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군장교교육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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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관후보생이여, 조국은 그대를 믿는다!


1. 개요
2. 연간일정
3. 훈련 및 내무생활
4. 후보생 모집단
4.1. 학사장교
4.2. 학군장교
4.3. 준사관 후보생
5. 여담
6. 임관자 현황
6.1. 기수
6.2. 학사장교


1. 개요[편집]


대한민국 공군 공군교육사령부 기본군사훈련단 군사훈련전대 소속의 대대급 부대로 공군 장교를 양성하는 곳이다. 공군 내부에선 줄여서 '장교대'로 불리며 공군의 장교가 되려면 누구나 한번 쯤은 거쳐가야 되는 곳이다. 대대장은 중령보직 임명되며, 중대장은 대위보직이지만 최선임 중위가 맡는 경우도 있다. 소대장 임관한지 1개월 막 된소위 혹은, 중위가 맡는다. 소, 중대장은 대부분 학사장교출신이나 정책적으로 공사 출신의 소,중위가 늘 한 사람이 있다.[1] 대대장은 주로 인사교육장교이다. (준사관 후보생들 훈련이 있을 땐 각 부대에서 파견된 준위들이 '준사관소대장'을 맡게된다. 병조교는 시범조교역할을 한다.


2. 연간일정[편집]


  • 1월2주~4주 : 2주간 1년차 학군사관 후보생들이 훈련을 받는다.(초기병영생활, 특별내무생활)

  • 3월~5월 : 13주간 짝수 기수의 학사사관 후보생들이 훈련을 받는다.

  • 6월2주~4주 : 3주간 준사관어르신[2]후보생이 훈련을 받는다.

  • 7월2주~8월2주 : 4주간 1년차,2년차 학군사관 후보생들이 훈련을 받는다.

  • 9월~11월 : 13주간 홀수 기수의 학사사관 후보생들이 훈련을 받는다.

연간 일정에서 훈련이 없는 주에는 이불 교체 등 생활관 정리 및 훈육관 및 병 조교의 임관위로휴가, 평가 등 잡다한 일을 하다가 한번씩 공군화 훈련을 짧게 하거나, 민간인 대상 병영체험도 하곤 한다.

이외에도 공군사관학교 생도들도 훈련을 받기 위해 장교대에 머무는데, 공사에서 교관들을 직접 진주로 보내서 생도들을 훈련 시키기 때문에 장교대와는 큰 관련이 없다. 그냥 생활관(명예관, 정의관)을 임대해서 쓰는정도. 장교대 훈육관은 사관생도들에 대한 훈육권한이 없다.

예전에는 공군사관학교를 졸업한 신임 조종특기 소위들이 사천에서 중등교육을 받기위해 이 곳에서 머물때가 있었는데 공교롭게도 학사장교 여름차수 장교들과 같이 숙소를 쓰는 경우도 있었다. 대체로 서로 존중하며 지내는 편이었고 (특히 조종 특기로 지원했다면 서로 교류하면서 자신의 미래를 짐작했을 것이다) 토요일에는 공사 대 학사출신 장교들끼리 축구시합을 하기도 했는데 대체로 공사출신의 승리로 끝났다.(공사 46기 조종3차반 대 사후100기 대결에서는 무려 5대 0으로 공사출신이 압승)

준사관 후보생어르신들도 1년에 1차수가 들어와서 3주간 훈련을 받는다.놀다 가신다. 학군,학사 후보생들에 비해 워낙에 나이도 많고 장교대에서 가장 계급이 높은 대대장(중령)보다 짬을 많이 드신 분들이기에 이제 갓 임관한지 1~2년정도밖에 안된 소위,중위 훈육관들로서는 애로사항이 많은 편이다. 그러나 모두 근무성적이 좋은 사람들이고 불성실하게 교육에 임하면 불이익이 있으니(애초에 불성실한 사람이 준위를 달러 오지 못한다.) 그냥 훈련에 잘 따른다고 한다.


