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영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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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영민의 수상 경력 / 역대 등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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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external/s20.postimg.org/doosan2015.png
KBO 리그 한국시리즈
우승반지

2015

파일:2008 베이징 올림픽 로고.svg
2008 베이징 올림픽 야구 종목
금메달

2008

파일:2009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로고.svg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은메달

2009

파일:두산 2019V6.png
KBO 리그 한국시리즈
우승코치

2019



파일:KBO 리그 로고(엠블럼/영문, 2013~2021).svg
2007 KBO 리그 득점왕

두산 베어스 등번호 14번
조계현
(2000~2001)

고영민
(2002~2010)


이현호
(2011)
두산 베어스 등번호 3번
최주환
(2009)

고영민
(2011)


김동길
(2012~2013)
두산 베어스 등번호 14번
이현호
(2011)

고영민
(2012~2016)


문진제
(2017~2018)
kt wiz 등번호 90번
차명석
(2016)

고영민
(2017~2018)


조중근
(2019~)
두산 베어스 등번호 90번
최경환
(2017~2018)

고영민
(2019~2023)


결번
롯데 자이언츠 등번호 번


고영민
(2024~)


현역


A대표팀 참가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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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 자이언츠 No.
고영민
高永民|Ko Young-Min

출생
1984년 2월 8일 (40세)
전라남도 담양군[1]
국적
[[대한민국|

대한민국
display: none; display: 대한민국"
행정구
]]

학력
도신초 - 영남중 - 성남고
신체
182cm|73kg|AB형
포지션
내야수[2], 중견수[3]
투타
우투우타[4]
프로입단
2002년 2차 1라운드 (전체 9번, 두산)
소속팀
두산 베어스 (2002~2016)
지도자
kt wiz 2군 수비코치 (2017)
kt wiz 1군 주루코치 (2018)
두산 베어스 1군 주루코치 (2019~2020)
두산 베어스 1군 작전코치 (2021)
두산 베어스 1군 수비코치 (2022)
두산 베어스 1군 주루코치 (2023)
롯데 자이언츠 1군 작전코치 (2024~)
병역
예술체육요원
(2008 베이징 올림픽 야구 부문 금메달)
정보 더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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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
제주 고씨[1]
종교
창가학회
등장곡
Nelly - 《Dilemma
이승기 - 《Smile Boy[2]
배드키즈 - 《귓방망이
→ 타자 공통 등장곡[3]
응원가
형사 가제트 오프닝 테마[가사][4]

1. 개요
3. 지도자 경력
4. 플레이 스타일
4.1. 수비 및 주루
4.2. 타격
4.3. 고변태
5. 여담
5.1. 트레이드 떡밥
5.2. 야구 외
6.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대한민국의 前 야구 선수이자, 現 롯데 자이언츠 코치.


2. 선수 경력[편집]




3. 지도자 경력[편집]



3.1. kt wiz[편집]



파일:external/imgnews.naver.net/AKR20170125111500007_01_i_99_20170125131604.jpg


결국 새 팀을 구하지 못하고 현역 은퇴를 선언, 곧바로 김진욱 감독의 부름을 받고 kt wiz의 코치로 합류하였다. 김진욱 감독의 말로는 옛날부터 후배들에게 수비 기술을 가르치는 모습이 남달랐다고 하니 미래를 내다 본 걸 지도... 관련기사 김진욱 감독 인터뷰

2017년에는 2군 수비코치로 시작했다가, 2018년부터 1군 주루코치로 보직이 확정되면서 본격적으로 지도자의 길에 들어서게 되었다. 그런데 시즌 초에는 3월 27일과 28일 SK 와이번스전에서 주자들의 주루사를 하나씩 적립하면서 최만호를 연상케하는 풍차를 선보이고 있다. 아직은 1군 코치 1년차이니만큼 나아지길 바라는 수밖에 없을 것 같지만. 풍차뿐이 아니라 3루에서 홈으로 쇄도하는 주자가 있으면 자신도 홈으로 같이 뛰면서 2루 주자는 방치하는 등 프로 코치로서 한참 부족한 모습을 연발해 KT 팬들의 뒷목을 잡게 했다.

