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 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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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1. 개요
2. 역사
2.1. 모터스포츠 전설의 시작
2.2. 규정 변경과 그룹 C의 쇠퇴
3. 그 외
4. 출전 메이커와 차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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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적인 그룹 C 레이스카 포르쉐 956.
포르쉐를 꺾고 르망의 최강자로 올라간 재규어 XJR-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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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츠의 르망 복귀 레이스카 자우버 메르세데스 C9.
반켈 엔진 유일의 르망 우승 레이스카 마쓰다 787B.[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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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룹 C의 규정이 만들어낸 최강의 레이스카 닛산 R92CP.
그룹 C 레이스의 마지막을 장식한 푸조 905.


그룹 C 클래스 최고의 시절이었던 1989년 르망 24시 레이스 영상.


1. 개요[편집]


Group C Class (Gr.C)

1982년 FIA에 의해 만들어진 모터스포츠 카테고리. 당시 존재하고 있던 그룹 5(하드탑 투어링 프로토타입, 실루엣 포뮬러)와 그룹 6(오픈탑 2시트 프로토타입, 스포츠 프로토타입)를 대체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공도 버전은 존재하지 않아도 되는 카테고리이므로 경주차만 완성되면 호몰로게이션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전신인 5와 6도 그랬듯, 랠리 겸용이었던 A, B와 달리 랠리 참여는 불가능하다.

2. 역사[편집]



2.1. 모터스포츠 전설의 시작[편집]


1970년대 말, 오일 쇼크의 영향으로 모터스포츠 자체가 정체현상에 빠져있었다. FISA는 완성차 메이커들의 적극적인 참가를 노리고 규정을 대폭 개정하여 1982년 1월 1일부터 알파벳으로 나뉜 그룹 A, B, C라는 새로운 규정을 적용했다. 그 중에서도 실루엣 포뮬러, 그룹 5와 스포츠 프로토타입, 그룹 6를 대체하는 신 규정이[2] 바로 이 그룹 C다. 그룹 C 규정이 생겨나면서 WEC(세계 내구 선수권, 1986년부터 WSPC, 세계 스포츠 프로토타입 선수권)이 만들어지고 그룹 C 레이스카는 WEC에서 경기를 치르게 되었다.

그룹 C는 세태를 반영한 특이한 규정으로 만들어졌다. 82년 당시의 규정을 살펴보면

  • 자회사제라면 엔진형식 제한 없음, 배기량 제한 없음
  • 연료 사용제한, 연료탱크는 100L까지
  • 차체는 길이 4.8m, 폭 2.0m, 차고 1.1m 이하, 오픈카 불가, 하드탑만 허용
  • 운전석 밑에는 1.0mx0.8m의 평평한 면을 만들 것
  • 차체 중량은 800kg 이상

쉽게 정리하면,

엔진은 아무거나 써도 되고, 차체도 규정 안이라면 니네 맘대로 만들어라. 다만 한번 주유에 최대 100L의 연료만 넣어라.


이 규정은 이전에 없던 매우 자유로운 규정이었다. 이 규정의 영향으로 수 많은 메이커가 참가를 결정하게 되고 그 영향으로 그룹 C 레이스카는 매우 다채롭고 풍부한 차량이 바글바글 모이게 됐다.

또한, 오일 쇼크의 경험과 기술 진보에 따라 고연비와 빠른 속도를 동시에 실현해야하니 메이커에게 있어서는 도전이었고 동시에 자사의 기술을 광고할 수 있는 좋은 무대였다. 포르쉐, 재규어, 벤츠, 닛산, 마쯔다등 대기업이 계속 참가하면서 WEC와 WSPC는 크게 번창하였다. 차체부터 엔진까지 만들어낼 여력이 없었던 약소 팀이나 개인 팀도 포르쉐가 자사의 레이스카를 판매하면서부터 1983년부터 저예산으로도 참가 가능한 그룹 C 주니어[3]가 신설되면서 더 많은 참가를 이끌었다. 특히 포르쉐르망 24시최종보스나 다름없는 존재였다. 포르쉐 956/962는 그룹 C가 창설된 1982년부터 1987년까지의 르망 24시에서 6년을 내리 우승했는데, 특히 1983년은 9위를 제외한 9대의 포르쉐 956이 1위부터 10위까지 독식하였다. 이는 이것을 저지하고 1988년에 우승한 재규어 XJR-9과 1989년에 우승한 자우버 메르세데스 C9이 고평가 받는 이유이기도 하다.

