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제(전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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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황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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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조 관련 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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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조 추존 황제


한 초대 황제
태조 고황제 | 太祖 高皇帝



출생
기원전 256년 혹은 기원전 247년[1]
패현 풍읍 중양리
(現 장쑤성 쉬저우시 페이현)
즉위
기원전 202년 2월 28일
정도현 범수 북안
(現 산둥성 허쩌시)
사망
기원전 195년 6월 1일 (향년 52세 혹은 61세)
전한 장안 장락궁
(現 산시성 시안시)
능묘
장릉(長陵)
재위기간
후초의 한왕(漢王)
기원전 206년 3월 혹은 4월
~ 기원전 202년 2월 28일
초대 황제
기원전 202년 2월 28일
~ 기원전 195년 6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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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씨
유(劉)

방(邦)
부모
부황 태상황
모후 소령황후 유온
형제자매
4남 1녀 중 3남
배우자
정실 고황후 여씨
후궁 고황후 박씨, 척부인
자녀
8남 1녀
신장
179cm[1]

계(季)
작호
한왕(漢王)
존호
고조(高祖)
묘호
태조(太祖)
시호
고황제(高皇帝)




사기에 실린 고조 본기

1. 개요
2. 출생
3. 생애
4. 가족
5. 평가
6. 기타
7. 대중매체에서
8. 둘러보기



1. 개요[편집]


중국통일왕조한나라를 건국한 창업군주이자 초대 황제. 중국사에서 진 시황제, 이세황제와 초 의제에 이어 네 번째로 황제라는 칭호를 공식적으로 쓴 인물이며, 휘는 방()이며, 보통 유방이라고 불린다.

중국 역사상 최초의 평민 출신 황제로, 기존의 지배층이었던 제후나 귀족과 아무런 연관이 없는 피지배층에서 황제라는 최고의 자리까지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진(秦)나라 말기의 대혼란에서 세력을 일으켜, 초한대전에서 숙적 항우(項羽)를 제압하고 천하를 차지했다. 중국 전 역사를 통틀어서 이렇게 평민이 패업을 이루고 황조를 연 사례는 약 이로부터 1,500여년 뒤의 시대인 명태조밖에 찾아볼 수 없을만큼 유래없는 일이었다.

이후 각지의 반란을 평정하고 이성왕(異姓王)들을 숙청하여 대제국 한나라의 기틀을 닦았다. 특히 한(漢)족, 하나의 중국과 같은 오늘날까지 엄존하고 있는 중국의 국가적 문화 정체성을 만들어낸 왕조의 창시자로서 중국사에 커다란 영향을 끼친 인물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시황제는 처음으로 중국을 통일했으나 완벽히 하나로 묶어내는 것에는 실패했고, 한고제는 이를 이뤄냈다. 또한 이후 중국에 분열기가 찾아왔어도 그때마다 통일 국가의 대의명분을 제공해줬다. 따라서 오늘날 중국, 혹은 한족의 중시조에 해당하는 인물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헌원황제로 대표되는 삼황오제가 있고 역사적 실증으로만 따져도 상나라 등 한나라 보다 이전의 시대가 있지만, 한고제가 창설한 한나라가 후세에 통일된 중국과 중화문명의 큰 기반을 제공하고, 오늘날까지도 중국인들이 자신들을 한족(漢族)이라고 칭하는 것만 봐도 충분히 중시조라 부를 만한 사람이다.

주로 한고조(漢高祖)라는 호칭으로도 불리는데, 이는 정식 묘호나 호칭은 아니다. 유방의 묘호는 태조이며 시호는 고황제(高皇帝)다. 다만 사마천(司馬遷)의 《사기》에서 고조(高祖)라는 표현이 나와서 그것이 유방을 가리키는 일반적인 칭호로 굳어진 것. 정확히 말하자면 고조는 시호인 고황제의 존칭인 것이다. 다만 이 고조(高祖)라는 표현이 한고제 본인을 칭하는 상징적인 칭호를 넘어, 후대 왕조의 창건자들에게도 붙는 묘호가 된 것은 고제의 영향이 컸다고도 할 수 있다.

2. 출생[편집]


파일:패현.png
유방은 패현(沛縣) 풍읍(豊邑)[2][3] 중양리(中陽里)에서 태어났다. 이 지역은 원래는 송나라 땅이었으나 유방이 태어나기 3~40여년 전인 기원전 286년 송나라가 망하면서 초나라에 속하게 되었다.

풍읍은 위치에서 알 수 있듯이 초의 중심 지역보다는 위(魏)의 국경 지역과 훨씬 가까운 지역이었다. 거기에 유방의 동생의 후손인 전한의 학자 유향의 말과 그를 인용한 한서의 기록에서는 유방의 선조는 위가 대량으로 천도할 기원전 4세기 중반 무렵 진(秦)에서 위나라로 포로로 끌려 갔다가, 이후 신릉군과 동시대의 사람인 유방의 아버지 대에 이르러서야 풍읍에 정착한 것으로 전하고 있다. 유방의 증조부이자 유태공의 조부인 유청은 위나라의 대부 벼슬까지 지냈다고 하는데 이 사건으로 가세가 몰락해 평민이 된 것으로 보인다.

부친은 태공(太公)이었고 어머니는 유온(劉媼)이었는데 태공이나 온은 남의 아버지와 어머니를 높여 부르는 호칭에 지나지 않았다고 《사기집해》나 《사기색은》 등의 주석서에서 일관되게 지적하고 있다. 따라서 유태공과 유온을 현대어로 풀이하자면 그저 유씨댁 어르신, 유씨댁 안주인 정도의 의미로 유방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진짜 이름이 무엇이었는지는 찾을 수가 없다.

