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주의 (r20210301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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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정의
2. 국가별 사례
3. 철학적 입지
4. 하위 문서
5. 관련 문서



1. 정의


개인은 유한하나 국가는 불멸이라네.

소설 '1984' 中


군인이란 모름지기 독일이라는 나라가 어떤 체제 하에 있든 조국을 등지려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 자신이 생각하는 체제와 다르다고 해서 조국을 등지는 일은, 자신을 희생하며 봉사하는 독일-프로이센 원칙에 위배되는 일이다.

카를 되니츠


國家主義 / Statism

국가를 가장 우선적인 조직체로 규정하고 국가 권력에 사회 생활의 전 영역에 걸친 광범위한 통제력을 부여하는 사상이다.[1] 여기서 말하는 국가란, 정치 단위로서의 국가인 State를 말하며, 막스 베버는 국가를 특정 지리 영역 내에서 무력의 사용권에 대한 합법성을 독점한 강제적인 정치 조직이라고 정의한다. 국가주의는 이 조직에 가장 우선적인 주권을 부여하는 이념이다. [2][3]

넓은 의미에서 본다면 우파적 사회정책(동성결혼 반대, 징병제 찬성[4] 등)은 물론, 중도 좌파적 경제정책(부의 재분배, 케인즈주의) 역시 복지를 위해 국가의 존재를 전제하고, 제도의 역할을 개인보다 중요하게 여긴다는 점에서 국가주의와 통할 수 있다.[5] 물론, 경제 정책의 방향성과 정치적 성향은 얼마든지 따로 놀 수 있는데, 역사적으로 실재한 공산국가들만 봐도 국가를 중시한다는 면에서 진정한 좌우합작이 이루어진다. 국가주의 비판 논리는 아나키즘이나 자유지상주의 정치철학의 산물이지, 정치에서 좌우의 대립과는 관계가 없는 개념이다. 애초에 국가(state)가 존재한다면 국가주의(statism)는 존재할 수 밖에 없다. 사실 이런 오해가 발생하는 것은 자주 국가와 정부를 동일한 것으로서 오인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좌우 정치세력모두 자신의 뜻을 관철하지 못하는 정부를 비판할 수는 있지만, 결국에는 국가 권력을 해체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정부를 세우는 것이 목적이다. 사회주의 좌익들의 지배 체제 비판도 결국에는 자신들의 독재정권(프롤레타리아 독재)을 세우는 것이 목적이지 국가 자체를 비판하는 것과는 무관한 것이다. 이 때문에 아나키스트들이 다른 사회주의자들을 국가사회주의자(State socialist)라고 부르는 것이다. 물론 우익 세력에서도 보수혁명론자 처럼 정부를 극도로 비난하는 세력이 존재하기도 하지만 이들 역시 국가 권력 자체에는 의문을 제기하지 않고 자신들의 독재정권을 세우고자 하는 자들이다.[6]

좁은 의미에서(그리고 일반적으로 통하는 의미에서)의 국가주의는 국가를 가장 우월한 공동체로 여기며 개개인의 이익보다 국가의 공공선을 우선시하는 사상을 의미한다. '국가가 있어야 국민이 있다', '국가가 당신을 위해 무엇을 해 줄 것인가를 생각하기 전에, 당신이 국가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존 F. 케네디) 이는 국가주의적 사고를 잘 보여주는 문장이다. 정확히는 인용된 발언의 의도는 전형적인 국가주의와는 어느 정도 거리가 있는 편이나, 한국에선 유독 이 쪽으로 왜곡되어 인용된다.[7] 또한 국가가 있어야 국민이 있다는 말 역시도 개인을 탄압하는 말로 왜곡되는 경우가 많은데, 본래 의미는 '자연 상태에서의 개인은 자유를 누리지 못한다'라는 공화주의적 자유관과 연결해서 봐야 할 말이다. 이런 자유관을 가진 사람으로는 루소를 꼽을 수 있는데, 자연 그대로 그 어떤 간섭도 배제된 경우라면 '약자가 강자에게 예속되어'[8] 자유를 누리지 못하게 된다. 그렇기에 공화주의, 국가주의에서는 '개인의 자유를 위해' 국가를 중시하는 것이다. 즉 인용한 말을 풀어 쓰자면 '국가가 있어야 개인이 자유를 누릴 수 있다'가 될 것이다.

국가주의에 반대되는 개념은 자유의지주의, 아나키즘이 있다. 개인주의와도 잘 통하지 않는다. 한편, 국가를 가장 우월한 조직체로 여긴다는 점에선 공동체주의, 공화주의와 어느정도 통하기도 한다. 다만 국가주의는 국가를 위해 사회 소수자나 개인의 사생활이 침해되어도 상관없다는 식의 정책주의로 가기 쉬우며, 까딱 잘못하면 '국가의 이익을 위해서'라는 명목으로 '인권 침해'나 심지어 전쟁까지 터뜨릴 수도 있기 때문에 주의해야 한다.

