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복/일본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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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역사
3. 육군
3.2.1. 3식/6식 군복
3.2.2. 19식/26식 군복
3.2.3. 37식 전시복
3.3.1. 38식/45식 군복
3.3.2. 98식 군복
4. 해군
6. 여담


1. 개요[편집]


일본군의 군복을 서술한 문서이다.

일본 제국군은 해군과 육군으로 분류되며 공군이 육군과 해군 휘하의 항공대로서 존재했다.[1] 따라서 별도의 공군복이 존재하지 않는다.

2. 역사[편집]


메이지 유신으로 일본군이 생긴 이후 천황의 명령으로 프랑스군을 모방했다가, 1886년부터는 독일의 군복을 모방하기 시작하였다. 1905년 부터는 유럽 각국의 군복을 본받아 이후 독자적인 형태로 발전하게 된다. 단, 미합중국 해군이 1920년대까지 쓰던 장교 동근무복을 참고한 해군의 1종 군장 등 미군의 영향도 있다.[2]


3. 육군[편집]



3.1. 보신전쟁[편집]


파일:보신전쟁군복.jpg

보신전쟁 당시에는 막부와 신정부 모두 서양식 군복을 본따 변형시킨 일본식 군복을 입었으며 장교들은 완전한 서양식 군복을 맞춰 입기도 하였다. 서양식 세이버 군도는 거의 보급되지 않았기 때문에 사병 장교 할것 없이 일본도를 차고 다녔다.

이 시기의 일본군은 고깔 비스무리한 모자를 쓰고 다녔다. 높이가 상당히 높았는데, 원거리에서 적 사수들의 거리 식별을 어렵게 만드는 효과가 있었다고 한다.[3]

3.2. 메이지 시대[편집]



3.2.1. 3식/6식 군복[편집]



파일:일본군근위병.jpg

프랑스식 군복을 착용한 일본군 근위병


파일:늑골복고로.jpg

군인 시절 미우라 고로, 늑골복을 입고 있다.
보신전쟁이 끝나고 신정부가 설립되고 난 후 메이지 3년(1871년)에 새로운 군복이 채용되게 된다. 이전과는 달리 완전한 서양식 군복으로 탈바꿈했으며 케피와 늑골복[4] 등 프랑스의 영향을 짙게 받은 것이 특징이다.

군도 또한 구군도라고 불리는 세이버형 군도가 공식 채택되었다. 다만 일본도 검술을 배운 이들에게 세이버 군도는 불편하기 짝이 없었고, 이는 양손세이버라는 독특한 양식의 출현으로 이어진다.

3.2.2. 19식/26식 군복[편집]




이 문서는 나무위키의 이 토론에서 대한제국 군복과의 관계를 매우 비슷하다라고 표현하기(으)로 합의되었습니다.
타 위키에서의 합의내용이 더위키에서 강제되지는 않지만 문서를 편집하실때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JapaneseArmy1900.jpg
파일:명치19년식.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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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장교의 군복출처
1900년대의 일본군 육군 복장의 기본은 1886년(메이지 19년)에 제정된 메이지 19년식 군복이다. 보불전쟁에서 프로이센이 프랑스를 상대로 승리를 거두자 프랑스가 아닌 독일의 군제를 참고하자는 의견이 지배적이게 되었고 군복 또한 프랑스식에서 독일식으로 변경되었다.

노란색 테두리가 둘러진 검은색 군모[5]와 검은색 군복에 흰색 각반을 차는 것이 특징으로, 계급장은 견장이였으며[6] 소속 연대 번호를 기입하였다. 칼라장과 바지 세로선의 바탕색은 각 병과 별로 색이 달라 병과를 나타내었다.

여름에 입는 면 재질의 하복 또한 재정되었다. 백색이였으며 단추로 잠그는 동복과는 다르게 호크(걸단추) 형태였다. 군모는 동복의 것을 그대로 쓰되 백색 포를 덧씌워서 검은색 부분을 가렸다. 견장은 없었으며 ㅅ자 모양의 수장으로 계급을 표시했다. 의회단의 난 당시 영국군을 본따 백색에서 카키색으로 염색하였는데 이게 러일전쟁 당시 굉장한 효과를 발휘하면서 38년식 군복이 채택되는데 영향을 주었다.

