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조(북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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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기(本紀) ]
1권 「위본기1(魏本紀一)」
2권 「위본기2(魏本紀二)」
3권 「위본기3(魏本紀三)」
탁발규 · 탁발사
탁발도 · 탁발황 · 탁발준(浚) · 탁발홍
원굉
4권 「위본기4(魏本紀四)」
5권 「위본기5(魏本紀五)」
원각 · 원후
원자유 · 원공 · 원랑 · 원수 · 원보거 · 원흠 · 원곽 · 원선견
6권 「제본기상(齊本紀上)」
7권 「제본기중(齊本紀中)」
8권 「제본기하(齊本紀下中)」
고환 · 고징
고양 · 고은 · 고연
고담 · 고위 · 고항
9권 「주본기상(周本紀上)」
10권 「주본기하(周本紀下)」
우문태 · 우문각 · 우문육
우문옹 · 우문윤 · 우문천
11권 「수본기상(隋本紀上)」
12권 「수본기하(隋本紀下)」
양견
양광 · 양유
13·14권 「후비전(后妃傳)」
신원황후 · 봉황후 · 기황후 · 평문황후 · 소성황후 · 헌명황후 · 도무황후 · 선목황후 · 소애황후 · 명원밀황후 · 혁련황후 · 경애황후
울구려황후 · 문명황후 · 문성원황후 · 헌문사황후 · 효문정황후 · 폐후 풍씨 · 효문유황후 · 효문고황후 · 우황후 · 고황후 · 호황후 · 효명황후 · 효무황후 · 문황후 · 도황후 · 우문황후 · 약간황후 · 효정황후 · 누소군 · 원황후 · 이조아 · 원황후 · 호황후 · 곡률황후 · 호황후 · 목야리 · 풍소련 · 원씨 · 질노씨 · 원호마 · 독고황후 · 아사나 · 이아자 · 양려화 · 주만월 · 진월의 · 원락상 · 울지치번 · 사마영희 · 독고가라 · 소황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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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기(本紀) ]
1권 「위본기1(魏本紀一)」
2권 「위본기2(魏本紀二)」
3권 「위본기3(魏本紀三)」
탁발규 · 탁발사
탁발도 · 탁발황 · 탁발준(浚) · 탁발홍
원굉
4권 「위본기4(魏本紀四)」
5권 「위본기5(魏本紀五)」
원각 · 원후
원자유 · 원공 · 원랑 · 원수 · 원보거 · 원흠 · 원곽 · 원선견
6권 「제본기상(齊本紀上)」
7권 「제본기중(齊本紀中)」
8권 「제본기하(齊本紀下中)」
고환 · 고징
고양 · 고은 · 고연
고담 · 고위 · 고항
9권 「주본기상(周本紀上)」
10권 「주본기하(周本紀下)」
우문태 · 우문각 · 우문육
우문옹 · 우문윤 · 우문천
11권 「수본기상(隋本紀上)」
12권 「수본기하(隋本紀下)」
양견
양광 · 양유
13·14권 「후비전(后妃傳)」
신원황후 · 봉황후 · 기황후 · 평문황후 · 소성황후 · 헌명황후 · 도무황후 · 선목황후 · 소애황후 · 명원밀황후 · 혁련황후 · 경애황후
울구려황후 · 문명황후 · 문성원황후 · 헌문사황후 · 효문정황후 · 폐후 풍씨 · 효문유황후 · 효문고황후 · 우황후 · 고황후 · 호황후 · 효명황후 · 효무황후 · 문황후 · 도황후 · 우문황후 · 약간황후 · 효정황후 · 누소군 · 원황후 · 이조아 · 원황후 · 호황후 · 곡률황후 · 호황후 · 목야리 · 풍소련 · 원씨 · 질노씨 · 원호마 · 독고황후 · 아사나 · 이아자 · 양려화 · 주만월 · 진월의 · 원락상 · 울지치번 · 사마영희 · 독고가라 · 소황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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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전(列傳) ]
15권 「위제종실전(魏諸宗室傳)」
탁발흘나 · 탁발영문 · 탁발육 · 탁발인 · 탁발수낙 · 탁발퇴 · 탁발소연 · 탁발욱 · 탁발목신 · 탁발육수 · 탁발비간 · 탁발여 · 탁발고
탁발돈 · 탁발석 · 탁발위 · 탁발대두 · 탁발제 · 탁발처진 · 탁발니 · 탁발식군 · 탁발한 · 탁발준(遵) · 탁발건(健) · 탁발순 · 탁발의열 · 탁발굴돌
16권 「도무7왕·명원6왕·태무5왕전(道武七王·明元六王·太武五王傳)」
탁발소 · 탁발희 · 탁발요 · 탁발수 · 탁발처문 · 탁발연 · 탁발여(黎) · 탁발비 · 탁발미 · 탁발범 · 탁발건(健) · 탁발숭 · 탁발준(俊) · 탁발복라 · 탁발한 · 탁발담 · 탁발건(建) · 탁발여(余)
17·18권 「경목12왕전(敬穆十二王傳)」
탁발신성 · 탁발자추 · 탁발소신성 · 탁발천사 · 탁발만수 · 탁발낙후 · 탁발운 · 탁발정 · 탁발장수 · 탁발태락 · 탁발호아 · 탁발휴
19권 「문성5왕·헌문6왕·효문6왕전(文成五王·獻文六王·孝文六王傳)」
탁발장락 · 탁발약(略) · 탁발간(簡) · 탁발약(若) · 탁발맹 · 원희 · 원간(幹) · 원우 · 원옹 · 원상 · 원협 · 원순 · 원유 · 원역 · 원회 · 원열
20권 「위조등전(衛操等傳)」
위조 · 막함 · 유고인 · 울고진 · 목숭 · 해근 · 숙손건 · 안동 · 유업연 · 왕건 · 나결 · 누복연 · 염대비 · 해목 · 화발 · 막제 · 하적간 · 이율 · 해권
21권 「연봉등전(燕鳳等傳)」
22권 「장손숭등전(長孫嵩等傳)」
연봉 · 허겸 · 최굉 · 장곤 · 등언해
장손숭 · 장손도생 · 장손비
23권 「우율제전(于栗磾傳)」
24권 「왕진악등전(王鎮惡等傳)」
우율제
최영 · 왕헌 · 봉의
25권 「고필등전(古弼等傳)」
고필 · 장려 · 유결 · 구퇴 · 아청 · 이후 · 을괴 · 주기 · 두대전 · 거이락 · 왕낙아 · 거로두 · 노노원 · 진건 · 내대간 · 숙석 · 만안국
주관 · 울발 · 육진 · 여락발 · 설표자 · 울원 · 모용백요 · 화기노 · 순퇴 · 우문복
26권 「송은등전(宋隱等傳)」
송은 · 허언 · 조옹(刁雍) · 신소선 · 위랑 · 두전
27권 「굴준등전(屈遵等傳)」
굴준 · 장포 · 곡혼 · 공손표 · 장제 · 이선 · 가이 · 두근 · 이흔 · 한연지 · 원식 · 모수지 · 당화 · 구찬 · 역범 · 한수 · 요훤 · 유숭
28권 「육사등전(陸俟等傳)」
29권 「사마휴지등전(司馬休之等傳)」
육사 · 원하 · 유이 · 설제
사마휴지 · 유창 · 소보인 · 소정표
28권 「노현등전(盧玄等傳)」
29권 「고윤등전(高允等傳)」
노현 · 노부
고윤 · 고우 · 고덕정 · 고익 · 고앙
32권 「최감등전(崔鑒等傳)」
33권 「이령등전(李靈等傳)」
최감 · 최변 · 최정
이령 · 이순 · 이효백 · 이예 · 이의심
35권 「왕혜룡등전(王慧龍等傳)」
36권 「설변등전(薛辯等傳)」
왕혜룡 · 정희
설변 · 설치 · 설징
37권 「한무등전(韓茂等傳)」
한무 · 피표자 · 봉칙문 · 여나한 · 공백공 · 전익종 · 맹표 · 해강생 · 양대안 · 최연백 · 요훤 · 이숙인
38권 「배준등전(裴駿等傳)」
39권 「설안도등전(薛安都等傳)」
배준 · 배연준 · 배타 · 배과 · 배관 · 배협 · 배문거 · 배인기
설안도 · 유휴빈 · 방법수 · 필중경 · 양지
40권 「한기린등전(韓麒麟等傳)」
41권 「양파등전(楊播等傳)」
한기린 · 정준 · 이표 · 고도열 · 견침 · 장찬 · 고총
양파 · 양부양소
42권 「왕숙등전(王肅等傳)」
43권 「곽조등전(郭祚等傳)」
44권 「최광등전(崔光等傳)」
왕숙 · 유방(劉芳) · 상상
곽조 · 장이 · 형만 · 이숭
최광 · 최량
45권 「배숙업등전(裴叔業等傳)」
배숙업 · 하후도천 · 이원호 · 석법우 · 왕세필 · 강열지 · 순우탄 · 음중달 · 장당 · 이묘 · 유조 · 부영 · 부수안 · 장열 · 이숙표 · 노시경 · 방량
조세표 · 반영기 · 주원욱
46권 「손소등전(孫紹等傳)」
손소(孫紹) · 장보혜 · 성엄 · 범소 · 유도부 · 녹여 · 장요 · 유도빈 · 동소 · 풍원흥
47권 「원번등전(袁翻等傳)」
48권 「이주영전(爾朱榮傳)」
원번 · 양니 · 가사백 · 조영
이주영
49권 「주서등전(朱瑞等傳)」
주서 · 질열연경 · 곡사춘 · 가현도 · 번자곡 · 후심(2) · 하발승 · 후막진열 · 염현 · 양람 · 뇌소 · 모하 · 을불랑
50권 「신웅등전(辛雄等傳)」
신웅 · 양기 · 고도목 · 기준 · 산위 · 우문충지 · 비목 · 맹위

