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국악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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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fffff 국립국악원
國立國樂院
National Gugak Center}}}
설립 날짜
1951년 4월 10일
관할
문화체육관광부
전신
장악원
이왕직 아악부, 구왕궁아악부(공연 및 연주 부문)
주소
서울특별시 서초구 남부순환로 2364(서초동)
홈페이지
https://www.gugak.go.kr/
원장
김영운
전화번호
02-580-3300

1. 개요
2. 역사
2.1. 연표
2.2. 역대 원장
3. 연주단
3.1. 정악단
3.2. 민속악단
3.3. 창작악단
3.4. 무용단
4. 시설
4.1. 공연장
4.1.1. 예악당
4.1.2. 우면당
4.1.3. 풍류사랑방
4.1.4. 연희마당
4.2. 국악박물관
5. 산하기관
5.2. 국립남도국악원
5.3. 국립민속국악원
6. 여담
7.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파일:국립국악원 배치도.png

국립국악원의 배치도

문화체육관광부와 그 소속기관 직제 제58조(직무) 국립국악원(이하 "국악원"이라 한다)은 민족음악을 보존·전승하고, 그 보급 및 발전에 관한 사무를 관장한다.

국립국악원은 문화체육관광부 소속의 국립 예술 기관이다. 지번주소로는 서울특별시 서초구 서초동 700이고 예술의 전당과 같은 곳에 있다. 부산광역시국립부산국악원이, 남원시에 국립민속국악원이, 진도군에 국립남도국악원이 있다. 국립국악원장은 고위공무원단 가등급으로 보한다.

2. 역사[편집]


국립국악원 CI 변천사
파일:국립국악원 CI(1996-2010).svg
파일:국립국악원 CI(2010-2015).svg
1996-2010
2010-2015[1]
파일:국립국악원 CI(2015-2016).svg
파일:국립국악원 CI.svg
2015-2016[2]
현재

현재 국립국악원이 전통음악과 무용을 관장하는 기관이라면, 미군정 시기까지는 국립국악원의 자리를 '구왕궁아악부(舊王宮雅樂部)'[3]가 차지하고 있었다. 당시 구왕궁아악부의 대표 이주환(李珠煥)이 아악원을 국영으로 해달라는 청원서를 국회에 제출했고 제115차 국회 본회의에서 만장일치로 통과되었다.[4]

이로써 1950년 1월 19일. '국립국악원직제'가 대통령령 제271호로 제정과 동시에 시행되었다.[5] 아래는 국립국악원직제의 제정판.[6]

제1조 문교부장관 감독하에 국립국악원을 둔다.

제2조 국립국악원은 민족음악의 보존과 발전을 도모함을 목적으로 한다.

제3조 국립국악원에 좌의 공무원을 둔다.

학예관

사무관

주사

서기

전항의 공무원의 정원은 별도 대통령령으로 정한다.

제4조 국립국악원에 필요에 따라 촉탁을 둘 수 있다.

제5조 국립국악원에 원장 및 악사장을 둔다.

원장 및 악사장은 학예관으로써 보한다.

제6조 원장은 문교부장관의 명을 받어 원무를 통리하며 부하공무원을 지휘 감독한다.

악사장은 원장을 보좌하고 원장이 사고가 있을 때에는그 직무를 대행하며 주악에 관한 사항을 담당한다.

촉탁은 상사의 명을 받어 전문사항의 연구 및 교수에종사한다.

제7조 국립국악원에 서무과 및 장악과를 둔다.

각 과장은 학예관 또는 사무관으로써 보한다.

제8조 서무과는 각부처직제통칙 제3조 제2항 제1호 내지 제12호에 게기한 사항을 분장한다.

제9조 장악과는 음악, 무용의 연구와 연주, 악사양성 기관 및 국악보급에 관한 사항을 분장한다.

제10조 본령 실시에 관하여 필요한 사항은 문교부장관이 정한다.


그러나 이 법이 1950년 1월 19일에 공포됐음에도 불구하고 6.25 전쟁으로 연기되어 1951년 4월 10일에 국립국악원이 정식 개원하였다. 그리고 위에서 언급된 전 구왕궁아악부 대표 이주환이 국립국악원의 초대 원장으로 취임했다.


2.1. 연표[편집]


일시
주요 연혁
비고
1950년 1월 19일
국립국악원직제 제정

1951년 4월 10일
부산시(현 부산광역시) 동광동의 한 목조 건물에서 개원.

1953년 9월
서울특별시 종로구 운니동에서 새로 자리잡음.

1955년 4월 1일
국악사양성소(國樂士養成所) 개설.
[7][8]
1961년 4월 10일
개원 10주년 맞이.

1964년 3월 16~21일
요미우리 신문사의 초청으로 나고야, 오사카, 도쿄 등지에서 최초로 해외 공연.

1971년 4월 10일
개원 20주년 맞이.

1979년
대악후보(大樂後譜) 1권 발간.

1981년 4월 10일
개원 30주년 맞이.

1987년 12월 28일
서울특별시 서초구 서초동(현 위치)으로 이전

1991년 4월 10일
개원 40주년 맞이.