사실 이는 부모뿐만 아니라 유방 본인도 마찬가지인데, 《사기》나 《한서》(漢書)에서는 아예 유방(劉邦)이라는 이름을 언급하는 대목이 없다. 그저 성이 유씨이고 자(字)가 계(季)라고 언급되어 있을 뿐이다. 유방이라는 이름이 언급되는 것은 후한[4]의 학자 순열(荀悅)의 《한기》(漢紀)에서부터인데, 후세 학자들이 《사기》, 《한서》에 주석하면서 한 인용으로, 발굴된 유물 자료들로써 대체로 옳다고 간주한다. 물론 다른 이야기를 하는 설은 있기는 하지만 일반적인 관점으로는 유방이 어렸을 당시에는 유계라는 호칭으로 통하다가, 즉위한 후 유방이라는 호칭을 사용한 것으로 보고 있다. 즉, 초한전쟁을 모르는 현재의 대다수 사람들마저 유방과 항우라는 유명한 이름을 아는 실정과 달리 유방 본인에게 '방' 이라는 이름은 일생 동안 거의 사용하지 않았던, 본인으로서도 착 감기지 않는 이름이었을 것이라는 소리.[5]

그런데 유방의 형제를 살펴보면 이 이름이 형제 간의 서열, 순서를 간편하게 나타내는 백중숙계(伯仲叔季)를 붙여서 지어진 것을 볼 수 있다. 실제로 유방의 형들로 , 유백(劉伯)과, 유중(劉仲)이 언급되는것을 보면 '유계' 라는 호칭이 어째서 생겼는지는 확실하다고 볼 수 있다.[6] 이렇게 보면 유방은 본래 개별적인 이름은 없는 것이나 다름 없고, 그저 '유씨네 막내'정도로 통용될 수 있는 유계라는 이름만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일본 학자 사타케 야스히코는 유방이 평민 출신이라 본래 이름이 없었으나 황제가 된 뒤에야 이름과 글자가 나왔다고 여겼다.

그러나 둘째 형 유중은 유희(劉喜)라는 휘가 알려져 있고, 이복동생 유교(劉交)는 유(游)라는 자가 따로 있었기에 모든 사람의 휘가 불명확한 것은 아니다. 그리고, 백중숙계가 대충 지은 이름 같아 보이지만 그게 정식 자나 이름인 예가 꽤 있어 그 유계라는 이름이 개별적인 이름일 가능성은 다분하다. 더욱이 유교가 유학자로, 특히 《시경》에 능한 인물이었음을 감안하면 집안 사람들 중에 이름이 아예 없는 인물이 있는 것 자체가 신기한 일이기도 하고.[7]

유방의 출생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해진다. 유방의 어머니인 유온이 연못가 근처에서 쉬다가 문득 잠이 들었는데, 꿈 속에서 (神)을 만났다고 한다. 그때 뇌성벽력이 치고 하늘이 시커멓게 변했는데, 근처에 있던 태공이 그 모습을 보자 유온의 배 위쪽에 교룡(蛟龍)이 떠있었고, 유온의 몸에 태기가 있어 아들을 낳으니 그 사람이 유방이었다.


3. 생애[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고제(전한)/생애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4. 가족[편집]


고제는 8남 1녀를 두었는데, 여덟 아들의 어머니가 모두 다르다.


5. 평가[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고제(전한)/평가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6. 기타[편집]


  • 파일:kgvFShn.jpg
중국 한중 석문잔도풍경구(石門棧道風景區)에 있는 유방의 석상이다. 왼쪽은 소하, 오른쪽은 한신.

"乃公居馬上而得之,安事《詩》、《書》!"

사기》<역생 육가 열전>
"豎儒,幾敗而公事!"

사기》<유후세가>
여기서 보이는 내공(乃公)과 이공(而公)은 비슷한 표현인데, 이는 본래 '자신' 을 가리키는 표현이 아니다. 여기서 사용되는 乃나 而는 "너" 아니면 "자네" 정도의 의미가 되는데, 뒤에 公이 붙이니 그렇다면 "자네 아버지" "네 어르신" 정도의 의미가 된다.
그런데 유방은 여기서 이 표현을 자신에게 사용했다. 이건 자기를 일컫어 "네 아버지" "(너희 아버지에 해당하는) 이 어르신" 같은 묘한 어감이 된다. 마찬가지로 상대 역시 "아들" "조무래기" 같은 상황이 된다. 이런 점을 생각하고 어감을 살려 문장을 번역하면 이런 느낌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어르신께서는 말 위에서 천하를 얻으셨다. 그런데 시, 서 따위가 대관절 무슨 소용이란 말이냐?"[8]
"하찮은 유생 놈 때문에 이 어르신이 대사를 그르칠 뻔 했구나!"
물론 황제 등은 3인칭으로 자신을 호칭하기도 했지만, 이건 황제의 어투라기보다는 건달 세계에서 보스가 쫄따구에게 하는 느낌에 더 가깝다. 그런 '쫄따구 풋내기' 등을 일컫는 수자(豎子)[9]라는 단어가 있는데, 이와 대조해서 보면 그런 느낌이 더욱 강하다.
"吾惟豎子固不足遣,而公自行耳。"