국가주의라는 용어를 사용함에 있어서 아나키스트들은 모든 비아나키스트 이데올로기를 국가주의라고 부르며, (우익) 자유지상주의자들은 모든 정부 개입을 국가주의라고 부른다.

국가주의 자체에는 "국익을 위해 희생하라" 혹은 "우리 나라가 가장 위대하다" 같은 의미는 없다. 그건 내셔널리즘이나 국수주의(Ultranationalism, 말그대로 극단적 내셔널리즘이라는 의미)라고 불리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저런 개념이 제대로 구분되지 않기 때문에[9] 의미에 오류가 발생하는 것이다. 이런 문제 때문에 statism을 자주 쓰이진 않지만, 아예 국가통제주의(國家統制主義)라고 좀더 노골적인 용어로써 번역하는 경우도 있다. 다른 방식으로 이해하기 쉽게 표현하자면 8values에서 두번째 축이 얼만큼 내셔널리스트적인가[10], 세번째 축은 얼만큼 국가주의적(statism)인가를[11] 표현한다. 하지만 저런 배타적 개념들은 그것을 실현하기 위한 강제력이 필요할 수 밖에 없기때문에 국가주의와 연결될 수 밖에 없는것이다.[12] 국가주의는 지역내에서 최고 통지 기관으로서 국가를 인정하고 그것이 사회와 경제 전반에 통제력을 행사하는 것이 옳다는 믿음 자체를 의미한다. 따라서 국가를 부정하거나 국가에서 멀어지길 바라는 이데올로기를 제외 한다면, 대부분의 사상은 큰정부를 지지하는가 작은 정부를 지지하는가의 차이가 있을 수는 있지만[13], 국가주의라는 딱지를 피할 수 없다.[14] 국가주의 이데올로기와 반 또는 비국가주의 이데올로기의 차이는 법에대한 입장에서도 나오는데, 반 혹은 비국가주의자들은 합법성이 행위의 정당함을 판단하는 기준이 되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법은 그저 국가의 강제력(즉 국가주의)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곳 나무위키에서도 국가주의와 내셔널리즘을 구분 못하고, 특히 울트라내셔널리즘과 관련된 부분이 국가주의로 언급되어 있는 경우가 많이 보이는데 적절히 수정해 주자.

미국의 아나키스트 벤자민 터커는 다음 말로 국가주의(Statism)를 비판하는데, 이 발언이 한국에서 내셔널리즘의 번역어로 오용되곤 하는 국가주의와 어떻게 따른지 유심히 생각해 보자.

"개인에게 스스로를 통치할 권리가 있다면, 모든 외부의 정부는 폭정이다."[15]

벤자민 터커 [16]

이탈리아의 에리코 말라테스타라는 아나키스트는 국가주의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필자를 포함한 아나키스트들은 국가(State)라는 말을 사용해 왔고, 여전히 정치, 입법, 사법, 군대 및 금용을 통해 자신을 관리하는 기관을 가르키기 위해 국가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으며, 민중에게서 그들의 행통에 대한 자율권, 개인 안전에 대한 책임을 위임이나 강탈을 통해 빼앗아 모든 사람들에게 적용되는 법을 제정하고 필요한 경우 집단적 무력을 사용하여 사람들에게 강요할 권한을 가진 기관을 뜻하는 의미에서 국가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국가라는 말은 통치를 의미하거나 다른 식으로 표현하자면, 비인격적 추상적 표현들이 정부에 의해 의인화 되는 것이다...[17]

그러나 이 말에는 다른 의미들이 있으며, 그 중 일부는 오해를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특히 불행한 사회적 상황으로인해 정치과학적 언어의 미묘한 차이에 익숙해질 기회를 갖지 못한 사람들에 의해 사용되거나, 혹은 나쁜 정치적 신념을 가진 세력이 이해가 아닌 혼란을 조장하기 위해 사용할때 이 문제가 악화된다.

따라서 국가라는 말은 자주 특정한 집단의 사람들이 특정한 지역에 모여 그 집단의 구성원들이 그룹화된 방식이나 그들 사이의 관계와 상관없이 사회적 단위라고 불리는 것을 구성한 상태를 의미한다. 이것은 또한 단순히 사회와 동어어로서 사용된다. 따라서 국가라는 말에 주어진 이런 의미들 때문에 아나키스트의 반대파들은 아나키스트들이 모든 사회적 유대와 인간의 협업을 파괴하고 모든 사람들이 야만적인 상태에서 사는 것보다 더욱 나쁜, 모든 인간이 고립된 사회를 원한다고 믿거나 믿는 척을 한다.

