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레고리 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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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고리 펙의 주요 수훈 및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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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골든 글로브 시상식
파일:goldenglobe.png
남우주연상 - 드라마(영화)
제3회
(1948년)


제4회
(1949년)


제5회
(1950년)

레이 멀랜드
(잃어버린 주말)

그레고리 펙
(애정)


로널드 콜먼
(이중 생활)
제19회
(1962년)


제20회
(1963년)


제21회
(1964년)

막시밀리안 셸
(뉘른베르크의 재판)

그레고리 펙
(앵무새 죽이기)


시드니 푸아티에이
(들백합)





그레고리 펙
Gregory Pe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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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
엘드리드 그레거리 펙
Eldred Gregory Peck
출생
1916년 4월 5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디에이고 러호이어
사망
2003년 6월 12일 (향년 87세)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엔젤레스
국적
[[미국|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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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구
]]

신체
189cm
직업
배우
학력
샌디에이고 주립대학교
UC 버클리 영문과
활동
1941년 - 2000년
종교
가톨릭
가족
아버지: 그레거리 펄 펙(1886~1962)
어머니: 버니스 메이 에어즈(1894~1992)
배우자 그레터 쿠커넌(1942 결혼-1955 이혼)
배우자 베로닉 파사니(1955 결혼-2012 사망)
자녀 4남 1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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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남: 조너선 펙(1944~1975)
차남: 스티븐 펙(1946~)
삼남: 캐어리 폴 팩(1949~)
사남: 앤서니 "토니" 펙(1956~)
장녀: 시실리어 펙(1958~)

손주 5남 2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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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자: 이선 펙(1986~)
손자: 재커리 펙(1991~)
손자: 하퍼 대니얼 펙 볼(1999~)
손녀: 언딘 앨릭잰드러 펙 볼(2002~)
손녀: 머리서 펙(출생 미상)
손자: 하퍼 펙(출생 미상)
손자: 크리스터퍼 펙(출생 미상)


1. 개요
2. 생애 및 활동
3. 주요 출연 작품
4. 개인사
5. 여담



1. 개요[편집]


모든 배우들의 위엄있는 아버지.

- 스티븐 스필버그


펙은 배우들에게 있어서 성실과 정직의 아이콘이다.

- 커크 더글러스

미국영화 배우.

열정적인 태도로 단호한 행동을 실천하는 남성성 넘치는 권위나 사회 도덕과 전통적 가치의 대변인을 주로 연기해 전후 세대에게 울림을 주었다. 미국과 미국인이 도달할 수 있는 최상의 모습을 구현했던 하나의 상징으로 여겨진다. 많은 출연작들이 인간의 가능성과 사회 현실 사이의 복잡성과 모순, 가족의 중요성을 조명한다. 배우 본인과 거의 구분 할 수 없을 정도로 밀착된 인물들이 많았다. 거친 사내성을 강조한 커크 더글러스, 버트 랜캐스터와 같은 세대지만, 좀 더 나이대가 있는 게리 쿠퍼, 제임스 스튜어트와 함께 신사 부류로 묶인다.

아카데미상 수상 1회/후보 지명 4회, 골든 글로브 수상 3회/후보 지명 3회, 에미상 후보 지명 1회를 기록했다. AFI 선정 가장 위대한 남성 배우 12위에 등극했다.

활처럼 분명한 호를 그리는 눈썹이 특징이다. 라이프지는 "링컨처럼 사나이답고 윤곽이 뚜렷한 얼굴 생김새로 여성 팬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고 표현했다.

<로마의 휴일> 덕분에 한국에서도 인지도가 상당히 높다.


2. 생애 및 활동[편집]


어린 시절을 캘리포니아 러호이어에서 보낸 펙은 6살 때 부모님이 이혼한 뒤 어머니는 재혼한 방문판매원 새남편을 따라 여기저기 옮겨다니고 약사인 친부는 야근이 잦았던 탓에 한동안 친할머니 손에 컸다. 10살 때 로스앤젤레스의 세인트 잔 육군사관학교[1]로 보내져 4년을 보내며 자기수련법을 익혔으며 권위 있는 인물 존재의 사회적 중요성을 인지하게 됐다. 이후엔 아버지 밑에서 공립 고등학교를 다녔다.

