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오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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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대한민국의 전 법조인, 관료, 정치인.
2. 생애[편집]
1918년 경상남도 창원군 진전면(現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전면)에서 아버지 권영필(權寧泌)과 어머니 안동 김씨 김인옥(金仁玉)의 딸 사이의 1남 6녀 중 외아들로 태어났다. 마산공립상업학교와 일본 와세다대학 법학부를 졸업하고 와세다대학 대학원에서 법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2] 이후 일본 고등문관시험 사법과에 합격하였다.
8.15 광복 후 미군정기, 이승만 정부 때 법조인으로서 1960년까지 검사로 근무하였다. 1960년부터 1963년까지 경희대학교 법학과 교수를 역임하였다.
1963년 변호사 개업을 하였으나, 곧바로 박정희 대통령에 의해 법무부 차관에 임명되어 1965년까지 부임하였다. 1965년 문교부 장관에 임명되었다. 문교부 장관 재직 중이던 1965년 11월에는 당시 야당이던 민중당으로부터 여야 만장일치로 건의된 6.3 항쟁 관련 구속학생 석방 및 해임교수 복직안을 묵살하였다는 이유로 해임건의안이 제출되었으나 여당인 민주공화당의 반대로 무산되기도 했다. 1966년부터 1968년까지 법무부 장관으로 재임하였다.
2.1. 문교부장관, 해임건의안 가결[편집]
1968년 다시 문교부 장관에 임명된 이후 국민교육헌장 제정, 중학교 입시제도 폐지 등의 정책을 추진하였다. 그러던 중 1969년 4월 8일 신민당에 의해 대한민국 국회내 폭언 및 문교행정상의 문제를 이유로 해임건의안이 제축되었다. 민주공화당의 당명은 부결이었으나 예춘호, 양순직, 박종태, 김달수, 정태성 등 친 김종필계 민주공화당 국회의원이 당명을 어기고 동조하여 국회를 통과함으로써 해임되었다.
[070491] 국무위원(문교부장관권오병)해임건의의건(김영삼의원 외 35인)
1970년 다시 변호사 사무실을 개업하였다.
1971년 제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공화당 전국구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었다.
1975년 5월 7일 신문로2가 자택에서 위암으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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