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극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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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극단
National Theatre Company of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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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단
1950년
공연장
소극장 판
백성희장민호극장
명동예술극장
단장
김광보
예술감독
관련 링크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공식 홈페이지 온라인 극장

1. 개요
2. 연혁
2.1. 태동기
2.2. 부활기
2.3. 분리기
3. 상연작
3.1. 1950년대
3.2. 1960년대
3.3. 1970년대
3.4. 1980년대
3.5. 1990년대
3.6. 2000년대
3.7. 2010년대
3.8. 2020년대
4. 기타



1. 개요[편집]


대한민국 최초의 국가 전속 극단으로, 1950년 설립되었다. 2010년 7월에는 법인화되었다.


2. 연혁[편집]



2.1. 태동기[편집]


1950년 1월 장충동 국립극장이 지어지기 전의 국립중앙극장이었던 부민관[1] 에서 '신극협의회'가 창단한 것이 시초다. 설립 초연극은 친일반민족행위자 유치진의 <원술랑>.[2] 한국전쟁이 터지고 나서는 국립극단도 마찬가지로 부산으로 피란, 그곳에서 간간히 명맥을 유지하였다. 당시 국립극단은 '신협'과 '극협'이 따로 존재하는 구조였는데, 한국전쟁 이후 이 둘을 합쳐 국립극단을 개편했다. 국가 기관이므로 서울 환도 이후에는 연간 9천만 [3]의 예산을 받아 활동했으나, 당시 급격하게 밀려오던 해외 영화의 붐과 적자가 결합해 문교부 극립극단운영위원회는 1959년 극단의 해산을 결정하기에 이른다.


2.2. 부활기[편집]


그러던 것이 1962년 단장 박진[4] , 부단장 이해랑의 필두로 다시 재결성 되었다.

국립극단 재결성 창립명단
단장
박진
부단장
이해랑
단원
변기종[5]
최삼
강계식[6]
고설봉[7]
옥경희
나옥주
진낭
백성희
박상익[8]
최성관
장민호
최명수
강애수
장훈
추석양[9]
조환
한은진[10]
정애란


설립 초연극은 버나드 쇼의 <세인트 존>. 이때 단원으로 함께 참가한 것이 원로 극인 백성희장민호다. 이때는 공보부의 주도로 이뤄졌다. 그러나 무리하게 진행된 설립으로 인해 예산을 확보하지 못해 한동안 공연을 할 수 없었을 뿐더러, 당시 보수한 국립극장에 냉방시설이 없어(!) 여름 공연을 진행할 수 없었다. 당시 쿠데타 이후 문화로 국민 시선을 돌리기 위해 졸속으로 진행한 것이 무리로 작용한 것.

그러나 이후 장충동에 국립극장이 개관하면서, 1972년 10월 17일 비로소 국립극단은 명동에서 남산으로 본부를 옮기게 된다. 이날 국립극장 개관 기념에 맞춰 국립극단은 <성웅 이순신>을 무대에 올렸다. 이후 왕성한 활동으로 명실공히 국내 연극문화의 선두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2.3. 분리기[편집]


이후 유인촌의 주도하에 재단법인이 따로 편성되면서, 종전 국립극장에서 서계동으로 이전한다.[11] 다만 원래 공연시설로 이용하던 곳이 아니라 국립극장에 비해 평가는 극악에 치닫고 있다.

2015년에는 명동예술극장[12]을 통합하여, 지금은 서계동(백성희장민호극장 및 소극장 판), 명동예술극장에서 공연을 올리고 있다. 국립극장에서도 공연했으나, 국립극장 레퍼토리시즌이 초창기에는 국립예술단체 모두를 대상으로 하다 차츰 산하단체만으로 집중하게 된데다, 국립극단 입장에서도 명동을 산하기관으로 만들어 굳이 그럴 필요가 없어지면서 국립극장 공연을 더 이상 진행하지 않는다.


