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사독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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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1. 개요
1.1. 사회의식
2. 대한민국의 군사독재
2.1. 대한민국 군사독재의 잔영
3. 기능
5. 군국주의와의 차이점
6. 군사독재 목록
6.1. 아시아
6.1.1. 동아시아
6.1.2. 동남아시아
6.1.3. 남아시아
6.1.4. 서아시아
6.2. 유럽
6.2.1. 남유럽
6.2.2. 서유럽
6.2.3. 동유럽
6.3. 아메리카
6.4. 아프리카
7. 관련 문서
8. 장르 작품의 군사독재



1. 개요[편집]


軍事獨裁 / Military dictatorship

쿠데타를 통해 행정부입법부군부 세력이 장악한 정부 형태를 이르는 말.

대한민국의 경우 정부 수립 이후 역사적으로 크게 두 차례의 군부가 존재했기 때문에 제3공화국 ~ 제4공화국박정희 정권을 군부 내지는 유신정권(4공), 전두환제5공화국신군부라고 부르기도 한다.

본 문서는 민주정에 대비되는 독재 체제로서 근현대의 군사 독재를 다룬다.[1] 중남미에서도 20세기에 쿠데타로 집권한 군사정권 독재가 횡행하여 스페인어훈타라는 단어에 아예 군사정권이라는 뜻이 추가되었다.[2]


1.1. 사회의식[편집]


많은 사회 구성원이 공화주의, 민주주의를 받아들일만큼 계몽되지 못한 경우, 당장 사회적 강제력을 가진 군부가 정권을 잡는다. 이집트아프리카의 많은 군사독재 정권이 여기에 해당한다. 정상적인 국가가 모종의 사태로 일반인들의 정부를 구성하지 못 할 정도로 무너진다면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강제력과 무력을 지니고 있는 군부가 정권을 잡을 수도 있기는 하지만, 현대에는 국가 체제가 그 정도 수준까지 무너지는 일이 거의 발생하지 않기에 이런 사례는 별로 없다.

또는 사회적으로 엘리트가 매우 부족한 상황에는 군사교육을 통해 어느 정도 배운 군인들이 그나마 통치에 적합한 엘리트 중 하나이다. 실제로 제2차 세계 대전 직후 제3세계에서는 군인들이 직접 정치에 나서는 것에 대해서 지금처럼 부정적이지 않았다.

1952년 이집트에서 가말 압델 나세르가 이끄는 군부 세력이 아랍민족주의를 내걸고 쿠데타로 정권을 장악한 이후 1960년대까지 수십여 개 후진국에서 군사정권이 들어섰는데, 이들은 대부분 반(反) 외세, 민족주의 성향으로 대중들에게 초기에는 상당히 긍정적인 평가를 받기도 했다.[3]

제1세계 한국에서도 1961년 5.16 군사정변이 터졌을 때, 장준하 같은 상당수의 지식인들이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고, 일부는 박정희가 만든 민주공화당에 참여하기도 했다. 4.19 혁명이승만과 면담한 학생 대표들이 "2년 정도 군정을 해서 북한의 침입에 대응하고, 사회 안정을 꾀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기도 했다.


1.2. 국제정세[편집]


후진국의 자원 상황이 강대국의 이권과 이어지는 경우, CIA 같은 강대국 첩보기관들은 해당 국가에 반란 세력을 준동시키고 국가문제를 터뜨려서 정권의 혼란을 유도한다. 정권이 약해지면 그 자리를 강대국의 입김을 받은 군부가 치고 올라온다. 중동, 남미, 개발도상국의 몇몇 군사독재 정권이 여기에 들어간다.

북한과 국경을 마주한 대한민국, 중국에 맞서는 대만의 경우처럼 이웃에 명확한 적대 세력이 위치한 경우에도 군사정권이 들어서기 쉽다. 전쟁의 우려가 높은 사회에서는 사회 구성원들의 암묵적 동의 하에 징병제가 시행되는 것처럼, 군사독재 정권 역시 이런 암묵적 동의 혹은 필요악의 개념으로 받아들여지는 경우가 있다.

민주정권 하에 통제되는 군대가 보다 효율적인 군사력을 지닐 수 있지만, 달리 말하면 선진적인 인프라를 구축하지 않은 이상 이러한 조건을 가지기 어려우므로 차선으로 군사정권이 들어서 전쟁 위협에 대비하는 방식이다. 이러한 군사정권은 대개 방어를 위한 성격을 가진다. 그러나 이러한 군사독재 정권 역시 장기화될 경우 극도로 권위주의적 분위기가 형성되어 개인의 자유나 언론의 자유가 완전한 민주정만큼 향상되기 힘들어지고, 전체적인 사회가 경직화되어 인권 탄압 위험에 빠지는 것도 사실이다.[4]


2. 대한민국의 군사독재[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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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상이용사회의 5.16 지지행렬
대한민국의 권위주의 정부 집권 기간은 6.25 전쟁 기간 3년 및 1958년~4.19 혁명[5] 및 1970년대 중반 ~ 1987년 6월 민주 항쟁의 15년을 합하여 20년 정도로 여겨지고 있지만 실제로 군사정권이 시작된 것은 5.16 군사정변을 통해 제2공화국이 무너진 1961년부터이다. 1960년대의 경우, 직접 선거를 통해 군인 출신의 인물이 대통령으로 당선된 것인데다 고문 사건이 없었기 때문에 해당 기간을 독재로 치지 않는 경우가 흔한데, 이 경우 10월 유신 이후의 15년간을 실질적인 군사독재로 여긴다.

