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토 케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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天才(てんさい / GENIUS
武藤(む とう 敬司(けい じ / KEIJI MUTO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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グレート・ムタ / THE GREAT MU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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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WE 명예의 전당 헌액자
링네임
White Ninja[1]
Super Black Ninja[2]
무토 케이지
그레이트 무타
(グレート・ムタ; 愚零闘武多(ぐ れいとう む た)
[3]
본명
무토 케이지
武藤(む とう 敬司(けい じ
생년월일
1962. 12. 23 (61세)
신장
188cm
체중
110kg
출생지
일본 야마나시현파일:야마나시현 문장.svg 후지요시다시파일:581px-후지요시다시 문장.svg.png
가족 관계
장녀 무토 아이리(武藤(む とう 愛莉(あい り)[4]
유형
올라운더
쇼 맨 + 힐 스타일 + 올라운더
시그니처 무브
저공 드랍킥
플래싱 엘보
스페이스 롤링 엘보
드래곤 스크류
피겨 포 레그락
독무(毒霧(どくぎり)[5]
피니시 무브
무타 락
문설트 프레스
샤이닝 위저드
별명
스페이스 론 울프[6]
(スペース・ローンウルフ)
내추럴 본 마스터[7]
(ナチュラル・ボーン・マスター)
크로스 위저드(クロス・ウィザード)[8]
프로레슬링 마스터(プロレスリング・マスター)[9]
천재(天才(てんさい)
입장곡
The Final Countdown - Europe[10] (1986 - 1990)
TRIUMPH[11] (1995 - 1997)
nWo TRIUMPH[12] (1997 - 2000)
OUTBREAK (2000 - 2002)
TRANS MAGIC (2002 - 2009)[13]
SYMBOL (2009 - 2013)
HOLD OUT (1990 - 1995, 2013 - 2023)[14]
MUTA[15]
愚零闘武多(ぐ れいとう む た[ruby(協奏曲, ruby=きょうそうきょく)][16]
데뷔
1984년 10월 5일 사이타마현 코시가야시립체육관
신일본 프로레슬링
vs. 쵸노 마사히로[17]
1989년 4월 2일 루이지애나 슈퍼돔
NWA-WCW 클래쉬 오브 챔피언스 6 : 레이징 카준
vs. 스티브 케이시
마지막 경기
2023년 2월 21일 도쿄 도쿄 돔
프로레슬링 NOAH
KEIJI MUTO GRAND FINAL PRO-WRESTLING 'LAST' LOVE ~HOLD OUT~
vs. 쵸노 마사히로[18]
2023년 1월 22일 가나가와현 요코하마시 요코하마 아레나
프로레슬링 NOAH
THE GREAT MUTA FINAL "BYE-BYE"
그레이트 무타 & 스팅 & 다비 알린 vs. AKIRA & 하쿠시 & 마루후지 나오미치
SNS
공식 홈페이지 파일:Ameba 아이콘.svg 파일:트위터 아이콘.svg
주요 커리어
NWA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 1회
NWA 플로라다 헤비웨이트 챔피언 1회
NWA 텔레비전 챔피언 1회
삼관 헤비급 챔피언 3회
세계 태그팀 챔피언 5회
WCW 월드 태그팀 챔피언 1회
WWC 푸에르토 리코 헤비웨이트 챔피언 1회
WWC 텔레비전 챔피언 1회
IWGP 헤비웨이트 챔피언 4회
IWGP 헤비웨이트 태그팀 챔피언 6회
WRESTLE-1 챔피언 1회
GHC 헤비웨이트 챔피언 1회
GHC 태그팀 챔피언 1회
챔피언 카니발 3회 우승[19]
G1 클라이맥스 1회 우승[20]

1. 개요
2. 커리어
2.2. 그레이트 무타
2.3. 다시 신일본으로
2.6.1. 그랜드슬램
2.6.2. 은퇴
2.6.2.1. 그레이트 무타 은퇴 로드
2.6.2.2. 무토 케이지 은퇴 로드
2.7. 은퇴 이후
2.7.1. WWE 명예의 전당 헌액
3. 경기 스타일
4. 프로레슬링 외적 활동
5. 여담
6. 둘러보기


1. 개요[편집]




"프로레슬링은 결승선이 없는 마라톤과 같다. #"


"무슨 낙으로 사세요?" 라고 누군가 물으면, 난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프로레슬링입니다" 라고. 프로레슬링이란게, 참 재밌다. 무릎만 좀 괜찮으면 아주 평생토록 하고 싶다. 난, 정말로 프로레슬링이 좋다."

<프로레스로 산다> 中


일본프로레슬링 NOAH 소속 프로레슬러.

일본 뿐만 아니라 북미 프로레슬링 역사에 강렬한 캐릭터성과 뛰어난 경기력으로 한 획을 그은 레전드 레슬러로 일본에서는 신일본, 전일본, NOAH, 북미에서는 WCW, ROH, TNA 등 여러 단체에 참전하고 큰 영향을 끼쳤다.

이후에도 여러 단체를 참전하며 커리어를 쌓고, 2023년 2월 21일 도쿄돔에서 펼쳐진 KEIJI MUTO GRAND FINAL PRO-WRESTLING 'LAST' LOVE ~HOLD OUT~를 끝으로 39년간의 커리어를 마무리하고 은퇴했다.


2. 커리어[편집]



2.1. 신일본 프로레슬링 입문[편집]


학생 시절 유도 선수로 활동하며 전일본 강화선수로 지정되기도 했으나, 1984년에 신일본 프로레슬링에서 데뷔했다. 영 라이온으로 활동할 때부터 문설트 프레스를 개발해 사용했고, 미국 플로리다로 무사수행을 떠나 문설트 프레스로 본인을 어필하며 상당한 반응을 얻었다.[21]

"스페이스 론 울프"라는 SF 컨셉의 기믹으로 신일본 프로레슬링에 복귀하였으나, 당시 신일본에서는 실전 방식의 프로레슬링을 지향하던 UWF군과의 항쟁이 진행되고 있던 차였다. 무토가 술에 취해 마에다 아키라에게 "당신네 프로레슬링은 재미없어"라고 말한 것이 한바탕 대소동으로 이어진 소위 쿠마모토 여관 파괴 사건은 일본 프로레슬링계의 또 하나의 전설로 남게 되었다.


