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성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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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심리학에서의 구성주의
1.1. 조작적 구성주의
1.2. 급진적 구성주의
1.3. 사회적 구성주의
2. 미술에서의 구성주의
3. 국제정치학에서의 구성주의
4. 과학철학에서의 구성주의
5. 수학수학철학에서의 구성주의


構成主義/Constructivism

1. 심리학에서의 구성주의[편집]


지식은 주관적이고 학습자가 스스로 구성해 나간다는 심리학 및 철학적 관점이다. 구성주의는 20세기 후반 영미 교육학계에서 유행했던 흐름으로서, 그 주요 특징인 인식론적 토대는 지식의 객관성을 부정하고 '학습자가 스스로 구성한 지식'이라는 주관주의적 관념론인데, 이와 별도로 방법론적 차원의 유사성으로 이른바 '자기주도적 학습'과 연결되기도 한다. 임용고시에 항상 나오는 단골 주제로 모든 과목에 적용되고 있어 교대, 사범대 학생들에게는 매우 익숙하다.[1]

파일:오리 토끼 그림.jpg

흔히 구성주의 심리학을 대표하는 사례로 제시되는 오리-토끼 그림.

한사람이 어떤 방식으로 지각을 구성하느냐를 따라 하나의 같은 그림이 오리로도 토끼로도 보이게된다.

구성주의 심리학에 따르면 한 개인이 세상에 대해 가지는 "지각" 이라는 것은 흔히 경험주의에서 이야기 되는 것처럼 단순한 감각입력의 단편적 자극이 아니며, 단순하게 안구의 망막에 상이 맺히는 것 이상으로 자극을 통해 자극이 '무엇'인지 '무엇을 의미하는 지'를 만들어가는 구성적인 과정이며 사람마다 고유하게 일어나는 창조적인 과정이다.

구성주의가 중요하지만 정작 임용에서 '스스로 구성한 지식'으로 자의적으로 용어를 쓰면 큰일난다는 모순

구성주의의 흐름은 크게 조작적 구성주의, 급진적 구성주의, 사회적 구성주의로 나뉜다.

1.1. 조작적 구성주의[편집]


조작적 구성주의를 대표하는 학자는 장 피아제이다. 그는 자신들의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여러가지 실험등을 통해서 자신의 이론을 정리하였다.[2] 그에 의하면 사람에게는 스키마가 존재한다.[3] 이 스키마라고 하는 것은 사람에게 있는 인지 구조로서 모든 사람은 이 인지 구조를 통해 사물을 인식하고, 사고한다고 한다. 이런 스키마의 작용으로 유명한 것이 동화조절이다. 한 어린아이의 스키마에 라는 것이 있다고 생각해보자. 그런데 이런 어린이가 고양이를 보았을 때 다리가 4개이다는 점을 보고 라고 이야기 하는 경우가 있다. 이 경우가 바로 동화에 해당된다. 즉, 새로운 것이 나타났을 때 자신이 알던 것과 동화시켜 인지 한다는 것이다. 한편 어린이가 더 많은 경험을 통해서 고양이는 다르다는 것을 알게되면서 스키마의 변화가 스스로 필요하게 된다. 바로 이것이 조절이다. 이런 과정과 반사반성을 통해 좀더 나은, 높은 수준의 스키마를 가지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피아제는 구성이라는 것을 정의하는데 있어 다른 구성주의와 차이점을 보인다. 그는 아동의 내면에 이미 가르칠 내용이 있다고 본다. 그가 예로 든 것은 아동이 원을 그리라고 하였을 때 찌그러진 원을 그린다. 낮은 단계의 수학에서는 그것을 원이라 지칭하지 않지만 위상수학에 이르러서는 원이랑 같다고 본다.[4] 결국 아동의 내면 속에 이미 수학적 개념이 잡혀 있다고 보는 것이다.[5] 따라서 교사는 그것을 끄집어 낼 수 있는 상황을 아동에게 제시해야 한다고 한다. 그리고 여기서 더 나은 스키마를 구성할 수 있는 상황은 조작적 활동을 통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여기서 말하는 조작 이란 단순한 노동작업이 아니라 행동과 스키마가 동시에 작용하는 것을 말한다.

