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란 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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هضبة الجولان
רמת הגולן
Golan Heights

1. 개요
2. 역사
3. 중요성
4. 국제 사회의 입장
4.1. 유엔의 입장
4.2. 시리아에 우호적인 입장
4.3. 이스라엘에 우호적인 입장
5. 이스라엘 법학계의 법학견해
6. 여담


1. 개요[편집]


중동의 시리아이스라엘국경 지대에 위치한 고원. 대한민국의 제주도와 매우 비슷한, 1,800 km²의 넓이를 자랑하는 이다. 서부 방면에서 이스라엘이 1,200 km²만큼의 대지를 통치하고, 중부 방면에서 유엔 평화유지군이 235km²만큼의 대지를 통치하며, 동부 방면에서 시리아가 365km²만큼의 대지를 통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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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실효지배 지역과 시리아 실효지배 지역 사이에 회색으로 표시된 지역은 UN 교전중지감시부대(Disengagement Observation Force) 주둔하는 비무장지대(넓이 235km²)로서 시리아가 다스리는 지역인데, 실제로는 사람들이 그렇게 많이 사는 동네가 아니다. 제4차 중동전쟁 직후에 파괴되어 폐허로 변한 쿠네이트라[1] 시(市)가 여기에 있는데, 쿠네이트라는 원래 시리아의 도시였다. 위의 지도에서 점선으로 표시한 쿠네이트라 시가지의 서쪽은 이스라엘과 시리아의 무력 충돌을 예방하기 위해서 유엔 평화유지군의 영역이 되었다.

국제법상 이스라엘시리아의 영유권이 모두 인정되지 않는 영토 분쟁 지역이다. 영국령 팔레스타인프랑스령 시리아의 국경은 1920년대에 영국과 프랑스의 국경협정에 따라 서부 방면의 영국령 20%와 동부 방면의 프랑스령 80%로 분할하여 설정했고, 1920년대의 국경협정은 1947년 이전에 영국이 나서서 국제법으로 재승인했다. 1946년에 프랑스령 시리아를 대체한 시리아 정부는 동쪽 방면의 프랑스령 80%를 인수했으며, 1948년에 이르러 제1차 중동전쟁이 발발하자, 이슈브(영국령 팔레스타인유대교도 자치정부)가 이제 막 인수한 서부 방면의 영국령 20%를 침략하여 점령했다. 이리하여 약 20년간 시리아가 실효 지배하였으나, 1967년 제3차 중동전쟁에서 이스라엘이 골란 고원의 80%를 점령하여 현재까지 실효지배 중이다. 1949년~1967년에는 시리아 아랍 공화국의 쿠네이트라 주의 쿠네이트라 지구 및 피크 지구에 속하였고, 1970년대 이후에는 이스라엘국의 북부 관구()의 라맛하골란 군()에 속한다.

이스라엘과 시리아의 협상은 미국튀르키예의 중재를 바탕으로 199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매우 어렵게 진행했지만, 하페즈 알아사드바샤르 알아사드가 무성의한 태도로 일관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결렬되었고, 그 뒤에는 러시아요르단의 중재를 바탕으로 양국간의 인질교환 협상만 이뤄지고 있을 뿐이다. 시리아는 '가장 먼저 골란 고원을 무조건 반환하라! 그 다음에 양국간의 화평협상을 고려할 생각이 있다!'라고 주장하지만, 자국의 안전보장을 요구하는 이스라엘은 '당신네 말대로 그리 하면 뒤통수를 칠 게 뻔한데 우리가 왜 해 줘야 하느냐? 그리고 1920년대의 국경협정을 위반하고 선제공격한 주제에 우리에게 큰소리칠 자격이 있느냐?'라고 반박하면서 완강하게 거부하고 있다.[2] 그래서 유엔 총회를 구성하는 대부분의 나라들이 골란 고원에 대하여 양국의 영유권 주장을 인정하지 않고 있는데, 친이스라엘 우방국들이 많은 북아메리카서유럽에서는 시리아의 영유권을 거부하는 반면에, 친팔레스타인 우방국들이 많은 남아메리카서아시아에서는 이스라엘의 영유권을 거부하는 식이다. 다만 유엔 총회는 종종 시리아의 골란(Syrian Golan)이라는 표현을 쓴다.

