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성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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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국
高成國 | Ko Sung Kuk


파일:고성국TV.jpg

이름
고성국(高成國)
출생
1958년 3월 21일 (66세)
경상북도 대구시
(現 대구광역시)
학력
경기고등학교 (졸업 / 72회)
고려대학교 정경대학 (정치외교학 77 / 학사)
고려대학교 대학원 (정치외교학 / 석사[1])
고려대학교 대학원 (정치외교학 / 박사[2])
병역
대한민국 육군 병장 만기 전역 (카투사)
가족
배우자 홍옥연
슬하 1남 1녀
현직
유튜버, 정치평론가
약력
단국대학교 전임교수
한국외국어대학교 강사
경희대학교 강사
외부 링크
파일:페이스북 아이콘.svg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고성국TV (구독자 : 95.8만명)
1. 개요
2. 생애
2.1. 2012년 이후
3. 저서
4. 여담



1. 개요[편집]


대한민국언론인. 1세대 정치평론가이며, 대형 우파 유튜버이다.


2. 생애[편집]


1958년 3월 21일, 대구에서 출생하였다. 경기고등학교(고교 평준화 이후 입학), 고려대학교 정경대학 정치외교학과(77학번)를 졸업하고, 고려대학교 대학원에서 1984년 정치외교학 석사와 1995년 정치외교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대한민국 제5공화국 당시인 1986년 한국외국어대학교 강사로 있다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옥살이를 했으나 노태우 정부 출범 이후 1988년 사면되었다. 이후 1990년대 초반까지 진보 진영의 각종 포럼 등에 참여하면서 비교적 꾸준히 진보적 정치 평론 활동을 벌여 왔다. 그러다가 2012년 즈음부터 급격히 보수로 정치 노선을 갈아탔고 현재는 강성 친박 보수 성향의 정치 유튜버로 활동 중이다.
고교 평준화 이후 첫 세대 76학번.

1980년대 중반에 '좌익 서적을 밀반입'하다가 구속됐던 전적 등을 보면, 과거에 진보-좌파 성향을 보였던 것은 맞다. 석사학위 취득 후 경희대 등에서 시간강사로 일하면서 진보 계열 언론에 진보적 관점의 정치 칼럼을 가끔 연재하기도 했는데, 당시에 칼럼 등으로 표출된 그의 주된 관심사는 민주화 이후의 권력 지형 및 정치 지형의 변화, 혹은 민주당의 김대중 후보로 대표되는 진보 진영의 선거 승리 전략 등이었다. 1992년 제14대 대통령 선거 국면을 거치며 김영삼이나 그의 아들 김현철 등과 인연을 맺고 민자당의 외곽 조직과 함께 일할 때도 최소한 군부 정권의 후예인 민정계 강성 보수 진영과는 거리가 멀었다.

김영삼 정부 출범 이후부터 조금씩 보수적 성향을 내비쳤다고는 하지만, 적어도 1990년대 중반까지는 월간조선과 대놓고 논쟁을 뜰만큼 최소한의 진보적 성향을 잃지는 않았던 것이다. 참고로 1994년 즈음에 그가 진행했던 일련의 비판 작업의 주된 상대가 바로 조갑제월간조선 그리고 조선일보였다. 조갑제가 김영삼 정부의 진보적 성향의 인사들을 집요하게 공격하기 시작하자 고성국은 "수구의 칼날이 다음은 어디로 향할 것인가?"라며 개탄하기도 했다. 고성국은 '사회평론'이라는 시사 잡지를 통해 ''혁명가 박정희'의 부활은 상업적 선정주의와의 결탁이었다', '그의 박정희 영웅론은 전두환, 노태우를 또 영웅으로 만들었다', '개혁과 통일시대, 수구 세력에게 보내는 만가' 등의 글을 발표하며 조갑제가 수행하던 '박정희 미화' 기획에 대한 비판에 힘을 쏟았다. 이때 고성국이 조갑제의 극우 복고주의적 주장을 까면서 "영국 보수당과 스킨헤드족, 조갑제 부장은 어디에 더 가까운가!"라며 일갈하기까지 했다. 이때 고성국은 박정희의 5.16 군사정변혁명이 아닌 분명한 쿠데타로 규정했다.

