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대학교/학부/법과대학

덤프버전 :

파일:나무위키+상위문서.png   상위 문서: 고려대학교/학부

파일:나무위키+넘겨주기.png   관련 문서: 고려대학교/대학원/법학전문대학원

파일:나무위키+넘겨주기.png   관련 문서: 고려대학교/학부/자유전공학부


파일:고려대학교 로고_웜그레이.svg






파일:external/koryo.eu/t_459106.jpg


1. 개요
2. 역사
2.1. 연혁
2.2. 국내 최고(最古)의 법과대학
2.3. 학문적 전통
2.4. 학생운동의 전통
3. 출신 인물
4. 분리된 학과



1. 개요[편집]


1905년 보성전문학교 법률학전문과로 설립되었고 2009년 이후 신입생을 더 이상 받지 않게 되기까지 고려대학교를 대표하는 위상의 학부였던 단과대학. 줄여서 '고대 법대', 또는 '고법'이라고도 부르고 있다.

검사, 판사, 변호사와 같은 법조계 인물은 물론 정관계, 학계 등을 주도하는 수많은 인물을 배출하였다.

로스쿨 전환으로 법대 학부는 2009학년도에 신입생 모집을 중지하여 2018년 2월부로 완전 폐지되었고, 기존 법대 수료생(4학년을 마친 졸업유예자)들은 영어성적제출 등과 같은 졸업여건과 상관없이 2018년 2월부로 강제 졸업처리되었다.

고려대학교 법학과 입학정원 중 120명이 고려대학교 로스쿨로 변환되었으며, 나머지 인원은 자유전공학부로 바뀌었다. 현재 고려대학교 법과대학과 고려대학교 로스쿨은 통합 교우회를 운영한다.


2. 역사[편집]



2.1. 연혁[편집]


  • 1905년 충숙공 이용익 선생이 수업연한 2년의 보성전문학교 법률학전문과 설립
  • 1907년 01월 법률학전문과를 법률과로 개칭하고 수업연한을 3년으로 연장
  • 1915년 일제에 의해 사립보성법률상업학교 법률과로 격하됨
  • 1922년 보성전문학교 법과로 복원됨
  • 1932년 중앙학원 보성전문학교 인수
  • 1934년 안암동 교사로 이전
  • 1944년 일제에 의해 경성척식경제전문학교 척식과로 강제 개명됨
  • 1945년 해방, 보성전문학교 법과로 다시 환원됨
  • 1946년 종합대학교인 고려대학교 내의 4년제 정법대학 법률학과로 승격됨
  • 1951년 대구 임시교사 개교
  • 1953년 안암동 교사 재개교
  • 1955년 정법대학을 법과대학과 정경학부로 분리, 입학정원 각 80명 법과대학 법학과·행정학과 신설
  • 1981년 행정학과의 정경대학 이전으로 법학과 단일학과 단과대학으로 전환
  • 1984년 법학관 준공
  • 1995년 법무대학원 신설, 제1대 법무대학원장에 제9대 법과대학장(1986. 3. 1. ~ 1989. 2. 28.) 역임한 김형배(金亨培) 교수 취임(임기 : 1995. 12. 1. ~ 1997. 11. 30.)
  • 1998년 법무대학원에 국내 유일의 경찰법 전공 석사학위(법학석사) 과정인 경찰법학과 신설
  • 2005년 법과대학 설립 100주년
  • 2007년 03월 국내 최대 법학도서관인 해송법학도서관 개원
  • 2009년 법학전문대학원으로 전환됨 (학부 신입생 모집 종료)
  • 2015년 법무대학원 국제경제법학과와 국제거래법학과를 통합하여 국제법무학과 신설, 지방자치법학과 폐지
  • 2018년 학부생 운영 폐지


2.2. 국내 최고(最古)의 법과대학[편집]


1905년에 설립된, 우리나라 최고(最古)의 법과대학이다. 법관양성소[1]가 1895년에 세워져 연도가 더 빠르다고는 하나, 법관양성소는 오늘날의 사법연수원에 가까운 국가관리 양성기관으로서 학문적 독립성을 갖춘 교육기관이라 보기 어려운 면이 있다.