한국은 시리아와 수교할 가능성을 고려하여 형식적으로 여행금지구역에 넣었지만, 실제로는 이스라엘 본토를 통해서 골란 고원을 자유롭게 방문할 수가 있다.[3] 그러나 이곳은 반이스라엘 적대국들에 매우 가까운 최전선이라 여전히 분쟁지대이다. 특히 이스라엘과 시리아의 휴전선을 대체한 비무장지대가 매우 위험한데, 시리아군헤즈볼라 등이 이스라엘령 골란 고원에 종종 폭격을 가한다. 이스라엘 역시 시리아령 골란 고원이나 다마스쿠스, 레바논 국경 지대 및 헤즈볼라 거점에 종종 폭격을 가한다.# # 하지만 시리아 내전 발발 후 국내 뉴스에서는 종종 묻히는 편이다.#

2. 역사[편집]


로마 제국 시절에는 마사다와 함께 유대인 독립운동의 거점으로서 유명한 감라가 골란 고원의 치소(治所)였으며, 예루살렘 왕국 시절부터 골란 고원은 이슬람 연합군의 침공을 방어하는 매우 중요한 요충지였다. 오스만 제국제1차 세계 대전에서 패전하고 1922년 해체되면서, 국제 연맹은 오스만 제국이 다스리던 가나안의 통치권을 영국에 위임했다. 당시의 골란 고원도 영국령 팔레스타인의 일부로 취급되었지만, 이듬해 폴레-뉴컴 협정에 따라 골란 고원의 대지 가운데 80%가 프랑스령 시리아의 일부가 되었고, 나머지 20%가 영국령 팔레스타인에 귀속되었다.

1946년에 분리독립한 시리아는 영국령 팔레스타인프랑스령 시리아의 국경을 변경해 갈릴리 호수를 절반씩 갈라먹자고 제의했지만, 영국 정부와 이슈브(영국령 팔레스타인의 유대교도 자치정부)는 즉각 거부했다. 제1차 중동전쟁을 맞이하면서 시리아가 갈릴리 호수의 동쪽 지역을 빼앗은 덕택에 이스라엘과 시리아의 사이에서 갈릴리 호수와 골란 고원에 대하여 영토 분쟁이 일어났으며, 시리아가 다스리는 골란 고원은 군정(軍政) 지역으로 전환했다.

1967년의 제3차 중동전쟁에서 이스라엘 방위군시리아군을 격파하고 갈릴리 호수와 골란 고원을 장악했는데, 이스라엘 간첩으로서 신분을 속이고 시리아 국방차관까지 오른 엘리 코헨이 골란 고원의 점령 작전에 매우 큰 기여를 했다.# 1973년 제4차 중동전쟁 당시 시리아군이 골란 고원으로 다시 침공하여 헤르몬 산을 점령했으나 전황이 역전되어 다마스쿠스 근처까지 밀려났다. 1981년에 이스라엘 국회가 골란 고원을 합병하는 특별법을 입법하여 이스라엘령 골란 고원을 민정(民政) 지역으로 전환했다. 유엔은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안 497호를 통해 이를 무효 (void)라고 선언하였다. 1999-2000년 무렵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이 양국의 평화 협상을 중재, 에후드 바락 이스라엘 총리가 골란고원 대부분을 반환하겠다고도 제안했으나 이로써 2001년 총선에서 패배하며 무산되었다.