한국 미디어에 나오는 청일전쟁, 동학 농민 혁명 당시의 "구한말 일본군"의 일반적인 복장이 바로 이것이다. 그 후 메이지 33년식, 메이지 37년식(러일전쟁 때의 전투복) 등 소소한 개정이 있었다. 기본적으로 대한제국군의 군복과 매우 비슷한 옷이라 헷갈리는 한국인이 있는데 상하의 군복은 계급장, 옷 장식등으로 구분할 수 있고, 일본에서 들여온 군복과는 다르게 군모는 독일 세창양행에서 수입해서 다른 요소와 확연한 차이가 난다.[7]

3.2.3. 37식 전시복[편집]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Young_Tojo.jpg

청년기 시절의 도조, 37식 전시복을 입고 있다.
1904년 러일전쟁이 발발하면서 37식 전시복이 채택되는데 대대적으로 보급되진 않아서 위의 26식과 혼용되어 사용되었다.

사병의 군복은 변화가 없고 장교의 경우 늑골복이 아닌 단순한 버튼형 상의가 도입되었다. 수장 또한 복잡한 오스트리아 매듭이 폐지되고 가로선과 단추의 개수로 계급을 표시하게 되었다. 군모 또한 케피모에서 독일식 정모로 형태가 변화하였다.

아무래도 장교의 복장이 너무 화려한만큼 제작 비용/시간이 많이 들기에 전시 상황에 알맞게 단순화한 것으로 보인다.

3.3. 다이쇼, 쇼와 시대[편집]



3.3.1. 38식/45식 군복[편집]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Kenpei.jpg
45식 군복을 착용한 육군 헌병.

러일전쟁까지 검은색 군복에 변화가 없다가 1905년에 38식 군복이 채택되고 이를 일부 개량하여 1912년에 45식이 채택되어 1930년(쇼와 5년)에 약간의 변경이 있은 후 1938년까지 이어진다. 두개의 군복은 각기 황토색과 카키색으로 구성되었는데, 이 황토색의 군복이 3.1 운동, 봉오동 전투, 청산리 전투 등을 다룬 미디어에서 한국인들에게 익숙한 일본 군복이다.

가쿠란과 흡사한 디자인으로, 차이나 칼라형 목깃에 후크로 잠그게 되어 있으며 계급장은 프랑스식 세로 견장[8]을 앞뒤 방향으로 길게 붙였고 목깃에는 병과마다 색이 다른 병과표지를 붙였다.[9] 또한 병과표지 위에 금속제의 숫자 클립을 부착해 연대 번호를 표시하였다.

군복 상의에 주머니가 추가된 것이 특징으로, 병사는 앞주머니 2개만 있었고 장교는 아랫주머니까지 더해 총 4개의 주머니가 있었다.[10]

원래 소매와 바지 측면에 붉은색의 얇은 선이 있었는데, 단순한 장식이였던지라 위장성 문제로 1922년 폐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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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트는 벨트가 달려 있지 않고 특이하게 후드를 달 수 있었다.


3.3.2. 98식 군복[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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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8년에 바뀐 98식 군복이다.

1938년에는 국방색으로 통일한 98식 군복이 채택되어 채용된다. 45식이 목을 잠그는 방식이라 중일전쟁을 치르면서 중국 남방지역에서는 덥고 답답하다는 불평이 들어와서 목깃을 목을 풀 수 있는 나폴레옹 카라로 바꾸고, 어깨견장 계급장을 폐지하고 옷깃에 계급장을 달고 병과표지는 갈매기 모양에 가슴 주머니 위에 달았다.[11]장교용은 카라를 두가지 용도로 쓸 수 있었는데, 단추를 끝까지 잠그고 카라의 걸단추까지 다 잠구면 45식처럼 차이나카라 형태의 정복이 되고 걸단추와 첫번째 단추를 풀면 더운 지역에서도 쓸 수 있는 셔츠카라의 전투복이 되었다. 병사용은 국민복처럼 일반적인 셔츠카라를 하고 있었다. 태평양 전쟁을 다루는 미디어에 나오는 후줄근한 일본 군복이 바로 이것이다. 1945년 무렵이면 이거마저 만들 돈 아낀답시고, 국민복에 부착물만 바꿔 육군복으로 쓸 수 있다는 규정을 만들어 신병 등에게 군복을 지급 안 하는 꼼수까지 부렸다.

