릭 구톰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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릭 구톰슨의 수상 경력 / 역대 등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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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KIA 타이거즈 우승 엠블럼 V10.svg
KBO 리그 한국시리즈
우승 반지

2009

KIA 타이거즈 등번호 50번
전태현
(2008)

구톰슨
(2009)


로드리게스
(2010~2010.3.18.)


파일:QZPSo0N.jpg
이름
릭 리 구톰슨(Rick Lee Guttormson)
출생
1977년 1월 11일 (47세)
캘리포니아 토런스
국적
[[미국|

미국
display: none; display: 미국"
행정구
]]

포지션
투수
출신교
에드몬즈 커뮤니티대
체격
188cm, 91kg
투타
우투우타
소속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 (2005~2006)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2007~2008)
KIA 타이거즈 (2009)

1. 개요
2. 미국 시절
3. 일본 프로야구 시절
4. 한국 프로야구 시절
4.1. 2009년
5. 연도별 성적
6. 기타
6.1. 근황
6.2. 별명
6.3. 여담



1. 개요[편집]


Rick Lee Guttormson. 前 KIA 타이거즈의 외국인 투수 (우투우타).[1]


2. 미국 시절[편집]


97년 드래프트에서 22라운드에 샌디에이고 파드레스에 지명되었다. 낮은 픽순을 보면 알 수 있듯이 그냥 머릿수 채우기 겸 로또삼아 뽑은 지명이다. 실제로 빅리그를 밟지 못했고 2001년을 끝으로 방출, 독립리그를 뛰었다. 독립리그에서는 좋은 성적을 거두어 04년 시애틀 매리너스와 마이너 계약을 맺었으나 여기서도 빅리그는 밟지 못했다.


3. 일본 프로야구 시절[편집]


대체 뭘 보고 데려왔는지는 알 수 없지만 05년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와 계약을 맺었다. 연봉 3천만엔으로 보험용 외국인선수 정도의 계약. 그러나 의외로 일본에서 터져서 좋은 성적을 기록하며 오래 뛸 수 있었다. 06년도에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에서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즈를 상대로 노히트 노런을 기록한바 있다. 05,06년도의 기록은 17승 15패 방어율 3.21을 기록. 07,08년도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로 이적하여 10승 14패 평균자책점 3.74를 기록하였다. 일본에서 4시즌 뛰면서 총 27승29패 평균자책점 3.52를 기록하였다. 소프트뱅크 재적 시에는 팀타선과 불펜이 막장 기미를 보여서 1년에 5승씩밖에 못했다. 내용상으로는 10승도 할 수 있었던 투구내용이였다.

도핑 테스트에 한 번 걸려서 20일간 출장정지를 먹은적이 있었는데 그 이유가 발모제에 있던 금지약물 때문인데 그 발모제란게 프로페시아다. 시즌 전 구단 트레이너에게 써도 되는지 NPB 사무국에 확인해 보라고 부탁했는데, 소프트뱅크의 트레이너가 그냥 "괜찮을 거야"라고 했다고 한다. 구톰슨은 트레이너 말만 믿고 계속 쓰다가 도핑이 적발되었다. 시즌 후 소프트뱅크의 트레이너는 해임되었다.


4. 한국 프로야구 시절[편집]



4.1. 2009년[편집]


2009년 KIA 타이거즈와 계약금 7만 달러, 연봉 23만 달러로 계약하였다.

2009년 시즌 초반에는 리그를 휘어잡는 실력을 보였으나, 시즌 후반부터는 힘이 떨어져서인지 시즌 초반에 비해 적은 5~6이닝이 한계였다. 일본에서도 주로 불펜으로 뛰었기 때문에 선발로서 풀 시즌을 뛰기에는 무리가 있을 법했다. 그래도 그 이닝 동안 거의 실점하지 않으며 KIA의 앞문을 책임졌다. 시즌 초반에는 6선발로 뛰면서 일요일에만 등판, 마치 귀족처럼 관리받는다는 점[2]이 백인에 꽤 나름대로 잘 생긴 귀족스러운 이미지와 합쳐져 구백작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이 시기 동안은 완벽한 피칭을 했지만 중반 이후로 기아 마운드가 5선발로 전환하면서 점점 체력에 부담이 온 듯 점차 이닝이팅이나 투구수가 줄어들었다. 그래도 시즌 막판까지 KIA 마운드의 한 축을 지켜내는데 성공했다.