이에 대해서는 '근대적 법학 교육의 시작'이라는 측면에서 법관양성소보다 늦을 수밖에 없고, '대학'이라는 구체적 실체를 놓고 보더라도 보성전문학교는 '대학'이 아닌 전문학교에 불과하지 않냐는 시선도 존재한다. 하지만 고대 법대는 실제 대학으로 인정받았던 경성제국대학 법문학부와도 연결고리가 존재하는데, 경성제대 법문학부 출신 학자 가운데 주력 인물들이 고대 법대 교수로 많이 부임하였다.[2]


2.3. 학문적 전통[편집]


일제 시절에 당대 최고의 조선인 변호사였던 허헌과 가인 김병로, 해공 신익희, 법철학자 안호상, 헌법학자 유진오, 법철학자 최용달, 상법학자 최태영, 민법학자 진승록, 형법학자 이건호 등 저명한 학자들이 보성전문 법과의 교수진에 포진하고 있었다. 경성제국대학 법학과의 교수진이 전원 일본인이었던 것과 대비되게 보전 법과의 교수진은 저명한 국내 법학자들로 구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해방 이후에는 대한민국 헌법을 기초한 유진오 총장이 본인의 경성제국대학 법문학부 후배들을 교수로 영입하여 민법학자 현승종, 국제법학자 박재섭, 법철학자 이항녕, 형법학자 남흥우, 상법학자 차낙훈 등이 고려대학교 법과대학 교수로서 학맥을 만들어나갔다.

1980년대 이후에는 민법에서 김형배, 조규창, 형법에서 김일수, 배종대, 상법에서 이기수, 헌법에서 계희열 등 독일유학파 출신들이 고려대학교의 학풍을 주도하면서, 주로 일본 번역 법학에 의존하던 분위기에 맞서는 대항마 역할을 담당하였다.

1990년대에는 김일수, 배종대, 이상돈 등 고려대학교 형법 교수들의 학문적 역량이 높은 평가를 받았다. 1990년대 중후반에는 당시 고대 법대에 임용된 상법 김정호, 행정법 류지태, 민법 김제완 교수 등의 강의력이 워낙 좋아, 고대 법대생들의 실력이 급상승하기도 했다.

2000년대 이후에는 고대 법대의 학문적 위상이 침체기에 접어들었다는 평가가 있기도 했다. 고대법대 학-석사 졸업, 독일 법대 박사 졸업이라는 이른바 고법 성골라인을 밟은 교수들의 실력이 옛 스승의 실력만 못하지 않냐는 의문이 제기되었던 것.[3]

그러나 로스쿨 도입 이후 대한민국 전체에서 학문으로서의 법학이 거의 멸망하다시피 하고 사실상 로스쿨 교수진의 수준이 거의 평준화되면서 이제는 고법의 학문적 위상에 아쉬움을 표하는 소리도 들을 수 없게 되었다.


2.4. 학생운동의 전통[편집]


일제 강점기 초부터 남형우, 김립, 윤해, 이춘숙 등 보전 법과의 졸업생들 가운데 다수가 항일운동을 펼쳤고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참여하였다. 그 외에도 서상일 등 숱한 졸업생들이 만주와 대구 등지에서 독립운동가로 활약하는 등 보전 법과생들은 국내 그 어느 학교 어느 학과 학생들보다도 더 민족 독립에 헌신한 사람들의 비율이 높은 편이었다.

3.1 운동 당시에는 실질적으로 만세 시위를 주도한 학생대표가 바로 보전 법과 재학생인 강기덕이었다. 그 후에도 보전 법과는 전통적으로 데모 기질 충만한 민족독립운동, 사회주의운동의 투사들을 무수히 길러낸 학교로 명성이 높았다. 일제강점기 최고의 민족 지도자 중 한 사람이었으며 가장 유명한 조선인 출신 변호사였던 허헌도 보전 법과 출신이었는데, 해방 이후 월북한 허헌김일성대학교 초대 총장으로 임명되었을 정도로 조선 지식인 사회에서 무게 있는 인물로 인정 받고 있었다.

해방 이후 고려대학교 법과대학으로 개칭된 이후에도 엘리트 좌파 학생들이 엄청 많은 걸로 유명했다. 조정래의 대하소설 태백산맥에서도 "서울의 ㄱ대학 법과는 사상적으로 중무장되고 행동적으로 과격한 그야말로 골수 사회주의자들의 집합소였다."라고 묘사되고 있을 정도이다.[4] 한국의 체 게바라로 불리던 이현상 남부군 총사령관과 이호제 강동정치학원 원장도 보전 법과, 즉 고려대학교 법과대학 출신이었다.