2018년 10월 30일에 골란 고원을 포함하여 이스라엘 본토의 도시와 시골에서 기초자치단체지방의회의원을 선출하는 지방선거를 실행하고, 2019년 3월 25일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미국 연방정부를 대표하여 골란 고원을 다스리는 이스라엘 국가의 영유권을 정식으로 승인한 미국-이스라엘 공동성명을 발표하자, 이스라엘 국회의사당의 남녀노소 국회의원들은 민족의 차이(유대인드루즈인베두인체르케스인)을 초월하여 절대 다수가 쌍수를 들고 열렬하게 환영하면서 트럼프의 위대한(?) 결단을 칭송했다.

6월에 도널드 트럼프의 결단을 기념하는 유대인 정착촌을 완공했다. 북아프리카서아시아이슬람교도 아랍어권 나라들을 대표하는 아랍 연맹의 회원국들은 아사드 가문의 시리아를 지지하면서 2019년 3월 25일의 미국-이스라엘 공동성명을 거부했다.

3. 중요성[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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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9년 아이유브 왕조가 6차 십자군에 맞서기 위해 축성한 수베이아 성.[4]

골란 고원은 갈릴리 호 북쪽에서 가파른 경사를 이루며 올라가 주변 지역을 대부분 감제할 수 있는 군사적 요충지로 이곳을 점령하는 쪽이 군사적으로 갈릴리 지역의 통제권을 확보할 수 있다. 좀 더 북쪽에 위치한 헤르몬 산도 중요하다. 특히 이 점은 이스라엘 측에게 더 강력하게 작용하는데 제3차 중동전쟁 이전까지는 골란 고원 서부의 깎아지른 절벽에 구축된 시리아군의 영구진지에 손도 못 대고 피해만 신나게 입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골란 고원이 돌파되면 그 후에는 그냥 이스라엘의 심장부가 회쳐지는 순서만 남게 된다.

반면 골란 고원을 이스라엘이 잡고 있을 경우엔 역으로 시리아의 요충지를 단박에 접수할 수 있다. 실제로 제4차 중동전쟁 당시 시리아군의 공격을 막아내고 공세로 전환하면서 다마스쿠스로 가는 진격로를 확보하고 다마스쿠스에 장거리 포격까지 가했지만 진격 개시 전에 협상을 통해 종전되기도 했다.

군사적인 문제 외에 황무지나 다름없는 유대 지역에 비해서 비옥하고 녹음이 있는 갈릴리 지역 중에서도 특히 풍광이 수려하고 인간의 생활에 유리한 지형이 자리잡았다는 이점도 있다. 중동 지역치고는 수자원이 풍부해서 폭포가 있는 등 지뢰와 군사적 충돌지대라는 위험성만 제외하면 관광지가 될 만한 곳이 많다. 또한 척박한 가나안 지방의 젖줄인 요단강의 발원지 역시 이곳이며, 이스라엘 수자원청이[5] 전국민에게 공급하는 음료수(먹는물)의 1/3이 골란 고원에서 온다. 그래서 이스라엘인 10만 정도와 시리아인 2만(마지달 샴스 지역)이 같이 살고 있다. 이스라엘의 척박한 토지 상황보다 훨씬 비옥해서 10만이나 몰려든 것이라고. 하지만 막상 시리아에게 반환할 생각을 가지더라도 10만이나 되는 현지 거주민 문제가 골칫덩어리. 여기 거주 시리아인은 시리아 국적이 인정되어 국경선에서 이스라엘 육군이 보는 조건으로 친척끼리 만나는 자리(상봉)를 가지기도 한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시나이 반도를 이집트에게 반환하고 요르단강 서안지구는 반쪽이나마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에게 통치권을 인도했음에도 골란 고원만큼은 이스라엘이 아예 자국 영토로 병합하면서 기필코 영유하려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예루살렘 다음으로 이스라엘이 중요하게 여기는 땅이라 볼 수 있겠다. 시나이 반도의 경우 골란 고원에 비하면 단순한 완충지이고 이집트와의 수교를 고려해 이집트에게 반환하였다. 소규모지만 석유가 산출되고 전략적으로 역시 만만치 않게 중요한 수에즈 운하로 통하는 접근로라는 의미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위의 이유들과 영토 관리 문제 등이 겹쳐 이집트에게 냉큼 돌려준 것이었다. 하지만 골란 고원은 아직도 이스라엘이 단단히 거머쥐고 있다. 무엇보다 갈릴리 호수 바로 인접지역이라 이스라엘 수자원의 상당 부분을 직접 통제할 수도 있다. 이스라엘의 수자원은 갈릴리 호수와 요르단 강에 의존하는 바가 크기 때문에 국제 하천인 요르단강에 을 건설하는 문제만으로도 요르단이 반발하면서 하마터면 전쟁이 일어날 뻔한 적이 있었다.

