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경비구역 (r20220720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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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정전위원회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軍事停戰委員會板門店共同警備區域
Military Armistice Commission Joint Security Area(JSA)
Panmunjeom(Pan Mun Jŏm)


파일:텅빈판문점.jpg

대한민국 시점에서의 판문점 전경




위치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경기도 파주시 진서면 선적리 359[도로명주소]
파일:북한 국기.svg 개성시 판문구역 판문점리
특징
비무장지대
생성
1953년
주둔
파일:대한민국 국군기.svg 대한민국 국군(파일:JSA Insignia.png 공동경비구역 경비대대)
.파일:external/vetnation.us/usfk.gif. 주한미군
파일:유엔군사령부 휘장.svg 유엔군사령부
파일:조선 인민군 기.svg 조선인민군
파일:중국 인민해방군기.svg 중국 인민해방군(~1994)

1. 개요
2. 상세
3. 그 외
4. 주요 건물
4.1. 한국 지역
4.1.1. 자유의 집
4.1.2. 평화의 집
4.1.4. 중립국감독위원회 캠프
4.1.5. 기타 건물
4.2. 군사분계선
4.2.2. 군사정전위원회 회의실
4.2.3. 당직장교 회의실
4.2.4. 북측 경비병 휴게실
4.3. 북한 지역
4.3.1. 판문각
4.3.2. 통일각
4.3.4. 72시간 다리
4.3.5. 기타 건물
5. 관광
5.1. 대한민국에서
5.2. 북측에서
6.1. 타의로 JSA에 가게 되는 경우
7. JSA 비무장화 사업
8. 기타
9. 사건 및 사고
9.1. 개별 문서가 존재하는 사건 및 사고
9.2. 1962년 총격전
10. 관련 대중매체
11. 관련 문서
12. 둘러보기



지구상에서 가장 무서운 장소[1]

- 제42대 미합중국 대통령 빌 클린턴



1. 개요[편집]


공식 명칭은 군사정전위원회 판문점 공동경비구역(軍事停戰委員會板門店共同警備區域), 영어로는 'Military Armistice Commission Joint Security Area - Pan Mun Jŏm'이다. 이를 통상적으로는 공동경비구역(JSA, Joint Security Area)이라고 짧게 지칭하며, 대중적으로는 더 짧게 판문점이라고 부른다.

비무장지대의 군사분계선상에 있는 구역으로, 대한민국 경기도 파주시 진서면 선적리[2]북한 개성시 판문구역 판문점리 접경 동서 800m, 남북 600m에 걸쳐 장방형으로 설정되어 있다. 이는 휴전 당시 유엔군중국 인민지원군 및 북한군이 회의를 원만히 하기 위하여 1953년 10월 합의, 군사정전위원회 본부 구역 군사분계선(MDL)상에 설정한 것이다.


2. 상세[편집]


공동경비구역 안에는 군사정전위원회 본회의장을 비롯하여 북한 측의 '판문각', 유엔 측의 ‘자유의 집' 등 10여 채의 건물이 들어서 있다. 1971년 8월 남북적십자 예비회담, 1972년 7월 7.4 남북 공동 성명 등으로 판문점은 당시 5천만 한민족의 가슴을 한때 뜨겁게 한 바가 있고, 1973년 6월 남북조절위원회가 결렬된 지 7년 만인 1980년 8월부터는 남북총리회담의 실무회담이 이곳에서 열려 8차까지 거듭한 끝에 북한 측의 일방적인 불참으로 공전(空轉, 없던 일로 됨)된 일도 내외의 관심을 모았다. 그리고 2015년 8월 서부전선 포격 사건의 연장선으로 이루어진 남북고위급접촉으로 다시 한 번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주로 한국전쟁 교전당사 사이에 맺어진 정전 상태를 관리하기 위한 군사정전위원회의 회의와 협상의 장소로 이용되었지만, 1971년 9월 20일에 열리게 된 남북적십자예비회담을 계기로 남북한간 접촉과 회담을 위한 장소 및 남북한을 왕래하는 통과 지점으로 활용되었다.

원래는 정전협정에 따라 중국인민지원군 대표단도 주둔했으나, 1958년에 중국인민지원군이 해체되었다. 그러나 중국 대표단 자체는 잔류하였으나, 1991년 3월 25일, 처음으로 한국군 장성 황원탁 소장이 유엔사 수석대표로 임명된 것에 대해 북측이 한국은 정전협정의 당사자가 아니니 인정할 수 없다고 정전위 보이콧을 선언하게 됨에 따라 중국의 입장이 애매해졌다. 급기야 북한은 1994년 4월 28일, 군정위 탈퇴를 선언하고 중감위의 폴란드 인원도 추방시키는 한편 조선인민군 대표부를 설치했다. 마지막 중국대표였던 노광업(盧光鄴) 대교[3]는 1994년에 북경으로 철수했으며 정전위 보이콧에 동참해달라는 북한 측의 끈질긴 요청에 중국은 1994년 9월 1일, 외교부를 통해 공식적으로 대표단 철수를 선언함으로 개성에 잔류했던 5명의 참모들까지 12월 15일에 평양에서 출발하는 열차를 태워서 철수시켰다. 다만 중국은 정전협정의 유효성을 확인하면서 철수가 아닌 소환이란 표현을 사용, 복귀의 여지를 남기는 듯 했는데 30년 가까이 지난 2022년까지 복귀 얘기는 감감무소식이다.

2016년 2월 11일 2016년 개성공단 가동 중단 사건으로 인해 북한 측에서 판문점 연락 통로의 폐쇄를 선언한 상태다.

2018년 1월 3일 다시 판문점 연락 통로가 개통되었다.

그리고 2018년 11월 내에 자유왕래가 허용될 계획이다.

南·北·유엔사, 3자 협의체서 'JSA 공동근무수칙 마련' 합의

비무장화된 JSA 남북 공동근무 초읽기 …이달 중 관광객 자유왕래

南 굴착기로, 北 폭파로 철거…JSA 자유 왕래 머지않았다

남북·유엔사, 민사경찰·가이드 인솔로 'JSA 왕래' 협의(종합)

그러나 위는 모두 옛말, 북한의 연이은 도발과 남북, 북미관계 악화로 자유 왕래 등은 백지화 되었고 여전히 판문점 자유 왕래는 제한되어 있다. 5cm 군사분계선 둔턱은 그대로…


3. 그 외[편집]



대한민국 행정구역상으로는 1972년까지 경기도 장단군 진서면 어룡리였으며, 현재는 경기도 파주시 진서면 선적리이다. 북한 행정구역상으로는 개성시 판문구역 판문점리. 공식적으로는 쌍방 어느 쪽의 영토도 아닌 것으로 되어 있다. 대한민국 서울특별시에서 서북방으로 62㎞, 북한 평양시에서 대한민국으로 215㎞, 개성으로부터는 동쪽 10㎞ 지점으로 동경 126° 40' 40″(126.6768°), 북위 37° 57' 20″(37.9560°)에 있다.