국가라는 말은 또한 지방이나 집단의 권위와 대립하는 중앙 권위로서, 한 나라의 최고 행정 기관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런 이유로 어떤 이들은 아나키스트들이 정부의 원칙은 그대로 두고 단지 지역 분권화를 원한다고 믿는다. 따라서 그들은 아나키즘을 지역주의(cantonalism)나 공동체주의(communalism)와 혼동한다.[18]


한국에선 한국당의 김병준이 문재인 정부의 정책이 과도하게 국가주의적 이라고 비판했을때, 자칭 진보세력에서는 국가주의와 내셔널리즘을 구분 하지 못하는 무지함을 보여주기도 했다.[20] 물론 한국당의 정치적 경향[21], 한국에서 자유지상주의라고 자칭하는 일부 단체들의 행동, 그리고 시민 자유의 문제에 위험이 되는 일들에 무관심하거나 오히려 적대적인 모습(징병제, 피해자 없는 범죄의 처벌, 무장할 권리의 부정 등)을 봤을때 정치적인 가십거리를 만들기 위한 목적이었을 테지만, 김병준의 국가주의 비판 자체는 한국 정치인 치고는 특이하게 적절한 경우였다.


2. 국가별 사례



2.1. 대한민국


조선 500년을 거치며 한국인들의 사상에 뿌리내린 성리학적 윤리관부터가 국가가 국민 위에 있고 국민은 국가의 존립을 위해 모든 걸 바치며 충성해야 한다는 국가 주도의 위계질서를 옹호하는 경향이 있으며[22], 군사정권 시절 애국심을 과도하게 강조하는 교육까지 겹치면서 은연중에 옅게라도 국가주의적인 관점을 가지는 경우가 많다. 1982년 부미방 사건 관련자 문부식견해에 따르면,[23] 한국에서의 국가주의는 타 국가들과 달리 국민들의 암묵적 지지에 기반했다고 견해를 제시했다. 권위주의 시절 국가는 국민들의 암묵적 지지에 따라 반체제/반국가적 행위를 하는 이들의 인간성을 박탈하며, 일반 국민들은 누가 데모하다 의문사하거나 고문당해 감옥에 간다 해도 일절 관심을 두지 않았다.

박정희 정권의 경우 '조국 근대화' 시나리오에 대한 국민들의 지지에 따라 장기 집권할 수 있었으며, 이러한 광적 숭배는 국민들에게 자율적 인간으로 성장할 자아성찰 능력을 빼앗아 버린 것이다. 또 전두환 정권이 광주학살과 같은 무자비한 살상행위를 저지르고도 대통령 자리에 오른 것도 자아를 빼앗긴 국민들의 암묵적 지지 때문이었다고 주장했는데, 1979년 10.26 사건으로 암살당한 박정희 대신 그가 약속한 바를 이뤄줄 추진력이 넘쳐난 지도자를 원했을 거라는 심리 때문이었다고 주장했다.[24]

특히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은연중에 국가(state)와 국민(nation)이 일치한다고 생각하도록 가르치거나 배우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현대 독일인들처럼 독자적인 이성을 갖고 국가주의를 비판하는 게 싹트기 어렵다.[25] 때문에 국가의 여러 현안들을 논할 때도 대체로 정책의 효용성이나 손익에 대한 평가가 주를 이루며, 국가가 시민의 자유로운 활동에 강제력을 행사하는 것은 기본권의 침해라는 관점에서의 반박은 국가와 집단이 개인보다 훨씬 먼저이고 우선이며 집단을 위해 개인의 불편이나 침해는 당연히 감수해야 한다고 보는, 보수적인 한국인들의 정서 상 설 자리가 별로 없다. 징병제, 인터넷 검열, 아청법, 셧다운제 등 피해자 없는 범죄의 처벌 등 이 모든 사안을 한번에 표현할 수 있는 용어가 바로 국가주의(statism)다. 물론 한국도 자유민주주의 국가인 만큼 개개인의 입장에 따라 부분적인 반대의 목소리는 있으나, 어디까지나 진영논리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포괄적인 국가주의 비판으로 발전하지는 못하는 추세이다.

