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보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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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무력 최고사령관 예하기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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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사령관 직속 기관
호위사령부
(당중앙위원회 6처 · 국무위원회 경위국 · 호위국)
국가비상방역사령부
국무위원회 산하 기관
국가보위성
국방성
사회안전성
조선인민군 산하 기관
총참모부
총정치국
후방총국
※ 국장: 국방성 제1부상 겸임
미싸일총국(추정)
간부국
보위국
군사재판국
군사검찰국
총참모부 산하 기관
작전총국
※ 국장: 총참모부 제1부총참모장 겸임
전투훈련국
정찰총국
(작전국 · 정찰국 · 해외정보국 · 정책국 · 기술국 · 후방지원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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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북한 국기.svg 북한방첩기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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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보위성
國家保衛省

Ministry of State Secur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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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립
1973년
연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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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무성 정치보안국 (1947~1951)
사회안전성 (1951~1952)
내무성 (1952~1962)
사회안전성 (1962~1972)
사회안전부 정치보위국 (1972~1973)
국가정치보위부 (1973~1982 / 신설·독립)
국가보위부 (1982~1993)
국가안전보위부 (1993~2016)
국가보위성 (2016~ )

국가보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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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위 조직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무위원회
하위 조직
(정보 부문) 9개국
(정보기술 부문) 7개국 이상
(후방지원 부문) 4개국 이상
(본부 직속) 10개국 이상
주소


국가보위성 청사}}} (평양시 서성구역 련못동)[1][2]


2023년 노출된 새로운 상징기. 북한 국장이 들어간 노란색-남색 조합이다.
1. 개요
2. 특징
3. 연혁
3.1. 비사
4. 역대 부장과 보위부 간부들의 말로
4.1. 출처
5. 조직
6. 출신
6.1. 국가보위성 정치대학 출신
6.2. 보위지도원 출신
6.3. 은퇴 후 처우
6.4. 기타
7. 대중매체에서
8.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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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북한정보기관방첩기관비밀경찰기관. 평양시 서성구역 련못동에 있다.

일명 '보위성\', '보위부\'로도 불리며, 약 90,000명 ~ 100,000명 직원 규모의 국무위원회 직속 기관이다.[3]

일제강점기의 '특별고등경찰', 나치 독일의 '게슈타포', 소련의 'KGB', 동독의 '슈타지' 루마니아세쿠리타테와 유사한 기능을 가진다.


2. 특징[편집]



파일:북한 국가보위성 요원들.jpg

2022년 4월 25일 열병식에서 등장한 정장 차림의 국가보위성 요원들[4][5]


파일:보위부-696x406.jpg

국경지역 보위부 청사의 모습

지도부를 위한 사상경찰 활동으로 내부 정치 및 사상 이상 혐의자를 감시, 사찰하고 탈북자 북송, 각종 외화벌이나 공작 등의 해외공작 업무도 관여한다. 아울러 외부정보 유입과 유출에 대해서도 국가보위성에서 단속한다. 그렇기 때문에 해외에 체류중인 북한 주민에 대해서도 감시를 수행하며 외국인 관광객의 방북 시에도 감시한다. 그리고 특히 최고지도자에 대한 모독과 관련하여 반드시 피고인을 체포하려고 노력한다.[6] 또한 이들의 최우선 주요 업무사항 중 하나가 바로 국가정보원국군정보사령부의 해외공작 및 북한 정보수집을 방해하고, 협력원이나 정보원을 체포하는 것 이다.

탈북자를 돕고 있는 대북 선교단체 및 인권단체의 활동도 감시하고 있으며 중국 동북 3성이나 국경에서 중국 경찰과 함께 탈북자들을 추적, 심문하고 이들을 가두는 수용소를 관리한다.