물론 고대 법대에는 좌파 학생들만 가득했던 것은 아니며, 이철승 같은 우파 학생운동 지도자도 고대 법대 소속이었다.

자유당 정권 말기 4.18. 의거의 주역도 고려대학교 법과대학 학생들이었다. 한일 국교 정상화 반대 시절은 물론이고 서슬 퍼런 유신 시절에도 전국에서 가장 극렬하게 박정희 정권에 저항하던 학생들은 바로 고려대학교 법과대학 학생들이었다.

예를 들어 1971년 광주 대단지 사건이 일어났을 때, 고려대 지하신문 '한맥'을 통해서 이를 폭로하고 그 실상을 전세계에 알린 사람은 법학과 70학번 조상호였다. 그로 인해 조상호는 경찰에 체포되고 강제징집되어 최전방에서 근무해야 했다. 후에 조상호는 나남출판사라는 사회과학 전문 출판사를 설립하여 출판운동을 통해 대한민국의 민주화에 기여하였다.

박정희가 죽고 짧은 서울의 봄이 찾아왔을 때, 당시 고려대 총학생회장은 법과대학 74학번 신계륜이었는데, 그때 신계륜의 주장대로 서울역 앞에서 학생들이 계속 버티며 투쟁했다면 광주의 비극은 없었을지도 모를 일이다.[5]

그 후 전두환-노태우 정권기에도 전국적인 대규모 학생운동을 이끌었던 것은 고대 법대생들이었다. 특히 85학번 오영식은 제2기 전대협 의장이었고[6], 91학번 정태흥은 제3기 한총련 의장이었다.

물론 민주화 이후 고대 법대의 학생운동은 급격히 쇠퇴하였지만, 1990년대 중반까지 고대 법대가 대한민국 학생운동계에서 차지했던 위상은 실로 대단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2.5. 로스쿨 도입 이후[편집]


로스쿨 인가 4위에 랭크되었으며, 120명을 배정 받았다. 당시 실제 인가된 정원이 학교 측과 외부인들이 예상한 정원보다 적다는 말이 많이 나왔는데, 그 이유는 법학전문대학원 제도 도입 반대의 선봉장에 서있었던 고려대 측의 불성실한 자료 준비 때문이었다. 서울 시내 한 대학 관계자는 “고대는 이행계획서를 제출할 때 각 부문 평가요소 커트라인에 딱맞게 맞춰서 준비를 해, 서류를 충실히 준비해온 타대학에 비해 점수를 박하게 받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고려대는 66개 항목의 정량평가에서 8, 9위로 밀린 것으로 알려졌다. 여성교수 비율에서 4점, 실무 교수 충원에서 무려 7점, 연구 업적에서 4점, 재정에서 무려 9점이 깎였다는 것이다. 충격을 받은 고려대는 2008년 2월 경 로스쿨 예비 인가 반납을 심도 있게 검토하기도 하였지만 결국 실제로 이루어지진 않았다.

이후 역사는 고려대학교/대학원/법학전문대학원 문서 참조.

2.6. 자유전공학부[편집]


고대 법대의 신입생 모집 중단으로 2009년 설립된 것이 자유전공학부이다. 실제 커리큘럼은 법학부에 준한다고 보기에 부족한 점이 있지만[7], 어쨌든 로스쿨 대비를 위한 커리큘럼으로 구성되어 있어 고대 법대의 전통을 잇는 학부이다. 법대 부활에 대비해서 자유전공학부로 정원을 빼놓았기 때문에,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만에 하나 법률 개정 등으로 법과대학이 부활하면, 자유전공학부의 역사는 고대 법대의 역사에 편입될 가능성이 높다.

자유전공학부 문서 참고.

3. 출신 인물[편집]


입학년도 또는 졸업년도를 기준으로 배열한다. 행정학과가 정경대로 이관되기 이전 학번인 '법과대학 행정학과' 출신자도 여기에 당연히 포함시킨다. 누구를 빼고 누구를 넣는지에 관한 논란을 막기 위해, 별도의 문서를 갖고 있지 않은 출신자는 여기에 포함시키지 아니한다.