주립 샌디에이고 교육대학[2]에 입학했지만 아버지의 열렬한 염원을 이뤄드리기 위해 의사가 되고 싶었기 때문에 1학년을 마치고 UC 버클리 영문학과와 의과준비과정[3]으로 편입했다. 그러나 학교를 다니던 중 연극 무대에 설 기회를 얻었는데 연극 특유의 가족이나 다름없는 공동체 분위기에 끌려 연기자가 되기로 결심하고 의과준비과정은 그만두었다.

1939년 대학을 졸업하고 이름을 엘드리드에서 그레거리(Gregory)로 바꾸고 뉴욕시로 향했다. 일 년 만에 순회공연에서 작은 역할들을 따내게 되었고 1942년 "The Morning Star"로 브로드웨이 데뷔를 해냈다.

펙이 출연했던 연극 대다수는 인기가 없어 금방 막을 내리곤 했지만 펙은 1944년 <영광의 나날>에서 블래디미어 역을 따내며 영화판에 데뷔할 수 있었다. 이 영화는 평단으로부터 차가운 반응을 받았지만 두 번째 주연작인 <천국의 열쇠>(1944)에서 과묵한 스코틀랜드 출신 선교사 연기로 아카데미상에 처음 후보 지명이 되었다.

곧 펙은 조셉 코튼보다 출연료가 낮다는 이유로 발탁된 앨프리드 히치콕의 <망각의 여로>(1945)로 당대의 섹스심벌이 되었다. <로마의 휴일>(1953)처럼 로맨틱한 역도 잘 어울렸다.

존 웨인의 배역을 이어받은 킹 비더 연출의 <백주의 결투>(1946)에서의 부도덕하고 차가운 인물, <황색 하늘>(1948)의 착한 무법자도 잘 소화해냈다. <권총왕>(1950) 역시 존 웨인을 위해 기획된 영화였지만 펙이 대신 받았다. <권총왕>(1950)에서 시대 고증에 걸맞는 풍성한 콧수염을 달았는데, 20세기 폭스 수장 스피어로스 P. 스쿠러스[4]는 그로 인해 펙이 제작사에 백만 달러의 손해를 입혔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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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각의 여로>(1945)
<권총왕>(1950)

그러나 무엇보다도 일리어 커잰이 연출한 <신사협정>(1947)의 필 그린처럼 도덕 신념이 확고한 인물상이 펙의 상징이었다. 완고한 한편 잘 보살피기도 하는 가부장상은 <정오의 출격>(1949), <모비 딕>(1956)이나 <나바론의 요새>(1961)같은 강인한 남성성으로도 이어졌다.

특히 <앵무새 죽이기>(1962) 이후 역할이 고착화 됐다. 작은 서부 시골마을 변호사가 겪는 개인 갈등과 비인간적 조건에 처한 타인을 향한 인류애를 통해 인종차별, 도덕, 정의의 문제를 강렬하게 풀어낸 작품이었다. 펙은 출연작 중 이 영화를 가장 좋아했는데, 아이들의 삶을 묘사하고 가족의 중요성에 방점을 찍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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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무새 죽이기>(1962)

1960년대와 70년대에 연기에 다변화를 주려고 노력한 결과 스릴러, 전쟁물, 서부극 출연이 많아졌다. 그 예가 <맥아더>(1977)와 나치 전범을 연기한 <브라질에서 온 소년>(1978)이다.

80년대엔 TV와 영화를 병행했다.

1991년 <케이프 피어>를 끝으로 연기 일선에서 거의 물러났으나 85세 때 소극장과 대학을 돌며 배우, 아버지, 유명인사로서의 삶에 대해 관객들과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2003년 87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3. 주요 출연 작품[편집]


  • 영광의 나날(Days of Glory), 1944 - 블래디미어(Vladimir) 역

너널리 잔슨, 조저프 L. 맹커위츠 대본.

  • 망각의 여로(Spellbound), 1945 - 의사 앤서니 에드워즈(Dr. Anthony Edwardes)/잔 밸런타인(John Ballantyne) 역
앨프리드 히치콕 연출. 심리 스릴러. 잉그리드 버그먼 출연.

  • 사랑의 결단(The Valley of Decision), 1945
테이 가넷 연출. 소니어 러빈 대본. 그리어 가슨, 도널드 크리스프, 라이어널 배리모어, 레저널드 오우언 출연.