3. 훈련 및 내무생활[편집]


공군이라고 훈련이 편할 거라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장교대 훈련 강도는 절대 무시할 수준이 안된다. 실제로 공군은 좀 편하겠지 라는 생각으로 입소했다가 훈련 강도(특히 신분 전환식, 초기병영생활, 특별내무기간)에 기겁하고 퇴소하는 인원이 학군이든 학사든 매 기수마다 상당히 많이 나온다. 그나마 다행인 건 옛날식 악폐습이 많이 줄어들기도 한지라, 운동 좀 했거나 타군 간부를 준비했던 사람이라면 그럭저럭 버틸만하다. 하지만 13주만에 우겨넣은 훈련량과 훈육관들의 "퇴소해라", "너네는 장교 자질이 없다." "신교대로 가라"는 등 정신적 압박이 멘탈을 갉아먹는 건 피할 수 없다. xxx소대장님께 용무! 신교대로 보내주십시오! 엎드려. 근데 진짜 군복무기간 차이 때문에 타군이나 공군 신병으로 가기 위해 자진퇴소하는 후보생이 늘어서(명목상 초급(위관급)장교의 만성부족으로) 이제는 안 그러는듯 하다.

기본적으로 후보생은 취침시간 외에는 침대를 건드릴 수 없고, 멋대로 퍼져서 쉬거나 짱박힐 수도 없고, 병사들도 종종 저지르는 가벼운 복장불량 같은 걸 걸려도 신나게 구르고[3], 내가 안 걸렸더라도 누군가가 어떤 이유로 걸려서 동기부여 받는 소리를 생중계로 들어야 한다. 또한 기본적으로 모든 걸 우스꽝스러울 정도로 박력있게 해야 한다. 적어도 기훈단에서는 다른 건 다 좋은데 맥아리 없는 후보생이, 조금 모자라도 박력있는 후보생보다 더 많이 털린다. 보드게임이나 서바이벌게임, 술게임 같은걸 잘 하는 후보생이 동기부여를 잘 안받는다 하더라.

훈련의 전체적인 흐름을 군사기밀 누설하지 않는 선에서 약술하자면, 군기잡는 초기병영생활기간(특별내무생활기간), 총 들고 구르는 군인화기간, 공군 특유의 훈련을 받는 장교화기간, 지도자[4]로서의 소양을 쌓는다는 명목실제로는 충성관에서 잔다고 해서으로 신나게 쳐노는 충성주 기간으로 구성되어 있다. 군인화 단계에서 장교화 단계로 넘어갈 때에는 2박 3일의 특별 외박이 있으므로 기대해도 좋다.[5] 그 직전에 유격이 있다는 게 함정이지만.기구는 타고 체조는 열외해라

몇몇 용어나 총기, 방독면 다루는 기법이 타군과는 조금 달라서 타군 출신들이 안 받아도 될 동기부여를 받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군 경력자들이 미래를 예지할 수 있는 것마냥 주변에 도움을 많이 줄 것이다. 동기 중에 군, 특히 부사관, 장교 과정 경력자가 있다면 친하게 지내고 그 동기의 센스를 본받을 필요가 있다. 공군 학사 훈련이 힘든 면도 있지만, 사격, 행군은 3일간 108km 다분히 형식적으로[6] 이루어지는 만큼, 육군 경력자 옆에 붙어다니면 장교대 훈육관들도 안 알려주는 팁을 얻을 수도 있다.

