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바야시 세이지(1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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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blewidth=100%><tablebgcolor=#ffffff,#191919> 22 코바야시 세이지 · 24 오시로 타쿠미 · 27 키시다 유키노리 · 67 야마세 신노스케 · 94 키타 류스케 ||
||<bgcolor=#000000,#000000> 코칭스태프투수포수내야수외야수육성선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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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쇼와 시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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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5년 ~ 198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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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9년 ||<width=20%> 1980년 ||<width=20%> 1981년 ||<width=20%> 1982년 ||<width=20%> 1983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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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에다 카즈아키(1) || 쿠와타 마스미 || 키다 마사오(1) || 하시모토 키요시 || 요시다 쇼지(1) ||


[ 헤이세이 시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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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 201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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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9년 ||<width=20%> 1990년 ||<width=20%> 1991년 ||<width=20%> 1992년 ||<width=20%> 1993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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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와하라 준이치(2) || 하라 슌스케(1) || 이리키 유사쿠(2) || 타카하시 요시노부(2) || 우에하라 고지(2) ||
|| 1999년 ||<width=20%> 2000년 ||<width=20%> 2001년 ||<width=20%> 2002년 ||<width=20%> 2003년 ||
|| 타카하시 히사노리(2) || 아베 신노스케(2) || 사나다 히로키(1) || 기사누키 히로시(2)
쿠보 유야(2) || 우츠미 테츠야(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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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키 히토시(2) || 츠지우치 타카노부(3)
후쿠다 사토시(2)(4) || 사카모토 하야토(1)(3)
카네토 노리히토(2)(4) || 후지무라 다이스케(1)(3)
무라타 토오루(1)(4) || 오오타 타이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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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이와 시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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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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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년 ||<width=20%> 2020년 ||<width=20%> 2021년 ||<width=20%> 2022년 ||<width=20%> 2023년 ||
|| 홋타 켄신(1) || 헤이나이 류타(1) || 오타 타이세이(1) || 아사노 쇼고(3) || 니시다테 유우히
(西舘勇陽) ||

(1) 하즈레 1라운더: 첫 지명에서 중복 지명된 선수의 교섭권 획득에 실패했을 때 차순위로 선택한 선수.
(2) 역지명, 희망 입단 범위: 1993년부터 2006년까지 존재한 제도로, 선수를 확정적으로 획득할 수 있었다.
(3) 고교생 드래프트, (4) 대학생, 사회인 드래프트: 2005년~2007년의 3년간은 고교 선수와, 대학&사회인 야구에서 뛰었던 선수의 지명이 분리되어 있었다.
(5) 지명 후 미입단: 현재는 1973년도 코바야시 히데카즈가 유일하다.



파일:고바야시세이지.jpg

요미우리 자이언츠 No.22
고바야시 세이지
小林 誠司 / Kobayashi Seiji

생년월일
1989년 6월 7일(34세)
국적
[[일본|

일본
display: none; display: 일본"
행정구
]]

출신지
오사카부 사카이시 미나미구
포지션
포수
신체
178cm / 86kg
투타
우투우타
프로입단
2013년 신인 드래프트 1순위
소속팀
요미우리 자이언츠 (2014~)
연봉
2021 / ¥100,000,000

1. 개요
2. 프로 입단 전
3. 프로 입단 후
4. 여담




1. 개요[편집]


현재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주전 포수. 2017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서는 일본 야구 국가대표팀에도 선정된 바 있다.


2. 프로 입단 전[편집]


히로시마 고료 고교 시절에는 현재 히로시마 도요 카프의 우완투수인 노무라 유스케와 동기로서 고시엔 대회 우승이 기대되는 초고교급 배터리로 주목받았지만, 잘 알려져있듯 사가키타의 기적의 희생양이 되었다.[1] 고교 졸업 후에는 도시샤대학을 거쳐 사회인야구 일본생명 팀[2] 에서 활약했고, 2013년 드래프트에서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1순위 지명을 받고 입단했다.


3. 프로 입단 후[편집]


위 문단에서 언급된 지명순위에서 알 수 있듯 대형 포수 유망주[3]로 주목받았고, 강견과 안정된 수비력을 앞세워 아베 신노스케가 노쇠화한 요미우리의 주전 포수 자리를 지키고 있다. 하지만 타격의 성장세가 극히 더디다는 게 골칫거리가 되었고 현재까지도 전형적인 수비형 포수의 길을 걷고 있다.[4] 2016년 종료 시점에서 통산 타율은 .218에 OPS가 6할이 되지 않을 정도. 2017년에는 그 후루타 아츠야가 평가전 해설 도중 혹평할 정도로 WBC 시작 전 좋지 못한 성적을 거뒀으나, WBC에서 .450의 타율, 1홈런 6타점의 호성적을 거둬 팬들에게 드디어 타격포텐이 터지나 하는 기대를 가지게 했다.[5] 하지만 2017년 정규시즌에는 규정타석에 거의 근접하면서도 멘도사 라인도 넘지 못하며 타율 1할대를 유지하는 극도로 깝깝한 타격을 보였고, 팀 득점력 악화의 주 원인 중 하나로 까이고 있다. 그렇게 치지 못하던 홈런을 올스타전에서 치자 덕아웃의 다카하시 요시노부 감독과 특별 해설로 잠깐 중계석에 가있던 사카모토 하야토가 실소하고 있었다.

