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복음침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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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복음침례회
基督教福音浸禮會

파일:기독교복음침례회 로고.png

유형
기독교계 신흥종교
창시
창시자
권신찬, 유병언
창시 시기
1962년(한국평신도복음선교회)
1981년 11월(기독교복음침례회)

1. 개요
1.1. 공식 사이트
2. 역사
3. 규모
4. 의혹 관련
4.3. 금수원(錦繡院) 관련 의혹
5. 정정 및 반론 보도
6. 비판 게시글 신고 삭제



1. 개요[편집]


기독교복음침례회는 통칭 '구원파'라고 불리는 3개 교단 중 권신찬-유병언 계열이다. '한국평신도복음선교회'라는 이름의 평신도 운동으로 시작되었다. 1981년 11월부터 교단 형태를 갖춰 지금은 '기독교복음침례회'가 되었다. 구원파는 침례회라는 이름을 쓰지만 대한민국 주류 개신교단인 기독교한국침례회, 혹은 침례교회와는 관계가 없다.
교파 이름에 '침례'를 포함하고 있음에서 알 수 있듯이 온 몸을 물에 집어넣는 침례교식 세례를 한다. 매주 토요일마다 포럼 형태로 성경 공부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매년 전국적인 규모로 거의 모든 교인이 참석하는 성경 교육 수련회(수양회)를 한다. 규모가 매우 커서 그 안에 장터가 있다고 한다. 안성의 수련원인 금수원은 시설 자체는 좋은 편은 아니라서 언론에 언급된 '아방궁' 정도는 아니라고 한다.
대한민국 개신교계는 이 단체를 이단으로 분류하고 있다. 여러 사건과 연루되었다는 의혹으로 수사를 받았으나 대다수는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1.1. 공식 사이트[편집]




2. 역사[편집]


권신찬은 대구 칠성교회(예장통합측) 담임목사였는데 1961년 평신도운동 선교사인 네덜란드 선교사 길기수(Case Glass)의 집회에 참여했다가 '침례’를 받았다. 이 일로 장로교의 세례를 부정했다는 이유로 통합측 경북노회에서 1962년 12월 21일 제명되었다. # 권신찬은 미국인 독립선교사 딕 욕(Dick York)이 대구 삼덕동에 설립한 성경학교에서 공부한 유병언을 만나 딕 욕의 주장을 공유하게 된다. 유병언은 권신찬의 사위이다.


유병언은 초창기 대구지역 자신의 집 '칠성예배당'을 중심으로 활동하며 서울, 인천, 안양 등지로 영역을 넓혔다. 유병언은 극동방송국과 인연을 맺었고, 이를 계기로 권신찬은 1965년 은혜의 아침이라는 프로그램에서 설교를 시작했다. 1971년 극동방송국을 운영하던 팀선교부[1]는 평신도복음선교회[2]와 한국어방송 공동운영계약을 맺었고, 유병언은 부국장으로 취임하게 된다. 1971년 부국장으로 취임 당시 팀선교부 소속 미국 선교사들의 제안을 받아 유병언은 서울 약수동 성동 교회에서 팀선교부 소속 미국인 선교사 3명으로부터 목사 안수를 받았다. 대다수 한국 개신교계는 '기독교 언론사는 노회 또는 연회가 아니며 당회도 아니다. 당해 평신도 복음 선교회에서 목사 안수를 받았다고 하지만 일반 선교단체가 목사 안수를 하는 예를 찾기 어렵다. 선교사 개개인이 목사 안수를 준다는 것은 더욱 더 상상할 수 없다.'며 유병언의 목사 안수 권위를 부정한다.

유병언은 사업가로 변신하여 1974년 부도 직전의 부실기업인 삼우트레이딩을 채권대신 인수하게 된다. 그리고 1976년 사장으로 취임하면서 교인들 사이에는 '유 사장'으로 통하기도 했다. 이후 1982년 세모그룹으로 상호를 바꾸었다. 정동섭[3] 목사는 유병언이 "본인이 주도하는 삼우트레이딩과 주식회사 세모 등이 바로 '하나님의 일이자 교회'라며 '기업이 곧 교회'라는 논리를 편다"라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기독교복음침례회는 "구원은 오직 그리스도를 통하여 완전한 속죄를 이루어 놓으신 사실을, 말씀을 통해 믿음으로써 얻게 되는 것이며, 특정 개인의 일이 하나님의 일이라든가 기도나 예배라는 교리는 가진 적이 없고, 회사를 통해 해당 교단의 상당수 신도들이 취업하여 함께 일한 사실은 있으나 그외 많은 신도들이 각자 다양한 직종을 가지고 삶을 살아가고 있다"고 반박했다.


