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육조선/등장인물/조선/2부

덤프버전 :

파일:나무위키+상위문서.png   상위 문서: 근육조선/등장인물/조선

이 문서에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문서가 설명하는 작품이나 인물 등에 대한 줄거리, 결말, 반전 요소 등을 직·간접적으로 포함하고 있습니다.




1. 개요
2. 신료
3. 왕실
3.1. 작중 시점 이전의 왕 ★
3.2. 평종 (平宗) ★
3.3. 이연 ★
3.4. 진해대군 ★
3.5. 순흥군 이윤 ★
3.6. 하성군 이균
3.7. 회령군 ★
3.8. 기타 종친 ★
3.9. 이준 ★
4. 기타
4.2. 윤광영 ★
4.6. 톨가 ★
4.7. 원영국 ★
4.10. 이철 ★


1. 개요[편집]


근육조선조선 2부 등장인물.

가상인물은 ★ 표시


2. 신료[편집]



2.1. 유성룡(김성원)[편집]


2부 주인공으로, 정확히는 유성룡에 빙의한 현대인 김성원.

본래는 전통 건축 관련 일을 하던 사람으로, 젊은 시절 사고로 인한 디스크를 앓고 있다가 질 나쁜 의사의 말에 속아 필요없는 수술을 한 결과 만성적인 후유증이 남았고 거기에 더해 가족에 대한 의무감 때문에 몸을 혹사해 130kg이 넘는 초고도비만에 각종 성인병을 달고 다니는 언제 훅갈지 모를 위험한 몸 상태였다.[1] 본인은 이제 슬슬 일 때려치우고 건강 챙겨야지 하면서도 항상 야근을 했고, 회사에서도 '일감 잘 물어오는 김 실장'이라고 알려질 정도의 일 중독자. 퇴근 후 집에서도 야근을 하던 어느 날, 1부 주인공인 영직이 바꾼 세계선이 적용되면서 유성룡에 빙의하게 되었다.

최영직과는 절친한 친구 사이로, 틈만 나면 서로를 씹어대면서도 전문 지식이 필요할 때 '그러고 보니 친구가 이렇게 말했는데'[2] 같은 전개가 나오기도 한다. 다만 수양대군이 영직이라는 사실은 2부 중반이 되어서야 알게 되었고, 그 전까지는 조선을 부강하게 만든 수양대군은 누군지 모르겠지만 영직이같은 놈과는 차원이 다르게 대단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스포일러][3]

헬스에 대해서는 적당히만 하고 싶어하는 편이다. 김성원이던 시절 건강 상태가 워낙 심각했기 때문에 반성의 의미에서 운동을 좀 하기는 했지만, 원래는 헬스에 별 관심이 없는 인물이었기 때문에 입신체비를 피하려고 한다. 그러나 당대 조선 최고의 헬창들인 이황, 조식, 이이에게 개조되어 훌륭한 헬창이 된다. 다만 그렇게 헬창이 된 이후에도 몇 가지 포인트에 대해서는 분노하곤 하는데, 조선을 헬스로 물들여 자기 자식이 에뮤를 두들겨 패고 자랑스럽게 말하게 만든 것, 르네상스 작품들을 근육으로 오염시킨 것, 최영직이 영직서에 자신의 실명을 거론해서 아재개그를 한 것 3가지는 도저히 용서가 안 된다고 한다.

역사에 대해서는 딱히 공부한 게 아니라서, 일반 상식이나 전통 건축을 하며 배운 정도로만 알고 있다. 그래서 당시의 명신들을 줄줄이 친구로 사귀면서도 유명한 인물 몇몇이 아니면 별 감흥이 없는 모양. 반면 본인의 분야인 전통건축 계열에서는 상당한 경력을 쌓은 전문가이다. 본업과 연관된 문화재 발굴 및 보존, 도자기 같은 분야에도 어느 정도 조예가 있고, 건축과 출신이니 도시계획이나 측량, 감리, 품셈 같은 건축가로서의 기본적인 지식이 당연히 있다. 이를 그래서 이를 응용한 수성[4]의 전문가로도 알려져 있다.