진주의 여름은 정말 미칠듯이 덥다. 학사의 경우 혹서기,혹한기에 훈련을 받지 않아 그나마 괜찮으나 1월,7월 가장 춥고 더울 때만 훈련을 받는 학군, 이보다는 덜하지만 그래도 혹서기에 가까운 6월에 훈련받는 예비감독관[7] 입장에선 정말 미칠 노릇이다. 최근에는 기훈단 내부에서 심각한 온도나 외부상황(미세먼지 등)이 발생하면 훈련중단을 하기도 한다. 그래도 다행히 학사 138기 이후로 생활실 내부에 에어컨이 도입됐다. 가을 즈음 들어오는 학사 홀수 기수는 여름 더위에 그대로 노출되지는 않지만, 팔이 죄다 타는 늦여름 햇볕과 아침에는 기침이 나오고 낮에는 현기증이 오는 초겨울 일교차를 골고루 맛볼 수 있다.

개별적인 훈련이나 학과 자체는 개개인마다 들을만하거나, 재미있을 수도 있지만, 그 사이사이의 일상 생활이 쉽지가 않다. 예컨대 단독군장 이상의 복장이 필요한 야외학과가 있어서 다른 장소로 이동을 해야 할 때 무조건 앞에 총을 한 상태에서 뜀걸음으로 이동해야 한다. 이게 별거 아닌 것 같지만 타고난 체력이 나쁘거나 중간에 부상이라도 당한다면 정말 힘들어진다. 훈련단에 사격장과 화생방 훈련장이 있는데, 사격장은 장교대에서 언덕(껄덕고개라고 하는)을 하나 넘어야, 화생방은 사격장을 지나 언덕을 두개 넘어야 나온다. 말이 언덕이지 체감은 에베레스트 그 자체. 심지어 오와 열을 완벽히 맞춰서 뛰어야 하는데[8]-- 동기들 속도를 못 맞춰 열외되는 인원이 생기다간 동기 챙기라는 불호령과 함께 장교대나 EOD 훈련장 등을 다시 찍고 오는 대모험이 시작된다. 물론 이 짓도 꾸준히 하다보면 지휘근무 후보생에게도 요령이 생겨서 다들 낙오자가 생기지 않을 정도의 페이스로 천천히 뛰게 된다.

훈련 자체는 정말 몸이 허약하지 않다면 사람이 버틸 순 있다. 악명높은 전술학 굴러이동 기수깨기[9]나 연병장을 포복으로 쭉 기어가는 대륙횡단같은 가혹행위도 곁들여주고, 유격도 체조는 괴롭지만 기구 타는 건 꽤 재미있다. 내무생활의 존재감이 너무 커서, 이것저것 공부할 거리가 많거나 몸이 피곤한 학과가 차라리 반가울 지경일 뿐이다. 훈육관들이 늘 말하듯이, 장교대에서 교육과 훈육은 별개로 돌아간다.

희소식을 하나 들려주자면, 적어도 식사는 맛있게 할 수 있다. 신병대와 달리, 장교대 식당은 입이 적기 때문에 식사 양과 질이 꽤나 좋다. 기분 탓일 수도 있겠지만 빡센 일정이 있는 날은 고기 메뉴를 마구 퍼주는 느낌이 들 것이다. 당직병들이 심심하면 식단표에서 맛있는 메뉴에 밑줄을 쳐 놓는다. 옛날에는 직각식사[10], 수평 플레이트같은 괴악한 규정이 있었지만, 적어도 143기 이후로는 그냥 수저를 잡는 위치[11]와 놓는 위치를 정해놓는 정도로 많이 완화되었다. 초병생(훈련 2주차) 이후로는 원하는 노래 몇 곡을 골라서 군가와 함께 식당에 틀어놓을 수 있다. 덤으로 식당에 액자째로 걸려있는 훈련 사진들은 바로 직전 기수 선배들의 사진이다.(거기에 지금 너를 굴리고 있는 빨모의 사진도 있다.)