1992년
국립민속국악원 개관.

1995년 2월 23일
국립국악박물관 개관.

2001년 3월 2일
국악방송국 개국.
[9]
2001년 4월 10일
개원 50주년 맞이.

2004년
국립남도국악원 개관.

2008년 10월 28일
국립부산국악원 개원.

2011년 4월 10일
개원 60주년 맞이.

2021년 4월 10일
개원 70주년 맞이.



2.2. 역대 원장[편집]


  • 소남 이주환(1951~1961)
  • 관재 성경린(1961~1972)
  • 죽헌 김기수(1972~1977)[10]
  • 녹성 김성진(1977)[*권한대행 ]
  • 송방송(1978~1980)
  • 천영조(1980~1983)
  • 한만영(1983~1985)
  • 이승렬(1986~1993)
  • 김광락(1993~1994)
  • 이웅호(1994~1995)
  • 이성천(1995~1997)
  • 한명희(1997~1999)
  • 윤미용(1999~2003)
  • 김철호(2003~2009)
  • 박일훈(2009~2011)
  • 이동복(2011~2013)
  • 김해숙(2014~2018)
  • 임재원(2018~2021)
  • 고기석(2021)[*권한대행 ]
  • 김영운(2021~)


3. 연주단[편집]



3.1. 정악단[편집]


개원과 동시에 창단되었으며, 말 그대로 정악에 속하는 궁중음악, 제례악 등을 연주한다.


3.2. 민속악단[편집]


1981년 창단되었으며 판소리, 민요 등 성악 장르의 음악과 산조, 시나위 등 기악 음악을 연주한다.


3.3. 창작악단[편집]


2004년 창단되었으며, 창작곡, 양악 오케스트라 협연 등의 기존 국악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여 연주한다.


3.4. 무용단[편집]


민속무용, 정재, 창작무용 등 분야를 막론한 한국 무용의 대부분을 선보이며, 특히 궁중 정재 분야에서 독보적인 무대를 자주 보인다.


4. 시설[편집]



4.1. 공연장[편집]



4.1.1. 예악당[편집]


일반적인 공연장의 대공연장에 해당되는 곳으로, 국악관현악, 소리극, 가무악 종합극 증 규모가 있는 공연을 올리는 곳이다. 658석 규모이며 빈야드 구조가 일부 차용된 3층 객석으로 이뤄져 있다. (다만 1층과 2층은 서로 맞닿아 있고 서로 넘나들 수 있기 때문에 3층이 2층 같은 느낌이다.) 천장의 음향반사판이 방패연 모양인 것도 특색이다.


4.1.2. 우면당[편집]


당초 일반적인 공연장의 소극장에 해당되는 포지션이다. 당초 1988년 개관당시부터 운영되었고, 2017년에 대대적인 개보수로 자연음향 기반의 소공연장으로 개선되었다. 230석 규모의 단층 공연장이다.


4.1.3. 풍류사랑방[편집]


2013년에 기존의 예악당 왼편 기슭에 새로 지어진 연희풍류극장에 위치한 130석 규모의 실내공연장으로 옛 선비들의 풍류방을 컨셉으로 잡고 신발을 벗고 들어가게 되어 있고 온돌이 깔려 있어서 이름처럼 사랑방 같은 느낌이 들게 만든 것이 특징이다. 또한 객석 의자는 비단 소재로 만든 좌식 의자인 것이 더욱 특별한 포인트. 덕분에 예악당, 우면당보다 훨씬 더 잠이 잘 온다.


4.1.4. 연희마당[편집]


풍류사랑방의 옥상부터 우면산으로 이어지는 공간에 위치하고 있는 야외 공연장으로 마당놀이 공간처럼 연희를 펼칠 수 있도록 만든 곳이다.


4.2. 국악박물관[편집]


광장 왼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1995년 개관하여 여러 국악유물과 악기를 전시하고 있는 국악 전문 박물관이다.

5. 산하기관[편집]



5.1. 국립부산국악원[편집]


항목 참조.

5.2. 국립남도국악원[편집]


링크
전남 진도군 소재. 520여석 규모의 국악전용극장인 "진악당(珍樂堂)", 1,200여명 수용 가능한 원형 야외 공연장인 달빛마당, 120명정도의 인원이 소규모 공연과 여러가지 행사를 할 수 있는 야외 소공연장인 별빛마당을 갖추고 있다.

5.3. 국립민속국악원[편집]


링크
전북 남원시 소재. 예원당은 560석의 객석과 무대로 이루어져있으며, 예음헌은 100석의 소공연장이다. 그외 전시관 및 자료실 등이 있다.

6. 여담[편집]


  • 국악을 전공하는 전공자라면 누구나 국립국악원 전속 연주단원이 되는 것을 1순위 목표로 삼지만,[11][12] 정단원(상임단원)은 고사하고 객원(인턴)단원으로 들어가는 것조차 하늘의 별 따기만큼 어려움이 현실이다.[13] 이렇다 보니 서울 본원 및 각 지방 분원의 정단원이 되려면 전국에서 손꼽히는 최고의 기량을 지녀야만 치열한 경쟁률을 뚫고 입단할 수 있다.

