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스타프 아돌프 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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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나치 독일의 정치인, 친위대 대장, 전후에는 의사로로 활동하였다.
2. 초기 행적[편집]
독일 제국의 바덴 대공국 로젠베르크에서 복음파 목사의 아들로 태어난 셸은 1928년에 목사가 되기 위하여 하이델베르크 대학에서 법학, 경제학, 신학을 공부했다.
3. 나치당 행적[편집]
1929년에 국가사회주의 독일학생연맹에 참가한 그는 1930년 10월 1일에 나치 돌격대에 입대하고 12월 1일에 나치당에 입당했다. 1930년부터 튀빙겐 대학에서 의학을 공부한 후 1931년에 국가사회주의 독일학생연맹의 대학부 지도자가 된 셸은 1934년 4월 17일에 총 지도자로 승격되어 박사논문을 제출해 의학박사가 되었다. 1934년에 돌격대 소위에서 친위대로 이적한 셸은 9월부터 친위대 보안본부에서 근무했다.
1935년부터 1939년까지 슈투트가르트에 본부를 둔 남서 친위대 보안지도자로 임명된 셸은 1936년 4월 20일에 친위대 소령으로 승진 후 11월 5일에 루돌프 헤스에 의해 전국학생지도자로 임명되었다.
4. 제2차 세계 대전[편집]
1938년 4월 20일에 친위대 상급대령으로 승진 후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해 당선된 셸은 1940년에 군의 및 군목으로 종군했다.
8월에 스트라스부르의 보안경찰 및 친위대사령관, 1941년 4월 30일부터 11월 24일까지 아르펜란트의 친위대 및 경찰지도자가 된 셸은 1941년 4월 20일에 친위대 소장으로 진급했다. 그 후 잘츠부르크의 국가대리관으로 임명되었다가 1942년 6월 21일에 친위대 중장 겸 경찰중장으로 승진해 12월 11일에 잘츠부르크 국가방위위원으로 등극했다.
1944년 6월 29일에 발터 슐츠의 후임으로 국가대학 교원지도자로 임명된 셸은 8월 1일에 친위대 대장 겸 경찰대장으로 진급했다. 9월 25일부터 국민돌격대 잘츠부르크 대관구 지도자로 임명된 셸은 히틀러의 자살당시 과학, 교육, 국민문화장관으로 지정되었었다.
5. 전후 행적[편집]
1945년 5월에 미군에게 체포된 셸은 1948년에 징역 5년형을 받았지만 1948년 말에 석방되었다. 그 후 함부르크의 병원에서 의사로 일한 셸은 1951년부터 1953년에 걸쳐 나우만 그룹에 소속한 나치 지도자들과 함께 비밀조직의 구축혐의로 몇 번이나 체포되기도 했었다. 1954년 2월 8일에 자신의 병원을 개업한 셸은 1979년 3월 23일에 함부르크에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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