작중 유성룡이 발명하거나 관여한 분야는 너무나 다양하다. 현대적 도시건축 계획 정립, 현대 포병 운용술의 이론 창시, 도면 작성의 기초 정립, 콘크리트 발명, 품셈과 감리 개념 발명, 영창(우두) 접종을 통한 천연두 예방의 실마리 제공, 현대적 도량형 개념 정립, 현대식 발굴 및 유물 보존 기법 정립 등... 이 업적들 중 하나만 있어도 역사서에 이름이 남기에 충분한 업적들이다.[5]

게다가 최영직이 빙의한 수양대군은 범재에 가까웠으나, 김성원이 빙의한 유성룡은 당대의 손꼽히는 천재라 현대의 기억을 굳이 들여다보지 않고도 머릿속에서 바로바로 꺼내올 수 있다.[6] 그래서 작중에서는 온갖 능력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만 미래 지식을 가진 인물이 머리까지 좋은데다 본인의 의욕도 넘쳐나다보니, 일단 일을 저지르고 보는 경향이 있다.[7] 1부 주인공이었던 수양대군은 왕자로서 신하나 식솔들에게 일을 떠넘길 수 있었지만, 유성룡은 신하로서 갈리는 입장이면서도 일을 만들어내기 때문에 스스로 일을 잘 키워서 스스로 곱게 갈려들어간다. 당연히 주변 사람들은 그보다 더한 일폭탄을 떠맡게 된다. 그래서 일부 독자들은 자기가 일이란 일은 다 벌려놓고 왜 현대로 복귀해서 최영직을 탓하는가에 의문을 표시하기도 했다. 다만 중반부에 이지함이 죽으면서 생령으로 나타나 류성룡 안에 객이 들었음을 알고 같이 바둑을 두면서 하는 이야기에 따르면, 만약 류성룡이 이렇게 일에 미치지 않고 일처리를 대충대충 했으면 조선은 과도한 인구 증가를 버티지 못하고 망해서 중국의 일부로 흡수되었을 것이라는 예언을 했으니 류성룡 입장에선 이를 막기위해 동분서주 할 수밖에 없는 입장이기도 하다. 그래서 수도는 물론이고 외방에까지 일에 미치고 입신체비에 미친 사람이라는 이야기가 퍼져 있고, 옆 부서에서 대놓고 가로드립[8]으로 일귀신 서애 죽어라라고 써서 보낸다. 친구들은 유성룡이 야근을 끊는 걸 헛소리로 받아들이며, 환갑 찍고 영의정까지 되었는데도 일을 늘리다가 아내한테 편백나무 다듬이 방망이로 두들겨 맞기도 한다.[9] 말년에 밝혀진 유성룡의 관직 경력은 40년 중 최전방 외방 근무 19년, 전쟁 참전 2회에 역시 둘 다 최전방, 중앙 근무기간 동안 평균 출퇴근 시간이 새벽 4시~오후 9시였다.

다만 만들어내는 일에 얽히지만 않는다면 매우 유능한 관료로, 위로는 명나라 황제, 조선 국왕, 스페인 국왕 등 수많은 고위 인사들부터 아래로는 평범한 민초에 이르기까지 큰 인기를 누리고 있다. 당파적으로도 상초충인 이황의 제자이고, 하초충인 조식의 사위이며, 소룡파 이이와도 입신체비 학파를 같이 만든 사이이니 딱히 정적도 없다. 거기에 본인 스스로도 일 하다가 사내정치에도 신경을 써야겠다고 마음 먹고 적을 만들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특히 유성룡이 전쟁을 진두지휘했던 규슈에서는 전설적인 인기를 자랑하여, 아예 유성룡의 흑룡세 포즈를 조각한 석상을 모셔둔 신사까지 있을 정도다. 뛰어난 축성 기술을 가진 장군으로 농민들 입장에선 자신들의 목숨을 아끼는 사람이고, 일을 고되게 시키기는 하지만 그만큼 성과도 뛰어나기 때문에 유성룡 밑에 있으면 부자가 될 거라는 기대도 큰 듯하다.[10] 이 인기는 죽을때까지도 여전해서 유성룡의 장례식은 전 세계에서 사람들이 몰려들어 어지간한 관원조차도 천막을 치고 노숙해야 할 정도였다고 한다.