2018년에는 4월 한 달이지만 3할을 상회하는 고타율을 보이며 '드디어 타격에 눈을 뜬건가'라는 설레발을 떨게 했지만, 5월이 되자 귀신같이 1할대를 치며 예년의 모드로 회귀하는 중 5월 종료 시점에서 2할 6푼대 타율에 .650 정도 OPS로 딱 리그 평균 타자 정도의 생산력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시즌이 끝나고 보니 그마저도 다 까먹고 타출장 .215 .279 .300 2홈런 26타점의 저조한 타격성적으로 시즌을 마감했다. 골든글러브도 한신의 우메노 류타로가 차지했다. 다만 일본의 필딩 바이블 어워드라 할 수 있는, 세이버메트릭스 사이트 1point2.jp의 필진들이 선정한 올해의 수비선수상 포수부문을 수상했다. 옆동네 카이 타쿠야의 UZR이 압도적이긴 했지만 고바야시의 뛰어난 프레이밍에 주목해 표를 던진 필진들이 많았다.

그 와중에 교진은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에서 통산 OPS .532에 그치는 또다른 물빠따 포수 스미타니 긴지로를 무려 3년 6억엔에 FA로 영입해 2019년부터 주전 경쟁을 벌이게 될 전망이다. [6] 그런데 이 스미타니가 요미우리에 오더니 갑자기 58경기에서 .260 6홈런 OPS .745를 찍는 공격형 포수로 돌변해 입지가 팍 줄었다. 예년보다 줄기는 했어도 여전히 팀 내 포수로서는 최다인 92경기에 출장했으며, 4할대의 높은 도루저지율과 올해도 세이버쟁이들에게 높이 평가받은[7] 프레이밍과 블로킹 등 수비면에서는 아주 좋은 모습을 보였다. 물론 .244의 타율에 OPS .580을 기록한 타격은 여전히 발전이 없었다.

2020시즌 들어서는 입지가 더욱 더 좁아졌다. 개막한지 얼마 되지도 않은 시점에서 척골 골절상을 당하면서 일찌감치 1군에서 자취를 감춰버렸고 그 사이 주전 포수 자리는 자신보다 월등하게 타격이 뛰어난 오오시로 타쿠미[8] 작년에 세이부에서 건너온 스미타니 긴지로가 양분하는 체제로 굳어지면서 1군에 올라올 기미조차도 보이지 않는다. 거기다 8월 초에는 길을 건너는 도중 자전거를 타던 사람과 부딪혀서 사고를 당하는 등 여러모로 잘 풀리지 않는 시즌을 보내고 있다. 심지어 9월에는 3류 찌라시 언론이긴 하지만[9] 롯데로 트레이드될 거라는 썰도 나왔다.

결국 2020시즌 단 10경기만 나오고 시즌을 마감. 당연하게도 2020년 일본시리즈 엔트리에는 들지 못했다. 구단에서 전력 외 통보만 받지 읺았다 뿐이지 사실상 전력 외 취급.

2021시즌에는 6경기만 나오고 빠르게 2군행. 그리고 2군에서도 극심한 타격 침체에 빠져있는데 5월 10일 기준 2군 타율이 .029에 그치고 있다. 이전까진 포수진이 약한 구단과의 트레이드 매물로 거론되는 기사가 몇 번 나오긴 했지만 이정도 타격이면 거저 줘도 안 쓸 수준. 거기다 나이도 적지 않으니 머리가 돌지 않는 이상 데려갈 팀은 사실상 없다고 봐야 한다. 그래도 강점이라 소문난 수비는 잘 보는지 잠깐동안 도쿄 올림픽 대표팀에 선발되었다가 부상으로 사퇴한 아이자와 츠바사의 대체 선수로 잠깐 언급되기도 했다. 결국 우메노 류타로가 선정되긴 했지만.

하지만 7월 5일에 스미타니 긴지로가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로 트레이드되면서 한동안 방출 썰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10]

21년 시즌 .093/.160/.117 1홈런 3타점 으로 마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2시즌 연봉은 동결되었는데 연봉 1억엔이다. 돈 낭비가 아닐 수가 없다. 심지어 9월 28일 경기종료 이후 기준 타율이 .148/장타율이 .205/출루율이 .157이라는 눈 뜨고 볼 수 없는 스탯을 찍고 박세혁, 이재원보다 못한 가성비를 기록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야모토 카즈토모 요미우리 전 1군 투수코치에 의하면 불가사의하게도 현장의 평가는 좋다.