51·52권 「제종실제왕전(齊宗室諸王傳)」
고침 · 고악 · 고성 · 고영락 · 고현국 · 고사종 · 고언귀 · 고령산 · 고준 · 고엄 · 고유 · 고환(高渙) · 고육 · 북제 · 고식 · 고제 · 고응 · 고윤
고흡 · 고효유 · 고효연 · 고효완 · 고장공 · 고연종 · 고소신 · 고소덕 · 고소의 · 고소인 · 고소렴 · 고백년 · 고량 · 고언리 · 고언덕
고언기 · 고언강 · 고언충 · 고작 · 고엄 · 고곽 · 고정 · 고인영 · 고인광 · 고인기 · 고인옹 · 고인검 · 고인아 · 고인직 · 고인겸 · 고각 · 고선덕
고매덕 · 고질전
53권 「묵기보등전(万俟普等傳)」
묵기보 · 가주혼원 · 유풍 · 파륙한상 · 금조 · 유귀 · 채준 · 한현 · 울장명 · 왕회 · 임상 · 막다루대문 · 사적회락 · 사적성 · 장보락
후막진상 · 설고연 · 곡률강거 · 장경 · 요웅 · 송현 · 왕칙 · 모용소종 · 질열평 · 보대한살 · 설유의 · 모용엄 · 반락 · 팽락 · 포현 · 피경화
기연맹 · 원경안 · 독고영업 · 선우세영 · 부복
54권 「손등등전(孫騰等傳)」
손등 · 고융지 · 사마자여 · 두태 · 울경 · 누소 · 사적간 · 한궤 · 단영 · 곡률금
55권 「손건등전(孫搴等傳)」
손건 · 진원강 · 두필 · 두태 · 울경 · 장찬 · 장량 · 장요 · 왕준 · 왕굉 · 경현준 · 평감 · 당옹 · 백건 · 원문요 · 조언심 · 혁련자열 · 풍자종 · 낭기
56권 「위수등전(魏收等傳)」
위수 · 위장현 · 위계경 · 위난근