파일:external/pds.joinsmsn.com/htm_2010061802160630003010-001.jpg

1953년 당시 판문점. 국방색 군용 텐트가 쳐진 방향(+ 헬기가 주차되어 있는 방향)이 대한민국 문산 쪽 방향. 허허 벌판으로 하얀 건물이 있는 쪽이 전쟁 후 북한령이 되고 만 개성 쪽 방향이다. 휴전선은 사진 기준으로 10시와 4시 방향으로 그어져 있다. 사진 왼쪽 기준 시커먼 텃밭(일명 썩은 밭) 까지가 대한민국이며 그 위는 북한이다. 판문점 남동쪽 상공에서 찍은 사진이다.

사진은 실제 정전협정 조인이 이뤄진 판문점이며, 현재는 "정전협정조인장"이라고 설명되는 곳이다. 이 곳과 현재의 판문점은 다른 곳이다. 사진의 지역은 현재의 판문점으로부터 약 1km 북서쪽에 위치하고 있다. 구글 지도를 통해서 판문점을 검색해보면, 북서쪽에 "정전협정조인장"이라고 표시되어 있다.

6.25 전쟁 전만 해도 조선시대 의주로와 사천(砂川)내가 만나는 지점의 이름없는 한촌(寒村)으로 초가집 몇 채뿐이었지만 1951년 10월 25일 이곳에서 휴전회담이 열리면서 세계 뉴스의 초점으로 떠올랐다.

마침내 1953년 7월 27일 휴전협정이 이 곳에서 조인되면서 이 곳의 명칭은 유엔군과 인민군의 ‘공동경비구역 JSA’으로 결정되었다. 같은 해 8월부터 9월 초까지의 포로 교환도 이곳에서 이루어졌다.

그러나 이 곳이 휴전선보다 북측에 있는 것이 문제였고, 결국 1953년 10월 동쪽으로 약 1km 이전하여 휴전선 위에 새로운 판문점을 설정하고, 중립국 감독 위원회 관할로 포로교환장소 건물을 짓게 되었으며, 이 건물들은 현재 판문점에 남과 북을 가로지르는 하늘색과 회색 건물의 원형이 되었다. 하늘색 건물은 유엔군 측, 회색 건물은 북한 및 중국군 측 포로 교환 장소라고 보면 된다.

파일:Building_where_the_Korean_Armistice_Agreement_was_signed.jpg

그리고 원래의 옛 판문점은 "정전협정조인장"이라는 이름으로 북한의 견학 자원으로 활용되고 있고, 대한민국에서는 월북 당연히 갈 방법이 없다. 판문점 견학 시에 다리 너머로 보이는 옛 판문점을 먼 발치에서 볼 수 있을 뿐이다. 물론 북한 쪽을 통해서 판문점 견학 시 반드시 거쳐가는 관광 코스이다. 평화 박물관이라고도 불리워지며 내부에 도끼만행사건 당시 사용되었던 도끼를 전시해놓았다. 그 외에 여러 사진 자료를 전시해놓았다.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북한 측 판문점 견학은 불가능에 가깝다. (북한 측 초청에 의해서 대한민국 통일부의 허가를 받아서 방문하는 경우는 예외, 물론 어렵다.) 유튜브 등에 보면, 북한 측 판문점 관광객들이 올려놓은 영상을 볼 수 있다. 외국 관광객들이 올린 사진들을 인터넷에서 확인 할 수 있다.

공동경비구역 명칭 그대로 유엔군과 북한군에 의해서 공동으로 경비가 되던 구역이었다. 그래서 북한군 초소가 현재 남측 경비구역에 설치가 되었으나, 반대로 유엔군 경비 초소는 북측 경비구역에 설치되어 있지 않았다. 서로 가끔 같이 사진을 찍거나 맞담배도 피우는 일도 흔했다고 한다. https://youtu.be/Qv0c3A0l-V8

그러나 판문점 서쪽 사천의 ‘돌아오지 않는 다리’ 부근에 있던 미루나무에서 1976년 8월 18일 북한군에 의해 발생한 도끼만행사건으로 인해 미군 장교 아서 보니파스 소령과 마크 배럿 대위가 사망하면서, 사건 당일 북한군은 대한민국 측에서 도망치듯 모든 대한민국 초소에서 철수하였다. 이후에는 북측은 북한군이, 남측은 유엔군이 경비하는 지역으로 제한되었다. 자세한 것은 해당 항목 참조.


4. 주요 건물[편집]


파일:/image/001/2013/06/08/GYH2013060700080004401_P2_59_20130608132402.jpg
연합뉴스에서 만든 간단한 안내도.

남북회담본부에서 만든 공동경비구역 안내도는 여기로.

이 항목은 남북회담본부에서 제공한 자료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자료 자체가 최신의 자료가 아니기 때문에 각 언론의 추가 자료가 나올 때마다 갱신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평화의 집 항목의 경우, 남북회담본부 자료에 의하면 "1층에 기자실과 소회의실이 있다"고 되어 있으나, MBC보도에 의하면 "귀빈실과 기자실로 되어 있다"고 보도되었다. 어쩌면 귀빈실, 기자실, 소회의실 다 있을 수도 있고


4.1. 한국 지역[편집]



4.1.1. 자유의 집[편집]


파일:external/www.earthnutshell.com/80-north-korea-dmz-conference-rooms.jpg

북한 측에서 바라본 자유의 집 (1)

파일:자유의집.jpg

북한 측에서 바라본 자유의 집 (2)

파일:external/english.triptokorea.com/The%20Freedom%20House.jpg

대한민국 (남한) 측에서 바라본 뒷면 모습

파일:구)자유의집.jpg

북한 측에서 바라본 옛 자유의 집

파일:구)자유의집-1.jpg

구자유의 집 뒷면 모습

북한의 판문각에 대응되는 건물이다. 첫 자유의 집 건물은 1965년 9월 30일에 2층짜리 콘크리트 건물 두 동에 중간에 팔각정이 있는 형태로 준공됐다. 그러나 판문각에 비해 너무 초라해 보이고, 건평도 달랑 86평으로 대단히 협소해서 1996년 후반에 기존 건물을 싹 밀고 다시 지었고, 1998년 7월 9일에 재오픈했다.

새로 지은 자유의 집은 지상 4층에 지하 2층 규모로, 팔각정은 새로 지은 자유의 집 한켠으로 옮기는 형태로 보존되었다. 첫 번째 사진 좌측에 나온 정자가 바로 팔각정이다. 남양주종합촬영소의 판문점 세트는 새로 짓기 전의 자유의 집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판문점의 옛 모습을 간접적으로나마 체험할 수 있는 장소다.

2019년 6월 30일 오후 3시 54분부터 53분간 이곳에서 남북미정상회담이 개최되었다.

착공 1996.12.13
준공 1998.7.9
건평 1,437평(지상 4층, 지하 2층)
위치 파주군 군내면 조산리
용도 공공업무시설 및 전시시설

각 층은 다음과 같이 구성되어 있다.
- 1 층 : 로비/ 기자실/ 편의시설(식당 등)
- 2 층 : VIP실/ 회의실/ 사무실
- 3 층 : 남북연락사무소, 대회의실
- 4 층 : 전망대 및 다용도 공간


4.1.2. 평화의 집[편집]


파일:external/english.triptokorea.com/The%20Peace%20House.jpg

자유의 집에서 130m 떨어진 곳에 위치한 남북회담용 석조건물이다. 1989년에 지어진 3층 구조의 건물로 1층에는 귀빈실/기자실, 2층에는 회의장, 3층에는 연회실이 있다. 특이 사항으로 각 귀빈실에는 전용 통신선이 설치되어 있다고 한다. 이곳에서 2015년 8월 22일 부터 24일까지 진행된 남북고위급접촉이 진행되었다. 또한 2018년 1월 9일날 2018년 남북고위급회담이 2년 만에 진행되었다. 2018년 4월 27일 2018 제1차 남북정상회담이 개최되었다. 정상회담을 위해 내부수리를 했다고 한다.

