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이가 문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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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궁견환전 등장인물
기빈
과이가 문원


파일:견환전_기빈.jpg

이름
과이가[1] 문원 (瓜爾佳 文鴛)
배우
당예흔
민족
만주족 양황기
입궁일
11월 1일
거주지
저수궁 → 쇄옥헌[2] → 장춘궁[3] → 저수궁[4] → 교호관[5] → 냉궁[6]
가족관계
아버지: 과이가 악민
남편: 옹정제
파벌
황후파
품계
기(禥)귀인

기빈[7]

기귀인[8]

폐서인[9]
원작품계
정6품
정5품
종4품
종3품
정3품
정5품
종8품
폐위
기(禥)귀인

기빈

관순의

관첩여

기귀빈

기빈

관경의

폐위

1. 개요
2. 출신
3. 작중 행적
3.1. 입궁과 황후를 향한 충성
3.2. 기빈 시절
3.3. 기귀인으로 강등
3.4. 친자 확인 사건
3.5. 폐서인 및 최후
4. 특징
4.1. 성격
4.2. 방정맞음
4.3. 강한 멘탈
4.4. 뛰어난 미색
5. 인간관계
6. 원작에서
7. 기타



1. 개요[편집]


옹정황제의 여인의 등장인물.


2. 출신[편집]


견환의 부친 견원도와 같이 연갱요를 쳐냈던 공신이자, 정 3품 도찰원 부도어사인 과이가 악민(瓜爾佳 鄂敏)의 딸로 이름은 과이가 문원이다.

만군 양황기(상3기) 소속. 수녀 선발 때는 병 때문에 입궁하지 못했으나, 과이가 악민이 견원도와 같이 연갱요를 축출하는 데 공을 세웠고, 이후 황제가 충심 장려 차원에서 공신들의 딸을 입궁시키는 혜택을 베풀기로 했을 때 입궁한다.[10] 황실 후궁들 중 가장 높은 위치에서 커리어를 시작했는데, 같은 명문가 출신에 똑같이 귀인으로 시작한 심미장이나 부찰귀인도 처음에는 받지 못한 봉호를 기귀인만 처음부터 받고 시작한 것이다.[11]

3. 작중 행적[편집]



3.1. 입궁과 황후를 향한 충성[편집]


연갱요를 축출한 공신의 딸을 후궁으로 들이기로 하면서 여빈[12]의 동생과 함께 후보로 추천된다. 만군기가 부족한 현 후궁 상황에 의해 한군기인 여빈의 동생을 제치고 간택받는데 바로 봉호 '기'와 귀인의 품계를 받으며 세도가의 면모를 보인다. 그리고 황후와 비빈들이 첫눈에 미인이라 평한 것을 보면 미인인듯 하다.[13]

시침을 든 기귀인은 바로 견환이 있는 쇄옥헌으로 처소를 옮긴다. 그렇게 견환에게 알랑거리는 한편, 완빈이 총애를 받으니 옆에 있으면 이득이 생긴다며 계획적이고 영악한 모습을 보인다. 그 뒤 황후의 치장을 도우며 대화하는데 수녀간택 당시 병에 걸려 참여하지 못했는데 황후의 공으로 입적하게 되었다며 황후에게 감사를 표한다. 또한 황후의 한군기 천하라는 말에 동감하며 "아버지도 그러셨죠. 같은 공을 세웠는데 누구는 이부상서겸 좌도어사가 되고 누구는 부도어사에 만족해야 하냐고요." 라며 나선다. 그러자 황후는 기귀인을 포섭하는데 기귀인도 이에 화답하며 황후의 편에 설것을 암시한다.[14][15] 즉, 견환에게 친근하게 군 것은 모두 총애를 얻기 위한 수작일 뿐 기귀인과 그 가문은 애초부터 견환을 못마땅해했던 것이다. 이후 기귀인은 처소로 돌아간다.

기귀인의 가마 행렬이 연답응과 마주치게 된다.
시녀: 건방지구나! 기귀인께 절을 올리지 못하겠느냐?
기귀인: 이런... 누군가 했더니 화비마마군요. 마마, 잊으셨습니까? 나무가 쓰러지면 원숭이는 흩어지는 법이죠.
연답응: 원숭이가 흩어진다고? 맞는 말이다. 아비의 공으로 입궁을 한 니가 나와 뭐가 다르단 말이냐? 지금이야 꿈이 크겠지만 넌 아마도 나와 똑같은 신세가 될 것이다.
기귀인: 감히 일개 답응 주제에 날 모욕하다니! 황후완빈이 알면 어떻게 될까?
연답응: 황후면 어떻고, 완빈이면 어떠하리? 모두 내게 패했던 자들이다. 게다가 넌 그들 밑에 있는 일개 귀인일 뿐이지.[16] 그자들이 지금 잘 나간다고 한들, 추락할 날이 없을 줄 아느냐? 두고 봐라.
(연답응이 사라지자 기귀인은 상당히 불쾌한 표정을 지으며 자기 갈 길을 간다.)[17]

황후와 몇 비빈들과 함께 연극을 보고 논다. 연극을 보면서 황후에게 알랑거리다 말실수를 하는데, 바로 사가의 서출 동생보다 황후와 말이 더 잘 통한다는 것.[18] 황후는 너그럽게 넘어가주었고 연극이 끝난 뒤 처소로 돌아온다.[19] 하지만 돌아온 처소는 연답응에 의해 불에 타버렸고 연답응의 짓이 분명하다며 분개한다. 이 일로 다시 처소를 옮기게 된다.

이후 황후와 가문과 함께 본격적으로 견환을 위기에 몰기 시작한다. 아비인 과이가 악민은 견원도황제의 의견 차이가 있는 것을 알게되는데, 이를 기귀인과 상의하며 긴밀하게 움직인다. 거기다 기귀인은 견환이 견원도와 비슷한 생각과 행보를 보이자 이를 악민에게 전해 황제와 견원도 사이를 이간질하게끔 한다. 황후도 함께 황제를 충동질하자 황제의 의심병이 다시 일기 시작했고 결국 과이가 악민은 여러 술수를 통해 견원도가 역적을 동정한다 모함하고 유배 보내는데 성공한다. 이 당시 견환은 롱월공주를 임신 중임에도 황후의 계략으로 연금당해 있었는데 집안의 몰락까지 겹치자 쓰러져 조산을 하게 됐고, 집안은 견원도를 비롯해 식구 모두가 영고탑으로 유배를 가게됐다. 견환의 집안 전체에게 그야말로 불구대천의 원수가 된것이다. [20]


3.2. 기빈 시절[편집]


파일:attachment/기귀인/e4.jpg
잘나가던 기빈 시절. 스타일도 이때가 가장 화려하다.

견환이 출궁 이후 황후의 입김으로 빈으로 승격되어[21] 안릉용과 더불어 총애의 절정을 달렸다. 그러나 황후는 기귀인을 밀어주면서도 동시에 견제했는데, 빈이 된 기념으로 좋은 향이 나는 홍마노 구슬 목걸이를 선물로 준 것이다. 기귀인은 황후의 총애를 나타내는데다 귀하기까지 한 목걸이를 남들에게도 과시하려고 매일 하고 다녔지만, 이 목걸이의 보석은 실은 사향 구슬로 오래 쓰면 자식을 낳을 수 없다고 한다. 안릉용은 목걸이의 향을 맡고 목걸이에 사향이 들어있음을 눈치챘고[22], 견환 또한 추측만 하다가 은은한 향이 난다는 흔귀인의 말을 듣고 목걸이의 정체를 확신하게 된다. 하지만 본인은 죽을 때 까지 이 사실을 몰랐다.

그리고 견환의 출궁 이후에도 견환을 괴롭히는데 정백 사태를 사주해 견환을 때리고 허드렛일을 하게 하였다. 하루는 황제가 견환을 잊지 못하자 황후는 견환을 단속하기 위해 감로사로 비빈들과 함께 기도를 간다. 기빈은 숨어있던 견환을 발견하자 일부러 손을 밟아 모두가 보는 앞에서 모욕을 주고 견환을 감싸려는 심미장과 입씨름을 벌인다. 그리고 경비가 황제 앞에서 완빈의 얘기를 꺼내 황제가 노하자 만족스러운 비웃음을 짓는 등 견환에 대한 악감정을 유감없이 드러낸다. [23]

견환의 출궁으로 황후가 내명부를 장악하자 꾸준히 총애를 유지하는데 총애를 양분하는 안릉용과는 같은 황후파임에도 불구하고 사이가 좋지 않다. 계속해서 안릉용을 물어 뜯는 것으로 나오는데 견환의 생일에 황제가 안릉용의 처소에서 쓰러지자 안릉용의 책임도 있다며 돌려깐다. 그러나 태후도 황후도 안릉용을 탓하지 않자 "황후 마마는 명문가 출신이라 명문가 여식을 좋아하지요. 당신같은 출신의 사람은 폐하의 시중을 드는 것만도 복인데 그래도 만족 못하고 나와 총애를 다투겠다는 건가요?"[24] 라며 안릉용에게 모욕을 준다.

