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차니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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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아무것도 안하고 싶다. 이미 아무것도 안하고 있지만, 더 격렬하게 아무것도 안 하고 싶다.
"귀찮-"이라는 국어 형용사 어간을 어근 삼아 영어 접미사 "-ism"을 붙여서 만든 신조어. 영어로는 Lazism 정도 되겠다. 파생어로 귀찮음을 많이 느끼는 사람을 뜻하는 "귀차니스트"가 있다. 영어로 하면 Lazist 정도.
웹툰 스노우캣에서 등장한 뒤로 거의 일반명사화되었다. 다만 어디까지나 일반명사화에 공헌을 한 것이지, 가장 먼저 쓴 건 아니다. 누가 가장 먼저 썼는지에 대해서는 몇몇 주장이 있지만 근거가 불분명하다.
2. 설명[편집]
웹툰이나 인터넷 연재 소설들의 연중 사유 1위.[1] 잘 돌아가던 블로그가 문 닫는 이유가 되기도 하는 무서운 사상이다. 사상이라지만 전염성이 강하고, 분위기에 따라 불특정 다수에게 파괴적으로 번져 나가기 때문에 때때로 바이러스성 질병으로 비유되기도 한다. 그래서 나온 농담이 AGS(Acquired Gwichanism Syndrome, 후천성 귀차니즘 증후군).
현실적으로는 "현상유지 편향"(status quo bias)이라고 하여 누구나 어느 정도는 귀차니즘이 있지만, 이게 정신병적으로 심하게 진화하면 무기력증을 동반한 우울증이 되기도 한다.
이 때문에 "인류는 귀차니즘 때문에 망할 것이다."라는 우스갯소리도 있지만, 반대로 인류는 귀차니즘 하나 때문에 생활을 윤택하게 만드는 기술을 개발하고 발전시키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긍정적인 방향으로 가면 인간의 생활을 용이하게 하는 온갖 도구와 기술의 발달을 초래하지만[2] , 부정적인 방향으로 가면 개인적 몰락과 인류 발전이 정체되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지금은 한창 기술력이 하루가 다르게 발달하고 있는 중이라서 그렇게 보일 수도 있지만 언젠가 그 귀차니즘을 향한 기술적 특이점에 도달하게 되면 인류는 정말 아무것도 안 할 수 있을 것이고, 모두가 여가를 누리는 세상이 올 수도 있다.[3] 물론, 아직은 그렇게 되려면 많은 과정이 남아있다.
"시작이 반"이라는 관용구를 언급하면서 시작이라도 해보는 게 어떻냐는 말을 들으면, 귀차니스트들은 "반이 시작"이라고 뒤집어서 반이나 했는데 이제야 시작이냐며 귀차니즘을 합리화한다.
몸 상태가 매우 안 좋을 때 극한의 귀차니즘을 느낄 수 있다. 그래서 입원한 환자에게 가져다 줄 개인 소모품으로는 두루마리 휴지(애초에 이것은 화장실 전용이기는 하지만)보다 갑티슈, 치약 칫솔 세트보다 액상 구강세정제가 선호된다. 가뜩이나 아파서 몸 가누기도 귀찮은데 소모품도 사용하기 편한 것이 좋지 않겠는가. 환자들이 거동에 귀차니즘을 느끼는 것 또한 어찌 보면 회복하는 과정의 일부니 죄책감을 가질 필요는 없다고 여겨진다.
극단적인 예로 귀차니즘에 찌든 사람들을 보고 "그렇게 귀찮으면 왜 살아있냐?"라고 비꼬기도 한다. 그러면 대부분의 귀차니스트들은 어이가 출타해 말문이 막히거나, 그런 걸 생각하는 것도 귀찮다면서 웃어 넘어가는 부류가 있다.
라는 것이다.
3. 귀차니스트인 캐릭터[편집]
자세한 내용은 게으름뱅이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4. 기타[편집]
- 한국어도 영어도 아닌 단어임에도 불구하고 발음하기 어렵지 않으면서 묘한 맛이 있는 신기한 단어다. 그래서 널리 퍼진 걸지도.
- 유의어로 귀차니즘이 쓰이던 것과 비슷한 시기, 혹은 그보다 약간 빠른 시기에 '게으르니즘'(게으른 + -ism)이라는 신조어도 있었으나, 귀차니즘의 약진 때문에 현재는 사어가 되었다.
- "아깝다"와 마찬가지로 한국어와 일본어에는 둘 다 "귀찮다"라는 낱말이 있지만 영어에는 이에 직접 대응하는 낱말이 없다.[5]
- 귀차니스트들을 "게으르만족"이라는 표현으로 부르기도 한다. 이쪽은 보다시피 게르만족의 패러디.
5. 관련 문서[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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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실제로는 무언가 지나치게 많은 것을 접하게 되면서 차츰 무디어져 가고, 점점 높아지는 눈의 기준을 충족시키는 작품이 적어지면서 점점 무언가를 찾아서 보기가 힘들어지거나 어려워짐으로써 귀찮다는 걸 느끼게 되는 경우이다. 혹은 나이가 들어 체력적으로 육체 연령이 저하되고 의욕이 없어지면서 무언가 따로 하기를 귀찮아하게 된 상태, 혹은 지나치게 열정을 소모해 여러 가지 의욕이 고갈된 상태를 일컫는 수도 있다.[2] 예를 들어 라면을 비롯하여 조리 과정을 최대한 줄인 인스턴트 식품,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과 연락하기 위해 전보에서 전화로, 나아가 휴대전화에서 스마트폰까지 지속적으로 발전해 온 통신기기가 있다. 리모컨도 멀리 있는 전자기기를 쉽게 조작하려고 만들어졌다. 또 다른 극단적인 예로는 뭘 마실 때 잔을 들기도 귀찮았던 사람이 빨대를 만들었다는 설이 있다.[3] 구체적으로는 모든 인류가 일하지 않아도 의식주가 해결되고 뇌파를 통해 생각으로 명령을 내리기만 해도 되는 세상이다.[4] 출근, 밥먹기, 화장실 가기등등.[5] 딱 한 단어로 표현할 수 없을 뿐이다. "Can't be bothered"라고 하며, 표현의 특성상 cbb로 줄이는 일이 잦다. 사실 cbf가 더 흔한데, f의 정체는 -ed가 붙은 그 단어이다. 이 경우 번역하자면 'ㅈㄴ 귀찮' 정도가 되겠다.[6] 제사나 마을 행사 등으로 인해 남는 음식들을 처리하기 귀찮았던 백성들이 만들어낸 음식으로, 귀차니즘으로 만든 음식이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음식이 된 특이한 케이스. 위에 서술되어 있듯 근본적으로 인류의 발전 자체가 상당부분 귀차니즘을 동력으로 사용한 부분이 있는데 그 중 하나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