링크에 자세한 설명이 있으니 참고할 것.

일단 남북회담본부의 자료에 따른 각 층별 안내는 다음과 같다.

- 1층 : 기자실, 소회의실
- 2층 : 회담장, 남북회담대표대기실
- 3층 : 대회의실, 소회의실


4.1.3. 돌아오지 않는 다리[편집]


파일:external/blogimg.ohmynews.com/1167708894.jpg
파일:external/cfs11.blog.daum.net/48c474ad4fd94&filename=D3K_7378.jpg
돌아오지 않는 다리[4] 옛 이름은 널문다리이며 1번 국도의 명목상 구간이기도 하다.[5]

이곳의 거의 모든 장소에는 나름의 사연이 담겨있다. 동명의 영화에서도 자주 등장하여 더욱 유명한 '돌아오지 않는 다리'는 한국전쟁 포로교환이 이루어진 장소로, '이 다리를 건너면 다시는 돌아올 수 없다'는 의미로 붙여진 이름이다. 영화에서는 이 다리 앞에 있는 초소에서 근무를 서다 월북하였으나... 판문점을 기준으로 '돌아오지 않는 다리'를 건너가면 공동경비구역 밖이 되므로, 이 다리 건너편의 북한군 감시초소는 병력이 많고 중무장 되어 있다. 반면 그와 대치해야 하는 한국군 감시초소는 공동경비구역 내부에 있어 정전협정에 의거 중무장이 불가능한 관계로[6] 무인 감시장비만을 가동하고 병력은 배치하지 않고 있다.

북한이 판문점에 지뢰매설하였는데, 군인들의 탈북을 방지하기 위해서이며, 판문점 인근에 지뢰를 매설한 것은 정전협정 체결 이후 처음이라고 한다.


4.1.4. 중립국감독위원회 캠프[편집]




파일:external/2.bp.blogspot.com/7.jpg
중립국감독위원회 캠프 내부에서 촬영된 모습. 미군한국군 경비병 외에도 민간인 기자와 캐나다군 육군 (검은 베레모에 CADPAT 전투복, 썬글라스를 착용한 대한민국 국군 일등병의 뒷편)의 모습이 보인다.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인근에는 중립국감독위원회 (NNSC, Neutral Nations Supervisory Committee) 캠프가 설치되어 있다. 물론 이곳도 판문점 경비부대의 책임구역이다. NNSC는 정전협정 당시 정전협정 이행 여부를 관리 및 감독하기 위해 설치한 기관으로, 전쟁에 참여하지 않은 스웨덴, 스위스, 폴란드, 체코슬로바키아의 4개국 대표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스웨덴과 스위스는 유엔군 측에서, 폴란드와 체코슬로바키아는 북한 측에서 선택한 중립국가들이었다. 90년대 초 동구권 민주화 과정에서 체코슬로바키아가 체코슬로바키아 두 나라로 쪼개졌고 중감위 업무는 체코가 승계받았다. 이로부터 몇 년 지나지 않아 북한은 양국 중감위원단을 본국으로 추방했고(...) 현재는 스웨덴과 스위스만이 판문점에 상주하고 있다. 체코 정부는 북한에서 자기들을 쫓아내자 학을 떼며 중감위에서 아예 사퇴했고, 폴란드는 일단 아쉬운 대로 본국에서 업무를 처리하다가 큰 회의가 열릴 때만 한국의 협조를 얻어 잠깐잠깐씩 판문점에 들른다.

중립국감독위원회의 임무는 정전협정이 제대로 이행되는지 감시하는 것이다. 또한, 북한에서 온 귀순 군인을 취조심문하는 것이 임무인데, 중립의 입장에서 귀순자가 자발적인 귀순을 했는지 묻고(영상촬영을 한다) 이것을 북측에 근거로 제시하는 것이다.

스웨덴과 스위스가 군사분계선 대한민국 측에 세운 캠프가 바로 현재까지 남아 있는 NNSC 캠프이다. 폴란드와 체코슬로바키아 캠프는 군사분계선 북한 측에 설치되어 있었으나, 1989년 동유럽 혁명으로 두 나라가 모두 민주화된 이후 중립성이 훼손되었다는 이유로 북한에서 식수 및 전기 공급을 중단하는 등의 만행을 저지르다가(...) 결국 체코를 1993년에, 폴란드를 1995년에 축출했다. 이후 체코는 중감위 임무에서 완전히 빠졌고, 폴란드의 중립국 감독위원회 임무는 폴란드 본국에서 이루어지고 있으며 매년 회의에 참석할 때에는 한국 쪽 출입구를 통해 회의장에 들어가고 있다.

북한 측 NNSC 캠프 건물이 평화박물관(...)이라는 이름으로 개관되었다는 헛소문이 나돌지만 사실이 아니다. 문제의 박물관은 위에 설명되어 있듯이 정전협정이 체결되었고, 판문점이 현 위치로 이전하기 전에 잠시 주재했던 구 판문점이다. 아무래도 북한군이 점거해서 자기네가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 그렇게 와전된 듯하다.

파일:external/www.vtg.admin.ch/fotos.parsys.0020.4.photo.Photogallery.jpg
캠프에서 공동경비구역으로 지름길로 갈 수 있는 파란색 도보교가 있다. 2018 제1차 남북정상회담에서 이 다리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의 단독회담이 있었다.

파일:external/www.vtg.admin.ch/fotos.parsys.0016.4.photo.Photogallery.jpg
캠프 자체가 군사분계선에 찰싹 달라붙어 있다.

현재 캠프에 남아있는 스위스군과 스웨덴군 그리고 가끔 폴란드 까지 참여한 회의를 하는데 회의가 끝나면 회의결과를 북한측 통보함에도 꽂아놓는다고 한다. 하지만 북한은 이 통보함에 넣은 회의결과를 단 한번도 가져간 적이 없다. 그러다보니 아예 유엔군이나 미군이 북한 측에 육성으로 통보문을 읽어주기도 하는데, 본문을 읽어주기 시작하면 북한군 병력들이 철저히 무시하고 자기네 건물 내부로 들어가버린다. 또한 아무래도 원래는 임시로 사용했던 건물들인 탓에 아무리 리모델링을 해도 상주인원들의 숙소가 노후화된편이라고 한다. 정기적으로 대포병 대피훈련도 한다.