성격적으로는 최영직보다 좀 더 독하고 날카로운 편이다. 왕족인 수양대군과 일개 관료인 유성룡 간의 입장 차이도 있겠지만 원래 인격인 김성원이 가장으로써의 책임감 하에 아픈 몸을 일로 혹사시키며 삶의 여유를 즐겨보지 못한 채로 닳고 닳은 여파가 더 큰 듯. 아직 성격이 본격적으로 부각되기 전인 하급 관료 시절에도 자신의 정책으로 인한 부작용을 예상했음에도 '그것은 내 알 바가 아니다.' 라며 냉정히 선을 긋거나[11] 화를 참지 못하고 내수린을 행사하는 장면이 여러 차례 나오며, 심지어는 피아 할 것 없이 사람들이 잔뜩 죽어나가는 전쟁터에 여러 차례 나갔음에도 수양대군과는 달리 별다른 PTSD 묘사 또한 없다. 하지만 인성에 큰 결함이 있는 것은 절대 아니고, 나이가 들면서는 성품도 다소 온화해진다. 물론 그렇다고 사람 자체가 바뀐 것은 아니라서, 한 번 작정하면 여전히 가차없는 성깔과 행동력을 보여 준다. 완벽주의적인 성향도 있어서, 하기 싫다 싫다 하면서도 일단 맡은 일은 자기 성에 찰 때까지 하는 성격이다. 그런데 일 이외의 부분에는 무심한 면이 있는지, 친구인 권율과 이순신의 평에 따르면 자기 관심 분야 밖의 일에는 아예 신경을 끄는 맹한 구석이 있다고 한다.

이런 중요한 것에 꽂히면 죽어라 몰두하는 성격과 현대인의 실리적인 관점이 맞물려서 국왕인 이연과는 손발이 딱딱 맞는다. 명분을 무시할 수 없는 이연이 정론을 말하면서 은근슬쩍 눈치를 주면 유성룡이 뒷공작을 하고, 그 과정에서 생기는 잡음과 약간의 월권행위는 이후 이연이 적당히 수습해주면서 근신을 빙자한 휴식을 내려주는 패턴이 여러 차례 반복된다. 일개 관료가 저지르기에는 도를 한참 넘은 일처리를 유성룡이 할 수 있었던 이유 역시 국왕이 사실상 대놓고 유성룡의 뒷배를 자처했기 때문으로[12], 이를 유성룡은 실적과 이준의 대형 실책을 함묵하는 것으로 보답한다.[13]

특이사항으로, 상당한 노안이다. 2부 커버 일러스트의 앞쪽 인물이 유성룡인데, 당시 시점은 이황에게 입신체비를 전수받는 10대 후반인데도 뒤의 이황과 비슷한 연배로 보인다. 작중에서는 고작 약관인데도 주변에서 불혹이라고 볼 정도다. 본인은 빙의자의 나이가 더해진 영향인가 추측하며, 젊어서 노안이면 늙어서는 동안이라고 자기위안하고 있다. 실제로 50대에 들어서서는 오히려 나이에 비해 젊어 보인다는 소리까지 듣는다. 다만 실제 유성룡은 조선에서는 물론 일본과 명나라에서도 명성이 자자했고, 너무 잘생겨서 여자들이 난리치는 바람에 일부러 부채로 얼굴을 가리고 다녔다는 야사가 있을 정도로 미남이었다.

또한 바둑을 매우 잘 둔다. 실제 역사의 유성룡도 바둑을 잘 뒀고, 현대인 김성원도 웬만한 아마고수 수준으로 바둑을 꽤 두는 편인데다 조선 시대에 혼자서만 현대 바둑의 개념을 사용하고 있으니 동양 3국을 통틀어 적수가 아예 없다. 6명과 동시에 접바둑을 두면서도 여유가 있고 아예 귀신이 나타나서 바둑을 두지 않는 이상[14] 조선의 내로라하는 기사들도 승률 20%가 되지 않는 수준이다.