결국 5월 11일자로 최태원과 자리를 바꾸며 2군행이 결정되었다.

하지만 다시 코칭 스태프 개편으로 인해 1군 주루코치로 다시 보직이 확정되었다.


3.2. 두산 베어스[편집]



파일:두산고영민코치.jpg

2018 시즌 종료 후 친정팀 두산 베어스의 코치로 영입되면서 2년만에 친정팀으로 돌아왔다. 보직은 1군 주루코치. 한편 두산 유니폼을 다시 입고 찍은 사진이 공개됐는데, 팬들의 반응은 '아직도 현역인 것 같다'는 반응이 대다수. 본인은 친정팀으로 돌아온 소감에 대해 한동안 나가있던 집으로 다시 돌아온 느낌이라고 밝혔다.

2019년 6월 20일 허리디스크로 인해 1군에서 말소되었다. 현역 시절에도 고질적인 허리 부상으로 고생하다가 끝내 은퇴했는데 여전히 여파가 있는 듯 하다. 빈 자리는 지난 시즌까지 1루 주루담당을 했었던 강동우 코치가 했으며 2019년 7월 2일 통증이 다 나은 뒤 1군에 다시 등록되었다.

한편 친정팀 두산에 코치로 되돌아온 첫 해인 2019년 한국시리즈에서 두산이 우승함에 따라 4년만에 다시 우승반지를 껴봤고, 통산 두 번째 우승반지이자 코치로써는 처음으로 우승을 경험하게 되었다.

2021년 시즌을 앞두고 김주찬이 1루 주루코치로 부임하면서 3루 작전코치로 자리를 옮겼다.

‘개인 최다 홈런’ 양석환, 고영민 코치에 30만원 빚진 사연은?

2021년 양석환이 트레이드로 두산 이적 후 두 번째 홈런부터 그라운드를 돌 때 고영민과 가위바위보를 하는 세리모니 같은 것을 하기 시작했는데, 판당 5만원씩이라고 한다.

2021 시즌 양석환X고영민 가위바위보 전적
홈런
날짜
경기
고영민
양석환
고영민 승리 여부
고영민 잔고 (만원)
1호
4월 10일
한화 (A)
가위바위보를 하지 않음
2호
4월 29일
키움 (A)

가위

-5
3호
4월 30일
SSG (H)
가위


0
4호
5월 2일

바위

+5
5호
5월 14일
SSG (A)
가위
바위

0
6호
5월 23일
롯데 (H)

바위

+5
7호
5월 26일
한화 (H)
바위
가위

+10
8호
가위


+15
9호
5월 30일
삼성 (A)
바위
가위

+20
10호
6월 2일
NC (A)
가위


+15
11호
6월 9일
롯데 (A)
바위


+10
12호
가위
바위

+5
13호
6월 15일
삼성 (H)

바위

+10
14호
6월 19일
KT (A)
가위


+15
15호
6월 22일
키움 (H)
가위


+20
16호
6월 30일
한화 (A)
가위


+25
17호
8월 11일
삼성 (A)
바위
가위

+30
18호
8월 13일
키움 (A)
가위
바위

+25
19호
8월 15일

바위

+30
20호
8월 28일
롯데 (A)
가위


+25
21호
9월 4일
삼성 (A)
바위
가위

+30
22호
9월 5일

가위

+25
23호

바위

+30
24호
9월 18일
키움 (A)

바위

+35
25호
9월 19일
가위
가위

+35
26호
바위
바위

+35
현재 25전 15승 2무 8패 +35만원


3.2.1. 2022 시즌[편집]


NC 다이노스의 2군 감독으로 자리를 옮긴 공필성을 대신해 1군 수비코치로 보직을 변경했다. 그러나 수비코치를 맡은 뒤 팬들 사이에서 평판이 매우 나빠졌다. 일던 시범경기부터 야수들의 실책이 터져나오며 기존에 있던 두산의 수비 잘하는 이미지[5]를 아예 없애버렸다. 정규시즌에서도 야수들이 실책을 연이어 하면서 최다 실책 2위까지 올랐다. 시즌 초창기만 해도 압도적인 꼴등이였으며, 실책 1위 한화와도 10개 정도밖에 차이가 안날 정도로 심각해졌다. 평소에 보기도 힘든 실책을 이젠 매일 봐야 하는 두산 팬들은 고영민의 무능함을 비판하며 당장 공필성이나 조성환을 다시 데려오던지, 아니면 1군 엔트리에서 말소해버리고 2군 코치로 내려버리던지, 차라리 과거 보직이었던 주루코치로 원대 복귀시키라는 성화가 대부분이다.