결론적으로 골란 고원을 다스리는 나라가 인접한 다른 나라에 비해 압도적으로 유리해지는지라 지금까지 평화적인 해결책이 나오지 않는 것이다. 이스라엘의 관점에서는 매우 아까운 지역이니 그냥 눌러앉은 것이다. 또한 아사드 가문이 매우 잔혹한 독재를 펼치고 있는 시리아 정권이 북한과 동급으로 불량국가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것도 한몫한다.

헌데 2010년대 이라크 레반트 이슬람 국가의 난립과 시리아 내전 여파로 시리아 난민이 우르르 몰려들어 시리아인들 거주자가 15만을 훌쩍 넘겨버렸다. 이스라엘로서는 골치아프지만 막을 수도 없는 노릇. 하레디들은 막아야 한다고 징징거리지만 그럴 수도 없는 상황이다. 행여나 막다간 이스라엘도 더 욕먹을 게 뻔한데다 안 그래도 악만 남은 시리아 난민들이 순순히 당할리도 없고 죽어라 덤벼들게 뻔하기 때문이다. 애초부터 골란고원이 이스라엘 땅인것도 아니니 말이다. 그렇게 되어 무력충돌이 벌어지면 팔랑헤 학살(바시르와 왈츠를에서 나온 실제 학살사건) 저리 가라할 수준의 대형 참극이 벌어질 가능성이 크다. 결국 이스라엘 측에선 골란 고원에 한해서 일단 놔두고 있다. 그러다보니 지금도 골란 고원에 무더기로 난민들이 온다. 철조망도 난민들이 죄다 부숴버렸을 정도이다. 이 당시 몇만이 넘는 시리아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와서 철조망을 부수고 진입했기에 이스라엘군도 당황하며 물러났다. 결국 실상은 이스라엘이 지배 중인 영토지만 시리아 사람들이 몰려오면서 시리아 사람들이 다시 많이 거주하는 현상이 되었다.

골란 고원의 북쪽에 있는 셰바 농지는 레바논 국경에 인접한 땅이다. 시리아와 이스라엘이 강탈했다고 주장하면서 영유권을 외치는 레바논 정치인들의 주장에 대하여 이스라엘은 물론이고 시리아조차 무시하고 있으며, 근처에서 농사짓는 마을 사람들은 레바논과 시리아를 모두 버리고 이스라엘 국민이 되는 쪽으로 하루아침에 변심했다.

4. 국제 사회의 입장[편집]


아래는 골란고원 영유권에 대한 각 국가 및 국제기구의 입장. 시리아에 우호적인 입장은 대부분 2019년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골란 고원 이스라엘령 인정 서명 후 나온 서방국들의 반응들이다.