3. 규모[편집]


한때 교인수가 수만 명에 이른다고 하였고 외국 지교회도 있으나 현재는 교세가 위축되어 한국 내에는 10여 곳 이상의 교회를 운영하며 10,000여명의 신도가 있는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세월호 사건으로 인한 금수원 압수 수색 당시 집결했던 교인수가 천명 남짓이었고 미국 백악관 홈페이지에 한국 정부의 교회 탄압을 막아달라고 글을 올린 후 5월 15일까지 지지서명 한사람의 숫자가 8,032명이었다. 그러나 마지막 마감때에는 10만명이 넘어서 뉴스에 보도되기도 했다(아마 해외지부 인원이 참가한듯 하다). 수양회에서 배포하는 노트 앞면 자료집의 수양회 등록 인원을 볼때 최고 30,000명의 인원을 기록하였으나 최근 몇년간 연속적으로 8,000명대를 기록한 정황을 볼 때에 실질적으로 한국에서 이 단체의 신자로 활동하는 사람은 8,000이상 10,000명 이하로 유추되고 있다.


4. 의혹 관련[편집]



4.1. 오대양 집단자살 사건 관련 의혹[편집]


기독교 복음 침례회의 핵심 인물이었던 유병언이 오대양 집단자살 사건과 연관이 있다는 의혹이 있었으나 검찰 수사 결과 유병언과 오대양 사건은 관련이 없음이 밝혀졌다.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유병언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4.2. 청해진해운 세월호 침몰 사고 관련 의혹[편집]


세월호 침몰 사고 당시 청해진 해운의 선원들과 선장이 구원파 신도라는 소문과 함께 유병언 일가의 청해진 해운의 부실 운영이 참사의 근본 원인으로 지목되기도 하였다. 유병언 일가와 기독교복음침례회에 대한 수사와 언론보도가 있었으나 추후 이러한 소문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유병언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4.3. 금수원(錦繡院) 관련 의혹[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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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소: 경기도 안성시 보개면 서동대로 5908 (상삼리 1), 마전초등학교 바로 건너편.

기독교 복음침례회의 수련원 시설로 경기도 안성시에 위치한다. 정식명칭은 기독교복음침례회 안성교회이며 통칭 '금수원'이라 불린다. 금수원이라는 이름은 구원파가 땅을 사기 전부터 사용하던 명칭으로, 한자표기는 공식적으로는 錦繡院. 본래 한 영농법인의 농장이었는데 수양회장으로 쓰기 위해 매입한 장소라고 한다. [4] #

전체 면적은 23만 제곱미터. 구원파에서 구입하기 전에는 조경 목적의 농장이었고 이후에 교회 건물들과 농사를 위한 비닐하우스, 건조장, 양식장 등으로 구성되어있다. 또한 금수원 내에는 기독교복음침례회의 초창기 인물이자 유병언 회장의 장인인 권신찬의 묘역이 있다.[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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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에 검찰과 경찰을 막고 농성할 때의 모습. 구원파에서는 여러 차례 성명서와 기자 회견을 통해 입장을 밝혔고 종교탄압을 중단, 공권력의 교회 진입을 반대,불공평 수사의 즉각적 시정을 촉구, 구원파를 살인집단, 테러집단 등으로 근거없이 매도하고 기독교복음침례회와 관련 인사들의 명예를 근거없이 손상시키는 것을 조장하거나 묵인하는 보도지침을 즉각 취소해달라는 요청을 하기도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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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8일 내부를 공개했을 때의 기자회견 세팅. 구원파 측에서 5월 18일 내부를 일부 공개하였다.