  • 가장 특별한 선물(The Yearling), 1946

  • 백주의 결투(Duel in the Sun), 1946 - 류튼 "루트" 머캔레스(Lewton "Lewt" McCanles) 역
킹 비더 연출. 데이비드 O. 셀즈닉 제작/대본. 제니퍼 존스, 조셉 코튼, 릴리언 기쉬, 월터 휴스턴, 라이어널 배리모어, 찰스 빅포드 출연.
아버지가 불륜을 저지른 원주민 어머니를 쏴죽이고 교수형을 당해 졸지에 고아가 되어 텍사스의 먼 친척집에 맡겨지게 되는 메스티자 여성의 얘기다. 12월 31일 개봉.

  • The Macomber Affair, 1947 - 로버트 윌슨(Robert Wilson) 역
조운 베닛, 라버트 프레스턴 출연. 조울탠 코더 연출. 유나이티드 아티스츠 배급. 영국령 동아프리카의 케냐 배경.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단편 "The Short Happy Life of Francis Macomber"(1936) 원작. 4월 20일 개봉.

  • 신사협정(Gentlemen's Agreement), 1947 - 필 그린(Phil Green) 역
11월에 개봉했는데, 1947년 폭스의 최고 흥행작 중 하나였고, 1948년에도 전체 흥행 8위를 차지했다. 아카데미상 7개 부문에 후보로 올라 작품상, 감독상, 여우조연상을 타냈다. 일리어 커잰 연출. 11월 11일 개봉.

  • The Paradine Case, 1947 - 앤터니 킨(Anthony Keane) 역
필름 누아르. 앨프리드 히치콕 연출. 데이비드 O. 셀즈닉이 제작하고 벤 헥트와 함께 대본을 썼다. 런던 배경. 알리다 발리, 앤 토드, 찰스 코번, 찰스 로튼, 에설 배리모어, 루이 주르당 출연. 12월 29일 개봉.

  • 황색 하늘(Yellow Sky), 1948 - 제임스 "스트레치" 도슨(James "Stretch" Dawson) 역
서부극. 윌리엄 A. 웰먼 연출. 윌리엄 셰익스피어템페스트를 재해석했다.
1867년, 스트레치가 이끄는 갱단이 은행을 털고 데스밸리의 소금 사막[5]을 거쳐 유령 도시 옐로우 스카이("Yellow Sky")에 당도해 마이크(Mike, 앤 백스터 분), 금광 채굴자인 마이크의 할아버지를 만난다. 스트레치는 할아버지와 금광의 금을 반씩 나누기로 하나 도박사 두드(Dude, 리처드 위드마크 분)는 나머지 멤버들에게 전부 가로채자고 꼬드긴다.[6]

  • 정오의 출격(Twelve O'Clock High), 1949 - 프랭크 새비지 준장(Brigadier General Frank Savage) 역
전쟁영화. 헨리 킹과의 협업 1/6. 딘 재거아카데미 남우조연상을 탔다. 1998년 미국 의회도서관 영구 보존 영화로 등재되었다. 12월 21일 개봉.
1942년 제2차 세계 대전 아치버리(Archbury) 공군기지. 제918폭파단 지휘관 키스 대븐포트 대령(Colonel Keith Davenport, 게리 메럴 분)의 패배주의는 상급 지도자들 사이에서 전염되고 벤 게이틀리 중령(Lieutenant Colonel Ben Gately)도 예외는 아니다. 제8폭파부대 작전참모인 프랭크 새비지 준장이 이를 파악하고 부대 사령관인 소장에게 보고하면서 벤은 편대장(aircraft commander)으로 강등되고 프랭크가 후임으로 오게 된다. 한없이 풀어주던 벤과 달리 엄격하게 기강을 잡는 프랭크에게 모두가 불만을 품게 되는데...

