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레이엄 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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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엄 영
Graham Young


파일:young_000.jpg
1972년 체포 당시

본명
그레이엄 프레더릭 영
Graham Frederick Young
별명
찻잔 독살자
The Teacup Poisoner

출생
1947년 9월 7일
영국 잉글랜드 런던
사망
1990년 8월 1일 (향년 42세)
파크허스트 감옥
범죄
연쇄살인
징역
종신형
부모
아버지 프레더릭 영
어머니 마가렛 영[1]
새어머니 몰리 영
형제자매
누나 위니프레드 영
신체
173cm[2]
수감처
Broadmoor hospital
Wormwood Scrubs Prison
Parkhurst Prison
Ashworth Hospital

1. 개요
2. 생애
2.1. 어린 시절(1차 범행기)
2.2. 청년 시절 ~ 사망(2차 범행기)
3. 주변 수감자들의 평가
4. 여담
5. 어록



1. 개요[편집]


내가 느낄 수 있었던 것은 속이 텅 빈 내면일 뿐이었지.[3]

[4]


영국(정확히는 탈륨안티모니)을 이용해 사람을 죽인 최연소 연쇄살인자. 탈륨 화합물을 찻잔에 묻혀서 동료들에게 건네주는 식으로 범행을 저질렀기 때문에 별명이 'Teacup Poisoner(찻잔 독살자)' 또는 'St. Albans Poisoner(세인트 올번스 독살자)'였다고 한다.


2. 생애[편집]



2.1. 어린 시절(1차 범행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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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파일:graham young.jpg
체포되기 전 학창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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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2년 체포 당시

태어난 지 3개월만에 어머니를 잃고 이모 손에 컸다. 그러다 2살(1950년 4월 1일)부터 재혼한 아버지와 함께 살았는데 훗날 정신과 의사들은 "정서 발달이 가장 중요한 시기에 어머니가 없었기 때문에 인간적인 온정이나 동정심을 전혀 느끼지 못하는 인간으로 성장했다"고 진단했다. 그러나 1955년 그가 길가에서 차에 살짝 부딪쳐서 사고를 당했고 영국 저술가인 안소니 홀든(Anthonly Holden)의 저서 St. Albans Poisoner에 의하면 그레이엄이 3살 때 새엄마가 모형 비행기를 부숴 버리고 용돈을 조금 주고 친구를 집에 초대하지 못하게 하고 간식도 집에서 못 먹게 하는 과보호가 있었다. 그리고 아버지의 태도는 자신의 관점 외에는 다른 사람의 관점을 이해하지 못 했었고 그레이엄 영의 개성을 존중하지 않았다.[5]

독약에 대한 집착은 어릴 때부터 나타났다.[6] 학교 친구들이 운동선수나 가수를 우상으로 삼았다면 그레이엄은 영국의 악명높은 독살자 할리 크리픈을 우상으로 삼았다.[7] 특히 빅토리아 여왕 시대에 아내장모를 독살하여 1855년 글래스고에서 교수형을 당한 살인범 에드워드 프리처드를 가장 좋아했다. 게다가 아돌프 히틀러를 존경하였고 히틀러의 절대적인 권력을 부러워했다. 영어 위키백과에는 에드워드 프리처드에 대한 언급은 없으며 동시대인 윌리엄 팔머에 대한 이야기만 적혀 있다.

14살에는 약국에서 학교 과학 숙제를 핑계로 나이를 속여 안티모니 타르타르산염을 구한 뒤 늘 품에 지니고 다니며 그 약병을 자신의 작은 친구라고 불렀다. 학교 과학 실험실의 청소 당번을 자진하여 학교 과학 실험실을 드나들게 된 후에는 화학 실험에서 사용하는 독극물을 자유롭게 손에 넣을 수 있었다. 도서관에서 독학만으로 대학원 수준의 화학 지식을 습득한 것도 14세의 일이다. 그리고 며칠 뒤 약병에 든 독약을 학교 친구와 가족들을 상대로 실험을 시작했다. 그레이엄은 아이들이 먹는 샌드위치에 안티모니 타르타르산염을 섞고 그 양에 따라 어떤 반응을 일으키는지 지켜봤다. 약을 먹은 친구들은 구토하고 복통을 앓았으며 심하면 경련이 일어나기도 했다.