4.1.5. 기타 건물[편집]


  • 경비병 막사
  • 공동당직장교 사무실
  • H128 헬기장
  • 4개의 초소
  • 검문소


4.2. 군사분계선[편집]


군사분계선에 걸쳐 지어져 있는 건물들은 관할권이 수시로 바뀐다. 만약 남측 관광객들이 판문점에 와서 회담장에 들어갈 경우 이 건물은 일시적으로 남측의 관할이 된다. 이때 남측 경비병 중 1명이 건물의 북한 측 출입문을 잠그고, 그 문 앞에 서서 북한군의 돌발행위에 대비하여 경비를 서고, 또 1명은 회담장 한가운데 있는 회담테이블 끄트머리에 서서 경비를 서게 된다. 반대로 북한 측의 관광객이 같은 건물에 들어오게 될 경우, 북한군은 남측 출입문 앞에 2명이 모두 배치된다. 현재 양측 국민들이 합법적으로 휴전선을 넘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관할권과 별개로, 관리 책임은 한쪽에 일임되어 있다고 한다. 파란색 건물은 대한민국에서 관리하고 회색 건물은 북한에서 관리한다.


4.2.1. 중립국감독위원회 회의실[편집]


中立國監督委員會 (Neutral Nations Supervisory Commission, NNSC)

파일:external/www.vtg.admin.ch/image.jpg
내부 모습.


가장 최근의 내부 모습.

군사정전위원회 회의실 서쪽에 위치한 건물이다. 비공개 회의로 진행되기 때문에 내부 사진이 없다시피 하다. 다만 한국측에서 촬영한 중감위 관련 다큐에서 내부 모습이 잠깐씩 나온다. 구조적으로는 군사정전위원회 회의실과 유사하다. 군사정전위원회 회의실과의 외적인 차이로는 건물 자체의 창문이 작게 나있는데, 군정위 회의와는 달리 위에서 말한 대로 비공개 회의를 하기 때문이다.

또한, 다른 건물들과는 다르게 회의실 본채 건물(파란색)이 서쪽의 회색 건물 3채와 연결 통로로 조립이 되어 하나의 세트를 형성하는 형태인데, 이 건물들의 용도와 내부 모습은 전혀 알려져 있지 않다. 게다가 관광객들도 본채 건물 입구 쪽만 사진을 찍고 이 회색 건물 부분의 대한민국 쪽은 잘 안 찍는지라 외부 모습도 사진이 거의 없었다가 2019년 9월 보수공사 때 유엔사 측의 홍보용 사진 촬영으로 기록사진이 조금 남게 되었다.#1#2


4.2.2. 군사정전위원회 회의실[편집]


파일:external/774f723066ce5c59e79eee48fdb0388ede948df75b8d1cd2588c29cf4473282d.jpg
판문점 군사정전위원회 본회의장에 서양관광객들이 방문한 모습.[7]

군정위 회의가 공개 회의이기 때문에 창문이 큼지막하게 나 있다. 파란색 건물이며 따라서 대한민국에 관리 책임이 있다.

파일:external/s33.postimg.org/1111.png
코난 오브라이언(우)과 스티븐 연(좌)이 코난의 내한 중일 때 찍힌 장면. 사진에서 두 사람은 북한 쪽 탁자에 앉아 있다.

가운데 있는 회담테이블의 가운데를 군사분계선이 지나가고 있다. 즉, 한국 육군 경비병의 오른쪽 반신은 한국 땅에, 왼쪽 반신은 북한 땅에 걸쳐 있는 셈이다.

삼성전자 에어컨이 앞뒤로 2대 설치되어 있고, 실외기도 대한민국 측과 북한 측에 하나씩 있다. 때문에 북측에서 찍은 동영상을 보면 북한 육군 경계병들 옆에 삼성 로고 찍힌 실외기가 놓여 있는 묘한 광경을 볼 수 있다. 북측 실외기를 정비할 일이 생기면, 삼성전자 직원들이 예외적으로 북측과 협의해 방북을 몇 시간 허가받고 잽싸게 작업하고 돌아온다.

실외기를 포함하여 유엔사에서 관리하는 군사회담장 내[8] 시설 관리가 필요할 경우 유엔사군사정전위원회에서 북한에 협조문을 보내 동의를 얻은 후 유엔사 소속 민간인 직원들이 해당 작업을 수행한다. 단 이 경우 경비병은 군사분계선을 넘지 못하기 때문에 매우 긴장되는 광경이 연출된다.[9]


4.2.3. 당직장교 회의실[편집]


군정위 회의실 동쪽에 위치한 파란색 건물이며 판문점에서 24시간 연락을 유지하기 위해 상주시키는 당직 장교들의 회의실. 역시 비공개 회의라 창문이 작게 나 있으며, 가끔 다큐에 내부 모습이 나오거나 간혹 가다 개최되는 공식 행사 등 때문에 내부가 공개되기는 하는 중감위 회의실과는 달리 이쪽은 내부 모습 사진이 아예 없다.


4.2.4. 북측 경비병 휴게실[편집]


당직장교 회의실 동쪽에 있는 회색 건물. 이름은 이렇게 알려져 있는데, 실제 용도와 내부 모습은 전혀 안 알려져 있다. 유엔군에서 부르는 별명은 The Monkey House.

이 건물 동쪽으로는 건물이 없고 콘크리트 경계석이 조금 더 연장되어 있다가 끝나고 거기서부터는 흰색 말뚝으로 분계선이 표시되는데, 이 콘크리트 경계석 부분이 현대그룹 정주영 회장의 떼 방북 때 소를 실은 트럭들이 넘어간 통로였다. 정주영 회장 본인은 중감위 회의실을 통해 입북했다.


4.3. 북한 지역[편집]



4.3.1. 판문각[편집]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Panmunjeom_DMZ.png
대한민국에서 바라본 판문각

조선인민군 육군 경비병들은 보통 한국 육군 경비병들을 경계하며 서 있는 것이 원칙이나, 모종의 이유로 소집할 때에는 맞은편에 보이는 건물로 들어간다. 물론 저 건물 안에서 망원경으로 감시하는 것은 24시간이다. 현관 바로 왼쪽에 있는 창문 안에 망원경이 설치되어 있어 항시 감시인력이 대기하고, 주간에는 현관 바깥에도 병사가 위치하여 두 감시병 간 소통하는 모습도 볼 수 있다. 그러나 2008년에 주 북한 영국 대사를 지낸 존 에버라드의 말에 따르면 인민군들은 군기 없이 그냥 막 돌아다닌다고 한다.

건물 자체의 용도는 북측 경비대 지휘소, 판문점대표부[10], 적십자연락대표부로 활용되고 있다고 한다. 건립은 69년 9월 9일에 120평 규모로 처음 지어졌으나 1994년 12월 1층과 2층을 260평, 3층을 130평으로 증축하여 지금에 이르게 된다.


4.3.2. 통일각[편집]


파일:external/img.seoul.co.kr/SSI_20130706044358_V.jpg

지하 1층, 지상 1층 규모의 건물. 1985년 8월에 김정일의 지시로 건설되었다. 우리 측의 평화의 집과 같은 남북회담용 건물이다.

이렇게만 보면 어디 섬마을 초등학교 건물마냥 작아 보이지만 규모도 상당하고 내부 시설도 세련되지는 않았지만 상당히 고급이다. 2018 제2차 남북정상회담 문서에 올라온 몇 없는 사진과 영상자료만 봐도 대충이나마 고급스러움을 느낄 수 있을 정도. 대리석 장식이 호화스럽다.

2018년 5월 26일 오후 3시부터 5시까지 2018 제2차 남북정상회담이 이곳에서 극비리에 열렸다.