하지만 탄탄대로일 것 같던 총애도 천한 출신의 답응이 등장하며 흔들리게 된다. 섭답응은 입궁 후 한동안 총애를 독차지 하는데, 이에 몹시 분개하며 욕을 한다. 안릉용은 본인만의 비법[25]으로 총애를 되찾았지만 이후 기빈은 투톱의 자리에서 내려온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한동안 등장이 없다가 견환이 능운봉에서 임신했다는 소식을 듣고 황후, 안릉용과 함께 의논하는 모습을 보인다. 견환의 환궁을 어떻게든 막아보려 했으나 결국 환궁이 결정되자 황후에게 아버지를 통해 조정의 여론을 흔들어달라는 지시를 받는다. 그러면서 황제를 모시는 것은 안릉용에게 맡겨두란 얘기를 듣자 애써 표정관리를 하는 모습을 보인다.


3.3. 기귀인으로 강등[편집]


그리고 결국 견환이 환궁하면서 비상 사태가 터졌다.

견환이 만주 명문 성씨 뉴호록씨를 하사 받고 4황자 홍력의 고귀한 생모인 희비로 신분 세탁을 하여 환궁하자 바로 다음 날 손을 쓰는 빠른 대응을 보인다. 견환이 본인의 궁 앞으로 지나가게 되자 그 길목에 자갈돌을 놔두는데 이에 가마꾼들이 미끄러졌고 갑작스럽게 가마가 흔들려 견환과 복중 태아도 크게 놀란다. 문제가 되더라도 흔귀인에게 누명을 씌우려고 흔귀인의 화분에서 훔친 자갈을 썼지만 견환에게 금세 들통난다. 이후 흔귀인과 함께 견환에게 인사를 드리러 가는데 감로사로 출궁했던 일을 들추며 입을 놀린다. 견환이 과이가 악민이 견원도를 무고한 일을 언급하자 "왜 사실을 왜곡하세요. 하긴 환궁을 위해 폐하께서 한군기를 만군기로 바꿨는데 못 할일이 뭐겠어요?"라며 맞선다. 이에 흔귀인이 은근히 견환의 편을 들자 흔귀인이 입궁한지 오래되었어도 품계가 낮은 것을 비꼬는데 흔귀인이 지지않고 기빈에게 수치를 주자 화가나서 처소로 먼저 돌아가버린다. [26]

흔귀인의 말과 시녀와의 대화를 보면 같은 궁에 있는 흔귀인을 윗전이랍시고 사사건건 괴롭혔던 것으로 나온다. 심지어 황제가 흔귀인을 찾으면 이런 저런 핑계로 계속해서 황제를 가로채왔다. 견환이 환궁한 이후에도 이와 같은 사건이 벌어지는데 기빈이 악몽을 핑계로 황제를 가로채간 것이다.[27] 이 소식을 들은 황후는 후궁 간의 사소한 질투라며 방조했으나 견환4황자는 악몽에 좋다는 현미죽을 황제가 아직 기빈의 처소에 있을 때 갖다 줘서 억지로 먹게 하는 것으로 상황을 해결했다. 그 현미죽은 견환과 함께 있던 4황자가 마침 좋은 기회라고 충고하면서 한술 더 떠서 소윤자에게 큰 주전자에 덜 익힌 걸로 갖다주라 한 것으로, 반드시 한 주전자를 전부 다 먹게 하라고 시켰다. 반응을 보면 꽤나 삼키기 고역이었던 모양. [28]이 일로 몹시 분해하며 시녀에게 견환의 욕을 하고 본때를 보여줄 것이라 큰 소리로 화를 내는데 지나가던 견환, 심미장, 홍력 이걸 모두 듣게 된다. 견환이 이에 자중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며 현미죽이나 먹고 치료하라 하자 입까지 틀어막으며 놀란다. 게다가 흔귀인의 시녀이자 견환의 옛 시녀인 패아의 증언과 안릉용의 힌트 덕에 자갈돌 사건의 진범이 기빈임을 견환이 알게되어 기빈에겐 먹구름이 드리운다. [29]

견환황제와 수라를 들고 있을 때, 또 다시 황제에게 아프다는 전갈을 보내 빼앗을 술수를 쓴다. 하지만 직전에 소배성이 기빈이 녕귀인의 욕을 하는 것을 흘려 황제의 심기가 불편했고 견환의 앞이기도 하여 바쁘다는 핑계로 청을 거절한다. 이걸 보고 견환이 "기빈은 쉽게 꾀병을 부릴 사람이 아니니 한 번 가보시죠. 신첩도 소화시킬 겸 같이 가겠습니다." 라며 설득하자 뒤늦게 황제도 저수궁으로 길을 잡는다. 하지만 이를 알 턱이 없는 기빈은 그날도 화풀이로 패아를 때리다가 분에 못 이겨 집어던진 찻잔이 황제가 문에 들어서려는 순간, 문에 부딪혀 깨지는 바람에 딱 걸려서 황제의 진노를 산다. 아프다는 사람이 펄펄 뛰고 있으니 황제는 기빈과 흔귀인에게 자초지종을 묻는다. 이에 기빈은 시녀가 무시해서 잠시 화가난 것이라며 본인은 아프다 거짓말을 늘어놓지만 흔귀인이 모든 것을 고해바친다. 흔귀인의 시녀 패아가 일전에 견환을 모신 적이 있다는 이유로 [30] 저수궁의 통솔권이 있음을 내세워[31] 걸핏하면 화풀이를 일삼는 것, 견환이 희비로 환궁한 후에는 견환의 환궁과 임신을 시기해서 패아를 더 격하게 괴롭힌 것 등을 다 이야기하며, "기빈이 지위를 이용해 신첩을 멸시해서 신첩으로서는 제 시녀 하나조차 지켜줄 힘이 없습니다!" 라고 폭로했다. 황제는 이런 꼴로는 윗전 자격도 없다며 기빈을 귀인으로 강등시킨다. 그리고 처소를 저수궁에서 교호관으로 옮겨버리고 황명이 있을 때까지 연금하라는 명을 내리고, 저수궁을 다스릴 권리 역시 흔귀인에게 넘겨버린다.

교호관에 연금되어 한 발짝도 나가지 못하는 처지가 되고 한동안 등장하지 않다가 소배성x최근석 스캔들이 터진 김에 중추절에 풀려나도록 황후가 도와준 덕분에 간신히 밖으로 나가게 되었다. 중추절 특사 그 이후 바로 견환을 모욕하며 시비를 걸지만 견환과 최근석 모두에게 말빨로 리타이어 당하는 멍청한 모습을 보여준다. 그렇게 총애도 회복하지 못하고 별볼일 없이 지내다 안릉용에게 시비를 거는데 이 일로 황후가 꾸짖자 기빈은 제풀에 화가 나서 앙심을 품고 릉용의 성대를 망치게 만들어 노래를 못 부르는 상태로 만들고 만다. 이래 봐야 상황이 나아질 리 없다는 걸 생각하면 그야말로 팀킬이 따로 없다.[32] 황후가 기빈이 훨씬 더 예쁜데도 불구하고 기빈은 정치적으로 쓰고 안릉용은 황제의 환심을 사게 만든 것은 정확한 전략으로, 견환이 미색에 재능도 겸비한데다 무엇보다도 순원황후를 닮았다는 최고의 무기가 있는 한, 예쁜 것 말곤 장점이 없고, 머리 나쁘고, 성격 나쁘고, 자식도 없는 기빈은 견환에게 상대가 안 될 것임을 간파했던 것이다. 같이 자식이 없는 후궁이라도 차라리 견환과 어느 정도 친분이 있고, 눈치도 빠르고, 사람 기분도 거스를 일 없는 안릉용을 황제에게 붙여놓고 견환에 대한 함정을 파는 것이 낫다고 의수는 판단했으나 기빈은 견환과 안빈을 골탕먹일 생각만 했다.


3.4. 친자 확인 사건[편집]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안릉용은 빙희를 통해 총애를 회복했고 본인은 찬밥 신세로 전락한다. 그러던 어느 날, 황후의 사주를 받아 초대형 사고를 하나 치게 된다.

기귀인은 아프다는 핑계로 보화전 법사 대신 감로사의 스님을 불러오게 하여 정백과 남몰래 말을 맞추는 한편, 견환에게 원한이 있었던 영수궁의 시녀인 비문을 끌어들이고,[33] 견환이 입궁하기 전에 그녀를 모신 사가의 시녀인 분아를 협박하는 등,[34] 증인을 조작하여 견환이 온실초와 사통해 6황자를 낳았다고 주장하는 친자 확인 사건을 일으킨다.