박정희 정부는 우선 2년간 국가재건최고회의를 거친 뒤 대통령 직선제를 채택했고 정부 출범 이후에는 경제개발에 전력투구하여 상당한 성과를 거두며 가시적인 경제개발의 성과로 국민들의 지지[6]를 이끌어내었다. 실제로 국가재건최고회의직접 선거 방식의 제5대 대통령 선거을 진행했고, 여기서 박정희가 승리, 대통령에 취임하는 절차를 밟음으로써 당대 집권의 명분은 충분한 것으로 여겨졌다. 박정희 정부는 1969년 3선 개헌으로 임기를 연장하는 등의 권위주의적 행보를 보이기도 했지만, 1970년대 초까지는 보통 비자유민주주의 국가로 분류되는 정도다. 물론 당시에도 군인 출신의 박정희가 정부수반이었고 비자유민주주의 체제 역시 권위주의의 일종으로 분류되므로 군사독재로 칭하는 것이 아주 틀린 표현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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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유신 공포 3년 기념식
1972년에는 한국식 민주주의라 자칭한 친위 쿠데타10월 유신이 공포되어 사실상 박정희 대통령의 종신집권을 위한 제4공화국이 수립된다. 제4공화국5.16 군사정변 직후의 국가재건최고회의, 제3공화국 군사정권의 연장선상에 있었지만, 단지 비자유민주주의 체제였던 이전과는 달리 독재 체제임이 명백해져 이 시기 대한민국은 세계적으로 권위주의 군사독재 정권으로 분류되었다.

1979년 10월 26일, 김재규 당시 중앙정보부장이 박정희 대통령을 시해하며 유신정권이 붕괴하게 되고 10.26 사건 이후 한국 국민들은 유신헌법의 폐지와 정치적 민주화를 요구하며 군사정권의 종식을 기대했다. 최규하 대통령도 12월 8일 비상조치 9호를 해제해 그간 금지됐던 개헌 논의를 허락하며 이에 화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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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 12월 12일(제4공화국) 중앙청
그러나 곧 제5공화국의 서막을 연 12.12 군사반란과 이듬해의 5.17 내란으로 전두환을 위시한 신군부 세력은 하나회라는 군내 사조직을 통해 군권과 국가 통치권을 모조리 장악하였고, 박정희 대통령 사후 민주화의 열망에 가득찼던 야당 정치인들과 국민들, 학생들은 이에 반발하였다.

신군부는 이들의 반발을 무마하기 위해 광주 5.18 민주화운동을 본보기로 진압하여 정통성 문제를 일축하였다. 그러나 야당과 국민들의 민주화 요구는 식을 줄 몰랐고 결국 1987년 전국적인 6월 항쟁과 함께 미국의 압박까지 들어오자[7] 6.29 선언을 통해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받아들였다.[8]

김대중의 사면복권, 각종 자유화 조치 등을 시행하면서 제도적인 민주주의가 정착되었고 이를 통해 겉으로만 민주주의를 표방하던 한국에 진정한 민주주의가 뿌리내릴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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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김일성 유일체제의 시작
한편 북한1956년 8월 종파사건으로 김일성파와 갑산파를 제외한 타 계파가 숙청되면서 김일성 일가의 독재 체제를 성립하는데 성공하였다. 초기에는 권력 안정을 위해 경제 발전에 힘을 썼으나, 1960년대 무리하게 군사력을 증강시키는 과정에서 사실상의 병영국가로 전락하였다.

하지만 이 과정 속에서도 조선로동당조선인민군의 군 인사권과 검열권을 장악하고 있었으며, 선군정치 시절에도 조선인민군은 단지 김정일의 사병에 가까웠기 때문에 그저 문민 수령 독재가 군정의 모습을 취했을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북한은 군국주의 국가, 병영국가라고는 할 수 있지만 군사독재와는 거리가 있다.


2.1. 대한민국 군사독재의 잔영[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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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 영정에 거수경례하는 육사 총동창회 인원
제3공화국부터 제5공화국에 이르는 군사정권 시기, 대한민국은 세계사에 손꼽히는 고도성장과 산업화를 이룩했으나 한편으로 적지 않은 부정적 잔재도 남겼다. 1961년 5.16 군사정변 이후 민주화(1987년)에 이르기까지 민중은 상당 기간 군사주의의 영향력 아래 놓여 있었기 때문이다.