스페이스 론 울프 기믹 시기 다이제스트

결국 '실전' 담론이 지배하던 당시 신일본 링에서 한계를 느낀 무토 케이지는 곧장 두번째 북미 무사수행을 떠났다.


2.2. 그레이트 무타[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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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에르토리코에 있는 WWC로 갔으나, WWC의 부커 겸 프로레슬러인 호세 곤잘레스가 브루저 브로디를 칼로 찔러 죽인 사건 직후 미국 텍사스 주의 WCCW로 활동 무대를 옮긴다. WCCW에서 활동할 때는 프리츠 폰 에릭에게 아이언 클로를 당해 사망한 아버지의 복수를 하러 온 일본인이란 설정이었다가 이후 그레이트 가부키의 아들로 바뀌었다.[22] 이후 NWAWCW에서 그레이트 무타라는 악역으로 활동하면서 스팅, 릭 플레어 등과 명승부를 펼치며 북미 프로레슬링의 역사에 한 획을 그었다. 매체에도 영향을 줘서, 파이어 프로레슬링 시리즈의 레드 드래곤은 이름 외에는 완벽한 그레이트 무타이고, 머슬 봄버의 미스테리어스 부도 그레이트 무타가 모티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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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역 "무토 케이지"
악역 "그레이트 무타"

일본에서 그레이트 무타는 무토 케이지가 마계에서 데려온 프로레슬러라는 설정으로, 선역인 무토 케이지와 대조적인 악역이다. 처음엔 신일본 프로레슬링에서 그레이트 무타 기믹은 저조한 반응을 얻지만, 1990년 9월 14일에 하세 히로시와의 경기를 통해 일본에서도 성공적인 기믹으로 정착한다.


2.3. 다시 신일본으로[편집]


일본에 돌아온 후에는 쵸노 마사히로, 하시모토 신야와 함께 투혼삼총사라는 별칭으로 불리며 신일본 프로레슬링에서 한 시대를 풍미했는데, 미국 프로레슬링 스타일을 고수하면서 신일본 프로레슬링의 스트롱 스타일과 다른 색채를 선보인다. 2000년대엔 기량은 여전해도 앞대머리를 감추려고 삭발을 하고, 몸도 후덕한 상태가 되었지만 신일본 프로레슬링에서 데뷔하고 뜰 때만 해도 잘생긴 외모에다가 헤비급 프로레슬러라고 믿어지지 않을정도로 빠른 몸놀림과 화려한 기술을 선보이고, 체형도 아주 잘 빠져서 푸쉬가 대단했다. 같이 데뷔한 동기인 쵸노 마사히로가 그 덕에 한동안 묻혔고, 그 시절엔 은근히 소외감을 느꼈을 정도였다.

대표적으로 1995년 10월 9일 도쿄돔, UWFi의 수장이던 타카다 노부히코IWGP 헤비웨이트 챔피언십을 두고 벌어진 대항전은 일본 레슬링 역사에 남는 명승부 중 하나로 남았다. # # # #, #

잠시 WCW에서 활동한 후 일본에 돌아와서 IWGP 헤비웨이트 태그팀 챔피언십을 차지한다. 신일본 프로레슬링 소속인 상태로 전일본 프로레슬링에 출전해 2001년 6월 8일에 텐류 겐이치로를 이기고 삼관 헤비급 챔피언십을 차지한다. 이어 전일본 프로레슬링의 세계 태그 타이틀을 차지하면서 6관왕을 달성한다.


2.4. 전일본 프로레슬링[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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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에 신일본 프로레슬링의 이노키즘프로레슬링 NOAH의 왕도스타일로 인해 프로레슬링이 지나치게 투기(鬪技)화되었고, 프로레슬링 특유의 쇼맨십이 사라진 상황에 대한 반발로, 프로레슬링의 원점회귀를 위해 선역 무토 케이지를 상징하는 프로레스 러브 포즈를 밀기 시작했다. 전일본 선수 이탈사건이 터졌을 때 카와다 토시아키를 제외한 전일본 5강을 비롯해서, 마루후지 나오미치와 KENTA 등의 유망주를 포함한 다른 전일본 소속 프로레슬러들도 대거 이탈한다. 이때 카와다 토시아키 외에 후치 마사노부와 타이요 케어만 남은 암울한 상태의 전일본 프로레슬링으로, 코지마 사토시켄도 카신을 데리고 이적하여 사장직에 취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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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와다 토시아키 등과 명경기를 만드는 한편 착실히 프로레스 러브를 외치며 전일본 프로레슬링의 색깔을 무토 케이지의 프로레슬링 철학으로 바꾸었다. 어느 정도 전일본 프로레슬링을 회복세로 돌려놓았지만 전일본의 사장으로서 고충이 만만치 않았다. 단기 계약을 맺고 빌 골드버그를 섭외했으나 스쿼시 매치가 진행되어 코지마 사토시, 타이요 케어가 싱글 매치에서 골드버그에게 초살당했다. 무토 케이지는 전일본 프로레슬링의 재정을 위해 별의별 스폰서를 다 끌어왔기 때문에 링 바닥이 광고로 도배되었다. 성인 비디오 제작사 S1도 스폰서 중 하나였기 때문에 S1의 유명 AV 여배우인 요시자와 아키호와 대회 흥행 포스터를 찍었다. Bakky도 스폰서로 끌어들였다가 Bakky 사건이 터지면서 단체가 망할 뻔했다. 2009년엔 격투가로썬 사양길에 접어들기 시작해 일본 예능에 주로 모습을 보이던 최홍만을 전일본 프로레슬링 무대에 세우고 싶다고 인터뷰했다.

흑사무쌍(黑士武双: 고쿠시무쏘. 한신의 고사에서 나온 사자성어이자 마작의 역만 중 하나인 국사무쌍과 발음이 같다.)이라는 기믹으로도 활동했는데, 신자키 '하쿠시' 진세이와 태그팀 경기를 할 때 2번 정도 등장하였고, 싱글 매치에서도 1번 등장한 전례가 있다. 그간 시달리던 고질적인 무릎부상으로 인해 2010년 4월에 무릎수술을 받았다.[23] 그리고 2010년 9월 10일에 후나키 마사카츠와 복귀전을 가졌고, 30분 시간초과 무승부로 경기를 마치며 건재함을 과시했다. 복귀 직전의 인터뷰에서 지방 흥행에는 참가하지 않고, 수도권 쪽의 흥행에서만 시합을 가지며 될 수 있는 한 오래 프로레슬러로 뛰겠다고 밝혔다.


