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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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정승

태조 ~ 연산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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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정승
길창부원군(吉昌府院君) 익평공(翼平公)
권람
權擥


파일:권람초상화.jpg초상화

출생
1416년(태종 16)
한성부
사망
1465년 3월 11일[1] (향년 48 ~ 49세)[2]
(음력 세조 11년 2월 6일)[3]
한성부
봉호
길창부원군(吉昌府院君)
시호
익평(翼平)
본관
안동 권씨 (추밀공파)

정경(正卿)

소한당(所閑堂, 所閒堂)[4]
후주당(後週堂), 지재(止齋)
부모
부친 - 권제(權踶, 1387 ~ 1445)
모친 - 이준(李儁)의 딸
부인
영원군부인(寧原郡夫人) 고성 이씨(1410 ~ 1491)[5]
자녀
슬하 2남 8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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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남 - 권걸(權傑)
차남 - 권건(權健, 1458 ~ 1501)
장녀 - 청주 한씨 한서구(韓瑞龜)의 처
차녀 - 박사화(朴士華)의 처
3녀 - 신억년(申億年)의 처
4녀 - 남이의 처
5녀 - 안동 김씨 김수형(金壽亨)[1]의 처
6녀 - 신수근의 처 영가부부인(永嘉府夫人)
7녀 - 평산 신씨 신말평(申末平)의 처
8녀 - 민사건(閔師騫)의 처


1. 개요
2. 생애
3. 기타
4. 대중매체
5.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조선 전기의 문신, 정치가, 작가.

한명회, 신숙주와 함께 계유정난의 핵심 중 핵심이며 정난공신, 좌익공신에 올랐고 좌의정을 지냈다.


2. 생애[편집]


조선 좌명공신에 녹훈된 권근의 손자이고 세종정인지를 가르친 당대의 대학자 권우(權遇)가 그의 종조부이며 1416년(태종 16) 종1품 우찬성을 지낸 아버지 권제(權踶)[6]와 어머니 전의 이씨 이준(李儁)의 딸 사이에서 6남 3녀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아버지 권제가 술과 기생첩에 빠져 어머니와 형제들을 구타하자 이를 말리다가 본인도 폭행을 당했으며[7] 어머니를 버리자 가출하여 방랑하였다. 방랑하던 중에 한명회를 만나 같이 전국 유람을 하기도 했다. 친구가 된 한명회와는 조선의 관포지교라 불릴정도로 사이가 돈독했다고 한다.

그 뒤 진의부위(進義副尉:종9품 문관의 품계)로 있다가 1450년 식년시 문과에 응시하여 을과 1위로 장원 급제하였는데 이 때 한명회는 또 과거에서 떨어져 음서로 들어갔다. 사실 이 장원 급제는 문제가 있는데 본래 권람의 성적은 4위였으나 당시 1위를 한 김의정(金義精 또는 金義貞)의 아버지 김자강이 수군[8]의 아들이라 집안이 변변치 않고 명망이 없다는 이유로 당시 왕인 문종의 명에 의해 4위인 권람을 장원으로 올려 준 것.# 이 때문에 김의정은 석차도 을과 2위, 아원(亞元)으로 밀리고 관직도 현감(縣監:종6품)에 그쳤다.# 또한 이 때 2위였다가 3위로 억울하게 강등당한 사람이 이시애의 난 때 살해당한 강효문(康孝文)이다.

수양대군을 만나고 그 뒤로 한명회를 추천하여 함께 쿠데타를 모의하게 되는데 계유정난이 성공한 후에는 1등정난공신에 오른다. 그 후 세조가 즉위하자 세조의 각별한 총애를 받아 벼슬이 우찬성, 좌찬성, 우의정을 거쳐 좌의정에 이르렀으며 활을 잘 쏘고 문장에도 뛰어났으나 치부가 심해 여러 번 탄핵을 받았다. 세조 말년에 병을 이유로 관직에서 물러났고 1465년 병으로 죽었다.


3. 기타[편집]


  • 1456년(세조 2) 단종 복위 사건에 연루되어 사육신과 함께 처형된 김문기의 맏며느리[9] 권영금(權英今)은 당시 이조판서였던 권람 덕택에 사실상 노비 신세를 면했는데, 이는 그녀가 권람의 5촌 당질[10]이었기 때문이다. 사육신 집안의 다른 여성들처럼 권영금 역시 노비가 되었으나, 이를 본 권람이 그녀를 보호하기 위해 일부러 자신의 노비로 하사받았다고 한다.# 공식적으로는 권람의 노비가 된 것이지만 실질적으로 따지고 보면 당숙의 빽으로 풀려나 보호받은 셈이다.

  • 남이신수근[11]은 그의 사위들이다. 신수근은 권람의 차녀, 남이는 권람의 여섯째 딸과 결혼했다. 권람의 딸이 남이와 결혼할 때의 이야기가 설화로 알려져 있는데 일반 민중들의 남이에 대한 생각이 반영된 이야기이다.


4. 대중매체[편집]



  • 1994년 KBS2 드라마 <한명회>에서는 배우 김기섭이 연기했다. 덕분에 유튜브에 올라온, 권람이 한명회를 수양대군에게 소개하는 에피소드에선 '노태우(제4공화국)가 노태우(제5공화국)에게 전두환(제5공화국)을 소개시켜줬다'는 댓글이 흥하기도 했다.(...)

  • 1998년 KBS1 드라마 <왕과 비>에서는 배우 김갑수가 연기했다. 임종 직전에 신숙주에게 "한명회를 조심하게. 그 놈은 천하를 몇 번이고 뒤집을 놈일세."라고 경고한다.



5. 관련 문서[편집]


파일: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__CC.pn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3-11-14 15:20:04에 나무위키 권람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

[1] 율리우스력 3월 2일.[2] 연 나이 49세.[3] 세는나이 50세.[4] 그의 사위 신수근도 호가 소한당이다.[5] 이원의 4녀[6] 세종실록 108권, 세종 27년 4월 16일 기미 4번째기사의 권제의 졸기(卒記)를 보면 '총명하고 학문이 넓으며 말을 잘하고 세상일에 대해 말하기를 좋아하였지만 기생첩에 혹하여 제 처자식들에 대한 대접이 아주 야박해서 집안의 도가 바르지 못했기에 세상 사람들이 좋지 않게 여겼다'고 사관들에게 대차게 까였다. 권제는 1414년(태종 14) 알성시 문과에 을과 1등으로 장원 급제한 인물이었기에 재주는 확실히 뛰어났고 종1품 우찬성까지 지냈지만 행실은 어지간히 안 좋았던 것으로 보인다.[7] 가문의 흑역사안동 권씨 후손들은 이를 언급하지 않는다. 하지만 세조실록 35권, 세조 11년 2월 6일 계미 2번째기사의 권람의 졸기에 제대로 박제되었다.[8] 조선시대의 수군은 신량역천(身良役賤) 또는 칠반천역(七般賤役)의 하나로 꼽힐 만큼 신분상으로는 양인이었으나 일이 고되어 천한 계급으로 대우받았다.[9] 장남 김현석(金玄錫)과 혼인하였다.[10] 4촌 형 권담(權聃)의 장녀이다.[11] 연산군의 부인 폐비 신씨의 오빠이자 중종의 첫 부인 단경왕후의 아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