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광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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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
구인회
(1947~1969)
제2대
구자경
(1970~1995)
제3대
구본무
(1995~2018)
제4대
구광모
(20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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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그룹 제4대 회장
구광모
具光謨|Koo Kwang-mo


파일:구광모.jpg

출생
1978년 1월 23일 (46세)
서울특별시 강남구
국적
[[대한민국|

대한민국
display: none; display: 대한민국"
행정구
]]

거주지
서울특별시 용산구 한남동
본관
능성 구씨 (綾城 具氏)[1]
직업
기업인
직책
LG 대표이사 회장
학력
경복초등학교 (졸업)
봉은중학교 (졸업)
영동고등학교 (졸업)
로체스터 공과대학[2] (컴퓨터과학 / 학사)
부모
친부 구본능, 친모 강영혜
양부[3] 구본무, 양모 김영식
형제자매
양형 구원모(1975~1994)[A]
양여동생 구연경(1978~ )[A]
양여동생 구연수(1996~ )[A]
이복여동생 구연서(1999~ )[B]
배우자
정효정[4]
자녀
슬하 1남 1녀
병역
산업기능요원 소집해제
재산
18억 달러 (한화 약 2조 2,600억 원)[5]

1. 개요
2. 생애
2.1. LG그룹 방계에서 LG그룹의 후계자로
2.2. LG그룹 내에서의 경력
2.3. LG그룹 회장 취임 및 활동
2.3.1. LG 트윈스의 구단주



1. 개요[편집]


대한민국기업인. LG그룹 제4대 회장이다.


2. 생애[편집]


1978년 1월 23일, 희성그룹 회장 구본능(具本綾)[6]진주 강씨 강세원(姜世遠)의 딸[7] 강영혜(姜暎惠)[8]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사립 초등학교인 경복초등학교[9] 봉은중학교, 영동고등학교[10]를 졸업했다. 이후 미국 로체스터 공과대학(Rochester Institute of Technology)에서 컴퓨터과학전공했다.[11]


2.1. LG그룹 방계에서 LG그룹의 후계자로[편집]


LG그룹은 가문의 딸들도 활발하게 활동하는 타 재벌[12]과는 달리 여성의 경영 참여를 허용치 않고[13] 철저한 장자 승계의 원칙이 지켜진다. 구본무 회장은 사고로 외아들을 잃는 참척의 아픔을 겪은 후 51세의 나이에 늦둥이까지 봤는데 딸이었다. 그래서 큰동생인 구본능의 장남 구광모를 양자로 삼게 되었다.

배우자 정효정은 중소기업 보락의 대표 정기련의 장녀로 보락의 LG생활건강 매출 비중이 늘어나면서 보락 주가가 폭등하는 등 그 영향력이 대단했다. 미국에서 유학 중이던 2000년대 중반에 연애를 시작했다고 한다. 주변인에 따르면 정효정은 성격이 원만하고 매사에 성실해 친구들 사이에서 단연 인기가 좋았다고 한다. 혼인 이야기가 시작되면서 보락 측에서 굴지의 재벌가와 사돈이 되는 것에 큰 부담을 가졌으나 거꾸로 LG가에서 두 사람의 만남을 지원하고 나서 2009년에 결혼했으며 슬하 1남 1녀를 두었다.


2.2. LG그룹 내에서의 경력[편집]


2006년 9월, LG전자 재경부문 금융팀 대리로 입사한 후, 2007년, 미국 스탠퍼드 대학교MBA(경영학 석사학위) 과정에 입학했다 중퇴하고 실리콘 밸리스타트업에서 경험을 쌓았다. 2009년 8월, LG전자로 복귀한 뒤 2011년 LG전자 홈엔터테인먼트(HE) 사업본부 뉴저지법인 차장으로 승진했다.