4.1. 유엔의 입장[편집]


  •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1981년 이스라엘이 골란고원을 합병하였을때 이를 두고 "국제법적 효력이 없는 무효(null and void and without international legal effect)"라는 내용의 결의안 497호를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United Nations Security Council Resolution 497)결의안 원문(영어)
  • 유엔 총회는 1999년부터 주기적으로 “The occupied Syrian Golan”라는 결의안을 통과시키고 있는데, 이 결의안의 내용은 골란고원에서 이스라엘이 행한 모든 조치가 무효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본래 EU와 북미 국가 모두 찬성표를 휩쓸었고 고정 반대표는 이스라엘 딱 1개국뿐이었으나 2017년부터는 미국이 고정 반대표로 추가되었다. 즉, 전세계 국가중 골란고원에 대하여 이스라엘을 고정적으로 지지하는 나라는 도널드 트럼프 이후의 미국이 유일하다.#
  • 유엔인권이사회(UNHRC)는 2019년 이스라엘의 골란 고원 내 세력 확장을 비판하는 결의안을 표결 끝에 채택했다.#
  • 2019년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성명을 통해 "골란고원에 대한 유엔의 정책은 안보리 결의에 따르고 있다"면서 "골란고원의 지위는 달라지지 않을 것"라 밝혔다. 이는 골란 고원이 (프랑스령 시리아에 속한 동부 방면에 한정하여) 시리아 영토라는 기존 입장을 재확인 한 것이라고 해석된다. #

4.2. 시리아에 우호적인 입장[편집]



  • 독일 정부는 1981년의 유엔 안보리 결의안대로 이스라엘의 주장을 인정하지 않으며 영유권이 시리아에 있다고 보고있다.#
  • EU는 "국제법에 따라서 골란고원을 포함해 지난 1967년 이후 이스라엘이 점령한 땅에 대해 이스라엘의 주권을 인정하지 않고 이스라엘 영토의 일부라고도 고려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튀르키예, 레바논, 시리아, 러시아 등도 골란 고원의 이스라엘 영토 인정을 거부하였다. #.
  • 프랑스 정부는 골란고원에 대한 이스라엘의 영유권을 인정하지 않으며 이스라엘의 골란 고원 병합은 국제법 위반이라고 비판하였다.(France says Israeli sovereignty over Golan breaks international law)
  • 캐나다 정부는 이스라엘의 굳건한 동맹국(steadfast friend)으로써 "이스라엘과 입장을 함께 하고, 이스라엘이 주변국과의 평화롭고 안전한 환경에서 살 권리를 지지하는 바"라고 입장을 밝히면서도 "국제법에 따라, 캐나다는 골란고원에 대한 이스라엘의 영구적 통치권(control)을 인정하지 않으며, 캐나다의 오랜 입장을 고수하는 바"라고 밝혔다.#
  • 영국 정부 역시 1981년 유엔 안보리 결의안을 인용하면서 이스라엘의 영유권 주장을 인정하지 않았다.#
  • 2019년 일본의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은 "우리나라(일본)는 이스라엘에 의한 골란고원의 병합을 인정하지 않았고 그 입장에 변함이 없다"고 밝혔다.#

4.3. 이스라엘에 우호적인 입장[편집]


2019년 3월 25일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미국 연방정부를 대표하여 이스라엘 국가의 골란 고원 영유권을 인정한 미국-이스라엘 공동성명을 발표하였다.

그러나 이는 거센 논란을 야기했는데 미국의 결단에 대하여 무력으로 차지한 영토를 자국으로 병합시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 최근의 국제법을 내세운 비판과 함께 러시아 연방의 크림 반도 합병을 정당화시킬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 것. 이에 1923년판 로잔 조약을 바탕으로 터키 공화국이 시리아하타이를 빼앗아 합병한 선례와 함께 2차 세계대전의 승전국들이 독일의 국경을 새로 획정한 것과 비교하여 이것은 합법이라는 반론이 있다.

