 섬이었지만, 지금은 간척되어 고금도와 완전히 연결되어서 별개의 섬임을 알아볼 수는 없다.
4. 교통[편집]
2007년 개통된 고금대교를 통해 육지인 강진군 마량면과 연결[4] 되었고, 고금대교를 통해 육지로 나갈 수 있게 되었다. 버스로는 광주에서 시외버스가 고금도까지 운행되면서 시외교통도 섬치고는 편리하다. 동쪽의 조약도와는 1999년 개통된 약산대교로 연도되어 있어서 광주에서 시외버스가 하루에 4번은 약산당목항까지 연장운행한다. 남쪽의 신지도와는 장보고대교로 연결되어 있다. 특히 2017년 11월 28일 장보고대교가 개통되면서 고금도와 신지도가 연결되고, 신지도를 거쳐 완도 본섬으로도 오갈 수 있게 되면서 완도군의 중심지인 완도읍으로의 접근성이 개선되었다.
한때 서울남부에서 출발해 나주혁신도시, 영암, 강진, 마량을 경유해 고금도까지 오는 시외버스 노선이 왕복 일 1회 운행하였으나 수요 부족으로 영암으로 단축되어 고금도까지는 운행을 하지 않게 되었다. 따라서 현재는 고금도에서 서울로 가려면 무조건 광주, 강진에서 환승을 해야 한다.[5]
5. 교육[편집]
완도군 내에서는 완도읍, 노화읍 다음으로 인구[6] 가 많아 5,000명이나 되기 때문에 학령 인구가 제법 있다. 고등학교 1개교를 비롯하여 중학교 1개교, 초등학교 1개교가 있다.
취소선: 폐교된 학교
초등학교 : 고금 초등학교,
중학교 : 고금중학교
고등학교 : 고금고등학교
6. 유배지[편집]
조선 시대 때 여느 섬들처럼 이곳도 유배지로 이용되었다. 이곳에 유배된 유명인으로는 홍봉한의 동생이자 혜경궁 홍씨의 숙부인 홍인한과 동학농민운동을 촉발 시켰던 탐관오리 조병갑, 추사 김정희의 아버지 '김노경' 등이 있다.
7. 여담[편집]
해당 유튜브 동영상
Loud G의 피킷리스트에서 이곳을 다녀갔다.
8. 출신 유명인[편집]
박광태 : 9·10대 광주광역시 시장, 14·15·16대 국회의원
김영록 : 전라남도지사, 前 농림축산식품부장관, 18·19대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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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약산면의 본섬 이름, 면의 이름과 면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본섬의 이름이 다르다.[2] 금일읍의 본섬 이름, 읍의 이름과 읍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본섬의 이름이 다르다.[3] 장보고대교가 건설되기 이전에는 완도군에 속하지만 완도와는 연륙되어 있지 않아 차량으로 이동 할 경우 강진군과 해남군을 거쳐 이동해야 하며 2시간 정도 걸렸다.[4] 사람들이 고금도에 살게 된지 623년 만에 육지와 연결되었다고 한다.[5] 이후 단축된 서울남부 - 영암 노선도 코로나 19 여파로 완전히 폐지되었으며, 서울 ↔️ 강진 노선이 그 뒤를 잇고 있으나 이 노선 또한 고금도로 들어오진 않는다.[6] 면소재지이지만 같은 지자체의 금일읍보다 인구가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