2.5. WRESTLE-1[편집]


하지만 전일본 프로레슬링의 재정은 개선되지 못했고, 당시 전일본의 사장인 시라이시 노부오가 무토 케이지의 행동을 못마땅하게 생각해 사사건건 간섭했다. 전일본 프로레슬링과의 마찰이 한계에 다다르자 2013년 7월에 전일본을 탈단해 WRESTLE-1을 설립했다. 그리고 단체의 홍보를 위해 TNA, 신일본 프로레슬링 등과 연합하여 흥행을 개최하였고, TNA에서 뛰게 된 WRESTLE-1의 선수 사나다 세이야를 밀어주기 위해 본인도 10여년만에 미국 무대에 그레이트 무타로서 등장해 경기를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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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상 선수로서는 일선에서 물러난 후, WRESTLE-1 전문 경영인으로 DDT 프로레슬링 CEO인 타카기 산시로를 영입하는 동시에 WRESTLE-1에 선수를 보급하고자 프로레슬링 전문 학원을 설립하는 등 단체 경영과 후학 양성에 힘쓴다. 그러다 양쪽 무릎의 치료를 위해서 문설트 프레스를 봉인하게 되는데, 2018년 3월 15일 WRESTLE-1 흥행에서는 무토 케이지로 8인 태그 매치에서 3번의 시도 끝에 문설트 프레스를 시전해 승리했고, 열흘 뒤 25일 DDT 프로레슬링 21주년 기념 대회에서는 그레이트 무타로 등장하여 DAMNATION의 사사키 다이스케 & 엔도 테츠야와 함께 남색 디노 & 이시이 케이스케 & 오오카 켄을 상대로 드라마틱 드림 매치에서 마지막으로 문설트 프레스를 시전하며 승리함으로서 1985년 커리어 초창기부터 사용했던 문설트 프레스와의 인연은 여기서 끝을 맺게 된다.

인공관절 수술을 받은 이후로 관절의 기동범위가 넓어진것 때문에 욕심을 내서 재활운동을 하다 이식한 오른쪽 무릎 관절에 금이 가서 재활기간이 더 길어지게 되었다. 본인도 거기에 고무되어 너무 욕심을 부렸다고 자책하면서 이게 내가 문설트를 쓰고 싶어도 못쓰는 이유라고 밝혔다. 실제로 양쪽 무릎 관절을 모두 인공으로 대체한 상태인 2018년의 무토는 절대로 문설트를 쓸수가 없는 상태이며 의사도 실수로라도 절대 문설트를 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고 한다. 인공관절이 아무리 좋은거라도 그 충격을 멀쩡한 상태의 무릎처럼 견딜수가 없기 때문에 그랬다가는 이식한 인공관절이 부러지거나 하는 사고가 날수도 있다. 그리고 인공관절은 나중에 교체시기가 왔을때 재수술이 아주 까다롭고 난이도가 높다. 그런데 밝혀진바에 따르면 인공관절이 금이 간게 아니라 그걸 이어주던 원래뼈에 실금이 갔다고 한다.

2018년 12월 28일 고라쿠엔 홀에서 열린 쵸슈 리키의 프로듀싱 흥행에 등장하여 내년 4월에는 뉴욕에서 그레이트 무타를 불러올 예정이고, 쵸슈 리키의 은퇴 경기가 열리는 6월 26일 고라쿠엔 홀 대회에서 복귀 할 것을 발표했다. 그리고 2019년 4월 6일에 펼쳐진 G1 슈퍼카드에서 그레이트 무타로 깜짝 출현하면서 프로레슬링으로 복귀했다.


2.6. 프로레슬링 NOAH[편집]


계속 WRESTLE-1소속으로 매치를 뛰어오던 무토였으나 만성 적자를 버티지 못하고 2020년 4월 1일 대회를 마지막으로 WRESTLE-1 의 무기한 활동중지를 선언했으며, 소속 선수들이 모두 이적했다. 이후 자신도 프로레슬링 NOAH에 참전했으며 마루후지 나오미치, 드래곤 게이트의 모치즈키 마사아키와 함께 이름의 이니셜 첫 자가 모두 'M'인 선수들로 이루어진 스테이블을 만들어 이윽고 스테이블의 이름을 M's alliance(M의 동맹)로 하겠다고 선언했다.


2.6.1. 그랜드슬램[편집]


2021년 2월 12일 프로레슬링 NOAH 일본무도관 대회에서 시오자키 고를 꺾고 GHC 헤비웨이트 챔피언에 등극. 일본 프로레슬링 역사상 3번째로 메이저 3단체 그랜드 슬램을 달성했다.[24] 그리고 동시에 일본 메이저 단체 최고령 챔피언 기록도 갈아치웠다.[25] 이후 15일, 공식적으로 NOAH 소속이 되었다.#[26]

2021년 6월 6일 마루후지 나오미치 와의 경기에서 근 3년 만에 문설트를 사용했다! 해당 내용 그러나 인공관절 상태에서 문설트를 성공한후 무릎에 충격이 가해지자 심한 격통이 왔고 그걸 간신히 참는 모습이 화면에도 나온다. 실제로 경기를 지켜보던 관계자들 모두 식겁해했고 이 경기를 본후 무토의 팬들도 '이제 됐으니까 문설트 더는 쓰지마!' 할 정도로 가슴을 쓸어내렸다고 한다. 무토 역시 그후 인터뷰에서 문설트 외의 기술을 연마해 새로운 레슬링을 보여주지 못해 다시 문설트를 꺼낸 이야기를 밝히며 스스로를 자책했고 쓰고나서 무릎에 통증이 엄청났으며 대퇴골에도 충격이 가해졌다고 한다. 대퇴골이 부러졌다면 평생 걷지도 못할뻔했다.

이후 마루후지와 함께 GHC 태그 벨트까지 차지하면서. 신일본 & 전일본 & NOAH에서 각각 헤비급 벨트들과 태그 벨트를 차지해본 역대 2번째 선수가 되었다.[27] 하지만 고질적인 무릎 부상으로 벨트를 반납하고 휴식기를 갖게 된다.