1962년에 15세였던 그레이엄은 사이가 좋지 않았던 의붓어머니를 독살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레이엄이 화학 시간에 이상한 실험을 제안하는 것을 보고 학교의 화학 교사가 의구심을 가졌다. 방과 후에 그레이엄의 책상을 조사한 화학 교사는 안티모니 타르타르산염이 든 독약병과 죽어가는 사람들을 그린 그림, 유명한 죄수들과 독약에 대한 수필, 독약의 효능 및 치사량을 적은 종이를 발견하고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조사를 받게 된 그레이엄은 가족과 친구들을 상대로 독약을 실험했다는 사실을 털어놨고 의붓어머니를 살해한 혐의로 감옥에 갇혔을 때 넥타이자살을 시도했는데 자살을 시도한 이유가 수치심 때문이 아니라 독약 없이는 살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1962년 15살이었던 그레이엄은 유죄를 선고받았지만 정신이상 판정을 받아 브로드무어 [[정신병원{{에 위탁되었다. 그러나 그레이엄의 미치광이 행각은 거기서도 멈추지 않았다. 독극물에 대해 워낙 전문적인 지식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병원 정원에 있는 관상용 월계수와 나뭇잎에서 청산가리를 추출할 수 있을 정도였고 병원 직원과 동료 수감자에게 독극물을 먹여서 그 중 1명은 사망하게 만들었다. 9년 뒤에는 석방되었는데 이후의 정신과 의사 보고서를 보면 당시 완전히 치유된 것으로 나왔지만 그것은 오진이었다.


2.2. 청년 시절 ~ 사망(2차 범행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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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엄 영이 직장동료에게 쓴 편지

파일:john-hadland.png
그레이엄 영이 다녔던 보빙턴에 위치한
회사 'John Hadland'

그레이엄은 정신병원에서 퇴원한 뒤 보빙턴 마을로 이사 가서 사진기 회사의 창고 일을 맡았는데 회사에 들어갈 때 사장에게는 사랑하던 의붓어머니가 죽은 뒤 신경쇠약에 걸려 오랫동안 병원 신세를 졌다고 말했다. 그러나 사진기를 생산하는 회사에 취직한 이유부터가 독극물 살인에 필요한 탈륨을 훔치기 위해서였고[8] 취직한 다음 날에는 시내에 나가서 수백 명을 죽게 할 수 있는 양의 독약을 구해왔다. 이후 거의 70명이나 되는 회사 근로자들이 설사, 경련, 요통, 멀미 등 증상을 겪기 시작했다. 몇몇은 입원했고 그 중 2명은 고통을 겪다가 절명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그 병을 사람들은 ‘보빙턴 병’이라고 불렀다. 처음에는 아무도 그레이엄이 가져다준 커피와 차를 마시고 나면 병에 걸린다는 사실을 눈치채지 못했다. 그러나 결국 공장의 누군가가 동료들에게 독약을 먹인다는 의혹이 불거져서 수사가 이루어졌다. 그레이엄은 경찰 조사를 받는 동안 자신의 뛰어난 화학 지식을 자랑하지 못해 안달을 냈다. 그레이엄은 수수께끼의 질병이 탈륨에 의해 나타나는 증상으로 보인다며 경찰에 그대로 말했는데 이는 경찰의 의심을 사기에 충분한 발언이었다.

경찰이 그레이엄의 과거를 조사해 보자 소름 끼치는 진실이 밝혀졌고 그레이엄은 살인 혐의로 즉시 체포됐다. 그레이엄의 아파트에서는 탈륨, 안티모니, 아코니탄 같은 독약이 발견되었고 히틀러와 그 추종자들의 액자 사진도 나왔다. 그레이엄의 일기장도 나왔는데 거기에는 여러 독약이 사람들에게 끼친 결과가 자세하고 객관적으로 적혀 있었다. 그레이엄은 일기장에 기재한 내용이 단지 소설을 쓰기 위한 기록이라고 주장했지만 결국 범행 사실을 모두 털어놓았다. 그레이엄에 따르면 사람들의 목숨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싶어서 저지른 범행이라고 한다. 그레이엄은 형사에게 “마음만 먹었으면 전부 다 죽일 수 있었어요. 그렇지만 내가 살려준 거죠.”라고 자랑했다. 1972년 6월 바로 재판이 시작되었고 모든 혐의를 인정했기에 재판은 10일 정도로 짧게 진행됐다. 배심원은 그레이엄에게 법정 최고형인 가석방 없는 종신형을 선고했고 그레이엄이 항소하지 않아 확정되었다.