4.3.3. 돌아오지 않는 다리[편집]


파일:external/geosite.jankrogh.com/Img_9056S.jpg
북한에서 바라본 '돌아오지 않는 다리'의 후방 모습. 북한에서 판문점으로 진입하는 길은 중간에서 72시간 다리와 '돌아오지 않는 다리' 방향으로 나뉜다. 사진은 판문점으로 들어가는 '72시간 다리' 쪽 길에서 돌아오지 않는 다리 쪽으로 향하는 길목을 찍은 것으로 보인다.


4.3.4. 72시간 다리[편집]


'72시간 다리'는 말 그대로 72시간 만에 건설된 다리다. 이 다리가 있기 전, 본래 북한군은 '돌아오지 않는 다리'를 통해 사천강을 건너 보급을 받고 있었다.[11] 그런데 판문점 도끼만행사건으로 인해 공동경비구역 남측의 북한군 출입이 통제되자 보급로가 막히게 되었고, 밥차가 다닐 수 있도록 공동경비구역 북한 측에 급하게 다리를 건설해서 72시간 만에 완성시킨 것.

그 밖에도 고인이 된 정주영 회장이 소몰이를 한 길이나 북한이 대한민국 수해 시 을 지원해줬던 길 등이 있다. 현재는 대부분의 큼직한 남북한 교류가 도라산 CIQ를 통해 이루어지므로 이런 장소들은 말 그대로 역사속의 장소로 남은 상태다.

2017년 판문점 귀순 북한군 총격 사건 당시 귀순 북한 병사가 이 다리를 통해 판문점 지역에 접근하기도 했다.


4.3.5. 기타 건물[편집]


  • 경비병막사
  • 7개의 초소 - 이 중 6번, 7번 초소는 엄밀히 따지면 공동경비구역 밖에 있는 초소이다.


5. 관광[편집]


재미있는 사실은, 판문점은 원래 군사정전위원회의 회담을 위해 만들어진 장소이고 지금은 남북 간의 교류를 위해 자주 사용되는 장소인데, 정작 이곳을 방문하는 대부분의 인원들은 일반 민간인 관광객들이라는 점이다.[12] 남북 양측에서도 분단의 상징이라는 점을 내세워 통일/안보관광 자원으로 이용하기도 하고...

그렇다 보니 판문점을 경비하는 부대입장에서도 관광객 보호가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 군사정전위원회, 적십자 등의 정부관련 인원들이야 이곳을 드나드는 게 일상이다보니 알아서 처신을 잘 하지만, 하루에도 수백 명이 찾아오는 관광객들을 일사불란하게 통제하고 돌발상황이 발생하지 않게 예방하는 게 보통 힘든 게 아니다.

보통 판문점을 방문하는 관광객들은 남측의 패키지를 기준으로, 인근의 도라전망대와 제3땅굴까지 패키지로 둘러보는 경우가 많은데, 사실 이런 분위기의 장소가 전 세계적으로 드물기는 하다. 번쩍번쩍하는 서울과는 너무나 비교되는 판문점과 그 일대 비무장지대의 풍경과 분위기가 이곳을 굉장히 특색 있는 관광지로 만들어준 것이다. 냉전으로 분단된 마지막 지역이며, 현재 휴전 상태에 있는 특수한 지역이다 보니 외국인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모양인데, 실제로 이곳을 다녀간 외국인 관광객들의 평가는 아주 좋은 편이다.
  • 판문점을 관광하려면 우선 통일부 판문점견학지원센터에서 견학신청을 하면 된다. (만 8세 이상의 일반국민만 해당, 연간 1인 1회만 가능)
  • 2018년 11월부터 일반인도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별다른 조건 없이 입장할 수 있다고 한다.#


5.1. 대한민국에서[편집]


통일부 홈페이지의 이곳에서 온라인 신청을 받는다. 이전보다 견학 신청이 간소화되어 8세 이상 대한민국 국민은 누구나 개인, 가족 단위로 갈 수 있게 되었다. 단, 방문 횟수는 연 1회로 제한된다. 일, 월, 목요일은 관광 코스를 운영하지 않는다.

2019년 동아시아 아프리카돼지열병 확산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상황으로 인해 중단과 재개가 반복되고 있다. 현재는 판문점이 위치한 경기도가 사회적 거리두기 4단계 상태라서 판문점 견학도 잠정 중단된 상태.

본래 대한민국 국민의 경우 판문점 관광이 대단히 까다로웠다. 2019년 이전까지만 해도 특별한 경우가 아닌 이상 개인 관광은 불가능했고, 사전 예약을 통해 30인 이상 45인 이하의 단체 관광만 가능했었다. 신원조회에만 7주일 씩이나 걸리기에 관광신청은 2개월 이전에 해야 했다. 그러나 2019년 9월 기준으로, #단체 뿐 아니라 개인 관광도 가능하게끔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졌고, 2020년부터 방문 신청 창구를 국정원에서 통일부로 이관하고, 7주일 씩이나 걸리던 신원조회 기간이 2주 정도로 대폭 완화되었다.

복장 제한이 조금 세다. 북한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청바지와 미니스커트를 못 입고 오게 한다. 그런데 좀 웃기게도 청바지 중에서는 특별히 찢어진 청바지를 입고 오지 말라고 하는데 한국이 가난한 나라라고 북한의 선전자료로 쓰일 수 있다는 이유에서 그렇다고 한다. 그런데 반면 대한민국 측에서도 판문점을 가보고, 북한을 통해 판문점에 가본 한 외국인의 말로는, 북한에서는 복장규제가 없다고 한다. 그러면서 북한군 군관들이 관광객들에게 한다는 말이 가관이다.

"여러분, 남조선에서는 판문점에 갈 때 아무 옷이나 못 입고 갑네다. 하지만 공화국은 자유이기 때문에 복장 규제가 없습네다."

애초에 공화국은 청바지를 입고 돌아다닐 수도 없다.[13]

조금 더 편하고 간단한 방법은, JSA에서 근무하는 지인의 면회를 가는 것이다. 면회 가는 것 중에서 판문점을 관광시켜 주는 행사가 있다. 물론 JSA에서 근무하는 지인이 있어야 가능한 방법이지만.

한편, 목걸이, 귀걸이 등 금속 장신구는 햇빛이 반사되어 반짝이면 북한 경비병들이 발포로 오인하여 대응사격을 할 수 있기 때문에 불허하며, 착용하고 왔다면 방문 전 인솔자가 제거해 소지하고 있다 끝나고 재착용하라고 한다. 또한, 유사시 신속히 대피해야 하기 때문에 신발운동화가 원칙인데 이는 잘 안 지켜진다. 구두 신고 왔다고 쫓아낼 수는 없는데다 하이힐 같은 것 아니면 일반적인 구두 정도는 단거리 뛰는 데 별 지장이 없기도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의외로 카메라는 휴대가 가능하고 인솔자의 통제 하에 촬영도 가능하다. 사진 찍을 시간도 넉넉하게 주고 촬영 가능한 범위도 다양한 편이다. 애초에 군사시설이 아닌 남북 간의 회담을 위해 만든 장소이기 때문에 촬영 제한이 심하지 않은 편이다. 물론 촬영제한을 두기는 한다. 남측을 찍으면 북측에 정보를 유출할 수 있다고 해서 북측을 찍는 것만 허용된다.