2.6.2. 은퇴[편집]


일찌기 프로레슬링은 결승선이 없는 마라톤과 같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만, 이제는 결승선을 통과하기로 결심했습니다.#


2022년. 사이타마 슈퍼 아레나에서 열린 사이버 파이트 페스티벌에서 중대 발표를 예고했다. 그리고 팬들의 짐작대로 결국 내년 봄까지 은퇴를 하겠다고 발표했다.

이후 역대 테마곡의 이름을 따서, 'THE FINAL COUNTDOWN (7.16 일본무도관)', 'OUTBREAK (9.25 아이치 돌핀즈 아레나)', 'TRIUMPH', 'HOLD OUT (미정)'라는 이름의 은퇴 경기들을 밟아나갈 예정이고 그레이트 무타로서는 'GREAT MUTA FINAL 'BYE-BYE (요코하마 아레나)'에서 작별을 고하겠다고 선언했다. 다만 이외에도 추가로 몇 경기는 더 뛸 수 있음을 시사했다.

이후 무토 케이지의 마지막 진짜 은퇴 경기인 'HOLD OUT'은 2023년 2월 21일. 도쿄 돔에서 펼치겠다고 발표했다.

2.6.2.1. 그레이트 무타 은퇴 로드[편집]

  • GREAT MUTA OSAKA FINAL (22.09.03 에디온 아레나 오사카 제1경기장)
그레이트-O-칸, NOSAWA 논외와 함께 트리오를 결성해, 권왕 & 소야 마나부 & 타다스케 팀을 상대로 오사카[28]에서의 마지막 경기를 치루었다. 초창기 테마곡을 틀고 등장하여 불꽃, 독무, 샤이닝 위저드 공격을 타다스케에게 사용하였다. 이후 오칸이 엘리미네이터로 마무리하며 승리를 거두었고. 승리에 자아도취해 있던 오칸에게 독무를 내뿜고 퇴장하였다.

  • AEW 램페이지 그랜드 슬램 2022 등장 (22.09.21 미국 뉴욕 퀸스 아서 애시 스타디움)
버디 매튜스의 공격으로 위기에 처한 스팅을 구출하며 깜짝 등장하였다! 이후 스팅이 무타의 은퇴 대회에 참전한다는 소식이 발표되었다. 이는 22년만에 TNT 방송국이 진행하는 레슬링 쇼에 등장한 셈.[29]

이후 신일본 고라쿠엔 홀 대회에서 야노 토루를 상대하던 오칸을 습격하였다! 11월 20일 신일본 x 스타덤 합동 대회에서 오카다 카즈치카, 야노 토루와 함께 팀을 맺어 그레이트-O-칸, 제프 콥, 아론 헤나레UNITED EMPIRE를 상대하게 되었다. 오칸이 독무를 흡수하여 사용하는 반전을 보여주었지만 오히려 아군을 공격해버렸고 오칸에게 무타가 독무를 사용하며 응징한다. 이후 경기는 오카다가 승리로 마무리 지었고 오카다와 악수 대신 공중에 독무를 내뿜으며 홀로 퇴장하였다. 이후 백스테이지에서 오카다와 야노, 오칸 그리고 신일본에게 작별인사를 고했다.

  • NOAH "THE NEW YEAR" 2023 (23.01.01 일본무도관)
WWE 소속의 나카무라 신스케와의 싱글 경기가 결정되었다! 메인이벤트로 편성된 시합에서 나카무라와 경기를 펼쳤고 무타는 대놓고 독무를 사용하는 등의 거친 플레이를 보여주었다. 그러다가 끝내 나카무라가 독무를 뿜으려는 무타에게 키스를 통해 독무를 흡수했고 나카무라가 독무에 이은 킨사샤로 승리를 가져갔다. 영상 이후 두 사람이 함께 포즈를 취하며 훈훈하게 퇴장하였다.

  • THE GREAT MUTA FINAL "BYE-BYE" (23.01.22 요코하마 아레나)
그레이트 무타로서의 마지막 경기. 무타의 라이벌이기도 했던 AEW 소속의 스팅 그리고 스팅과 함께 하는 다비 알린과 함께 팀을 맺어 6인 태그 매치를 끝으로 마계의 문을 닫겠다고 발표되었다. 상대는 27년 전, 도쿄 돔에서 승부했었던 하쿠시와 AKIRA, 마루후지 나오미치의 팀으로 결정되었다. 당일, 그레이트 무타의 아버지 기믹인 그레이트 카부키가 등장해 퍼포먼스를 펼쳤다. 이후 유혈낭자한 경기를 보여주었고 하쿠시에게 샤이닝 위저드로 직접 승리를 거두었다. 이후 하쿠시가 가져온 소토바[30]에 하쿠시의 피로 를 적고 퇴장하여 끝을 알렸다.[31]


2.6.2.2. 무토 케이지 은퇴 로드[편집]

  • PRO-WRESTLING LOVE FOREVER.1 ~THE FINAL COUNTDOWN~ (22.07.16 일본무도관)

대망의 은퇴로드 첫 경기 THE FINAL COUNTDOWN에서는 키요미야 카이토와 맞붙었고. 키요미야의 피겨 포 레그락에 패배하였다. 이후 무토의 상징 기술인 샤이닝 위저드, 드래곤 스크류, 피겨 포 레그락을 키요미야에게 물려주고 지도해주었다.

  • DRAGON GATE KOBE WORLD 2022 ~울티모 드래곤 데뷔 35주년 기념 대회~ (22.07.30 고베 월드 기념홀)

드래곤 게이트의 고베 월드 기념홀 대회에 깜짝 등장해 개그자버 레슬러 '이대로 이치카와'를 상대로 승리를 거두었다.

  • PRO-WRESTLING LOVE FOREVER.2 ~OUTBREAK~ (22.09.25 아이치 돌핀즈 아레나)

후지타 카즈유키와 팀을 맺어서 후나키 마사카츠 & 나카지마 카즈히코 팀을 상대하였고 나카지마에게서 직접 승리를 거두었다.

  • PRO-WRESTLING LOVE FOREVER.EX FUKUOKA FINAL ~TRANS MAGIC~ (22.10.16 후쿠오카 국제 센터)

본래 사인회만을 펼칠 예정이었으나 팬들의 요구로 급히 경기가 편성되어 후쿠오카에서 마지막 경기를 펼쳤다. 코지마 사토시와 닌자 맥과 함께 팀을 맺고 마루후지 나오미치 & 잭 모리스 & HAYATA 팀을 상대했다. 경기는 무토의 어시스트로 닌자 맥이 HAYATA에게서 승리를 따냈다.