현대인 김성원의 취미는 영화감상이었기에 가끔 자신이 본 영화를 역사에서 먼저 패러디해버리기도 한다. 예를 들어 고란이 아놀드 슈워제네거를 닮았다고 만도라는 호를 붙여주거나, 애단 현에 부임했을때 강제로 내수린을 해야 하는 현실에 멘탈이 터져버려 허 도령 하회탈을 쓰고[15] 모 명작 히어로 영화역대급 미친 악당[16] 연기한다거나, 한글 전파를 위해 허균정철, 이덕형과 함께[17] 복수자전[18] 쓴다던가... 친구 최영직이 수양으로 빙의해 시대를 뛰어넘은 아재개그를 마구 시전했던 걸 보면 그야말로 유유상종이 따로 없다.

아유타야 왕국에서 3달동안 운하설계를 하러 다녀온 이후 걸린 학질 치료 후유증으로 인한 간 건강 악화로 1부의 주인공 수양대군(최영직)과 동일하게 만 69세로 사망[19]한다. 사망한 후 귀신이 되어 이지함과 바둑을 두다가 이지함이 객은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가야 한다며 되돌려보내는데, 이 날이 작가 공인으로 최영직이 객으로서 돌아오기 약 3일 전의 일[20]이다.

사망 후에는 역사상 최고의 명신으로 대우받아 대한 제국 시절에도 그의 초상화가 제발 이 자리에 나타나서 대신 일해줬으면 하는 업무지옥에 시달리던 황제의 간절한 시선을 받으며 황제의 집무실에 걸려있으며 그를 일귀신 업무의 신으로 모시는 무당까지 있다고 언급되었다. 그러면서 자신에게 유성룡과 같은 업무능력이 있었다면 황실을 해산하지 않았을거라고 언급한다. 미국(迷國)에서는 미국 건국의 아버지로 존경받으며 동상까지 세워졌고 그가 설계한 만천서원은 서애팔경(八景) 중 하나로 입신체비를 하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들려야 할 장소 중 하나로서 역기 플레이트를 공물로 바치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다.

현대에 돌아온 이후에는 본 역사의 초고도비만과 비슷하지만 다르게, 지질만 걷어내면 좋을 거라는 소리 듣는 몸이 된다. 게다가 전통 입신체비사인 최영직이 진로를 이 쪽으로 바꾸자고 할 정도로 자세가 각이 잡혀 있다. 일에 대해서도, 도면 작성 프로그램을 한국에서 만든 바람에 단축키가 싹 다 바뀌어[21] 프로그램을 제대로 다룰 수 없게 되었지만, 대신 40년간 조선시대에서 도면을 그린 경력 덕에 도면 수기작성에 대해서는 어지간한 전통건축 명인도 쌈싸먹는 최고급 인재가 되었다. 장래 직종을 전통건축 진흥재단의 전통 방식 도면작성사로 바꿀 수 있을 정도이니 앞길이 탄탄대로인 셈이다. 게다가 근육조선 세계관의 건축업은 유성룡이 일만 하다가 병으로 세상을 떠난 이후로 업무 시일을 연장하면 했지 야근은 절대 하지 않는 문화가 생겨났기 때문에[22], 최영직과 마찬가지로 원 역사에서 본인의 문제점들을 모두 개선한 셈이 되었다.

현대에서 유성룡 현대인 설이 돌았으나, 말도 안 되는 헛소리로 치부된다. 그 이유가 황당한데, 근육조선 세계관의 건축업 종사자는 야근을 비롯한 추가근무를 절대 하지 않는 원칙이 있는데 유성룡이 일만 하다 죽기 전에 왕에게 읍소하여 세워진 원칙이기 때문이다. 유성룡이 현대인이었다면 그렇게 미친듯이 일만 하고 살았을 리 없기 때문에 현대인이 아니라는 것. 역사가 뒤바뀌기 전의 근로환경을 아는 김성원은 이를 듣고 어이없어한다. 이 이야기를 퍼트린 게 영국인이었는데, 영국은 대한 제국과 라이벌 의식을 갖고 경쟁하던 사이였기 때문에 유성룡을 깎아내리기 위해 이런 음모론을 퍼트렸다고 한다.