2019년 이전 견학 코스에는 제3땅굴과 도라산 안보전망대, 도라산역 견학도 세트로 들어 있었지만, 통일부로 이관된 뒤에는 판문점만 견학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기존에 세트로 가던 제3땅굴, 도라산 전망대 및 도라산역은 다른 안보관광 코스로도 갈 수 있고 제한도 많지 않기 때문에 빠진 듯하다. 견학시간은 총 2시간 20분 정도로, 이동시간 및 JSA 경비대대 브리핑을 제외하면 실제로 볼 수 있는 시간은 총 60분이다. 민간인 출입통제선에서는 당연히 군 검문소에서 경비병의 검문을 받아야 하고, 이때 받는 출입증은 돌아올 때까지 항상 옷에 달고 있어야 한다.

출발은 임진각에 있는 견학 안내소에서 한다. 이곳에서 신원확인을 거친 뒤, 버스를 타고 JSA 경비대대에 가서 30분간 브리핑을 듣는다. 그리고 다시 버스에 타고 판문점에 도착한 뒤, 자유의 집, 팔각정, 군사정전위원회 회의실 건물, 2018 제1차 남북정상회담때 했던 기념식수와 파란색의 도보다리 회담장, 장명기 상병 추모비를 관람한다. 원래는 '돌아오지 않는 다리'도 관람코스에 들어 있었지만 통일부로 이관된 뒤에 코스에서 빠졌다. 관람코스에 들어있을 때도 버스에서 내리지 않고 창밖으로만 관람했는데, 유명한 판문점 도끼만행사건이 일어난 장소인 데다, 휴전선에서 너무 가깝기 때문이다. 문제가 된 미루나무가 잘리고 남은 밑둥도 볼 수 있었다.

특히 휴전선을 가로지르고 있는 군사정전위원회 회의실 건물 안에서는 선을 넘어 북한 땅을 잠시나마 밟아볼 수 있는 희귀한 기회도 있지만, 북한 쪽으로 나가는 문은 경비병이 철저히 경비하고 있으므로 나갈 수 없다. 이때 회의실 옆에 난 창문을 통해 북한군 경비병이 감시의 목적으로 들여다보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보통 양측 모두 이거까지 제지하진 않는다. 창문 너머지만 북한군을 가장 가까이서 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중립국감시위원회 건물은 군정위의 바로 서쪽 옆에 있는 건물로, 대한민국 측이건, 북한 측이건 관광객들은 여기 들어갈 일이 절대 없다. 창문도 큼지막하게 난 군정위 회의실과는 달리 벽 윗부분에 치우쳐서 좁게 나 있는데, 이것은 중감위 회의가 비공개로 진행되기 때문이다. 반면 군정위 회의는 공개로 진행된다.

견학요금은 무료다. 외국인의 경우에는 지정된 여행사를 통하여 견학이 가능하다.

한국인 관광객들은 2019년까지만 해도 단체 관광이 기본이었기 때문에 민주평통, 바르게살기협의회, 자유총연맹 등의 단체에 속한 사람들 또는 단체 견학을 오는 학생[14]들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외국인 관광객은 일본인 관광객이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해 왔는데, 2000년대 이후로는 중국인 관광객들의 비율이 빠르게 늘고 있다.

코난 오브라이언내한 때 판문점을 방문하기도 했었다. 테이블을 가로질러가서 콩트를 진행하기도 했었다고 한다.

5.2. 북측에서[편집]


파일:external/www.earthnutshell.com/87-dmz-conference-room-soldiers.jpg
북측에서는 주로 외국인들의 평양 관광 공식 일정 후반에서 개성 관광의 부수 코스로 강제 선택되며, 한국과 달리 인원 제한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 주로 중국인 관광객들과 조총련계 일본인들이 단체로 방문하고 있다. 인원 제한이 없는 만큼 50명 이상이 한 번에 올 때도 있으며, 이럴 경우 일부는 회담장견학을 하고 나머지는 판문점 옥상으로 올라가 관광을 실시한다.

대부분 평양에서 개성평양간 고속도로를 통해 이동한 뒤, 북방한계선에서 경비대원이 차에 동승해 판문점까지 이동한다. 견학 전에는 전문 강사에게 한국전쟁과 분단 상황에 대한 북한 또는 중국 시점의 역사왜곡 쩌는 설명을 들은 뒤 판문각과 회의실을 둘러보고 다시 개성을 거쳐 평양으로 돌아오는 것이 일반적인 코스라고 한다.

물론 이 북측 관광에서도 회의실 내부를 견학할 수 있지만, 마찬가지로 대한민국 쪽으로 나가는 문을 북측 경비병이 막아서고 있으니 그 쪽으로 나갈 수는 없다. 2000년대 초반에는 국군 경비병들이 북한군이 하는 것처럼 감시 목적으로 들여다보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는 증언이 외국인 관광객들 사이에 있었다. 2010년대에는 감시장비의 발달로 직접 들여다 보는 경우는 없다.


6. 군 복무지로서의 판문점[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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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 타의로 JSA에 가게 되는 경우[편집]


1사단 소속 장병의 경우,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JSA에 가게되는 상황에 처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는 파견 병력으로서의 임무가 부여되는 것이지, JSA대대원들과 같은 임무를 수행하는 것은 아니다. 가령 미군이 대규모 훈련이라 할 경우, 당연히 판문점 인근 미군의 공백은 JSA의 몫이다. 그럼 JSA의 공백은 누가 메꿀까? 1사단이 메꾸게 된다. 이를 위해 편제된 부대가 전진타격대인데, 주로 보병여단 예하의 중대 병력들이 돌아가며 맡는다. 쉽게 말해 사단 기동타격대. 전진타격대는 JSA 상황 발생 시 10분 내에 현장에 도착해 아측을 지원하는 것을 임무로 한다. 유사시 비무장지대 진입 및 증원임무에 대한 교육도 받기는 하나, 단순히 훈련을 목적으로 비무장지대 내에 진입할 순 없으므로 상황조치 훈련의 대부분은 (비무장지대 바깥에 위치한) JSA병력 주둔지 캠프 보니파스에 있는 주요 벙커를 선점하는 데 맞춰져 있다. 대부분의 경우 다행히도 도착 시에 상황은 이미 잘 끝나있고, JSA 농구장에서 농구나 하며 윗선 부대로부터 상황 종료 명령이 떨어질때까지 기다린다.

연대마다 경비대대가 있는 최전방 부대 환경상 장병들에게 전진타격대 근무는 비교적 여유로운 파견지로 꼽히곤 했다. 휴전선에서 잠도 제대로 못자고 24시간 긴장해 있을 필요도, 페바에서의 과도한 훈련과 작업에 혹사당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 파견이기 때문에 상급부대의 간섭에서도 어느 정도 자유롭다. 대부분의 일과는 상황조치 훈련과 사격훈련, 병기본 교육[15], 체력단련, 민통선 출입 영농인들에 대한 검문검색으로 채워진다. 충분한 수면시간과 적절한 체력훈련, 여유로운 근무환경 덕에 두달 쯤 지나면 중대원들의 체력수준이 급격히 향상되는데, 몇몇 장병들은 전진타격대 파견을 "요양"이라 표현하기도 한다. 다만 두달마다 각기 다른 병력들이 돌아가며 주둔하는 곳이라 생활 수준은 정식 소속 부대들에 비해 떨어지는 편이다. 그래도 외진자나[16] 전역이 2~3일밖에 남지 않은 말년병장들은 원 주둔지로 복귀하여 거기서 지낸다.