  • 허헌 - 김일성대 초대 총장 (법과 1907년 졸업)
  • 윤익선 - 일제강점기 교육인 (법과 1907년 졸업)
  • 변영만 - 독립운동가/변호사 (법과 1908년 졸업)
  • 남형우 - 임정 법무총장 (법과 1908년 졸업)
  • 서상일 - 독립운동가 (법과 1909년 졸업)
  • 윤해 - 임정 국민대표회의 의장 (법과 1910년 졸업)
  • 김립 - 임정 국무원 비서장 (법과 1910년 졸업)
  • 장도빈 - 대한매일신보 논설주필 (법과 1911년 졸업)
  • 차상찬 - 한국 잡지언론의 개척자 (법과 1913년 졸업)
  • 이종성 - 독립운동가/국회의원/검찰총장(법과 1914년 졸업)
  • 이병도 - 대한민국 사학계 태두/문교부장관 (법과 1915년 졸업)
  • 김용무 - 미군정 대법원장, 국회의원 (법과 1915년 졸업)
  • 이춘숙 - 임정 학무차장 (법과 1916년 졸업)
  • 김기전 - 독립운동가/사회운동가 (법과 1917년 졸업)
  • 한기악 - 동아일보/조선일보 편집국장 (법과 1917년 졸업)
  • 엄항섭 - 독립운동가/임정 외무위원장 (법과 1919년 졸업)
  • 강기덕 - 3.1.운동 학생대표 (법과 1919년 졸업)
  • 방정환 - 어린이운동가 (법과 1918년 입학)
  • 최규옥 - 농림부 장관, 국회의원 (법과 1923년 졸업)
  • 권병노 - 국회의원 (법과 1925년 졸업)
  • 김정렬 - 2선 의원/ 변호사 (법과 1926년 입학)
  • 이현상 - 빨치산 사령관 (법과 1927년 입학)
  • 이원홍 - 제헌의원 (법과 1931년 졸업)
  • 김용식 - 조선의 축구영웅 (법과 1930년 입학)
  • 김재열 - 변호사 (법과 1932년 입학)
  • 유성권 - 3선 의원 (법과 1936년 중퇴)
  • 허정 - 국무총리/대통령 권한대행/외무부 장관 (법과 1936년 졸업)
  • 백남억 - 5선 의원 (법과 1936년 졸업)
  • 윤택중 - 3선 의원 (법과 1936년 졸업)
  • 김덕열 - 국회의원 (법과 1936년 졸업)
  • 허정구 - 삼양통상 회장 (법과 1937년 졸업)
  • 이호제 - 사회주의 운동가 (법과 1938년 졸업)
  • 김학묵 - 한국뇌성마비복지회장 (법과 1938년 졸업)
  • 조병일 - 법무부 장관 (법과 1939년 졸업)
  • 강의석 - 검사/변호사 (법과 1939년 졸업)
  • 백상기 - 법무부 장관 (법과 1940년 졸업)
  • 정성태 - 국회부의장 (법과 1941년 졸업)
  • 이진용 - 국회의원 (법과 1941년 졸업)
  • 홍범희 - 국회의원 (법과 1941년 졸업)
  • 김중서 - 대법관/중앙선관위장 (법과 1943년 졸업)
  • 장영순 - 검찰총장/법무부 장관 (법과 1944년 졸업)
  • 김종경 - 검찰총장 (법과 1944년 졸업)
  • 이철승 - 신민당 대표최고위원 (법과[8] 1946년 졸업)
  • 김일두 - 인권변호사 (법률학과 1948년 졸업)
  • 박찬 - 변호사/국회의원 (법률학과 1950년 졸업)
  • 유수호 - 민정당 국회의원 (법률학과 51학번)
  • 지연태 - 재선 의원 (법률학과 1952년 졸업)
  • 이정우 - 대법원장 권한대행/대법관/법무부장관 (법학과 52학번)
  • 서동권 - 검찰총장, 안기부장 (법학과 52학번)
  • 김형배 - 모교 교수 (법학과 53학번)
  • 황윤기 - 재선 의원 (법학과 53학번)
  • 이상희 - 내무부/건설부 장관 (법학과 53학번)
  • 이준승 - 대법관/중앙선관위장 (법학과 53학번)
  • 염보현 - 서울시장 (법학과 54학번)
  • 박승규 - 초대 환경청장 (법학과 54학번)
  • 김진배 - 재선 의원 (법학과 54학번)
  • 김형광 - 재선 의원 (법학과 54학번)
  • 김경태 - MBC, TBC PD (법학과 54학번)
  • 김인섭 - 법무법인 태평양 성립자 (행정학과 55학번)
  • 이용만 - 재무부 장관 (행정학과 55학번)