57권 「주종실전(周宗室傳)」
우문호 · 우문련 · 우문낙생 · 우문중 · 우문측 · 우문신거
58권 「주실제왕전(周室帝王傳)」
우문진 · 우문직 · 우문초 · 우문검 · 우문순 · 우문성 · 우문달 · 우문통 · 우문형 · 우문강 · 우문현 · 우문정 · 우문실 · 우문찬 · 우문지
우문윤(允) · 우문충 · 우문태(兌) · 우문원 · 우문연(衍) · 우문술(術)
59권 「구락등전(寇洛等傳)」
60권 「이필등전(李弼等傳)」
구락 · 조귀 · 이현 · 양어
이필 · 우문귀 · 후막진숭 · 왕웅
61권 「왕맹등전(王盟等傳)」
왕맹 · 독고신 · 두치 · 하란상 · 질열복귀 · 염경 · 사녕 · 권경산
62권 「왕비등전(王羆等傳)」
63권 「주혜달등전(周惠達等傳)」
64권 「위효관등전(韋孝寬等傳)」
왕비 · 왕사정 · 울지형 · 왕궤
주혜달 · 풍경 · 소작
위효관 · 위진 · 류규
65권 「달해무등전(達奚武等傳)」
강자일 · 약간혜 · 이봉 · 유량 · 왕덕 · 혁련달 · 한과 · 채우 · 상선 · 신위 · 사적창 · 양춘 · 양대 · 전홍
66권 「왕걸등전(王傑等傳)」
왕걸 · 왕용 · 우문규 · 경호 · 고림 · 이화 · 이루목 · 달해식 · 유웅 · 후식 · 이연손 · 위우 · 진흔 · 위현 · 천기 · 이천철 · 양건운 · 부맹 · 양웅 · 석고 · 임과
67권 「최언목등전(崔彥穆等傳)」
68권 「두로녕등전(豆盧寧等傳)」
최언목 · 양찬 · 단영 · 배과 · 당영 · 류민 · 왕사량
두로녕 · 양소(楊紹) · 왕아 ,왕세적한웅 · 하약돈
69권 「신휘등전(申徽等傳)」
신휘 · 육통 · 사적치 · 양천 · 왕경 · 조강 · 조창 · 왕열 · 조문표 · 양대 · 원정 · 양표
70권 「한포등전(韓襃等傳)」
한포 · 조숙 · 장궤 · 이언 · 곽언 · 양흔 · 황보번 · 신경지 · 왕자직 · 두고 · 여사례 · 서초 · 단저 · 맹신 · 종름 · 유번 · 류하