군사독재를 한국의 압축 성장과 연관지어 옹호하는 경우도 많다. 요컨대 군사정권이 국민의 자유를 억압했으나 동시에 강력한 통치는 고속 성장의 원동력이 되었다는 것이다. 비단 대한민국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독재정권 시절 경제가 성장한 국가의 국민들은 해당 통치 시기에 대한 향수를 느끼곤 한다. 해석에 따라 크게 견해가 갈리지만 언제나 상당한 논란을 남기는 대목이다.[9][10]


3. 기능[편집]


군사 독재 정권은 결여된 정통성을 확보하고자 여러 사회적 문제 요소에 무력을 동원한다. 구(舊) 집권층과 반대 세력, 범죄조직제1 목표로 말살되며 이로 인해 일시적인 사회 안정을 불러온다.

물론 군사 독재 정권의 새로운 집권자들이 새 기득권으로 변하고 군사 독재 정권에 반대하는 사람 역시 반대파로 몰려 숙청당하며 수많은 인권 탄압이 발생한다. 또한 외세 침략, 민족 분쟁 같이 국가 존속에 위해가 되는 상황이 권위주의적인 방법을 통해 억제된다. 같은 맥락에서 일부 사례지만 저돌적인 리더십을 이용하여 경제 발전을 꾀하기도 한다.









그러나 위에서 서술했듯이 한 인사나 한 집단의 단독 집권이 장기화되면, 자연스레 투명한 국가 운영이 불가능해진다. 부정부패가 늘어나고, 오직 무력에 의해 모든 정책이 수립되면 국가 존속에 위기가 온다.


3.1. 군정[편집]


전쟁을 통해 전승국 군대가 패전국이나 그 식민지를 점령하고 그 지역에 정부(군정청)를 세우는 경우. 대한민국에서 군정이라는 단어는 군정청, 군정기라는 용어와 함께 이를 이른다.



4. 계급[편집]


쿠데타를 일으킬 경우 상당한 병력이 필요하기 때문에 군사독재정권을 일으킨 자들은 장성급 장교인 경우가 많다. 당장 한국만 해도 쿠데타를 일으킨 박정희전두환 모두 당시 계급이 소장이었다. 여기서 더 올라가 군단장 이상이 되면 병력이 굉장히 흩어지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사단장급에서 가장 병력을 운용하기가 쉽기 때문으로 추정된다.[11]

다만 호르헤 비델라는 육군 중장 신분으로, 민 아웅 흘라잉은 육군 대장 신분으로 각각 군사반란을 일으켰다. 이 둘의 군사반란은 측근을 최대한 활용한 박정희전두환과는 달리 자신의 실병으로 반란을 일으켰다.

그러나 영관급 장교위관급 장교, 심지어는 부사관쿠데타를 일으켜 성공한 경우도 있다. 무아마르 카다피대령때 쿠데타를 일으켰고 더 이상 진급을 하지 않아 대령이 통치자를 가리키는 말로 바뀌었을 정도였다. 이집트가말 압델 나세르대위 때,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장악했다. 쿠바독재자 풀헨시오 바티스타중사로서 1933년 9월 지지자를 모아 쿠데타를 일으키고 마차도 정권을 무너트렸는데 이를 중사들의 반란이라고 부른다.


5. 군국주의와의 차이점[편집]


군국주의는 사실상 대외침략, 팽창주의를 전제로 한 군사 독재 정권에 붙이는 경향이 강하다. 따라서 추축국다에시 등은 군국주의라고 할 수는 있지만 정반대로 4~5공 시절 대한민국처럼 (명목상) 외부 세력에 대한 방어를 강조하는 군사정권은 군국주의라고 부르지 않는다.

또한 군국주의 국가들은 좌우 이념과 상관없이 대놓고 일당제를 겸하고 있었는데[12] 대한민국은 군사독재 당시에도 어느 정도 통제는 받고 있었지만 신민당 등 민주당 계열 야당이 있었는데다 동양방송처럼 언론도 어느 정도 구색으로나마 다양성을 가지고 있었으므로[13] 완전한 군국주의, 전체주의 사회라고 부르기는 곤란한 것이다.

이론적으로도 "군부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잡았다."는 사실만으로 군사 독재 정권이라 하는 거지 어떤 정치 체제를 선택하는지는 군부 마음이기 때문에,[14] 비록 군국주의스러운 기조가 사회에 어느 정도 자리잡기는 하겠지만 군사 독재 정권이라고 반드시 군국주의를 택하게 되는 것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이 때문에 군사 독재 정권과 군국주의는 그 개념이 일치하지만은 않는다.


6. 군사독재 목록[편집]


볼드체는 현재 군사독재 국가이다.