한국시리즈 3차전에서 2이닝 4실점으로 부진했고 습관을 들켜서 당한것 같다는 자체 평이 나왔다. 7차전에서 3이닝 2실점을 하였다. 그 2실점은 박정권에게 맞은 투런 홈런. 타구를 보고 중계진과 타자 박정권 주자 정근우 모두 파울인줄 알았는데 타구가 안으로 휘면서 정말 끝으로 들어왔다.[3]

2009년 시즌은 13승(공동 4위) 4패, 평균자책점 3.24(6위), WHIP 1.21(2위)를 기록했다. 이렇게 엄청난 성적으로 KIA의 우승을 이끈 구로 원투펀치를 2010 시즌에서도 보길 바란 기아팬들도 많았지만, 재계약협상이 무산되며 결국 2010 시즌에는 그를 볼 수 없게 되었다.


5. 연도별 성적[편집]


역대 기록[4]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ERA
피안타
피홈런
볼넷
사구
탈삼진
WHIP
2009
KIA
26
161⅔
13
4
0
0
3.24
149
15
46
8
95
1.21
KBO 통산
(1시즌)
26
161⅔
13
4
0
0
3.24
149
15
46
8
95
1.21


6. 기타[편집]



6.1. 근황[편집]


2010년 시즌을 앞두고 필라델피아 필리스와 마이너 계약을 맺었다. 그러나 싱글A에서도 털리며 부진하였고, 코치 자리를 알아보기도 했으나 이야기가 잘 안 풀린 모양. 결국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안정적인 직장을 찾게 되었고, 2011년경부터 도요타 자동차 판매직원으로 일하고 있다고 한다.

2015년에 불법 밀렵으로 기소되었다. 기사에 따르면 예전부터 해온 일이라고 하며 대놓고 미국, 일본, 한국에서 야구를 해왔다고 써 있다.


6.2. 별명[편집]


별명은 구동순, 구백작[5]등이 있었으나
운명의 그 사진
사실은 귀족이 아니라 라면셔틀이었음이 밝혀졌다. 덕분에 현재는 구셔틀, 구랍쉽 등으로 불리고 있다.


6.3. 여담[편집]


투잡을 뛴다는 의혹이 있다.[6]
파일:attachment/gubilly2.jpg
파일:attachment/gubilly.jpg


아킬리노 로페즈2009년 원투펀치를 이끌었지만 실제 둘의 사이는 좋지 않았다고 한다. 그 때문에 항상 로페즈에게 디스당하기도 했다.[7] 박경태에 의하면 백인 부심이 있던 선수라고. 그리고 당시에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로페즈에게 인종차별 발언을 했었다고 한다.

[1] 거톰슨이 미국 발음에 좀 더 가깝지만, KBO 등록명은 "구톰슨"으로 되어있다. 일본에서는 가토-무손이라고 불렸다고 한다.[2] 실제로 당시 KIA 타이거즈가 6선발을 돌린 가장 큰 이유가 구톰슨이었다. 구톰슨이 "일주일 2번은 못뛴다!"라고 하는 바람에 울며 겨자먹기로 6선발 체제를 돌린 것.[3] 구톰슨은 2009시즌 내내 박정권에게 약한 모습을 보였다. 한국 데뷔전에 결승 투런포를 허용해 패전투수가 되었고 SK와의 최종전에서도 결정적인 솔로포를 허용해 포스트시즌까지 박정권에게만 도합 4개의 홈런을 허용했다.[4] KBO에서의 성적만 기입[5] 일주일에 한 번, 그것도 일요일에만 등판해서 귀족 외국인 소리를 들었다. 하지만 나올 때마다 이겼기 때문에 욕은 안 먹었다.[6] 바로 아랫사진에 구톰슨 옆에 있는 인물은 당시 KIA 타이거즈 응원단장이었던 지금은 kt wiz 응원단장인 김주일 단장이다.[7] 로페즈는 인터뷰 중에 뜬금없이 구톰슨 바보라고 한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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