1.2. 급진적 구성주의[편집]


급진적 구성주의는 포스트모더니즘의 흐름과 관련된 것으로 지식의 객관성을 완전히 부정한다. 따라서 지식은 불완전하다는 입장이다. 따라서 교육계에서는 급진적 구성주의는 교육의 불필요성을 나타내기도 하므로 비판하는 입장이 강하다. 물론 몇몇 대학교의 교수님들이 주장하기도 한다.

1.3. 사회적 구성주의[편집]


사회적 구성주의 역시 급진적 구성주의와 같이 지식의 객관성을 부정하였다. 하지만 차이점이 있다면 상대적인 지식의 객관성을 주장한 것이다. 즉, 사회에서 합의를 통해 인정된 지식을 객관성이 있다고 보는 것이다. 따라서 교육은 학생들에게 지식에 대한 사회적 합의의 과정을 경험 시켜야 한다고 본다.[6]

2. 미술에서의 구성주의[편집]


모더니즘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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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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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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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축주의 (1920년대) · 절대주의 (쉬프레마티슴) (1913~1917) · 생산주의 (1917년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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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후 모더니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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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 미술사의 시대 · 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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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blewidth=100%><tablealign=center><width=130><colbgcolor=#777,#888888> 원시 미술
~ 기원전 12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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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bgcolor=#fff,#1919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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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세기 ~ 19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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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에서 구성주의는 1910년대와 1920년대에 걸쳐 러시아에서 일어난 미술운동을 말한다. 최근에는 '구성주의' 대신 '구축주의'로 옮기는 추세인데, 러시아 미술사에서 '구성'과 '구축'은 구분되어야 하는 개념이기 때문이다. 1921년 모스크바 예술문화원[7]에서 바실리 칸딘스키의 예술 강령을 놓고 논쟁이 벌어졌는데, 알렉산드르 롯첸코를 위시한 신진 예술가들은 '구성(composition, композиция)'을 중심으로 한 칸딘스키의 강령에 반기를 들며 '구축(construction, конструктция)'을 중심으로 한 예술을 주장했다. 구축주의 진영은 칸딘스키의 '구성'이 취미적이고 감각적 기호와 같은 구시대적 가치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고 지적하면서, 영감이나 감성 따위를 배제하고 재료들을 합리적이고 과학적으로 조합하는 예술을 지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구축주의의 비판을 더 거칠게 요약하자면, 과학 기술과 기계 문명의 시대가 도래했는데 칸딘스키는 시대착오적이게도 종교적 냄새가 풍기는 예술론을 펼치고 있다는 것이다.[8][9] 즉, 러시아의 구축주의(Constructivism, Конструктивизм)를 '구성주의'라고 옮기는 것은 구축주의자들이 거부하고자 했던 예술 경향을 번역어로 삼아 버리는 셈이다.

구축주의의 시초는 러시아의 건축가였던 블라디미르 타틀린[10]에서 시작했으며, 당시 러시아에서 유행하던 미래주의와 더불어 모더니즘에 영향을 주었다. '구축주의'라는 말을 처음 사용한 것도 타틀린과 그와 친하게 지내던 알렉산드르 로드첸코로 여겨진다. 다만, 공식적으로 '구축주의'라는 용어가 기록된 것은 1922년 알렉세이 간의 저서이다.

1920년대 러시아 혁명 직후에는 사회주의 예술로 각광받았다. 혁명 초기에는 예술계 전반에 '혁명 시대의 예술'에 관한 논의가 활발했고, '혁명 이후의 국가에는 예술 역시 새로운 모습이어야 한다'는 주장이 공감을 얻고 있었다.[11] 구축주의 진영은 '기술과 공학을 기본으로 한 예술 실험', '유기적 조직과 구축을 지향하는 예술'을 모토로 했다. 특히 미술가들은 구축주의가 가진 기능적인 면을 이용해 선전 포스터, 예술 등에 주로 사용했다. 당시 구축주의적인 사조는 미술가에만 국한되지 않고, 시인이었던 블라디미르 마야콥스키, 극작가였던 세르게이 트레티야코프 등이 참여하기도 했다.