  • PRO-WRESTLING LOVE FOREVER.3 ~TRIUMPH~ (22.10.30 아리아케 아레나)

제자 타나하시 히로시와의 마지막 경기. 마루후지 나오미치와 이나무라 요시키와 함께 팀 NOAH를 이루어서 타나하시를 필두로 한 혼마 토모아키 & 마카베 토기 팀을 상대했다. 결과는 마루후지가 혼마에게 승리를 거두었다.

  • WRESTLE KINGDOM 17 무토 케이지 신일본 라스트 메치(23.01.04 도쿄 돔)
노아에서의 도쿄 돔 은퇴 경기전 신일본의 최대 이벤트 레슬킹덤 17에서 무토 케이지로서 신일본 라스트 매치를 치루며 우미노 쇼타, 타나하시 히로시와 팀을 이뤄 LIJ의 나이토 테츠야, BUSHI, SANADA를 상대한다.[32] 경기는 우미노가 BUSHI에게 승리를 거두었다.

일본 프로레슬링의 성지 중 하나인 도쿄 돔에서 나이토 테츠야를 상대로 마지막 경기를 치룬다. 경기는 나이토 테츠야가 승리를 거두었고, 경기후에 무토 케이지는 특별해설자로 나온 쵸노 마사히로를 불러 특별 경기를 가지는 연출을 보여주었고, 심판으로는 타이거 핫토리가 나왔다. 경기는 쵸노 마사히로가 겐카 킥에 이은 STF로 빠른 승리를 거두었다.


2.7. 은퇴 이후[편집]



2.7.1. WWE 명예의 전당 헌액[편집]


2023년 3월 16일(미국 시간으로 3월 15일) WWE 라이브 THE BUMP에서 릭 플레어의 소개로 그레이트 무타의 WWE 명예의 전당 헌액이 발표 되었다.[33]

이후 2023년 4월 1일 (미국시간 3월 31일) 명예의 전당 행사에 직접 참석하여 WWE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어 영광이다라는 짧은 영어 인사말과 함께 독무를 뿜으며 인사를 마무리 하였다. #

3. 경기 스타일[편집]


일본 프로레슬링 역사 가운데 "○○의 천재" 같은 이름으로 불리는 프로레슬러는 여럿 있지만, 그 중에서도 아무런 수식어구 없이 한마디로 "천재"라는 별명으로 통하는 인물이 바로 무토 케이지. 뛰어난 경기력과 강렬한 캐릭터를 겸비한 링 퍼포먼스로 일본과 북미 프로레슬링계에 큰 영향을 남겼다.

북미 프로레슬링계에서는 뛰어난 운동 신경을 바탕으로 한 경기력을 통해 이후 세대에 큰 영향을 미쳤다. 북미 프로레슬링계의 모두까기 인형으로 유명한 짐 코넷조차 무토 케이지는 그 경기력만으로도 충분히 WCW에서 선역으로 성공했을 것이라고 평한 바 있다.#

보통의 일본 레슬러들이 안토니오 이노키의 영향으로 인해 실전성을 강조받으며 스트롱 스타일을 따르는 반면, 무토 케이지는 이를 부정하며 쇼맨십을 강조하며 이를 뒷받침하는 경기력을 뽐내며 많은 이들을 설득시켰다.

프로레슬링 역사에서 선역과 악역을 넘나드는 선수들은 흔하지만, 단체 탑 선역탑 악역, 두 상반된 기믹으로 동시에 대활약하는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역사를 남겼다. 이처럼 경기력 뿐만 아니라 프로레슬러로서의 카리스마, 색기, 이른바 "꽃"이 있는 것으로 손꼽혔다.

일본 프로레슬링계에서는 끊임없이 자신의 스타일을 변화시켜나간 것과 더불어 화려한 캐릭터를 중시하는 "북미 프로레슬링" 스타일의 대변자로 유명하다. 이는 무토 케이지가 2000년대 초반 격투기 노선으로 흘러가던 신일본 프로레슬링을 떠나게 된 이유이기도 했으며, 비단 무토 자신의 경기만이 아닌 단체 운영 철학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하지만 무토 케이지는 다양한 형태의 프로레슬링이 있어야한다고 생각하는 입장이라 UWF 계열의 프로레슬링 자체가 당대에 하나의 상품으로서 성공적인 어필을 한 점은 높게 평가한다. 링크

그레이트 무타 기믹일 때 북미에서는 무토 케이지 식의 날렵한 프로레슬링으로 활동했으나, 일본 귀국 이후에는 보다 괴기스럽고 유혈이 난무하는 경기 방식으로 개성을 발휘했다.

문설트는 무토 케이지를 통해 북미 및 일본에서 널리 보급된 기술이다. 본래 오리지널 타이거 마스크의 라운딩 바디 프래즈를 따라하다 우연히 문설트 프레스를 개발하게 되었다. 초창기 무토 케이지의 문설트는 매우 높고 크게 호를 그리는 방식이었으나#, 이후에는 점점 대신 빠르고 간결히, 낮고 세게 상대를 덮치는 방식으로 변화했다. 상대가 거의 링 중앙에 있어도 날아가서 덮친다.# #

젊은 시절 신일본 프로레슬링에서 무토 케이지로 활동할 때는 날렵한 경기력과 쾌활한 기믹을 바탕으로 탑페이스의 모습을 잘 보여주었다. 이런 노선은 이후 nWo JAPAN에 합류하게 되며 턴힐을 했을 때도 근본적으로 변하지는 않았다. 데뷔전에서 덤블링 백엘보우인 스페이스 롤링 엘보#라는 기술을 선보이고, 그냥 엘보 드롭인데도 아무도 흉내낼 수 없는 간지를 가진 플래싱 엘보#를 만들었다. 유도부 출신이라서, 프로레슬링 기술을 개발할 때 유도기술에서도 영향을 받는다고 밝힌 바 있다.

