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재욱(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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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일제강점기와 대한민국의 언론인이다.
인촌 김성수의 처조카로, 김성수의 본처 고광석은 그의 큰고모이다.
2. 생애[편집]
1903년 5월 3일 전라남도 창평군 군내면 삼천리(현 담양군 창평면 삼천리)에서 아버지 고광준(高光駿, 1882. 10. 27 ~ 1950. 2. 17)과 어머니 연일 정씨(? ~ 1959. 4. 25) 정공원(鄭公源, 1855 ~ 1935)[7] 의 딸 사이의 4남 3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창평공립보통학교(현 창평초등학교)와 중앙학교를 마치고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 아자부(麻布)중학교, 야마가타(山形)고등학교, 교토제국대학 경제학부를 졸업하였다.
귀국 후 1931년 동아일보사에 입사, 1940년 편집국장이 되었으나 같은 해 조선총독부에서 동아일보를 강제로 폐간하자, 고향에 돌아가 농업에 종사하였다.
1945년 8.15 광복 이후 동아일보가 복간되자 동아일보 편집국장이 되었다. 6.25 전쟁 후 동아일보의 주필(主筆)이 되었다. 1961년에 부사장을 겸하였다. 1965년 동아일보 사장이 되었다.
1976년 6월 22일 서울특별시 중구 필동3가 자택에서 숙환인 저혈압으로 별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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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장흥백파-의열공파(毅烈公派)-진위공파(振威公派) 23세 재(在) 항렬.[2] 인근의 용수리·유천리와 함께 제주 고씨 장흥백파 집성촌이다. 고재청 전 국회부의장·고재호 전 대법관 형제도 이 마을 출신이다.[3] #[4] 21세기에도 도쿄도 내 명문 중학교다. 같은 명문 고등학교로 자동 진학이 가능한 '중고일관교(中高一貫校)'인데, 28년 연속으로 도쿄대학 합격자 수 1위를 기록하고 있는 카이세이 중고등학교, 아자부(麻布)중학교-고등학교, 무사시(武蔵)중학교-고등학교가 해당한다.[5] 구제고등학교 제도 시행 당시 명문학교였다.[6] 중앙학교를 인수하여 운영하고 동아일보사를 창간한 김성수의 동생이자 삼양그룹 창업주인 김연수도 고재욱보다 몇년 앞서 아자부중학교, 교토제3고등학교, 교토제국대학 경제학부를 졸업했다.[7] 정철의 후손으로, 초명은 정조원(鄭祖源)이다. 1882년(고종 19) 식년시 진사시에 3등 47위로 입격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