실제 보위지도원의 탈북자 폭행 영상(연령제한영상)[7][8]

보위사령부가 담당하는 조선인민군을 제외한 조선로동당과 치안을 담당하는 사회안전성 및 리(里) 단위 행정구역까지 요원을 파견해 스파이망을 구축하고 있다. 탈북자들이 많은 중국 동북 3성 지역, 동남아시아 같은 해외에도 보위부 요원을 파견하고 있다. 또한 상당히 드문 사례지만 대한민국 국민도 불법으로 피랍, 체포하는 경우도 있다.

보위부는 영장없이 체포해서 정치범수용소에 구속 수감시키거나 사형을 집행할 수 있는 막강한 권한을 가진다.

기타 임무로는 CIQ에 해당하는 출입국 관리세관 업무, '10호 초소'라는 자국 내 초소를 통한 일반적인 이동 통제 업무, 그리고 해외정보 관련 업무 담당 등이 있다.

타 정보기관들과 업무상 중복되는 부분이 있어 국가정보원보다는 임무범위가 좁다. 명색이 정보부서인 주제에 북한 내에서도 실제 역할이나 성과와는 별개로 "힘만 쓰지 머리는 둔한 녀석들" 같은 이미지가 강하다. 특히 정찰총국과 같은 전문 해외공작기관 인원들과 비교해 그 전공 차이가 심하다. 가끔 호위사령부와 협조해 고위 간부들의 경호를 맡기도 한다.

게다가 외국인 인질과 관련하여 이 부서가 담당하며, 오토 웜비어 사망 사건과 관련해 외무성과의 손발조차 안 맞았다는 것이 드러났다.

주요 업무가 북한 내부 관련 업무인데, 특이하게 2008년 대남 간첩을 남파하다 적발된 원정화 사건이 있다.[9] 대부분의 간첩을 조선로동당 통일전선부에서 관할하는 점을 볼 때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는데 사건 이후로도 간첩을 남파하는 것을 보면 근래에 들어서 대남 관련 업무 분담이나 혹은 개편이 일어난 것으로 보인다.

보위성은 따로 대한민국에서 상응하는 정부기관을 찾기는 힘들다.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국가정보원의 전신인 국가안전기획부와도 다르다. 이들은 군 산하이기 때문이다. 또한 국군방첩사령부라기엔 조선인민군 보위국이 존재하고, 국방정보본부 쪽은 정찰총국에 상응한다. 방첩과 내부 정치경찰은 물론 해외공작도 관여하는 군 소속 정보기관은 대한민국에선 존재하지 않는다. 애초에 찾을 수가 없는 것이 당연한게, 이들은 말 그대로 정치경찰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북한은 군사국가와 다름 없어서 국가보위성과 관할이 중복될 때도 많다. 선군정치 시대에는 당시 심화조 사건 처리를 두고 사회안전성에 권한을 뺏겨 간부 다수가 숙청 당했다가 김정은 시대에는 김원홍이 총애를 받으며 정찰총국과 인민무력부 사회안전부 권한 조직을 이임받아 더 막강한 조직이 되었으며 현재는 국경봉쇄, 코로나 검역으로 인한 지역봉쇄, 무장탈영자 체포 등 국가보위성에서 맡기 어려운 업무는 조선인민군 보위국이 담당하고 있다.

사실 북한의 5대 권력기관 중 조선인민군 (이하 '군')과 조선로동당 (이하 '당')은 국가보위부에서 터치하지 못하는 한계가 있다.