71권 「수종실제왕전(隋宗室諸王傳)」
양정 · 양찬 · 양상 · 양홍 · 양처강 · 양자숭 · 양용 · 양준 · 양수 · 양량 · 양소(楊昭) · 양간 · 양고
72권 「고경등전(高熲等傳)」
고경 · 우홍 · 이덕림
73권 「양사언등전(梁士彥等傳)」
양사언 · 원해 · 우경칙 · 원주 · 달해장유 · 하루자간 · 사만세 · 유방(劉方) · 두언 · 주요 · 독고개 · 걸복혜 · 장위 · 화홍 · 음수 · 양의신
74권 「유방등전(劉昉等傳)」
유방(劉昉) · 유구 · 황보적 · 곽연 · 장형 · 양왕 · 배온 · 원충 · 이웅
75권 「조경등전(趙煚等傳)」
조경 · 조분 · 왕소 · 원암 · 우문필 · 이누겸 · 이원통 · 곽영 · 방황 · 이안 · 양희상 · 장경 · 소효자 · 원수
76권 「단문진등전(段文振等傳)」
단문진 · 내호아 · 번자개 · 주라후 · 주법상 · 위현 · 유권 · 이경 · 설세웅
77권 「장정화등전(張定和等傳)」
배정 · 이악 · 포굉 · 고구 · 영비 · 육지명 · 양비 · 유욱 · 조작 · 두정
78권 「장정화등전(張定和等傳)」
장정화 · 장윤 · 맥철장 · 권무 · 왕인공 · 토만서 · 동순 · 어구라 · 왕변 · 진릉 · 조재
79권 「우문술등전(宇文述等傳)」
우문술 · 왕세충 · 단달

80권 「외척전(外戚傳)」
하눌 · 요황미 · 두초 · 하미 · 여비 · 풍희 · 이혜 · 고조 · 호국진 · 황보집 · 양등 · 을불회 · 조맹 · 호장인 · 여씨
81·82권 「유림전(儒林傳)」
양월 · 노추 · 장위 · 양조 · 평항 · 진기 · 유헌지 · 장오귀 · 유란 · 손혜울 · 서준명 · 동징 · 마자결 · 이흥업 · 양원의 · 풍위 · 장매노 · 유궤사
포계상 · 형치 · 유주 · 마경덕 · 장경인 · 권회 · 장사백 · 장조무 · 곽준 · 심중 · 번심 · 웅안생 · 악손 · 기준 · 조문심 · 신언지 · 하타 · 소해 · 포개 · 방휘원 · 마광 · 유작 · 유현 · 저휘 · 고표 · 노세달 · 장충 · 왕효적
83권 「문원전(文苑傳)」
온자승 · 순제 · 조홍훈 · 이광 · 번손 · 순사손 · 왕포 · 유신 · 안지추 · 우세기 · 유변 · 허선심 · 이문박 · 명극양 · 유진 · 제갈영 · 왕정 · 우작
왕주 · 유자직 · 반휘 · 상덕지 · 윤식 · 유선경 · 조군언 · 공덕소 · 유빈
84권 「효행전(孝行傳)」
장손려 · 손익덕 · 동락생 · 양인 · 염원명 · 오실달 · 왕속생 · 이현달 · 장승 · 창발 · 왕숭 · 곽문공 · 형가 · 진족 · 영선 · 황보하 · 장원
왕반 · 양경 · 전익 · 유인 · 유사준 · 적보림 · 화추 · 서효숙
85권 「절의전(節義傳)」
우십문 · 단진 · 석문덕 · 급고 · 왕현위 · 누제 · 유갈후 · 주장생 · 마팔룡 · 문문애 · 조청 · 유후인 · 석조흥 · 소홍철 · 왕영세 · 호소호
손도등 · 이궤 · 장안조 · 왕려 · 곽염 · 지용초 · 을속고불보 · 이상 · 두숙비 · 이악 · 유원 · 장수타 · 양선회 · 노초 · 유자익 · 요군소
진효의 · 두송지 · 곽세준 · 낭방귀
86권 「순리전(循吏傳)」
장응 · 노옹 · 염경윤 · 명량 · 두찬 · 두원 · 소숙 · 장화업 · 맹업 · 소경 · 노거병 · 양언광 · 번숙략 · 공손경무 · 신공의 · 유검 · 곽현 · 경숙
유광 · 왕가 · 위덕심
87권 「혹리전(酷吏傳)」
우락후 · 호니 · 이홍지 · 장사제 · 조패 · 최섬 · 저진 · 전식 · 연영 · 원홍사 · 왕문동
88권 「은일전(隐逸傳)」
휴과 · 풍량 · 정수 · 최곽 · 서칙 · 장문후
89·90권 「예술전(藝術傳)」
조숭 · 장심(1) · 은소 · 왕조 · 경현 · 유영조 · 이순흥 · 단특사 · 안악두 · 왕춘 · 신도방 · 송경업 · 허준 · 유준세 · 조보화 · 황보옥 · 해법선 · 허준 · 위녕 · 기모회문 · 장자신 · 육법화 · 장승 · 강련 · 유계재 · 노태익 · 경순 · 내화 · 소길 · 양백추 · 임효공 · 유우 · 장주현 · 주담 · 이수 · 서건 · 왕현 · 마사명 · 요승원 · 저해 · 허지장 · 만보상 · 장소유 · 하조
91권 「열녀전(列女傳)」
난릉공주 · 남양공주 · 초국부인
92권 「은행전(恩倖傳)」
왕예 · 왕중흥 · 조수 · 여호 · 조옹(趙邕) · 후강 · 구락제 · 왕거 · 조묵 · 손소(孫小) · 장종지 · 극붕 · 장우 · 포억 · 왕우 · 부승조 · 왕질 · 이견 · 유등 · 가찬 · 양범 · 성궤 · 왕온 · 맹란 · 평계 · 봉진 · 유사일 · 곽수 · 화사개 · 안토근 · 목제파 · 고아나굉
93권 「참위부용전(僭偽附庸傳)」
혁련발발 · 모용외 · 요장 · 풍발 · 걸복국인 · 저거몽손 · 소찰
94권 「고려등전(高麗等傳)」
고려 · 백제 · 신라 · 물길 · 해족 · 거란 · 실위 · 두막루 · 지두우 · 오락후 · 류구 · 왜국
95권 「만등전(蠻等傳)」
만족(蠻) · 요족(獠) · 임읍 · 적토 · 진랍 · 파리
96권 「저등전(氐等傳)」
저족 · 토욕혼 · 탕창 · 등지국 · 당항 · 부국 · 계호국
97권 「서역전(西域傳)」
선선 · 포산국 · 실거반 · 권우마국 · 차사국 · 우전국 · 고창 · 차미 · 언기 · 구차 · 고묵국 · 온숙국 · 울두국 · 오손국 · 소륵국 · 열반국 · 토호라
소월씨 · 아구강국 · 속특국 · 파사국 · 복로니국 · 색지현 · 가색니국 · 고창 · 차미
98권 「연연등전(蠕蠕等傳)」
연연 · 우문막괴 · 단질육권 · 고차
99권 「돌궐등전(突厥等傳)」
돌궐 · 철륵
100권 「자서전(自序傳)」
이연수
(1) 본명이 장연(張淵)으로 당고조 이연(李淵)을 피휘하여 심(深)으로 개칭되었다.
(2) 본명이 후연(侯淵)으로 당고조 이연(李淵)을 피휘하여 심(深)으로 개칭되었다.