게다가 트럼프 입장에서 골란 고원을 이스라엘 국토로 인정해서 유대인들의 표심을 어느 정도 확보할수있다는 계산이 깔려있고, 네타냐후도 부패 혐의로 궁지에 몰려있는데다가 총선까치 치러지기 때문에 정권을 상실할 위험이 큰데, 이를 반전시킬 카드가 절실했다. 즉, 서로 윈윈하는 방안이라는 것이다. 즉, 국내 정치를 위해서 국제적으로 욕먹는 것을 감수하는 것. 그리고 트럼프의 선거운동 도와주기로 네타냐후는 보수층 결집으로 5선에 성공했다. 그러니까 네탸냐후를 위한 트럼프의 선물인 셈이다.

5. 이스라엘 법학계의 법학견해[편집]


이스라엘 국내의 국제법 전문가들 가운데 북아메리카서유럽에서 유명한 유진 콘토로비치(Eugene Kontorovich) 법학박사와 로비 사벨(Robbie Sabel) 법학박사는 이스라엘의 중앙정부에서 골란 고원을 다스리는 정책들에 대하여 매우 치밀하게 법률자문을 제공하고 있다. 오래 전부터 이스라엘 법무부는 골란 고원의 영유권 문제를 영국 추밀원 사법위원회 또는 국제사법재판소에 끌고 가서 떳떳하게 재판하자는 입장이기 때문에[6] 이스라엘 법학계를 대표하는 국제법 전문가들의 논쟁은 국제사법재판소독도 영유권 분쟁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를 예측할 수가 있는 매우 유익한 경험이다.

이스라엘 법학계를 대표하는 여러 명의 국제법 전문가들은 대략 세 가지의 전제 조건들을 바탕으로 제1차 중동전쟁 직전까지 존재한 이슈브(영국령 팔레스타인유대교도 자치정부)를 계승하여 골란 고원을 다스리는 이스라엘국의 영유권을 거론하고 있다.

(1) 폴레-뉴컴 협정(Paulet–Newcombe Agreement)에 바탕한 영유권의 정당성을 강조한다.

(2) 유엔 헌장이 유효하기 때문에 방어전쟁(제1차 중동전쟁, 제3차 중동전쟁, 제4차 중동전쟁)의 과정에서 획득한 점령지의 합병은 매우 까다로운 조건들을 확실하게 충족해야 한다.

(3) 시리아제임스 크로포드(국제사법재판소 재판관)의 말마따나 문명국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매우 사악한 불량국가다.


위에 나오는 제임스 크로포드(James Crawford) 법학박사2001년한일합방국제법적으로 적법한가를 논의하기 위해서 한국국제교류재단이 마련하는 방식으로 하버드 대학교에서 개최한 학술회담에 친히 참석하여 매우 놀라운 법학견해를 거론했고, 그 때 한일합방 학술회담에 참석한 키무라 칸(木村 幹) 법학박사가 나중에 흥미로운 회고담을 남겼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크로포드 박사의 얘기에 국제사법재판소가 판단하는 국제법상의 문명국으로 인정받는 조건들이 어떤 것인지 거론되고 있다는 것이다.

そもそも当時の国際社会においては、国際法は文明国相互の間にのみ適用されるものであり、この国際法を適用するまでの文明の成熟度を有さない国家に適用されるものではない。言い換えるなら、文明国と非文明国の関係は、文明国相互においてと同様に国際法によって規定されるようなものではなく、それ故、前者においては、後者において必要とされるような手続きは必ずしも必要とされる訳ではない。極論するなら、通常、そのような文明国と非文明国との関係の一類型として登場する、植民地化する国と植民地化される国の関係においては、その最終段階 - 即ち、植民地化 - そのものにおいて必ずそれが「条約」の形式を必要とする、とさえ言うことができない。当時において寧ろ重要であったのは、このような特定の文明国と非文明国との関係が、他の文明国によってどのように受け止められていたかの方であり、単純化していうなら、植民地化において「法」が存在していたのは、正にそこにおいてのみ、であった。そのような意味において、日本による韓国併合は、それが英米をはじめとする列強に認められている以上、仮令、どのような大きな手続き的瑕疵があり、また、それが非文明国の主権者の意志にどれほど反していたとしても、当時の国際法慣行からするならば、「無効」と言うことはできない。

