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불가리아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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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역사적 관계
2.1. 고대
2.2. 중세
2.3. 19세기
2.4. 20세기
2.5. 21세기
3.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그리스불가리아의 관계에 대한 문서이다. 그리스와 불가리아는 역사, 문화에서 관련이 깊고 오늘날에는 둘 다 정교회를 믿고 있으나 그와 동시에 발칸반도 역내 주도권을 두고 갈등도 있는 편이다. 양국은 공통적으로 러시아와의 관계가 매우 좋고 튀르키예와는 사이가 껄끄러운 편이다.[1]


2. 역사적 관계[편집]



2.1. 고대[편집]


고대 그리스와 오늘날 불가리아에 해당하는 트라키아 지역과 관계가 깊었다. 지금의 불가리아에는 슬라브족들이 정착하기 전에 트라키아인들이 거주하고 있었다. 트라키아인들은 그리스와 교류를 많이 했고 무역도 활발했다. 트라키아인 용병들은 주로 투창병인 펠타스트로 그리스 내 여러 폴리스에 고용되어 활약했다. 그리스인들도 오드뤼사이 왕국에 정착하면서 트라키아인들은 그리스인들과 서서히 동화되었다. 헬레니즘 시대 이후 오늘날 불가리아에 해당하는 지역은 로마 제국의 일부가 되었다. 서기 4세기 로마 제국이 동로마 제국, 서로마 제국으로 분리되었을 때에 그리스 지역과 불가리아 지역은 동로마 제국의 일부가 되었다.

2.2. 중세[편집]


동로마 제국당시에 슬라브족들이 이동하면서 불가리아 지역과 그리스 지역에 슬라브족들이 많이 정착했다. 동로마 제국의 영향으로 그리스와 불가리아에 정착한 슬라브족들은 정교회를 믿게 되었다. 그리스 반도 내 슬라브인들은 다시 그리스인들과 완전히 동화한 반면 불가리아의 경우 튀르크계 불가르족 보야르와 슬라브계 신민들이 정교회 아래 독자적인 슬라브 정체성을 발전시키며 불가리아인의 기원이 되었다. 불가리아인은 그리스 문자를 개량해 받아들였고 이는 동유럽 정교회 문화권에서 폭 넓게 사용되는 문자 체계인 키릴 문자가 되었다. 동로마 제국에서 제1차 불가리아 제국은 독립적인 지위를 누리며 종종 동로마 제국과 전쟁을 치루었다.

바실리오스 2세 치세 불가리아 제1제국은 멸망하여 동로마 제국으로 편입되었으나 이후 동로마 제국이 약화되자 불가리아 제2제국이 독립하였다. 동로마 제국이 오스만 제국에 의해 멸망당한 것과 마찬가지로 제2차 불가리아 제국도 오스만 제국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오스만 제국 지배 시절 불가리아와 그리스 모두 정교회를 믿었기 때문에 밀레트 제도에서 “룸 밀레트”로 분류되었고 오스만 제국 시절 불가리아의 행정은 상당 부분 파나리오테스라는 그리스인들이 맡았다.


2.3. 19세기[편집]


19세기에 오스만 제국에서 독립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러시아 제국의 지원으로 그리스와 불가리아는 독립했다. 그리고 양국은 오스만 제국에서 독립한 뒤에 수교했다.


2.4. 20세기[편집]


두 나라는 20세기 초반에 자기네 나라들의 최고봉(山)이 어느 쪽이 더 높은 지를 가지고 다퉜을 정도이다. 참고로 그리스에서 가장 높은 올림푸스 산은 불가리아에서 가장 높은 릴라 산맥에 있는 '무살라'보다 8m가 낮다. 그래서 당시 그리스 국왕이 국민들에게 '흙을 퍼서 올림푸스 산에 쌓으면, 올림푸스 산이 무살라보다 높아질 수 있다'고 한 적도 있다고 한다.

제2차 발칸전쟁제1차 세계 대전 당시 양국은 교전한 바 있다. 제2차 발칸 전쟁 때 불가리아는 마케도니아 지방을 그리스에게 빼앗겼으며, 제1차 세계 대전 때는 서트라키아를 빼았겼다. 서트라키아의 상실이 불가리아에게 있어 치명적이었는데, 불가리아는 지중해로 나가는 영토를 잃게 되었다.[2]

1925년 10월 19일 그리스-불가리아 국경에서 그리스군 보초병이 사살되면서 28일까지 대대적 무력 충돌사건이 일어났는데, 이 페트리치 사건국제연맹에 의한 무력분쟁의 신속한 해결이자 한계로 제시된다.

20세기에 불가리아에는 불가리아 인민 공화국이 생겨났다. 냉전당시에 양국은 사이가 좋지 못했다. 그리스도 정치적으로 소련과 사이가 안 좋았기에 북대서양 조약기구에 가입하지만, 불가리아 인민 공화국은 소련의 위성국이었기 때문에 바르샤바 조약기구에 가입했다. 냉전 이후에는 불가리아와 그리스는 우호적인 관계를 맺었다.


2.5. 21세기[편집]


양국은 역사적인 이유로 갈등이 있지만, 현재는 나토, 유럽 연합, 프랑코포니에 가입되어 있다. 또한, 러시아와의 관계에 있어서는 친러성향이 깊다. 언어적인 면에서 불가리아어그리스어의 영향을 받게 되었다. 그리스 북부에도 불가리아인들이 일부 거주하고 있고 불가리아내에도 소수의 그리스인들이 거주하고 있다.

키릴 문자를 만든 키릴로스와 메토디오스 성인이 서로 자신들의 나라 출신이라고 주장하면서 다투고 있다. 굳이 따지자면 그리스쪽 주장이 더 옳다. 키릴 형제는 현 그리스 테살로니키 출신이기 때문. 불가리아에는 온 적도 없다. 키릴 형제의 어머니가 슬라브족 출신이라는 얘기가 있는데, 불가리아의 슬라브족은 오보드리티족[3]이고 키릴 형제의 출신지인 테살로니키의 슬라브족은 스트루베니티족이다. 하지만 키릴 형제의 제자들이 불가리아로 피신하면서 그곳에서 만들어진 게 키릴 문자이기 때문에 키릴 형제가 불가리아와 아예 관련이 없는 것도 아니다.

불가리아는 이스탄불(콘스탄티노폴리스)을 차리그라드라고 부르는 것처럼 그리스의 지명인 테살로니카(Θεσσαλονίκη)를 그대로 부르지 않고 불가리아인들이 점령했을 적에 사용했던 이름인 '솔룬(Солун)'으로 부른다.

2017년 8월 7일에 그리스의 치프라스 총리와 불가리아의 보리소프 총리는 회담을 하면서 에게 해부터 흑해에 이르는 지역까지 잇는 철로신설계획을 발표했다.#


3. 관련 문서[편집]



[1] 러시아도 그리스와 불가리아와는 매우 우호적이다.[2] 물론 이 지역은 역사적으로 볼 때 그리스 문화권이긴 했다.[3] 정확히는 7개 슬라브 부족의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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