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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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대성 관련 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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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대성의 수상 경력 / 보유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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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Eagles_Champion_v1.png
KBO 리그 한국시리즈
우승반지

1999

파일:2000 시드니 올림픽 로고.svg
2000 시드니 올림픽 야구 종목
동메달
2000



파일:KBO 리그 로고(엠블럼/영문, 2013~2021).svg
1996 KBO 리그 MVP

파일:KBO 로고(세로형, 2013~2021).svg KBO 포스트시즌
1999 한국시리즈 MVP

파일:KBO 리그 로고(엠블럼/영문, 2013~2021).svg
1996 KBO 리그 다승왕

파일:KBO 리그 로고(엠블럼/영문, 2013~2021).svg
1996, 2000 KBO 리그 최우수 평균자책점

파일:KBO 리그 로고(엠블럼/영문, 2013~2021).svg
1996 KBO 리그 구원왕

파일:KBO 리그 로고(엠블럼/영문, 2013~2021).svg
1996 KBO 리그 승률왕





파일:ABL 로고.svg
2010-11 호주 프로야구 리그 최고 구원투수상

파일:ABL 로고.svg
2013-14 호주 프로야구 리그 최고 구원투수상

KBO 보유 기록
1996~2000
2006~2007
7년 연속 20세이브[1]
단일 시즌 K/9 1위
11.85개[2]
통산 K/9 1위
9.74개[3]

ABL 보유 기록
최고령 등판
만 53세


구대성의 역임 직책 / 역대 등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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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fffff [[빙그레 이글스|빙그레]]
/
[[한화 이글스|
한화 이글스]] 등번호 15번}}}
유해덕
(1986~1989)

구대성
(1993~2000)


지승민
(2001~2003.4.24.)
{{{#Fff [[오릭스 버팔로즈|오릭스 블루웨이브]] 등번호 18번}}}
스기모토 유우
(1997~2000)

구대성
(2001)


야마구치 카즈오
(2003~2009)
{{{#Fff [[오릭스 버팔로즈|오릭스 블루웨이브]] 등번호 15번}}}
카네다 마사히코
(1999~2001)

구대성
(2002~2004)


가토 다이스케
(2005~2011)
{{{#fff [[뉴욕 메츠|뉴욕 메츠]] 등번호 17번}}}
윌슨 델가도
(2004)

구대성
(2005)


호세 리마
(2006)
{{{#fff [[한화 이글스|한화 이글스]] 등번호 15번}}}
이양기
(2004~2005)

구대성
(2006~2010)


유창식
(2011~ 2014)
{{{#fff [[시드니 블루삭스|시드니 블루삭스]] 등번호 30번}}}
팀 창단

구대성
(2010-11~2011-12)


결번
{{{#fff [[시드니 블루삭스|시드니 블루삭스]] 등번호 45번}}}
데이비드 웰치
(2010-11)

구대성
(2012-13)


그랜트 헤이먼
(2015-16)
{{{#fff [[시드니 블루삭스|시드니 블루삭스]] 등번호 30번}}}
결번

구대성
(2013-14~2014-15)


라클란 웰스
(2015-16)
{{{#fff [[질롱 코리아|질롱 코리아]] 등번호 15번}}}
팀 창단

구대성
(2018-19)


김태현
(2022-23)
{{{#fff [[질롱 코리아|질롱 코리아]] 등번호 43번}}}
결번

구대성
(???)


팀 해체


A대표팀 참가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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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83571_45395_407.jpg

구대성
具臺晟 | Koo Dae-Sung

출생
1969년 8월 2일 (54세)
대전광역시 동구
국적
[[대한민국|

대한민국
display: none; display: 대한민국"
행정구
]]

학력
대전신흥초 - 충남중 - 대전고[1] - 한양대[2][3]
포지션
투수
투타
좌투좌타[4]
프로입단
1993년 1차 지명 (빙그레)
소속팀
빙그레-한화 이글스 (1993~2000)
오릭스 블루웨이브 (2001~2004)
뉴욕 메츠 (2005)
한화 이글스 (2006~2010)
시드니 블루삭스 (2010/11~2014/15)[5]
질롱 코리아 (2018/19, 2022/23)[6]
지도자
시드니 블루삭스 투수코치 (2016~2017)
질롱 코리아 감독 (2018/19)

호주 U-15 야구대표팀 감독 (2016)
[ 가족관계 ]
배우자
배우자 권현정[1]
자녀
아들 구상원
딸 구영은
형제자매
구대진


1. 개요
2.1. 기록
3. 피칭 스타일
4. 은퇴 이후
4.1. 지도자 경력
6.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파일:2016040601000388000024781.jpg


한화 이글스 출신 좌완 투수이자 前 질롱 코리아 감독.