  • 김기배 - 4선 의원 (행정학과 55학번)
  • 김영기 - 한국농구연맹 총재 (법학과 55학번)
  • 장덕진 - 대한민국 최초 고시 3과(사법, 행정, 외무) 합격/농수부장관 (법학과 56학번)
  • 이해구 - 경기지사, 내무부 장관, 국회의원 (행정학과 56학번)
  • 이종남 - 검찰총장, 법무부 장관, 감사원장 (법학과 57학번)
  • 정경식 - 헌법재판관 (법학과 57학번)
  • 이택석 - 3선 의원 (법학과 57학번)
  • 이근영 - 금융감독원장 (법학과 57학번)
  • 이동호 - 내무부 장관, 충북지사 (행정학과 57학번)
  • 조남호 - 민선 1~3기 서초구청장 (법학과 57학번)
  • 김기수 - 검찰총장 (법학과 58학번)
  • 이성호 - 보건복지부 장관, 4선 의원 (행정학과 58학번)
  • 손주환 - 공보처 장관, 국회의원 (법학과 58학번)
  • 김중권 - 대통령비서실장, 민주당 대표최고위원 (행정학과 59학번)
  • 황창평 - 국가보훈처장 (행정학과 59학번)
  • 임채정 - 국회의장 (법학과 60학번)
  • 양경자 - 재선 의원 (법학과 60학번)
  • 김영준 - 재선 의원 (법학과 60학번)
  • 박상범 - 대통령경호실장/보훈처장 (법학과 60학번)
  • 유지담 - 대법관/중앙선관위원장 (법학과 61학번)
  • 남궁진 - 문화관광부 장관 (법학과 61학번)
  • 김충조 - 5선 의원 (법학과 61학번)
  • 박재홍 - 4선 의원 (행정학과 61학번)
  • 김상희 - 가수 (법학과 61학번)
  • 이원성 - 국회의원 (법학과 61학번)
  • 송정호 - 법무부 장관 (법학과 61학번)
  • 김화남 - 경찰청장/국회의원 (행정학과 61학번)
  • 김각영 - 검찰총장 (법학과 62학번)
  • 이진강 - 대한변협 회장 (법학과 62학번)
  • 이팔성 - 우리금융지주 회장 (법학과 63학번)
  • 김정부 - 재선 의원 (법학과 63학번)
  • 이남기 - 공정위 위원장 (법학과 63학번)
  • 김일수 - 모교 교수 (법학과 65학번)
  • 이기수 - 모교 총장/대교협 회장 (법학과 65학번)
  • 주선회 - 헌법재판관/헌재소장 권한대행 (법학과 65학번)
  • 서재관 - 해양경찰청장 (법학과 65학번)
  • 채이식 - 모교 교수 (행정학과 67학번)
  • 이상수 - 인권변호사/국회의원 (법학과 67학번)
  • 김종빈 - 검찰총장 (법학과 67학번)
  • 조성준 - 재선 의원 (법학과 67학번)
  • 김성호 - 법무부 장관/국정원장 (법학과 68학번)
  • 송훈석 - 3선 의원 (행정학과 68학번)
  • 송철호 - 울산광역시장 (행정학과 68학번)
  • 이귀남 - 법무부 장관 (행정학과 69학번)
  • 박정규 - 참여정부 민정수석 (법학과 69학번)
  • 김봉수 - 키움증권 창립자 (법학과 70학번)
  • 배종대 - 모교 교수 (법학과 70학번)
  • 조상호 - 나남출판사 대표 (법학과 70학번)
  • 정세균 - 국무총리, 국회의장, 민주당 대표 (법학과 71학번)
  • 하경효 - 모교 교수 (행정학과 71학번)
  • 홍성방 - 법학자 (행정학과 71학번)
  • 허구연 - 야구해설가 (법학과 71학번, 체육특기자)
  • 홍준표 - 5선 의원, 경남지사, 한나라당 및 한국당 대표, 19대 대선 후보, 대구시장 (행정학과 72학번)
  • 송하진 - 전북지사 (법학과 72학번)
  • 강희락 - 경찰청장 (법학과 72학번)
  • 허준영 - 경찰청장 (행정학과 73학번)
  • 강병규 - 안전행정부 장관 (법학과 73학번)
  • 신창현 - 재선 의원 (행정학과 73학번)
  • 정유섭 - 제20대 의원 (행정학과 73학번)
  • 염재호 - 모교 총장 (행정학과 74학번)
  • 신계륜 - 4선 의원 (행정학과 74학번)
  • 이춘희 - 세종시장 (행정학과 74학번)
  • 임종인 - 변호사/국회의원 (법학과 74학번)