원래 당대(1910년대 이전)의 국제사회에서 국제법은 문명국과 문명국의 관계에서만 유효했으며, 문명이 높은 수준으로 발전하지 못한 후진국들에게는 국제법 그딴 거 없다. 바꾸어 말하면, 문명국과 비문명국(문명이 높은 수준으로 발전하지 못한 후진국)의 관계는 문명국과 문명국의 관계에서와 마찬가지로 국제법에 의해서 규정되는 것이 아니며, 문명국의 관점에서 비문명국에게 국제법상의 절차는 꼭 필요하지 않은 것이다. 극단적인 표현으로 논하자면, 보통의 경우에 문명국과 비문명국의 관계들 가운데 하나의 유형으로 등장하는, 식민지화하는 강대국과 식민지화되는 약소국의 관계에서는 마지막의 단계로서 식민지화 그 자체에 있어서 반드시 그것이 조약의 형식을 필요로 한다고 말할 수가 없다. 당대의 중요한 요소는 이런 특정 문명국과 특정 비문명국의 관계가 다른 문명국의 관점에서 어떻게 받아들여지고 있었는가였고, 아주 단순하게 말해서 식민지화 과정에서 법제가 존재한 것은 바로 거기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일본 제국이 대한제국을 합병한 것은 영국과 미국을 비롯한 열강들이 한일합방조약을 인정하는 마당에 절차적 측면에서 매우 큰 하자가 존재한들 비문명국 정부의 의지에 정반대로 결정했어도 당대의 국제법의 관행에서 본다면 무효라고 판정할 수는 없다.

키무라 칸(고베대학 국제협력연구과 교수)의 회고담(歴史的国際法的観点からの日本の韓国併合再検討)


2019년 3월 하순더 타임스 오브 이스라엘(이스라엘 국내의 외국어전문 온라인신문사)이 골란 고원의 미래에 대하여 열심히 취재했는데, 사벨 박사와 콘토로비치 박사도 모두 만나 오랫만에 기자 회견을 가졌다.

(The Golan Heights is Syrian territory. And you don’t acquire territory from another state in a defensive war. The fact that you’re acting in defense gives you the right to occupy enemy territory. It doesn’t give you the territory. In World War II, The United States was attacked by Japan and subsequently occupied the country. But it did not acquire sovereignty over it. Similarly, The Allies defeated Nazi Germany in a defensive war. And their occupation of the country afterwards was entirely legal. But no one dreamed of annexing Germany, or even parts it, against Germany’s will. Germany agreed after The Second World War to transfer some of its territory to Poland and Czechoslovakia. That’s perfectly valid. But the actual act of occupation doesn’t grant you sovereignty over the territory. Therefore the only way to get sovereignty over The Golan Heights is via an agreement with Syria, or if time passes and nobody objects to it. But people do object to it. As powerful as The United States may be, it has no power to grant Israel sovereignty over Syrian territory. The situation, legally, is still that we’re occupying Syrian territory. It’s perfectly legal until we reach a peace agreement. That could last for a long time. But it doesn’t give us sovereignty. Netanyahu didn’t consult a lawyer before he said that.)

로비 사벨(예루살렘 히브리 대학교 법과대학 교수)

(The relevant international law only prohibits taking territory in a war of aggression. Indeed, if international law does not allow attacked countries to make border changes in some circumstances, it would actually invite aggression, because the attacking country would be insured against losses to the defender. Israel made 'multiple good-faith peace efforts to return the territory' and that Syria 'lost all legitimacy by committing mass atrocities.' Furthermore, The United States has previously recognized 'forcible territorial changes', For instance, In 1995, When president Bill Clinton extended full diplomatic recognition to Vietnam.)