6.1. 아시아[편집]



6.1.1. 동아시아[편집]


<-2>{{{#!wiki style="margin: -6px -10px"
파일:5공화국 시작.jpg}}} ||
대한민국 제4공화국 전두환 대통령 취임

<-2>{{{#!wiki style="margin: -6px -10px"
파일:북한 3대 세습.jpg}}} ||
김일성 광장에 내걸린 김씨일가 3대 초상화
  • 고구려연씨 정권(대막리지)
  • 고려
    • 강조 정권[15]
    • 김훈(고려), 최질 무신정권[16]
    • 무신정권
    • 이성계 정권[17]
  • 북한[18]
  • 대한민국의 군사정권
    • 국가재건최고회의
    • 대한민국 제3공화국
    • 대한민국 제4공화국[19]
    • 대한민국 제5공화국[20]

<-2>{{{#!wiki style="margin: -6px -10px"
파일:장징궈시대 사진.jpg}}} ||
중화민국(대만) 장징궈 총통 집권기

<-2>{{{#!wiki style="margin: -6px -10px"
파일:천안문진압 사진.jpg}}} ||
덩샤오핑 군부에 의해 진압된 천안문 민주항쟁
  • 후한 말기의 군사정권
    • 하진 정권[21]
    • 동탁 정권
    • 이각, 곽사 정권
    • 조조 ~ 조비 정권
  • 당나라 후기 ~ 오대십국시대절도사 정권
  • 중화민국 북양정부
  • 장제스 ~ 장징궈 집권기의 중화민국
  • 마오쩌둥, 화궈펑 , 덩샤오핑 시대의 중화인민공화국[22]

<-2>{{{#!wiki style="margin: -6px -10px"
파일:1932 5.15 사건.jpg}}} ||
일본 제국 군부독재의 시작 5.15 사건
  • 무가정권
    • 헤이케[23]
    • 가마쿠라 막부[24]
    • 무로마치 막부
    • 오다 정권
    • 도요토미 정권
    • 에도 막부
  • 1932년부터 1945년까지의 일본 제국[25]


6.1.2. 동남아시아[편집]


  • 미얀마의 군사정권[26]
<-2>{{{#!wiki style="margin: -6px -10px"
파일:미얀마 진압군.jpg}}} ||
시민 진압을 위해 투입되는 미얀마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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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인도네시아 좌파대학살.jpg}}} ||
인도네시아 좌파 대학살

  • 태국의 군사정권[27]
<-2>{{{#!wiki style="margin: -6px -10px"
파일:태국 쿠데타 선언 2014.jpg}}} ||
2014년 태국 군부 쿠데타

  • 1963년부터 패망 직전까지의 베트남 공화국[28]
  • 크메르 공화국


6.1.3. 남아시아[편집]


  • 아프가니스탄[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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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탈레반 재집권.jpg}}} ||
아프가니스탄 이슬람 공화국을 전복시킨 탈레반

  • 노예 왕조[30]
  • 파키스탄의 군사정권
  • 방글라데시의 군사정권


6.1.4. 서아시아[편집]


  • 이라크의 군사정권[32]
    • 압둘 카림 카셈 정권
    • 압둘 살람 아리프 ~ 압둘 라흐만 아리프 정권[31]
    • 아흐마드 하산 알 바크르 정권
  • 시리아하페즈 알 아사드 정권[33]
  • 예멘의 군사정권
    • 북예멘[34]
    • 알리 압둘라 살레 집권기의 통일 예멘[35]


6.2. 유럽[편집]



6.2.1. 남유럽[편집]


  • 고대 로마의 군사정권
    • 로마 공화국의 군사정권
    • 로마 제국원수정[36]

  • 무솔리니피에트로 바돌리오 집권 하 이탈리아 왕국[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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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170120_FAS_mussolini.jpg.CROP.promo-xlarge2.jpg}}} ||
이탈리아 파시즘

<-2>{{{#!wiki style="margin: -6px -10px"
파일:스페인내전 사진.jpg}}} ||
스페인 내전



6.2.2. 서유럽[편집]


  • 영국의 군사정권
    • 잉글랜드 왕국시몽 드 몽포르 정권
    • 잉글랜드 연방[38]
  • 프랑스 제1공화국의 집정정부[39]
  • 항복 이전의 독일 플렌스부르크 정부 [40]


6.2.3. 동유럽[편집]


  •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휘하 벨라루스[41]
<-2>{{{#!wiki style="margin: -6px -10px"
파일:루카셴코 취임.jpg}}} ||
루카셴코 벨라루스 대통령 취임식

<-2>{{{#!wiki style="margin: -6px -10px"
파일:피우스트스키 군부.jpg}}} ||
피우수트스키와 휘하 군부 세력

  • 러시아의 군사정권
    • 알렉산드르 콜차크 집권 이후의 러시아국
    • 이오시프 스탈린 시대의 소련[42]