  • 김태규 - 명리학자 (법학과 74학번)
  • 곽대훈 - 제20대 의원 (행정학과 74학번)
  • 이종배 - 제20대 의원/충주시장 (행정학과 74학번)
  • 김창석 - 대법관 (법학과 75학번)
  • 김용철 - 검사/삼성그룹 법무팀장 (법학과 76학번)
  • 최용규 - 재선 의원 (법학과 76학번)
  • 구자균 - LS산전 회장 (법학과 76학번)
  • 김상도 - 검사/정치인 (행정학과 76학번)
  • 조용병 - 신한금융지주 회장 (법학과 77학번)
  • 한상대 - 검찰총장 (법학과 77학번)
  • 류지태 - 모교 교수 (법학과 77학번)
  • 박남춘 - 재선 의원, 인천광역시장 (행정학과 77학번)
  • 문석호 - 재선 의원 (법학과 77학번)
  • 이재갑 - 고용노동부 장관 (행정학과 77학번)
  • 이욱한 - 숙명여대 교수 (법학과 77학번)
  • 오세훈 - 서울시장 (법학과 79학번)
  • 정동민 - 서울서부지검장/변호사 (법학과 79학번)
  • 양운덕 - 철학자 (법학과 79학번)
  • 이재현 - CJ 대표이사 (법학과 80학번)
  • 이상돈 - 모교 교수 (법학과 80학번)
  • 이정미 - 헌법재판관/헌재소장 권한대행 (법학과 80학번)
  • 최교일 - 서울중앙지검장, 제20대 의원 (행정학과 80학번)
  • 금민 - 사회당 대통령 후보 (법학과 81학번)
  • 김귀옥 - 판사 (법학과 81학번)
  • 조희진 - 여성 최초 검사장 (법학과 81학번)
  • 전해철 - 변호사/국회의원 (법학과 81학번)
  • 맹성규 - 국회의원 (행정학과 81학번)
  • 문무일 - 검찰총장 (법학과 81학번)
  • 주광덕 - 재선 의원 (법학과 81학번)
  • 정태옥 - 제20대 의원 (행정학과 81학번)
  • 이원욱 - 재선 의원 (법학과 82학번)
  • 김의겸 - 한겨레 논설위원 (법학과 82학번)
  • 김경진 - 변호사/국회의원 (법학과 83학번)
  • 박민수 - 제19대 의원 (법학과 83학번)
  • 이동원 - 대법관 (법학과 83학번)
  • 박정화 - 대법관 (법학과 83학번)
  • 손봉기 - 법관, 대구지방법원장 (법학과 84학번)
  • 조은석 - 서울고검장 (법학과 84학번)
  • 오영식 - 제2기 전대협 의장, 국회의원 (법학과 85학번)
  • 박훈 - 노동문제 전문 변호사 (법학과 86학번)
  • 김두식 - 경북대 교수 (법학과 86학번)
  • 오인서 - 대구고등검찰청 검사장 (법학과 86학번)
  • 함진규 - 19대 국회의원 (법학과 86학번)
  • 김진동 - 판사 (법학과 86학번)
  • 노종면 - YTN 앵커 (법학과 87학번)
  • 박재영 - 판사/변호사 (법학과 87학번)
  • 염경엽 - 프로야구 감독/단장 (법학과 87학번)
  • 김상식 - 대한민국 농구 국가대표팀 감독 (법학과 87학번)
  • 박준철 - 공단기 행정법 강사 (법학과 89학번)
  • 심재학 - 前 야구선수, 야구코치, 現 야구 해설위원 (법학과 91학번)
  • 정태흥 - 민중당 정책위의장 (법학과 91학번)
  • 김정일 - 행정법 강사/변호사 (법학과 92학번)
  • 강부영 - 판사 (법학과 93학번)
  • 서향희 - 변호사 (법학과 93학번)
  • 임은정 - 검사 (법학과 93학번)
  • 홍성수 - 숙명여대 교수 (법학과 94학번)
  • 정선균 - 행정법 강사 (법학과 94학번)
  • 백성문 - 변호사 (법학과 95학번)
  • 한정석 - 판사 (법학과 95학번)
  • 김정철 - 형사법 강사/변호사 (법학과 95학번)
  • 나승철 - 서울변회 회장 (법학과 96학번)
  • 손수호 - 변호사 (법학과 97학번)
  • 임재성 - 변호사 (법학과 99학번)
  • 노정태 - 자유기고가 (법학과 01학번)
  • 조정식 - 메가스터디 영어 강사 (법학과 02학번)
  • 천하람 - 변호사 (법학과 04학번)
  • 강다솜 - MBC 아나운서 (법학과 05학번)