'군'은 사회적으로 초법적인 위치에다가 '당', 특히 조직지도부는 국가보위성 간부급 인사권을 소유하고 있는 사실상 상급 부서이기 때문이다. 다만, 사회안전성은 부부장을 국가보위성에서 파견할 정도로 거의 '하위기관 취급 당하는 게 아니냐'는 의견도 있다. 대한민국의 주도로 군사적 통일이 일어날 경우 전, 현직 직원들은 처벌대상이 될 가능성이 높다. 다만 이 경우는 남한 주도 통일이 이루어졌을 때의 상황으로 이때 보위부의 전현직자들을 비롯한 구 북한의 수뇌부 인사들과 핵심계층들이 자신들의 악행에 대한 처벌을 피하기 위해 나치 독일 패망 이후의 나치 잔당들이 2차세계대전 연합국에 의한 기소와 나치 피해자들의 보복을 피하기 위해 라틴 아메리카중동으로 도피했던 것처럼 중국, 러시아, 시리아, 쿠바, 이란, 짐바브웨, 라오스, 캄보디아와 같은 반서방국가나 제3세계로 도피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3. 연혁[편집]


  • 1947년: 2월, 북조선인민위원회 보안국 신설
  • 1948년: 정부 수립과 더불어 내각 편입
  • 1951년: 3월, 사회안전성 신설 편입
  • 1952년: 10월, 사회안전성, 내무성 통합
  • 1962년: 사회안전성 독립
  • 1972년: '사회주의 헌법' 제정에 따른 정무원 개편과 더불어 '사회안전부'로 개칭
  • 1973년: 5월, 사회안전부 정치보위국이 독립되어 '국가정치보위부' 신설[10]
  • 1982년: '국가보위부' 개칭[11]
  • 1993년: '국가안전보위부' 개칭
  • 2016년: 국무위원회 재편과 더불어 국가보위성 개칭


3.1. 비사[편집]


1993년에는 국가보위부에서 국가안전보위부로 변경되었고 부장이 공석이기 때문에 우동측이 국가안전보위부 제1부부장이 수장이 되었고, 조직 실무는 류경 부부장이 담당했다.

1990년대 김정일의 권력 승계와 고난의 행군 당시 심화조 사건이 발생할 때, 국가보위성이 후속조치를 담당했다.

  • 2010년, 조선로동당 제3차 대표자회에서 김정은 조선로동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 선출 이후 국가보위부장이 임명되었다는 보도가 나와서 학계의 주목을 받았지만 후속보도, 후속연구도 전무해 결국 없던 일이 되었다. 하지만 일부 연구에서는 여전히 김정은이 국가보위부장을 지냈다고 저술하고 있다.

  • 2011년, 김정은 시대가 개막되면서 장성택 숙청 사건 여파로 우동측 부장이 해임되었으며 2012년 4월 김원홍 당시 국방위원회 위원이 부장으로 임명되었다. 우 부장의 해임 사유는 장성택 숙청과 관련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으며, 해임 이후 숙청은 확실하지만 숙청 후 처형설, 자살설 등 여러 추측이 있다. 김원홍 부장은 2013년 장성택 숙청과 처형에 앞장서며 정권 실세로 떠오르지만 강명도 (전)경기대학교 정치전문대학원 객원교수를 비롯한 북한 전문가들도 김원홍 부장의 역량도 오래가지 못할 것임을 예측했다. #

  • 2016년 국방위원회가 국무위원회로 재편되면서 국가안전보위부 역시 명칭이 국가보위성으로 변경되어 조직의 위상이 격하된 것으로 추측되었으며 2017년 1월 김원홍 국가보위상이 해임되어 소장으로 3계급 강등 및 혁명화교육 (사실상 숙청) 중임이 알려졌다.

  • 2017년 김원홍 국가보위상의 해임 후 중앙당의 검열이 실시되었고 도지역 검찰소, 보위성의 모든 결정권이 조선로동당 위원회로 이관되었다. #

  • 2017년 4월 15일 태양절 기념 열병식에서 김원홍 전 국가보위상이 대장 군복을 입고 주석단에 서있는 것이 확인되어, 강등 숙청설이 잘못된 것이 아닌가 하는 이야기도 있었지만 결국 총정치국 부국장으로 이임했고, 후임으로 정경택 국가보위성 정치국 조직담당 부국장이 임명되었다. 정경택 국가보위상도 2020년 9월 코로나 방역 대책 실패 책임을 지고 대장에서 상장으로 1계급 강등당했다.