7. JSA 비무장화 사업[편집]


파일:S2018110312_20181103164638994.jpg

JSA 비무장화 공동검증을 위해 경계석에서 협의하는 남북미 군 관계자들.

파일:20181016175109597070.jpg

정전협정 이후 최초로 평화의 집에서 남, 북, 유엔사 관계자들이 삼자 회의를 갖는 모습.

9월 평양공동선언에 따라 남북은 2018년 10월에 판문점 및 공동경비구역 일대의 일체 비무장화 방안을 논의했다.

그 동안 판문점을 비롯한 공동경비구역 및 비무장지대 지역에서 남과 북이 비무장이 아닌 중무장 상태로 정전협정을 어겨가면서 상호간 첨예한 대립과 감시를 했고 남북이 우발적인 충돌이 잦았다. 따라서 이러한 충돌을 막고 비무장지대의 의미를 살리고자 남북은 비무장지대 평화지대화를 추진했고 수 차례의 군사회담과 정상회담을 통해 계획을 확정지었다.

DMZ 내 GP 시범 철수 및 JSA 비무장화 (2018년 10월 25일 비무장화 완료)

남북은 비무장지대 상호 1km 이내에 근접한 감시초소 각 11개씩을 시범 철수하고, 향후 비무장자대 내의 모든 감시초소를 철수해 실질적 비무장화를 추진하기로 했다. 또한,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의 경비 인력의 비무장화도 정전협정 취지에 따라 복원하기로 했다. 이는 2018년 11월 1일부터 20일 동안 지뢰를 제거하고 초소 및 인원·화기 철수, 감시장비 정보 공유, 공동 검증 등의 방식으로 추진된다.

파일:텅빈판문점.jpg

먼저 한국과 북한은 JSA 상호 경비 인력의 완전한 비무장화를 추진했다. 기존에는 중화기, 소총등이 반입 금지되고 권총만 휴대가 가능했으나, 비무장화가 된다면 권총등 일체의 총기류를 무장하지 못한 채로 완전한 비무장상태의 남북 경비병이 경계를 서게 된다. 또한, 판문점 도끼만행사건 이후 나뉘어졌던 경계선을 제거하고 다시 이전의 공동경비 상태로 복원하여 판문점 지역 내에서 만큼은 군사분계선을 없애 남북 민간 관광객들이 자유롭게 오갈 수 있게 하기로 했다. 대신 돌발적 월경의 위험성을 감안하여 이에 대한 별도의 경비조치를 하기로 했다. 또한 북측 판문점 지역에 우리 경비초소 1초소를, 우리측 판문점 지역에 북측 경비초소를 1초소 두어 완전한 공동경비체제로 복원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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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강원도 철원군 화살머리고지에서 남북은 상호간 군용 전술도로를 연결하기로 했다.[17] 6.25 전쟁 당시 남북 최대 격전지였던 지역 위에 1953년 정전협정 체결 이후 65년 만에 사상 처음으로 군용도로가 개설된 것이다. 사진의 노란 팻말은 군사분계선을 표시하는 팻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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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각군 공병대가 도로공사를 맡았는데, 남북 군인들이 서로 조우하고 악수를 나누는 익숙치 않은 광경이 나오기도 했다.


8. 기타[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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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동경비구역의 설치 이후 구역 내에서는 군사분계선의 효력이 반쯤 소멸되어[18] 남북 쌍방의 관계자들은 구역 내에서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었다고 한다. 1976년 8월 18일에 발생한 판문점 도끼만행사건 이후 군사분계선의 효력을 완전히 되살리고 기존의 표지판 외에 추가적으로 자재를 들여와 군사분계선을 표시,[19] 이후 상대 영역에 있던 병력들은 모두 철수하였으며 모든 군인들은 이 군사분계선을 넘어 상대 측의 지역에 넘어갈 수 없고, 상호 간 대화도 금지되었다. 그러나 사건 이전에 친분을 다졌던 남북 경비병들이 이후에도 분계선에서 몰래몰래 만나 전역할 때까지 친분을 유지하였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물론 세월이 지나고 세대가 바뀌면서 이런 모습은 대부분 사라졌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암암리에 있을 것으로 보인다. 판문점에서 근무한 경력이 있는 탈북자에 의하면 원래 감시가 심해서 대화를 하지 못하게 되어 있지만, 몰래 한국 측 병사에게 조심스럽게 껌을 달라고 얘기해서 받았다고 한다. 민정중대 관할 방축골이나 얄미 쪽으로 순찰 나가거나 특이사항을 대대장이 직접 보겠다고 해서 나가면 아직도 북한군들이 담배 달라고 소리친다. [20] 말 걸다 걸리면 일단 기부반 취조 후 영창행 북한군 경비병들이 경계를 넘어 알밤을 주은것이 뉴스거리가 되기도 했다고
  • 2018년 10월 남북고위급회담이 판문점 남측 평화의 집에서 열린 날에 평양 선언에서 남북 정상이 합의하였던 JSA 내 지뢰 제거가 모두 완료되었는데, 닷새 이후에 판문점 내 초소 철거 및 비무장화가 진행될 예정이다. 그리고 비무장화가 완료되면 남북한 민간인과 관광객, 외국 관광객은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JSA 남북지역을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다.
  • 남북통일이 성사된다면 판문점은 군사지역에서 해제될 것이며[21], 판문점은 역사박물관 겸 교육연수원으로 탈바꿈할 가능성이 크다.[22]
  • 2018 제1차 남북정상회담 판문점 선언 당시 완전한 종전과 평화협정을 맺고 군사분계선을 평화구역으로 지정하자는 내용이 발표되었다.
  • 2019년 6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 곳을 통해 북한 지역에서 김정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무위원회 위원장을 만났다. 뿐만 아니라 문재인 대통령처럼 분계선을 김정은 위원장과 잠시 넘어갔다 돌아오기도 했다. 이로 인해 트럼프는 사상 최초로 북한을 방문한 현직 미국 대통령이 되었다. 이는 당시 트럼프 대통령에게는 한반도 문제가 외교업적분야에서 중요한 관심사였기 때문인 것으로 추측된다.
  • 2019년 9월 12~14일 태풍으로 파손된 판문점 건물을 한국군, 북한군, 유엔군사령부가 협력해서 보수했다.#
  • 판문점의 지명의 유래에 대해서 몇 가지 민간어원설이 존재하는데 대표적인 예로 선조가 도주하다가 이 지역에 널판지를 깔아 도망치며 생긴 지명이라는 설, 본래 지명이 널문리였으나 6.25 전쟁이후 협상에 참여한 중국측이 널문리를 기록할 방법이 없었기 때문에 중국을 배려해 판문이라는 한자어 지명으로 바꿔 버렸다는 설, 판문점의 '店'이 널문리 가게앞에서 회담을 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라는 설 등이 존재한다. 그러나 선조 해당지역을 지날때 판문이라는 지명이 이미 쓰였다는 점(조선왕조실록 선조실록), 선조 훨씬 이전인 문종시기에 개성부 판문평에 군사를 주둔한 기록(조선왕조실록 문종실록), 순조시기에 김경선의 여행록에 나타나는 판문점이라는 문구(연원직지 회정록), 이 이외에도 현 판문점지역에 해당지역을 부르는 명칭이 판문교, 판적교(板積橋), 판적천 등의 이미 판문이라는 한자표기법이 존재했음을 보면 판문점에 대한 민간어원설들은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