전일본 프로레슬링으로 이적한 후부턴 지속적인 문설트 프레스 사용으로 인한 심각한 무릎 부상 때문에 경기 스타일에 변화를 준다. 그래서 로우 드롭킥드래곤 스크류 등으로 상대의 다리를 집중공략한 뒤 4자 굳히기로 항복을 받아내는 방식으로 경기를 이끌었다. 샤이닝 위저드##를 개발한 후에는 4자 굳히기까지 셋업무브로 하고, 다리에 힘이 빠진 상대가 자연스레 무릎앉아 자세를 취하면 적의 관자놀이를 샤이닝 위저드로 공략하는 스타일로 바뀌게 되었다. 하지만 그 이후에도 결정적인 순간에는 문설트 프레스를 사용하곤 했으나, 결국 2018년에 무릎에 인공 관절을 넣는 수술을 하게 되면서 문설트를 봉인했다.


4. 프로레슬링 외적 활동[편집]


  • 영화 역도산에서 역도산을 프로레슬링계로 끌어들인 장본인인 헤럴드 사카다 역으로 분한다. 역도산 역할의 설경구를 화려한 프로레슬링 기술로 몰아붙이는데, 이 영화에서 제일 화려한 경기 장면이다. 작중에서 다른 경기 장면은 역도산 시대의 1950~60년대 프로레슬링을 그대로 재현했기 때문에 차이가 생길 수밖에 없다.

  • 무토 케이지의 성대모사를 하는 칸나즈키라는 개그맨이 이 캐릭터로 상당히 인기를 끌면서 방송에서의 이미지가 덩달아 친숙해진다.


  • 코에이의 모바일 게임 신장의 야망 우리들의 전국과의 콜라보로 다케다 신겐 분장을 하고 등장했다.



KOF 올스타 광고에서는 장거한 코스프레를 하게 되었다.


5. 여담[편집]


  • 원형 탈모가 제법 일찍 찾아와서 30대 중반 이후에는 가운데가 휑한 캇파 머리가 되어버린 것이 멀리서도 눈에 띌 정도로 탈모가 심해졌고, 결국 WCW 원정을 마친 후인 2000년 12월 31일 오사카 돔에서 열린 이노키 봄바예 흥행에서 스킨헤드로 탈바꿈해서 등장, 이후로도 스킨헤드를 유지 중이다. 머리는 집에서 아내가 직접 밀어줬으며, 밀었을 때 아들이 그걸 보고 울었는데 너도 머리 이렇게 할래라고 했더니 조용해졌다고 한다. 소감을 묻자 스티브 오스틴빌 골드버그같은 모습을 생각하고 밀었는데 밀어보니 생각한 것과는 좀 달랐다고 했다.




  • 더 락이 그레이트 무타의 팬이라 WWE가 일본 투어를 왔을 때 그의 전화번호를 가져가서, 동료들에게 "나 그레이트 무타랑 통화한다. 쩔지?"라며 자랑했다고 한다. 더 락의 피플즈 엘보우는 플래싱 엘보를 보고 만든 거라는 이야기도 있다. 일본에 허큘리스 광고를 위해 간 더 락 앞에 무토 케이지가 허큘리스의 사자 가죽 갑옷을 입고 나타났다. 그 외에도 릭 플레어 등 많은 프로레슬러들이 그레이트 무타를 좋아한다.

  • 아내와의 결혼 과정이 꽤 재밌다. 90년대 초 동기인 쵸노 마사히로의 소개를 받아 교제를 시작했고, 결혼을 위해 예비 장인과 장모를 자신이 나오는 흥행에 초대했다. 나름 자신이 얼마나 건실한 청년인지를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었던 것 같은데 하필 그날 경기인 그레이트 무타 vs 쵸슈 리키전이 무토의 커리어에서 가진수 많은 경기들 가운데 역대급으로 살벌한 경기였고, 경기 뒤에는 얼굴도 피칠갑을 한 탓에 일반인들은 엄청난 거부감을 보이고 말았다. 그래도 본인은 나름 훌륭한 경기를 가졌다고 생각해 장인 장모를 찾아가 경기 재밌게 보셨냐고 물었지만 당연히 그걸 본 장인은 헤어지라고 종용했다고 한다. 천만다행으로 무토와 아내가 잘 설득한 덕분에 결혼에 골인해 1남 1녀를 낳고, 행복하게 살고 있는 중이다.



  • NWA 스타케이드, ROH 파이널 배틀, TNA 바운드 포 글로리 등등 북미 메이저 단체 대형 PPV 메인 이벤트 경기에 전부 참여한 선수다.[34]

  • 안토니오 이노키의 이노키즘을 정면으로 부정하고 이노키의 실전을 그렇게 싫어하고 프로레슬러 다움을 추구하고 장난기 많고 코믹한 모습과는 달리 실제 투혼 삼총사 중에서는 현피가 가장 출중하다는게 아이러니. 오히려 셋중에 실전 지향 스타일을 추구한 하시모토 신야가 실제로는 변변치 않은 현피 실력으로 나중에 오가와 나오야[35]에게 제대로 굴욕을 당한다. 그럴만도 한게 무토는 유도 시절 국대 상비군까지 간 사람이다. 이에 대해 무토는 신일본을 나오고 전일본으로 이적 당시 안토니오 이노키의 이노키즘을 비판하며 프로레슬링 무대에서조차 굳이 싸움을 잘해야 하느냐고 신일본 프로레슬링의 현 주소에 안타까움을 표시하기도 했다. 실제로 이 이노키즘으로 인해 신일본의 인기가 많이 하락하고 거의 망할뻔하기도 했다.


6. 둘러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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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레슬링 옵저버 명예의 전당 헌액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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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nsuke Sasak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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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토 케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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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지마 사토시
(Satoshi Koji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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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ji Naga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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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타 유지
(Yuji Naga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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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루후지 나오미치
(Naomichi Marufuji)
타나카 미노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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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나카 미노루
(Minoru Tanaka)
총 1명





파일:M's alliance로고.jpg
현역
마루후지 나오미치
무토 케이지
모치즈키 마사아키
미야모토 유코
후나키 마사카츠
다나카 마사토
비현역
마츠이 쥬리나
마에다 아키라


파일:신일본 프로레슬링 로고.svg 역대 G1 클라이맥스 우승자
1994

1995

1996
쵸노 마사히로

무토 케이지

쵸슈 리키

파일:신일본 프로레슬링 로고.svg 역대 월드 태그 리그 우승자
1992

1993,1994

1995
하시모토 신야 & 초슈 리키

하세 히로시 & 무토 케이지

쵸텐
쵸노 마사히로 & 텐잔 히로요시
1996

1997

1998
하시모토 신야 & 스캇 노튼

nWo JAPAN
쵸노 마사히로 & 무토 케이지


nWo JAPAN
코지마 사토시 & 무토 케이지
1997

1998

1999
nWo JAPAN
쵸노 마사히로 & 무토 케이지

nWo JAPAN
코지마 사토시 & 무토 케이지


nWo JAPAN
무토 케이지 & 스캇 노튼
1998

1999

2000
nWo JAPAN
코지마 사토시 & 무토 케이지

nWo JAPAN
무토 케이지 & 스캇 노튼


이이즈카 타카시 & 나가타 유지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Ajpw-logo.gif 역대 챔피언 카니발 우승자
2001

