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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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상세
3. 톨레랑스?
4. 관용적 태도
5.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 tolerance[1]

관대하게 포용한다는 뜻의 한자어.

2. 상세[편집]


나는 당신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지만, 당신이 그 의견을 주장할 권리를 박해 받는다면 함께 싸울 것입니다.

- 에블린 홀, 볼테르와 친구들 中

좁은 뜻으로는 남의 잘못이나 허물을 너그러이 용서하는 것을 뜻하고 넓게는 자신과 다른 특성을 가진 사람의 인격권과 자유를 인정하는 것이라는 뜻으로 통용되며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데에 있어 반드시 필요한 미덕 중에 하나이다.

주의할 점은, 좁은 뜻에서 관용이란 '죄를 합리화하여 없던 일로 치는 것'이 아니라 죄나 잘못을 저지른 사람이 죗값을 치르고 반성하여 개과천선하면 증오를 거두고 새출발할 수 있도록 용서하는 것을 뜻한다. 다시 말해, 사람이 죄를 지었음에 따라 치러야 할 법적, 도덕적 문책까지 사하는 것은 아니다. 관용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은 자신의 잘못을 알며 참된 반성과 함께 피해를 입은 이들에게 진심어린 사죄와 져야 할 책임을 다하는 사람일 것이다.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격언과 아주 밀접한 연관을 가지고 있다. 죄와 사람을 일치시켜 악인으로 낙인을 찍고 평생동안 증오하지 말고, 죄가 사람에게서 떨어져나가면 사람에게서 증오를 거두라는 의미이다. 인간은 의도와는 상관없이 누구나 이러저러한 잘못을 저지르며 성장하기 때문에 발호하는 개념이라 볼 수 있다.[2]

관련된 주제로 '불관용에 대한 관용'이 있다. 관용을 부정하는 것도 관용해야 하는가에 대한 문제다. 보다 구체적으로는 사상의 자유를 부정하는 사상도 허용되는가, 종교의 자유를 인정하지 않는 교리를 가진 종교에게도 종교의 자유가 허용되어야 하는가 등의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이에 대해 현대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대체로 사상은 자유, 행동은 제재하는 편이다. 사상의 자유를 부정하는 사상은 허용되지만 실제로 사상의 자유를 억압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고, 종교의 자유를 인정하지 않는 종교도 믿을 수는 있지만 실제로 남들에게 강요하는 것은 금지되는 식이다.

3. 톨레랑스?[편집]


프랑스어인 톨레랑스라는 말이 유명하다. 그러나 사실 프랑스는 종교 등에 있어서는 관용적인 법을 가지고 있지 않다.

우선 톨레랑스로 유명해진 볼테르는 정작 왕당파나 종교 사상에 대해 격렬하게 비난했으며 특히 가톨릭과 이슬람은 저주에 가까울 정도로 비난했다. 무슬림들이 질색하는 무함마드에 대해 남긴 저주와 비난만도 책 한권은 나온다. 톨레랑스가 통용될 수 있는 부분은 어디까지나 계몽주의적 사고에 따른 "합리적인 의견"에만 해당하는 것이고 근세의 이성에 따른 합리성을 가진 이야기일때일 뿐이다. 프랑스에서 무슬림 관련 탄압 논란이 일어날 때 "톨레랑스의 나라에서 무슨 짓이냐"는 비판이 나올 때가 있는데, 프랑스의 톨레랑스 정신에는 종교를 포함하지 않는다.

톨레랑스가 유명한 이유는 프랑스의 현실보다는 철학 문제 때문이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독일 사상가들이 나치 협력 혐의로 몰락하고 볼테르 - 들뢰즈 - 지젝 등 프랑스 철학계가 대륙철학을 주도하고 있는데 이 사람들이 포스트모더니즘을 이끄는 문화상대주의자이라 이 사람들 말이 인기를 얻게 되었다.

한국에서 톨레랑스라는 말이 유명해진 건 홍세화의 저서를 통해서이다. 그러나 그는 인문학자가 아닌 무역회사 직원이었기 때문에 혁명정신에 포함된 개념을 왕정 시대에도 통용될 "봐준다" 식 관용 정도로 이해했다. 톨레랑스라는 개념은 계몽주의에 반하는 종교 등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프랑스는 유럽에서 가장 가혹한 법률을 집행하는 국가이며 프랑스의 교정기관은 재소자들에게 가혹하기로 유명하다. 그 외 공권력에 대항하는 행위에 대한 처벌도 강하다. 중세때부터 중앙집권이 강한 국가였고 근대에도 나치 독일프랑스 침공에 묻혀서 그렇지 국가주의가 만연해 좌파마저도 국가주의에 매몰되어 있기도 하다는 비판을 듣기도 할 정도로 애국주의가 강하다.