  • 호르티 미클로시 집권기의 헝가리 왕국(?)[43] 다만 헝가리는 1922년 이래로 헝가리 통일당의 일당 독재가 자행됐고 총리들도 문민 출신이라 군부가 권력을 줬다고 보긴 힘들다.
  • 이온 안토네스쿠 집권기의 루마니아 왕국
  • 니콜라에 차우셰스쿠 집권 시기의 루마니아 사회주의 공화국


6.3. 아메리카[편집]


  • 브라질 군사정권[44]
<-2>{{{#!wiki style="margin: -6px -10px"
파일:브라질 쿠데타.jpg}}} ||
시민을 공격하는 브라질 쿠데타 군인 (1964년)

<-2>{{{#!wiki style="margin: -6px -10px"
파일:아르헨티나 더러운전쟁.png}}} ||
아르헨티나 군부의 좌익 탄압

  • 후안 벨라스코 집권기의 페루[45]




  • 아우구스토 피노체트 치하의 칠레
  • 중남미 대부분의 국가에 들어섰던 독재정권들[46]


6.4. 아프리카[편집]


<-2>{{{#!wiki style="margin: -6px -10px"
파일:이집트 쿠데타사진.jpg}}} ||
  • 맘루크 왕조[47]
  • 현대 이집트의 군사정권
    • 가말 압델 나세르 정권
    • 안와르 사다트 정권
    • 호스니 무바라크 정권
    • 압델 파타 엘 시시 정권[48]
  • 무아마르 알 카다피 집권기의 리비아[49]
  • 1965년부터 1992년까지의 알제리의 군사정권[50]
  • 나이지리아의 군사정권[51]
  • 시아드 바레 집권기의 소말리아[52]
  • 멩기스투 하일레 마리암 집권기의 에티오피아
  • 수단의 군사정권[53]
  • 차드의 군사정권[54]
  • 무사 트라오레 집권기의 말리
  • 콩고민주공화국의 군사정권[55]
  • 중앙아프리카공화국의 군사정권[56]
  • 라이베리아의 군사정권[57]
  • 토고의 군사정권[58]
  • 야햐 잠미집권기의 감비아[59]
  • 이디 아민 집권기의 우간다[60]
  • 기니 군사정권
  • 말리 군사정권
  • 부르키나파소 군사정권
  • 니제르 군사정권
  • 가봉 군사정권


7. 관련 문서[편집]




8. 장르 작품의 군사독재[편집]