사기》<유후세가>
이 부분은 영포의 반란때 여후의 아들인 혜제가 나설 지경이 되자, 여후가 울면서 만류하여 유방이 대답하는 부분이다. 기서 유방은 자기 아들을 수자(豎子)로 표현하고, 자신을 이공(而公)으로 표현하고 있는데 대략 이런 늬앙스가 될 수 있다.
"나도 그런 조무래기가 나서기에 적절치 않다는건 알고 있었다. 이 어르신께서 직접 가시겠다."
혹은,
"그 조무래기가 시원치 않으니, 당신 남편이 나서야겠구만."
이런 느낌으로, 여하간 평민 출신 황제만이 할 수 있는 어법이라고 해야 할 듯 싶다. 사실 멀리 갈 것 없이 유방의 이런 3인칭 화법은 오늘날로 치면 남자가 좀 허세를 부리거나 잘난 척 할 때 쓰는 "이 형이 말이야.", "오빠가 한 턱 쏜다" 이런 분위기라고 생각하면 될 듯. 좀 더 건달(?)스럽게 바꿔보면 "이 엉아가 말야~" 정도로 볼 수 있다.

  • 자신을 따맀던 정강이라는 신하를 고발한 사람의 코를 베어버리는 형벌을 내렸다. 정황을 살펴보면, 정강이 유방과 함께 고생을 할 때는 전쟁 중에 요행히 죽기를 바라면서 아무 말도 없었다가 이제야 그를 고발한 것을 괘씸히 여긴 듯하다.
正疆首茉事而當,上使參乘,解玉劍以之。天下定,出以爲守。有告之者,上曰:「天下方急,汝何在?」曰:「亡。」上曰:「正疆沐浴霜露,與我從軍而汝亡,告之何也?下廷尉劓。

정강(正疆)이 수차례 사건에 대해 하는 말이 타당하자, 주상(유방)은 수레에 참승하도록 하고 옥검을 풀어 그에게 채워주었다. 천하가 안정되자 (정강을) 내보내 군수로 삼았는데 그를 고발하는 자가 있었다. 이에 주상이 물었다.

"천하가 위급해졌을 때, 너는 어디에 있었느냐?"

"도망쳤습니다." 라고 대답하자 주상이 말하였다.

"정강은 서리와 이슬로 목욕을 하며 나와 더불어 종군하였는데, 너는 도망을 하고서 이제 고발하는 것은 무엇 때문이냐?"

그리고 정위에게 하명하여, 코를 베어버리는 의형에 처하였다.


《태평어람》(太平御覽) 648, 《초한춘추》(楚漢春秋)


  • 생년에 관하여 논란이 있는데, 만약 기원전 256년으로 칠 경우[10], 진나라가 전국을 통일한 게 기원전 221년이었으니 인생의 반 이상을 전국시대에서 보냈다는 얘기가 된다. 기원전 247년으로 칠 경우, 인생(52년)에서 반에 가까운(26년)을 전국시대에서 보낸 셈이 된다.

  • 아버지인 유태공보다 불과 2년 늦게 죽었다. 경포 반란 진입에서 입은 부상으로 꽤 이른 나이에 죽은거 같지만 대략 5~60대에 사망했다. 당대 기준으로는 사실상 천수를 누리다 죽은셈. 의학과 영양학이 발달한 현대의 평균 수명이 80세 정도인걸 감안하면 오히려 유태공이 어마어마하게 장수한편이다.

  • 마오쩌둥은 유방에 대해 "봉건 황제 중에서 가장 대단한 사람"이라 말하며 긍정적으로 평가하였다. 또 "그는 천하에 하나를 얻으면 정책을 결정해야 옳고, 둘째는 사람을 쓰는 것이 적합하기 때문이다"라고 말하였다. 마오는 항우를 비정치가로 여겼고, 유방은 고명한 정치가로 여겼다고 한다.#


  • 자신의 아내들 가운데 척부인을 제일 아끼고 사랑했지만 역설적이게도 척부인이 동서고금을 통틀어 가장 끔찍한 최후를 맞게 한 원인제공자라고 볼 수 있다. 척부인의 소생 유여의가 정통성이 떨어지는 일개 서자임에도 불구하고 그저 개인적인 사심과 여후 견제로 추측되는 이유로 멀쩡히 살아있는 적장자 유영을 폐제하고 유여의를 태자로 삼으려고 해 군주로서도 계승법을 필두로 국가의 율법을 훼손했고, 가정에서도 정실과 첩의 위계질서를 무너뜨려 정실의 체면을 훼손하는 문제 행위를 해 척부인 모자는 여후의 원한을 사고 신하들도 반감을 가지면서 본인 사후 여후의 손에 도륙을 당할 때 황제로 즉위한 유영을 제외하면 아무도 두 모자를 구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11] 만일 율법과 당대 사회의 상식을 지키면서 여후를 견제한다면 여씨 일족을 대거 숙청하거나 여후의 최측근들을 없애 여후를 정치에서 배제하거나 권력 기반을 없애는 것이 훨씬 현실적이고 타당성이 있었을 것이다. 결국 척부인 모자가 죽게 된 배경은 여후의 지나친 잔혹함도 문제였으나 유방의 그릇된 결정도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 한고제는 중국의 황제 가운데 후손 농사도 잘 된 황제다. 당장 아들인 한문제와 손자 한경제는 중국사에서 유명한 명군들인데다, 이들의 후손들 중 한무제 유철은 당태종 이세민과 더불어 중원제일의 정복군주였고, 광무제 유수와 소열제 유비는 나라가 망하자 다시 나라를 일으켜세워 사직을 이어나간 영웅들이었다. 한무제 유철은 자신의 선조를 일패도지시킨 흉노를 상대로 위청곽거병이라는 명장을 보내 대대적으로 토벌해 실크로드를 장악하고 본격적인 서역진출의 문을 열었고, 광무제 유수는 전한이 멸망하자 왕망이 세운 신나라와 각종 군벌들을 격파하고 후한을 건국해 망한 한황실을 부흥시켰고, 소열제 유비는 후한이 조비에게 멸망당하자 익주 지방에 후한의 유민들을 모아 촉한을 건국해 사직을 다시 지켜냈으며, 그 덕분에 한황실은 전한이 망한 뒤에도 후한과 촉한이 연이어 건국된 덕분에 270년에 이르는 기간 동안 중국 대륙에서 사직을 보전하였고, 전한-후한-촉한을 합치면 한황실은 중국 대륙에서 470년이나 사직을 이어나갔는데, 그 뒤에도 방계 후손인 송무제 유유가 동진을 멸하고 유송을 건국하였기에 유씨 황실이 중국 대륙을 통치한 기간을 보자면 무려 500년 이상이 된다.