2.2. 유운룡[편집]


유성룡의 형. 재능이 넘쳐나는 동생과 비교하면 평범한 인물이지만 동생을 질투하거나 비뚤어지는 대신 동생을 진심으로 자랑스러워 하는 맘씨 좋은 형. 천성이 감정이 풍부하고 자유분방한지라, 자유롭게 풀어주면 알아서 성과를 내지만 엄격하게 억죄이면 되려 역효과가 나는 성격이다. 실제로 장성한 이후 큐슈에 발령받아 고자[23]로 근무하지만 엄격하고 세세한 근무에 지쳐 연초에 빠질 정도로 정신적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하지만 창고에 보관한 가다랑어포에 곰팡이가 피는 것을 계기로 가쓰오부시를 만들어내면서, 이를 본 동생의 설득으로 요리사로 진로를 다시 정한다. 실제로 어릴적 닭의 품종개량에 관심을 가진 적이 있던 만큼 적성에 맞는 선택이였던 셈.

이후 당대 조선에서 가장 뛰어난 요리사로 자리잡았으며 기존의 레시피대로도 잘 만드는 것은 물론, 그 자유분방한 성격을 살려서 처음 다루는 낯선 식재료로 새로운 요리를 금방 만들어내기도 한다. 조리 실력은 유운룡이 요리를 하면 절육 중인 사람은 근처에도 가지 말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 유성룡이 필리핀에서 돌아와 휴가 중일 때, 닭의 목이나 갈비같은 부위를 싸게 먹을 방법을 찾으라는 국왕 이연의 숙제[24]를 받고 유성룡과 힘을 합쳐 최초로 고추장과 닭갈비를 만들어낸다. 이 닭갈비는 후일에도 유운룡의 호를 딴 겸암식 닭갈비로 전해진다. 제주도에서 근무하던 중 포류해온 와키자카 야스하루를 구출하는데 기력을 보충해주기 위한 배려로 미역국을 끓여주지만 미역을 보고 발광해 난동을 피우는 와키자카를 보고 마음의 상처를 입고 근육해버린다.

이후 동생과 함께 조선의 스페인 사절단에도 참가하여 오랜 항해로 기운이 쇠해진 사절단과 선원들에게 배 위에서 곰탕을 끓여주기 위해 한육탕이라는 원시적인 형태의 스톡을 선보인 것을 시작으로 그 당시엔 여러 이유로 유럽인들이 거들떠도 보지 않던 식재료[25]들을 능수능란하게 다루며 기름에 쩔어있던 당시 유럽 요리에 괴로워하던 조선 사절단들의 입맛에 맞는 음식을 만들어 주었고 이는 프랑스에서 조선 퀴진이라는 명칭으로 알려지게 된다. 그러나 당대 프랑스 왕인 앙리 3세는 기름이 빠진 담백한 요리를 좋아하지 않아 유럽의 조리법을 배울 것을 강요하고, 유운룡이 이 문제로 스트레스를 받자 유성룡이 초고도비만이던 시절의 현대 경험을 살려 마요네즈를 곁들인 츄러스, 시카고 딥 디쉬 피자, 비프커틀릿을 번으로 삼고 푸아그라를 패티로 해서 만든 푸아그라 버거 같이 보기만 해도 혈관이 막히고 간이 불어터지는 비주얼의 기름진 음식을 만들어 버린다. 연신 헛구역질을 하는 조선 사절단들과 진미중의 진미이자 대대로 이어질 보배라면서 걸신들린 듯 폭식하는 앙리 3세의 극명한 대비가 실로 일품. 그리고 이게 말이 씨가 된건지, 현대에는 노블 알리먼츠(Noble aliments)라는 이름[26]으로 프랑스 요리가 보기만 해도 구역질나는 기름에 절어있는 무언가가 되어버렸다고 한다.[27] 오죽하면 엘랑 알리먼츠(élan aliments)라는 이름의 건강식 운동을 정부에서 권장할 지경.