이론적으로 보면 국가의 역할을 가능한 한 최소화해서 개인, 사회경제활동의 자유를 보장하자는 것이 자유주의적 국가관에 가까우므로 자유주의는 국가주의와 대립한다. 그러나 한국의 자칭 자유주의자들은 국가에 대한 맹목적 충성만을 강조하는 경우가 많다. 그들의 이론은 일단 국민은 국가의 일부로서 당장 국가가 보상해주지 않아도 당연히 국가에 충성을 다하는 게 자연스러우며 그렇게 국가가 잘되고 나면 국가가 나중에 자유를 베풀어준다고 보는 것이다. 한국에서 자유 어쩌고 하는 일부 단체들이 현실은 거의 '자본전체주의' 비슷한 형태에 더불어 독재자나 권위주의 정부를 옹호하는 모순된 사고방식을 보이는 것도 이런 흐름과 무관하지 않아보인다. 반대로 국가주의를 혐오하고 사회적 자유를 중시한다는 지지층 내에서도 주사파 같은 모순된 세력이 나오기도 하고, 신세대 여성주의라 자칭하는 래디컬 페미니즘을 옹호하는 신좌파 계열에서 국가의 엄벌주의를 주장하기도 한다. 전술한 문부식의 주장에 나오는 바에 따르면 1980년 5.18 민주화운동 때 시민군들이 국가주의의 상징이라 할 태극기를 흔든다거나, 국가보안법상 유죄 선고를 받은 민주화 인사들이 "대한민국 만세"라는 걸 외치는 것도 국가주의의 중독으로 볼 수 있으나, 강준만 교수의 주장처럼 "당시 사회분위기상 모든 저항운동이 '빨갱이' 취급을 받는 이상, 국가 폭력에 대한 저항운동의 안전을 꾀하고 효과를 높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26]는 견해도 있다.

한국 사회는 전통적으로 국가주의적 성향이 강했고 여러 정치 사상의 기반이 희박해서 온갖것들이 짬뽕되어 있기 때문에 논리적으로 국가주의와 적대적이어야 할 사상들도 융합되는 경우가 많다. 좌익의 경우 한국의 과거 운동권인 PD마르크스-레닌주의에, NL은 좌파 민족주의에 각기 기반을 두고 있기 때문에 둘 모두 국가주의(statism)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다.

국민이라는 낱말의 경우, 국가의 개념을 전제하고 있어서 '국가주의적 사고의 반영'이라고 주장하는 경우도 있으나, 국민을 뜻하는 원어에는 그런 의미가 없다. 어디까지나 번역하면서 생겨난 의미. 반대의 사례로 "인민"이라는 표현은 원래 "People"이라는, "사람", 그 자체로서의 백성을 뜻하는 표현에 대한 번역어였지만, 윗동네에서 워낙 해괴하게 쓰는 바람에(...), 대중적으로 사용하기에는 애매한 표현이 되었다. 실제로 PD, NL, IST 등 각종 운동 단체들도 현재는 인민이란 말은 거의 안 쓰고, 대신 민중[27], 대중, 평범한 시민들 이런 말을 주로 쓴다. 대놓고 인민이란 말을 쓰는 집단은 스탈린주의 매니아 잔존집단인 노사과연 정도이다


3. 철학적 입지


사실 국가를 우선시하는 사상 그 자체로 국가주의를 정의하자면, 20세기 이후의 파시즘이나 경찰국가주의 등 뿐만이 아니라, 사회계약론 중 홉스의 입장이나, 왕권신수설 등 전근대적 전제군주제를 옹호하는 사상 역시 이 범주에 포함된다고도 해석될 수 있다. 동양의 유가적, 노자[28] 또는 법가적 통치 이념 역시 국가에 상당한 비중을 두기 때문에, 이 쪽으로 어쨋든 이 주장에 따분류할 수도 있다. 즉 넓게 잡으면 한도 끝도 없다. 애초에 국가라는 존재 자체가 없었던 경우는 인류 역사상 멀디먼 구석기 시대에서나 가능했기 때문에 집단이 생기고 국가가 생기면서부턴 국가라는 존재 자체를 부정한다는 생각 자체도 못 하는 경우[29]가 많아지게 되었다. 현재만 봐도 이 지구상에서 국가라는 이름으로 차지되어지지 않은 땅은 남극북극뿐이다. 심지어는 이들조차 영유권 다툼의 조짐이 보이는 실정.