이도형, 박세혁, 김재환, 정수빈, 아리엘 미란다 등 더 악질 수준인 역적들이 많아서 욕을 덜 먹을 뿐, 고영민 역시 팬들에겐 팀의 적폐로 자리매김했다. 시즌 초 많던 실책이 개선되긴 커녕 악화되어 팀은 여전히 하위권을 전전하는 중이며 의도를 알 수 없는 수비 시프트 지시 등 팀 수비 자체가 아예 무너져버렸다 보니 팬들은 참다못해 이도형과 같이 팀에서 나가길 바라고 있다. 그리고 모든 두산 팬들은 조성환을 꽤 많이 그리워한다. 하물며 전임자인 공필성도 수비코치 적성만 안 맞았던거 치고는 평타 이상은 쳐줬으니 더더욱 까이고 있는중이다. 그나마 후반기 이후에는 실책 갯수가 많이 줄어들긴 했지만, 일부 선수들은 여전히 실책을 남발하고 있고 실책성 플레이들 때문에 전반기에 날려먹은 경기가 하나둘이 아니었던 만큼 재평가하는 여론은 별로 찾아볼 수 없었다.[6] 후반기 실책 개수가 줄어들고 있다는 것 자체는 물론 고무적이지만 팀은 진작에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했고, 수비코치로써는 이미 실격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래도 이도형과는 다르게 수비코치를 제외한 작전 주루코치나 2군에서 남기라도 바라는 시선도 존재한다.

10월 18일 이승엽감독이 취임하고 조성환 수비코치가 옴에 따라 코치 잔류여부가 관심사다.


3.2.2. 2023 시즌[편집]


결국 다시 원래 자리였던 주루코치로 돌아갔다. 다만 3루 주루코치를 보던 2년 전과는 달리 1루 주루코치를 맡는다.

그래도 주루코치 자리가 본인에게는 잘 맞는지 수비코치 시절과는 다르게 별다른 삽질없이 무난한 편이다.


3.3. 롯데 자이언츠[편집]


2023년 10월 22일, 김주찬과 함께 롯데 자이언츠 코치진에 합류한다는 보도가 나왔다.#


4. 플레이 스타일[편집]



4.1. 수비 및 주루[편집]



파일:고제트.jpg

그의 별명이 왜 고제트인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진.

고영민의 플레이 스타일 하면 가장 먼저 언급할 수 밖에 없는 것이 바로 수비와 주루 능력이다. 기본적으로 수비 좋기로 유명한 두산의 내야수들 가운데서도 특히나 탄탄한 수비력을 갖춘 선수로 유명했는데, 기본기도 준수했고 어깨도 강견인 편이었지만 역시나 돋보이는 것은 바로 넓은 수비범위. 특히나 타자에 따라서 일반적인 2루수 위치보다 더 외야 쪽으로 빠져 있는 독특한 시프트를 보여준 덕에 2익수(2루수 + 우익수)라는 단어가 만들어졌다. 분명히 외야로 빠져나갈 안타성 타구인데 갑자기 잔디 위에서 2루수가 튀어나오더니 공을 낚아채 아웃을 만들어버리니 타자나 상태팀 팬들은 환장할 노릇. 이렇게 넓은 수비범위를 뛰어다니며 팔을 쭉쭉 뻗어 공을 잡는 모습을 형사 가제트에 빗대 '고제트' 라는 별명이 붙었으며, 이는 응원가에서도 적극 사용되는 등 고영민의 현역 시절을 대표하는 별명으로 유명하다. 한편 강한 어깨와 넓은 수비범위를 살리기 위해 백핸드 방향으로 땅볼 타구가 올 경우 포구 후 터닝 러닝스로우를 적극 활용했는데, 한 박자 더 빠르게 1루로 송구할 수 있지만 송구 자세가 불안정해져 미스가 나오기 쉬운데다가 어깨가 강하지 않으면 채용하기 힘든 자세라 대다수의 내야수들은 잘 사용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고영민은 경기에서 잘만 써먹고 재미를 봤었다.[7] 그리고 아래에도 나오지만 이걸 베이징 올림픽 결승전 마지막 아웃카운트를 잡는데도 써먹었다.

