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유불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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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유래
3. 다다익선과의 관계
4. 용례
5. 관련 문서


고사성어




지나칠 과
오히려 유/같을 유
아닐 불
미칠 급


1. 개요[편집]


지나친 것은 미치지 못한 것과 같다.

를 '오히려'로 해석해서 "지나침은 오히려 (모자람에) 미치지 못한다."[1]로 알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 잘못된 해석이다.

여기에서 사용된 '猶'는 서술어로 쓰인 것이며, 서술어로 쓰일 때의 뜻은 '같다'는 뜻이다.[2] 따라서 '지나침(過)은 미치지 못함(不及)과 같다(猶)'가 맞다. '과유불급'은 모자람이 지나침보다 낫다는 식의 우열을 뜻하지 않는다. 그렇게 알고 있는 이들은 전부 뜻을 오역한 것이며, 공자가 주장한 중용의 가치에도 전혀 맞지 않는다. 조선 성균관의 적통 계승을 주장하는 성균관대학교 유학대학 유학동양학과 교수들은 이견의 여지없이 '같을 유'가 맞다고 강론한다.

결국 과유불급은 공자의 핵심가치였던 중용과 같은 뜻인데, 한국속담 '과하면 모자람만 못하다'나 영미권 속담 '과하면 독이다'와는 다른 뜻인데도 흔히들 같은 뜻으로 착각해 과함만 경계하는 것은 이 단어의 올바른 용례가 아니다.


2. 유래[편집]


논어에서 나오는 말로, 공자의 제자 자공이 공자에게 물었다.

자공: "자장자하 중에 누가 더 낫습니까?"

공자: "자장은 지나치고, 자하는 미치지 못한다."

자공: "자장이 낫다는 말씀이십니까?"

공자: "지나침은 미치지 못한 것과 같다."


자공이 공자에게 「자장자하 중 누가 현명합니까?」 라고 물은 적이 있다. 어느 날, 자장이 공자에게 「사(士)로서 어떻게 하면 통달했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라 물었다.
이에 공자는 도리어 자장에게 도리어 묻기를,「그대가 말하는 통달이란 무엇인가?」하였다.
자공이 답하기를,
「제후를 섬겨도 반드시 그 이름이 높아지고, 경대부(卿大夫)의 신하가 되어도 또한 그 이름이 나는 것을 말합니다.」
하니, 공자가 말했다.
「그것은 듣는 것이지 통달이 아니다. 본성이 곧아 의를 좋아하고, 말과 얼굴빛으로 상대방의 마음을 알며, 신중히 생각하여 남에게 겸손하며, 그렇게 함으로써 제후를 섬기거나, 경대부의 신하가 되어도 그릇되는 일을 하지 않는 사람이라야 통달이라 할 수 있다.」 하고 공자는 자장의 허영심을 은근히 나무랐다.
또한 자하에게는 이렇게 타이른 적이 있다.
「군자유(君子儒)가 되고, 소인유(小人儒)가 되지 말라.」[3]
이 두 사람을 비교해 달라는 자공의 말에 「자장은 지나쳤고, 자하는 미치지 못했다.」
「그러면 자장이 나은 것입니까?」
「지나침은 미치지 못함과 같으니라.(過猶不及;과유불급)」
출전: 논어의 선진편(先進篇)


3. 다다익선과의 관계[편집]


과유불급과 다다익선은 상호모순되거나 반대, 안티테제의 개념으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이 같은 모순적인 상황은 물리학이나 경제학 등 우리 주위에서 흔히 나타나는 현상이자 개념이기도 해서 크게 놀라운 것은 아니다. 사실상 진테제에 해당되는 연속적인 개념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

경제학적인 관점에서 살펴보면 '다다익선'은 경제학 초기의 중상주의나 중농주의 학파와 흡사하다. 세이의 '수요의 법칙'과도 일맥상통한다. 즉 경제가 발전하는 초기에는 수요가 대단히 많기에 많을수록 경제적으로 이득인 현상이 자연스럽다. 하지만 경제가 어느 정도 안정기에 들어선 상황이라면 수요가 한계에 도달하기 때문에 '정도가 지나치면 탈이 되는 현상'이 종종 발생한다. 대표적인 것이 2008년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부채를 과도하게 늘리다 발생한 '과유불급'의 대표적인 현상이다.