여군 장교 지망생들은 학사장교 조종자원 선발에 지망이 불가하였으며, 조종분야 가산복무 지원금 지급대상자(舊 조종장학생) 제도 또한 남성에게만 개방되어 공군 조종사를 꿈꾸는 여학생들은 공군사관학교에 입학해야 했으나, 2019년부터 조종장학생중 여성도 선발하고 있다. [12]

여군 학사장교는 2001년 임관한 105기부터 선발하기 시작했다. 당시 25명의 여군 소위가 임관했는데, 그 25명 중에 상당수가 장군과 대령, 원사, 준위의 딸이었다고 한다. 실제로 당시 여군 소위 중 1명의 부친 한 사람은 임관식날 군용 헬기를 타고 왔다. 또 다른 한 사람은 걸어서왔는데, 공군기본군사훈련단 소속 대령이었다고 한다.

나중에 임관하고 보면 왜 저렇게 소위 나부랭이가 갈구나 싶을 것이다. 129기(13년도 임관) 이후 전반기 학사과 후반기 학사 사이에 선후배 관계로 변하는데 부대마다 선후배 관계로 할지 동기로 하는지는 다르기 때문에 대충 분위기 보고 하면되고 대위 이후 기수 상관없이 년도로 구분한다고 하니 참고해서 호칭 쓰기 바란다.[13]

압존법은 못쓰게한다. 공식적으로는 폐지되어서 그런듯.


4. 후보생 모집단[편집]



4.1. 학사장교[편집]


다양한 전공분야의 전문지식을 갖춘 장교 획득을 위하여 4년제 이상 대학 졸업 후 일정 기간의 군사교육을 이수한 후 공군 장교로 임관하는 제도이며 육해공 학사장교 중 가장 사람들이 선호하는 학사장교라고 할 수 있다. 모집인원은 짝수기수가 더 많지만 예비장교후보생, 아주대 통신특기 군 가산복무 지원금 지급 대상자, 조종장학생이 있어서 비슷한 편으로 순수 학사장교로는 기수당 약 250~350명 내외이다.[14][15]

수험번호가 지원자 순서대로 배부되기 떄문에 마지막날에 얼추 수험인원이 나온다. 하지만 허수[16]와 특별전형1,2만 지원하는[17] 지원자들도 있다.

여후보생은 모집인원 중 20~30%를 뽑아서 142기 때는 남자 360/여자 40명 정도였고, 143기때는 남자 150/여자 50명 정도 였다.[18] 최근 문재인 정부의 남녀평등 정책에 의거하여 점점 여후보생과 여간부의 비율이 늘어나고, 여훈육관도 늘어나는 추세에 있다. 여군의 경우 직업군인이라 군생활을 오래 할것 같지만, 대부분이 이런저런 이유로 빠른 전역을 한다.

과거 육군에서 고졸을 갑종장교로 임관시킬 때 공군은 대졸자를 학사장교로 받아들였다. 따라서 타군에 비해 학사장교의 역사가 매우 깊은데[19] 이러한 전례로 공군 학사장교의 경우 고학력자[20]들의 비율이 상당히 높다. 그러나 최근에는 지방대 출신들의 비율도 옛날보다는 많이 늘었다.

학사장교 중에서도 조종특기를 선발했기에 조종사의 꿈을 가진 사람들이 많이 지원하기도 했으나 132기 이후로는 조종특기를 별도로 모집하지 않으며, 현행 제도에선 대학 재학생 때 미리 조종분야 가산복무 지원금 지급대상자(舊 조종장학생)로 선발되어야만 조종 특기를 받을 수 있다. 조종특기 교육은 장교교육대대는 수련회라고 할 정도로 가혹한 총 85주간 입문, 기본, 고등에 걸친 3단계의 훈련을 거쳐 전투조종사 또는 수송기/헬기 조종사로 탈바꿈하게 된다. 조종사 양성비용은 장난이 아니기 때문에 훈련을 마치고 조종사가 되면 임관 후 13년간 의무복무를 하여야 한다.(헬기는 10년) 비행훈련 입과 후 탈락자는 비조종병과로 재분류된다. 이를 그라운딩이라고 한다.