3. 상연작[편집]



3.1. 1950년대[편집]


연도
극명
작가
1950
<원술랑>
유치진
1950
<뇌우>
조우
1953
<야화>[13]
윤백남
1957
<신앙과 고향>[14]
카를 쇤헤르
1957
<태풍경보>
코프민
1957
<발착점에 선 사람들>
이무영
1957
<인생차압>[15]
오영진
1957
<딸들은 자유연애를 구가하다>[16]
하유상
1958
<야화>
윤백남
1958
<우물>
김홍곤
1958
<가족>
이용찬
1958
<인생일식>
강문수
1958
<시라노 드 베르주라크>
로스탕
1958
<릴리움>
페렌츠 몰나르
1959
<젊은 세대의 백서>
하유상
1959
<나의 독백은 끝나지 않았다>[17]
박동화
1959
<대수양>
이광래[18]
1959
<뜨거운 양철지붕 위의 고양이>
테네시 윌리엄스

3.2. 1960년대[편집]


연도
극명
작가
1960
<안네 프랑크의 일기>
전혜린[19]
1960
<여인천하>
박종화
1960
<분노의 계절>
이종기
1960
<죄와 벌>
도스토옙스키
1961
<미풍>
하유상
1961
<해발 3천2백 미터>
장 베누와-레비
1961
<여당원>
서항석
1961
<태양을 향하여>
차범석
1962
<젊음의 찬가>
이용찬
1962
<동물원 가족>[20]
송일남
1962
<침종>
게르하르트 하움트만
1962
<산불>[21]
차범석
1962
<아리나의 승천>
하유상
1963
<세인트 존>
버나드 쇼
1963
<푸른 명맥>
이용찬
1963
<해풍>
박만규
1963
<결혼중매>
손톤 와일더
1964
<욕망>
이근삼
1964
<베니스의 상인>
셰익스피어
1964
<만선>[22]
천승세
1964
<순교자>
김기팔[23]
1965
<여성만세>
하유상
1965
<울어도 부끄럽지 않다>
제임스 리
1965
<바꼬지>
이재현
1966
<이순신>
신명순
1966
<그 길고 지루한 여름>
김병원
1966
<이민선>
김자림
1967
<세 자매>
안톤 체호프
1967
<밤과 같이 높은 벽>
전진호
1967
<사계절의 사나이>
로버트 볼트
1967
<이끼낀 고향에 돌아오다>
윤조병
1968
<북간도>
신명순[24]
1968
<환절기>
오태석
1968
<동트는 새벽에 서다>
김용락
1969
<여왕과 기승>
오태석
1969
<한산섬 달 밝은 날에>
이은상
1969
<환상살인>
정하연

3.3. 1970년대[편집]


연도
극명
작가
1970
<인종자의 손>
전진호
1970
<원술랑>
유치진
1970
<손달씨의 하루>
이일용
1970
<인조인간>[25]
카렐 차펙
1971
<신라인>
김경옥
1971
<달집>
노경식
1972
<환상여행>
차범석
1972
<포로들>
이재현
1972
<꽃상여>
하유상
1972
<송학정>
이재현
1973
<성웅 이순신>
이재현
1974
<활화산>
차범석
1974
<남한산성>
김의향
1975
<징비록>
노경식
1975
<고랑포의 신화>
윤조병
1975
<빌헬름 텔>
프리드리히 실러
1976
<함성>
김창활
1976
<손탁호텔>
차범석
1976
<1월 16일 밤에 생긴 일>
에인 랜드
1976
<페르귄트>
헨리 입센
1976
<북향묘>
이재현
1977
<초립동>
한노단
1977
<인생차압>
오영진
1977
<파우스트>
괴테
1977
<크리스토퍼빈의 죽음>
시드니 하워드
1977
<학살의 숲>
차범석
1978
<에밀레종>
함세덕
1978
<천사여 고향을 보라>
토마스 울프
1978
<흑하>
노경식
1978
<물보라>
오태석
1979
<객사>
이태원
1979
<돈 후안>
몰리에르
1979
<베케트>
장 아누이
1979
<무녀도>
하유상[26]
1979
<사추기>
오태석