4. 분리된 학과[편집]



4.1. 행정학과[편집]


1955년
법과대학 행정학과 설립
1981년
법과대학 행정학과가 정경대학으로 소속 이전
1955년 만들어져 1981년까지 존속한 법과대학 행정학과는 이름과 달리 행정학만 가르치는 학과였다고 보기 어렵다. 당시 단과대의 소속 학과 수에 따라 지원에 차등이 있었기 때문에 더 많은 지원을 받기 위해 법과대학 내에 법학과와 행정학과를 둔 것이고, 행정학과 역시 법학 수업을 많이 이수해야 졸업이 가능한 커리큘럼이었다.

그리고 2015년에 정경대학 행정학과에서 주최한 '행정학과 설립 60주년 기념 행사'에는 과거 법과대학 행정학과 졸업생을 초청하여 교류하는 모습을 보였다. 고려대 행정학과의 역사가 법과대학에서 정경대학으로 이어진 것처럼, 지금은 없어진 법과대학이라도 해당 학과의 졸업생들은 교류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법과대학 행정학과의 대표적인 출신 인물로는 홍준표가 있다.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고려대학교/학부/정경대학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파일:CC-white.sv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고려대학교/학부 문서의 r452에서 가져왔습니다. 이전 역사 보러 가기
파일:CC-white.sv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다른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
[ 펼치기 · 접기 ]
고려대학교/학부 문서의 r452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파일: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__CC.pn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3-11-12 10:44:14에 나무위키 고려대학교/학부/법과대학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

[1]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의 전신[2] 대표적인 사람이 유진오 총장과 현승종 교수, 박재섭 교수, 이항녕 교수, 남흥우 교수, 차낙훈 교수 등.[3] 물론 우리나라 법학도 이제는 많이 발전했고, 각 전공별로 세분화가 상당히 이루어짐으로써, 옛날 1980년대와 같이 한 전공에 도미넌트한 법학자가 나오기는 어차피 어려워졌다는 분석도 있다. 예를 들어 형법이라면 예전처럼 형총-형각-형소로만 나뉘는 게 아니라, 경제형법, 환경형법, 사이버형법, 보건형법, 마약형법, 조세형법, 교통형법, 정보형법, 양형법, 군형법 등으로 나뉘고 있고, 민법이라면 예전처럼 계약-물권-불법행위-친족-상속으로만 나뉘는 게 아니라, 매매-도급-금전채권-토지법-동산담보물권법-신탁법-성년후견법-시효법-집합건물법-소비자법-제조물책임법-주택임대차법-상가임대차법-여행계약법-의료법-손해배상법-부부재산법-이혼법-친자법-입양법-유증법-법정상속법-유류분법 등으로 수십 갈래씩 나뉘는데, 예전처럼 대학자가 나올 수 있겠느냐는 것. 그리고 옛 스승들의 그늘이 너무 커서 후진들이 햇빛 보기 어렵다는 말도 있다.[4] 태백산맥의 주인공들 가운데서도 이해룡과 정하섭이 고려대학교 법과대학 출신이다.[5] 그 당시 서울대 총학생회장이었던 심재철의 주장대로 서울역 회군을 한 결과, 각 대학의 운동권 학생들은 각개격파되어 모진 고문을 받고 감옥 또는 군대로 끌려가 죽음을 당하였다.[6] 제1기 전대협 의장은 고대 국문과 84학번 이인영이었다.[7] 법학부처럼 커리큘럼을 구성하면 교육부의 제재가 들어온다. 실제로 <고용복지와법> 수업을 <노동법>으로 개설하려고 했을때, 제재가 가해졌다고 한다.[8] 단, 졸업은 보성전문학교 법과가 아닌 정법대학 정치학과로 하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