여기에 창의적인 주루플레이도 고영민의 대표적인 특징. 순수 스피드 자체는 주루플레이를 장기로 하는 선수들 중에서는 그다지 특출난 편이 아니지만[8], 주루센스는 육상부라고 불릴 정도로 유명한 두산 야수들 중에서도 최고로 평가받았다. 공이 살짝 흐르기만 해도 한 베이스를 더 파고들어버리는 특유의 플레이가 워낙 인상적이라 아래에도 나오듯 '변태주루'라는 말이 붙었을 정도. 참고로 창의적인 주루플레이는 2군 시절부터 유명했는데, 이 때문에 2군의 동료 선수들에게는 '야구천재'로 불렸으나 2군의 모 코치는 '미친놈'인 줄 알았다고 회고하기도. 참고로 이러한 고영민의 수비와 주루에서의 센스 플레이는 팀 후배 오재원이 그대로 이어갔다.[9]

4.2. 타격[편집]


타격에 있어서는 본인이 못 치는 공은 쿨하게 거르고 본인이 선호하는 존에 들어오는 공만 노려치는 타석 접근법을 가진 선수였다. 스트라이크 존을 좁히고 스윙을 아낀다는 점에서 추신수의 타석 접근법과도 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여기에 당겨치기 일변도의 타격 스타일과 덩치에 비해 상당히 강한 손목힘 덕분에 일단 걸리면 뜬금포를 뽑아낼 수 있었으며, 타석 접근법의 특성상 볼넷도 많이 골라낼 수 있기 때문에 타출갭도 1할 정도 꾸준히 나올 정도였다. 다만 컨택 능력이 많이 떨어지는 편이라 명확한 한계가 있었으며, 그만큼 삼진도 많았다. 결은 조금 다르긴 해도 오지환과 비슷한 결과값을 가지는 스타일. 그래도 전성기 시절에는 컨택의 약점을 출루율, 뜬금포, 수비와 주루로 커버치고도 남을만한 퍼포먼스를 보여줬고, 정근우를 밀어내고 대한민국 국가대표 황금기 시절의 2루수 주전자리를 꿰찰정도의 활약을 보여줬다.

그러나 2009시즌 최악의 부진을 겪은 이래로 타격 스타일에 관하여 다소 심하게 방황하면서 급격하게 몰락하고 말았다. 충격의 부진 이후 간결한 스윙으로 바꿀려는 시도를 지속적으로 했으나, 기본적으로 컨택 능력이 좋지 못한 선수가 갖다 맞추는 스윙을 하려고 하니 똑딱이로 변모하면서 강점은 죽고, 단점만 남는 심각한 부진으로 이어지고 말았다. 이러한 방황으로 여러가지 시도를 하였고 심지어는 좌타자로 타석에 들어가보기까지 했지만 이렇다할 성과는 내지 못했다. 이런 와중 부상도 여러번 겹치는 동시에 2차 9라운드에 뽑혔던 오재원이 예상치 못하게 급성장을 하면서 결국 짧았던 전성기를 끝으로 유의미하게 반등하지 못하고 백업을 전전하다가 은퇴하게 되었다. 두산에서 전성기를 맞이했고 두산에서 모든 선수 생활을 보냈지만 같은 팀의 같은 포지션에 한살 차이로 국가대표급 선수가 2명이나 있었다는 것은 팀 입장에서는 축복이였을지 모르나 고영민 입장에서는 저주에 가까웠다. 차라리 고영민이 전성기때 보여준 활약이 미미했다면 다른 팀으로 트레이드되며 활로를 찾았을지도 모르지만, 두산 입장에서는 국가대표 2루수의 포텐을 가진 선수고 팀의 전성기를 함께했으며 팬들의 지지를 받는 선수를 헐값으로 보내준다면 팬들에게 어떠한 원성을 들을지 뻔히 예상이 되었을 것이고 타팀 입장에서도 아무리 고영민이지만 심각한 부진을 겪고 있는 선수를 비싼 값에 데려오기엔 너무나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4.3. 고변태[편집]