3.4. 1980년대[편집]


연도
극명
작가

3.5. 1990년대[편집]


연도
극명
작가

3.6. 2000년대[편집]


연도
극명
작가

3.7. 2010년대[편집]


연도
극명
작가

3.8. 2020년대[편집]


연도
극명
작가
2020
영지[A]
허선혜
2020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
기군상
2020
화전가
배삼식
2020
스카팽
몰리에르
2020
발가락 육상천재[A]
김연주
2020
당신이 밤을 건너올 때
유혜율
2021
파우스트 엔딩
조광화
2021
X의 비극
이유진
2021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
기군상
2021
알려지지 않은 예술가의 눈물과 자이툰 파스타
김연재
2021
액트리스 원: 국민로봇배우 1호, 액트리스 투: 악역전문로봇
정진새
2021
당클매다
고동욱
2021
소년이그랬다[A]
한현주
2021
SWEAT 스웨트: 땀, 힘겨운 노동
린 노티지
2021
사랑Ⅱ LIEBEⅡ
박본
2021
만선
천승세
2021
코오피와 최면약
서현석
2021
로드킬 인 더 씨어터
구자혜
2021
더 나은 숲 Die besseren Wälder[A]
마틴 발트샤이트
2021
엔젤스 인 아메리카-파트 원: 밀레니엄이 다가온다
토니 커쉬너
2021
붉은 낙엽
토머스 H. 쿡
2022
엔젤스 인 아메리카-파트 투: 페레스트로이카
토니 커쉬너
2022
밤의 사막 너머
신해연
2022
이것은 어쩌면 실패담, 원래 제목은 인투디언노운(미지의 세계로, 엘사 아님)
김미란
2022
커뮤니티 대소동
이진엽
2022
금조 이야기
김도영
2022
소극장판-타지
강보름
2022
서울 도심의 개천에서도 작은발톱수달이 이따금 목격되곤 합니다
배해률
2022
기후비상사태: 리허설
전윤환
2022
청소년극 단막극 연작 [트랙터][A]
한현주, 허선혜, 나수민
2022
앨리스 인 베드 Alice in Bed
수전 손택
2022
스트레인지 뷰티 Strange Beauty
배요섭
2022
반쪼가리 자작
박성찬
2022
세인트 조앤 Saint Joan
조지 버나드 쇼
2022
극동 시베리아 순례길
정진새
2022
발가락 육상천재[A]
김연주
2022
스카팽
몰리에르

4. 기타[편집]


국립극단의 공연을 확인하거나 예매하려면 위의 홈페이지로 들어가는 것이 빠르고 편하다. 상주공연장은 백성희장민호극장과 명동예술극장(대형 공연)이고 간혹 국립극장에서도 공연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프로그램이 유동적으로 돌아간다.