2014년 1월, 국내로 들어와 3월 HE사업본부 TV선행상품 기획팀 등 LG전자에서 여러 사업 부문을 경험하고 생산 현장도 거쳐 (주)LG 시너지팀 부장으로 이동했고 2016년에는 2년 만에 임원으로 승진했다. 전무 승진 예상과는 다르게 상무 직급을 유지한 채 LG전자 B2B 사업본부 ID 사업부장을 맡게 됐다.

구본무의 사망으로 2018년 6월 사내이사, 대표이사로 선임됐다. 구광모 체제 출범 이후 일감 몰아주기 논란 등을 사전에 해소하기 위한 조치들을 취했다. 지난해에는 물류회사 판토스 지분 19.9%와 소모성 자재 구매 대행 자회사 서브원의 지분 60.1%를 매각했다.


2.3. LG그룹 회장 취임 및 활동[편집]


양부이자 큰아버지 구본무가 1년 간의 뇌종양 투병 끝에 2018년 5월 20일 사망한 이후,[14] 약 한 달이 지난 6월 29일 LG그룹 회장으로 취임했다. 만 40세로 젊은 축에 들긴 하지만 사상 최연소 재벌 총수는 아니다. 최연소는 1981년 한화그룹을 승계한 당시 29세의 김승연.

현대중공업그룹 정몽준[15], 현대백화점그룹 정몽근의 사례가 있지만 이들은 모두 아버지 정주영이 생존한 상태에서 취임한 경우고 저 당시에는 지금처럼 계열 분리되어 독립한 게 아니라 현대그룹의 계열사였기 때문에 그룹 총수가 아니라 계열사 사장으로 취임한 것이다. 현대그룹으로 독립하여 회장으로 취임한 건 정주영의 사후에 생긴 일이다.

여러모로 제일 비슷한 케이스는 SK그룹최태원인데 최태원의 아버지 최종현이 사망했을 당시 만 40세도 되지 않았다. 게다가 당시에도 SK그룹은 재계 10위 안쪽의 그룹이었다. 당시 최종현의 가신 중의 가신이던 손길승이 임시로 SK그룹 회장직을 맡았고, 2004년에야 최태원 본인이 회장으로 취임했다.

2018년 9월 18일, 평양에서 열리는 남북정상회담에 4대 그룹 총수 중 한 명으로 사절단에 합류했는데, 취임한지 얼마 안 되어 중요한 행사에 참석했다는 점에서 스타트를 좋게 끊었다고 볼 수 있다.

구본무의 유족들이 납부할 상속세는 총 9,179억 원이며, 이 중 구광모가 내야 할 상속세는 약 7,200억 원이라고 한다. 구광모 가 상속세를 완납할 경우 2003년 교보생명 전 회장 신용호가 사망하고 신창재가 상속받으면서 낸 상속세 1,830억 원의 기록을 경신하게 된다.

파일:PS18052800081.jpg


2018년 11월 30일, 연부연납 제도를 통해 다른 상속인들과 함께 전체 상속세 9,215억 원의 1/6에 해당하는 금액을 납부했으며, 남은 상속세를 최대 5년간 나누어 낼 예정이라고 관계자가 밝혔다.

취임 이후 인공지능, 로봇, 전장, 전기차 배터리 등 신사업을 적극 추진하는 동시에 적자 사업은 과감히 정리하는 등 그룹의 체질 개선에 나섰다. 2018년에는 대규모 적자를 낸 LG디스플레이 LCD사업의 구조조정을 단행한 바 있으며, 특히 2021년 1월 20일에는 그동안 적자를 기록한 MC사업부 청산을 발표하는 결단을 내렸다. #

국내외 경쟁 기업들과도 연이어 소송전을 벌였으며 마케팅에서도 경쟁 기업을 상대로 도발하는 등 달라진 LG의 모습을 보여줬다. OLED TV와 LG 그램 광고가 그 예시.