먼저 황후궁으로 모든 비빈들을 소집한 뒤 견환이 온실초와 사통했다고 밝힌다. 그리고 분아를 통해 수녀 간택 보름전 온실초가 견환에게 청혼하였다고 말하는데 청혼을 견환이 거절했단 것이 밝혀져도 꿋꿋하게 어의 따위가 성에 찰리가 없는 것이라며 주장을 이어간다.[35] 다음 증인인 비문이 온실초견환이 오붓하게 손을 잡고 있을 때 내의 소매에 있는 대나무 문양을 보았다고 증언하고 온실초를 불러 확인해보니 진실임이 드러난다.[36] 와중 소란을 듣고 황제가 황후궁에 등장하는데 황제 앞에서 견환이 사통했다고 말했다가 뺨을 맞는다. 황후의 중재로 사통 고발이 계속 이어지고 비문이 다시 견환이 출산할 당시 온실초가 견환에게 산모와 태아 중 누구를 살릴지 물었다고 고하는데 이는 태후나 황제에게 물어야 할 일이었기 때문에 문제가 됐다. 여기에다 비문이 "수십년의 정을 봐서.. 어쩌고라고 마마께서 대답하셨습니다"라고 말해 크리티컬을 날린다. 한술 더 떠 기귀인은 견환이 감로사에 가서도 사통을 계속했다며 정백을 부른다. 정백은 견환에게 예를 다했으나 견환이 상대해주지 않아 비구니들이 어려워했고 남자와 단둘이 방문을 닫고 들어가길래 한 소리 했다가 크게 혼났다고 말한다. 그리고 나중에 소문을 피하려 병을 핑계로 능운봉으로 거처를 옮긴 것이라 거짓말을 늘어놓는다. 이에 온실초가 억울함을 표하며 뉴호록 옥은최근석이 증인이라 말하는데 기귀인은 견환의 심복을 어떻게 믿냐며 그 둘을 고문해달라는 청을 올린다. 이에 견환파 들이 논리의 허점을 짚어내며 견환을 감싸지만 황후가 견환의 억울함을 풀기 위해서라도 친자확인검사를 해야한다고 주장해 결국 친자확인 검사까지 이어진다.

검사 결과 쌍둥이가 온실초의 아들로 밝혀지나 친자확인에 사용된 물이 문제가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자 형세가 완전히 뒤바뀐다. 그럼에도 쌍둥이는 황제의 자식이나 온실초와의 사통은 진실이라고 우겨댄다. 하지만 견환이 비문의 기억력이 형편없다는 것을 유도심문으로 입증하고 녕귀인이 정백이 입궁한지 얼마 안 된 본인이 귀인인 것을 한눈에 알아 본 것을 지적하며 정백이 후궁과 내통하고 있었음을 밝혀낸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감로사에서 데려온 또 다른 비구니 막언이 정백은 견환을 때리고 구박하였고 능운봉은 살아가기 너무 어려운 곳이기에 사통한 자가 있다면 떠났을 것이라 증언해 황제는 완전히 견환을 신뢰하게 된다. 마지막으로 분아가 본인의 상처를 보여주며 기귀인이 억지 증언을 하게 했다고 말하자 모든 거짓이 탄로난다.

이에 황제는 기귀인을 가차없이 냉궁으로 쫓아낸다. 견환을 참 싫어하기는 싫어하는지 거짓이 다 까발려진 판국에도 온실초에게 "아직도 결혼을 안 한 것은 견환 때문이 아니냐?" 라며 증거도 없는 참언을 마구 퍼붓고 황제에게 자기가 있는데 왜 저런 천한 년을 총애하냐며 패악질을 부리다 끌려나간다. 그리고 그 직후 안릉용이 온실초에게 다가가 "그대의 마음이 누군가를 다치게 할 수 있으니 조심하라." 라고 협박하는데, 기귀인의 패악은 그렇다쳐도 눈치빠른 릉용의 말은 그냥 넘겨 듣기 어려웠기 때문에 끝내 온실초가 자기의 결백을 증명하겠다며 셀프 거세를 하게 만들었으니 기귀인은 안릉용과 함께 온실초를 고자로 만든 결정적인 원인을 제공한 인물이라고 할 수 있겠다.


3.5. 폐서인 및 최후[편집]


견환은 환궁 후 계속해서 황제에게 견원도의 억울함을 구명해달라고 요청해왔는데, 황제는 조정은 쉽게 동요하니 기귀인이 후궁에서 죄를 짓기 전까진 그럴 수 없다며 거절해왔다. 견환은 그럴 날만을 벼르고 있었고 결국 친자 확인 사건으로 인해 기귀인은 온 집안이 조사를 받게 된다. 확인사건 당시 거짓이 아님을 맹세하면서 거짓이면 벼락맞고 죽겠다고 했는데 최후의 날에 정말로 벼락치는 비가 왔다.[37] 덤으로 자기 말이 거짓이라면 자신의 가문도 망할 것이라 맹세했는데, 정말 그 맹세대로 가문이 싹 쓸려나갔다. 친자확인 사건이 마무리된 이후 아버지인 과이가 악민이 부정부패를 저지른 게 들켜서[38] 투옥된 후에 자결한 것을 시작으로 황제는 과이가 가문을 역적으로 선포하여 성인 남자들은 전부 사형당하고 노인들은 북방으로, 어린 남자애들은 서장으로 유배당하고 여자들은 노비로 팔려나가게 되는 등, 아예 가문이 박살나 버린다. 기귀인 본인 역시 냉궁으로 쫓겨난 걸로 모자라 폐서인되는데[39] 완빈 시절에 죄다 영고탑으로 끌려가버린 견환의 가문이나[40] 오빠와 조카들이 모두 죽어버린 화비의 가문보다도 더 비참하게 몰락하고 만다. 적어도 견환과 화비의 가문은 3대 멸족을 당하지는 않았고, 전원 노비로 강등되지도 않았다.

기귀인은 비록 쫓겨나긴 했지만 냉궁에서 근근이 연명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과이가 가문을 벌하라는 성지가 내려지던 비오는 날에 기귀인은 냉궁을 탈출해 맨발로 양심전 앞까지 나타나 가족을 구명해주길 빌며 견환을 저주한다.[41] 그나마 황제는 그동안 자신을 따르고 모신 정을 생각해 죽이지 않고 폐서인에 그치겠다며 기귀인의 목숨만은 보전케 해준다. 하지만 소배성최근석과 자신을 이어준 견환의 은혜에 보답하고 친자확인 사건에서 최근석에게 모진 고문을 가하라고 제안했던 원수를 갚기 위해, 시위들에게 기귀인을 처리하라 지시하면서 기귀인은 비명을 지르며 시위들의 곤장에 두들겨 맞아 비참한 몰골로 죽음을 맞이한다.[42] 참고로 이 장면은 타락할대로 타락한 견환을 직접적으로 묘사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견환은 기귀인이 자신을 저주하건 말건 신경도 쓰지 않고, 기귀인이 시위들에게 끌려가던 순간에도 먹을 가는데만 열중한다.[43] 사후 시체는 수레에 실려나가 공동묘지[44]에 묻힌다.

그렇게 기귀인은 등장인물 중 가장 비참하게 죽었다. 기귀인은 강등도 아닌 아예 내명부에서 폐출되었으며 사후 복권도 안 되었고, 사망할 때의 몰골도 영락없는 거지꼴이었다. 그리고 1기 보스인 연씨 가문이나 2기 보스인 오라나랍 가문[45]은 멸문까지는 어떻게 피했지만 과이가 가문은 그야말로 풍비박산이 나게 됐기 때문이다.[46] 게다가 기귀인이 죽은 이후 수레에 실려나가는 모습까지 카메라에 비춰지고, 황후에게 "잘 보거라. 쓸모가 없으면 저런 식으로 죽는 것이다." 라고 까였다.

사고를 쳤을 때, 답응으로 강등된 다른 후궁들도 하다못해 이런 험한 꼴까지는 겪지 않았다. 드라마에선 아무리 잘못한 후궁이라도 보통 냉궁으로 보낼지언정 폐서인은 시키지 않는다. 연세란, 여앵아, 비운연 등은 모두 냉궁으로 보내졌지만 답응 신분으로 사사되지 않았는가? 그동안 죽거나 드라마에서 퇴장한 여러 후궁들의 예를 보아도 폐서인된 사례는 기귀인 하나밖에 없다. 심지어 불륜을 저지른 손답응이나, 누명을 쓴 것이긴 하지만 황자와 사통한 혐의를 받은 채빈도 죽었으면 죽었지, 폐서인만은 면했다.

다른 죽었거나 신분이 낮은 후궁들이 시호를 받거나 추존으로 생전 직위보다 높은 직위를 받는 와중 기귀인만 시호가 주어지지 않았는데, 그녀는 이미 폐출로 인해 후궁 지위에서 박탈당한 폐서인이기 때문이다. 즉 사후에도 복직이 안된 셈. 화비는 어디까지나 답응으로 강등된거지 폐출되지 않았으며 제비도 폐출되지는 않았기에[47] 시호를 받거나 추존된 것이다.