북위의 권신
高肇 | 고조

본관
횡성 고씨
이름
조(肇)
관직
상서우복야(尙書右僕射) 겸 영이부 겸 기주대중정(冀州大中正)
영주자사(추증)
사지절 시중 중외제군사 태사 태승상 태위공 녹상서사 기주자사(추증)
가족
고고(高顧, 5대조)
고양(아버지), 고승신(동생), 문소황후 고씨(여동생)
생몰년도
? ~ 515년
출신
고구려
국적
북위

1. 소개
2. 생애
2.1. 제7대 고조 효문제 시기
2.2. 제8대 세종 선무제의 즉위
2.3. 고조, 실세로 떠오르다
2.4. 종친들과 대립하다
2.5. 절정
2.6. 몰락의 징조
2.7. 권신 고조의 종말
3. 사후



1. 소개[편집]


高肇
(? ~ 515년)

중국 남북조시대 북위(北魏)의 권신.

자는 수문(首文)이었다. 고구려 출신 귀화인으로 시작하여 북중국의 강대국인 북위의 최고 권력자까지 올라선 입지전적인 인물이었다. 서진 영가 연간(307~312)의 대란을 피하여 고구려로 들어간 발해현 출신 고고(高顧)의 5대손이었다.


2. 생애[편집]



2.1. 제7대 고조 효문제 시기[편집]


어릴 땐 고구려에서 살았으나, 북위 효문제 치세 초기인 473년경 고조의 아버지인 고양(高颺)이 동생 고승신(高乘信) 및 한내(韓內), 기부(冀富) 등과 함께 일가를 이끌고 고구려를 떠나 북위에 입국하여 여위장군(厲威將軍)에 제수되었다. 효문제는 고양의 딸이자 고조의 누이동생이었던 고조용(高照容)을 후궁으로 맞았는데 그녀가 바로 훗날 세종 선무제(제8대)가 되는 원각의 모후였던, 문소황후 고씨였다.

효문제 시기의 북위는 남쪽으로 남제, 북쪽으로는 유연과 대립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동쪽의 고구려는 북위에게 가장 중요한 상대국이었다. 북위가 고구려 출신의 여성을 후궁으로 들인 것은 바로 고구려를 우대할 필요성이 있었기 때문으로 추측된다.

한편 효문제는 붕어하기 직전 어린 아들인 원각이 걱정되어 6명의 권력 핵심자에게 아들을 부탁했다. 이른바 6보(六輔)였다.

그들의 면면은 다음과 같았다.

  • 1. 시중 겸 호군장군 북해왕 원상(고조 효문제의 이복동생) - 사공으로 임명됨.
  • 2. 진남장군 왕숙 - 상서령으로 임명됨.
  • 3. 진남대장군 광양왕 원가( 고조 효문제의 이복동생) - 좌복야로 임명됨.
  • 4. 상서 송변 - 이부상서
  • 5. 시중 겸 태위 함양왕 원희( 고조 효문제의 이복동생)
  • 6. 상서우복야 원징( 고조 효문제의 이복동생)

6명 중 4명이 효문제의 이복동생이라는 것을 볼 때 그만큼 효문제는 자신의 이복동생들을 신임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실제로 효문제는 원희와 또다른 이복동생인 팽성왕 원협에게

"내 자손들이 제위를 지키지 못할 것 같으면 너희들이 황제가 되어 다른 성씨가 제위를 찬탈하는 것을 막아라."

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


2.2. 제8대 세종 선무제의 즉위[편집]


499년 효문제의 죽음과 동시에 황태자 원각이 17세의 나이로 제위에 오르니 그가 바로 제8대 세종 선무제였다.