현역 시절 빙그레 이글스한화 이글스에서 활약하면서 KBO 리그 역사상 단 2명[7]만이 해낸 투수 4관왕이라는 대기록을 최초로 달성했고, 이후 NPB 오릭스 블루웨이브에서도 평균자책점 2위에 오르는 등 인상적인 활약을 펼쳤다. 말년에는 MLB 뉴욕 메츠로 이적하면서 한•미•일 무대를 모두 밟아보기도 했다.

임창용과 함께 한국 야구의 대표격인 중무리 투수였으며, 대표적인 별명은 '대성불패'[8]와 '일본 킬러'[9], '쿠옹'[10] 등이 있다.

현 시점까지 한화 이글스의 유일한 한국시리즈 MVP이다.


2. 선수 경력[편집]




2.1. 기록[편집]


  • 한국 첫번째 9년 연속 두 자릿수 세이브.[11]
  • 역대 마무리 투수 중 유일한 MVP 수상자.[12]
  • 평균 자책점 1위를 두 번 이상 달성한 선수 다섯 명 중 한 명.[13]
  • 투수 4관왕 : 구원투수라는 이유 + 몰지각한 기자들 때문에 요즘은 묻혔지만, 어쨌든 투수 4관왕을 달성한 투수 세 명[14] 중 한 명이다.
  • 다승왕-구원왕을 동시에 차지한 투수 세 명 중 한 명.[15][16]
  • 7년 연속 세 자릿수 삼진.[17]
  • 호주 프로야구 리그 초대 세이브 왕 및 통산 세이브 2위(2019년 2월 8일 기준 35개).[18]
  • 메이저리그 통산 타율 5할(2타수 1안타) - 자세한 내용은 구대성/이모저모 참고.


3. 피칭 스타일[편집]



투구폼 변천사. 고교 및 대학 시절엔 나름 평범한 투구폼[19]이었다가 프로 경력이 쌓여갈수록 점점 몸을 뒤로 돌리고 팔각도를 낮추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상대 타자에게 등을 보인 채로 와인드업해 공을 던지는 기묘한 폼[20][21]으로 투구한다. 디셉션(Deception)이 좋은 선수로 공 릴리즈까지 걸리는 시간도 매우 짧아서 구종 파악에도 힘이 들며, 공을 치는 타자 역시 공을 볼 수 있는 시간이 매우 짧아서 치기 어려운 폼으로 정평났다. 이 때문에 투수의 투구시의 버릇(이른바 '쿠세') 등을 통해 구질을 파악하는 경향이 강한 일본 야구에 매우 강한 면모를 보인다. 메츠 시절 익힌 서클 체인지업과의 조합도 일품. 이 서클 체인지업은 훗날 류현진이 전수받아 잘 써먹고 있다.

보통 나이를 먹을수록 체력 문제 때문에 폼이 간결해지는데, 구대성은 나이를 먹을수록 등을 더 돌렸다. 국내 복귀 후 투구 폼은 아예 2루를 보고 선 수준이었다. 훗날 인터뷰에서는 나이를 먹으면서 구속이 떨어지자 타자들에게 최대한 공을 숨기고 싶었다고 밝혔다.[22] 이 폼 때문에 왼쪽 무릎에 부상을 입어 KBO 은퇴를 하게 됐다.[23] 이 배배 꼬인 폼과 좌완이면서도 흔치 않은 사이드암에 가까운 스리쿼터 스로형 투수이기 때문에 좌타자들에게는 거의 저승사자 수준으로 극강이었다. 합법 병역 브로커 타자 대표 이승엽은 "선수 생활 내내 대성이 형 공은 제대로 맞힌 적도 없다."라고 할 정도.[24] [25]

KBO를 대표하는 닥터 K 중 한명으로 투수의 탈삼진 능력을 측정하는 K/9(9이닝 동안 삼진을 몇 개나 잡는지 측정) 수치가 통산 9.74개인데 한 이닝 당 타자 한명은 기본 삼진으로 잡았다는 얘기. 이는 통산 1,000이닝 이상 소화한 투수 중 KBO 역대 1위 기록이다.[26] 또한 커리어하이인 1996년에 기록한 K/9은 11.85개로 이는 규정이닝을 채운 투수들 중 단일 시즌 역대 1위다.