4. 특징[편집]




4.1. 성격[편집]


기귀인은 기본적으로 콧대가 높고 거만한 성격이다. 욕심이 많고 자기보다 지위가 낮다 싶으면 일단 깔아 뭉개고 보는 경향이 있다. 물론 만주족 상3기 출신에 공신가문으로 들어왔으니 기세등등한 것도 당연하다. 하지만 작중에서 보인 모습은 명문가 여식의 고고함보다는 타인을 우습게 보는 스타일에 속한다.비슷한 품계의 릉용에게는 가문과 출신이 낮다고 까면서 깔아뭉개려 했고,[48] 연답응으로 추락한 화비에게도 먼저 시비를 텄다. 정작 안릉용이나 화비는 기귀인에게 아무 짓도 하지 않았는데 말이다. 심지어 자기보다 밑전인 흔귀인을 평하는 말도 일품인데, 자기 흉을 본 흔귀인에 대해 말하길 "기르던 개가 주인을 문 격."이라고 황당해했다.[49] 심한 짓을 해놓고서 심한 짓을 하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전형적인 가해자의 모습도 보이는데[50] 흔귀인을 실컷 괴롭혀 놓고서 하는 말이, "흔귀인이 그렇게 말하니깐 꼭 내가 흔귀인을 괴롭힌 것 같잖아!" 라는 망언을 일삼았다.

거기다 불같은 성미를 가졌다. 이 때문에 구밀복검하는 궁중암투에서 경거망동하는 모습을 자주 보인다. 황후는 이에 머리는 텅 비고 얼굴은 예쁜, 궁정에 필요한 그런 여인이라는 평가를 내린다. 황제는 "천방지축이지만 귀엽지 않느냐?" 라는 평을 남겼고, 견환은 "기귀인은 경박하다." 며 조소한다. 말실수를 해 어그로를 끄는 모습도 자주 보인다. 거기다 제 성미를 못 이겨 궁녀들을 패기도 한다. 오랫동안 총애를 독차지한 화비조차 직접적으로 궁녀를 때리는 모습은 나오지 않았는데, 작중에서 입궁이 늦은 편에 속했던 기빈이 궁녀를 때리는 모습이 등장하고 이것이 한 두번이 아니란 설명도 나온다. 기귀인으로 강등당한 사건도 패아를 또 때릴 것을 예상한 견환이 늦게나마 황제를 보내 궁녀를 패고 찻잔을 던지는 패악을 보여주어 그런 것이다.

종합하면 화비여빈의 중간 어딘가... 에 있는 포지션이다. 예쁘고 성질머리가 나쁘다는 점은 화비와 비슷하고[51], 파벌 내에서 예쁘지만 멍청한 돌격대장 포지션이라는 점은 여빈과 비슷하다.[52] 게다가 여빈 역시 입이 방정맞다.

4.2. 방정맞음[편집]


단적인 예로 여빈처럼 말을 가리지 못한다. 입이 화근이 되는 아주 좋은 예라고 볼 수 있는데 먼저, 말실수를 자주한다. 서출 컴플렉스[53]가 있는 황후 앞에서 서녀인 여동생보다 말이 더 잘 통한다는 등의 말실수를 해서 주변 후궁들까지 식겁했다.[54] 황후는 안색이 변했으면서도 "됐다. 연극이나 보자." 하고 넘어갔지만 이후 기귀인이 시사되었을 때 "쓸모가 없으니까 저렇게 죽은 거다." 라고 한 걸 보면 앙금을 쌓아두고 있었던 걸로 추정된다. 사실 이것만이 아니고 임신한 견환이 궁에 돌아온 것에 대하여 애를 낳아도 무사하게 큰다는 보장이 없다고 말했는데, 말 자체는 견환을 저격한 것이었지만 문제는 과거 황후가 힘들게 낳은 아이가 어린 나이에 병으로 요절했다는 것.(...)

말실수는 이것뿐이 아니라, 희비의 뒷담을 사방이 트인 공간에서 시녀에게 하다가 희비에게 딱 걸려서 "벽에도 귀가 있으니 (중략) 기빈, 자중하는 것이 좋을 것이네." 라는 일침을 듣기도 했다. 황제"말이 너무 많아서 보기 싫다."라 평했다. 그리고 친자 확인 사건 내내 처음 약간만 견환을 "희귀비"라는 공식호칭으로 칭하다가 온실초가 나오고부터 견환, 견환 이렇게 막 이름으로 불러댄다. 입궁 초기에 궁정 예절을 잘 모르던 안릉용하상재에게 "하씨 언니를 뵈옵니다." 라고 이름을 부르자 시녀 보견이 기겁하고 이를 고쳐준 적이 있다. 그런데 기귀인은 하다못해 '언니'조차도 안 붙였다. 자기보다 한참 먼저 입궁했기에 후궁 생활 짬밥도 위인데다가 귀비-귀인으로 3단계 차이나는 견환에게 얼마나 예의에 어긋나는 일을 했는지에 대해선 말할 필요도 없다.

이런 실수 때문에 어그로의 달인이기도 하다. 니편 내편 가리지 않고 마구 어그로를 끈다. 그래서 쓸데없는 적을 많이 만들어서 적이 많다. 같은 편인 안릉용이나 황후에게도 생각없이 말을 하는 바람에 악감정을 차곡차곡 쌓았다. 안릉용과의 사이는 말할 필요도 없이 최악의 사이로, 안릉용이 딱히 기귀인에게 거슬리는 짓을 하지 않았는데도 대놓고 미워하다가 나중에 목소리 테러까지 저지른다. 심지어 황후 역시 기귀인이 멍청하고 말만 너무 많아서 마음에 안든다는 뉘앙스로 뒷담을 깐 적이 있으며 황제의 총애를 받는 일 및 괜찮거나 이미지에 좋은 일은 릉용에게 시켰고 아버지를 이용한 안 좋은 여론 조장 및 이미지에 안 좋은 일은 기귀인에게 시킨 것을 보면 이미 마음에 안 들었던 걸로 추정되며 적당히 이용하다가 버릴 생각이였던걸로 추정된다. 같은 편에게 이 정도인데 중립이나 적들에게는 더 심하다.

절에서 조용히 일하고 있던 막수의 발을 모르는 척하고 일부러 밟아 어그로를 끌고, 황후의 서출 컴플렉스를 건드려서 어그로를 끌고, 지나가던 화비(당시 연답응)에게도 무시하고 시비걸며 어그로를 끌고, 같은 편인 안릉용에게도 목소리 테러를 가해 어그로를 끌고, 롱월공주를 돌보고 있던 경비에게도 말을 돌려 견환 이야기가 나오게 해서 황제를 화나게 해서 어그로를 끌고, 그 와중에 황제의 분노에 직격당한 경비를 보고 고소하다는 듯이 비웃어서 어그로를 끌고, 흔귀인에게서는 악몽을 꾼다는 핑계로 황제를 빼앗아서 어그로를 끌었다. 이로써 제비, 강상재랑 정빈, 조용히 짜져 살고 있던 단비심미장을 제외한 모두에게 어그로를 끄는 데 성공했다. 이쯤되면 만인에 대한 만인의 어그로다. 태후에게는 어떤 어그로를 끌었는지는 안 나오나, 태후도 기귀인을 단정하지 못한 것들 분류에 집어넣고 있는 걸로 보아서 태후도 적으로 돌린 듯하다.[55] 심지어 태후가 환궁한 견환을 완전히 신임하게 된 계기가 견환이 기빈에게 현미죽을 보내줬고, 그 직후에 기빈이 귀인으로 강등당했을 때였다.

입방정에 행동방정도 모자라서 정신머리까지 방정맞다. 너무 멍청한 나머지 황후에게 온전히 충성해서 가문의 몰락에 일조한 측면도 있다. 물론 견환과는 이미 가문끼리도 척을 진 상황인지라 황후말고는 기댈 곳이 없었겠지만 그래도 황후를 완전히 믿은 것부터가 멍청하다. 안릉용은 황후가 본인을 이용할 뿐이고 아이를 낳지 못하게 후궁들을 해치고 있다는 것을 모두 알고 있었다. 하지만 기빈은 그런 것은 전혀 모르고 황후가 준 홍마노 목걸이만 주구장창 해댔다. 거기다 친자확인사건이라는 대형사고를 친다. 본인 나름대로 준비도 했고 황후도 도와주긴 했지만 후궁의 사통과 황자의 혈통을 걸고 넘어지는 것은 본인의 목숨 또한 거는 것과 마찬가지다. 게다가 집안이 잘못되면 그 출신 후궁도 냉대받는데 본인이 이런 대형사고를 냈다는 것은 아마도 후궁인 자신의 몰락이 가족들에게도 해가 될거라는 것을 모를 정도로 멍청하거나, 자신이 꾹 입 다물고 있으면 황후가 도와줄 거라고 믿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인지 후반부에 집안의 몰락 소식을 듣고 냉궁에서 탈출해 황후에게 도움을 청한다. 물론 황후는 모르는 척 무시해버렸다. 그리고 이 상황에서조차 황후에 대해 고발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이러나 저러나 멍청하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아서 상대가 굳이 견환이 아니더라도 언젠가 어떤 식으로든 몰락했을 것이다.[56]

의외로 문원의 적수인 견환은 그녀의 지능을 나쁘지 않게 평가한 적이 있다. 57화에서 기빈과 흔귀인이 다녀간 후, 견환이 환벽에게 "너는 기빈이 멍청하다고 생각하겠지만 기빈은 알고 있지. 나와의 원한이 깊어서 지금 항복해도 내가 용서치 않을테고 황후는 더더욱 용서치 않을테지. 오히려 저렇게 대놓고 반목하니 나도 당분간은 건드릴 수 없구나."라고 말한 적이 있다.