국가주의에 대해 좀더 철학적으로 깊게 들어가자면 사실상 아나키즘적 정치관, 그리고 실존주의적 인간관의 대척점에 있는 모든 관념들이라고 볼 수도 있다. 즉, 개별체의 존재와 특성보다 보편화된 공동체의 규범을 중시하는 관점이라고 정리할 수 있다. 물론, 국가주의의 협의, 그리고 이 사상의 이름 자체가 "국가"주의인 것으로 알 수 있듯이, 보편화된 공동체의 가장 일반적인 표상이 국가에 의한 지배 체제이다. 물론, 넓은 의미에서 보면 국가뿐만이 아닌 작은 공동체, 종교 교단, 군벌, 심지어는 구체적인 조직이 아닌, 형이상학적인 이상이나 규범까지도 개체의 존재보다 우선시되는 보편적 존재로 작용할 여지가 있으며, 이러한 것들을 지나치게 중시하는 경향 그 자체를 국가주의적인 태도로 해석할 수도 있다. 철학사를 살펴 보면 쉽게 알 수 있겠지만, 일체의 형이상학적 담론 그 자체가 결국은 이러한 넓은 의미의 국가주의와 연결되기 쉬운 편이다. 예컨대, 플라톤의 이데아론은 결국 철인에 의한 "통치"와, 그 통치의 구조를 정당화하며, 성리학적 관념론도 결국은 형이상학적인 만물의 이치를 "깨우친 사람"이 깨우치치 못한 사람을 통치해야 한다나는 나의 백성들을 굽어살피는 깨우친 임금, 세종이오는 담론으로 연결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심지어 자연주의적이거나 또는 산 속에 들어가서 약초 먹고 도 닦는 사상이라고 오독되기도 하는 노자의 사상 역시 결국은 자연계와 천지 만물을 관통하는 "도(道)"에 따르는 통치를 통해 천하를 다스리는 것이 세상에 유익하다는 판단을 내린다. 또한, 전 시대의 형이상학에 대한 비판 때문에 흔히 실존주의로 해석되기도 하는 하이데거의 존재론 역시 결국 "존재자(das Seinde)"보다 조금 더 초월적인 "존재(das Sein)"를 중요시하는 형이상학적 담론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볼 수 있는데, 이를 보면 그가 왜 게르만 민족주의와 나치즘을 옹호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초월적, 보편적 규범의 선천성을 인정하는 기독교적 사유에 대해서는?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30]

공산주의를 실존했던 공산국가나 경제적 관점만을 들어 이론적으로 국가주의라고 이해하는 것은 어폐가 있다. 물론 현실사회주의를 비롯한 다양한 공산주의 정책을 시행한 국가들이 국가주의적 면모를 보인 건 부정할 수 없지만, 이론적으로 마르크스가 지향했던 공산주의는 경제가 아닌 사회적으론 아나키즘 사회와 유사하다. 본래 맑스주의 이론에서 사회주의 혁명은 유물론적 분석에 의하면 사회주의 혁명은 자본주의가 가장 발달한 곳에서 가능한 것이다. 자본주의가 발달해야 노동계급 형성되고 자원을 둘러싼 투쟁이 가속화되어 계급의식이 형성되고 이후 프롤레타리아 혁명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생산력이 뒷받침 되어야 분배도 가능할 것이다. 당시 러시아 제국은 반대로 유럽에서 가장 후진적인 국가였기에, 레닌은 이런 이론과 현실과의 모순을 타파하기 위해 제국주의론이라는 주장을 하는데, 말하자면 제국주의는 자본주의의 최종단계이기 때문에 프롤레타리아 혁명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에 대하여 프레디 펄만 이라는 아나키스트는 제국주의가 비교적 최근의 현상이라는 주장은 과거에 존재한 여러 제국들의 패권에 의한 제국주의가 존재했음을 언급하지 않는 왜곡행위이며 이를 통해 혁명적 좌파 민족주의자라고 자칭하는 이들이 그들의 민족주의가 나치와 파시즘과는 관련이 없고 해방의 힘이라고 주장하며, 내셔널리즘을 전파하는 수단이 되고 있다고 비판했다.[31] 어쨋든 이 주장에 따라 레닌주의자들은 제국의 식민지 세력을 지원했는데 이건 좌익 내셔널리즘이라는 혼종의 기원이 된다. 이후 혁명을 통해 권력을 장악 했지만 말로는 맑스의 원래 주장과의 모순을 가릴 수 있었지만, 후진국의 현실을 가릴수는 없었기에 자칭 사회주의 국가의 지도층은 후진국을 산업화 시키기 위해 인민을 갈아넣으며 개발 독재를 펼쳤다. 이는 자본주의 진영의 개발독재자들과 별반 다르지 않았고 권위주의 체제의 비효율성과 부패가 축적되어 결국 그러다가 망한 것이다.[32]

레닌주의자들은 모든 문제를 스탈린에게 넘기면서 정신승리 하지만 바쿠닌과 맑스가 싸운후에 맑시즘과 아나키즘이 결별한 이유가 바쿠닌이 맑스를 국가주의자라고 결론 내렸기 때문이다. 하나의 당이 국가의 절대권력을 장악하고 경제를 통제하며 부르주아 문화[33]를 억제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상이 어떻게 국가주의가 아니라고 할 수 있는지 생각해보자. 이는 개인의 일탈(스탈린)의 문제가 아니라 중앙 권력을 절대화하는 이데올로기의 필연적인 결과다. 촘스키는 초기 마르크스주의가 이데올로기적으로 일관되지 않으며 반국가주의와 국가주의 사이의 대립이라고 존재한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긴장에서 전자는 로자 룩셈부르크를 거쳐 "좌파 공산주의"로, 후자는 레닌을 거쳐 레닌주의로 분열됐다고 주장한다. 즉 마르크스주의 운동에서 주류인 레닌주의자들이 자신들이 국가주의를 비판한다는건 알맹이 없는 얘기란 소리. 실제로 이사람들의 주장을 들어보면 "스탈린개새끼론"을 주장할뿐 현실사회주의 국가의 모든 국가주의적 요소에 대한 변명만을 일삼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다.[34]