선무제가 즉위한 지 2개월 후 고조는 평원공에 책봉되었다. 이는 고조가 처음으로 북위의 정치사에 그 이름을 내밀게 된 순간이었다.

당시 선무제의 나이가 어리다 보니 자연스럽게 탁고대신인 6보가 권력을 행사하게 되었는데 특히 함양왕 원희와 팽성왕 원협이 실질적으로 북위를 위임통치했다. 그 중에서도 원희의 전횡이 가장 심했다.

북위에서는 함양왕 원희를 상상(上相)으로 삼았다. 원희는 노복(늙은 종)을 시켜 우림과 호분[1]

을 요구하고 들고 날 때 의장대를 데리고 다녔다. - 《위서》 501년 정월 을사일 기사

그야말로 재상들 중에서도 가장 높은 재상이었으며, 황제 이상 가는 권세를 휘둘렀던 것이다. 이때 영군장군[2] 우열(于烈)이 원희의 전횡에 맞섰고, 이에 원희는 우열을 항주자사로 삼아 변경으로 보내려고 했다. 하지만 우열은 병을 핑계로 나가지 않았고 아들인 좌중랑장(左中郞將) 우충(于忠)을 통해 선무제에게 비밀리에 원희의 전횡을 고했다. 또다른 실세인 북해왕 원상 역시 원희의 허물과 악행을 말했으며, 사람들의 인망을 얻고 있었던 원협 역시 여기에 동조하자 결국 선무제는 친정을 선언했다.

선무제가 우열을 영군으로 삼은 뒤 거기대장군(車騎大將軍)을 더해주고, 우열의 세력을 강화시킴으로서 원희를 견제하기 시작하자 원희는 차츰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2.3. 고조, 실세로 떠오르다[편집]


선무제는 친정을 시작함에 따라 원희를 태보로 올리고 원상을 대장군 녹상서사로 삼았다. 겉으로는 황족들의 관직을 올려준 것 같았지만 실제로는 원희의 실권을 빼앗아 더 이상의 월권 행위를 하지 못하도록 막은 것이었다.

뒤이어 선무제 좌우의 사람들이 원희를 주살해야 한다고 말하자 궁지에 몰린 원희는 반란을 꾀했다. 501년 5월 19일 원희는 선무제가 북망산으로 사냥을 나가는 틈을 타 선무제를 습격하려고 모의했으나 누설되었고, 이에 선무제의 측근이었던 우열은 신속하게 원희를 체포한 뒤 선무제 앞으로 압송시켰다. 선무제는 원희에게 자결 명령을 내렸고, 결국 당대 최강의 권신이었던 원희는 주살되었다.

이후 우열은 선무제의 최측근이 되었고, 그의 조카는 선무제의 첫 번째 황후가 되었다.

한편 선무제가 6보를 내치고 원희를 주살하고 나자 고조는 선무제의 신임을 얻음과 동시에 조정의 실세로 급부상했다. 몰수된 원희의 집과 재산들은 모두 고(高)씨의 차지가 되었으며 고조는 상서우복야(尙書右僕射) 겸 영이부 겸 기주대중정(冀州大中正) 에 임명된 뒤 선무제의 고모인 고평공주 원씨와 혼인하고 거기대장군(車騎大將軍)을 거친 뒤, 다시 상서령(尙書令)으로 옮겨졌다. 상서우복야와 상서령은 모두 황제에게 올라오는 문서를 관리하는 '상서대'에 소속되어 있었던 직위들로 요직 중의 요직이었다.

고조는 오랑캐 땅 출신이라서 당시 명망이 가벼웠는데, 요직에 있으면서 업무를 처리하는 데 마음을 두어 부지런히 힘쓰면서 게을리하지 않았다. 이에 세상 사람들이 모두들 능력이 있다고 칭찬했다.- 《위(魏)서》 <고조 열전> -


고조가 북위 조정의 실세가 된 것은 그가 황실의 외척이 된 것이 가장 큰 이유였지만 그의 유능함 역시 그에 버금가는 요소로 작용했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때부터 고조는 본격적으로 북위의 종친인 원씨들과 대립 구도를 형성했다.


2.4. 종친들과 대립하다[편집]


첫 번째 상대는 북해왕 원상이었다. 당시 대장군 녹상서사의 위치에 있었던 원상은 교만하고 사치스러우며 불법으로 백성들의 토지를 빼앗아 큰 집을 지었기 때문에 원성이 높았다. 원상은 관군장군 여호와 친밀한 관계를 유지했는데 여호는 고조의 사촌여동생 고씨의 남편으로 고조와 사돈관계였다. 고조는 애초에 선무제가 자신을 보필하게 할 목적으로 발탁했던 인물이었지만 고구려 출신이라 북위 조정에 연고가 적었다. 때문에 여호와 사돈관계를 맺는 것을 시작으로 차근차근 세력을 부풀려가 어느덧 조정의 주요 인사가 된 것이었다.