1943년엔 메이지 37식 전시복과 비슷한 형태의 수장이 장교복에 추가되는데, 채택 이유는 사기 증진을 위해서라고 한다. 한마디로 겉멋 때문이라는 것.

여기에 들어가면 년도와 지역에 따라 다른 군장들도 볼수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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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식 군복과 세트로 '국민모'라는 모자가 지급되었다. 우연의 일치인지 같은 추축국이던 나치 독일에선 역시 개리슨모에 유연한 챙이 달린 형태인 M43 야전모를 전투모로 채택했었다. 이건 국민복에도 세트로 쓰던 것인데, 국민복을 그대로 전투복으로 쓰듯 민간인 모자를 그냥 전투모로 쓸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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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개리슨 모에 접히는 챙을 달아놓은 만큼 반으로 잘 접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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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양 전쟁 때는 작전 지역 기후가 워낙 덥다 보니 이렇게 드림을 달아 목이나 후두부, 뺨 부분의 햇빛도 가리게 했다. 제법 햇빛 가려주는 효과가 있었는지 당시 일본군 장병들은 이 모자를 쓴 채 90식 철모를 쓰기도 했다. 태평양 전쟁 당시 일본군 하면 생각나는 드림 달린 철모다. 개구리 중사 케로로에서 케로로를 비롯한 케론인들이 쓰고 다니는 모자가 이 국민모를 만화적 그림체로 그린 것이다.


군복 착용 영상[12]

철모는 90식 철모를 썼다.

장화의 경우 이렇게 생겼다.

전투화는 장교, 부사관 등 간부와 기병, 헌병 병과는 가죽장화를, 일반 병사는 단화에 권각반을 착용하게 했다.

4. 해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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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일러스트에서는 하사관이 하복에 백단화를 신고 있는데, 이것이 고증오류라는 지적이 있다. 일러스트에 따라 하사관은 하복에 흑단화를 신는 것으로 묘사된 경우들도 있다.[13] 간혹 장교도 하복에 흑단화를 신는 것으로 그려놓은 일러스트들이 있는데 이런 경우는 확실히 고증오류일 듯. 영화 도라 도라 도라에서는 하사관은 하복에 흑단화를 신는 것으로 재현되었다.(영화 초반 야마모토 이소로쿠가 연합함대 사령장관으로 취임하는 장면) 같은 영화에서 미국 해군 CPO가 하정복에 백단화를 신는 것으로 재현된 것과는(영화 후반부 공습이 시작될 때 군악대장) 대비된다. 현대 해상자위대의 조(부사관)들은 하복에 흑단화를 신는다. 일본해군의 경우 육전대가 존재했기에 육전대 군복도 있다. 육군과는 크게 다르지 않지만 철모에 이 그려진 것이 포인트다.

해군의 경우 동계용 1종군장과 하계용 2종군장으로 나뉘며 각각 검은색, 흰색이다. 해군 수병모의 경우 '페넌트'라는 끈을 묶었다. 파일럿들은 스카프를 매기도 했는데 전투기가 굉장히 춥기 때문이라고 한다.

1943년에는 육상 전투복인 육전의와 유사한 디자인의 황록색 해/육상 전투복인 제3종 군장이 도입되었고, 기존 제1, 2종 군장은 정복으로만 쓰게 된다. 지팡구 16권 표지의 사관용 3종 군장 육전 소요가 늘어나 함정과 육상에서 함께 입을 수 있는 전용 피복 소요가 제기된 점, 사관용 1, 2종은 옷깃이 목을 감싸는 가쿠란 형태라 불편했던 점 등이 도입 사유다. 하사관과 수병용은 녹색 셔츠만 받쳐 입고, 사관용은 검정색 넥타이를 추가로 착용했다.