전성기 시절의 패스트볼 구속은 평균 140km/h 초중반, 최고 구속은 대학시절 156km/h까지 나왔다고 한다. 물론 이건 전성기 시절이고 나중엔 평균 136km/h로 떨어지긴 했다.[27][28] 프로 데뷔 이전부터 당한 혹사로 커리어 내내 구위가 계속 하락했지만, '투수라는 보직에 가장 적합한 마인드'로 평가받는 배짱과 승부근성은 그를 혹사에도 장수할 수 있게 했다. 일본전 때의 인터뷰 中 "저는 일본 선수들이 제 공을 제대로 친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라고 한 것이 단적인 예다.[29]


4. 은퇴 이후[편집]



4.1. 지도자 경력[편집]


은퇴 후 호주에서 선수활동을 이어가던 구대성은 선수생활을 끝내고 지도자의 길을 걷고 있다.

2016년에는 15세 이하 호주 국가대표팀의 감독을 역임했다.

2016년 ~ 2017년에는 시드니 블루삭스의 투수코치로서 활동했다.

2018년 7월, 호주 프로야구 리그질롱 코리아팀 감독으로 선임되었다. 관련기사 그러나 감독으로서의 역량은 부족한 것으로 보이는데, 2할대에 못미치는 승률을 내고 있다. 1982년 승률 0.188의 삼미 슈퍼스타즈보다 조금 나은 수준이며, 주전을 모조리 팔아치웠던 승률 0.224의 99쌍방울과 35승 1무 97패, 승률 0.265를 찍은 백인천의 02롯데보다 더 성적이 안 나오고 있다. 물론 역량이 부족하다는 부분에 약간의 변론을 하자면, 현재 호주 프로야구의 수준은 구대성 감독이 세이브왕을 2년 연속 하던 때 보다는 확실히 올라간 것을 경기를 보면 충분히 알 수가 있다. 호주 프로야구 리그 문서에도 있다시피 최근에는 시속 150km를 던지는 호주 선수들도 점점 나오고 있으며, 피지컬 적으로 많이 발전한데다, 미국 마이너리그에서 온 선수들과 코치들에 의해 야구의 세밀한 부분까지 계속 흡수하면서 급격히 성장하고 있는 곳이 호주 야구리그이다.

이런 곳에 KBO에서 2군에서도 못 버티고 방출되어 나온 선수들, 아예 프로 입단을 하지 못하고 독립리그에서 뛰던 선수들, 고교 및 대학 졸업 직전의 선수들을 이끌고 시즌을 보냈다. 거기다가 볼판정에 대해 물어봐서 퇴장, 주자 몸통박치기 당한것에 대해 이야기하니 오히려 퇴장 등등 심판도 굉장히 비호의적이긴 하다 #
성적이 당연히 좋지 못한건 어느 정도 참작을 해야하는 부분으로 보인다. 다만 이런 모습을 2019/20시즌에도 보여준다면 이에 대한 감독으로서의 책임을 피하기는 힘들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비판은 구대성 감독과 박충식 단장이 섣불리 팀을 구성해서 팀이 계속 포기하는 모습이 보이자 네티즌들은 "호주리그를 우습게 봤다"는 지적이다. [30] 즉 팀 구성을 착실히 다진 후 리그에 나섰어야 했는데 성급하지 않았냐는 것.

한편, 2019년 1월 19일에는 보다못해 본인이 감독임에도 선수 대기명단에 이름을 올리다 직접 패전조로 등판(...)해 1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았다. 그야말로 답답해서 내가 던진다를 보여줬고 훌륭한 위기관리 능력을 발휘하였다. #

이젠 2019-20 시즌은 팀을 제대로 만들어서 해야 된다. 리그 적응을 우선적으로 하는게 숙제.. 별차 없으면 있으나마나한 팀으로 생각해야 되지 않을까.. 했는데 질롱 코리아가 19/20시즌 KBO 연합팀으로 구성되었고 신임 감독으로 MLB 출신 그램 로이드가 선임되면서 구대성은 1년만에 질롱 코리아 감독직에서 내려오게 되었다. 구대성이 감독직에서 내려 온 이유가 무엇인지는 명확히 알려지지 않았다.