4.3. 강한 멘탈[편집]


일단 멘탈이 강한 편에 속한다. 멍청하고 자아도취해 있다는 점을 공유하는 부찰귀인이나 하상재에 비해서는 멘탈이 매우 강하다. 비슷하게 싸가지가 없던 부찰귀인이 마지막에는 상황이 역전된 완빈에게 살려달라고 비참하게 애원하면서 미쳐버린 모습과, 마찬가지로 싸가지가 없었던 하 상재가 일장홍을 맞고 냉궁으로 내쳐질 위기가 닥치자 화비에게 살려달라고 비참하게 애원하는 모습과는 정 반대되게 죽을 때도 끝까지 당당하게 견환을 저주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게다가 냉궁으로 쫓아내겠다는 선언을 받았을 때에도 비문이나 정백과는 대조되게 제발 살려달라면서 빌기보다는 패기쩔게 견환에게 "나는 네가 싫다!" 라고 당당하게 디스를 건다. [57] 잊지 말자. 위에서 언급한 목숨을 구걸한 사례 외 목숨을 구걸하지 않은 사례들을 봐도, 기귀인에 비하면 곱게 죽은 여답응화비, 황후도 죽을 때는 멘탈이 산산조각나 있었다.

무엇보다 냉궁에서 시위들에게 쫓기면서 여자의 몸으로 혼자서 탈출할 정도면 나름대로 멘탈이 강한 셈이다. 가장 비참한 최후를 맞았음에도, 안릉용과 더불어 몰락 당시 멘탈이 붕괴되지 않았던 몇 안 되는 여인 중 하나이다. 또한 멘탈이 강한 연장선상에서, 굉장히 대담하여 누구나 떨리는 첫 시침 때, 누워 있는 황제의 품안으로 스스로 기어들어왔다. 안릉용이 첫 시침 때, 너무 떨어서 그 유명한 미개봉반납당했을 때를 생각하면 기귀인은 정말 멘탈이 강한 거 맞다.


4.4. 뛰어난 미색[편집]


빼어난 미인이다. 황후가 예쁘다고 언급한 여인은 순원황후, 견환, 화비 외에는 기귀인이 유일하다. 첫 번째는 첫 인사를 올리자마자 그녀에게 첫번째로 한 대사가 "정말 아름답구나. 더 자세히 보게 더 가까이 오거라..." 인데 첫 인상이 이 정도니 정말 빼어난 미색일 듯. 두번째로 안릉용과의 뒷담에서 얼굴은 예쁘고 머리가 비었다고 이야기한다. 흔상재 역시 첫 대면에서 기귀인을 보고 "얼굴 뿐 아니라 봉호도 예쁘네요...[58] 미인이긴 한데 눈매를 보니 보통이 아니겠어요?" 라며 미인이라고 평한다. 견환 역시 희비가 되어 환궁한 이후 기귀인을 첫 대면하자, 기귀인은 여전히 예쁘다고 인증했다. 심지어 친자 확인 사건 당시의 기귀인이 내뱉던 마지막 대사인 "제가 견환과 비교해서 집안, 용모 어느 것도 뒤떨어지지 않는데 왜 저런 년을 총애하십니까?"[59] 에서도 그녀의 아름다움이 증명된다. 작중 최상위권 미모인 견환과 대등한 건 엄청난 수준이다.


5. 인간관계[편집]



5.1. 견환[편집]


그야 말로 불구대천의 원수다.

기빈은 견환의 가문을 몰락시켰고 견환도 기빈의 가문을 파멸로 이끌었다.

청나라는 만주족이 한족보다 높으며 과이가씨는 만주족 중에서도 상3기로 가문의 격이 높은 편이다. 그런 본인의 아버지가 같은 공신임에도 총애 받는 딸이 없어서 하5기에 속하는 견환의 아버지보다 낮은 품계를 받은 것에 처음부터 불만을 품고 입궁했다.[60] 근데 같은 만군기인 황후가 본인을 밀어주는 데다 견환도 물러날 때가 되었다며 견환의 몰락을 언급했으니 황후파로 전향한 것은 당연했다. 아니, 전향도 아니다. 기귀인은 처음부터 견환 편도 아니었으니 말이다. 기귀인은 학교에서 잘 나가는 애들 옆에 붙어 있으면 얻어먹는 게 많으니 잘 나가는 애들에게 같이 알랑거린 것 뿐이다. 입궁할 때부터 아버지인 과이가 악민이 "궁에 들어가면 있는 자에게 잘 보이고 총애를 얻어야 한다."고 가르쳐 보냈다. 심미장이나 견환이 입궁 전에 받은 교육과는 천지 차이.[61]

그렇게 기빈은 황후, 안릉용, 가문과 함께 한 걸음 한걸음 견환과 그 가문을 몰락의 길로 이끈다. 연갱요와 돈친왕 숙청 이후 한창 예민한 황제와 견환가를 계속 이간질하며 끝내는 견원도가 역적무리를 동정한다며 유배보낸다. 유배지인 영고탑은 경성에서 굉장히 먼데다 엄동설한으로 악명을 떨치던 청나라의 대표적인 유배지였다. 이미 노인에 접어든 견원도와 운신라는 그 곳에서 몇번이나 생사를 오가거나 폭삭 늙어버렸고 여동생 옥요는 10살을 조금 넘긴 나이에 끌려가 고생을 했다. 견환도 이를 아주 잘 알고 있었고 기빈도 견환이 본인을 죽도록 미워할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기빈과 견환은 말 그대로 하늘을 같이 이고 살 수 없는, 둘 중 하나는 죽음을 맞아야 하는 원수지간이 된다.

누군가는 죽어야 하기 때문에 둘은 끝없이 암투를 하게 된다. 기빈은 환궁을 막고 견환의 평판을 떨어트리기 위해 아버지와 함께 온갖 수작을 벌이지만 실패한다. 거기다 총애와 암투에서도 견환에게 현저히 밀려 본인은 실질적인 피해도 주지 못하고 당하기만 한다. 매번 시비를 걸며 말씨름을 하기도 하는데 견환이 워낙 말주변이 뛰어난데다 내명부 내에서의 위상도 격차가 엄청났기 때문에 매번 물먹는다. 견환에게 이렇게 당할 때마다 "지까짓게 뭔데? 내가 본때를 보여줄거야.", "(연금 당시) 황후마마, 저를 모함한 사람을 살려두지 않을 것입니다."며 악담을 퍼붓는 것을 보면 증오심이 대단한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다 친자확인 사건이라는 초강수를 두는데 여기서마저 패배한 기빈은 결국 본인은 물론 집안까지 파멸당한다. 이 때 모든 것이 밝혀졌을 때도 견환을 비방하고 죽기 전까지 견환을 저주하며 죽는다. 이 소리를 들은 견환은 눈도 꿈쩍하지 않는데 정말 서로 원한이 뼈에 사무치게 깊은 것을 알 수 있다.

5.2. 안릉용[편집]


안티테제이자 최악의 라이벌이라 볼 수 있다.

우선 둘 다 황후파 후궁이며 흥망성쇠를 함께 했다. 견환의 몰락에 일조하고 이후 황후가 내명부를 장악하자 총애를 양분했으며 서로 라이벌로서 끝없이 견제하면서도 견환이란 적이 다시 등장하자 힘을 모아 대적한다. 그리고 마지막엔 견환에게 패해 죽음을 맞는다. 하지만 동시에 대척점에 서있는 부분도 많다.

안릉용: 한족 출신의 말단 관리의 여식으로 굉장히 한미한 집안 출신이다. 미색이 뛰어난 편이 아니기에 여러 재주로 황제의 환심을 산다. 릉용은 굉장히 침착하고 음흉한 성격의 소유자로 웃는 낯과 부드러운 말로 상대를 공격한다.

기빈: 만주족 출신의 공신의 여식으로 세도가 집안 출신이다. 별다른 재주를 보여주진 않지만 뛰어난 미색으로 황제의 환심을 산다. 기빈은 불같은 성격을 가졌으며 대놓고 비웃거나 싫어하는 표정을 자주 드러내며 직설적으로 상대를 공격한다.