  • 권총왕(The Gunfighter), 1950 - 지미 링고(Jimmy Ringo) 역
서부극. 헨리 킹 2/6. 너널리 잔슨 제작/대본 참여. 아카데미 원작상 후보에 올랐다.
서부에서 총 뽑는 속도가 가장 빠르다는 명사수 지미 링고는 자신을 죽여 명성을 얻으려는 총잡이들에게 매일 쫓기고 있다. 지미는 가상마을 케이엔(Cayenne)에 들려 8년만에 아내와 만나 예전엔 자신처럼 청부 살인업자였으나 보안관으로 지내는 친구 마크처럼 사람들이 자신을 모르는 캘리포니아나 아예 남아메리카로 가서 새 삶을 살고 싶다고 말한다. 아내는 성까지 바꿔가며 지미의 아내라는 사실을 감추며 살고 있으나 그가 1년간 바르게 산다면 생각해보겠다고 말하고 아들과 만나게 해준다. 하지만 아내의 부탁대로 아들에게 자신이 아버지라는 건 밝힐 수가 없는데...[7] 칼 몰든이 바텐더 역으로 출연했다.

  • 다윗과 밧세바(David and Bathsheba), 1951
헨리 킹 3/6.

  • Only the Valiant, 1951 - 리처드 랜스 대위(Captain Richard Lance) 역
기그 영, 란 체이니 주니어, 마이클 앤새라 출연. 윌리엄 캐그니 제작. 고든 더글러스 연출.

  • 킬리만자로의 눈(The Snows of Kilimanjaro), 1952
헨리 킹 4/6.


  • 나이트 피플(Night People), 1954 - 스티브 밴 다이크 중령(Lt. Col. Steve Van Dyke) 역
너널리 잔슨 제작/연출/공동대본. 도러시 스펜서 편집. 아카데미 원작상 후보에 올랐을 정도로 촘촘한 첩보 스릴러 구조가 호평 받는다. 20세기 폭스 제작/배급. 3월 12일 개봉.
연합군 점령하 독일이 배경이다. 서독에 주둔 중인 미국 CIA 소속 중령 스티브는 미국 지구의 헌병 사령관. 19살 상등병 잔 레더비(Cpl. John Leatherby)가 동독으로 납치를 당하자 잔의 아버지이며 아이젠하워 정부와 연줄이 있는 기업가 찰스 레더비(Charles Leatherby)가 미국 국방부와 헌병 사령관을 압박한다. 소련은 자기네 짓이 아니라고 부인하지만 스티브의 옛 연인인 동독 정보원 허피 호퍼마이어("Hoffy" Hoffmeir)는 소련측이 특정 서독인과의 교환을 원하는 것 같다고 귀띔하는데...

  • 회색 양복을 입은 사나이(The Man in the Gray Flannel Suit), 1956 - 탐 래스(Tom Rath) 역
너널리 잔슨 연출/대본, 대럴 F. 재넉 제작, 도러시 스펜서 편집. 제9회 칸 영화제 경쟁 부문에 진출했다. 프레드릭 마치의 아내 역으로 앤 하딩이 나온다. 4월 12일 개봉.
제2차 세계 대전 때 유럽 및 태평양 전장에서 육군 대위였던 탐은 현재 코네티컷 교외에서 아내 벳시(Betsy, 제니퍼 존스 분)와 살면서 맨해튼 비영리단체에서 글을 쓰며 생계를 꾸리고 있다. 탐은 이탈리아에 두고 온 연인 마리아(Maria, 마리사 파반 분)에 대한 기억과 PTSD로 고통 받는 중이다. TV 방송국 홍보부로 자리를 옮긴 탐은 자신에게서 죽은 아들을 떠올리는 방송국 창립자 랠프 합킨즈(Ralph Hopkins, 프레드릭 마치 분)와 교감하게 된다. 랠프의 아들은 제2차 세계 대전 때 장교 임관을 거부하고 사병으로 싸우다 사망했다. 곧 탐은 옛 전우로부터 마리아가 자신의 아들을 낳아 홀로 키우는 중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는데...


  • 아름다운 질투(Designing Woman), 1957 - 마이크 헤이건(Mike Hagen) 역
로맨틱 코미디. 빈신트 머넬리 연출. 덜로리스 그레이[8]의 마지막 영화 출연작이며, 조지 웰즈는 아카데미 각본상을 받았다.
포커를 좋아하며 노동자 계층과 어울리는 스포츠 전문 기자 마이크와 예술명사들을 대상으로 옷을 디자인하는 상류층 여성 머릴러 브라운(Marilla Brown, 로런 버콜 분)이 만난지 일주일 만에 결혼을 결심하지만 사는 세계가 너무 달라 충돌한다. 여기에 부패한 권투 프로모터 마튼 데일러(Martin Daylor)의 협박이 얽히면서 일이 더 꼬인다.