4.2. 학군장교[편집]


학군장교의 경우 항공대, 한서대, 교통대, 경상국립대, 숙명여대, 서울과기대, 연세대 에 재학중인 학생들밖에 없다. 특이한 점이라 하면 한 기수의 반 정도가 조종장학생 시험을 붙고 학군단에 편입된 예비 조종장교 후보생들이라는 것. 이 사람들은 이미 특기가 정해져 있기 때문에 일반과처럼 특기를 잘 받기 위해 훈련 성적에 목을 메는 일이 없다. 그렇다고 바닥을 깔아주진 않는데 왜냐하면 조종장학생 선발 신체조건이 더 높기 때문에 훈련을 잘 적응하기 때문이다. 물론 항공대, 한서대, 교통대 운항과 학생이 아닌 다른 학교의 조종장학생들은 학군단이 아닌 학사장교로 편입할 수 있다. 다른 학교에 있는 학군단은 전부 육군 아니면 해군 소속이라 학군단에 들어갈 수 없기 때문이다. 육군 학군단에 일단 들어가고 나서 졸업할 때 공군으로 전군하는 제도도 없다.


4.3. 준사관 후보생[편집]


이분들은 대부분 원사 출신이며 준위를 달기 위해 잠깐 요양훈련받고 간다. 다들 우수한 분들이다.


5. 여담[편집]


  • 훈련병들이 단체로 이동하다 후보생들을 보게 되면 훈련병들을 인솔하는 조교가 훈련병들이 후보생들을 못보게 전부 '뒤로 돌아'를 시키는 것이 원칙인듯 하다. 계급이 다른 피교육장병들끼리는 경례를 비롯한 여러 문제때문에 서로 마주치지 않게 하는 것이 원칙이다.

  • 장교대 전용 식당이 존재한다. 기훈단 내에서 가장 밥이 맛있는 곳 중 하나. 신교대 식당처럼 한번에 엄청난 양을 조리하는 것이 아니여서 그런지 메뉴가 똑같아도 맛이 다른 기현상이 펼쳐진다. 장교대 식당이 맛은 있을지 모르나 특내기간 또는 훈육관들이 후보생들 군기를 잡는 날에는 훈육관들이 밥도 편하게 못먹게 밥 먹는 도중에 얼차려를 주곤 한다. 밥 씹다가 잘못하면 뒤로 불러내서 소대장의 엎드리라는 호통과 함께 식당 바닥에 엎드린다. 밥 먹을 땐 개도 안 건드린다는 말은 여기선 통하지 않는다. 근데 이제는 부조리가 많이 사라져서 엎드리는 게 다 이유가 있다.

  • 2012년 3월부터 6월까지 훈련받은 학사 128기부터 큰걸음이 폐지되고 직각식사가 훈련 초기에만 시행되는 등 변화가 있었다. 2014년대한민국 육군에서 잇따라 터진 제22보병사단 총기난사 사건, 제28보병사단 의무병 살인사건 등 사건들로 인해 군내 가혹행위 청산 분위기가 조성이 되며 기초군사훈련 기간 중 가혹행위로 보일 수 있거나 이에 상응하는 훈육은 얼차려[21]도 상당부분 바뀌었다.

  • 사후 127기까지는 '사관후보생(약칭 '사후')'로 불렸으나 약칭인 사후(死後, '죽은 뒤')가 연상된다는 이유로 학사 128기부터 '학사사관후보생(약칭 '학사')'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그에 따라 앞선 기수들도 모두 '학사 000기'로 호칭되었다. 다만 입에 붙은 경우가 워낙 많아서 종전 '사후'라는 표현을 그대로 사용하는 경우도 흔했다.

  • 144기는 옆 동네의 236기처럼 특별외박이 짤리고 말았다. 원인은 코로나19. 이로 인해 144기도 236기와 함께 대한민국 공군 71년사상 가장 불쌍한 기수 대열에 합류하게 되었다. 이어서 145기도 이 대열에 합류하였다. 추가로 145기는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해 임관휴가도 못나올것 같은 상황이다.144기도 임관휴가는 나왔다.