그러나 고조는 궁극적으로는 여호 역시 제거하려 했기에 선무제에게 여호와 북해왕 원상이 모반을 꾀하고 있다고 참소했다. 안 그래도 원상의 전횡에 실망했던 선무제는 최량으로 하여금 원상을 탄핵하는 상소를 올리게 하고, 고조로 하여금 원상을 체포케했다. 원상이 체포되는 과정에서 그를 빼돌리려던 노복 몇명이 처형되자 원상은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좌절하여 울다가 얼마 못가 세상을 떠났다. 원상이 몰락하자 고조의 세력은 크게 확대되었다.

원상이 죽고 얼마 후, 고조는 선무제에게 우림과 호분을 인솔하여 여러 친왕들의 저택을 지키자고 상소했는데, 이것은 북위 종친들을 감시하며 유폐시키자는 의도였다. 그 소식을 들은 팽성왕 원협이 강하게 반대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후 508년 우열의 조카인 황후 우씨가 세상을 떠나자 선무제는 고조의 조카인 귀빈 고씨를 새 황후로 삼으니 그녀가 선무황후 고씨였다. 선무제는 고조를 더욱 신임했고 고조의 위세는 점점 더 높아졌다. 선무제의 신임과 상서령(尙書令)이라는 요직, 그를 따르는 막강한 세력을 갖춘 고조는 북위의 최강 실세가 되어 조정의 개혁을 단행했다.

바로 종친들의 권한을 축소하는 일이었다. 봉록과 녹질을 감소시키고 훈인들을 내쫓는 개혁이 진행되었으며, 이러한 개혁 조치들은 황족들의 강한 반발을 불러왔다. 탁지상서 원광은 고조를 진나라 시대의 환관 조고에 비유하며 비난했다. 하지만 원광의 뜻은 받아들여지지 않고 오히려 좌천되었다. 보다못한 팽성왕 원협이 고조를 비판하는 상소를 올렸으나 이마저도 무시되었다. 고조는 역으로 원협을 비판하는 상소를 올렸다. 하지만 선무제는 이 또한 받아들이지 않았다. 원협의 인망이 높았던 때문도 있었겠지만 선무제가 나름대로 종친과 외척 간의 균형을 맞추려고 노력했다고 해석할 수도 있다.


2.5. 절정[편집]


계속된 황족들의 수난과 고조의 정권 장악에 불만을 품은 경조왕 원유는 508년 7월 12일, 반란을 일으켰는데 이것이 원협의 몰락을 불러왔다. 원유가 끌어들인 이들 중 반승고라는 인물이 있었는데 그는 원협의 첩인 반씨의 아버지였다. 사실 반승고는 원유의 협박때문에 어쩔 수 없이 원유와 연락을 취하고 있었던 터지만 이 사실이 고조의 귀에 들어갔고, 고조는 이 기회를 이용하여 팽성왕 원협을 완전히 몰아내기로 마음먹었다.

고조는 측근인 위언, 고조진 등과 함께 원협이 반승고를 통해 반란을 일으킨 경조왕 원유와 내통하고 있다고 참소했다. 선무제는 처음에는 믿지 않았지만 반승고가 원유와 연락한 것이 사실로 드러나자 고조의 말을 믿게 되었다.

508년 9월 18일 선무제는 연회를 베푼다며 원협에게 입궐을 명령했고 원협은 처음에는 부인의 출산이 임박했기에 가지 않으려 했으나 선무제가 다시 입궐을 권하자 어쩔 수 없이 입궐하려 동액문으로 향했다. 이때 좌위장군 원진이 독이 든 술을 가지고 원협의 앞길을 가로막은 뒤 원협을 독살시켰다. 고조의 무사들은 원협의 시신을 이불로 싸서 수레에 실어 보냈고, 이에 이비(李妃)는 소리내 울면서 큰소리로 말했다.

“고조(高肇)가 이치를 구부려서 사람을 죽였으니, 하늘의 도리에 신령함이 있다면 네가 어찌 좋게 죽을 수 있겠느냐?”

한편 경조왕 원유가 일으킨 반란은 2개월만에 고조의 아들인 고식과 상서 이평에 의해 진압되었고, 508년 9월 23일, 낙양으로 압송되던 원유가 고조에 의해 암살당함으로서 끝났다.. 아래 기록에서 보이듯 이미 원협을 주살하기 이전에도 북위 제일의 권력자였던 고조는 더 이상 거리낄 것이 없었다. 이제 북위에서 고조 이상가는 세력이나 권력가는 존재하지 않았다.

508년 가을 7월 갑오일(13일)에 위에서는 고귀빈(高貴賓)을 세워서 황후로 삼았다. 상서령 고조(高肇)는 더욱 귀하게 되고 중용되어 용사(세도를 부림)하게 되었다. 이렇게 되니 여러 신하들과 종실(황족, 친왕)에서는 모두 몸을 낮추어 그의 밑에 있었다. - 508년 가을 7월 갑오일(13일) 기사 -


2.6. 몰락의 징조[편집]


고명대신이었으며 권력을 멀리했고 안팎으로 인망이 높았던 원협의 죽음은 결과적으로 고조의 권세에 역효과를 불러왔다. 안 그래도 황족들로부터 경계심을 불러일으키던 고조는 인망까지 잃기 시작했다. 그러나 철옹성 같은 그의 권세에 그것은 아직 작은 흠집 정도일 뿐이었다.