4. 역대 부장과 보위부 간부들의 말로[편집]


정권의 2인자로 기밀사항을 상당히 많이 알고 있으며, 정적들도 많기 때문에 역대 부장의 말로가 예외없이 비참하다. 숙청 아니면 자살이다.

대수
성명
재임
비고
제1대
김병하
1973년 ~ 1981년
숙청[12]
제2대
리진수
1982년 ~ 1987년
병사 ]
직무대행
김정일
-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조직지도부 부장과 국가보위부장 직위를 공석으로 두고 직접 보고 받음
김영룡
1988년 ~ 1998년
국가보위성 제1부부장 및 부장 직무대행 / 자살[13]
장성택
1999년 ~ 2005년
조선로동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14]으로 국가보위부 제1부부장 직무대행 2013년 총살
우동측
2005년 ~ 2012년
국가보위성 제1부부장 및 부장 직무대행, 해임설 또는 숙청[15]
제3대
김원홍
2012년 ~ 2017년
숙청[16]
제4대
정경택
2017년 ~ 2022년
최초로 사망, 숙청이 아니라 무사히 이임한 보위상
제5대
리창대
2022년 ~ 현재


초대 보위부장 김병하 숙청 당시 보위부에 장령급 간부는 소장 단 한 명을 빼고 총살내지 정치범 수용소로 끌려갔다고 전해지고 고난의 행군 당시 김정일의 심화조 사건 조작 지시를 두고, 여러번에 걸쳐 당시 제1부부장 김영룡이 무언의 반대로 지시를 불이행 하자, 김영룡과 수뇌부들은 처단당하여 라이벌 조직인 사회안전성 정치국장 채문덕과 조선인민군 보위사령부가 심화조 사건을 주도했다.[17] 국가보위부 조직원들은 경험적으로 과거 여러 번의 숙청의 끝은 민심수습용으로 자기들이 처단당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1998년 김영룡을 비롯한 보위부 간부들은 김정일의 심화조 사건을 미적거린 것으로 보인다.

2000년에서 2010년까지 제1부부장 우동측을 제치고 국가보위부 실세였던 부부장 류경 또한 남한으로 이명박 대통령을 만나러 왔다가 숙청 되었으며#, 이 과정에서도 류경 라인의 간부들이 처형 숙청되거나 탈북했고 역시 장성택 숙청 당시도 마찬가지로 현재 보위부 출신 탈북자가 미국과 국내에도 여러 명 있다고 한다.


4.1. 출처[편집]




5. 조직[편집]


북한의 각 행정구역마다 도보위부, 시군보위부를 설치하고 단위 까지 보위지도원이 상주하고 있으며 기관, 기업소 등에도 국가보위성 요원이 파견되어 있다.

본부는 인민군과 중앙당을 제외하면 무소불위 권력기관이지만 지방 보위부는 힘이 다소 떨어지며 시군 단위 보위부는 주민들에게만 권력기관일 뿐이다.[18] 중앙부서는 ‘조선인민군 제10215부대'라는 통상명칭을 사용한다.

국가보위상
본부
승용차관리소
미술창작사
문예창작사
10여개 직속 부문

정보부문
작전종합지도국
국가보위성의 본부 및 도 보위국에서 진행 사업 종합, 지도 업무 수행
본부 및 도 보위국 지도원 파견
해외대열보위국
해외 주재 대사관 및 무역대표부, 해외파견 근로자 동향 감시 및 소환, 구속, 탈북자 관련 공작
북남대화보위국
조선로동당 통일전선부,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민족경제협력위원회 등 대남사업기관 인원 감시
남북 회담 및 관련 행사 진행 시 북측 대표 감시 및 조사, 구속
반탐정국
북한 체류 외국인, 해외교포 감시, 해외정보기관 활동 첩보원 색출
수사국
반탐정 사건 수사 및 업무지도, 감독, 통제
예심국
반탐정 사건의 여죄 여부 확인, 범증확보, 사건 송치 및 구류장 운영, 감독
검찰국
재판국 반탐정 사건으로 수사국과 예심국에서 수사 처리한 사건 기소·판결
미행감시국
북한주재 외국인, 해외방문단·대표단·참관단 및 사건 감시대상자들에 대한 미행, 감시와 요인 사찰 업무 담당
농장감시국
국가보위성 사건으로 유죄판결을 받은 반국가범죄자(정치범)과 그 가족들을 정치범수용소에 수감·관리