해군 장교의 하정복은 거의 세계 표준이나 다름없는 영국 해군 하정복을 본따서 만든 것이다. 반면 동정복은 영국 해군의 더블버튼 재킷이 아니라 가쿠란 형태의 재킷을 사용했는데, 이는 1920년대까지 쓰인 미합중국 해군 장교용 동근무복에서 따온 것이다. 장교용의 동계용 1종군장이 불편하다는 의견이 있고 전세계적으로 더블 버튼 형태의 오픈 칼라 상의가 장교용 동근무복으로 정착되는 추세에 따라 개정하려 하였으나, 도고 헤이하치로 제독이 "이 옷을 입고 러시아를 이겼다"며 반대하여 흐지부지 되었다고 한다. 더블 버튼 형태의 오픈 칼라 재킷은 밑단이 긴 예복으로만 쓰였다. 그 외에 단추를 다 채우는 형태의 대례복[14]도 존재했다. 대례복을 착용할 때는 모자도 19세기 이각모를 썼다.


5. 계급장[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일본군/계급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6. 여담[편집]


천황일본군의 두 가지 계급(해군 대원수, 육군 대원수)을 가지고 있어서 군복을 둘 다 받았는데, 육군을 방문할 때는 육군 대원수 복장으로, 해군을 방문할 때는 해군 대원수 복장을 착용한다. 유럽의 전통이다. 영국, 스페인, 네덜란드 등등 유럽 군주국의 군주들도 그렇게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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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다만 이건 당시의 기준으론 이상한 일이 아니다. 미국도 제2차 세계대전 당시엔 해군 육군별로 항공대가 있었다. 같은 공중전이라도 땅 위를 날아다니며 싸우는 것과 바다 위를 날아다니며 싸우는 것은 엄연히 별개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정식으로 미 공군이 설립된 건 2차대전 이후다. 대부분의 유럽 국가들은 해군항공대의 세력이 미약했으므로 제1차 세계 대전 중에 공군을 창설했지만 해양국가인 미국과 일본은 해군항공대의 세력이 컸기 때문에 육항과 해항의 갈등으로 공군의 성립이 늦었다.[2] 일본군의 세로형 견장은 미군이 아닌 프랑스군을 본딴 것이다. 애초에 남북전쟁과 헌대 미군 예복의 세로형 견장은 프랑스군에서 유래한 것이다.[3] #[4] 정면의 장식이 갈비뼈를 닮아 늑골복이라고 불렸다.[5] 단, 장교와 근위사단 소속 병사는 빨간색 테두리의 군모를 썻다.[6] 단, 장교는 견장이 아닌 수장으로 계급을 나타내었다.[7] 일본군과 대한제국군이 매우 비슷한 군복을 착용한 이유는, 1895년 ‘陸軍服裝規則’을 칙령으로 정한 이후 대한제국은 일본 육군의 조장 이하 병졸이 사용하는 복장을 사실상 차용하였고, 아관파천 이후 대한제국을 선포하는 동시에 군사제도를 정비하면서 육군의 복장 규칙 역시 개정하였으나 반일적인 기조와는 별개로 여전히 군사적인 부분에서는 일본을 많이 참고하였기 때문에 군복 또한 일본군의 것을 계속 모방하였다.[8] 미군도 예복에 이 견장을 채택하고 있다.[9] 보병-빨간색, 포병-노란색, 기병-녹색, 헌병-검은색, 항공-파란색, 공병-다갈색, 치중(보급)-남색, 경리-회색, 군악-곤색, 위생(의무)-진남색, 수의-보라색, 법무-백색이다.[10] 규정상 아랫주머니 2개는 주머니덮개가 없어야 하지만 현존하는 유물과 당대의 사진들을 보면 대부분은 덮개가 있다. 병사들과 달리 장교들은 군복을 사제로 맞춰 입었기 때문에 규정에 크게 어긋나지 않는 선에서 커스텀이 어느정도 가능했다. 그래서인지 저 4개의 주머니 이외에도 작은 주머니들이 추가된 형태도 가끔 보인다.[11] 1940년 폐지.[12] 3분 44초에 군모에 철모를 쓴 모습이 보인다.[13] 다만 위 일러스트에서 구두끈과 재봉선이 묘사되지 않은 것으로 보아 단화가 아닌 다른 종류의 신발을 묘사한 것일 가능성도 있다.[14] 대례복(大礼服(タイレイフク)은 나라의 중대한 의식에 참가할 때 입는 예복 내지 제복을 의미한다. Court uniform; Court dress; Court uniform and dress; Jap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