다다익선의 고사를 봐도 알 수 있다. 한신유방에게는 10만 병사를 이끄는 것이 적당하지만 자신의 경우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는 발언을 했다. 한신의 경우 중국 최고의 장군이라고 불리지만 유방의 경우 지휘를 못하진 않지만 항우에게 계속해서 패배했고 실제 10만 이상을 끌고 가 대패한 적이 있다

요약하면 '다다익선'의 상황이 분명 존재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상황이 바뀌면 '과유불급'인 상황도 닥치게 된다는 의미다.

대체적으로 다다익선은 물질적인 측면에서 많이 쓰이고, 과유불급은 정신적인 측면에서 많이 쓰이는 경향이 크다. 아무래도 물질은 모으는 쪽이 더 중요한 경우가 많고, 정신은 자제하는 쪽이 더 중요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라고 보기 쉽다. 의미도 '많을수록 좋다'와 '하지만 그것도 적당히 해라'로 함축할 수 있다.


4. 용례[편집]


현대에 굉장히 많이 인용되는 말로, 사람이나 집단의 무리한 욕심으로 인해 재앙을 초래할 때 언급하는 단어가 되었다.

작품에서는 아무리 욕심이 많지 않아도 비중이 너무 많거나 지나치게 나서는 캐릭터는 인기가 낮아지고[4], 최악에는 이러는 행동이 사망 플래그가 되기도 한다. 또는 자만심이 지나치거나 이미 승리를 잡았음에도 스스로 제 무덤을 판 사례도 있다.

그리고 인간이 섭취하거나 투여받는 약품, 영양소 등에서도 매우 중요하게 언급된다. 당장에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비타민 A를 과다섭취하면 사망에 이를 수 있습니다."라는 문구도 그렇고, 탄수화물이나 단백질과식하면 비만이 되는 것 등이다. 옛 속담 중에 \'흉년에 어미는 굶어 죽고 아이는 급체해서 죽는다.\'가 있다. 물도 많이 마시면 죽을 수 있다. 그러니까 뭐든지 좋다고 아무거나 먹거나 과다섭취해서도 안 됨을 유념하자. 또한 자신의 능력을 초과하여 동물을 많이 키우는 것도 동물들에게 좋지 않고, 자신의 능력을 초과하여 자식을 많이 키우는 것도 자식들에게 좋지 않다.

경제학 분야에서도 용례를 찾을 수 있다. 저축을 충분히 하면 은행을 통해 돈이 돌기 때문에 경제에 좋지만 일본 기성세대 수준으로 저축이 과도하면 소비가 줄어 경제에 악영향을 미친다. 환율의 경우에도 너무 낮으면 수출이 잘 안 되어 곤란하지만 너무 높으면 수입이 부담스러워진다. 세금 역시 너무 낮으면 국정운영에 필요한 자금을 확보할 수 없지만, 너무 높으면 기업이 조세 피난처로 도망갈 수 있다.

심리학 쪽에서도 이 사자성어는 유효하다. 적당한 자존심은 사기 고취와 의욕의 향상을 불러오지만, 별다른 능력도, 내세울 스펙도 없이 쓸데없이 자존심만 높으면 허세, 중2병이 되기 쉬우며, 반대로 자존심이 결여되면 업신여김을 당한다. 전통 예법에서도 비슷하게 '과공비례(過恭非禮)'라는 표현이 있다. 공손함이 지나치면 오히려 예에서 어긋난다는 뜻이다. 사물 높임법 문서로.

잠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잠도 거의 안 자고 일만 하면 과로 등으로 무리하여 생명을 깎아먹지만, 반대로 시체놀이 수준으로 너무 오래 자면 오히려 더 무기력해지고 건강에도 좋지 않다.

5. 관련 문서[편집]


  • 경로의존성, 규모의 경제: 어떤 제품이 널리 보급되면 가격, 유지에 유리하게 되겠지만, 그 정도가 세면 영국의 가스등처럼 신기술 제품 도입이 어렵게 된다.
  • 교각살우: 대응할 만한 속담으로는 '쇠뿔도 단김에 빼라'가 있겠다.
  • 양극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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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오히려'라고 해석하면 구조적으로 이상한(어디에 미치지 않는지 비교 대상이 없음) 문장이 되어버린다.[2] 참고로 '同'의 옛 훈이 '오힌 동'.[3] 군자유란 자신의 수양을 본의로 하는 구도자, 소인유란 지식을 얻는 일에만 급급한 학자.[4] 캐릭터의 2차 활용(잦은 미디어 믹스 출연이나 사이드 스토리 등)으로 캐릭터의 흥미나 스토리의 소모율을 너무 빠르게 앞당기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