당대 구축주의의 선봉에 선 것은 알렉산드르 롯첸코, 알렉세이 간, 바르바라 스테파노바 등이 있었다. 특히 알렉세이 간은 1922년에 '구축주의'라는 제목으로 구축주의의 예술 이론을 정리했는데, 여기서 구축주의는 '노동자 계급의 목표를 실제로 건설하고 표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12] 롯첸코 역시 각종 논쟁에서 선봉에 섰다. 특히 사진에 흥미를 느끼고 소위 '포토몽타주'라고 불리는 독특한 사진 제작법을 창안하기도 했다.

절대주의와 혼동해서는 안 된다. 절대주의 역시 당대 러시아 미술계에서 매우 중요한 사조이지만 구축주의와는 결이 조금 다르다. 적어도 말레비치의 절대주의는 그렇다. 말레비치는 기하학적 형태를 사용했다는 점에서는 구축주의와 언뜻 비슷해 보이지만, 말레비치는 기하학적 도형을 통해 '정신의 고양', '초월적 통찰' 등을 표상하려고 했기 때문에 구축주의와는 결이 다르다. 특히, 말레비치는 예술가란 모름지기 정치 선전이나 선동에 앞장서면 안 되고, 예술은 시간을 초월하여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에 특정 시대에만 유효한 기계나 공학 따위와 연대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구축주의자들이 들으면 펄쩍 뛸 주장. 실제로 타틀린과 롯첸코는 말레비치를 격렬히 비난한 바 있으며, 파리에서 말레비치가 롯첸코와 접촉하려고 하자 타틀린이 저지한 적도 있다. 다만, 말레비치의 후배 격인 엘 리시츠키는 절대주의에 속하면서도 구축주의에도 속한다. 리시츠키는 극단적인 추상화를 지향했다는 점에서는 말레비치와 흡사하지만, 그의 지향점은 정신의 고양이나 초월적 세계가 아니라 공산주의 이상 사회였기에 이 점에서는 구축주의와 맥을 같이 했다.

비록 이후에 사회주의적 사실주의에 가려 빛을 많이 보지는 못했지만, 국제적으로는 바우하우스, 소련 내부에서는 모스크바의 국가 크렘린궁이나 러시아 국가두마 청사, 또는 하나같이 획일적으로 지어진 소련식 아파트(...) 등 후대에 여러모로 많은 영향을 끼쳤다. 어찌보면 건축이라는 측면에서 스탈린 시절의 신고전주의[13]와 함께 사회주의 국가들의 건축양식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3. 국제정치학에서의 구성주의[편집]


무정부상태는 국가들이 만드는 것이다.
Anarchy is what states make of it.

알렉산더 웬트

구성주의는 다른 국제관계의 메타적 이론들과 다르게, 절대적인 분석 기준을 설정하지 않는다. 구성주의에선 간주관적으로 공유되는 집단 구성원들의 공유 가치에 따라서 외교노선이 결정된다고 본다. 즉, 국제관계는 굉장히 간주관적이며 사회적 행위임을 강조한다. 국제관계의 상호작용 과정을 통해 구성원들은 자신의 가치관을 정의내리고, 이를 통해 각 집단은 극단적으로 실리를 추구할수도, 인권이나 자유주의적 가치관을 추구할수도 있다. 즉, 각 집단의 국익 개념은 역사적 과정을 거치며 점진적으로든 급진적으로든 계속 변한다. 반면 자유주의정치이상주의, 정치현실주의, 마르크스주의(구조주의) 등은 각 집단을 절대적인 기준에 끼워맞춰 분석한다.