서울, 수원에서 동아방송예술대학교로 가는 시외버스가 금수원 앞을 지나며, 35번, 37번, 370번, 380번이 금수원 앞에 정차한다. 그렇다고 금수원 앞에서 직접 내릴 생각은 하지 말자.거기서 내려봤자 금수원에는 들어갈 수도 없고 주변에 아무것도 없다. 걸어서 가까운 휴게소나 시설로 이동하기에도 너무 먼 거리다 이로 인해 금수원 압수수색이 진행될 때 38번 국도의 일부구간이 통제되어 동아방송예술대학교 측에서 임시로 셔틀버스를 안성터미널까지 운행하였다.

기독교복음침례회는 과거 유기농 개념이 흔치 않던 시절부터 유기농을 오랫동안 강조해왔는데 교단 영농조합의 토지들은 대부분 유기농 농산물 재배를 목적으로 사용되고 있다고 한다. #


5. 정정 및 반론 보도[편집]


1. 2014년 4월 16일부터 9월 15일까지 세월호 침몰 사고와 유병언, 구원파의 관련성 의혹에 대해 지상파, 종합편성채널, 보도전문채널, 일간지, 인터넷언론 등 310여 곳 언론사에서 85,000여건의 보도가 쏟아졌다. 이 중 16,000여건의 오보들에 대해 사실과 다른 내용에 관하여 유례없는 정정 및 반론보도청구가 이뤄졌으며 이러한 내용들이 받아들여져 정정 및 반론 보도를 받게 되었다. 기자수첩 세월호 본질 외면하고 시선 돌리기식 보도 구원파에 집중

그때 당시 언중위의 조정건수가 다른 연도의 평균보다 7-8배나 높아질 정도였는데 <언론중재> 기고글에는 이에 대해 세월호 사고 보도는 전대미문의 대규모 언론조정 대상이었으며, 언론중재위원회는 물론 언론사도 사상 초유의 경험을 했다며 막대한 규모의 조정폭탄에 대한 1차 책임은 언론사들에 있었고, 언론사들이 직접 취재하지 않은 정보를 기사화해 마구잡이식으로 내보냈다라고 언급되기도 했다. 당시 취재를 하거나 반론만 들었어도 천편일률적인 오보가 수백 건씩 쏟아지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기사링크


6. 비판 게시글 신고 삭제[편집]


2019년 4월 11일 유병언 일가와 구원파 관련 뉴스 기사의 댓글을 "명예훼손"이라며 네이버에 대거 게시중단 요청하였다. 대상 게시물은 2017년 유섬나 압송 기사를 비롯해 오래 전에 보도된 기사들을 속속들이 찾아낸 것이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7년이 지난 2021년 2월 2일부터 구원파 비판 글을 신고해 탄압하기 시작했다. 피해사례

-> 기독교복음침례회는 수많은 정정과 반론을 받았지만 현재까지 당시의 보도 내용들이 뿌리깊게 자리잡아 그 피해가 이어지고 있고, 이에 대해 회복을 요청할 권리가 있기에 부득이하게 대응을 하기 시작했다고 이야기한다. 내가 회복할 권리는 어디있는데? FAQ. 왜 유병언 전 회장, 기독교복음침례회에 대한 글을 게시중단 하고 있는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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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팀선교부는 미국 남침례회 소속이며 극동방송국을 설립한 단체[2] 기독교복음침례회의 전신[3] 전 침신대 교수, 성경을 성 생활 지침서로 해석해 성경의 거룩성을 훼손하고 성적 해석의 도구로 변질시켰다는 평가를 받는 '하나되는 기쁨'서적을 추천해 한국기독교총연합회(대표회장 홍재철목사, 이하 한기총)로부터 '사이비'로 규정됨https://www.localchurch.kr/paper/40084[4] 금수의 한자는 금수강산할때의 그 금수다. 錦繡園이라는 보도가 많았으나 정정보도되었고, 구원파가 땅을 사기 오래 전부터 붙여진 이름이라 종교적 의미와 연결시키는 것은 무리가 있다.[5] TV조선에서 단독취재하여 장례식과 무덤 사진도 보여준 바 있다. 그 외에도 권신찬 목사의 묘비석 바로 아래에 비밀 토굴이 있다거나 금수원 내에 지하벙커 시설 등이 있다는 말도 있었지만 이 발언을 근거로 검찰이 금수원 진입 당시 음파탐지기, 탐침봉 등의 장비를 동원하여 금수원을 수색한 결과, 지하 시설물을 발견하지 못했으며 정정보도 된 적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