특이한 플레이 스타일과 연계되어 '고변태'라는 별명도 붙었는데, 이유를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

1. 2익수. 2익수라는 표현을 사실상 처음 만들어낸 주인공. 해당 항목 참고.

2. 보통 빠른 발과 마른 체격을 가지고 수비 부담이 높은 포지션[10]에 있는 선수들은 장타보다는 단타 위주로 안타 생산력을 올리는 편이지만, 고영민은 풀스윙으로 장타율을 올려 홈런을 양산한다. 일단 때렸다 하면 대형 홈런. 2009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때는 MLB의 대표적인 투수 친화 구장인 펫코 파크 좌중간을 훌쩍 넘겼고, 베이징 올림픽 직전 쿠바와의 평가전에서는 장외홈런에 근접한 초대형 홈런을 잠실에서 쳐 냈으며, 올림픽 본선에서도 대만전에서 3점홈런을 치는 등 특히 국제대회 때 꼭 홈런을 하나씩 치곤 한다. 사실 고영민은 겉으로만 말라 보이지 183cm의 작지 않은 키를 가진 강골이며, 여기에 수비할 때도 부각되는 사실이지만 손목 힘이 강해서 장타능력이 꽤 있는 편.

3. 일반적으로 한 선수에게서 나오기 힘든 괴랄한 스탯. 이른바 변태스탯. 볼넷과 삼진이 극단적으로 많아 2008년에는 볼넷 2위, 삼진 1위를 기록했다. 통상적으로 선구안이 좋으면 볼넷이 많아지고 삼진이 줄어드는데 고영민은 볼넷 개수도 많으면서 삼진도 많다. 이는 시간이 지나 세이버메트릭스가 유입되고 타자들의 타석 접근법에 대해서도 더욱 심도있게 고찰하면서, 존을 좁게 잡아서 치기 힘든 공은 그냥 버리고 좋아하는 존에 들어오는 공만 때려내는 고영민의 타석 접근법 자체가 볼넷과 삼진이 둘 다 많이 나올 확률이 높아서 그런 것으로 정리되었다. 추신수의 타석 접근법과도 유사하며, OPS 히터의 정의에도 부합한다. 그런데 이런 유형의 선수들은 스윙 자체를 아끼기 때문에 득점권 상황에서도 눈야구를 하는 일이 많아 생각보다 타점이 적은 경우도 많은데, 고영민은 득점권 찬스에서 이상하게 강해 타점이 상당히 많다.[11] 기록만 봐도 득점권 타율이 타율에 비해 1할가량 높다. 위에 언급한 2008년에도 무려 70타점을 기록했을 정도.

4. 보통 선수와는 다른 기묘한 플레이 스타일. 3루 베이스를 맞는 2루타를 친 후 자기 루에 있던 수비수가 공을 든 채로 멍 때리고 있을 때 단독 진루를 감행해 성공하거나[12] 이종욱상대팀을 뒤흔들기도 하고 2루수가 1루수에게 공을 던지는 동안 3루에서 홈을 밟거나 플라이 타구에 1루에서 2루로 가는 플레이를 선보이기도 했다. 2015년 두산의 우승을 결정지은 한국시리즈 5차전에서는 이지영이 앞쪽으로 블로킹한 짧은 폭투에 홈까지 내달려 세이프되는 기행을 벌이기도 했다. 이 중 가장 유명한 것은 베이징 올림픽 결승전 마지막 병살 플레이. 자세한건 하술.

5. 찍히는 사진마다 신비스러운 느낌으로 "역시 변태"를 외치게 만드는 재주.