구성주의적 관점에서 보면, 어느 국제사회에 소속된 국가들의 관료 및 정치인들 모두가 현실주의 이론을 공부하고 현실주의적으로 행동하게 된다면, 즉 현실주의 가치관을 내면화하였다면 그 국가들의 사회에서는 현실주의적인 국제관계가 자기실현적으로 실현된다. 이것은 현실주의의 예측력이 우월하기 때문이 아니라 국가들이 현실주의적 투쟁의 세계로 국제사회의 무정부상태를 구성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왈츠의 현실주의의 틀에 맞춰서 논하면 국가라는 상호작용단위들의 상호작용이 누적되어 국제적 무정부상태를 역동적으로 재구성하고 있다는 것이다. 상부구조의 하부구조에 대한 결정론적이고 일방적인 압력만을 논하고 국가는 언제나 일관적인 성향만을 가지고있다고 가정하는 일방적인 인과관계를 설정한 현실주의와는 정 반대의 인과관계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알 수 있듯이 이미 일어난 일에 관한 해석에는 유리하지만, 타인의 행동을 예측하는데는 유리하지 않다. 애초에 국익이 계속 변한다는 전제를 깔고 들어가기에 미래가 어떻게 변화할지에 대해 이론적으로 일관적인 결론을 내릴 수 없다. 하지만 이것은 예측을 포기한다는 의미가 아니며, 분석 대상인 국제 사회가 걸어 온 역사, 반복적인 행동양식 등을 보아 사례별로 결론을 내리게 된다. 즉 일반법칙성을 지향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만 경험적으로 볼 때, 각 국가들은, 전쟁이나 재해, 경제위기 등의 상황에선 실용주의 내지는 현실주의 노선을 타는 경향이 강하며, 평화적인 상황에선 주권을 쥐고 있는 정책결정자의 의향에 따라 노선이 결정되는 경향이 있다는 정도가 일반론의 영역에서 논의될 뿐이다.

4. 과학철학에서의 구성주의[편집]


관찰에 대한 언어와 기호가 무시 될 때, 물리학은 단순한 감각과 수준의 실험에 기초를 둔것으로 나타난다. 그러면 물리학은 (단지) 감각의 단순한 반복적이고 단조로운 연속과 학교에서 행해지는 실험으로 기술된다. 그러나 물리학은 세계를 향한 단순한 감각의 표출만이 아니다. 그것은 또한 세계에 대해 사고하는 방법이며 개념을 형성하는 방법이다. 새로운 패러다임을 발견하는 사람은 다른 모든 정상 관찰자가 발견하고 기록하는 것을 발견하고 기록하는 사람이 아니라 익숙한 사물들로부터 지금까지 아무도 발견하지 못했던 것을 발견해 내는 사람이다.

-러셀 노우드 핸슨<과학적 발견의 패턴> 중에서-


세계가 뉴턴 역학으로 기술될 수 있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그 세계에 관해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는다. 그럼에도 이것은 우리에게 무언가를 말하고 있는데, 그것은 이 세계가 실제로 어떤 특정한 방식으로 기술될 수 있다는 것이다.

-비트겐슈타인-



흔히 과학철학에서 구성주의(Constructivism)는 전통적으로 과학적 실재론(Realism)과 대치되는 주장으로, 반실재론(Anti-realism)의 한 갈래로 여겨지고는 한다.[14] 과학적 실재론이 과학 이론이 세계의 참된 모습 자체를 그대로 드러낸다고 하는 주장이라면, 구성주의는 과학 이론이란 결국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며 인간이 만들어낸 어떤 도식과 틀로써 '보편적이며 참된 과학적 진리' 자체를 나타내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주장한다.