이러한 평판 덕택에 1996년부터 1997년까지 추적 60분을 진행하게 되었는데, 김영삼 대통령의 아들 김현철 인맥으로 들어온 낙하산이라는 비판을 받고 방송에서 하차했다. 진보적인 인사라는 평과는 별개로 김현철과는 꽤나 절친하게 지냈던 것은 본인도 인정한다. 이후로 총풍사건에 연루되었기도 했는데 일단 무혐의 판결을 받았다. 그와는 별개로 진영 가릴 거 없이 여기 저기 기웃거린 것은 빼도 박도 못하는 사실이다. 과거 80년대 진보적 시민사회 운동을 하던 이력으로 잘 풀렸다면, 진보 진영의 유력한 정치인으로 발돋움 할 수 있었을 거라는 시각도 있다.

그 후로는 정치평론가 일을 접고 학원강사로 잠시 일하다가 2007년 즈음부터 시사평론가로서의 활동을 재개했고, 프레시안 기획위원, 김어준의 뉴욕타임스, CBS 시사자키 등의 패널이나 라디오 시사 프로그램 사회자 역할 등을 통해 갑자기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했다.


2.1. 2012년 이후[편집]


그러던 와중, 2012년 2012년 총선과 대선을 치르면서 보수성을 조금씩 드러내기 시작했다. 특히 이 즈음에 김두관이 경남도지사직을 내던지고 대통령 선거 경선 참여하게 되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 것으로 보는 사람들이 많다. 2011년부터 고성국이 계속 김두관을 밀었기 때문. 그 와중에도 박근혜가 강한 후보라고 말하고 다녔는데, 김두관의 경선 패배가 확정되는 시점 즈음해서 확실하게 친박으로 갈아탔다. 오죽하면 김두관의 지사직 사퇴를 유도하기 위해 고의적으로 김두관 대세론을 외쳤다는 '현대판 도림' 이야기도 나왔으나, 그보다는 이미 친문에 대한 비토성향이 강해서 그나마 중도성향이 강한 PK인사인 김두관을 밀었다는 설이 사실에 가깝다. #

19대 총선 당시 새누리당의 과반 승리를 이른바 "택시미터"로 맞췄는데, 당시엔 대부분의 진보 패널이 야권연대의 과반 승리를 예측했던 시기라 "합리적 중도 패널"로 다소 과잉 평가된 측면이 있다. 결국 21대 총선에서도 똑같은 논리로 미래통합당의 과반 승리를 예측하면서 진가(?)가 드러나게 되었다.

박근혜 정권 내내 친정부 측 보수 패널로 방송에 출연했다. 심지어 이 시절에는 보수 패널 역할로 MBC 100분 토론에 함께 출연했던 자타공인 보수논객 전원책에게 조차 방송 중에 "지나치게 박근혜를 옹호한다."고 질타당했을 정도. 전원책이회창을 지지했던 과거에서 보듯이, 강경 우파는 아니다. 그가 자유한국당 조직강화특별위원회 위원을 걷어찬 이유이기도. 또한 제18대 대통령 선거 직전에는 박사모 충북 본부에 가서 특강을 하고 감사패를 받기도 했다. 특히 특강 도중 "'이번에 박근혜가 대통령이 돼도 30만 표, 50만 표 차이로 간신히 이기지 말고 200만 표 차이로 처음부터 끝까지 갔으면 좋겠다'고 작년부터 얘기해왔다", "이기는 것은 확실하니 당선된 다음 국가경영에 대한 비전과 정책을 따로 준비하는 팀을 꾸리라고 제안하고 싶다"라고 주장했다.

박근혜 정부에서는 보수 성향 종편을 중심으로 여러 채널에 출연했으나, KBS를 포함한 지상파에서는 언급만 많았고 의외로 큰 활동은 없었다. 출연을 한다고 해도 전문가 역할이라기 보다는 토론 프로그램에서의 새누리당 성향의 패널 역할 정도였다. 경영진에서는 여러 방송의 고정 출연자로 계속 고려했지만, 언론노조의 적극적인 비토 대상이었기 때문에 받아들여 지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이시기 '고성국의 빨간 의자'란 타이틀의 TVN 인터뷰 프로그램을 진행했었다.