정보기술부문
화학국 (도청)
미행감시국
무선반탐정국
자료조사국
정보기술연구국
문서검열국

후방부문
통신국
후방국
무역관리국
차량관리국

해외대열보위국
수사국
1과 (유럽담당)
2과 (북아메리카담당)
98작전 (탈북자 가족 관리)
620상무 (불법 영상물 단속)
3과 (업무총괄)
4과 (동아시아담당)
322그룹 (국경 배치)
518군상 (마약단속)

109그룹 (남조선 불법 영상물 단속)

  • 특별부서
    • 특별군사재판소 : 중범죄 피고인 처형 시에만 개회하는 비상설기구
    • 제8국 : 일본 출신 북송교포[19]
    • 소속 불명 : 전투 기동부 특별작전 소조 - 북한 내에서의 별명은 횃불체포조인데 로동당 마크가 달린 사이렌을 울리는 이베코 버스를 타고 다니기에 붙은 별명이다. 이들은 그 어떤 검문 초소[20]도 검문 없이 통과할 수 있으며, 당군정 고위간부들을 신속 체포하는 특수기동부대이다. 부대원 전원이 무술 유단자로 이루어져 있는지라 체포된 간부는 뼈도 못추스른다고 한다. 워낙 악명이 자자해서 북한 간부들 사이에선 공포의 저승사자로 비유된다고 한다.
  • 출처 : INSS 연구보고서 2020-6 김정은 시대 북한의 정보기구 中 유동열, “북한 정보기구의 변천과 현황,”『국가정보연구』 제11권 1호(2018), p.164

이중에서 정보부문의 반탐정국, 수사국, 통신국이 핵심부서이며, 농장감시국과 화학국은 보안상 명칭을 위장해놓았다.

김원홍 보위상 시기 정찰총국과 통일전선부의 해커 조직과 인민보안성의 외화벌이 조직과 사법권 일부, 인민무력부 산하 국경경비총국을 예하 부대로 흡수하였는데 보위상의 숙청 후 부대의 거취사항은 알려지지 않았다.


6. 출신[편집]



6.1. 국가보위성 정치대학 출신 [편집]



파일:2020121600110_0.jpg

국가보위성 정치대학의 모습


파일:SSI_20141119102329_O2.jpg

2014년, 국가보위성 정치대학에 설립된 김일성김정일동상
'국가보위성 정치대학 (평양룡산보위대학)'은 평양시 룡성구역에 있는 5년제 특수대학으로 국가보위성 직원과 공작원을 양성하는 곳이다.

조선로동당 당원만 입학할 수 있으며 정당이나 기관 등에서 필요로 하는 정치간부를 양성하고 학생들을 제외한 교원 (교수)나 후방부성원 (교직원) 전원이 군인 신분으로서 권총을 소지하고 다닌다.

졸업생들은 졸업과 함께 보통 도 단위 보위부에 발령되었다가 간부사업으로 발령받으면 본부기관으로 이임한다.

정치학, 군사학, 심리학, 인간사회 철학, 사회주의 경제학 등 12과목을 교육하는데 '정치학'은 주로 혁명역사와 같은 사상교육을 받으며 '군사학'은 투지훈련, 심리훈련, 사격훈련, 장비훈련을 학습한다.

