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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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원
선종
등대순시선(Light Tender)
전장
66.7미터
전폭
9.1미터
흘수
6.4미터 / 9.03미터 (만재시)
인원
100명
기준 배수랑
9??톤 / 적재 톤: 540톤
만재 배수량
1,056톤
엔진
삼연성(三連成) 레시프로형 기관 2기
속력
2,438 마력으로 최대 14.77노트
순항 거리
14.8노트로 최대 ?,???해리? nm? 까지 항해가능
무장
76.2mm ??구경장 단장 함포 x 3문

1. 개요
2. 상세
3. 기타
4. 같이보기



1. 개요[편집]


/KIS Gwangje[1]
대한제국이 운용했던 등대순시선(Light Tender).


2. 상세[편집]


이 등대순시선은 일본 가와사키조선(川崎造船) 고베조선소에서 1904년(광무 8) 11월 건조한 것으로, 무선전신시설이 장치된 것은 1910년 9월이다. 원래 근대식 군함을 도입하려고 추진한 것은 1881년(광무 18) 군비강화책의 일환으로 공채를 모집하면서부터다.

1902년 말 해군을 창설하면서 석탄운반선을 급히 개조한 양무호라는 순양함을 도입하였으나 운영비가 너무 많이 들어 다시 일본의 가와사키[川崎] 조선소에서 이 등대순시선을 건조하였으며, 당시의 조선술로서는 최신의 기선이었다. 여기에 3인치(76.2mm) 함포를 장치하여 해안경비, 등대 순시와 세관 감시 등 여러 목적에 사용되었다.

다른 나라 놔두고 일본에서 들인 까닭은 일본이 서양에서 군함을 도입할 길을 끊어 놓았기 때문이다. 이쪽 비화는 양무호 참고.

광제호(廣濟號)를 도입하면서 지금까지 육군편제로만 구성된 15군부를 개편하여, 근대식 해군편제를 마련하는 등 입법조치를 강화하였다. 그러나 1905년 11월 을사조약의 체결을 계기로 해군 군함으로서의 사명을 끝내고, 인천항을 모항으로 하는 탁지부 관세국 소속의 연안세관 감시선이 되었다. 그러다가 1910년 9월 15일 처음으로 무선전신시설을 설치하였다. 초대 선장은 신순성이었다.

한 달 후 한일 합병으로 조선총독부 소속이 된 광제호는 광제환(光濟丸, 고사이마루)로 개명된다. 1912년부터 24년까지 조선총독부 체신부(통신부) 소속으로서 인천항의 초계를 담당하고 무선 통신 업무 등에 사용되었다. 1925년 광제호는 조선우선주식회사에 팔려 화물여객선으로 원산-청진 노선에 취항했으나 28년까지만 업무에 쓰였다. 1930년, 일본 해군에 이관된 광제호는 허드렛 선박의 일종인 여객화물선으로 분류되어 진해와 일본 사세보 사이의 연락 임무에 쓰였다. 이후, 1945년 태평양 전쟁에서 일본이 패할 때까지 살아남는다.

1945년 광복 이후 광제호는 한반도에 거주하던 일본인들을 일본 본토로 수송하는 데 쓰이면서 일본으로 건너가 버렸다. 이 탓에 대한민국은 변변한 전투함 한 척도 없었고, 해방병단을 세운 손원일 제독은 말 그대로 맨땅에서 해군을 일궈야만 했다.[2] 일본 해군에 소속된 광제호는 1947년까지 구난 선박으로서 수송임무에 쓰이다가 1947년 5월 14일 오사카에서 요코스카로 항해 도중 좌초하여 전손 처리되었다.


3. 기타[편집]


광제호는 해군 함정이기는 했지만 장비나 성능 측면에서는 전투함이라기보다는 등대를 관리하고 경비하는 등대순시선(Light Tender)에 가까웠다. 무장 역시 함포 3문으로 역내 무단침입 선박을 저지하는데 적합한 빈약한 수준이었다. 참고로 선내에는 등대 부품 창고가 있었다.


4. 같이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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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Korean Imperial Ship[2] 물론 광제호 자체가 당시 40년이 넘었던 노후함이라 보통 30년 넘으면 대부분 퇴역 처리되는 군함 특성상 두고 갔어도 큰 도움은 되지 못했을 것이다. 이후 손원일 제독이 직접 미국에서 도입해온 백두산함은 광제호보다 수십년 후에 건조된 군함이다. 물론 광제호가 대한민국 해군에서 재취역했으면, 대한민국 해군조선 수군 - 대한제국 해군을 계승했다는 정통성은 더 강화되었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