  • 그러나 전술하였듯 국악원에서 정단원으로 재직 중인 단원들은 본인들의 연주 실력만큼은 가히 대한민국 으뜸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매우 실력이 좋기 때문에, 대학 교수로 차출되는 경우는 생각보다 자주 있는 현상이다.[14]

  • 어린이 교육용 애니메이션 핑크퐁의 일부 컨텐츠 제작을 지원했는데 반응이 매우 좋은 편이다. 특히 국악에 대한 전문 교육을 많이 받지 못하고 자란 세대인 지금의 학부모 세대에 국립국악원 존재의 가치를 제대로 보여줬다는 호평이 나올 정도. 물론 중독성(?) 넘치는 컨텐츠를 만든 제작사 덕분일 수도 있다.

  • 국립극장이 예전과 달리 2000년대 이후 상주단체가 줄면서 국립창극단, 국립국악관현악단, 국립무용단만 남게 된 뒤 대관보다 자체제작 비중을 높이면서 전통예술을 기반으로 한 제작극장으로 방향을 잡게 되었고, 거꾸로 국립국악원은 창작악단을 창설하는 등 단순한 옛것의 원형보존을 넘어서 창조적 발전까지 영역을 넓히면서 두 기관 사이에 영역이 어느 정도 겹쳐 있는 상황이 되었다. 다만 실제 올리는 공연 등을 통해 볼 때 두 기관의 역할이나 방향이 약간은 구분되기는 하는데, 국립극장은 전통예술을 기반으로 하되 새로운 흐름 역시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창작 쪽에 무게감이 더 실려 있다면, 국립국악원의 경우 새로운 창작을 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전통의 유지와 계승에 더 중심을 두고 있다는 차이가 있다.


7. 관련 문서[편집]


[1] 2010년에 영문 명칭을 변경했다.[2] 로고를 새롭게 개편한 것까진 좋았는데, 바로 다음해에 정부 상징 적용 대상에 포함되어버렸다.[3] 조선시대 장악원(掌樂院)의 후신에 해당하는 일제강점기 이왕직 아악부(李王職雅楽部)의 후신.[4] 《국악진흥 발전방안 연구 - 국악원을 중심으로》 중 13쪽., 김규원(저자), 전병태(저자), 사영미(저자)., 한국문화관광연구원 발행., 2016년 8월 15일에 확인함. ISBN: 978-89-6035-266-7[5] 국립국악원직제 부칙 <대통령령 제271호, 1950.1.19> 본령은 공포한 날로부터 시행한다.[6] 국가법령정보센터 연혁법령에서 국립국악원직제 2016년 8월 15일에 확인함.[7] 초대 신입생 30명을 모집하여 개소됐다. 원래 중학 과정 3년이었으나 1972년, 국립국악고등학교로 승격되면서 중학교 과정이 폐지되었다가 1991년, 국립국악중학교가 개교되면서 중학교 과정이 부활하였다.[8] 당시 국악사양성소는 국립국악원의 부설 기관 개념으로 분류가 되었기 때문에 양성소 시절 당시 국악원 원장이 양성소 소장 및 국악고 교장을 겸직하였던 때가 있었다.[9] 개국을 한 것이지 설립이 아니다.[10] 이후 국립국악고등학교에서 교장 직무를 수행하게 되었다.[11] 국립 단체 단원에게 보장되는 안정적인 수입(월급), 국가 전속 예술가라는 명예 등 단원들에게 주어지는 수많은 기회와 혜택들 때문이다.[12] 물론 절대적인 봉급만 놓고 따지면 그리 봉급이 센 편은 아니지만, 사회적인 지위에서 만큼은 국립국악원의 정단원이 압도적으로 높은 편이기에 국악을 전공하고 있는 많은 취준생들이 원하고 있는 자리이다.[13] 이렇게 입단이 어려운 또다른 이유는 국립국악원 단원들은 국가공무원법을 적용받아 만 60세까지 정년을 보장받는 준공무원 신분이기 때문이다. 즉 본인이 자발적으로 퇴직을 하거나, 대학 교수 등 교육계로 차출되는 등 특수한 상황이 아닌 이상 스스로 나가는 사람이 거의 없다 보니 정단원 자리가 잘 나지 않기 때문. 따라서 국악원에서 객원단원만 했다고 해도 상당한 경력으로 인정을 해준다.[14] 물론 대학 교수 임용이 국악원 정단원 입단보다 훨씬 더 어렵다. 기량은 물론이고 교수가 될 수 있을 만한 정도의 상당한 경력이나 연륜 등도 요하는 것이 대학 교수이고, 임용에 성공할 경우 문화체육관광부의 고위공직자로 가지 않는 이상 대학 교수는 정말로 정년까지 근무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국악원 입단 시험 따위는 안드로메다로 날려버릴 정도로 교수 자리가 나지 않는다. 하지만 현직 교수들의 경력들을 보면 어떤 악단이든 국악원 단원 출신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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