이 중 투지훈련은 '공수, 도하, 일격필살법, 정찰술, 방화훈련' 등이 있으며, 심리훈련은 심리술, 미행술을 배우고, 사격훈련은 사격술과 저격술, 그리고 장비훈련에는 화기, 통신기기, 차량 등 장비사용에 대해 배운다.


6.2. 보위지도원 출신[편집]


국가보위성의 정식 직원 수가 5 ~ 10만 명으로 파악되기 때문에 군이나 리 단위 보위지도원이 모두 정치대학 출신은 아니다.

다만, 대부분 부모나 친척이 보위부 요원으로서 가족별 신원파악 등 철저한 성분조사를 통해 선발한다.


6.3. 은퇴 후 처우[편집]


보위부 간부들은 대개 60대 이후에 은퇴하는데 당국에서 제대로 된 처우[21]를 해주지도 않는데다가 주민들이 보위원들을 제일 싫어하다보니 장사도 제대로 되지 않아 가난하게 산다고 한다. #

6.4. 기타[편집]



  • 2019년 8월에는 생활고에 시달릴 만큼 소량의 식량 배급 문제도 제기되었다. # 그런데 더 식량사정이 어려운 2021년 5월에 갑자기 몰래 1년치 식량이 배급되었다고 한다. # 양강도 지역은 국경통제 이후 뇌물 수입이 끊긴 안전원, 보위원들이 심각한 생활고에 시달렸는데 체제를 수호하는 최전선에 서있는 인원들을 굶길 수 없기 때문에 먼저 구제해준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 최근 '김정은 국무위원회 위원장이 권력이 너무 커진 국가보위성과 사회안전성을 견제하려고 중앙검찰소를 부각시켜준다'라는 소식이 있었다. 특히 보위부 및 사회안전성 직원 수백 명이 뇌물 수수 혐의로 중앙검찰소에 기소되어 숙청대상이 되었다. 출처 또한 한 때 정경택 국가보위상의 앙숙이라고 불리우는 리영길 조선인민군 총참모장을 사회안전상으로 임명해 견제하기도 했다. 우상철은 검찰소 출신임에도 이례적으로 정치국으로 진입했으며 김정은의 강력한 신임을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금혁의 증언에 의하면 중앙검찰소 측이 보위원들을 해임시키기도 했을 정도였다고 한다.

  • 보위부원은 북한 체재 유지에 핵심이기에 배급을 우선적으로 보장받긴 하지만 부유하진 않으며, 위에서 요구하는 상납과제도 존재한다. 배급이 중단된 빈곤한 농촌지역과 국경지역의 보위지도원들은 결국 탈북, 밀수 브로커들이 바치는 뇌물이 주수입원이 되는 경우가 많은데, 도 보위부나 중앙당도 이 사실을 알고 있기에 검열이 실시되면 결국 처벌받는 경우가 많다.

  • 국내에도 보위부 출신 탈북자가 당연히 내려와 있는데 탈북자들의 평이 좋지 않아 조용히 사는 편이라고 한다. 일부는 속죄 등의 차원에서 보위부의 비행을 외부에 알리는 활동도 한다. 만일 탈북을 돕는 보위부라면 탈북민에겐 그나마 행운인 것이다.


7. 대중매체에서[편집]




  • 동년도에 개봉된 영화 <그물>에선 주인공인 어부 남철우가 보위부에게 고문을 당하기도 했다.