6. 어떤 의미에서는 KBO 최고의 인터뷰어로도 유명하다. 두산팬들은 고영민이 좋은 활약을 보여 경기 MVP가 유력시되면 9회말 역전 위기 찬스 때보다 더 가슴을 졸인다고 한다. "바깥쪽에 포커페이스를 맞추고..."나 "김동주라는 선배님..." 등이 유명하다. '고무식'이라는 별명은 이 때문에 생겨난 것. 그런데 2009년 포스트시즌부터는 인터뷰 스킬이 엄청나게 좋아져서 팬들을 경악케 했다.

7. 최정에 버금가는 '사구를 부르는 얼굴'로도 유명하다. 주전이 된 이후 경기 출장 수가 적은 2009 시즌을 제외하고는 매해 사구 개수 순위권이다. 그 마른 몸매에도 불구하고 어쩌면 그렇게 맞아대는지 팬들이 궁금해할 정도. 사구를 맞을 때 표정이나 동작이 지극히 불쌍하면서도 변태스럽기 때문에 그날의 포토제닉을 장식한다.

다음은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때 보여준 고변태 플레이들.

1. 베이징 올림픽 지역예선에서 2루 땅볼 포구 미스로 팀 패배의 원인 제공
- 이것 때문에 베이징 예선을 한번 더 치뤘다. 게다가 부정오더 논란에 휩싸이면서 일본을 기쁘게 해주었다.

2. 베이징 올림픽 본선 캐나다전, 7회초 무사 1, 2루 상황에서 2루 대주자로 나와 더블스틸을 시도하였으나 3루에서 아웃.
- 그 다음 3루 주자 이진영박진만 타석 때 캐나다 투수 데이비드 데이비슨의 폭투를 틈타 홈으로 진루하였지만 태그아웃되면서 결국 이닝이 마감되었다. 류현진의 완봉승이 아니었으면 참 큰일날 뻔했다.

3. 베이징 올림픽 준결승 일본전, 1회 초 뜬금없이 보여준 롤링송구
- 무리하게 송구하다가 이승엽니시오카 츠요시가 부딪혀 주자방해로 2루 진루. 이후 1사 1, 3루에서 투수 앞 땅볼이 나와 병살타 처리가 충분했으나, 박진만과의 사인미스로 타자 주자를 살려주면서 3루 주자가 홈을 밟았다.

4. 베이징올림픽 결승 쿠바전, 9회말 3:2로 앞선 1사만루 상황에서 병살 수비때 보여준 러닝스로우
- 진갑용은 '저런 상황에서 저렇게 던지는 x끼도 있구나...'라며 감탄했으며, 박진만도 공이 뽈뽈뽈 날아가는 걸 보며 미치는줄 알았다고. 심지어 고영민 스스로도 그 당시 자신이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고 회고했다. 참고로 당시 두산 팬들은 맨날 보던 거라 던지는 순간 우승이라고 직감했는데, 타 팀 팬들은 뭐 저런 새끼가 있냐며 순간 경악했다고 한다.

5. 2009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2회 결승전 3회 아오키의 직선타 포구실책으로 일본의 선취점에 일조함.
- 게다가 역대 최강의 역전이 나올 뻔한 9회 귀신같은 헛스윙삼진...

아무튼 고영민에 대해 뭐라 표현할 방법이 생각나지 않으면, 그저 변태같다 하면 된다.


5. 여담[편집]



5.1. 트레이드 떡밥[편집]


20대 군필 내야수가 국가대표 경력까지 있음에도 불구하고 주전에서 밀려나 2군을 들락날락하고 있다는 점 때문에 다른 팀에서 상당히 군침이 날 만하기도 했었는데, 특히 박경수가 군입대를 한 LG[13]나 주전 2루수의 노쇠화가 서서히 진행되는 롯데[14], 삼성[15]에서는 더욱 매력적인 카드이기도 했었다. 그런 이유로 트레이드 이야기가 나올 때면 항상 블록에 올라가는 선수였다. 트레이드 이 외에도 당시 신생구단이었던 NC나 kt에서 특별지명을 받아서 이적할 것 같다는 생각들이 많았으나 여기서도 보호선수에 묶였는지 풀렸는지는 밝혀지지 않았으나 다른 선수가 지목되었다.[16]

의외로 자팀 선수만 곱게 보는 일반적인 추세와는 달리 타 팀 팬들이 높이 평가하고 두산 팬은 가치를 훨씬 낮게 보는 괴상한 경향이 있었다. 그야 그럴 것이 타 팀 팬은 일단 2루수 맡길 사람이 없으니 자기들 쪽이 급한 데다가 자주 안 보다 보니 2007, 2008년의 전성기와 국대에서의 활약만을 기억하는 사람이 많지만, 두산 팬은 3년여간 시달리다 보니 해탈해서 아예 포기한 사람이 많기 때문이었다.

