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판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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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구판돈.jpg

본관
능성 구씨
출생
1900년 1월 17일
경상남도 영산군 읍내면 교리
(현 경상남도 창녕군 영산면 교리)[1]
사망
1932년 1월 7일
경상남도 창녕군
묘소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4묘역-493호
상훈
대통령표창

1. 개요
2. 생애



1. 개요[편집]


대한민국독립유공자. 1992년 대통령표창을 추서받았다.


2. 생애[편집]


1900년 1월 17일 경상남도 영산군 읍내면(현 창녕군 영산면) 교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1919년 3월 13일 창녕군 영산면에서 남경명·구중회·구남회 등 여러 동지들과 함께 결사단(決死團)을 조직하고 독립만세 시위운동을 계획하였다. 그들은 '독립운동에서 후퇴하는 자는 생명을 빼앗긴다'는 내용의 맹세서에 각기 서명한 후 700여명의 시위군중을 규합하여 태극기를 흔들고 독립만세를 외치면서 면내를 시위행진 하던 중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

그해 5월 10일 부산지방법원 마산지청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8개월형을 언도받고 이에 공소하였으며, 6월 17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원심 판결이 부분 취소되었으나 형기는 그대로 징역 8개월로 확정되어#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에는 옥고의 여독으로 고통받다가 1932년 1월 7일 경상남도 창녕군에서 별세하였다.

1992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대통령표창이 추서되었다. 그의 유해는 2012년 5월 1일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4묘역에 이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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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능성 구씨 집성촌이다. 독립유공자 구판진도 이 마을 출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