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독립 전쟁

덤프버전 :





[[그리스|

파일:그리스 국기.svg

그리스
관련 문서
]]

[ 펼치기 · 접기 ]
상징
국가 · 국기 · 국장 · 올리브
역사
역사 전반 · 미노스 문명 · 고대 그리스 · 헬레니즘 제국 · 동로마 제국 · 파나리오테스 · 그리스 독립 전쟁 · 그리스 제1공화국 · 그리스 왕국 · 그리스-오스만 전쟁· 그리스 제2공화국 · 그리스 군사정권
지리
행정구역 · 펠로폰네소스 반도 · 할키디키 반도 · 이오니아 해 · 에게 해 · 도데카니사 제도 · 레스보스 섬 · 크레타 · 키클라데스 제도 (산토리니) · 에우보이아 · 코르푸 · 히오스 섬 · 델로스 섬 · 트라키아 · 올림포스 산
정치·치안·사법
정치 전반 · 그리스 대통령 · 그리스 총리 · 그리스 의회
외교
외교 전반 · 유럽연합(탈퇴 논쟁) · 여권
경제
경제 전반 · 드라크마(폐지) · 유로
국방
그리스군 · 육군 · 해군 · 공군 · NATO
교통
아테네 엘레프테리오스 베니젤로스 국제공항 · 에게안 항공 · 아테네 지하철 · 코린토스 운하
문화
문화 전반 · 그리스 로마 신화 · 그리스 교회 · 영화 · 그리스 요리 · 그리스 축구 국가대표팀 · 그리스어 (고전 그리스어 · 코이네 그리스어) · 렘베티카 · 세계유산 · 관광 · 필헬레니즘
사회
그리스 마피아
민족
그리스인 · 흑해 그리스인 · 우룸인 · 그리스계 러시아인 · 그리스계 미국인 · 그리스계 캐나다인 · 그리스계 호주인 · 그리스계 멕시코인 · 그리스계 브라질인 · 그리스계 아르헨티나인 · 그리스계 칠레인



파일:Georg-Perlberg-1807-1884-Siege-of-the-Acropolis-during-the-Greek-War-of-Independence.jpg
아크로폴리스 공성전

그리스어: Ελληνική Επανάσταση (그리스 혁명)
오스만어: يونان عصيانى (Yunan İsyanı, 그리스 봉기)
튀르키예어: Yunan İsyanı, Yunan Bağımsızlık Savaşı (그리스 독립전쟁)
영어: Greek War of Independence

1821 ~ 1829. 9. 12

1. 개요
2. 배경
3. 전개
4. 종전


1. 개요[편집]


1821년 그리스 혁명가들이 그리스를 지배하던 오스만 제국에 봉기하여 일어난 독립 전쟁. 최종적으로 그리스가 서구 열강인 대영제국, 프랑스 왕국, 러시아 제국의 지원을 받아 전쟁에서 승리했으며 그 결과로 그리스 제1공화국이 탄생했다.

2. 배경[편집]


그리스는 15세기에 콘스탄티노폴리스가 함락된 후 몇 세기 동안 오스만 제국의 지배를 받았다. 그동안 그리스에서 봉기가 몇 차례 일어났지만 매번 성공을 이루지 못했다가 근대에 이르러 19세기 유럽을 휩쓴 민족주의의 여파로 그리스에서 독립을 향한 열망이 더욱 커졌다. 1814년 "친우회"(Φιλική Εταιρεία, 필리키 에테리아)라는 비밀 조직이 결성되어 그리스 해방 운동을 벌였다.

친우회는 펠로폰네소스 반도, 다뉴브 공국, 코스탄티니예 등지에서 반란을 일으킬 계획을 세웠는데 반란은 1821년 3월 25일에 계획되었다. 그러나 친우회의 계획은 오스만 당국에 의해 발각되어 반란이 앞당겨졌다.