  • 워낙 파격적인 행적이 많았고 질기게 살아남아 버틴 인물이라 호불호가 꽤 극단적으로 갈리는 탓에 이를 배경으로 하는 《소설 초한지》 등에서는 라이벌항우나 부하인 한신 등에 비해 인기가 아주 높은 편은 아니지만, 최후의 승자로서 가지는 역사적 입지와 비중은 가장 높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13]

  • 유방은 외모에 대해서도 융준용안(隆準龍眼)[14], 용안미수염(容顔美鬚髥)과 같은 식으로 용과 연결이 자주되는 편인데 이러한 과정에서 나온 전설이라고 보는 것이 좋을 듯 싶다.

  • 콧날이 높고 이마는 넒어 용의 얼굴을 닮았으며, 수염이 아주 그럴 듯해서 멋있었다고 한다. 또한 왼쪽 넓적다리에는 72개의 반점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많은 반점의 숫자야 비범한 인물에 대한 묘사에서 자주 나오는 특징 중에 하나고, 용의 얼굴을 닮았다지만 사람 얼굴을 보고 연상시키는 동물이야 모두 다른 법. 동네 깡패치고는 풍채가 상당히 좋았던 것으로 보인다. 왕년에 동네 술집 에이스였기도 하거니와 장가가고도 여자들 상대로 썸을 잘 탔던 걸로 봐서는 실제로도 잘 생기고 언변도 좋았을 가능성이 높다. 유방은 정장(亭長)의 벼슬을 하고 나서부터는 자기 밑의 부하를 설(薛, 산동선 등현) 땅으로 보내 죽피관(竹皮冠, 대나무 껍질로 만든 관)을 만들어 오게 하여 외출할 때는 무조건 이를 쓰고 다녔는데, 허세를 위한 용도로 보는 사람들도 있지만 훗날 황제가 되고 나서도 이 죽피관은 계속 착용하고 다녔다고 한다. 대체로 유방의 초상화에서는 넒은 이마, 콧날, 죽피관이 강조되는 편이다.


7. 대중매체에서[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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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46권 「전경중완세가(田敬仲完家)」 ||<-2> 47권 「공자세가(孔子世家)」 ||<-2> 48권 「진섭세가(陳涉世家)」 ||
||<-2><rowbgcolor=#fff,#191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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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성 전씨(嬀姓 田氏)