6. 임관자 현황[편집]


명예관 어딘가에 현판이 있다.

6.1. 기수[편집]


임관년도
기수1
기수2
기수3
기수4
비고
타출신 해당 기수
공사
ROTC
1948년
사후 1기

없음
없음
1949년
사후 2기
사후 3기
사후 4기
2,3,4기 동시 임관
1950년
사후 5기
사후 6기
사후 7기
5,6,7기 동시 임관
1951년
사후 8기
사후 9기
사후 10기
사후 11기
8,9,10,11기 동시 임관
1952년
사후 12기
사후 13기
사후 14기
사후 15기
12,13,14,15기 동시 임관
1953년
사후 16기
사후 17기
사후 18기
사후 19기
16,17,18,19기 동시 임관
공사 1기
1954년
사후 20기
사후 21기
사후 22기
사후 23기
20,21,22,23기 동시 임관
공사 2기
1955년
사후 24기

공사 3기
1956년
사후 25기

공사 4기
1957년
사후 26기

공사 5기
1958년
사후 27기

공사 6기
1959년
사후 28기

공사 7기
1960년
사후 29기

공사 8기
1961년
사후 30기

공사 9기
1962년
사후 31기
사후 32기
사후 33기
사후 34기
31,32,33,34기 동시 임관
공사 10기
1963년
사후 35기
사후 36기
사후 37기
사후 38기
35,36,37,38기 동시 임관
공사 11기
1964년
사후 39기
사후 40기
사후 41기
사후 42기
39,40,41,42기 동시 임관
공사 12기
1965년
사후 43기
사후 44기
사후 45기
사후 46기
43,44,45,46기 동시 임관
공사 13기
1966년
사후 47기
사후 48기
사후 49기
사후 50기
47,48,49,50기 동시 임관
공사 14기
1967년
사후 51기
사후 52기

공사 15기
1968년
사후 53기
사후 54기

공사 16기
1969년
사후 55기
사후 56기
사후 57기
사후 58기
55, 56차 동시 임관
57, 58차 동시 임관
공사 17기
1970년
사후 59기
사후 60기