그동안 오재원이 미필이라 두산에서 트레이드 카드로 쓰지 않는다는 썰이 돌았으나 김재호가 각성하고 최주환, 허경민도 준수한 실력을 보여주고 있는 와중에 2014년 아시안게임으로 오재원이 군 문제까지 해결하면서 이제는 트레이드 썰 조차도 돌지 않는 상황이 되었다. 그나마 2015년 후반기에 모처럼 전성기 시절의 모습을 떠올리게 하는 활약을 보여줬으나, 허리 부상이 도지면서 2016년에 은퇴를 택하게 되었다.


5.2. 야구 외[편집]


  • 오랫동안 교제한 애인[17]과 2011년 12월 결혼식을 올렸다.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아들도 있다. 엄마 닮았는지 귀엽다.

  • 아내는 아동복 쇼핑몰을 운영 중인데 여초 커뮤니티에서 인지도가 꽤 있는 편이다. 모든 옷의 피팅모델은 아들.

  • 무뚝뚝하고 무서운 인상이지만 상당히 가정적인 남편. 아들바라기.


  • 켠김에 왕까지프로야구 스피리츠편에선 허준에게 폭풍욕설을 들었다. WBC모드에서 한국 대표팀으로 우승하기를 목표로 한국팀으로 플레이 중이었는데 준결승전과 결승전까지 4개의 에러가 나왔는데 모두 한국팀에서만 나왔기 때문인데 하필 이때 에러를 범한 캐릭터가 고영민이었다.

  • 프로야구매니저 운영진이 미워하는 것 같다. 거의 모든 연도에서 장타 수치에서 불이익을 제일 많이 받은 선수 중 하나.

  • 개그콘서트 출신 개그맨 양상국과 매우 닮았으며, 이 닮은꼴을 인연으로 절친한 친구 사이가 되어서 양상국이 고영민-서혜연 부부 결혼식의 사회를 보아 주기도 하였다. 모년 7월 29일 잠실 야구장에 양상국이 나타나, 고영민의 선전을 기원하기도 했다.[18] 인간의 조건에서도 양상국의 친구로 출연했는데 하도 닮아서 고영민의 아들조차도 TV에 나오는 양상국을 보고 "아빠다"라고 한다고. 그런데 잠실에 나타나서 NC 다이노스를 응원한 모습이 포착되었다![19]

  • 오승환의 초등학교 후배다. 심지어 오승환에게 커브볼을 가르쳐줬다고.

  • 베어스포티비에서 은근히 예능캐로 자리잡은 듯하다.[20]

  • KBO & 한국야구계에서 유일무이한 창가학회 신자이기도 하다.

  • 야구게임 프로야구 H3에서는 라이센스를 못 따서 고우만이라는 이름으로 나왔으며, 9M 프로야구에서도 고유명이라는 가명으로 나왔다.

  • 현재까지도 히어로즈 팬들이 가장 싫어하는 선수다. 이유는 2015년 서건창의 십자인대 부상을 입힌 장본인이기 때문이다. 당시 고영민이 1루수로 나가 아웃시킬려고 1루 베이스커버를 할때 2루 쪽 끄트머리를 밟는 것이 정석인데 덕아웃쪽을 밟아버려 전력으로 질주하던 서건창은 그대로 다리에 걸려 넘어지면서 무릎이 펴져 버렸다. 거기다 같은 해에 7월 5일 경기에서 스나이더를 막는 과정에서 상대 주자를 블로킹 하는 위험한 플레이를 선보여 욕을 가중치로 먹으며 히어로즈 팬들에게 단단히 찍혀버렸다. 거기다 이후 복귀한 서건창이 부상여파로 주루하고 수비툴이 심각하게 망가지고 타격도 2014년만큼 나오지 못하게 되어버리고, 그것들이 2021시즌 중 LG로 트레이드된 이후에도 엄청나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며 히어로즈 팬들뿐만 아니라 LG 팬들 사이에서도 그를 성토하는 여론이 생기고 있다.