기빈은 출신도 별로인 안릉용과 황후황제의 총애를 다투는 것을 굉장히 못마땅히 여긴다. 그래서 툭하면 안릉용을 공격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견환 출궁 후 총애를 양분할 당시 안릉용은 출신이 나쁘니 황제의 시침을 드는 것만도 복이라며 감히 본인과 다투려 하지 말라며 모욕한다. [62] 이에 안릉용은 맞아 알겠어 라며 속에 칼을 감추고 물러선다. 안릉용은 때를 기다리다 견환이 환궁하자 기빈이 견환을 공격했음을 알리고 기빈은 귀인으로 강등되어 교호관에 갇힌다. 후에 풀려나고서도 황후 앞에서 대놓고 안릉용이 술수 쓰는 것을 비꼬고 황후에게 꾸짖음을 받는다. 그러자 안릉용[63], 너같이 천한 것을 그만큼 봐줬으면 되었다며 안릉용의 시녀를 매수해 성대를 망쳐버린다.

사실 둘은 애초부터 견제할 수 밖에 없는 구도다. 견환파인 견환, 단비, 경비는 서로 총애를 다툴 일이 없었다. 단비와 경비는 총애를 잃은지 한참이었는데다 견환 덕에 모두 팔자에도 없던 딸이 하나씩 생겼다. 그리고 셋은 같은 적을 뒀기에 뜻도 함께 했으며 서로 상부상조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안릉용과 기빈은 한창의 나이에 오랜 기간 동안 둘이서 총애를 다퉈왔다. 둘 다 자식도 없어서 기댈 곳이라곤 황후와 황제뿐이었고 성격도 판이했다. 게다가 안그래도 콧대 높고 불같은 성격의 기빈이 안릉용을 좋게 볼리 만무하고 안릉용 또한 본인의 처지를 잘 알고 있기 때문에 황후의 새로운 장기말인 기빈을 경계할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안릉용은 자존심이 무척 세서 본인을 무시하는 사람들을 굉장히 증오했는데 이토록 대놓고 구박하는 기빈을 싫어한 것은 당연하다. 결국 이 둘은 견환을 상대하기도 바쁜 시점에 서로를 경계하다 최후를 맞는다.

5.3. 황후[편집]


기빈에게 황후는 끝까지 믿고 따른 희망이고 황후에게 기빈은 장기말 2다.

황후의 입김으로 입궁한만큼 처음부터 황후를 잘 따르고 견환에 대한 생각이 같은 것을 알자 바로 황후 라인에 선다. 이후 황후의 지시를 받고 견환의 몰락과 감로사 비빈 단속 등 여러가지 일을 수행한다. 그리고 황후에게 향도 나는 홍마노 목걸이를 받자 황후의 총애를 받는 것에 뿌듯해하며 항상 차고 다니며 과시한다. 심지어 황후의 사주로 친자확인 사건까지 터트리는데 배후를 말하면 살려주겠다는 견환의 말에도 끄떡않고 함구한다.

하지만 황후에게 있어 기빈은 쓰다버릴 장기말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황후는 황후파 후궁 모두에게 그랬듯이 기빈도 이용해 먹을 생각뿐이었다. 기빈을 밀어주는 동시에 목걸이를 내리는데, 이 목걸이는 사향구슬로 차고 다니면 회임을 할 수 없었다. 기빈은 이것을 꿈에도 모르고 향까지 나는 최상품의 홍마노 목걸이라 생각했고 황후의 총애를 뽐내려 자주 착용하고 다닌다. 그래서 작중 기빈은 총애가 한창이던 시기에도 한 번도 회임을 하지 못한다. 그리고 기빈은 죽을 때까지도 이를 눈치채지 못했다. 또 황후는 기빈이 사가의 서출 동생과 관련해 말실수를 하자 바로 머리는 텅 비고 얼굴만 예쁜, 총애를 독차지 하지 못할 능력이 없는 후궁이라 평한다. 이 때부터 기빈은 그저 다루기 쉬운 멍청한 후궁일 뿐이었다. 견환은 안릉용은 속이 음흉하고 황후와 같으니 황후가 다루기 어렵겠지만 기빈은 경박하니 쉽다 여길 것이라고 추측했는데, 비슷하게 황후도 안릉용은 유순하지만 속을 알기가 어렵고 기빈은 쉽다고 말한다. 실제로 기빈을 사용하는 것을 보면 신중하고 견환을 잘 파악하는 안릉용에게는 황제의 시침을 맡기지만[64] 기빈에게는 조정의 여론을 부탁한다. 기빈을 죽음으로 이끈 친자확인 사건 때도 고발을 기빈에게 맡겼는데 실패 시 리타이어가 확실한 일을 기빈에게 맡긴 것으로 안릉용이 다루기는 어려워도 후궁 암투에 적합하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볼 수 있다. 사건 이후 기빈의 집안에 피바람이 불자 기빈이 냉궁을 탈출해서 처음 찾아간 곳은 황후궁이다. 기빈은 마지막까지 황후를 믿었는데 황후는 문을 열어주지도 않고 무시한다. 기빈이 결국 죽어서 실려나가자 그 모습을 안릉용과 함께보며 쓸모가 없으니 저렇게 죽는 것이라며 냉소적인 반응을 보인다.

죽을 때까지 황후의 속내를 모르고 충성을 다했다. 일찍이 황후의 음험함을 눈치챈 안릉용, 뒤늦게라도 황후의 본색을 알아챈 제비와 비교되는데 출신은 출중하나 지략이 딸리는 것이 한 몫 한 것으로 추측된다. 황후도 세도가 출신이면서 멍청한 것을 한눈에 알아채 안릉용에게는 이런저런 속내와 기빈에 대한 생각을 말하지만 황후가 기빈과 독대하며 속내를 비치는 일은 한번도 없다. 안릉용과의 대화에 따르면 기빈과 말하면 피곤하지만 안릉용은 총명하기 때문에[65] 그렇지 않다고. 결국 아무것도 모른 채 입궁하여 황후에게 휘둘리다 본인과 집안까지 멸족시키는 결과를 맞는다.

그래도 안릉용이 황후의 속내를 알면서도 결국 황후에게 매달렸듯, 기귀인 역시 아예 생각이 없이 황후에게 매달린 건 아닐지도 모른다. 작중 내내 속으로도 황후룰 탓한 적은 없지만 견환의 분석에 의하면 기귀인이 황후를 고발하지 않은 건 과이가 일족에 아직 남은 사람도 있고, 황후를 남겨둬야 견환과 싸울 세력이 존재하기 때문이라고...

6. 원작에서[편집]


원작에서는 관(管)씨 성을 쓰므로 관문원(管文鴛)이다.[66]

다른 공신의 딸인 복귀인[67], 상귀인[68], 서귀인[69]과 함께 입궁했다. 이 중 상귀인은 기귀인과 더불어 예쁘다는 평을 받았다. 처음엔 상귀인이 더 총애받았지만 곧 기귀인에게 추월당했다. 상귀인은 기귀인과 같이 견씨와 서귀인 가문 몰락에 일조했다. 상귀인은 복귀인과 밀수궁에 지냈는데 악몽을 핑계로 복귀인의 총애를 빼앗아서 복귀인의 원성을 들었다. 드라마에선 기귀인이 상귀인의 몫까지 받았다.

드라마와 달리 관씨 가문은 견씨 가문에 조금 못 미치는 정도라고 한다. 그리고 원작에선 견환 출궁 이후 현릉이 싫어한다. 견환이 출궁한 사이에 살이 많이 쪘다고... 드라마판에서는 친자확인 사건 때 희귀비는 육궁 업무를 처리하느라 바빠서 수척하지만 기귀인은 둥글둥글하다며 신패륵이 돌려까는 장면이 있다.

자식이 없는 것에 컴플렉스가 있어서 아이를 가진 견환과 서연의를 질투해 두 사람의 시녀였다가 주패의 시녀가 된 창청을 두들겨 패는 것으로 스트레스를 풀다가 현릉에게 들켜서 귀빈에서 빈으로 강등된다.

수정판에서는 복귀인과 상귀인이 사라지면서 여남왕 평정 후 기귀인과 서귀인만 입궁한 것으로 변경되었다.

7. 기타[편집]


그 더러운 성질머리와는 다르게 의외로 견환의 친딸인 롱월공주는 예뻐했던 것 같다. 황제 앞이라서 일부러 연기한 것일 수도 있겠지만 롱월이 처음 왔을 때는 젖을 잘 먹지 않았는데 경비께서 직접 먹이고 재우셔서 그런지 경비를 잘 따른다는 등, 롱월에 대한 얘기를 다 꿰고 있기도 했고, 롱월의 생일날에는 황제가 오기 전인데도 롱월이 예쁘다고 칭찬하는 다른 후궁들의 말에 즐겁게 맞장구를 치며 롱월의 손도 잡아보고, 롱월을 귀여워하고 있었다. 아무튼 롱월을 볼 때만큼은 정말 환하게 웃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 장면만 보면 착한 캐릭터인가 오해할 만큼 롱월을 좋아해주는 모습이다.[70]

황후처럼 연기의 달인이기도 하여, 화비와 싸우자 눈물연기를 했다. 악몽을 꾼다고 했을 때도 연기였다.