그레이엄은 18년 가량 교도소에서 무어 살인마(Moor Murders)중 한 명인 이언 브래디(Ian Brady)와 함께 매우 친하게 지내면서 조용히 복역하다가 1990년 8월 자신의 감방에서 죽은 채로 발견되었다. 향년 42세였으며 사인은 심장마비이다.

이안 브래디의 말에 의하면 그레이엄 영은 특이하게도 성적인 쪽에 전혀 관심이 없었고 그 쪽 분야를 추구하지도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영미권에서는 그레이엄 영을 무성애자로 표기하는 정보 사이트가 꽤 있다. 정말 머릿속에 독극물만 들어 있는 건지...

하지만 그레이엄 영을 주제로 한 전기인 Carol Ann Lee의 저서인 A passion for poison에 의하면 성인이 된 그의 대부분의 지인들은 여자나 남자에 대해서 관심을 보이는 모습을 보이질 않아서 무성애자로 여겼지만 실제로 그는 초등학생 시절에 만난 연상의 여자 아이가 첫사랑이었으며 자신을 이성애자라고 묘사했다.[9]

혹은 그가 자폐 증세를 갖고 있으며 그 영향 때문일 것이라는 추측도 있다. 이안 브래디의 증언에 따르면 체스를 할 때도 매번 흑을 고집하는 등 고집이 세서 자신에게 지곤 했다고 하고 기이할 정도로 독살에 집착하여 자폐 증세가 아닐까 하는 의혹이 존재한다. 아예 자폐임을 염두에 둔 연구도 있을 정도.[* 자폐성 장애인도 충분히 범죄를 저지를 수 있다. 샌디 훅 초등학교 총기난사 사건을 비롯해 [[아스퍼거 증후군]{이나 [[고기능 자폐증]] 등을 지닌 사람이 범죄자가 되는 경우도 없지 않다. 다만 자폐성 장애인이라고 해서 무조건 범죄자는 아니고 이러한 사례들은 자폐와 별개로 반사회적 인격장애와 같은 다른 인격장애가 원인으로 작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3. 주변 수감자들의 평가[편집]


A lot of cons will say what's he putting him in legends for, it's simply because Graham is the legend of all poisoners. I met him in Parkhurst in the 80s he was certainly not my friend and I wouldn't have trusted him with a pet rodent. He was first put away at the age of 14 and was sent to Broadmoor for poisoning his family, one member actually died. Years later when he was released he poisoned once more. This time it was workmates and two of them died so off he went to jail for the rest of his life and in this case life means life as he died in Parkhurst in 1990. His life in prison was almost spent entirely in isolation as he kept trying to poison people all of the time. He actually attempted it in Parkhurst by putting some substance in the cons water boiler. He got both his arms broken for this attempt - he was a very dangerous man. I believe he shouldn't have been released from Broadmoor. The doctors kept him pretty much sedated with heavy tranquillisers over the years of his incarceration. I did, however, feel compassion for Britain's number one poisoner. Obviously when he got his arms broken he deserved it but he was a very sick guy who couldn't help himself, oh yes a definite legend in his own twisted mind, one that I wouldn't invite home for Sunday lunch!

많은 죄수들이 그를 전설로 만든 이유를 말할 것이다. 그것은 단순히 Graham이 모든 독살자들의 전설이기 때문이다. 나는 80년대에 Parkhurst 감옥에서 그를 만났다. 그는 확실히 내 친구가 아니었고 애완용 설치류와 함께 그를 신뢰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는 14세에 처음으로 쫓겨났고 그의 가족을 독살했다는 이유로 Broadmoor 정신병원으로 보내졌다. 한 구성원은 실제로 사망했다. 몇 년 후 석방되었을 때 그는 한 번 더 독을 탔다. 이번에는 직장 동료였고 그들 중 두 명이 죽고 그는 남은 평생 동안 감옥에 살다가 1990년에 죽었다. 그는 항상 사람들을 독살시키려고 한다. 그는 실제로 죄수 보일러에 약간의 물질을 넣어 Parkhurst에서 독살 시도했다. 그는 이 시도로 인해 두 팔이 부러졌다. 그는 매우 위험한 사람이었다. 나는 그가 Broadmoor 정신병원에서 석방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의사들은 수년 동안 무거운 진정제로 그를 거의 진정시켰다. 그러나 나는 영국 1위 독살자에 대해 연민을 느꼈다. 분명히 그가 팔이 부러졌을 때 그는 그럴 만했지만 그는 스스로를 도울 수 없는 매우 아픈 사람이었다. 오, 그래. 그 자신의 뒤틀린 마음에 있는 확실한 전설, 일요일 점심에 집에 초대하지 않을 것이다!