본인이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로 고성국TV가 있다. 김문수고영주이은재 등을 비롯한 자유한국당 정치인들을 집중적으로 섭외하는 것과 강력한 보수 성향이 뚜렷한 방송 내용 등을 보면, 이젠 빼도박도 못하게 확고부동한 강성 보수를 표방하고 있다. 스패너가 오죽하면 사실을 적어도 방송 내용에 안맞아서 채팅 내용 지우고 시간 제한 걸어버려도 모른채 넘어갈 정도라서 성향이 바뀌어도 편향적인 모습은 똑같다고 의구심이 들을 정도이다. 특히 자신의 방송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의 재판, 최소한의 사법 원칙도 지키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등, 갈수록 메세지가 강성 친박화 되고 있는 상황이다. 2017년부터는 TV조선의 객원 해설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종편 패널로서 지나치게 친박이나 강성 보수 편향적 스탠스를 취하고 있는데, 어느 정도 수위 조절이 필요해 보인다는 지적이 있다. 결국 어느샌가부터 출연 빈도가 줄었다. 안 그래도 2013년부터 노골적인 박근혜 편을 들며 중립성 훼손이라는 얘기가 많았다.

2020년 3월에는, ‘참여연대가 기업들을 압박해 아름다운재단으로 하여금 기업들의 기부를 받게 했다’는 근거 없는 허위 사실을 1시간 동안 방송했다는 이유로 제소 당하기도 했다. 1심과 2심 모두 100만 원 배상판결이 나왔다.

2021년 이후 친윤이 되어, 2022년 박근혜가 유영하의 대구시장 출마를 지원하자 강하게 비판하며 "이제 박근혜 대통령을 역사의 뒷장으로 떠나보낸다"라는 영상을 만들었다.#


3. 저서[편집]


파일:10대와.jpg
2011년에 쓴 《10대와 만나는 정치와 민주주의》. 이 책을 쓰고 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우파로 전향했다. (여기서 만화를 그린 김용민은 친민주당 성향이란 점은 비슷하지만 정치평론가 김용민(1974)과 동명이인). 민주화를 지지하고 독재를 반대하는 도서로 친박으로 전향하기 거의 직전에 쓴 책이다.

최근에 자유우파 필승 대전략#같은 우파성향 서적을 주로 쓰고 있다. 2019년 국회 출판기념회에 나와서 이 걸 썼을 때 황교안이 오기도 하며, 강성 친박임을 # 자기 스스로 드러냈었다.

친박 성향으로 전향을 하기 이전에는 10대와 만나는 정치와 민주주의#와 같은 청소년들을 위해 진보성향의 관점의 민주주의를 소개하는 책들을 많이 썼다. 같은 사람이 쓴 책이 맞나 싶을 정도. 그 시절의 고성국만 기억하는 사람들에겐 그야말로 동심파괴급이다.


4. 여담[편집]


  • 1984년 석사 논문의 제목은 '1970년대의 정치변동에 관한 연구 : 유신체제의 성립과 붕괴과정을 중심으로'였고, 1995년 박사 논문의 제목은 '한국의 민주화와 사회변혁운동에 관한 연구 : 1987년 이후의 운동의 변화와 전략전환을 중심으로'였다. 두 학위논문 모두 진보적 관점에서 분석한 7, 80년대 한국 사회의 정치적 변동 양상과 민주화 운동사에 관한 내용이었다. 강성 보수 우파 인사로 정착한 현재 시점에서 보면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

  • 장인은 독립운동가 출신 정치인 홍성여(1925~2004) 씨이다. 생전에 한국독립당 최고위원, 인천시장 직무대행, 국가보훈처 고문 등을 지냈다.