위에서도 언급이 됐듯, 기귀인을 모시는 시녀의 이름은 경태[71]. 주인을 닮아 시녀도 엄청나게 싸가지가 없다. 오른쪽 눈 위에 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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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v에 나온 모습이라거나 방송사의 프로필 사진은 그냥 귀여운 아가씨였지만 화비와 마찬가지로 드라마에서 썩은 표정을 많이 보여줬다. 라이벌인 화비와 비교되어 썩소보단, 뚱한 표정이란 평가를 들어 나름 귀엽다는 말을 들었다.

기귀인을 연기한 배우 당예흔은 해당 드라마가 데뷔작으로, 이후 삼국지 사마의를 다룬 사마의, 미완의 책사, 수당연의 등 중국 드라마에도 출연하였다.

[1] 실제 사학계의 발음대로 읽으면 구왈기야씨.[2] 완빈과 동거[3] 제비와 동거. 연답응의 테러 때문에 쇄옥헌이 불타 장춘궁으로 옮기게 됨[4] 흔귀인과 동거. 쇄옥헌의 수리가 끝나자 황제는 쇄옥헌은 견환 혼자 쓰는 게 좋겠다고 해서 쇄옥헌으로 복귀하지 않고 저수궁으로 옮김[5] 귀인으로 강등되면서[6] 봉호 박탈 및 폐위[7] 견환이 궁을 나간 후 황후가 비빈 숫자가 적다며 품계를 올렸다[8] 흔귀인과 그 시녀를 괴롭힌 것이 알려져 강등[9] 친자확인사건으로 가문 몰락[10] 애당초 드라마에서 황제에게 만군기 출신의 후궁이 전혀 없었다. 그나마 기귀인이 입궁하기 전에는 부찰귀인순상재가 있었는데 부찰귀인은 견환에 의해 미쳐버렸고, 순상재는 화비 때문에 죽었다.[11] 상재 중에서는 견환이 처음부터 완(莞)이라는 봉호를 받고 시작했고, 답응 중에서는 채빈이 처음부터 영(瑛)이라는 봉호를 받고 시작했다.[12] 미쳐서 냉궁에 갇힌 후궁 麗嬪이 아니라 효기영의 부통령 黎斌이라는 인물이다.[13] 황후는 빈말일지언정 대단한 미인이라 평했고 연고가 없는 흔상재도 얼굴과 봉호가 예쁘다고 말한다. 그리고 본인에 따르면 견환과 비교해도 밀리지 않는 미색이라고 한다. [14] 이때 갈아타는 과정 묘사가 드라마 기준으로 상당히 뜬금없어 보이는데, 황후에게 가서 머리 치장을 도와주며 황후가 "너는 고생하다가 나중에 성공하고 싶니, 처음에 좋다가 나중에 실패하고 싶니?"라고 묻자 "신첩은 성공하고 싶습니다." 이렇게 대답하는 걸로 바로 황후 쪽으로 포섭된다![15] 처음에 좋고 끝에 고생하는 이는 지금 활개를 치는 완빈(한군기), 처음에 나쁘고 끝에 성공하는 이는 황후(만군기)이다. 황후의 저 말 뜻은 '완빈이 좋니 내가 좋니?' 라는 거고, 기귀인은 "끝에 성공하겠습니다." 라고 했는데 이 말은 '황후마마를 돕겠습니다.' 즉, '지금은 고생하더라도 꼭 총애를 받아내겠습니다.' 라는 뜻이 된다.[16] 사실 상당히 순화된 표현으로, 원문은 천한 계집(贱婢)이다.[17] 이후 처소로 돌아와서는 먼저 시비 건 얘기는 쏙 빼고 황제에게 울며불며 연답응을 벌해달라 요청하는 여우같은 모습을 보여준다.[18] 황후는 오라나랍 가문의 서출로 이에 대한 콤플렉스가 엄청나다.[19] 그 자리에선 너그럽게 넘어갔으나 안릉용과 대화하며 기귀인은 예쁘기만하고 머리가 비었다고 평했다.[20] 그러고는 흔귀인이 견환에게 예를 갖추자 총애를 잃은 비빈이자 죄인에게 뭐 하러 예를 갖추냐며 견환을 모욕한 것은 덤이다.[21] 이때 황제가 미장도 함께 빈으로 승격하려 했으나 황후가 완빈처럼 성격이 강하니 지금은 때가 아니라 막고 안릉용과 기귀인을 승격시켰다.[22] 목걸이에서 좋은 향이 난다며 황후와의 눈빛 교환을 했다.[23] 이와 별개로 롱월공주는 굉장히 예뻐하는 것으로 보인다. 황제가 경비의 말실수로 노했을 때도 롱월과 함께 있었고, 롱월의 돌잔치에서도 활짝 웃으며 롱월을 몹시 귀여워한다.[24] 자막에는 언니라 대우 하지만 원문을 들어보면 황후와 있을 때와 달리 언니라 부르지 않으며 확실히 다른 분위기를 보여준다. 하대를 하진 않으나 품계가 같은 사람끼리 반말하는 정도로 안릉용을 은근히 무시하는 말투를 쓴다.[25] 최음향을 만들어 사용한다[26] 흔귀인이 영수궁에서 함께 살고 싶다고 말하자 기빈이 저수궁을 나가고 싶은 거면 폐하께 말씀드려 영수궁으로 보내주겠다며 그렇게 아부떨 것 없다고 쏘아붙인다. 그러자 흔귀인은 영수궁은 폐하께서 희비께 특별히 하사하신건데 폐하의 뜻을 거스를 만큼 본인이 대단한 줄 아냐며 비웃는다.[27] 기빈이 뻑하면 악몽을 꾼다느니, 마음이 불안해서 잠을 잘 수 없다느니, 저수궁에는 여자들밖에 없어서 음기가 세서 아프다느니 별별 갖은 핑계를 다 대 황제를 자기 침소로 끌고 들어가려고 애썼다. [28] 이 일로 견환의 대처가 대단히 호평받았는데 황제도 말로는 "걘 원래 그런 애잖아? 그렇게 까부는게 오히려 귀엽지 않니?" 라고 이야기했지만 소윤자가 견환과 4황자 홍력의 명으로 현미죽을 갖다주자 먹기 싫다는 기빈에게 황제는 "희비가 준거니까 남기지 말고 다 먹거라. 만약 이거 다 안 먹으면 니가 아프다는 게 모두 꾀병이고, 거짓말이 되는 것이니 기군망상죄(군주를 기만한 죄로, 근석에 의하면 죽어 마땅한 죄라고 한다)에 해당이 된다." 라는 말을 하며 현미죽 먹이기에 적극 동참한다. 게다가 심미장의 말에 의하면 희비마마의 기세에 내명부가 바로섰다고 이야기가 파다하고 아이까지 버리고 출가해놓고 갑작스럽게 회궁한 견환을 의심스럽게 여기던 태후도 이 일을 알고 견환을 매우 칭찬하며 의심을 거뒀다. 윗전 아랫전 할 것 없이 궁 내에서 단정치 못하다고 소문이 자자했던 모양이다.[29] 패아의 증언으로 흔귀인과 기귀인이 정말로 사이가 나쁘다는 것을 알게 됐고 조사를 통해 황후가 요즘 기빈을 중시해 안릉용이 실의에 빠졌다는 것을 알아내 기빈임을 확신한다.[30] 견환이 감로사로 출궁한 후 쇄옥헌 시녀들은 다 다른 처소로 뿔뿔이 흩어지거나 나이가 차서 출궁했다. [31] 드라마의 극초반부에서 빈 이상이 되어야 한 궁을 다스리고 정전에 기거할 수 있다는 방약상궁의 언급이 나온다. 흔귀인이 나이도 많고 황제를 더 오래 모셨지만 기빈의 지위가 더 높기 때문에 저수궁 통솔권이 기빈에게 있는 것이다.[32] 여태껏 한번도 릉용을 봐준 적 없었으면서 "안빈, 너처럼 천한 것을 그동안 봐줬으면 많이 참았다." 라는 멘트를 날리며 릉용의 성대를 망치는 약을 보내버린다.[33] 견환이 쌍둥이를 출산한 날, 기침을 하자 비문이 문을 열어 둔 이유를 설명하는데 황제가 뺨을 치는 벌을 내려버려 앙심을 품었다.[34] 분아를 패고 남편을 죽이겠다고 협박해 위증에 억지로 동참시켰다.[35] 어의 따위가 마음에 들리가 없는데 황제를 두고 사통했다니 그야말로 모순이다.[36] 오붓하게 손을 잡은 것이 아니라 진맥을 하던 중이었다.[37] 원작에서의 기귀인은 몸이 폭우를 견뎌내지 못해서 죽은 것으로 보인다.[38] 황제가 가장 혐오하는게 바로 부정부패이며 작중에서도 이 점이 제대로 묘사된다. 부정부패를 저지른 자라면 설령 자신의 장인격인 후궁의 친정 아비일지라도 엄하게 처벌하는게 바로 황제다. 실제 역사에서의 옹정제도 부정부패를 극도로 혐오해 부정부패를 저지른 신하들을 엄하게 처벌했다.