2.3.1. LG 트윈스의 구단주[편집]


2019년 1월 18일, LG 트윈스KBO에 구단주 변경 신청을 함에 따라 작은아버지 구본준에 이어 LG 트윈스 구단주를 맡게 되었다. 이로써 구광모는 KBO 리그 10개 구단의 구단주 중에서 최연소 구단주가 된다. 다만 실질적인 구단주 업무는 LG스포츠 대표이사 이규홍이 대신할 예정.[16]

구본무와는 다르게 FA에도 매우 소극적이고 야구단에 큰 관심은 없어 보였으나, 2022 시즌을 앞두고 연이은 FA 투자를 보여주며 야구단에 어느 정도 관심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LG가 2023년 한국시리즈에 진출하자 유광잠바를 입고 직접 1, 4차전 관람에 나서기도 했다.[17] 4차전 때 파도타기 응원에 동참하는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다.[18][19] 5차전에도 관람하여 현장에서 팀의 3번째 우승을 목격했고 [20] 경기 후 세레머니에서 선수단에게 헹가래를 받기도 했다 [21].[22]


3. 가족 관계[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범LG가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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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도원수파(都元帥派) 호양공계(胡襄公系) 29세 모(謨) 휴(烋) 항렬.[2] 로체스터 대학교와는 다른 학교다.[3] 백부[A] A B C 구본무 아내 김영식 소생.[B] 구본능 후처 차경숙 소생. 즉 친형제자매는 없다.[4] 2009년 결혼.[5] 2023년 2월 포브스 기준. 대한민국 부자 순위 18위.[6] 구자경의 차남[7] 다음은 출처 사진이다. 파일:record-image_ (5) - 복사본.jpg[8] 출처: 구인회 묘비.[9] 현대차그룹 회장 정의선도 경복초등학교를 나왔다. 정의선은 구정중, 휘문고 출신이다.[10] 봉은중학교 남학생들은 경기고등학교로 주로 배정되나 영동고등학교, 청담고등학교, 압구정고등학교로 배정되는 경우도 있다.[11] 재수를 거쳐 한양대학교에 합격했으나 입학하지 않고 그대로 유학을 갔다.[12] 범삼성가이인희, 이명희, 이부진, 이서현을 떠올리면 쉽다.[13] 예외적인 경우로 아워홈 대표이사 부회장 구지은이 있다.[14] https://www.sedaily.com/NewsView/1RZLTT4H0A[15] 몽준은 1988년 13대 총선에서 당선되어 정치를 시작하면서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으며, 계열 분리 이후 현대중공업그룹의 경영은 전문 경영인에게 맡겼다. 그러나 현대오일뱅크 인수나, 현대종합상사(정몽혁), 현대종합금융(정몽일)같은 사촌동생과 친동생을 챙기는 일은 본인의 의중이 반영된 것이다.[16] 이후 이규홍이 정년퇴임하고 김인석이 새로 부임했으며, 구단주 대행은 그의 생부이자 KBO 총재를 맡았던 구본능이 새로 취임했다.[17] 1차전은 LG가 KT한테 2-2 상황에서 고우석의 방화로 9회초 1점을 허용하며 2-3으로 석패했다. 4차전은 상대 투수들 공략에 성공하며 15-4로 대승하였다.[18] 파일:구광모파도타기.jpg[19] 여담으로 이 사진 외에 같은 날 찍힌 사진들에서 포커페이스의 표정을 보여 화제가 되기도 하였다.[20] https://www.fmkorea.com/search.php?mid=best&listStyle=webzine&document_srl=6392111503&search_keyword=%EA%B5%AC%EA%B4%91%EB%AA%A8&search_target=title_content&page=1[21] https://www.fmkorea.com/search.php?mid=baseball&sort_index=pop&listStyle=webzine&document_srl=6391896491&search_keyword=%ED%97%B9%EA%B0%80%EB%9E%98&search_target=title_content&page=1[22] 4차전 때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던 것과는 달리 이날 경기 승리 이후 굉장히 좋아하는 모습이 포착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