WSPC 뿐만이 아니라 일본에서도 83년부터 전일본내구선수권, 즉 JSPC(전일본스포츠프로토타입카내구선수권)이 개최되면서부터 그룹C에 수 많은 일본 메이커가 참가하는 계기가 되었다.

비록 연료규정이 있었지만 그룹 C 클래스의 속도는 말그대로 상상을 초월했다. 시케인이 없던 시절의 라 사르트 서킷의 6km 직선 코스인 뮬산느 스트레이트에서 1982년에 이미 시속 360km/h를 돌파, 1988년의 르망 24시 본선 중, WM Peugeot의 P88[4]이 공식 시속 405km/h를 기록하였으며[5] 1989년엔 예선전에서 자우버 메르세데스 C9이 401km/h를 기록하는 등 어마어마한 속도를 자랑했다. 게다가 차체형상에 대한 규정이 매우 느슨했기 때문에 엄청난 효율의 공력성능을 재현할 수 있어서 당시 F1을 가볍게 뛰어넘는 2~4톤 가량의 다운포스를 가질 수 있었다. 심지어 페이스카가 서킷에 들어왔을 때에도 페이스카는 상대도 되지 않는 연비를 자랑하며 몇 시간이나 전력으로 주행할 수 있었다.

화려한 무늬로 수놓은 레이스카들이 호쾌한 엔진 소리를 내뿜으며 시원한 속도로 질주한다는 그룹 C의 특징은 당시 모터스포츠가 폭넓게 사랑받았던 이유였다.

2.2. 규정 변경과 그룹 C의 쇠퇴[편집]


1988년부터 1989년에 걸쳐 FISA는 기자회견을 통해 그룹 C의 차량규정을 1991년부터 대폭 변경하고 WSPC에서 SWC(스포츠카선수권)으로 개명하고 레이스 내용도 크게 바꾼다는 발표를 했다. 이 새로운 규정은

  • 디젤, 2행정, 반켈, 터보 엔진 금지, 배기량은 자연흡기 3.5L로 제한
  • 연료 사용 제한 폐지
  • 내구 레이스에서 단거리 레이스로 변경
  • 차중은 750kg 이상

당시 F1의 시청율이 그룹 C에게 서서히 밀리고 있었고 때마침 터보 엔진이 폐지되고 자연흡기 엔진으로 전환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3.5L라는 배기량은 F1과 같은 배기량으로 그룹 C와 F1의 엔진을 어느정도 공통화하여 그룹 C에 참가하는 팀을 F1에도 참가하게 만들기 위한 전략이었다. 내구 레이스에서 단거리 레이스로 바뀐 것은 TV방송이 시간을 맞추지 못하는 것도 있지만 이 역시 F1에의 참가를 유도하기 위한 것이었다.

쉽게 말해서,

레이스 시간이 너무 길면 좀 곤란하니까 좀 빡빡한 규정으로 교체. 이러면 연비 경쟁이 의미가 없으니까 연료는 가솔린이면 맘대로.

그리고 그룹 C 출전하는 메이커는 포뮬러 나가라.


재규어는 나가긴 했다. 개판쳐서 그렇지.

그야말로 그룹 C의 뿌리부터 뒤흔드는 변화였다. 실제로 1991년 SWC의 신규정이 적용된 후 참전한 팀을 보면 재규어, 푸조, 토요타, 메르세데스 등 거의 대기업이었다. 워크스 활동을 중지한 포르쉐와 개발이 늦어져 참가하지 못한 닛산을 제외하고서라도 수많은 중소규모의 팀과 개인 팀이 사라진 것이다. 새로운 규정의 그룹 C 레이스카는 규정의 변경폭이 너무 컸기 때문에 구 규정에 맞춰서 만들어진 차량을 개량해서 쓸 수가 없었다. 차체는 어떻게 한다해도 엔진은 새로 개발하던가 어디서 사오던가 해야하는 상황. 새로 만들자니 돈이 너무 들고 엔진을 사오자니 개인팀에서도 구매할 수 있는 가격으로 제공할 수 있는 메이커는 그 어디에도 없었다. 즉, 중소 규모의 팀과 개인 팀은 그룹 C에서 쫓겨난 것이나 다름 없었다.