5. 여담[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구대성/이모저모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6. 관련 문서[편집]



[1] 68회 졸업생이다.[2] 관광학과 89학번[3] 딱히 의미는 없지만 가수 김성재의 학과 3년 선배다.[4] 사실 원래는 오른손잡이였으나 어렸을 때 놀다가 다쳐서 오른팔이 골절되어 입원했을 때 반강제로 왼손을 사용하다가 그게 익숙해져서 왼손잡이가 된 것이다.[5] 2012 아시아 시리즈 기간 한정으로 퍼스 히트로 일시적으로 트레이드[6] 2018/19시즌 부터 감독직을 역임하였으며, 이 때 팬 서비스 차원에서 등판하였다. 그리고 2023년 1월 16일, 55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질롱 코리아 투수진에 정식 선수로 등록되었다.[7] 나머지는 2011 시즌 윤석민.[8] 구대성 본인이 가장 마음에 드는 별명이라고 한다.[9] 시드니 올림픽 동메달 결정전에서 일본 마쓰자카 다이스케를 상대하여 155구 완투승을 거둔 것은 아직까지도 회자된다.[10] 구대성의 성인 Koo와 나이 많은 사람을 부르는 호칭인 옹을 붙여서 팬들이 주로 쓰곤 했다.[11] 두번째는 손승락.[12] 당시 MVP 경쟁자가 한국 최초로 30-30을 달성한 신인 박재홍이었다. 참고로 선동열은 MVP를 받았을 때 선발 투수였다.[13] 다른 네 명은 선동열, 류현진, 윤석민, 그리고 양현종.[14] 다른 두 명은 선동열, 윤석민. 이 둘은 다승, 평균자책점, 탈삼진, 승률 4관왕이다.[15] 당시 구원왕의 기준은 세이브수가 아닌 구원승+세이브수인 세이브 포인트로 구원왕을 가리는 제도였다. 당대 18승 중 절대 다수가 구원승이었기 때문에 중무리를 하면서 구원왕이 가능했던 것.[16] 구대성 이전에 송진우가 달성한 것이 최초였고, 이후 신윤호가 2001년에 달성한 것이 마지막. 21세기부터는 마무리 개념이 제대로 잡혔고, 2004년부터는 세이브 포인트가 아닌 세이브 숫자로 구원왕을 가리게 되어 사실상 거의 달성할 수 없는 기록이 되었다.[17] 마무리 투수 중에서는 유일하다.[18] 리그자체가 2010년에 출범한 신생리그다. 따라서 누적 스탯이 적다.[19] 안경현의 말에 의하면 약간 옆을 보는, 랜디 존슨과 비슷하게 던졌다고.[20] 노모 히데오의 토네이도 투구법의 영향을 받았다고 은퇴 전 인터뷰에서 밝혔다.[21] 스톡킹에서 본인말로는 한일슈퍼게임때 당시에는 반팔을 입고 던졌는데, 일본타자들이 근육의 미세한 변화를 알아챈다는 조언을 듣고 점점 팔을 숨기려 돌리다보니 그렇게 됐다 한다[22] kbs n sports 'The 레전드' 대성불패 편 참조[23] 그래서인지 구대성은 이렇게 하면 무릎 나가니까 하면 안 된다고 했다.[24] 이승엽은 선수시절 구대성을 상대로 51타수 6안타(1홈런)를 기록했다[25] 구대성 본인은 변화구 제구에 자신이 없었는데 이승엽에게 직구만 던져도 알아서 아웃됐다 한다[26] 500이닝 이상 투수 중 구대성보다 더 뛰어난 탈삼진 능력을 가진 투수는 오승환이다. 510이닝 동안 K/9가 11.02개나 된다.[27] 오릭스에서 뛰던 시절에는 최고 구속 149km/h, 평균 137~143km/h를 뿌리는 투수였고, 메츠에서 뛰던 시절인 2005년의 평균 구속은 87.5마일, 약 140.82km/h 정도였다.[28] ABL 시기에는 130km/h 중반, 2019년 이후로는 120km/h 중반을 넘기기 힘들어했다.[29] 또 다른 일화가 있는데, 메츠 시절 투수 코치가 "몸쪽 공을 던지다 상대 타자가 맞아 부상으로 실려 나갔다. 다시 몸쪽 공을 던질 수 있겠느냐?" 라고 묻자 구대성은 그럴 수 있다고 답했다 한다. 이에 투수 코치는 "그렇다면 당신은 정말 뛰어난 투수다." 라는 답을 했다고.[30] 그도 그럴듯이 지난 퍼스 히트전 2018년 11월 25일 서스펜드 2차전때 선발이었던 2라운드때 김진우가 퇴장을 당한건 중계 영상에 이때 봤지만 퍼스히트 몇몇 선수들이 조롱을 하는 제스츄어를 취했다. 그걸 본 김진우가 순간 욱하다보니 몇몇 선수들에게 법규 시전을 날린게 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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