진완 · 전맹이 · 전맹장 · 전문자
전환자 · 전희자 · 전성자 · 전양자
전장자 · 전도자 · 태공 · 제후섬
환공 · 위왕 · 선왕 · 민왕
양왕 · 제왕 건}}} ||<-2> 공자 ||<-2> 진승 · [[오광(초한쟁패기)|{{{#black,#e5e5e5 오광
]] ||
||<-2> 46권 「외척세가(外戚世家)」 ||<-2> 50권 「초원왕세가(楚元王世家)」 ||<-2> 51권 「형연세가(荊燕世家)」 ||
||<-2><rowbgcolor=#fff,#191919> 박태후 · 두태후 · 왕태후 · 위황후 · 구익부인 ||<-2> 유교 · 유수 ||<-2> 유고 · 유택 ||
||<-2> 52권 「제도혜왕세가(齊悼惠王世家)」 ||<-2> 53권 「소상국세가(蕭相國世家)」 ||<-2> 54권 「조상국세가(曹相國世家)」 ||
||<-2><rowbgcolor=#fff,#191919> 유비(劉肥) ||<-2> 소하 ||<-2> 조참 ||
||<-2> 55권 「유후세가(留侯世家)」 ||<-2> 56권 「진승상세가(陳丞相世家)」 ||<-2> 57권 「강후주발세가(絳侯周勃世家)」 ||
||<-2><rowbgcolor=#fff,#191919> 장량 ||<-2> 진평 · 왕릉 · 심이기 ||<-2> 주발 ||
||<-6><width=1000> 58권 「양효왕세가(梁孝王世家)」 ||
||<-6><bgcolor=#fff,#191919> 유무 ||
||<-6> 59권 「오종세가(五宗世家)」 ||
||<-6><bgcolor=#fff,#191919> 유덕 · 유알우 · 유영 · 유여 · 유비(劉非) · 유단(劉端) · 유팽조 · 유승(劉勝) · 유발 · 유기 · 유월 · 유승(劉乘) · 유순 ||
||<-6> 60권 「삼왕세가(三王世家)」 ||
||<-6><bgcolor=#fff,#191919> 유굉 · 유단(劉旦) · 유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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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전(列傳) ]
61권 「백이전(伯夷傳)」
62권 「관안전(管晏傳)」
63권 「노자한비전(老子韓非傳)」
백이 · 숙제
관중 · 안영
노자 · 장자 · 신불해 · 한비
64권 「사마양저전(司馬穰苴傳)」
65권 「손자오기전(孫子吳起傳)」
66권 「오자서전(伍子胥傳)」
사마양저
손무 · 손빈 · 오기
오자서
67권 「중니제자전(仲尼弟子傳)」
안회 · 민손 · 염경 · 염옹 · 염구 · 중유 · 언언 · 복상 · 전손사 · 증삼 · 담대멸명 · 복부제 · 원헌 · 공야장 · 남궁괄 · 공석애 · 증점 · 안무요 · 상구 · 고시 · 칠조개 · 공백료 · 사마경 · 번수 · 자유 · 칠조개 · 공서적 · 양전 · 안행 · 염유 · 조휼 · 백건 · 공손룡
68권 「상군전(商君傳)」
69권 「소진전(蘇秦傳)」
70권 「장의전(張儀傳)」
상앙
소진
장의
71권 「저리자감무전(樗里子甘茂傳)」
72권 「양후전(穰侯傳)」
73권 「백기왕전전(白起王翦傳)」
저리질 · 감무
위염
백기 · 왕전
74권 「맹자순경전(孟子荀卿傳)」
75권 「맹상군전(孟嘗君傳)」
76권 「평원군우경전(平原君虞卿傳)」
맹가 · 순경
전문
조승 · 우경
77권 「위공자전(魏公子傳)」
78권 「춘신군전(春申君傳)」
79권 「범수채택전(范睢蔡澤傳)」
위무기
황헐
범수 · 채택
80권 「악의전(樂毅傳)」
81권 「염파인상여전(廉頗藺相如傳)」
82권 「전단전(田單傳)」
악의
염파 · 인상여
전단
83권 「노중련추양전(魯仲連鄒陽傳)」
84권 「굴원가생전(屈原賈生傳)」
85권 「여불위전(呂不韋傳)」
노중련 · 추양
굴원 · 가의
여불위
86권 「자객전(刺客傳)」
87권 「이사전(李斯傳)」
88권 「몽염전(蒙恬傳)」
조말 · 전저 · 예양 · 섭정 · 형가
이사
몽염
89권 「장이진여전(張耳陳餘傳)」
90권 「위표팽월전(魏豹彭越傳)」
91권 「경포전(鯨布傳)」
장이 · 진여
위표 · 팽월
영포
92권 「회음후전(淮陰侯傳)」
93권 「한신노관전(韓信盧綰傳)」
94권 「전담전(田儋傳)」
한신
한신 · 노관 · 진희
전담
95권 「번역등관전(樊酈滕灌傳)」
번쾌 · 역상 · 하후영 · 관영
96권 「장승상전(張丞相傳)」
장창 · 주창 · 임오 · 왕릉 · 신도가 · 위현 · 병길 · 전문 · 황패 · 위현성 · 광형
97권 「역생육가전(酈生陸賈傳)」
98권 「부근굉사전(傅靳蒯成傳)」
99권 「유경숙손통전(劉敬叔孫通傳)」
역이기 · 육가 · 주건
부관 · 근흡 · 주설
유경 · 숙손통
100권 「계포난포전(季布欒布傳)」
101권 「원앙조조전(袁盎鼂錯傳)」
102권 「장석지풍당전(張釋之馮唐傳)」
계포 · 난포
원앙 · 조조
장석지 · 풍당
103권 「만석장숙전(萬石張叔傳)」
104권 「전숙전(田叔傳)」
105권 「편작창공전(扁鵲倉公傳)」
석분 · 장숙
전숙
진월인 · 순우의
106권 「오왕비전(吳王濞傳)」
107권 「위기무안후전(魏其武安侯傳)」
108권 「한장유전(韓長孺傳)」
유비(劉濞)
두영 · 전분
한안국
109권 「이장군전(李將軍傳)」
이광
110권 「흉노전(匈奴傳)」
흉노
111권 「위장군표기전(衛將軍驃騎傳)」
112권 「평진후주부전(平津侯主父傳)」
위청 · 곽거병
공손홍 · 주보언
113권 「남월전(南越傳)」
114권 「동월전(東越傳)」
115권 「조선전(朝鮮傳)」
조타
추무제 · 추요
위만
116권 「서남이전(西南夷傳)」
야랑 · 전국 · 공도 · 백마국
117권 「사마상여전(司馬相如傳)」
사마상여
118권 「회남형산전(淮南衡山傳)」
119권 「순리전(循吏傳)」
120권 「급정전(汲鄭傳)」
유장 · 유안 · 유사
손숙오 · 자산 · 공의휴 · 석사 · 이리
급암 · 정당시
121권 「유림전(儒林傳)」
신공 · 원고생 · 한생 · 복생 · 동중서 · 호무생
122권 「혹리전(酷吏傳)」
질도 · 후봉 · 영성 · 주양유 · 조우 · 장탕 · 의종 · 왕온서 · 윤제 · 양복 · 감선 · 두주
123권 「대완전(大宛傳)」
대완 · 강거 · 오손 · 엄채 · 대월씨 · 대하 · 조지 · 안식국
124권 「유협전(遊俠傳)」
125권 「영행전(佞幸傳)」
곽해 · 주가 · 극맹 · 전중
등통 · 한언 · 이연년
126권 「골계전(滑稽傳)」
순우곤 · 우맹 · 우전 · 동방삭 · 서문표 · 동곽선생 · 왕선생 · 곽사인
127권 「일자전(日者傳)」
128권 「귀책전(龜策傳)」
129권 「화식전(貨殖傳)」
사마계주
점복
범려 · 자공 · 백규 · 의돈 · 정정 · 도한
130권 「태사공자서(太史公自序)」
사마천