유진 콘토로비치(노스웨스턴 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콘토로비치 박사가 2018년미국 연방의회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외교정책(골란 고원을 다스리는 이스라엘국의 영유권을 정식으로 승인하자)을 심의하는 과정에서 미국 연방하원국가안보정책 분과위원회급히 소환되어 진술한 법학견해는 탐독할 만한 좋은 자료다.

6. 여담[편집]


제4차 중동전쟁 당시 골란 고원 방어전 및 반격전에 투입된 이스라엘 육군 제7기갑여단 소속 77 전차대대의 전투기록이 '골란 고원의 영웅들'이라는 제목으로 번역돼 있다. 번역도 괜찮아 한 번쯤 읽어볼 만하다. 제대로 기습당하고 제공권도 확보 못했던[7] 초기 전투상황을 보면 정말 처절하다.

독일 4호 전차의 마지막 전장이기도 하다.

과거 우간다의 악명높은 독재자였던 이디 아민의 관저 뒤에 있는 언덕을 골란 고원으로 칭하기도 했다. 이디 아민이 이스라엘이 빼앗은 땅을 되돌려야 한다고 하고 단교한 뒤 이디 아민의 명으로 만든 언덕. 그리고 여길 병사들을 시켜 점령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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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반(反)이스라엘 적대국들의 시청각 자료에서는 Quneitra로 표시하는 경우가 많고, 친(親)이스라엘 우방국들의 시청각 자료에서는 Kuneitra로 표시하는 경우가 많다. 왜냐하면 아랍어를 공용어로 쓰는 나라들에서는 k, q의 발음이 거의 비슷하기 때문에 q로 표기되는 곳이 많고, 반대로 북아메리카와 서유럽에서는 k로도 표기하기도 한다. 실제로 이스라엘 본토에서 키르얏 쉬모나(이스라엘 도시)를 표시하는 이정표들은 《Kiryat Shmona》로 표시하기도 하고, 《Qiryat Shemona》로 표시하기도 한다.[2] 군사적으로 봤을 때 이스라엘국의 북부 관구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지리적 요충지이다. 반면에 시리아의 관점에서는 다마스쿠스 수도권을 내려다 보는 요충지라 더욱 포기할 수 없다.[3] 시리아 내전이 발발한 덕택에 한국과 시리아의 수교론은 순식간에 자취를 감췄다.[4] 이스라엘 본토에서는 님로드(Nimrod) 성이라고 부르며, 이스라엘 국가의 국립공원이 되었지만, 몇몇 나라들은 폴란드 공화국비아워비에자 국립공원을 폐지한 소비에트 연방일본 제국타로코 국립공원을 폐지한 중화민국의 선례를 고려하여 시리아의 성/요새 유적지로 분류하고 있다.[5] 한국 정부가 최근에 철도 정책을 3단계 분업 체계(건설교통부↔철도국↔한국철도공사)로 재편성한 것처럼 이스라엘 정부도 최근에 수자원 정책을 3단계 분업 체계(동력자원부↔수자원청↔이스라엘수자원공사 및 수자원사업소들)로 재편성했다.[6] 이스라엘 법무부의 속셈은 TBC다큐멘터리(독도 법정에 서다)를 VOD로 시청하면 알 수가 있는데, 백문이 불여일견이니 1편, 2편, 3편, 4편, 5편, 6편을 간단하게 살펴 볼 것을 추천한다. [7] 이스라엘의 경우 거의 대부분의 지역의 제공권을 확보했기에 "예루살렘 처럼 성지도 아닌데 왜 공습을 못 했냐?"고 생각 할수 있지만 워낙 방어를 철저히 했기에 별 효과가 없는데 UN 때문에 포위 해서 굶어 죽이는 것 같은 장기전은 못 하고, 어쩔수 없이 그냥 밀고 갔으며 이 때문에 기갑부대(이마저도 거의 대부분 격파되었다.)와 알보병들이 피를 토해가며 기적적으로 점령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