즉, 사실상 마르크스가 최종적으로 지향한 공산주의를 이룩한 국가는 전무한 셈.다수 사람들이 공산주의를 자본주의와 연결해 경제적으로만 계급, 평등을 해석하니 나오는 오류 중 하나. 사실 톡 깨놓고 말해서 공산국가 권력자들 중에서 마르크스의 사상을 애초부터 제대로 이해한 사람이 드물지도 모른다. 지들 권력 기반으로 이용하거나 아님 경제적으로 평등을 추구한다니 다른 거 다 제끼고 난 공산주의자요!라고 선언했을지도. 공산주의라면서 흡사 하는 짓은 파시즘 뺨치는 민족주의자들도 넘쳐났던 걸 감안하면. 주체사상? 또 경제적으로 봐도 사실 이러한 국가들의 경제정책은 엄격한 마르크스주의적 관점에서 보자면 국가자본주의라고 비판할 수도 있다.[35][36] 거대 자본가의 "사유"가 정부와 당의 "국유"로 전환되었을 뿐, 민중은 여전히 공산주의적 삶을 누리지 못하게 되었다는게 포인트. 진정한 사회주의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노동자 평의회에 의해 노동자 민중이 경제를 비롯한 사회 운영을 총괄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전술한 문부식의 주장처럼 국가주의에 대한 대안으로 독일 반나치 운동처럼 국가주의에 조종당한 자신을 반성하고 자율적 이성을 되찾아 탈권위적 시민공동체를 형성하자는 주장도 나오지만, 강준만 교수는 이에 대해 너무 발본색원적으로 나가면 '우리는 죄인이다'라는 허무주의적 사고로 치우칠 수 있다고 반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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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관련 문서