  • 고성국의 동생(고성범)이 정치 기획사를 경영하고, 주로 새누리당 사람들을 고객으로 두고 있다는 보도가 있었다. 실제 김용민 PD가 제19대 국회의원 선거 노원구 갑에 출마할 즈음, 고성국이 김용민에게 그의 출마를 적극 지지하며 "내 동생이 정치기획사를 하는데 함께 하라"고 권했다고 한다. 김용민이 지인을 통해 그 회사에 대해 알아봤더니, '(그 회사의) 주요 고객이 한나라당 쪽이라 (함께 하기) 어렵겠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한다.

  • 의외로 과거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의 최초의 게스트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다. 당시만 해도 고성국이 중도 성향을 표방하고 있었고, 당시 방영되던 한겨레TV 유튜브 프로그램인 '김어준의 뉴욕타임즈'에 게스트로 출연했던 인연이 있었기 때문. 참고로 김용민 PD가 고성국을 섭외했지만, 김어준은 고성국의 출연에 반대했었다고.

  • 2016년 8월 23일에는 본인의 유튜브에 가수 장혜진을 섭외했다.

  • 2018년 쯤을 기점으로 오른쪽 눈가 아랫 부위에 흉터로 보이는 거무스름한 상처가 생겼다.

  • 2019년 4월, 본인의 유튜브에 고정 출연하는 시사평론가 이종근[3]과 함께 '자유우파 필승 대전략'이라는 책을 내고, '자유우파의 압도적 승리는 역사적 필연이다'라는 주제로 이념 전쟁을 통한 자유한국당 대선 승리를 노골적으로 주문했다. '자유우파'라는 용어는 작성시점 2019년의 황교안 한국당 대표가 자주 사용한다. 4년 전인 2015년에 진보적 성향의 지승호 작가와 함께 '중간층이 승부를 가른다'라는 책을 써는데 불과 몇 년만에 자유한국당 성향의 강성 우파 정치평론가로 완전히 정착한 것이 재확인 되는 셈. 2015년에 펴낸 책에서는 "어느 진영에 속해 있냐고 묻는 소아병적 정치평론의 행태를 넘어서야 한다"고 주장했던 고성국이 2019년에 펴낸 책에서는 자신의 말을 뒤집고 "이념 전쟁에 나서야 한다"고 노골적으로 주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 황교안 전 미래통합당 대표와 경기고 72회[4] 동기동창 같은 반 친구인데, 황 전 대표 쪽과 서로서로 방송활동 등을 통해 측면지원을 많이 해준다. 그덕인지, 장성철 [5]이 동아일보와 인터뷰에서 밝히기를, 2020년 총선을 앞두고 당시 자유한국당 현역 의원들이 서로 줄대려고 찾아가고 있다고.#.


  • 그의 2012년 즈음까지의 정치 행적에 관한 자세한 기사가 미디어오늘링크, 오마이뉴스 링크에서 보도된 적이 있다.

  • 2023년 6월 3일 열린 충남 아산 FC성남 FCK리그2 경기에서 등번호 31번이 찍힌 홈팀 충남아산 유니폼을 입고 시축 행사를 가졌다. 프로스포츠에서 정치 관계자의 공개행사 초청은 보통 단체장(지자체장이 시민구단의 구단주 역할을 겸임하다 보니)이나 국회 및 기초의회의 의원 정도로 한정되는 걸 생각하면 이례적인 일.

  • 고성국TV에서 매일 진행되는 '고성국 칼럼'에서는 종종 극대노 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 고성국TV 구독자 수 100만명 돌파를 곧 앞두고 있다.

[1] 석사 학위 논문 : 1970년대의 정치변동에 관한 연구 : 유신체제의 성립과 붕괴과정을 중심으로[2] 박사 학위 논문 : 한국의 민주화와 사회변혁운동에 관한 연구 : 1987년 이후의 운동의 변화와 전략전환을 중심으로[3] 데일리안 논설실장 및 편집국장 출신. YTN이나 종편 시사 프로그램에 보수 패널로 자주 나온다.[4] 고교 평준화 바로 이전의 비평준화 마지막 기수로 유명하다.[5] 시사평론가. 김무성 전 의원의 보좌관 출신이자 김무성이 새누리당 당대표 시절 부실장 출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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