6. 관련 문서[편집]


[1] 담양군에서 태어났지만 학창 시절은 전부 서울특별시에서 보냈다.[2] 선수 시절 주 포지션은 2루수였고, 말년에는 1루수로 출전했다.[3] 2013년 4월 19일 한화전, 6회초에 이종욱의 대수비로 들어갔다. 중견수 고영민[4] 2011 시즌 마지막 경기에서 팀의 마지막 타석이 될 수도 있는 9회초 2아웃 때 우투수인 장효훈을 상대로 좌타석에 서는 파격적인 변신을 시도한 적이 있다. 결과는 3구 삼진. 고글고젯[5] 실제로 김태형 감독이 부임한 2015년 이후 두산은 단 한 번도 팀 실책 4위 이상을 기록한 적이 없다. 심지어 그 유명한 일수강점기 때도 9개 구단중 최소 실책을 유지했다.[6] 8월 중순에는 본인이 직접 내야 펑고를 받으며 수비 지도에 나서는 등 변화를 꾀했지만, 여론 대다수가 왜 팀 수비가 완전히 망가진 시점에서야 수비 개선에 나선 것이냐며 늦었다는 반응으로 고개를 저었다.[7] 특히나 한국이나 일본은 21세기 들어서도 내야 수비에 있어서 안정감을 최우선시하는 경향이 크게 남아있던 만큼 상대적으로 리스크가 큰 고영민의 터닝스로우는 코칭스태프는 물론이고 팬덤 사이에서도 그닥 환영받지는 못하는 플레이 스타일이었다. 최근에야 그런거 없다지만.[8] 100m 기록이 12초 대인데, 이 정도도 빠른 편이긴 하나, 이대형이나 이종욱같이 다른 빠른 선수들에 비해선 그리 빠른건 아니었다.[9] 오재원도 고영민이 보여주던 2익수 수비를 보여주면서 상대 타자들을 환장하게 만들고, 주루에서도 기습적인 센스 플레이로 한 베이스를 더 가져가는 등 고영민이 보여주던 모습을 유사하게 보여줬다.[10] 대표적으로 2루수, 유격수, 중견수.[11] 9회말 2사에서 원바운드성 슬라이더를 노려 동점타를 때리기도 했다.[12] 2007년 4월 29일 롯데전 5회 1사 주자 없을 때 기록. 이 당시 3루수는 바로 이원석이고, 투수는 장원준으로, 3루 진루는 투수 실책으로 기록되었다.[13] 2012년에는 서동욱이, 2013년에는 삼성에서 트레이드로 데려온 손주인이 그 자리를 메꿔줬다.[14] 2012년에 조성환의 후계자로 손용석이 꼽히긴 했지만, 1군으로 올라오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또한 조성환이 2012 시즌에 생각보다 잘 해줬으며, 2013년에는 정훈이 새로이 떠올라서 떡밥은 들어갔다.[15] 신명철의 노쇠화로 조동찬손주인이 2루를 돌아가며 땜빵하였다. 허나 조동찬은 유리몸이고, 손주인은 주전감이 아니라는 게 문제. 게다가 2012 시즌이 끝난 후 손주인은 LG로 트레이드되었다. 김태완을 얻어오긴 했지만 부상으로 거의 나오지 못했다.[16] NC - 고창성, kt - 정대현[17] 소녀시대보다 예쁘다고 소녀시대 앞에서 직접 밝혔다.[18] 참고로 이날 시구는 김준현이었다. 경기 중간에 김준현과 양상국이 구장 한 가운데에 나와 인사하고 했다.[19] 참고로 양상국은 경상남도 김해시 출신이다.[20] 스프링캠프에서 펑고를 쳐주는데 2019년에는 헛스윙을 하더니 2020년에는 배트를 부러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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