Legends 찰스 브론슨[10]

의 저서에서


I heard that the special psychiatric wing was opening and suggested to Ron that we should try to get moved there to get out of the security block. He agreed with me. I made the appointment to see Dr Cooper over at the hospital. When I was taken over I had an escort of two screws and a dog-handler. While I was in the waiting-room a man called Graham Young joined the queue. He was housed over the hospital and was doing a life sentence for poisoning his family and three of his workmates. During the conversation we had he said he was applying for a job in the found this slightly kitchen. I found this slightly disturbing... the food was bad enough as it was!

나는 특별 정신과 병동이 열리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Ron에게 보안 구역에서 나가기 위해 그곳으로 옮겨야 한다고 제안했다. 그는 나와 동의했다. 나는 병원에 Dr Cooper를 만나기로 약속을 잡았다. 내가 인수되었을 때 나는 두 명의 짭새와 경찰견의 호위를 받았다. 내가 대기실에 있는 동안 Graham Young이라는 사람이 대기열에 합류했다. 그는 병원에 감금되어 있었고 가족과 직장 동료 3명을 독살한 혐의로 종신형을 선고받고 있었다. 우리가 나눈 대화 중에 그는 발견 된 이 작은 부엌에서 일자리를 신청하고 있다고 말했다. 난 약간 이것이 불안 하다는 걸 알았다... 음식은 충분히 나빴다!

레지 크레이[11]

의 저서 A way of life


“It was difficult not to empathise with Graham Young. If his excellent intellect had not been tragically flawed at such an early age by emotional and environmental factors which lead to psychosis, I am sure that, having disciplined his mind properly, he would of risen to prominence in a more healthy profession than the one he chose.[12]

“그레이엄 영과 공감하지 않는 것이 어려웠다. 그의 뛰어난 지성이 정신병으로 이어지는 정서적, 환경 적 요인에 의해 어린 나이에 비극적으로 결함이 없었고, 그의 정신을 제대로 훈련했다면 그가 자신이 선택한 것보다 더 건강한 직업에서 두각을 나타낼 것이라고 확신한다.”

이언 브래디


I met Graham while we were in solitary[Broadmoor Hospital]. I got on well with him and we became friends when he asked me to look after him because another inmate had threatened him. He was an interesting bloke, although I can't say I understood him.

나는 우리가 독방[브로드 무어 정신병원]에 있을 때 Graham을 만났다. 나는 그와 잘 지냈고 다른 수감자가 그를 위협했기 때문에 그가 나에게 지켜 달라고 부탁했을 때 우리는 친구가 되었다. 내가 그를 이해했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그는 흥미로운 녀석이었다.

로이 쇼[13]

의 저서 Pretty Boy


Young was one of life's anomalies. The Ripper[Peter Sutcliffe] did what he did because of whatever religious belief he had. Ian Brady carried out his crimes for sexual masochistic pleasure or whatever. But Young wasn't a human being he was like a Dr Frankenstein.

그레이엄 영은 인생의 변칙 중 하나였다. 피터 서트클리프는 그가 가진 종교적 신념 때문에 범죄를 저질렀다. 이언 브래디는 성적 마조히즘적 쾌락을 위해 범죄를 저질렀다. 그러나 그레이엄 영은 프랑켄슈타인 박사와 같은 인간이 아니었다.