예술의전당에 비해 청소년 및 대학생 대상 회원 등의 특별 제도는 없지만, 상시 할인을 해 주고 있어 학생이라면 부담없이 볼 수 있다. 애당초 예술의전당에 비할 바 못되는 정직하고 아름다운 가격대[27]40%의 어마어마한 할인까지 해 주니 가능한 일이다.[28] 또 공연마다 수량이 한정되어 있긴 하지만, 만 24세 이하라면 무려 15000원에 공연을 관람할 수 있는 푸른티켓 제도도 운영하고 있으니 적극적으로 활용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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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지금의 서울시의회 건물이다.[2] 당시 국립중앙극장의 극장장이 유치진이었다. 항복 이전에는 현대극장장이었는데, 그때에는 유치진만큼 연극에 조예가 깊고 활동이 많았던 연극인이 몇 없었다.[3] 1957년에 국립극단이 환도하였다. 당시 쌀 한 가마니가 15,000환 이상의 값어치를 했다.[4] 대한제국의 고관이자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를 지낸 친일파 남작 박기영의 차남으로, 양정고등학교와 일본대학교를 나왔다. 귀국 이후 조선총독부에 의해 친일 연극을 올린 친일반민족행위자다.[5] 1957년 당시 단장이었다. 18살부터 신파극단에 들어가 연극의 길을 닦은 연극인이다.[6] 지금의 숭문고등학교 전신인 경성실천상업학교를 나오고 유치진이 운영하던 현대극장에서 전속 배우로 유치진이 쓴 친일 작품 등지에 출연한다. 광복 이후에는 좌파 극단에서 활동하다 국립극단에 입단한다.[7] 남궁억 선생이 설립한 모곡보통에서 수학한 후 공무원 생활을 하다 연극계에 입문. 대한민국 역사상 최장 최다 작품 활동 배우 기록을 가지고 있다.[8] 연희전문 출신 배우로 신협과 극예술협회 초대 회원이었다.[9] 중학교 졸업 직후 한국 근대 최고의 작품 <혈맥>으로 데뷔. 개성있는 역할을 맡으며 대종상 특별공로상을 받았다.[10] 한국전력에 흡수된 경성전기회사에 근무하다가 영화를 보고 연극인이 되기로 했다고 한다. 이후 동아일보 연극경연대회 주연상을 받으면서 왕성한 활동을 전개했다.[11] 서울역 서부역에 위치해있다. 원래 수도방위사령부 수송대가 있던 자리였다.[12] 장충동으로 국립극장이 이전하면서 민간에 매각되어 증권사 등 다양한 용도로 쓰이다, 여러 사람들의 노력끝에 국가에 의해 다시 매입되어 2009년에 재개관하였으며, 2015년 이전까지는 정동극장과 같은 조직으로 묶여있다가 이때 국립극단으로 이관되었다.[13] 한국전쟁 발발로 대구문화극장에서 진행되었다.[14] 한국전쟁 직후 국립극단 서울 환도 기념공연.[15] 수능 기출 희곡으로도 유명한 <살아 있는 이중생 각하>의 개명한 제목이다. 1949년 5월 '극예술 협의회'에서 초연되었으나 별 주목을 받지 못하다가 1957년 극단 '신협'이 '인생 차압'으로 개명하여 공연하면서 대단한 관심을 끌었다.[16] 제1회 국립극장희곡현상모집 당선작[17] 제3회 국립극장희곡현상모집과 서울신문 희곡 부문에 당선되었다.[18] 김동인의 역사소설을 이광래가 각색한 것이다.[19] 안네 프랑크일기를 각색한 것이다.[20] 제6회 국립극장현상희곡 당선작[21] 한국 리얼리즘 연극의 수작으로 꼽히는 작품으로, 당시 발표 초연이었다.[22] 극작가 천승세의 연극 역작. 만선은 발표 이래 지금까지도 국립극단에서 주로 미는 레퍼토리 중 하나이다.[23] 김은국의 소설을 김기팔이 극본으로 각색한 것이다.[24] 안수길의 원작 소설을 각색한 것이다.[25] '로봇'이라는 단어의 어원으로 유명한 희곡이다. 당시엔 로봇을 번역할 수 없어서 <인조인간>이라고 번역했다.[26] 김동리의 원작 소설을 각색한 것이다.[A] A B C D E F 청소년극[27] 애당초 수십 명이 공연하는 오케스트라 특성이나 여러 기타 등등의 이해관계를 통해보면 국립극단보다 예술의전당이 공연 굴리기 부담된다. 해외 유명 아티스트가 오는 경우에는 수십만 원대 표값은 예사다.[28] 이렇게 보면 서계동 극장은 18,000원, 명동예술극장은 30,000원에 공연 관람이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