8. 관련 문서[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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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북 5도 기준 평안남도 대동군 임원면 와산리[2] 중앙에 김정일 동상이 세워져 있다. 김원홍 보위부장이 숙청되면서 김정은이 "너희들은 이 동상을 모실 자격이 없다"라고 진노하며 동상을 회수해 갔다는 소문이 있다.[3] 다만, 실질적인 지도 관리는 조선로동당 조직지도부 8과에서 통제한다.[4] 군복이나 제복 차림이 아닌 정장을 입고 총기를 휴대한 모습이 이 조직의 특성을 잘 나타내 준다.[5] 뒤의 흰 옷 인원들은 사회안전성 여자 요원들이다.[6] 예를 들어 한 도시에서 최고지도자에 대해 비방하는 낙서가 발견되면 즉시 해당 도시 주민들 전체를 조사하며 필적조사까지 한다.[7] 참고로 해당 영상은 2002년~2003년경에 촬영되었다.#[8] 그런데 이것은 사실 연출된 영상일 확률이 높다. 이 영상에선 북한 보위부원이 북한 지도자 사진 앞에서 여성을 폭행하는데 실제로는 북한 지도자 사진 앞에서는 폭행을 할 수 없다고 한다.[9] 다만 해당 항목을 보면 원정화 사건은 국정원에 의한 조작설, 과대포장설이 언론에서 계속 제기되고 있다.[10] 김일성의 사회안전 업무와 정치보위 업무를 분리하는 대책에 의함[11] 김일성은 국가정치보위부를 통해 반체제파를 숙청하고 북한 주민이 반항할 수 없도록 북한사회에 공포감을 조성했는데 너무 심한 탄압에 여론이 안좋아지자 김일성이 부장이었던 김병하에게 책임을 물어 숙청하고 1982년 국가정치보위부에서 국가보위부로 개명했다. 부장에는 이진수가 임명됐지만 1986년에 사망하고 김일성의 후계자로 대두된 김정일이 모든 권한을 행사했으며 2012년까지 보위상 자리는 공석으로 남겼다.[12] 조선로동당 조직지도부 검열을 거부한 사건이 있은 다음 '반당, 반혁명 종파분자' 혐의로 권총 자살하였다. 전 북한 보위사령부 대좌이며, 국정원 연구기관 연구원과(현재 국가안보전략연구원), 경기대학교 정치전문대학원 객원교수를 지낸 강명도에 의하면 '아들 김창하가 김평일과 방탕하게 어울린 것을 김정일에 제보하려 하자 제보자들을 정치범수용소에 넣었는데 수감자 일부가 연줄을 동원, 억울한 사정을 김일성에게 직접 보고하여 숙청되었다'고 한다.[13] 김정일김일성종합대학 동기였음에도 심화조 사건 처리에 미온적으로 반항하다 반당반혁명 종파분자로 선고되어 회의 도중 음독 자살했다[14] 조직지도부는 로동당 최상급부서며 역시 조직지도부 8과가 국가보위부의 인사권을 쥐고 있다. 또한 조직지도부 출신 파견 지도원이 로동당 부서의 부장 내지 부부장, 내각상이나 부상들을 직접 오라가라 할 정도의 영향력이다.[15] 공식일정을 무리하게 수행하다 뇌출혈로 인한 전신마비로 더 이상의 직무수행이 불가능해지자 해임되고 또는 장성택 관련 숙청 이후 숙청 또는 자살한 것으로 알려져있다. (자세한 내용은 우동측 문서 참조)[16] 해임 이후 강등되었지만 일시 복권 후 출당, 철직(파면)으로 숙청 총살설 지방 추방설이 있으나 숙청은 확실하다.[17] 채문덕 일당과 보위국도 결국 뒷처리로 숙청당했다.[18] 생활이 어려운 말단 보위지도원이 밀수하다가 국경경비대에 체포되거나 반대로 외화벌이를 하는 인민군이나 중앙당 소속 일군에게 함부로 위세를 하다가 역관광으로 보위부가 혼이 나는 경우도 있다.[19] 조총련을 통해 자진 입북한 재일교포들은 북한에서 적대계층과 비슷하게 취급한다. (자세한 내용은 조총련을 참조)[20] 이는 호위사령부 검문 초소도 해당된다.[21] 은퇴하면 아무리 고위급이더라도 그나마 나오던 배급도 바로 끊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