2002

2003
텐류 겐이치로

무토 케이지

코지마 사토시
2003

2004

2005
코지마 사토시

무토 케이지

사사키 켄스케
2006

2007

2008
타이요 케아

무토 케이지

스와마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Ajpw-logo.gif 역대 세계 최강 태그 결정 리그전 우승자
2000

2001

2002
마이크 로툰다 & 스티브 윌리엄스

무토 케이지 & 타이요 케야

코지마 사토시 & 타이요 케야
2006

2007

2008
텐코지
코지마 사토시 & 텐잔 히로요시

무토 케이지 & 조 도링

텐코지
코지마 사토시 & 텐잔 히로요시


파일:프로레슬링 옵저버 로고.png 레슬링 옵저버 뉴스레터 선정 올해의 레슬러
트리플 H
(2000)

무토 케이지
(2001)


커트 앵글
(2002)
파일:프로레슬링 옵저버 로고.png 레슬링 옵저버 뉴스레터 선정 가장 기량이 발전한 선수
커트 앵글
(2000)

무토 케이지
(2001)


브록 레스너
(2002)
파일:프로레슬링 옵저버 로고.png 레슬링 옵저버 뉴스레터 선정 최고의 레슬링 피니셔
드래곤 키드
드래곤라나
(2000)

무토 케이지
샤이닝 위저드
(2001)


브록 레스너
F-5
(2002)

파일:프로레슬링 옵저버 로고.png
레슬링 옵저버 뉴스레터 선정 올해의 경기 [★]
2002년
10월 20일
전일본 프로레슬링
삼관 헤비급 챔피언십
텐류 겐이치로(C) vs _무토 케이지_
****½

파일:프로레슬링 옵저버 로고.png레슬링 옵저버 뉴스레터 선정 5성 경기 [★]
1987년
3월 20일
신일본 프로레슬링
스프링 플레어 업
IWGP 헤비웨이트 태그팀 챔피언십 결정 토너먼트 결승전
마에다 아키라 & 타카다 노부히코(X) vs _코시나카 시로_(O) & _무토 케이지_
1991년
8월 10일
신일본 프로레슬링
G1 클라이맥스 1
A조 매치
빅 밴 베이더 vs _무토 케이지_

역대 스타케이드 메인 이벤트
1992.12.28
배틀보울 매치
우승자: 그레이트 무타

파일:rohfinalbattle.jpg
역대 파이널 배틀 메인 이벤트 [★]
2003.12.27
파이널 배틀 2003

AJPW 월드 태그팀 챔피언십
아라시(C) & 그레이트 무타(C)(O) vs 더 프로페시[36]

파일:Wrestle_Kingdom_Logo.jpg
역대 레슬킹덤 메인 이벤트[★]
2007.1.4
태그팀 매치
텐잔 히로요시(X) & 코지마 사토시 vs _쵸노 마사히로_(O) & _무토 케이지_
2009.1.4
IWGP 헤비웨이트 챔피언십
타나하시 히로시 vs 무토 케이지(C)
2022.1.8
태그팀 매치
오카다 카즈치카(C) & 타나하시 히로시 vs 무토 케이지 & 키요미야 카이토

파일:64ed9aeeb65b24236aa8731e8f9a59a1_L.0.0.webp
역대 바운드 포 글로리 메인 이벤트 [★]
2014.10.12
태그팀 매치
_그레이트 무타_(O) & _타지리_ vs 제임스 스톰 & 그레이트 사나다(X)


도쿄 스포츠 프로레슬링 대상 MVP (최우수 선수상)
하시모토 신야
(1994)

무토 케이지
(1995)

코바시 켄타
(1996)
코바시 켄타
(1998)

무토 케이지
(1999)

사쿠라바 카즈시
(2000)
사쿠라바 카즈시
(2000)

무토 케이지
(2001)

밥 샙
(2002)
미사와 미츠하루
(2007)

무토 케이지
(2008)

타나하시 히로시
(2009)