공사 18기
1971년
사후 61기
사후 62기

공사 19기
1972년
사후 63기
사후 64기

공사 20기
1973년
사후 66기
사후 67기

공사 21기
1974년
사후 68기
사후 69기

공사 22기
학군 1기
1975년
사후 70기

공사 23기
학군 2기
1976년
사후 71기

공사 24기
학군 3기
1977년
사후 72기

공사 25기
학군 4기
1978년
사후 73기

공사 26기
학군 5기
1979년
사후 74기

공사 27기
학군 6기
1980년
사후 75기

공사 28기
학군 7기
1981년
사후 76기

공사 29기
학군 8기
1982년
사후 77기

공사 30기
학군 9기
1983년
사후 78기

공사 31기
학군 10기
1984년
사후 79기

공사 32기
학군 11기
1985년
사후 80기

공사 33기
학군 12기
1986년
사후 81기

공사 34기
학군 13기
1987년
사후 82기

공사 35기
학군 14기
1988년
사후 83기
사후 84기

공사 36기
학군 15기
1989년
사후 85기

공사 37기
학군 16기
1990년
사후 86기

공사 38기
학군 17기
1991년
사후 87기
사후 88기

공사 39기
학군 18기
1992년
사후 89기
사후 90기

공사 40기
학군 19기
1993년
사후 91기

공사 41기
학군 20기
1994년
사후 92기

공사 42기
학군 21기
1995년
사후 93기
사후 94기

공사 43기
학군 22기
1996년
사후 95기
사후 96기

공사 44기
학군 23기
1997년
사후 97기
사후 98기

공사 45기
학군 24기
1998년
사후 99기
사후 100기

공사 46기
학군 25기
1999년
사후 101기
사후 102기

공사 47기
학군 26기
2000년
사후 103기
사후 104기

공사 48기
학군 27기
2001년
사후 105기
사후 106기

공사 49기
학군 28기
2002년
사후 107기
사후 108기

공사 50기
학군 29기
2003년
사후 109기
사후 110기

공사 51기
학군 30기
2004년
사후 111기
사후 112기

공사 52기
학군 31기
2005년
사후 113기
사후 114기

공사 53기
학군 32기
2006년
사후 115기
사후 116기
사후 117기

공사 54기
학군 33기
2007년
사후 118기
사후 119기

공사 55기
학군 34기
2008년
사후 120기
사후 121기

공사 56기
학군 35기
2009년
사후 122기
사후 123기

공사 57기
학군 36기
2010년
사후 124기
사후 125기

공사 58기
학군 37기
2011년
사후 126기
사후 127기

공사 59기
학군 38기
2012년
학사 128기
학사 129기

공사 60기
학군 39기
2013년
학사 130기
학사 131기

공사 61기
학군 40기
2014년
학사 132기
학사 133기

공사 62기
학군 41기
2015년
학사 134기
학사 135기

공사 63기
학군 42기
2016년
학사 136기
학사 137기

공사 64기
학군 43기
2017년
학사 138기
학사 139기

공사 65기
학군 44기
2018년
학사 140기
학사 141기

공사 66기
학군 45기
2019년
학사 142기
학사 143기

공사 67기
학군 46기
2020년
학사 144기
학사 145기

공사 68기
학군 47기
2021년
학사 146기
학사 147기

공사 69기
학군 48기
2022년
학사 148기
학사 149기

공사 70기
학군 49기


6.2. 학사장교[편집]


기수
임관일자
임관인원
기사
147
2021.12.01.
233
146
2021.06.01.
380
145
2020.12.01.
196
144
2020.06.01.
409
#
143
2019.12.01.
196
#
142
2019.06.01.
382
#
141
2018.12.01.
298
#
140
2018.06.01.
402
#
139
2017.12.01.
310
#
138
2017.06.01.
365
#
137
2016.12.01.
262
#
136
2016.06.01.
374
#
135
2015.12.01.
291
#
134
2015.06.01.
382
#
133
2014.12.01.
342
#
132
2014.06.01.
430
#
131
2013.12.01.
349
#
130
2013.06.01.
338
[22] #
129
2012.12.01.
361
[23] #
128
2012.07.01.
524
[24] #
127
2012.01.01.
334
#
126
2011.07.01.
428
#
125
2011.01.01.
275
#
124
2010.07.01.
474
#
123
2010.01.01.
249
#
122
2009.07.01.
387
#



6.3. 학군장교[편집]


기수
임관일자
임관인원
기사
47
2020.03.01.
134
#
46
2019.03.01.
142
#
45
2018.03.01.
127
#
44
2017.03.01.


43
2016.03.01.


42
2015.03.01.


41
2014.03.01.


40
2013.03.01.


39
2012.03.01.


38
2011.03.01.


37
2010.03.01.


36
2009.03.01.


35
2008.03.01.


34
2007.03.01.


33
2006.03.01.
77
#
32
2005.03.01.


31
2004.03.01.


30
2003.03.01.


29
2002.03.01.