한서(漢書)

[ 본기(本紀) ]
1권 「고제기(高帝紀)」
2권 「혜제기(惠帝紀)」
3권 「고후기(高后紀)」
유방
유영
여치
4권 「문제기(文帝紀)」
5권 「경제기(景帝紀)」
6권 「무제기(武帝紀)」
유항
유계
유철
7권 「소제기(昭帝紀)」
8권 「선제기(宣帝紀)」
9권 「원제기(元帝紀)」
유불릉
유순
유석
10권 「성제기(成帝紀)」
11권 「애제기(哀帝紀)」
12권 「평제기(平帝紀)」
유오
유흔
유간
※ 13권 ~ 20권은 表에 해당. 21권~30권은 志에 해당. 한서 문서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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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기(本紀) ]
1권 「고제기(高帝紀)」
2권 「혜제기(惠帝紀)」
3권 「고후기(高后紀)」
유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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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치
4권 「문제기(文帝紀)」
5권 「경제기(景帝紀)」
6권 「무제기(武帝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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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권 「소제기(昭帝紀)」
8권 「선제기(宣帝紀)」
9권 「원제기(元帝紀)」
유불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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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권 「성제기(成帝紀)」
11권 「애제기(哀帝紀)」
12권 「평제기(平帝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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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전(列傳) ]
31권 「진승항적전(陳勝項籍傳)」
32권 「장이진여전(張耳陳餘傳)」
33권 「위표전담한왕신전(魏豹田儋韓王信傳)」
진승 · 항적
장이 · 진여
위표 · 전담 · 한신
34권 「한팽영노오전(韓彭英盧吳傳)」
35권 「형연오전(荊燕吳傳)」
36권 「초원왕전(楚元王傳)」
한신 · 팽월 · 경포 · 노관 · 오예
유고 · 유택 · 유비
초원왕
37권 「계포난포전숙전(季布欒布田叔傳)」
38권 「고오왕전(高五王傳)」
39권 「소하조참전(蕭何曹參傳)」
계포 · 난포 · 전숙
제왕 · 조왕 · 조왕 · 조왕 · 연왕
소하 · 조참
40권 「장진왕주전(張陳王周傳)」
41권 「번역등관부근주전(樊酈滕灌傅靳周傳)」
42권 「장주조임신도전(張周趙任申屠傳)」
장량 · 진평 · 왕릉 · 주발
번쾌 · 역상 · 하후영 · 관영
부관 · 근흡 · 주설
장창 · 주창 · 조요 · 임오 · 신도가
43권 「역육주유숙손전(酈陸朱劉叔孫傳)」
44권 「회남형산제북왕전(淮南衡山濟北王傳)」
45권 「괴오강식부전(蒯伍江息夫傳)」
역이기 · 육고 · 주건 · 유경 · 숙손통
유장 · 유사 · 유발
괴통 · 오피 · 강충 · 식부궁
46권 「만석위직주장전(萬石衞直周張傳)」
47권 「문삼왕전(文三王傳)」
48권 「가의전(賈誼傳)」
석분 · 위관 · 직불의 · 주인 · 장구
양왕 · 대왕 · 양왕
가의
49권 「원앙조조전(爰盎晁錯傳)」
50권 「장풍급정전(張馮汲鄭傳)」
51권 「가추매노전(賈鄒枚路傳)」
원앙 · 조조
장석지 · 풍당 · 급암 · 정당시
가산 · 추양 · 매승 · 노온서
52권 「두전관한전(竇田灌韓傳)」
53권 「경십삼왕전(景十三王傳)」
54권 「이광소건전(李廣蘇建傳)」
두영 · 전분 · 관부 · 한안국
임강민왕 · 하간왕 · 임강애왕 · 노왕 · 강도왕
우왕 · 조왕 · 중산정왕 · 장사왕 · 광천왕
교동왕 · 청하왕 · 상산왕
이광 · 소건
55권 「위청곽거병전(衛靑霍去病傳)」
56권 「동중서전(董仲舒傳)」
57권 「사마상여전(司馬相如傳)」
위청 · 곽거병
동중서
사마상여
58권 「공손홍복식예관전(公孫弘卜式兒寬傳)」
59권 「장탕전(張湯傳)」
60권 「두주전(杜周傳)」
공손홍 · 복식 · 예관
장탕
두주
61권 「장건이광리전(張騫李廣利傳)」
62권 「사마천전(司馬遷傳)」
63권 「무오자전(武五子傳)」
장건 · 이광리
사마천
여태자 · 제왕 · 연왕 · 광릉왕 · 창읍왕