2022년 시즌에는 부주장을 맡았으나 90타석만 출장했음에도 불구하고 WAR이 -0.7을 기록하여 팬들의 속을 뒤집어 놓고 있다. 오오시로 타쿠미는 12개 구단 포수 중 2위인 2.7. 그 와중에 아베 토시키와쿠이 히데아키도 트레이드되면서 고바야시도 은근슬쩍 타팀에 팔아먹으려고 하는 요미우리 팬들이 보이고 있다.

2023년 현재 12경기 나와서 타율 0. 거기에 호평받았던 수비까지 무너졌다는 평가[11]가 나와 24년에는 백업은 고사하고 선수 생활을 할수있을지 의문이 든다.


4. 여담[편집]


  • 비록 기대했던 만큼 성장하지는 못했지만 입단 당시의 기대치가 컸었고 특히 포수 포지션에서는 귀한 얇은 선의 미남이라 나름대로 여성팬들에게 인기가 있다.


  • 야구 팬들에게는 투수에게 홈런 맞는 것보다 고바야시에게 홈런 맞는 걸 보는 게 더 힘들다는 반응이 나올 정도로 타격이 부실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1] 항목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야구 동아리격이던, 무명의 고교 야구팀이 고교 야구 명문을 쓰러뜨리고 우승을 차지한 명승부로 남은 경기였다.[2] 1929년에 오사카 부에서 창단했으며 도시대항전대회에 60회 출전하여 4회 우승, 사회인야구일본선수권대회에 36회 출전하여 3회 우승을 거두었다. 후쿠도메 코스케, 이노우에 세이야 등이 이 팀을 거쳐갔다.[3] 드래프트 당시 평가. '하라 감독이 고바야시에게 바라는 포수상 - '제 2의 아베'가 아닌 '제 2의 타니시게'에'라는 기사에서는 하라 타츠노리 감독이 고바야시에게 후루타 아츠야, 야노 아키히로. 타니시게 모토노부포수 리드가 뛰어난 것으로 평가받는 '두뇌파' 포수들을 롤 모델로 하라고 주문했다는 대목이 있다. 이중에 한신감독으로 재직중인 야노 아키히로는 놀랍게도 신인드래프트때 요미우리에 입단할뻔 했었다. 자세한건 해당항목 참조.[4] 다만 수비에 있어서도 경기 도중에 마일스 마이콜라스에게 프레이밍 좀 제대로 하라고 지적을 받거나 3루 주자와의 홈 대치 상황에서 어물쩡 거리다가 세이프를 내주는 등 어설픈 모습도 많다.[5] 이 때문에 '세계에서밖에 통하지 않는 남자'라는 별명이 붙었다. 물론 다른 계에서는 개막 후 12경기에서 타율 8푼을 기록하는 등 영 좋지 못한 성적을 거뒀다.[6] 이로인해 2019년 같은 포수유망주였던 오오시로 타쿠미는 주로 1루수 백업/대타 요원으로 출장하고 있고, 우사미 신고는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로 트레이드되었다. 하지만 2020년에 오시로는 코로나19 감염이란 시련을 이겨내고 주전포수로 발돋움 중이다.[7] 후보로 들어간 포수들 중 가장 소화 이닝 수가 적었음에도 그 해 공식 골든글러버이자 훨씬 많은 수비이닝을 소화한 한신의 우메노와 필진 투표에서 1점 차이의 접전 끝에 올해의 수비수 수상을 놓쳤다.[8] 뛰어난 타격 포텐을 지닌 사회인야구 출신 좌타 포수 유망주로 작년엔 주로 1루를 보았지만, 이번 오프시즌에 다카하시 요시노부의 등번호였던 24번을 받고 포수 출장이 늘어날 것을 공언받으며 대놓고 아베 신노스케의 후계자로 점쳐졌다. 단 시즌 전 사카모토 하야토코로나19에 걸리며 시즌 시작은 백업행이 유력했었다.[9] 도쿄스포츠. 그런데 요즘 도쿄스포츠발 찌라시의 적중률이 높아져서 가능성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10] 공격은 도긴개긴이지만 스미타니가 수비에 정평이 난 선수라서 고바야시보다 중용을 받았는데 트레이드가 되었다. 그래서 항간에서는 감독 시키려고 저러는 건가 하는 의견도 있다. 다만 이시이 가즈히사 감독 겸 GM이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 출신 선수들을 자신의 팀으로 많이 데려갔다는 점을 감안하면 세이부 시절의 인맥을 앞세워 스미타니를 영입했을지도 모른다. 물론 라쿠텐 포수진이 시마 모토히로의 이적 이후 이렇다 할 대체자를 찾지 못해 현재까지도 전전긍긍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11] 도루저지률 0에 패스트볼 비율은 오오시로의 세배나 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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