6.4. 준사관[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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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과거 조종자원과 정책자원을 분리해서 선발할 때에는 정책자원 중 일부가 훈련단에 배속되기에 그게 가능했지만 지금은 모든 공사 자원들이 조종 특기로 임관하기 때문에 비행훈련 중 그라운딩 당하는 공사 출신 장교가 없는 한 이 또한 보기 어렵다.[2] 간혹 민간출신의 (주로 통번역 준사관) 준사관 후보생도 있다.[3] 깜빡 잊고 면도를 안한 날 '수염불량'으로 감점을 받은 사례가 있다.[4] 리더의 순화어[5] 이때를 기점으로 훈육관과 교관들이 장교가 될 후배로 대우해주기 시작한다. 장교들은 수시로 이동해야 하기 때문에 임관 후에는 기훈단에서는 더 이상 보지 않겠지만 진급하면서 다른 곳에서 직속상관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조종 특기를 받으면 연장선상에 있는 비행교육대대에서도 마찬가지로, 빨간 마후라를 받고 나면 일선 비행대대에서 선후배 조종사로 관계가 바뀌기 때문이기도 하고.[6] 소총사격은 엎드려 쏴 100m만 하며, 완전군장 무게가 15+a kg쯤 된다. 하지만 화생방 상황은 얄짤 없으니 주의.[7] 보통 연수에 가까운 프로그램으로 짜여져 있지만 사격 훈련과 행군 훈련이 있기 때문이다. 특히 행군의 경우 대부분 부사관후보생 시절 때 마지막으로 행군한 것이며, 이후 2 ~ 30년만에 다시 행군하는 것이다.[8] 대대장의 지침마다 다름[9] 자신의 기수만큼 반복한다![10] 공군사관학교에서는 임시입교 기간 중에 아직도 한다. 92기(1994년 전반기 기수)는 특별내무기간 때만 한 다음 최단거리로 수저를 움직이는 방식으로 순화되었다. 그때까지는 전투복 상의에... 상상에 맡긴다.[11] 젓가락을 한손에 한짝씩 들고 음식을 찢는 행위는 동기부여를 받는다.[12] 학군사관에서도 여자 조종을 뽑고 있다.[13] 이것도 역시 부대마다 다르다고 한다.[14] 참고로 육군의 전문사관에 해당하는 교수사관이나 간호사관들은 학사사관의 특별전형으로 선발하기 때문에 이들 또한 학사장교이다.[15] 최근 코로나19 사태로 차수조정자들이 생겨서 실제 임관자 수는 약 400명 정도이다.[16] 대졸자가 아니거나 공인영어(토익 등)점수가 없는 등의 이유로 지원자격을 충족하지 않아도 KIDA 시험에 일단은 응시가 가능하다.[17] 공군 학사장교는 일반, 특별전형이 있는데 일반은 우리가 아는 PSAT나 NCS보다 쉬운 KIDA시험을 치는 전형을 말하며, 특별전형은 자대(특별전형1) 혹은 특기(특별전형2)에서 면접을 통해서 선발하는 전형이다. 일반적으로 통역장교와 특수 면허가 있어야 하는 곳이 아니면(관제, 간호, 약사 등) 전임자의 전역자리를 채우는 꼴이므로 1석이다. 그렇기 때문에 특별전형 1자리에 여러명이 지원하면 1명만 합격하고 나머지는 다 불합격 된다.[18] 이 수치는 입단기준으로 임관때는 사람수가 줄어든다.[19] 공군이 창설되기 직전인 1948. 5. 14. 사후장교(학사장교) 1기 임관[20] 명문대, 유학파[21] 과거에는 학과 1교시 내내 볼펜 한 자루를 직각으로 집어 든 채 수업을 듣는다든지, 후보생 몇 명이 쓰러질 때까지 총기를 머리 위로 든 채 오리걸음으로 연병장을 돈다든지 따위의 정신나간 악습도 흔했다.[22] 훈련기간이 기존 16주에서 12주로 단축되었다. 이에 따라 임관일자가 한 달여 앞당겨졌다.[23] 훈련기간이 기존 16주에서 12주로 단축되었다. 이에 따라 임관일자가 한 달여 앞당겨졌다[24] '사관후보생(약칭 '사후')'에서 '학사사관후보생(약칭 '학사')'로 명칭이 변경된 첫 기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