[1] 이게 극단화되면 전체주의가 된다.[2] Cudworth, Erika (2007). The Modern State: Theories and Ideologies: p. 95[3] Salmon, Trevor C. (2008). Issues in international relations. Taylor & Francis US p. 54[4] 다만 모든 우파가 찬성하는건 아니다. 모병제는 어찌보면 국방산업을 민영화하는 것과 비슷한 것으로 볼 수 있고, 시장경제와 개인의 자유의사를 중시한다는 자유(지상)주의 우파 입장이라면 더더욱 징병제는 달갑지 않은 문제다. 론폴만 하더라도 징병제를 대차게 깐다.[5] 애초에 복지국가나, 사회민주주의 등의 이념이 왜 "중도" 좌파로 분류되는지 생각해보자. 이 사상들은 기존 국가 체제 및 소유와 지배의 관계를 인정하는 선에서 진보적인 방법론을 도입하자는 사상이기 때문에 국가체제의 존재를 중시하는 경향이 강하다. 카를 마르크스고타 강령 비판에서 사민주의적 방법론을 비판한 것도 이러한 맥락 때문이다.[6] 2019년 상황으로 한국에서는 진보파들이 야당시절 정부의 검열과 통제정책을 비판했다가 권력을 장악하니 철저하게 국뽕으로 변했고, 보수파에서는 정권에서 밀려나니까 반국가주의자 코스프레를 하고있는 상황이다.[7] 케네디는 재임 시절 세계시민적인 의식을 여러번 비췄었다. 반기문 전 UN사무총장도 국내언론 사설에서 어릴적 케네디와 만났던 기억을 떠올리며 그의 세계시민주의적인 사고를 회고했을 정도. 케네디의 해당 발언은 시민 개개인이 국가나 세계에 큰 영향을 줄 수 있을 만큼 강한 권리와 자유를 가졌다는 데에 강조점을 둔다. 즉 국가에 맹목적으로 충성하라는 게 아니라 국가가 올바른 길로 갈 수 있게 적극 개입하라는 뜻으로도 해석이 가능하다.[8] 이를테면 충분한 법이 갖추어지지 않는다면, 노동자는 고용주에게 예속되어 제대로 된 자유를 누리지 못할 것이다.[9] statism, nationalism 모두 국가주의로 번역되는 경우가 많다. 영어로 국가주의(statism)내셔널리즘을 구글링해 보면, 내셔널리즘은 극우파들이 자국 깃발을 들고 시위하는 모습이 나오고, 국가주의의 경우 특정한 부류의 사람들이 만든 듯한 짤방이 나오는 것을 볼 수 있다.[10] 왼쪽에 가까울 수록 내셔널리스트 오론쪽에 가까울 수록 국제주의자[11] 왼쪽으로 향할수록 친아나키즘, 오른쪽으로 향할수록 전체주의 경향[12] 내셔널리즘에 대한 비판은 한국에서 조금씩 나오고 있는 상황이지만, 국가주의(statism)에 대한 비판은 거의 전무하다. 한국에서는 이런 개념을 제대로 구분하지 않기 때문에 국민주의(nationalism)를 비판한다는 사람이 국가주의(statism)를 옹호하는 경우도 많이 나타난다.[13] 즉 시민 자유와 대립하여, 국가 권력(국가주의)을 얼마만큼 허용하는가?[14] 우익 자유지상주의 사상 중의 최소국가주의(minimal statism) 역시 질서의 중재자로서 최소 국가를 인정하기 때문에 엄격하게 말하자만 국가주의라고할 수 있다.[15] 개인만이 그 자신의 주권자(자기소유권)라는 도덕적 입장에 따라 국가주의를 비판하는 문장이다.[16] state Socialism and Anarchism: How Far They Agree, and Wherin They Differ, p.28[17] 진짜 민중의 권리를 대변하지 않고 정부에서 만들어낸 허위 민중의 형상에 진짜 민중을 끼워 맞추고 우겨 넣는다는 의미다.[18] https://theanarchistlibrary.org/library/errico-malatesta-anarchy[19] https://www.youtube.com/watch?v=3gS6g41m_NU "좌파가 인간을 그저 환경을 반영하기만 하는 역사의 산물이라고 규정하게 된 것은 커다란 비극이자 재앙입니다. 그런 결론을 바탕으로 그들은 사람들을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몰아세우는데 모든 도덕적 장벽을 없애 버렸습니다. 인간에겐 내적 본성 같은 것은 없고, 인간의 내면엔 자유에 대한 강렬한 본능이 없으며, 자유, 창의성, 자신이 통제하는 환경에서의 생산활동 같은 것들이 그들이 원하는 근본적 본능 같은 것들이 아니라면... 당연히 사람들에게 그런 환경을 제공해야 할 도덕적 이유 또한 존재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때 그들은 민중을 그저 그들이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일들에 강제로 몰아세우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습니다... 바쿠닌은 19세기 후반에 맑스와 함께 이것에 대하여 논쟁했습니다. 그때는 레닌주의가 등장하기 전이었지만, 새로운 계급이 등장하여 특권을 장악하는 두 가지 방향을 정확히 예견했습니다. 한쪽은 노동 계급의 투쟁이 그들이 권력을 장악할 기회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나타날 것이라는 생각이었는데, 그는 그들이 인류 역사상 유례가 없는 폭정을 펼치는 붉은 공화국을 만들어낼 것이라는 것이었습니다. 또 다른 한쪽은 자신이 그러한 방법으로는 권력을 얻어내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있을 것이며, 국가자본주의에 귀의해서 지배계급의 충성스러운 종이 되어 국가자본주의 체제의 관리자나 이데올로그가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바쿠닌은 그들을 "민중의 지팡이로 민중을 때리는 자"라고 표현했습니다. 