  • 브라바도스(The Bravados), 1958
헨리 킹 5/6.

  • 비수(Beloved Infidel), 1959
헨리 킹 6/6. 데버러 카 출연.



"The Plains(1851)" 챕터에서 프로 도박사로 나와 데비 레널즈와 엮인다.


  • 캡틴 뉴먼, M.D.(Captain Newman, M.D.), 1963

  • 비루먹은 말을 봐라(Behold a Pale Horse), 1964


  • 맥아더(MacArthur), 1977

프랭클린 J. 샤프너 연출. "악마의 씨", "스텝포드 부인들"로 유명한 아이러 러빈의 SF 스릴러 소설이 원작이다. 로런스 얼리비에이, 제임스 메이슨, 우다 하겐[9] 등 출연.



4. 개인사[편집]


알코올 의존증, 몇 차례의 불륜 등 문제가 없던 것은 아니지만, 인간성 좋기로 평판이 자자했다.

1942년 첫 번째 부인 그레터 쿠커넌과 결혼했다.

1945년 <망각의 여로>를 찍으며 역시 가정이 있던 잉그리드 버그먼과 불륜했다. 이를 1987년 피플지와의 인터뷰에서 직접 고백했다.

1952년 신문기자 베로닉 파사니를 만나 불륜 관계에 접어들었다. 파사니와의 첫 데이트 일화가 꽤 재미있다. 펙이 점심 식사 초대를 하자, 파사니는 굉장히 망설인 끝에 겨우 승낙했단다. 재혼 후 첫 데이트 신청을 왜 주저했었냐고 묻자 파사니는 그날 기자로서 매우 중요한 일이 있었다고 답했다. 바로 장폴 사르트르의 집에서 진행되는 알베르트 슈바이처와의 인터뷰였다. 이 말을 들은 펙의 대답은 "선택 잘 했네"였다.#

1955년 첫 번째 아내와의 이혼이 완료된 다음날 바로 파사니와 재혼했다.

1975년 장남 조너선 펙이 자살했다.

1986년에 태어난 손자 이선 펙도 할아버지처럼 185cm의 장신에 얼굴도 쏙 빼닮아 미남에 중저음의 목소리를 소유하고 있는데 배우로 활동하고 있다. 미국 드라마 "스타트렉: 디스커버리"에서 주인공 마이클 버넘의 의붓동생 스팍 역으로 출연해서 호평을 받았다.

1990년대에 넷째 아들 앤서니 "토니" 펙이 슈퍼모델 쉐럴 티그즈[10]의 세 번째 남편이었다.


5. 여담[편집]


  • 유명한 진보 성향이었다. 데뷔 5년차 때 매카시즘을 반대했으며 베트남 전쟁에 대해서도 비판적인 태도를 견지했다. 동시에 전장의 복잡성과 어려움에 대해서도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에 전쟁통 속에서 싸우고 있던 아들에게 지지를 표했다.
핵무기와 총기 무장에 대해서도 비판했다. 때문에 리처드 닉슨의 블랙리스트에도 올라갔던 적이 있다. 그러나 리버테리안찰턴 헤스턴과도 친하게 지냈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음에도 그 어떤 사정도 용인하지 않는 전면 낙태 금지나 여성의 사제 서품이 원천 봉쇄 돼있는 점 등을 직설로 비판하곤 했다.

  • 영화 예술 과학 아카데미의 회장을 역임했다.

  • 연기란 배우 개인의 인간성과 경험, 그리고 감정을 관객과 공유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배우가 닮은 점을 발견할 수 있는 인물이 좋은 역할이라고 생각했다.

  • 다양한 역할 연기보다는 자신이 해왔듯이 일정 영역 내의 배역들을 계속 자의식 없이 효과적으로 선보여서 관객들이 그 연기를 진실로 믿게 만드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험프리 보가트게리 쿠퍼를 그 예시로 들었다.