9. 사건 및 사고[편집]



9.1. 개별 문서가 존재하는 사건 및 사고[편집]



9.2. 1962년 총격전[편집]


1962년 9월 5일, 북한 측 경비병들의 제안으로 0979 표식판 근처에서 남북한 경비병들이 추석을 기념하는 술자리를 가졌다. 하지만 술자리에서 언쟁이 벌어져 이것이 총격전으로 번졌고 인민군 3명이 살해되고 중위 2명이 부상을 입고 국군의 포로가 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9월 7일, 군정위는 인민군 시신 3구를 북한 측에 반환하고 장교들은 치료가 끝나는대로 북송하기로 합의하였으나 장교 2명은 모두 북송을 거부하고 대한민국에 귀순의사를 밝혔다. 이에 북한은 오랫동안 이것이 강제억류라고 주장하며 북한이 억류하고 있는 한국군이나 미군 인원의 송환에 지극히 비협조적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장교 중 한명이 가족들에게 돌아갈 의사를 밝히면서 1963년 8월 20일 177차 본회의와 그 다음날인 8월 21일 공동일직장교회의를 거쳐 장교 한명을 북으로 송환하였다.


10. 관련 대중매체[편집]




11. 관련 문서[편집]




12. 둘러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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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명주소] 통일로 3303[1] 한반도의 지정학적 위치, 그리고 상황, 아울러 위기국면, 그리고 주변 4대 강국 사이의 알력이 펼쳐지고 있는 지금의 상황을 생각한다면 납득되는 말이다. 더구나 대한민국과 북한의 경우, 전쟁이라도 일어났다간 그야말로 세계대전으로 확대될 정도의 위험성과 파괴력을 지닌 지역이다. 강력한 5개국(한국,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이 이곳에서 서로 기싸움을 벌이고 있다. 그리고 한국과 일본도 다른 3개국에 비해서는 밀려도 군사력이 만만한 수준은 아니다. 한국과 일본의 경제력, 군사력은 주변에서 영향력 다툼을 하고 있는 러시아, 미국, 중국에 밀려서 그렇지 전세계적으로 보면 최상위권에 속해있는 나라다. 미국과 소련은 냉전기간동안 군사, 경제력으로 알력다툼을 해왔고 소련 해체후 지금도 미묘한 분위기를 띠고 있는 데다 중국은 2010년대에 들어서 급부상하고 있는 나라이다.[2] 그동안 어룡리로 알려졌으나, 실제로는 지번 주소가 없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어룡리는 포털 사이트에서 임의로 부여된 것. 원래 주소는 선적리였으며, 결국 2020년에 선적리를 복원하는 것으로 해결하였다.[3] 1935년생. 1993년 7월 7일 부임. 재임 중 소장으로 진급하였으며, 본국으로 돌아간 이후 주일 중국대사관 국방무관을 지내다가 1997년에 퇴역했다.[4] 사진의 군사분계선 표지판 0090번은 군사분계선에 설치된 1292개의 표지판들 중 유일하게 군사분계선상에 설치되지 않은 표지판이다. 분계선이 다리 한가운데를 지나고 있는 관계로 다리 한가운데에 꽂는 것이 맞으나 기술적 문제 때문에 부득이하게 다리 입구에 설치되었다. 대한민국 측에 설치된 것은 이 표지판의 관리 책임이 대한민국에 있어서로 추측된다.[5] 실질적인 1번 국도의 역할은 통일대교 횡단 후 통일촌 삼거리에서 좌회전하여 나오는 도라산역을 거쳐 개성공단으로 가는 희망로가 수행한다. 판문점으로 가려면 해당 삼거리에서 직진해야 한다. [6] 판문점 내에서 특수한 경우가 아니라면 권총만 소지 가능하다. 판문점의 병사들은 군사경찰 완장과 헬멧만 착용할 뿐, 군사경찰이 아니다.[7] ACU 복장의 미 육군은 관광객들을 안내하는 투어가이드이며, 군사경찰 행사복을 입고 있지만 사실은 보병인 대한민국 육군은 경비중대 소속의 경비병이다.[8] 군사분계선에 걸친, 파란색 건물들만을 말한다. 역시 군사분계선에 걸쳐져 있지만 회색인 건물들은 북한에서 관리한다.[9] 이유는 경비병이 작업중에 도청장치를 넣어 놓을 수 있기 때문이다.[10] 북한은 군정위가 철수한 1994년 4월 28일 이후, 동년 5월 24일 이곳에 판문점대표부를 설치한다.[11] 그때까지 북한군은 '돌아오지 않는 다리'로 돌아갈 수 있었다. 그때는 유일한 통로였기 때문에 당연한 이야기이다.[12] 이러한 국경을 관광으로 이용하는 나라가 하나 더 있는데, 바로 파키스탄과 인도의 국경이다. 펀자브에 위치한 아타리/와가 국경은 남북관계보다 더 활기찬(?)분위기의 국경인데, 울타리를 사이로 두고 누가 더 발을 높이 들어 차느냐, 누가 더 맹렬하게 바라보느냐 등의 군인이 대놓고 싸우는 식이다. 그러나 정작 이런 대결은 인도만 관심이 있고 파키스탄은 별 관심이 없는 듯하다.[13] 1990년대~2000년대 평양의 고위층 자제들은 몰래 구해다 입는 것으로 알려지긴 했다. 또한 2000년대 초반 외국인 관광객 대상으로 청바지를 허용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하지만 2010년대 들어서 이러한 소식이 없는 것을 볼때 더이상 허용하지 않는 것으로 보이고 걸렸을 때 커버를 해 주지 못한 경우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14] 대학생의 경우에는 군사나 안보, 통일 및 북한학 관련 학과에 기회가 많이 오는 편이다.[15] 육군 표준 병기본 교범에 나오는 내용을 교육한다.[16] 복귀 다음 날에 대대통합으로 외진을 실시하기 때문에 여유가 되면 원 주둔지에 있는 의무대에서 재워주기도 한다.[17] 이로써 경의선과 동해선처럼 한국과 북한을 직접적으로 잇는 3번째 도로가 완성되었다. 이 도로는 예전 국도 3호선의 중심 부분이기도 하다.[18] 아예 없었던 것이 아니다! 판문점 도끼만행사건 이전에도 JSA 내에는 군사분계선이 엄연히 존재하였으며, 군사분계선 표지판도 세워져 있었다.[19] 회의장 구역에는 그 유명한 콘크리트 경계석으로 (이거...당시 군정위 근무하던 한국군 소속 병사가 손으로 공구리 쳐서 발라 만들었다), 그 밖의 지역에는 일정 간격으로 하얀색 말뚝을 박았다.[20] 현재에도 정전위나 중감위 회의장을 비롯하여 분계선상에 세워진 가건물 내에서는 군사분계선을 자유롭게 넘나들 수 있다. 물론 상대 쪽 출입문으로는 절대 나갈 수 없다.[21] 베를린 장벽과 구 동서독 국경이 그랬듯이.[22] 다만 주변이 지뢰밭이라 일부 구역은 통제된 채로 남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