  • 가면라이더 시리즈 - 쇼커, 대쇼커
  • 강철의 연금술사 - 아메스트리스
  • 이누야샤[61]
  • 킹덤 - 춘추전국시대
  • 나루토
  • 기동전사 건담 시리즈 - 지온 공국, 티탄즈, 어로우즈
  • 과부들 - 희곡 아리엘도르프만
  • 드래곤볼 - 프리저 군
  • 배틀로얄 - 대동아공화국(총통)
  • 슈퍼전대 시리즈
  • 스타크래프트 - 테란 자치령[62], 댈람[63], 탈다림[64], 켈모리안 조합[65], 지구 집정 연합[66]
  • 원피스 - 세계정부, 천룡인, 해군, 흰 수염 해적단, 검은 수염 해적단, 백수 해적단, 빅맘 해적단
  • 은하영웅전설 - 구국군사회의, 이제르론 공화정부[67], 라인하르트 정권[68]
  • 진격의 거인 - 마레 제국, 예거파[69]
  • 헤일로 - UNSC[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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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전근대의 군정은 군정 문서 참고.[2] Junta Militar의 준말. 공교롭게도 스페인프랑코 정권 역시 전간기 스페인 내전으로 수립된 군사정권이었다.[3] 대표적인 인물이 지금은 최악의 독재자로 평가되는 리비아무아마르 카다피이다.[4] 혼합형 체제(hybrid regime, 외형적인 민주정권위주의가 결합한 체제)만 되어도 개인이 자유롭게 살기는 매우 힘들어진다.[5] 대표적인 공안사건이자 사법살인 사건인 진보당 사건이 일어났으며, 3.15 부정선거 역시 이 시기 일어났다. 3.15 부정선거 대하여 항거하다가 김주열이 최루탄 맞은 후 수장되었고, 이것이 들통나면서 4.19 혁명으로 이어졌다.[6] 혹은 최소한도의 묵인[7] 6월 항쟁을 진압하기 위해 계엄령을 선포하려 했으나 제임스 릴리 당시 주한미국대사청와대로 찾아와 '계엄령을 선포할 경우 한미동맹의 심각한 타격을 감수해야 할 것'이라는 본국의 경고장을 전달했다.[8] 해당 시기 전두환은 이미 직선제 개헌을 수용하려고 마음먹은 상태였으나 민주정의당 대통령 후보였던 노태우가 머뭇거리자 노태우를 압박하기 위해 계엄령 선포를 거론했다는 설도 있다. 대표적으로 MBC의 제5공화국 드라마에 이런 내용이 나온다.[9] 군사독재가 경제를 망가뜨린 예로는 아르헨티나호르헤 비델라가 있다. 그는 대통령 재임 이후 아르헨티나의 빈곤률을 4%에서 38% 수치로 증가시켰고 아르헨티나의 산업 기반을 붕괴시켰다.[10] 군사독재를 비롯한 독재 정권은 독재 하에서만 실현이 가능한 강경 정책이나 도둑정치를 추구하기에 경제 문제를 야기할 우려가 존재한다. 경제 발전은 국가 내부 사정과 외부 사정이 모두 발전에 유리하게 전제되어야 한다.[11] 다만 박정희전두환이 쿠데타 당시 소장이었다 해도 박정희는 2군 부사령관이란 실병력도 실권도 없는 자리, 전두환보안사령관으로 정보를 바탕으로 한 권력은 강하나 실전투병력은 많지 않은 자리였다. 이들이 쿠데타에 성공한 건 실병력을 거느린 영관급에서 준장, 소장급 장교들의 보스격의 위치에 있었던 것이 큰데 전두환의 경우는 되려 자신보다 계급이 높은 유학성, 차규헌, 황영시를 휘하에 두고 군사반란을 일으켰다. 전두환이 이런게 가능했던 이유는 전두환은 박정희를 최측근에서 보좌했던 것에 비해 유학성, 차규헌, 황영시는 계급은 높아도 박정희와는 거리가 있었기 때문이다.[12] 물론 이것도 다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독재에 대한 국민들의 반발을 억누르기 위해, 혹은 일당 독재 국가를 견제하려는 주변국의 의도를 잠재우기 위해 관제야당 형식의 명목상 다당제를 취하기도 한다. 대표적으로 지금 북한.[13] 제5공화국 때, 언론통폐합으로 방송국이 모두 공영화되긴 했지만 신문이나 잡지 등은 민간에서 계속 운영할 수 있게 해주었다.[14] 한국의 군사 독재 정권은 대통령제를 택하였으며 쿠데타에 성공한 후 주도 세력들은 예편하여 대통령이나 중앙정보부장(안기부장), 장관 등의 공직을 맡아 지배하면서 군인 출신이 집권하면서도 군부는 정부의 통제 아래 놓였다. 북한의 군사 독재 정권은 비록 쿠데타를 통해 집권하지는 않았으나 국가의 통치 근간과 정당성을 군대로서 갖고 선군정치 정책을 취하였다. 미얀마 같은 경우는 아예 군부가 대놓고 영향력을 행사하였다.[15] 다만 강조는 원래 문관이다.[16] 김훈 최질의 난을 일으켜서 약 4개월간 무신정권을 세웠다.[17] 1388년 위화도 회군으로 집권하여 군사독재를 하다가, 1392년에 고려를 멸망시키고 새로운 왕조를 개창했다.[18] 북한의 김씨 삼부자는 모두 대원수, 공화국원수 등의 군사 계급을 받았다. 다만 이쪽은 문민 독재세력이 군사독재의 방법을 사용하는 아주 독특한 형태라고 보기도 한다. 