다른 식으로 표현하자면, 그들은 민주주의라는 말을 할 것이지만, "민주주의라는 이름이 붙은 몽둥이로" 진짜 민중을 때려눕히는 자인 것입니다..."[20] 대표적인 경우 해당 기사에서는 국가가 시민에게 안좋은 것을 억제하기 위해 강제력을 행사하는 것이 옳다고 주장한다. 이것은 선악의 도덕적 판단의 주체가 개인이 아니라 국가이며 개인은 공공선(물론 국가가 주장하는)이라 불리는 것을 위해 자기자신에 대한 통제권을 박탈당해도 된다고 주장하는 것인데, 이게 바로 전형적인 국가주의 논리다. 미하일 바쿠닌은 고전 마르크스주의를 비판하기 위해 작성한 Statism and anarchy라는 글에서 자유는 자유를 통해서만 탄생할 수 있다고 주장하면서 앞의 논리를 다음과 같은 말로 비판한다. "사람들이 몽둥이로 맞고 있을 때, 그 몽둥이가 “민중의 지팡이”라고 불린다고 해서 행복해 하진 않을 것이다" 이말은 노암 촘스키가 권위주의 좌익 세력을 비판하면서 수십년 전부터 입에 달고 사는 말인데다가 여러 상황에 적용될 수 있는 적절한 표현(정치에서 좌우 가릴것 없이)이라, 서구권에서는 바쿠닌의 어록 중에서 가장 잘 알려져 있다.[19]한국에서는 자신이 아나키스트라고 자칭하는 사람들조차도 이걸 구분 못하기 때문에, 국가주의적 발언을 남발하기도 한다. 사실 한국 이념계가 이렇게 개막장이기 때문에 박노자 같은 소련을 옹호하는 레닌주의자가 아나키스트를 자칭하고 다녔음에도 누구도 반박하지 않았던 것. [21] 국가주의 비판의 궁극적인 결론은 아나키즘 이지만, 반대로 한국당은 한국의 주요 정당 중에서 가장 국가통제에 우호적인 이들이다.[22] 물론 유교 성리학이 처음부터 무조건적으로 국민,백성을 국가, 군주보다 아래에 두고 하인처럼 부리라고 한것은 아니다. 국민이 국가에게 백성이 왕에게 절대적으로 충성하는만큼 국가와 왕도 최선을 다해 국민, 백성이 편하게 살 수 있도록 보살펴야 한다는 것이 본래 의도이나, 유교와 유학자 자체가 조선 후기로 들어서면서 오래 기득권층으로 군림하며 부패했고, 일제 강점기군국주의가 그런 유교 문화에 한술 더 뜨면서 상류층의 보살핌의 의무는 사라지고 하류층의 일방적인 충성만이 요구됐다.[23] 해당 게시글의 원본은 <당대비평> 1999년 겨울호에 수록됐으며, 2002년 저서 <잃어버린 기억을 찾아서: 광기의 시대를 생각함>에도 수록됐다.[24] 다만 강준만 교수는 <한국 현대사 산책: 1980년대편> 4권 에필로그에서 5공을 끝까지 비판해 온 호남을 제외하지 않았다고 비판을 가했다.[25] 이건 한국에서 내셔널리즘 경향이 매우 강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26] <한국 현대사 산책 1980년대편: 광주학살과 서울올림픽> 4권 - 강준만 저. p266 참고.[27] 하지만 항목 보면 알 수 있듯이, 비판이 있는 조어이다.[28] 흔히 도가의 신비주의적 이미지 때문에 잊혀지기도 하지만, 도가 중 노자의 사상은 상당히 교묘한 통치술에 기반한 정치철학을 포함한다. 다만 도가 중에서도 장자의 노선은 노자와는 전혀 다른, 아나키스트에 가까운 쪽이다. 애초에 도가라는 분류 자체가 제자백가를 연구하는 후세인들이 멋대로 묶은 기준에 가깝다. 다만 노자를 전형적인 국가주의자라고 보기는 애매한게 국가나 통치자의 존재는 인정하되 그걸 백성들이 느끼지 않는, 즉 개인의 권리 침해를 하지 않는 국가를 지향했다는 점에서 자유의지주의자와 닮은 점도 많다고 볼 수 있다. 다만 노자식의 통치술로 인해 피통치자가 통치자의 존재를 못 느낀다고 해서 피통치자의 권리가 침해되지 않는다고 단정짓기도 힘들며, 오히려 피통치자가 자발적으로 통치자에게 복종하고 착취당하는 체제가 안정적으로 형성된다고 볼 수도 있다. 이러한 면에서 노자식 통치는 포퓰리즘적 국가권력을 논한다고도 할 수 있다.[29] 이러한 인식을 지적한 문장을 마르크스의 자본에서 인용하자면, "어떤 인간이 왕이라는 것은 다만 다른 인간들이 신하로서 그를 상대해 주기 때문이다. 심지어 그들은 그가 왕이기 때문에 자기들이 신하가 아니면 안 된다고까지 믿고 있다."[30] 다만, 기독교적 사유 내에서도 보편성보다 개별성과 실존을 더 중시하는 사고방식은 늘 존재해왔으나, 교단의 눈 밖에 난 관계로 이단으로 몰려 배척받은 경우가 많다. 대표적으로, 오컴의 면도날로 유명한 오컴 등이 주장한 "유명론"이나, 흔히 범신론으로 이해되는 스피노자의 존재론이 이러한 경향을 보인다. 또한, 실존주의적 사상 중에도 유신론적 전제를 통해 실존의 중요성과 자유를 논하는 사상들이 존재한다. 즉, 기독교와 국가주의의 연관성에 의문을 품으려면 기독교적 사고방식이 늘 국가주의적, 형이상학적 담론으로 통하지만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에 유념해야 한다.[31] https://theanarchistlibrary.org/library/fredy-perlman-the-continuing-appeal-of-nationalism[32] 이 때문에 사회주의자들 중에 "국가자본주의 이론"을 언급하는 자들이 존재하는 것이다.[33] 물론 대중은 사회주의를 이해할 만큼 똑똑하지 않고 부르주아 구조가 만들어낸 허위의식에 홀려있기 때문에 무엇이 해로운가를 결정하는 것은 전위대의 독단적인 권위다.[34] Chomsky, 2005, pp182-184[35] Tony Cliff, State Capitalism in Russia. 1974. 영국의 국제사회주의 계통에 몸담은 양반이다. 참고로 위 책은 국내의 다함께에서 '소련은 과연 사회주의였는가'라는 제목으로 한역본을 냈다.[36] 토니 클리프의 이러한 입장을 계승한 국제 공산주의 조직이 바로 국제 사회주의자 경향(IST)이며 한국의 노동자연대(구 다함께)가 이 IST에 소속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