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니시 만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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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어린 시절
3. 사제서품까지


1. 개요[편집]


小西マンショ(Konishi Mancio)[1], 1600-1644

에도 시대 초기의 일본인 가톨릭 신부. 아버지는 쓰시마 도주 소 요시토시, 어머니는 고니시 마리아(小西マリア), 외할아버지는 고니시 유키나가이다.

2. 어린 시절[편집]


쓰시마에서 태어났다. 외할아버지인 고니시 유키나가 가문이 기리시탄이었던 것은 유명한 사실이고, 어머니 고니시 마리아도 가톨릭 신자였다. 아버지 소 요시토시도 장인의 권유로 신자가 된 사람이다.

훗날 고니시 유키나가세키가하라 전투에서 패하여 처형되자, 쓰시마에 화가 미칠 것을 염려한 소 요시토시는 유키나가의 딸 마리아를 소 가문에서 내쫓았다. 마리아는 갓난 아들과 함께 규슈로 추방되었고, 그래서 아들은 외가의 성씨인 '고니시'를 따라 '고니시 만쇼'가 되었다. 고니시 만쇼 또한 외가와 어머니의 영향으로 어려서부터 가톨릭 신앙을 가지게 되었다.


3. 사제서품까지[편집]


1614년 기베 시게카츠(岐部茂勝、1597-1639)[2] 등과 함께 인도고아 주, 아프리카 희망봉, 포르투갈을 거쳐 로마로 건너갔다. 고니시 만쇼는 1624년 8월 28일 예수회에 입회하여 사제가 되기 위한 수련을 받기 시작했고, 1627년 사제서품을 받아 신부가 되었다.


4. 순교[편집]


고니시 만쇼 신부는 1632년 귀국길에 올랐고, 일본에서 사목활동을 하다가 1644년 체포되어 순교했다. 고니시 만쇼 신부가 순교하고 난 후로 일본 내에 일본인 사제는 존재하지 않게 되었고, 이후 메이지 시대까지 일본인 사제는 탄생하지 않았다.

여담이지만 쓰시마에서는 1606년에 사망한 도주 부인 마리아의 원혼을 달래기 위해 1619년에 신사(…)를 세우고 제사를 지내고 있었는데, 만쇼 신부 역시 순교 후 이 신사에 합사되었다(…). 참고로 이 신사는 겉으로는 스가와라노 미치자네를 모시는 신사로 위장되어 있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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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5세기 로마 출신의 순교자인 에보라의 성 만치오에게서 따온 듯하다. 라틴어로는 Mancius이고, 유대인 상인에 의해 노예로 팔려 지금의 포르투갈인 에보라까지 갔고, 그곳에서 주인에 의해 순교했다고 한다. 축일은 3월 15일이다. # [2] 예수회 신부로, 세례명은 베드로. 일본인 최초로 예루살렘을 방문한 인물이기도 하다. 1620년 사제품을 받았고, 일본으로 귀국하여 활동하다가 1639년에 순교하였다. 2008년 동료 순교자 187위와 함께 시복되어 복자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