바비 커민스



4. 여담[편집]


2005년 일본 시즈오카현에서 그레이엄 영에 심취한 여고생이 어머니를 대상으로 탈륨을 실험하는 사건을 저질러 사회적 물의를 일으켰다. 피해자인 어머니는 입원 도중 상태가 악화되어 혼수 상태에 빠지는 등 여러 우여곡절 끝에 구사일생했다. 소녀는 이후 자살을 기도했으나 실패했고 나중에 정신검사를 해 본 결과 아스퍼거 증후군으로 밝혀졌다. 여담으로 일본에서는 굉장히 유명한 사건이라 "탈륨 소녀의 독살일기"라는 제목으로 영화까지 만들어졌다고 한다. 한국에서는 2013년 9월 8일자 신비한 TV 서프라이즈 언빌리버블 스토리에서 방송되었다. 서프라이즈에서는 여학생의 이름은 요코이며 비참한 현실에서 관심을 받을 유일한 방법이었기에 범행을 저질렀다고 소개했다.

또 그레이엄 영에게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은 것은 아니지만 나고야 여대생 살인사건의 범인 오오우치 마리아가 고등학교 시절 이 '탈륨 소녀 사건'의 영향을 받아 인터넷으로 탈륨을 구매해서 중학교 동창생과 고등학교 동급생을 독살하려고 시도한 일이 있었다.[14]

눈 색깔과 머리 색깔은 모두 짙은 갈색이며 창백한 피부결이다.[15]

5. 어록[편집]


It grew on me like a drug habit, except it was not me who was taking the drugs.

그것은 마약처럼 습관이 되어갔다. 내가 약을 먹는 당사자가 아니었다는 것만 빼면 말이다.[16]


When I get out, I’m going to kill one person for every year I’ve spent in this place.

내가 나가면 이곳에서 보낸 해마다 한 사람을 죽일거야.[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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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그레이엄 영이 태어난 지 3개월만에 사망했다.[2] 5피트 8인치, Carol Ann Lee의 저서 Passion for poison에서 발췌했다.[3] "What I feel is the emptiness of my soul."[4] 체포 후 본인의 살인 행적에 대해서 후회, 반성하는 마음을 느끼는지에 대한 답이었다.[5] Carol Ann Lee의 저서 Passion for poison에서 발췌했다. 원 출처는 그레이엄이 있었던 브로드무어 정신병원 당국과 그와 상담했던 심리학자의 기록이다.[6] 그러나 본격적으로 이 길로 빠지게 된 계기는 아이러니하게도 학교에서 좋은 성적을 받은 그레이엄에게 아버지가 과학 실험도구들을 사 준 것이었다고 한다.[7] 할리 크리픈은 1910년에 아내를 죽여 지하 석탄 창고에 매장한 뒤 자신의 비서와 도망친 살인범이다. 대서양을 통한 무선 통신으로 체포되었기 때문에 통신 역사를 다룬 책에서도 한 번쯤 언급될 만큼 유명하다.[8] 실제로 탈륨 화합물은 카메라 렌즈에 쓰였다.[9] The strange story of graham young : Obsessive poisoner라는 그레이엄 영의 친누나가 쓴 책에 따르면 그 여자 아이는 도서관 사서였고 다른 남자와 결혼했다.[10] 영화배우의 이름을 예명으로 쓰지만 본명은 마이클 피터슨인 장기수의 고백 영화의 실제 인물이다.[11] 크레이 형제 갱스터의 쌍둥이 형[12] The Gates of Janus에서 발췌[13] 영국의 복서[14] 정확히는 독살까지는 아니고 음료수에 탈륨을 타서 이것을 마신 동급생과 동창생의 증상을 '관찰'하면서 이를 기록으로 남겼다. 다행히 사망자는 나오지 않았으나 피해자들 중 동급생인 남학생은 같은 피해를 두 번이나 당해 탈모와 시력 저하 등의 심각한 후유증을 겪고 결국 특수학급으로 이동해야 했다고 한다.[15] 그의 누나가 쓴 그레이엄 영의 전기에서도 밝혔고 바비 커민스이언 브래디도 자신들의 저서에서도 밝혔으며 그레이엄 영에 대한 전기에도 나온다.[16] 영어로 (일반적인) 약물과 마약 모두를 drug(s)로 지칭할 수 있다는 것을 이용한 문장. 다만 언어유희를 유도했는지는 알 수 없다.[17] 그가 정신병원에서 나가기 전에 간호사에게 했던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