[39] 황제가 옛정을 생각해 죽이지는 않고 폐서인만 하니 냉궁으로 돌아가서 살라고 말했다.[40] 견환도 이때 폐비되어 출궁했지만 죄를 지어서라기 보단 황제에게 실망해서 자의로 황궁을 나온 거나 다름없다.[41] 이와중에도 견환을 천한 것이라 매도하고 견원도를 비롯한 대신들을 거리낌없이 모함한데다 후궁의 아버지라는 지위를 망각한 채 황제가 가장 혐오하는 부정부패를 저질러, 화를 자초한 자기 아버지인 과이가 악민을 충신(...)이라고 주장하며 천한 것을 편애해서 충신을 죽이냐고 원망하면서 여전히 주제 파악을 못하고 자아도취하는 모습을 보인다.이쯤되면 자아도취를 넘어 최면 수준이다[42] 황제의 원말은 "서인으로 강등하고 사사(賜死)는 하지 않겠다"였다. 보통은 목숨을 남겨둔다는 의미이지만, '자신의 명의로 처형하지는 않겠다'는 의미로도 해석할 수 있다. 실제 소배성은 기귀인을 어디 끌고가서 비밀리에 처형한 것도 아니고 곤장에 두들겨 맞는 기귀인의 비명소리가 방 안쪽까지 들리는데 황제가 모를 리 없다.[43] 극 초중반까지는 아무리 자길 해치려 했던 사람들이라도 그들이 죽었다는 말을 들으면 가책을 느끼거나 무서워하던 모습과 매우 대조적이다.[44] 사실 말이 좋아 공동묘지지, 묘비 같은 걸 챙겨주는 서양식 공동묘지가 아니라 아예 관리도 안하고 대충 시체를 묻어서 처리해버리는 곳이다. 중문으로는 난장강이라고 하는데, '아무렇게나 (시체를) 묻는 산'이라는 뜻이다.[45] 황후의 조카인 청앵은 후작인 여의전에서 황후가 되는 등 가문 자체에 큰 타격은 없는 듯하다. 아무래도 효경황후(순원) 역시 오라나랍 출신이기도 하고 옹정제의 친모 역시 오라나랍 가문과 연관이 있으니... 그래도 가문의 세가 예전(의수가 권력을 쥐고 있었을 때)만 못하다는 언급은 나온다.[46] 다만 원작에서는 화비의 가문도 관씨 가문과 같은 최후를 맞는다.[47] 죄를 지어 자진해 추서할 수 없는 제비조차 그녀 소생인 3황자의 체면을 생각해 시호를 만들어 추서함과 동시에 귀비로 추증되었다. 이는 제비가 공식적으로 문책받지않고 자살하면서 폐출만은 면했기에 가능했던 것.[48] 같은 귀인이어도 만주족이 한족보다 높다. 만주족 귀인 중에서도 출신이 좋은 가문이다. 반면 릉용은 귀인이기는 해도 한족이고, 아버지는 중앙 정치와는 관련없는 송양 현승이다.[49] 화비가 "내가 잘 나갈 때는 황후도 날 못 건드렸는데, 내 밑에서 사냥개 노릇이나 하던 조귀인을 왜 신경 써야 하는데?" 라고 생각하다가 결국에 자기 사냥개에게 물려 죽은 것과 "평소에 그렇게나 얌전하던 흔귀인이 내 흉을 보다니! 기르던 개가 주인을 문 격이잖아?!" 라고 했다가 흔귀인 덕분에 귀인 강등+교호관 연금을 받은 것을 보면, 두 사람의 행보가 약간 비슷하긴 하다. 자기가 개 취급한 사람들에게 반격을 당하고 드라마에서 아웃당했으니 말이다.[50] 이런 점에서 기귀인은 황제와 아주 닮았다.[51] 물론 화비는 파벌의 리더이고 기귀인은 황후의 하수인에 불과한지라 짬밥, 카리스마와 포스가 부족하고 치졸해보인다는 차이점은 있다. 또 하수인을 구박하다가 조귀인의 배신을 자초한 화비와는 달리 기귀인은 흔귀인의 궁녀들을 학대한 적은 있어도 자신의 심복에게는 막대한 적이 없다는 점에서 일장일단이 있다.[52] 반대로 파벌 내에서 기귀인의 라이벌인 안릉용은 두뇌플레이 위주로 암투를 벌이는지라 화비파의 조귀인과 비슷한 포지션이다.[53] 어머니는 아버지에게 배신당해 첩으로 평생을 살아야 했고 아버지의 정실부인(순원황후의 모친)은 그런 어머니와 자신을 학대했다. 그리고 태후의 눈에 들어 왕부로 시집가 적복진 자리에 오르나 했더니만 계략에 의해 적복진 자리를 빼앗겨 자신이 낳은 아이까지 서출로 살아야만 했다. 서출 컴플렉스의 자세한 역사는 오라나랍 의수 항목 참조. [54] 궁 내에서 황후의 서출 컴플렉스는 4황자 홍력의 출생의 사연, 순원황후 관련 발언과 동급으로 금기로 통한다.[55] 애초에 태후가 단정한 것들로 분류하는 후궁은 24명의 후궁중 희귀비, 혜비, 단비, 경비 4명뿐으로 굉장히 적다.[56] 경비의 말에 따르면, 황제도 과이가씨의 잘못을 알고 있었지만, 뿌리를 뽑기 위해 때를 기다리던 것 뿐이라고 한다. 완벽 또한 과군왕이 과이가씨의 죄상을 모으고 있었다는 언급을 했으니 이미 숙청에 걸려든 셈이다.[57] 딱하게 죽은 영귀인이나 황후에게 이용만 당하다 죽은 제비는 심성이 기귀인급 싸가지는 아니지만 좌우지간 목숨 구걸을 했다. 하지만 영귀인은 극후반에서 달랑 2화만 나오고 끝났다. 목숨 구걸이라도 해야 방송 분량이 더 나가니...[58] 기귀인의 봉호는 길할 기(禥) 자를 쓴다. 일반적으로 봤을 때도 무난하고 예쁜 이름이다. [59] 성격, 지식 면에서 현저히 떨어진다.[60] 하지만 악민이 해당 자리까지 올라간 것도 사실은 견원도의 천거 덕분이었다. 은혜는 생각하지 않고 욕심만 부린 것.[61] 견환은 아버지로부터 "니가 후궁에서 으뜸이 되길 바라지는 않는다. 후궁에서의 생활은 가문과 직결되는 사항이니 만약 정말로 총애를 받을 자신이 없다면 부디 조용히 살아다오." 라고 교육받았다. 또한 견환의 어머니인 운신라도 폐하의 총애를 받을 수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건 생명을 보존하는 것이라며 총애보다도 딸의 안위를 중요시한다.[62] 당시 안릉용은 기빈보다 입궁이 빨랐음에도 봉호가 없는 빈이었고 기빈은 봉호가 있는 빈이었다.[63] 당시 안릉용은 엄연히 윗전이었다.[64] 그리고 이 때는 기빈이 총애를 잃은 때였다. 반면 안릉용은 노래와 향료로 황제를 사로잡았다.[65] 사람의 의중을 곧 잘 파악하기 때문에. 릉용은 학식이 뛰어난 사람은 아니었다.[66] 관(關)씨와 발음이 같기 때문에 드라마판에서는 만주족 관씨의 선조인 과이가씨로 각색된 듯 하다. 홍콩 여배우 관지림도 과이가씨의 후손이다.[67] 이름은 여영. 육궁대봉 때 복귀빈이 된다.[68] 성은 예씨. 기귀인과 같이 친자확인사건을 터뜨려 견환을 모함하다가 종8품 경의로 강등된다.[69] 이름은 낙임진. 기귀인과 상귀인 가문에게 모함을 당해 집안이 몰락하자 결백을 증명하기 위해 목을 매 자살한다. 육궁대봉 때 추봉되어 소절비가 되었다.[70] 단순히 아이를 좋아했거나, 아니면 자녀가 없어 부러워 하는 마음이 반영되었을 수도 있다. 어느 쪽이든 가문이 몰락하고 폐서인이 되어 죽었기 때문에 별 의미는 없어졌지만...[71] 한글 자막에는 이름 대신 "기빈 마마의 시녀"라고 나오는데, 견환 환궁 후 악몽 연기+귀인 강등 에피소드에서 "패아, 방금 네가 양심전에 왔느냐?"는 황제의 말에 "황공하오나 소인이 아니라 기빈 마마의 시녀입니다."라고 답하는 대사의 원문을 보면 "不是奴婢,是娘娘身边的景泰." 직역하자면, "노비가 아니라 마마의 시녀 경태입니다."가 된다. 어쨌든 극 중 계속해서 이름이 나오는 다른 처소의 궁인들에 비해 기빈의 시녀는 이 장면을 빼면 그 어디에서도 이름이 언급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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