도쿄 스포츠 프로레슬링 대상 연간 최고 시합상 (베스트 바웃) [★]
1999년
5월 3일
신일본 프로레슬링
STRONG ENERGY 1999
IWGP 헤비웨이트 챔피언십
텐류 겐이치로 vs _무토 케이지_(C)
2011년
8월 27일
신일본 & 전일본 & NOAH 합동 흥행[37]
동일본대진재부흥지원 챠리티 프로레스
「ALL TOGETHER」
제 9시합 BELIEVE THE POWER OF "Prowrestling!"
이이즈카 타카시(X) & 야노 토루 vs _ 코바시 켄타_(O) & _무토 케이지_
2021년
2월 12일
프로레슬링 NOAH
DESTINATION 2021
BACK TO BUDOKAN
GHC 헤비급 챔피언십
시오자키 고(C) vs 무토 케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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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차 해외원정때 사용했던 링네임.[2] WWC - WCCW 해외원정 당시 사용했던 링네임.[3] 무토 케이지를 대표하는 또다른 악역의 자아. 설정 상으로 무타는 마계 출신이며, 무토는 무타의 대변인이다. 그래도 경력은 공유한다. 특기는 독무. 독무 외에도 불꽃 공격을 사용하기도 한다. WCCW를 떠나 NWA에 스카웃되었을때 첫선을 보였다. 왜 '무토'가 아니고 '무타'인가하면 원래 이 기믹 자체가 WCW에 출전했을 때 선보인 기믹인데 링 아나운서들이 영어로는 'Mutoh'인 그의 이름을 제대로 발음하지 못해서 링 콜이 통일이 안되자 통일을 위해 발음이 좀 더 쉬운 'Muta'로 바꿨기 때문. 더불어 원래는 다양한 페이스 페인팅이 상징이었으나 무토의 어쩔수 없는 탈모 유전자의 영향으로 삭발 이후에는 가면으로 변경했다.[4] 2000년생. 프로덕션 오기 소속으로 아역배우 출신의 배우. 무토 케이지 슬하 1남 1녀중 둘째로 오빠와는 4살 터울.[5] 독안개. 링 아래 등에 미리 준비해놓은 색소가 들어간 작은 주머니를 타이밍을 봐서 입안에 넣고, 상대방이 달려올 때 얼굴을 향해 뿜는 기술이다. 색상은 주로 녹색. 안면에 독안개를 받은 상대방은 일단 시각이 차단되며, 독성에 당하여 엄청나게 괴로워하기도 한다.[6] 첫 미국 원정 귀국 이후의 첫 기믹이자 별명. The Final Countdown에 맞춰 손에 우주비행사 헬멧을 들고 '우주'를 모티브로 하는 기믹이었으나, 기믹 자체가 애매해서 무토의 유일한 실패 기믹으로 남고 말았다.[7] 1998년 7월 무릎 수술 복귀 이후로부터 사용하던 별명.[8] 2001년 경 전일본 프로레슬링으로 이적 후 샤이닝 위저드를 개발 하고 올해의 레슬러에 뽑히는 등 어마어마한 활약을 하자, 매스컴이 "천재를 초월한 마술사"라는 문구를 영어로 바꿔서 만든 별명.[9] NOAH 정식 입단 후에는 이쪽도 공식 별명으로 사용하고 있다.[10] '스페이스 론 울프' 시절의 입장곡. 미국 원정 시절 스트립쇼를 보러 갔을때 스트리퍼가 이 곡에 맞춰 스트립댄스를 추고있는걸 보고 사용하기 싫어져서 이 곡을 사용하는 것을 그만두었다.[11] 덴마크의 프로그레시브 메탈 밴드로얄 헌트의 리더 안드레 안데르센이 작곡한 테마곡.[12] nWo Japan 가입 후에 사용하기 시작한 TRIUMPH의 어나더 버전. 인트로 부분이 바뀌고, 전체적인 반주를 기타가 담당하는게 가장 큰 특징이었다.[13] 무토의 전일본 시절을 대표하는 테마곡. 심심하면 나오는 특유의 유리 깨지는 소리는 2003년경부터 쓰였다고 한다.[14] 스트리퍼 쇼크를 겪은 무토가 바꾼 테마곡. 친구인 하시모토 신야가 이미 탈모가 진행중이었던 무토를 놀려먹으려고 이 곡 시작 부분에 맞춰 'ムトちゃんがハゲるぅ~(무토 머리가 벗겨진당~)'라고 개사해서 놀려 사용을 중지 했다. 2013년 WRESTLE-1 창단 이후에는 다시 이 곡을 쓰고 있다.[15] HOLD OUT의 일본 전통음악 버전.[16] 그레이트 무타 협주곡. 이쪽은 TRIUMPH의 일본 전통음악 버전. 영어로는 Great Muta Concerto이라고 표기하며 뜻은 동일하다.[17] 같은날 입문한 동기, 쵸노 마사히로도 이 경기가 데뷔전이었다.[18] 공식적인 은퇴 시합은 나이토 테츠야와의 시합이나 시합 종료 이후 즉석에서 쵸노 마사히로와 경기를 가졌다.[19] 2002, 2004, 2007 우승[20] IWGP 헤비웨이트 챔피언인 상태에서 우승.[21] 당시 쵸슈 리키 등 신일본 프로레슬링의 선수들이 대량으로 이탈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로스터가 얇아지며 본인에게 기회가 올 수 있었고, 기본기를 다지게 하고자 기초적인 기술들로만 경기를 해야하는 영 라이온이 문설트 프레스 같이 화려한 기술을 써도 아무도 자신에게 뭐라 하지 않았다고 무토 케이지는 회고한다.[22] 최초로 독무를 선보인 프로레슬러인 그레이트 가부키는 1948년생인데, 2017년에 은퇴할 때까지 현역으로 활동하는 일본 프로레슬러 중에선 두번째로 고령이었다. 일본에서 그레이트 카부키보다 나이가 많은 최고령 현역 프로레슬러는 그레이트 코지카로, 2017년 기준 75세다. 그레이트 가부키의 딸이 TV 보고 난 이후 아버지한테 혹시 사생아 뒀냐고 물어봤었다고 한다.[23] 무서운 사실은 그 무릎에서 나온 연골들을 포르말린병에 넣어 보관중이라고 한다.[24] 무토 이전의 그랜드 슬램에 해당되는 두 사람은 바로 사사키 켄스케와 타카야마 요시히로다.[25] 이전에는 텐류 겐이치로의 삼관 헤비급 챔피언으로 52세였다.[26] 또한 FREE가 아닌 정식 계약으로 메이저 3단체에 몸을 담아본 최초의 레슬러가 되었다.[27] 첫 번째는 타카야마 요시히로.[28] 그레이트 무타가 일본에서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낸 장소가 오사카이다.[29] 그리고 정확히 22년전 WCW 하우스 쇼에서 마지막 경기를 치른 날이기도 한다. 이때 상대는 스팅.[30] 卒塔婆. 죽은 사람의 공양을 위해 경문 구절 등을 적어 묘지에 세운 위쪽이 뾰족하고 갸름한 나무 판자.[31] 27년 전의 도쿄 돔 경기에선 무타가 하쿠시의 피로 소토바에 를 적었었다.[32] BUSHI, SANADA는 무토가 사장일 적의 전일본에서 프로레슬링에 데뷔하였다.[33] 나카무라 신스케가 무토 케이지의 은퇴식 경기에 참석하면서 WWE와 무토 케이지가 서로 연락이 되었다고 한다.[34] 미국의 프로레슬러 AJ 스타일스 또한 ROH 파이널 배틀, TNA 바운드 포 글로리, WWE 레슬매니아 메인 이벤트 경기에 1회씩 참여한 또 한명의 선수다.[35] 올림픽 유도 은메달리스트.[★] A B C D E F 밑줄이 승리자. 다자간 매치의 경우 이름 옆 (O)가 핀폴자, (X)가 피핀폴자.[36] 크리스토퍼 다니엘스(X) & 댄 마프[37] 동일본 대지진 회복을 위한 기금 조성 목적으로 도쿄 스포츠의 주최로 처음으로 일본 프로레슬링계의 메이저 3단체가 함께한 합동 흥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