대단해보이는 군사 계급과 달리 이 셋은 현역으로 복무하지 않아 군사적 지식이 전무했기 때문.[19] 전두환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 포함.[20] 노태우 정부는 해당되지 않는다. 노태우 대통령 본인이 군부의 수뇌부였긴 했으나 국민투표(직선제)로 정당하게 당선되어 민주적 절차를 거쳤기 때문이다. 박정희 정부의 경우 5대 대선, 6대 대선, 7대 대선 3회간은 국민투표로 당선되긴 했으나 7대 대선은 금권선거(부정선거)가 있었고 8대 대선9대 대선에서 간선제로 당선되는 방식으로 독재를 했다.[21] 십상시의 난으로 인해 단명했다.[22] 마오쩌둥은 초대 국가주석이었지만 사퇴한 후 중국공산당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으로서 통치했고, 화궈펑과 덩샤오핑 역시 국가주석이 아닌 중군위 주석으로서 독재정권을 이끌었다. 덩샤오핑 이후에 집권한 장쩌민, 후진타오, 시진핑은 권력을 유지하는 핵심 직위가 중군위 주석이라는 점은 이전의 독재자들과 같지만, 대외적으로는 국가주석을 대표 칭호로 내세우고 있어서 애매하다.[23] 고려의 무신정권처럼 수도 교토에서 권력을 행사했으나 지방세력인 겐지한테 져서 멸망당했다.[24] 중앙정부인 헤이케를 타도했으며, 중심지를 쿄토에서 가마쿠라로 옮겼다.[25] 명목상으로는 천황을 중심으로 한 중앙집권적 입헌군주제 국가였으나 1930년대, 특히 5.15 사건 이후 군부가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침략전쟁을 주도하는 군국주의 국가였으며 수상이었던 도조 히데키 또한 현역 군인이었다.[26] 네 윈부터 시작해서 탄 슈웨까지는 뚜렷한 비전이 없는 이상한 경제정책과 극도의 폐쇄주의, 점성술에 의거한 화폐개혁 등으로 미얀마를 망쳐놨으며 민주화와 물가 안정을 요구하는 시위대와 승려들, 소수민족들에 대한 학살을 자행하기도 했다. 그런데 2021년 2월에 또다시 쿠데타를 일으켜 5년간 유지된 민선정부를 무너뜨리고 군사독재를 시작해 많은 미얀마 자국민들을 학살하는 등 폭정을 이어오고 있다.[27] 태국 입헌군주제의 시작부터가 1932년에 일어난 군사 쿠데타라서 쁠랙 피분송크람, 사릿 타나랏 등 여러 군사독재자들이 집권했다. 1992년민주화가 이뤄진 후 장기간 문민내각이 이어지며 군사정권이 과거의 유물이 되는 듯 했으나, 2006년 쿠데타로 인해 탁신 친나왓 내각이 붕괴되며 다시 군사정권이 수립되었다. 이후 민정 이양을 통해 다시 문민내각으로 복귀하는 듯 했으나, 2014년 쿠데타로 인해 잉락 친나왓 내각이 붕괴되면서 또다시 군사정권이 수립되었고, 그때 취임한 쁘라윳 짠오차 총리가 총리로 집권하였다. 그리고 또 현재는 세타 타위신이 총리로 집권하면서 17년 만에 문민내각으로 복귀하였다.[28] 11.1 쿠데타 이후 계속 군인 출신 대통령만 나오게 된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나라는 건국 때부터 1963년까지는 오히려 군 경력이 전혀 없는 관료 출신 독립운동가가 독재자로 등극해 군인 출신 독립운동가들을 탄압했던, 군사독재와는 정 반대의 나라였다.[29] 무장 군사단체인 탈레반 집권 시기.[30] 맘루크라는 노예병들이 쿠데타를 일으켜 수립한 왕조[31] 형이 사망한 후 동생이 권력을 승계했다.[32] 의외로 사담 후세인은 군인이 아니라 민간인 출신이라서 문민독재에 해당한다.[33] 바샤르 알 아사드는 계급만 원수인 문민이다.[34] 역대 대통령들이 모두 군사독재자였다.[35] 통일 이전부터 북예멘의 군사독재자로 군림했다.[36] 원수정 시대의 황제들은 공화정의 전통을 존중하는 척 하기 위해 라틴어군주를 뜻하는 렉스를 칭하지 않고, 로마군 최고사령관을 뜻하는 임페라토르원로원의 1인자를 뜻하는 프린켑스를 칭하며 통치했다. 그래서 원수정 시대의 로마는 완전한 군주제라기 보다는, 세습이 가능한 군사독재에 가까웠다.[37] 각각 이탈리아 대원수, 원수 직함을 가지고 있던 현역 군인이었다. 다만 피에트로 바돌리오는 이탈리아 항복 이전까지만 실권을 가졌다.[38] 올리버 크롬웰잉글랜드 내전을 승리로 이끌고 집권했다.[39] 집정정부의 수장인 나폴레옹 보나파르트1804년에 황제로 즉위하여 공화국의 독재자가 아닌 군주가 되었다.[40] 카를 되니츠 제독이 국가대통령으로써 당시 독일을 이끌었으나 이미 베를린조차 연합국에게 넘어간 상황이라 얼마되지도 않은 영역에 고작 며칠동안만 실권을 행사했다. 보통 군정에선 육군 측 장군이 독재자로 집권하는데 플렌스부르크 정부에선 특이하게도 해군 제독이 독재자로 집권했다.[41] 벨라루스군 원수 직함을 가졌다. 참고로 유럽 최후의 군부독재이다.[42] 스탈린은 원수 계급을 받고 현역 군인 신분으로 통치했다.