512년 고조는 사도가 되어 조정의 요직에서 물러났다. 사도는 비록 명예상 최고의 관직들인 3공 중 하나이긴 했지만 고조가 이전에 역임하고 있었던 모든 관료들의 인사권을 장악한 직위인 상서령에 비하면 실권은 현저하게 떨어지는 자리였다. 고조도 그걸 알고 있었다는 것을 다음과 같은 기록을 통해 알 수 있다.

연창(延昌) 초(512년)에 사도(司徒)로 옮겨졌는데, 비록 태정(台鼎)의 귀한 자리에 올랐으나, 요직에서 떠났다는 이유로 불만스러운 기색을 말투와 얼굴빛에 드러냈다. 그러자 사람들이 모두들 침을 뱉으면서 비웃었다. - 《위서》 <고조 열전>


다만 선무제가 이때부터 고조를 멀리했다고 판단할 수는 없는 것이 후술하겠지만 514년의 익주 정벌에서 150,000명에 가까운 대군을 고조에게 맡긴 것을 보면 그에 대한 선무제의 신임은 떨어지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다만 비록 천하의 세력가인 고조라고는 해도 황족들과 공신들로부터 적대 관계를 형성하고 있는 그였기에, 지속적인 황족, 공신들의 견제를 못 배긴 그를 선무제가 일단 요직에서 한 발짝 물러나게 한 것이 아닌가 추측된다.

어찌 되었건 아직까지 고조는 분명히 북위 최강의 권신이었으며, 세력가였기에 종친들과 공신들은 섣불리 그에게 대항하지 못했다.

그런데 이 무렵 선무황후 고씨와의 사이에서 아들을 보지 못한 선무제는 후궁 호씨(훗날의 영태후)에게서 낳은 아들인 원후를 태자로 책봉했다. 원래대로라면 북위의 풍습인 자귀모사[3]에 의해 후궁 호씨는 죽었어야 했지만 무엇 때문인지 선무제는 호씨를 살려주었다.

이것이 고조가 실각하는 데 결정적인 원인으로 작용했다. 관습대로 후궁 호씨가 죽었다면 원후가 제위에 오른다고 해도 권력은 선무황후 고씨가 장악할 수 있었기에 고조 역시 권세를 그대로 유지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후궁 호씨가 살아남으면서 뒷날 원후가 제위에 오르자 후술한 대로 그녀가 황태후가 되어 권력을 장악하게 됨으로서 선무황후 고씨와 고조는 정계에서 축출되었다.


2.7. 권신 고조의 종말[편집]


514년 11월 선무제는 고조를 평촉대도독으로 삼아 보병과 기병 150,000명을 주어 익주를 정벌하게 했다. 고조는 익주자사 부수안으로 하여금 파군을 공격하게 했고 양주자사 양지에게는 유성을, 안서장군 해강생에게는 면죽관을, 무군장군 견침은 검각을 치도록 했다. 익주 정벌이 한창일 무렵인 515년 정월, 선무제는 갑작스럽게 병석에 눕고 말았는데 3일 만에 급사했다.

시중 겸 태자소부 최광, 영군장군 우충(우열의 아들)을 비롯한 여러 대신은 동궁에서 태자 원후를 모셔와 당시 황후인 선무황후 고씨에게 고한 후 제위에 앉히니 이가 바로 제9대 숙종 효명제였다. 선무황후 고씨는 관습대로 직접 자신이 후궁 호씨를 죽이려 했으나 최광 등이 선무제의 명을 받들기 위해 이를 막았다. 이로 인해 황후 고씨와 후궁 호씨 간의 갈등은 깊어졌다.

한편 고조는 선무제의 붕어 소식을 듣자 익주 공략을 멈추고 철수했다. 그를 이전부터 못마땅하게 여겨오던 북위의 종친들과 일부 신하들은 이를 기회로 고조를 실각시킬 계획을 세웠다. 515년 2월 7일 운명의 날, 수도 낙양에 돌아온 고조는 입궐하라는 조서를 받고 곧장 선무제의 관이 있는 태극전으로 향한 뒤, 선무제의 관을 보고 통곡하며 애도를 표했다. 애도 의식을 끝마친 뒤 태극전을 나온 그는 결국 고양왕 원옹과 우충 등이 미리 매복시켜놓은 군사들에 의해 교살당했다.

곧이어 조서를 내려 고조의 죄악을 폭로했으나 죄명은 언급하지 않고 자살(자진)했다고만 말하는 한편, 나머지 친척과 한패거리에게는 더 이상 죄를 묻지 않고 그의 관직과 작위를 삭탈하여 선비로서의 예로써 장사지내도록 했다.


3. 사후[편집]


그 뒤 영태후(후궁 호씨)가 조정에 임어하여 특별히 영주자사를 추증했다.

영희 2년(533)에 이르러 당시 북위의 제14대 황제인 효무제 원수가

사지절, 시중, 중외제군사, 태사, 태승상, 태위공, 녹상서사, 기주자사

를 추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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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황제 직속의 경호와 의전을 담당하는 근위군[2] 황제의 경호를 책임[3] 황태자의 어미는 죽임을 당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