3. 전개[편집]


첫 번째 반란은 1821년 2월 21일 (또는 3월 6일) 다뉴브 공국에서 시작되었다. 혁명 지도자인 알렉산드로스 입실란티스가 오스만 치하 왈라키아에서 봉기를 일으킨 투도르 블라디미레스쿠와 합세하기 위해 프루트 강을 건너 오스만 치하의 다뉴브 공국으로 진군했으며 이 사건은 그리스 독립 전쟁의 시작을 알렸다. 오스만 제국은 정교회에 책임을 묻고 코스탄티니예에서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와 정교회 인사들, 수많은 민간인들을 처형했다. 입실란티스는 러시아의 지원을 받아 남하할 예정이었지만 러시아와의 관계가 틀어져 지원을 받지 못했다. 다뉴브에서 입실란티스는 부쿠레슈티를 점령하는 것에는 성공했지만 다뉴브에서의 반란은 얼마 못 가 진압되었다.

한편 펠로폰네소스 반도는 총독의 부재를 틈타 반란을 일으켰고 테오도로스 콜로코트로니스(Θεόδωρος Κολοκοτρώνης)가 이끌던 그리스 독립군은 펠로폰네소스를 중심으로 세력을 확장했으며 뒤이어 크레타 섬, 마케도니아, 그리스 중부에서도 반란이 잇따랐다. 그리스 독립군은 점령지의 유대인, 무슬림, 오스만 제국의 동조자로 의심되는 기독교인들을 학살했으며 오스만 제국은 아나톨리아, 크레타, 콘스탄티노폴리스, 키프로스, 마케도니아, 에게 해 제도에서 그리스인들을 학살했다.

1822년 1월 알렉산드로스 입실란티스는 독립을 선언하고 헌법을 제정했다.

그러나 그리스의 파벌들이 서로 간의 내전으로 약해졌고 오스만 파디샤마흐무트 2세는 이집트 총독인 메흐메트 알리에게 지원을 요청했다. 메흐메트 알리는 영토를 얻는 대가로 반란을 진압하기 위해 그의 아들 이브라힘 파샤와 함께 그리스에 군대를 보내기로 동의하였다. 이브라힘은 1825년 2월 펠로폰네소스 반도에 상륙하여 펠로폰네소스의 대부분을 점령했다. 메솔롱기는 1826년 4월 오스만에 의해 함락되었으며 아테네도 함락되었고 혁명은 실패한 것처럼 보였다.

그때 러시아, 영국, 프랑스가 개입을 결정했고 연합군은 1827년 해군 함대를 그리스로 보냈다. 오스만-이집트 연합 함대가 이드라 섬을 공격한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유럽 삼국 연합 함대는 나바리노에서 오스만 해군을 요격했다. 나바리노 해전에서 연합군이 승리함으로써 오스만 제국의 상륙을 저지하는 데 성공했다. 1828년 이집트 군대는 프랑스 원정군의 압력으로 철수했다. 펠로폰네소스 반도의 오스만 수비대는 항복했고 그리스 독립군은 그리스 중부를 탈환했다.

4. 종전[편집]


1829년에 오스만 제국은 러시아와 아드리아노플 화약을 맺고 그리스의 독립을 인정했다. 같은 해에 그리스는 런던 회의에서 국제적인 독립 국가로 인정받았다. 그러나 열강의 간섭으로 그리스는 공화국 대신 군주국으로서 독립하게 되었다. 열강은 바이에른 왕국의 왕자 오토를 그리스의 초대 왕 오톤으로 세웠다.

이 전쟁으로 오스만 제국 역사상 처음으로 오스만 제국 산하의 민족이 독립해 떨어져나가게 되었다. 다만 이때 성립된 그리스인의 민족국가는 봉기의 근원지였던 펠로폰네소스 반도와 아티카 주변만을 포함하고 있었고 여전히 다수의 그리스인들은 오스만 제국의 산하에 있었다. 이후 그리스는 현재의 영토를 확보하게 되는 1912년 발칸 전쟁까지 천천히 오스만 제국이 점령하던 그리스 반도와 지중해의 섬 지역 영토를 병탄해 나갔다.


파일: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__CC.pn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3-11-14 22:25:32에 나무위키 그리스 독립 전쟁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