64권 「엄주오구주보서엄종왕가전(嚴朱吾丘主父徐嚴終王賈傳)」
엄조 · 주매신 · 오구수왕 · 주보언 · 서악 · 엄안 · 종군 · 왕포 · 가연지
65권 「동방삭전(東方朔傳)」
66권 「공손유전왕양채진정전(公孫劉田王楊蔡陳鄭傳)」
동방삭
공손하 · 유굴리 · 전천추 · 왕흔 · 양창 · 채의 · 진만년 · 정홍
67권 「양호주매운전(楊胡朱梅云傳)」
68권 「곽광김일제전(霍光金日磾傳)」
69권 「조충국신경기전(趙充國辛慶忌傳)」
양왕손 · 호건 · 주운 · 매복 · 운창
곽광 · 김일제
조충국 · 신경기
70권 「부상정감진단전(傅常鄭甘陳段傳)」
71권 「준소우설평팽전(雋疏于薛平彭傳)」
부개자 · 상혜 · 정길 · 감연수 · 진탕 · 단회종
준불의 · 소광 · 우정국 · 설광덕 · 평당 · 팽선
72권 「왕공양공포전(王貢兩龔鮑傳)」
73권 「위현전(韋賢傳)」
74권 「위상병길전(魏相丙吉傳)」
왕길 · 공우 · 공승 · 공사 · 포선
위현
위상 · 병길
75권 「수양하후경익이전(眭兩夏侯京翼李傳)」
76권 「조윤한장양왕전(趙尹韓張兩王傳)」
수홍 · 하후시창 · 하후승 · 경방 · 익봉 · 이심
조광한 · 윤옹귀 · 한연수 · 장창 · 왕존 · 왕장
77권 「갑제갈유정손무장하전(蓋諸葛劉鄭孫毋將何傳)」
78권 「소망지전(蕭望之傳)」
갑관요 · 제갈풍 · 유보 · 정숭 · 손보 · 무장륭 · 하병
소망지
79권 「풍봉세전(馮奉世傳)」
80권 「선원육왕전(宣元六王傳)」
풍봉세
회양왕 · 초효왕 · 동평왕 · 중산왕 · 정도왕 · 중산왕
81권 「광장공마전(匡張孔馬傳)」
82권 「왕상사단부희전(王商史丹傅喜傳)」
83권 「설선주박전(薛宣朱博傳)」
광형 · 장우 · 공광 · 마궁
왕상 · 사단 · 부희
설선 · 주박
84권 「적방진전(翟方進傳)」
85권 「곡영두업전(谷永杜鄴傳)」
적방진
곡영 · 두업
86권 「하무왕가사단전(何武王嘉師丹傳)」
87권 「양웅전(揚雄傳)」
하무 · 왕가 · 사단
양웅
88권 「유림전(儒林傳)」
정관 · 시수 · 맹희 · 양구하 · 비직 · 복생 · 구양생 · 임존 · 주감 · 장산부 · 왕식 · 후창 · 호모생 · 엄팽조 · 안안락
89권 「순리전(循吏傳)」
90권 「혹리전(酷吏傳)」
문옹 · 오성 · 황패 · 주읍 · 공수 · 소신신
질도 · 영성 · 조우 · 의종 · 왕온서 · 윤제 · 양복 · 감선 · 전광명 · 전연년 · 엄연년 · 윤상
91권 「화식전(貨殖傳)」
92권 「유협전(游俠傳)」
백규 · 정정
주가 · 전중 · 극맹 · 곽해 · 우장 · 누호 · 진준 · 원섭
94권 「흉노전(匈奴傳)」
95권 「서남이양월조선전(西南夷兩粤朝鮮傳)」
흉노
· 남월 · 민월 · 동해국 · 조선
96권 「서역전(西域傳)」
선선국 · 저말국 · 소완국 · 정절국 · 융로국 · 서미국 · 거륵국 · 우전국 · 피산국 · 아타국 · 서야국 · 포리국 · 의내국 · 무뢰국 · 난두국 · 계빈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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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사전국 · 차사후국 · 차사도위국 · 차사후성장국
97권 「외척전(外戚傳)」
효혜황후 · 효문태후 · 두의방 · 효경황후 · 왕지 · 진아교 · 무사황후 · 효소태후 · 효소황후 · 사양제 · 왕부인 · 허평군 · 곽성군 · 효선황후 · 효성황후
반염 · 조비연 · 효원소의 · 정도정희 · 효애황후 · 효원소의 · 중산위희 · 효평황후
98권 「원후전(元皇傳)」
99권 「왕망전(王莽傳)」
왕정군
왕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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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유방의 절친인 노관도 기원전 247년생인데 심지어 같은 날에 태어나 가족끼리 서로 매우 친했다는 언급이 있어 아마도 기원전 247년이 출생년이 맞을 듯하다. 하지만 기원전 256년으로 보기도 한다. 여담으로 기원전 247년생이라면 시황제가 즉위한 해 출생이고, 기원전 256년생이라면 진나라가 시황제의 증조부인 소양왕 치세였던 시절에 출생한 것으로 시황제와는 고작 3살 차이밖에 안 난다.[2] 지금의 장쑤성 (江蘇省) 펑현(丰县, 병음: Fēng Xiàn)[3] 풍읍의 패현이라 '풍패'라고도 하는데, 조선시대에는 전주의 별칭이 풍패였었다.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본관이 전주이기 때문.[4] 이라고는 해도, 이 시기는 이미 조조가 집권하여 위나라나 마찬가지였다.[5] 하지만 원래 옛날 사람들은 본명인 휘를 잘 사용하지 않았고 보통 자나 호로 불렀다. 