4. 관용적 태도[편집]


나와 다른 의사를 가진 사람과 이야기하거나 혹은 접하게 될 때 자신과 다른 사고를 하는 이에게 "그럴 수도 있지" 라는 마음가짐을 가지는 것을 말한다. 이것이 부족할때는 자신과 다르다는 것을 이유로 상대방을 비방하거나 무시하게된다.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그런 거 없다. 이는 인터넷 커뮤니티의 한 비판점이기도 하다. 진영논리에 따라서 해당 사이트와 성향이 비슷한 편이 잘못했을 때는 가재는 게 편 식으로 관용을 베풀거나, 외부로부터 관용적 태도를 취할 것을 요구하지만, 해당 사이트와 성향이 다른 편이 잘못했을 때는 사소한 잘못이더라도 그냥 넘어가지 않고 비난악성 댓글을 일삼으며 대상이 추락할 때까지 끝까지 물어뜯는 경향이 있다. 게다가 이 잘못은 인터넷 기록에 박제되어 그대로 남기 때문에 낙인이 되어서 두고두고 회자되어 관용적 태도를 취하기 어렵게 만든다.

나무위키가 이 분야의 선구자인데, 대상의 기록을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위키의 특성상, 대상의 잘못이나 논란이 기록된 내용을 가져다가 대상에 대한 서술을 할 때 그대로 가져다 붙여서 쉽게 과거의 잘못을 수면 위로 끌어올릴 수 있다. 이걸 한 번 가져다 붙이는 것이 아니라 대상을 소개할 때마다 갖다 붙이기 때문에 독자로 하여금 초두효과로 대상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갖게 만드는 원인이 된다.

물론 문서의 내용과 관련이 있거나 유사한 논란이나 잘못이라면 서술의 정당성이 있겠지만, 문서의 내용과 하등 관련이 없을 때에도 잘못이나 문제점을 갖다 붙이는 것은 대상을 부정적으로 보이도록 하기 위한 목적을 가지는 비중립적인 서술로서, 서술 분쟁의 원인이 된다.

또 다른 원인은 관용이라는 것이 그 특성상 객관적으로 서술하기 어려운 문제이기 때문이다. 나무위키를 편집할 때 논란 및 문제점의 존재 근거에 대해서는 언론 기사 등의 각종 자료들을 쉽게 가져다 붙일 수 있지만, 이 논란이나 문제점에 대한 관용[3]은 언론 등의 출처에서 다루지 않는 주관적이고 이차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독자연구로 삭제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기껏해야 저명한 인물의 관용 관련 발언을 인용하거나, 토론 합의로 MPOV 관점을 문서에 적용해야 관련 서술을 할 수 있을까 말까이다.

그에 반해, 있는 논란과 잘못을 서술하지 말라는 위키 규정은 없으므로 결과적으로 보면 인물 문서는 위키 특성상 관용적인 태도와는 거리가 멀어보이는 서술이 된다. 이는 관용이 적용되는 현실 사회와는 괴리감이 있기 때문에 외부에서 나무위키에 대한 반감을 갖게 만드는 원인이 된다.

그러나 이것은 감정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실제 해당 편집이 정당한지에 대한 여부와는 별개이다. 근본적으로 위키는 객관적인 내용을 전달하는 사이트이며, 외부에서 관용을 요구하는대로만 서술하면 어용 사이트와 다를게 없기도 하고, 나무위키에서는 외부 개입이라고 이를 매우 경계하는 경향이 있다.

5. 관련 문서[편집]


[1] 영어식 발음은 '톨러런스', '프랑스어식 발음은 톨레랑스이다. 후자(정확히 말하면 프랑스에서 쓰이는 '톨레랑스'의 함축적 의미)는 홍세화에 의해 유명해진 면도 없지 않다. 'Tolerance'라는 단어는 약리학에서는 내성을, 설계에서는 공차를 의미하기도 한다.[2] "눈에는 눈 이에는 이"가 이 격언의 반대라는 서술이 있었으나, 본래 이 문장은 '눈을 상하게 한 자는 반드시 눈을 상하게 하라'는 엄벌주의가 아니라, 눈을 상하게 한 자는 그에 대해서만 처벌하고 그 이상의 과도한 처벌은 하지 말라는 죄형법정주의를 나타내는 구절이다. [3] 옹호, 참작 이유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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