사실 대부분의 구성주의적 과학자들은 세간의 오해와는 달리 과학법칙의 존재 그 자체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입장인 경우가 많다. 구성주의자들의 입장을 단순히 정리하자면 이렇다. 인간인 우리는 '정확한 실재'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 과학이론이라는 것은 인간이 만들어낸 주관적인 인과관계를 인식하는 어떤 방식으로 써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불변하는 정확한 실재가 존재하는지 에 대해서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우리는 겉으로 보기에 드러나는 과학활동에 대해서는 말할 수 있다. 그리고 과학활동은 서로 다른 과학자들 사이에서의 논쟁과 토론 그리고 적당한 선의 합의를 통해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과학은 현실적인 실재 그 자체 라기보다는 의식에 의해 만들어진 이론적 틀과 현실에 대해 "사고하는 방식"이자 "특정한 방식들로 이루어진 기술들"이다.

즉, 외부에 객관적인 실재가 있다고 하더라도(이것에 대해 부정적인 경우는 거의 없다.) 과학 "이론"은 과학자들이 만들어내는 이론적 틀과 인식방식에 따라 서로 다른 방식으로 구성될 수 있다는 것이다.

과학적 구성주의에서 보는 과학활동이란 구성주의심리학에서 인간의 심리작용을 보는 관점과 비슷한데, 예시를 하나 들자면 현대에는 한 물체가 지나간 거리를 시간으로 나누는 "속도"라는 개념을 당연하게 여기지만 중세시대만 해도 '시간'과 '공간'이라는 것이 서로 다른 속성 이라고 여겨졌기에 그중 하나를 다른 하나로 '나눈다' 는 것을 부자연스럽고 의미 없는 일로 여기곤 했다.

이렇게 현대의 사람들은 갈릴레이라는 학자가 제시한 '속도'라는 개념을 통해 그전의 중세 사람들은 생각하지 못했던 시간과 공간을 연결짓는 방식으로 세상을 다시 보게 되었다.

구성주의적 학자들이 바라보는 과학활동이란 이미 주어져 있는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개념들을 연결짓고 연관관계를 생각해내면서 만들어져가는 극히 창의적이고 독창적이며 인간적인 과정이라는 것이다.

구성주의적 관점을 취한 대표적인 철학자에는 , 그리고 후기 비트겐슈타인이 있다. 흄은 철학사에서 구성주의를 주장한 최초의 예라고 할 수 있는데, 그는 인과관계를 부정했으며 자연법칙이 인간의 습관으로부터 비롯되는 것이라고 보았다. 이러한 흄의 견해를 칸트가 계승한 것이 이른바 '인식론적 관념론'이라 불리는 근대철학의 종합이었다. 패러다임설을 제시한 토머스 쿤 같은 경우, 비록 본인은 구성주의적 입장에 반감을 표했지만 그의 패러다임 이론이 현대적 구성주의의 단초가 된다는 사실은 부정하기 어렵다.

후기 비트겐슈타인은 전기와는 달리 언어란 세계에 대한 정확한 기술이 아니라 "물!", "저쪽!", "와!", "도와줘!" 같이 사용맥락에 따라 그 의미가 달라지는 언어표현들에 주목한다. 이와 관련하여 비트겐슈타인은 "낱말의 의미란 언어 안에서의 그 사용이다"라고 설명하며 고정된 실체로서의 언어를 부인한다. 그는 전기의 진리대응설을 비판하고 언어는 의미를 전달하는 활동이라 주장하며 언어의 화용론적 측면을 부각시킨다고 볼 수 있다. 그에게 언어란 일종의 게임 이라고 볼수 있는데 체스에서의 '왕'은 현실에서의 어떤 '왕' 이라는 개념의 사용과 일치하기 때문이 아니라 체스게임 내에서의 이러저러한 규칙에 따라 이러저러한 방식으로 움직이는 것으로서 의미가 있다. 이러한 말의 움직임은 현실과 유사하지만 결코 일치하지도 않고 대응되지도 않는다.