이와 같은 이유로 레이스에 참가하는 수는 90년의 WSPC부터 큰 폭으로 감소했다. 게다가 대기업들도 새로운 규정에 맞춘 모델을 시간내에 개발하지 못하여 레이스에 참가하지 못했기 때문에 FISA는 이대로는 경기를 치룰 수 없다고 판단, 1991년 단 한 해만 구 규정의 레이스카의 참가를 허용했다. 하지만 구 규정의 레이스카가 새 규정에 따라 만들어진 레이스카에게 이기면 곤란했기 때문에 모든 레이스카가 150kg의 중량 핸디캡을 받았다. 게다가 내구 레이스용으로 만들어진 레이스카가 조금 더 가볍게 만들어진 새 규정의 레이스카에게 속도로 이길 수가 없었다. 이 때문에 1991년에는 개인 팀도 어느정도 남아있었지만 대부분 1992년부터 참가를 포기했다.

이런 상황으로 인해 인기가 점점 떨어지고 1991년을 끝으로 메르세데스와 재규어가 참가를 포기, 1992년에는 실질적으로 토요타와 푸조만의 경기가 돼버렸다. ACO와 FIA는 이 카테고리를 보낼 때가 됐다며 대체 클래스인 르망 프로토타입을 발표하고 1993년부터 그룹 C를 대체하기로 결정했다. 1982년부터 모터스포츠계의 르네상스라 불리던 그룹 C는 1992년을 끝으로 역사 속으로 사라졌고, 2001년을 마지막으로 그룹 C는 LMP1에게 최고 클래스 자리를 넘겨주면서, 모든 알파벳 그룹은[6] 전멸했다.

3. 그 외[편집]


당시 사용되던 엔진은 상상을 초월했다. V8은 기본에 V12도 심심찮게 보인데다 트윈터보는 기본장비였고, 4로터 로터리엔진을 NA로 돌려버린 차량(마쓰다 787B)도 있었다. 배기량도 끝장이었는데 포르쉐의 L6 수평대향엔진 2.65L부터 시작하여 재규어의 V12엔진 7.4L까지 수많은 배기량이 존재했다. 특히 닛산은 VRH35Z라는 엔진을 1990년에 사용했는데 이 엔진은 3.5L V8 트윈터보 엔진으로 결승전에선 900마력, 예선에선 가볍게 1100마력까지 올려(...)사용했고 오버홀을 하지 않고도 레이스를 몇 번이나 뛸 수 있었다.

4. 출전 메이커와 차량[편집]


그룹 C/역대 레이스 카 목록 참고

파일: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__CC.pn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3-11-14 21:44:06에 나무위키 그룹 C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

[1] 레이스카 본네트에 붙어있는 RENOWN 스폰서는 일본의 패션기업 레나운이다. 한국에서는 아놀드파마 브랜드로 의류를 생산하는 동일레나운이 일본 레나운과의 합작기업이다. 하지만 결국 2020년파산했다.[2] 그룹 A는 투어링 카였던 그룹1~2, 그룹 B는 그랜드 투어링 카였던 그룹 3~4를 대체했다.[3] 후에 C2로 개명.[4] 이 팀은 목표가 단 하나, 르망에서의 최고속도 기록으로도 유명했다. 비공식 별명으로 SPEED KING이라고 칭하는 곳도 있을 정도.[5] 실제론 스피드 트랩에 407km/h를 찍었는데 당시 푸조의 신차인 405의 홍보용으로 405km/h로 낮춰졌다. 물론 407도 나중에 출시된다.[6] B는 온로드에서는 강력한 C나 저렴한 A에 비해서 매력을 느끼지 못했고, 오프로드에서는 WRC에서 대형 사고를 쳐서 단명했고, A는 그나마 오래 가긴 했으나 1993년 스카이라인 GT-R이 쓸고간 온로드 대회 폐지, 2001년 WRC 신 규격 발표와 함께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