  • 가장 좋아하는 여배우로는 그레타 가르보, 그리고 함께 세 편을 작업한 에바 가드너를 꼽았다. 가르보는 메소드 연기를 초창기에 실현한 배우로 자신의 진실된 감정을 카메라, 그리고 관객과 공유하며 영화를 진짜라고 믿게 만드는 지성을 갖췄다고 평했다. 에바 가드너는 펙이 가장 친밀하게 지낸 여배우로, 같은 시골 출신이라 마음이 잘 맞았다고 한다. 가드너가 말년에 반신불수가 된 후 자살 충동에 시달릴 때도 얘기를 잘 들어주었다.

  • 가장 좋아한 남배우는 로런스 얼리비에이스펜서 트레이시였다. 펙은 셰익스피어를 섭렵하고 영국 국립 극장 감독일을 하면서 무수한 영화까지 찍는 다재다능한 얼리비에이를 동경했고, 트레이시의 집중력과 연기를 하려고 애쓰지 않는 점을 좋아했다.

  • 2류 영화를 1류처럼 보이게 만드는 게 스타의 자질인데, 그게 바로 험프리 보가트였다고 말했다.

  • 코미디 연기에 욕심이 있었다. <로마의 휴일>(1953)과 <아름다운 질투>(1957) 이후로 코미디 제의가 쏟아질 것을 기대했는데 전혀 아니라 낙심했다고.

  • <로마의 휴일>(1953) 촬영 도중 신인 오드리 헵번의 잠재성을 알아보고, 자신과 마찬가지로 스타로 대접해 이름이 똑같이 영화 제목 위에 올라가게 만들어 달라고 에이전트[11]에게 요청했다. 에이전트는 당신 이름이 영화 제목 위로 올라가기까지 얼마나 오래 걸렸는지 아냐며 만류했지만, 펙은 "헵번이 아카데미상을 탈 게 분명한 마당에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난 스스로를 바보로 만드는 셈이 되는 거"라고 반박했다. 펙의 고집대로 헵번의 이름은 펙과 마찬가지로 영화 제목 위에 올라갔고, 헵번은 정말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펙은 헵번이 작고한 직후 1993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헵번의 진 허숄트 박애상 시상자로 서기도 했다.


  • 아내 베로닉 펙도 엘리자베스 테일러와 절친한 사이라 함께 테일러의 집에 자주 놀러가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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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피아 로렌은 자서전에서 두 사람이 둘 다 각자 결혼생활 중일 때 잠시 관계를 가졌던 적이 있는 것으로 암시했지만 다른 증인들이 아직 나타나지 않아 진위 여부는 알 수 없다. 소피아 로렌 항목을 보면 알 수 있지만, 로렌은 같은 사안을 두고 말을 여러 번 바꾸는 경향이 있다.

  • 국내 원로 영화배우 남궁원이 펙을 닮았다는 평이 많았다. 야구선수 구자욱도 눈매가 비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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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St. John's Military Academy.[2] 지금의 샌디에이고 주립대학교.[3] pre-med. 당시에도 미국은 의학 전공이 대학원에 있었기 때문에, 학부에서 의과준비과정을 들었다고 해도 의대생이었던 것은 아니다. 게다가 UC 버클리에는 의학 전공이 설치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버클리에서 의과준비과정을 끝까지 이수했어도 의사가 되려면 다른 학교의 의학전문대학원으로 진학해야했다.[4] Spyros P. Skouras.[5] salt flat.[6] 스포일러 두드는 자기 편마저도 다 죽여 독차지하려한다. 일부가 마음을 바꿔 스트레치를 돕고, 스트레치는 두드를 죽인다. 은행에 돈을 돌려준 일행은 마이크, 마이크의 할아버지와 새롭게 길을 떠난다.[7] 스포일러 결국 명성을 노리는 폭력배가 지미를 등뒤에서 쏜다. 지미는 죽어가며 보안관 마크에게 자신을 살해한 청년을 죽이지 말라고 부탁한다. 어차피 악명이 저주처럼 그를 따라다니고 외톨이의 삶을 살게 될 것이니. 지미의 과오들을 용서하게 된 아내는 장례식에서 자신이 아내임을 당당하게 밝힌다.[8] Dolores Gray.[9] Uta Hagen. 1919 - 2004. 연극 "누가 버지니아 울프를 두려워하랴?"의 1962년 브로드웨이 초연에서 영화판 엘리자베스 테일러 배역을 연기한 걸로 유명하다.[10] Cheryl Rae Tiegs. 1947-.[11] George Chas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