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상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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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
구월등(具月登)
본관
능성 구씨
출생
1898년 10월 21일
경상북도 흥해군 동하면 남송동
(현 경상북도 포항시 북구 흥해읍 남송리 71번지)[1]
사망
1963년 11월 5일
경상북도 월성군 감포읍
상훈
건국훈장 애족장 추서

1. 개요
2. 생애



1. 개요[편집]


대한민국독립유공자. 1992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편집]


1898년 10월 21일 경상북도 흥해군 동하면 남송동(현 포항시 북구 흥해읍 남송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1919년 10월 21일 경상북도 영일군 흥해면 남송동에 거주하면서 일제의 포악한 식민지배를 통분히 여겨 ‘지금 국운이 불행하여 북에는 독립당이 있고 서에는 독립론자가 있어 조선은 흥하고 일국은 망할 것이므로 대왕은 속히 현인으로 하여금 조선의 왕을 세워 후환이 없도록 하지 않으면 대왕의 생명이 온전하지 못할 것이라’는 문서를 작성, 봉투 앞면에는 구상본이라 쓰고 뒷면에는 '대정씨전'이라 기록하여 다음날인 22일 영일군 포항면 포항동(현 포항시 북구 대흥동) 우편함에 투입하였다.

이어 1919년 10월 27일에 다음과 같은 내용의 문서를 작성했다.

국운이 불행하여 불측의 난이 일어났는데 사람은 남의 죄를 말하기 쉬운 것이어서 이제 구상본이 대왕의 죄를 말할 것인 즉 참으로 듣는 것이 마땅할 것이니, 첫째는 각국에는 각 주인이 있는 것이며 주인있는 나라는 취하지 않은 것인데 대왕은 탐폭의 마음으로 강제로 조선유주의 나라를 빼앗아 버리고 생민을 도탄에 빠지게 하고 돌보지 않음이 죄요, 둘째는 그 나라 임금을 죽이고 충정의 무리를 죽여 자기의 소욕을 채우는 것이 죄요, 셋째는 군자소인으로 만들고 소인군자로 만들어 나라를 다스리게 하는 죄라. 이 삼죄를 가지고 백성의 위에 있음은 잘못으로 대왕의 몸에 해가 미칠뿐 아니라 일국은 반드시 망할 것이다.


이후 봉투 앞면에는 일본황제 대정전이라 쓰고 뒷면에는 구상본이라 써서 이해 10월 29일 영일군 포항면 포항동 우편함에 투입하였다가 10월 30일 일본 경찰에게 체포되었다.

1919년 12월 20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소위 불경 혐의로 징역 1년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이후 경주군 감포읍에서 조용히 지내다 1963년 11월 5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2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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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현재 남송리 71번지는 한동대학교 캠퍼스 부지로 편입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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