당장 유방과 항우라고 되어 있는데 원래 항우부터가 우(羽)는 휘가 아닌 자이며, 항우의 휘는 적(籍)이다.[6] 이와 같은 케이스로 삼국지 시대의 많은 인물들을 들 수 있다. 손견의 아들들인 손책, 손권, 손익, 손광의 자를 각각 백부, 중모, 숙필, 계좌로 썼으며, 사마랑, 사마의, 사마부, 사마욱 형제 역시 자를 각각 백달, 중달, 숙달, 계달로 백중숙계에 맞춰 자를 지었다. 공자 또한 형제 중 둘째였기 때문에 자를 중니로 썼다. 덧붙여 막내의 자에는 유(幼)를 붙이는데, 사마의 막내 아우인 사마민의 자가 유달이었으며 마량의 막내 아우인 마속의 자는 유상이다. 마량 또한 자를 계상으로 썼는데, 이것이 백중숙계에 맞춘 것이라면 마량은 형제 중 넷째이고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마씨 형제들의 자는 백상, 중상, 숙상이라는 것을 유추할 수 있다.[7] 즉 유방은 어린 시절 '막둥이' 정도로 불렸다는 얘기. 가까운 예로 올림픽 이전만해도 이름을 대충 짓느라(무성의하게 지어야 오래 산다는 믿음도 있고) 막동이, 막둥이, 막딸이 이렇게 짓는 경우도 부지기수였다.[8] 이 발언에서 유래하여, 유방을 마상옹(馬上翁)혹은 마상지내옹(馬上之乃翁)이라고도 한다. 말 위의 어르신, 의역하자면 말 좀 타본 형님 정도?#[9] 더벅머리 놈 정도로 번역되기도 한다.[10] 여담으로 주나라의 마지막 왕인 난왕이 같은 해에 사망했다.[11] 다만 척부인도 억울한 피해자는 아니다. 후궁임에도 불구하고 노골적으로 유방에게 유여의를 태자로 삼아달라고 밤새도록 울며 애걸복걸을 하는 등 그녀도 율법 및 사회적으로 질타받을 문제 행위를 당당히 했기 때문. 여후가 도넘은 잔인한 보복을 가했고 후일에도 제 평가를 깎아먹는 악행들을 저질러서 그렇지, 척부인은 1차적인 원인은 유방이 제공했고 본인도 악의없는 무지함이 커 잘못에 비해 지나친 처형을 당한 것은 동정받을 부분이 맞지만, 국정을 농간한 요부 및 상전인 황후의 권리를 침해한 방자한 첩으로 비판받을 사항이였다.[12] 싸우다 죽은 병사들을 하나하나 시체를 찾아서 고향에 보내주었을 정도니 따를 수밖에.[13] 다만 이건 어디까지나 현재의 인기일 뿐, 당대의 인기는 유방이 가장 좋았다. 한신은 자신의 전문 분야인 군 지휘에서는 탁월했지만 인간관계에 심각할 정도로 문제가 많았고, 항우는 무분별하게 학살을 자행한 인간백정에 성격이 천상천하 유아독존이었다. 그에 비해 유방은 비교적 부하들도 잘 챙겨준 편이었고, 병사들로부터도 신망이 두터웠으며[12] 무엇보다 사람을 모으고 분위기를 휘어잡는 재능이 있어서 위에서부터 아래까지 골고루 인망이 높았고 심지어 의제나 그 신하들도 유방을 항우의 대항마로 내세울 정도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전국시대 말기 ~ 진나라 시기의 대혼란을 잠재우고 새로운 세상을 만들었으며 현재 중국의 기틀을 닦은 인물이기도 하다. 사실 이건 소설 《초한지》 등의 영향으로 고제가 마치 무능하고 탐욕스러운 것처럼 나온 탓이 크다. 또, 마치 한신이 아무 잘못도 없는데 질투심으로 한신을 핍박한 듯이 묘사하는 경우도 많은데 애시당초 한신이 세운 공은 전부 다 고제가 기반을 마련해준 것이고 또, 대부분 고제의 다른 신하들과 연계해서 생긴 것이다. 예를 들어 조나라를 공격할 때는 조참, 관영 등이 함께 따라갔고 고제도 장이 등을 보내서 지원해줬고 항우의 본대가 조나라로 향하지 못하게 자신이 그 공격을 직접 몸으로 받아냈다. 그리고 후술하겠지만 한신은 공을 세울수록 자신의 미천한 시절을 잊어버리고 거만해졌고 또한 역이기나 종리말 등의 고사를 봐도 다른 사람에 대해서는 배려를 전혀 하지 않는 인간이었다. 한참 역이기가 제나라를 설득해서 성공하고 있던 도중에 처들어가서 역이기가 어떻게 되든 말든 상관하지 않았고 결국 역이기는 끓는 기름솥에 제발로 걸어들어가야 했으며 자기가 종리말을 숨겨놓고 상황이 불리해지니 그 종리말의 목을 들고 갈 생각을 해서 결국 종리말 스스로가 목숨을 끊게 만들었다. 거기다 고제가 한참 항우를 상대하느라 고생하고 있는데 위의 제나라 건으로 자신을 제왕으로 삼아달라고 청했다. 거기다 이런 짓을 저지르고도 고제는 자신을 해치지 않을 거라고 근자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다고 권신이라서 지까짓게 감히 날 어쩌겠어? 라는 식으로 생각한 것도 아니고 설마 고제가 날 해치기야 하겠어? 라는 쪽에 가깝다.[14] 여기서 유래하여 유방을 패상융준(沛上隆準) 또는 한준(漢準)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참고로 이 융준용안이라는 말은 훗날 조선의 건국자 이성계이방원을 묘사할 때에도 등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