5. 수학수학철학에서의 구성주의[편집]


특정한 수학적 대상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서는 실제로 해당 성질을 만족하는 대상을 구성해서 보여주어야 한다는 수학적 입장이다. 거의 대부분의 경우 배중률(Law of excluded middle)을 거부하며, 구체적인 사례를 구성하지 않는 귀류법에 의한 증명 또한 거부한다. 브라우어가 주도한 직관주의는 구성주의 수학의 대표적인 사조이지만 어디까지나 구성주의의 일부일 뿐이다. 수학자들 입장에서는 가장 강력한 도구 중 하나를 스스로 포기하는 것이기에 소수 입장에 머무르고 있다.
[1] 하지만 정말 제대로 아는 경우는 희박하다. 너무나 많이 노출 되어 있다보니 막연한 개념정도로 이해하는 경우가 많다.[2] 피아제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아동발달단계이다. 하지만 이 항목에서는 그것에 대해 정의하지 않는다.[3] 피아제는 이 스키마를 2개로 나누어서 정의하지만 여기서는 중요한 것만 기록한다.[4] 문자 그대로 "같다"는 것이 아니다. 정확히는, 단순 폐곡선이 원과 위상 동형이라 한다. 기하학합동과 유사한 개념이다.[5] 이러한 견해는 플라톤과 유사하다.[6] 여기서 교사라는 말 대신 교육이라고 말한 것은 사회적 구성주의는 교사의 역할에 대해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아서 이다. 하지만 사회적 구성주의에서 교사의 역할이 없다고 하지는 않는다. 은연중에 교사는 학생의 지식의 발견과정을 돕는 조력자의 역할을 해야 한다고 나온다.[7] INKHUK/ИНХУК, Институт художественной культуры[8]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예술'이라는 발상이 어색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데, 이것은 당대 유럽의 분위기를 고려해야 한다. 과학과 기술이 빠르게 발달하면서 당대 유럽에서는 자연과학, 기계, 인간 이성을 미래적이고 긍정적인 것으로 보는 분위기가 있었다. 이탈리아에서 시작된 미래주의에도 기계 문명에 대한 찬사가 섞여 있었으며, 러시아의 형식주의 문학 이론도 문학이라는 예술 분야를 자연과학적으로, 객관적으로 분석하려는 시도에서 출발했다.[9] 이 때 논쟁이 어찌나 치열했던지, 칸딘스키는 이후 원장직을 내려놓고 문화원을 떠나고 말았다.[10] 미술, 건축에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제3 인터내셔널 기념탑(타틀린 탑)으로 한번쯤 들어봤을 것이다.[11] 다만 레닌을 위시한 볼셰비키 정치인들은 대부분 당대 실험 예술에 부정적이었다. 볼셰비키가 원하는 혁명 국가의 예술이란 전 인민이 차이콥스키의 발레를 향유하는 것이었지, 웬 괴상한 작품들이 난무하는 광경이 아니었다. 그나마 20년대까지는 레프 트로츠키나 루나차르스키처럼 실험 예술의 가치를 인정하는 볼셰비키가 일부 존재했고 사회 혼란도 완전히 수습되지 않았기에 실험 예술이 존재할 수 있었다. 사회 혼란이 수습되고 스탈린 체제가 공고화하면서 볼셰비키가 바라던 예술의 모습이 서서히 틀을 잡게 되고, 그 결과 탄생한 것이 바로 사회주의 리얼리즘이다.[12] 다만 의지가 지나쳐 가끔 무리를 하기도 했던 듯. 간은 구축주의 3요소로 텍토니카(사회 및 문화 발전에 따른 기술 적용), 팍투라(재료를 재료 자체의 속성에 부합하도록 가공 및 완성하는 과정), 콘스트룩치야(재료를 조합하여 전체를 이루는 논리)를 꼽았는데, 개념의 의미가 너무 모호한 것이 사실이다. 오죽하면 롯첸코도 '이상한 지질학 개념만 논하고 있다'고 투덜댔고, 스테파노바도 간의 주장이 예술보다는 철학에 기반한 것 같다면서 '간이 현대 미술에 대해 좀 지식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비판했다.[13] 모스크바에 위치한 외무부 청사, 우크라이나 호텔 등의 '스탈린 마천루'들과 루마니아의 인민궁전을 떠올려보자.[14] 후술하지만 정확한 대비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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