[43] 없는 왕국섭정이자 바다 없는 나라해군 제독이라는 해괴한 칭호를 갖고 통치했다.[44] 과거사 진상 규명 시도를 통해 이웃나라 아르헨티나, 칠레, 우루과이의 군부정권과 다를 바가 없는 살육과 탄압을 자행하였다는 것이 드러났다.[45] 여타 중남미 군사정권들과는 달리 좌익 성향이었다.[46] 엘살바도르, 온두라스, 과테말라, 아이티, 파나마 등등 이들 국가엔 독립 후 극도의 정치적 혼란으로 수 차례나 군인 대통령이 등극했었다.[47] 인도의 노예 왕조처럼 맘루크라는 노예병들의 쿠데타로 수립된 왕조며, 여러 차례의 쿠데타로 정권이 교체되었다.[48] 과거 엘시시는 이집트 육군 소속의 5성 장교였으며, 2013년에 쿠데타를 주도하여 기존 정권을 축출한 이후, 자신이 직접 대선에 나가기 위해 이집트군에서 전역했다. 따라서 실질적으로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독점한 셈이였으며, 집권이후 이집트의 군인과 경찰의 공권을 대폭 강화하며 반정부 시위를 잔혹하게 진합하고 각종 언론을 검열하고 있다.[49] 그 전에는 왕정이었다.[50] 우아리 부메디엔의 쿠데타 이후 부테플리카에 이르기까지 알제리사회주의로 통치하며 이슬람주의 세력을 탄압했다. 이슬람 무장세력 또한 이에 대한 반발로 게릴라를 결성하여 무력항쟁과 테러를 벌였다.[51] 비아프라 전쟁 당시의 야쿠부 고원이 대표적이다.[52] 이 인간이 끝나자마자 소말리아는 전국 각지에서 실사판 북두의 권이 연출되게 된다.[53] 가파르 니메이리부터 '''오마르 알 바시르까지 이어졌고 바시르를 축출한 이후에도 쿠데타가 발생했다.[54] 이드리스 데비와 그의 아들인 마하마트 데비 이트노[55] 모부투 세세 세코부터 투치족 출신인 카빌라 부자까지[56] 프랑수아 보지제가 셀레카 반군에게 축출당한 이후 혼란이 격화되었고 그 결과 세계 파탄국가 3위에 랭크되었다. 참고로 1,2위는 남수단소말리아[57] 새뮤얼 케니언 도부터 시작해서 찰스 테일러까지 이르며 이들은 자국에서의 만행도 모자라 인접국 시에라리온의 내전에도 개입하였다.[58] 아버지 냐싱베 예아데마에게 아들인 포르 냐싱베가 세습했다.[59] 일개 중위가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잡았다. 이후 더이상 권좌를 유지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판단되자 국고를 몽땅 가지고 외국으로 도주해버렸다.[60] 이 인간의 집권 시절 우간다는 말그대로 생지옥이었다.[61] 시대가 각지의 군벌들이 난립한 일본 전국시대이다.[62] 반군 코랄의 후예 리더 아크튜러스 멩스크가 세운 제국으로 후에 그가 처단되고 아들인 발레리안이 집권하게 되면서 독재에서 벗어나 민주주의식 체제로 발전해나가고 있다. 하지만 자치령 군대의 주인은 황제임에도 자치령의 국군 통수권은 최고사령관 직책을 가진 에드먼드 듀크, 호러스 워필드와 같은 현역 군인들이 담당하고 있다. 현재 발레리안 정권에서도 제독 맷 호너가 담당하고 있고 통치 체제를 지원하며 황제와 함께 국가를 통치하는 2인자로써 위치해 있기에 엄연한 군사정권이다.[63] 사실 순수한 군사정권은 아닌데 무인 계급인 기사단의 세력이 강성하다보니 군사정권화 되었다. 기존 정치세력이 몰락하고 종족이 위기에 몰리면서 자연스럽게 군인 계급이 정치권의 주류가 된 경우. 대표적으로 사도가 기존의 심판관을 대신할 존재로 육성되는 기사단 소속 프로토스이다.[64] 매우 호전적이고 전투적인 집단이고 무력을 중요시하는 약육강식 사회라 전사들을 우대하고 학자들과 기술자들을 천대한다. '승천의 사슬'이라는 계급 제도는 라크쉬르라는 의식을 통해 하급자가 상급자에게 도전해 둘중 하나는 반드시 죽으며 승리할 시 하급자가 상급자의 자리를 차지할수 있는 합법적인 쿠데타 시스템으로 이루어져 있다. 말라쉬, 알라라크또한 라크쉬르를 통해 탈다림의 통치자인 군주의 자리를 차지했다.[65] 조합의 국가원수가 마-사카이라는 이름의 장군이다.[66] 파시즘 성향의 국가이며 통치위원회의 가장 상석을 군부 대표인 제라드 듀갈 제독이 차지하고 있다.[67] 민주주의를 대의로 내걸었지만 사정 때문에 실질적으로는 군사독재정권.[68] 립슈타트 전역을 계기로 사실상 몰락한 골덴바움 왕조를 접수했다. 이후 골덴바움 왕조를 완전히 멸망시키고 로엔그람 왕조를 연다.[69] 854년 시점 병단 출신 군인 프록 폴스타가 직접 지휘하는 예거파 군사정권파라디 섬을 점령했다.[70] 원래 인류 생활구역의 모든 행정권은 근본적으로 민주 문민정부인 UEG에 있고, UEG의 행정력이 아직 미치지 않는 외부 식민지에 하부기관인 UNSC가 군정을 실시하는 것이나, 인류-코버넌트 전쟁 당시 UNSC가 정권을 잡아 군사정권으로 전환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