2.3. 유여[편집]


유성룡의 아들. 이름은 여지만 주인공은 원역사의 아들이었던 진성이라고 부른다. 장성한 후 관료로 임용되어 권율의 호주 개척단에 참여한다. 외방에 돌아다니는 일이 잦은 유성룡이 아들과 잘 놀러다니지 못하게 되자 교육을 체험 학습 식으로 이것저것 시켰는데, 덕분에 잡다한 지식을 많이 알고 있으며 XXX와 AAA를 해봤는데.하는 식으로 시범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 다만 천재인 아버지 유성룡과 다르게 자질 자체는 평범한 수준이다.
개척단의 농지에 에뮤 무리가 몰려와 농작물을 먹어치우고 농민에 상해를 입힌 사건을 계기로 에뮤 전쟁이 일어나자 다른 유생들과 함께 판금갑옷을 입고 몸소 나서 에뮤 떼들을 근육한다. 이 모습은 기록화로 남겨졌고 친가에 보낸 편지에도 넣었는데 이를 본 유성룡은 유럽의 문화유산도 모자라 호주에도 근육을 끼얹는 모습을 보고 뒷골이 당기고 만다.

후에 최영직에게 이 사건에 대해서 따지나, 최영직이 조사해보니 호주의 명물이 되어 있다고 하여, 지금도 매 년마다 에뮤, 그리고 너무 늘어나버린 낙타[28]를 근육하고 있다고 한다(...)


2.4. 퇴계 이황[편집]


유성룡의 스승. 입신체비의 두 당파인 상체파의 수장 격 되는 인물로, 부모님께 물려받은 몸을 갈고 닦아 효를 드러내는 것이 입신체비이니 가장 잘 드러나는 상체의 단련이야 말로 진정한 효라고 주장하고 있다. 물론 그렇다고 입신체비 스타일이 하체를 아예 내버려두는 수준은 아니지만.[29] 유성룡은 처음부터 입신체비에 관심이 없었으나, 이황은 이를 '너무 똑똑하다보니 같은 동작을 반복하는 입신체비에 흥미를 못 느끼는 것'이라 생각해 카누 등 여러 가지 운동으로 입신체비에 흥미를 느끼도록 유도한다. 조선 바둑 제일인 유성룡을 위해 상대가 착수하기 전까지 입신체비를 행하는 바둑을 창안하기도 했다. 신의 한 수 조선판

이처럼 유성룡이 아는 지식은 많은데 의외로 활용은 잘 못한다는 사실을 일찌감치 눈치채고 있었다. 특히 하급 관료 시절에 겉잡을 수 없이 일을 늘리는 것을 어떻게든 뒤에서 도와주고 커버치느라 상당히 고생했다고 한다. 하지만 본인이 유성룡을 완전히 챙겨주기에도 너무나 버거워서 재능이 넘치는 제자가 이를 주체 못하고 스스로 미칠듯한 업무의 수렁을 만들어 기어들어가는 것을 보면서 안타까워하는 중.

만력제가 즉위할 때쯤 원 역사에서 추증에 그쳤던 영의정에 올라 있다. 입신체비 덕분에 팔순을 넘겨 살았으며, 유성룡을 마지막으로 만났을 때도 일본을 제어할 방책을 조언해준다. 자기가 죽거든 바로 찾아오지 말고 맡은 일에 먼저 힘쓰라는 유언도 미리 전달하는데 제자의 성격을 아는 이상 그 자리에서 말하면 극구반대할테니 볼일을 마치고 돌아가는 유성룡에게 편지로 쥐어주고 유성룡이 읽기 전에 집으로 들어가버렸다.[30]

이황의 다른 제자로는 수제자 박승임, 유운룡, 김성일, 이덕홍, 정구 등이 언급된다.

2.5. 남명 조식[편집]


유성룡의 장인어른. 입신체비의 두 당파인 하체파의 수장 격 되는 인물로, 효도는 남들에게 자랑하기 위함이 아니니 겸손함을 갖추고 드러나지 않게 효를 행하는것이 옳다는 논리로 하체의 단련이야 말로 진정한 효라고 주장하고 있다.[31] 젊을 때부터 의압(벤치프레스) 100근 이상을 들지 않았다면서 3대 총합 1,000근을 찍어봤다니 말 다했다. 당연히 상체파인 이황과는 평생의 라이벌 관계. 칼 찬 선비라는 원 역사의 별명과 달리 경의검 대신 반으로 자른 대역기봉을 허리에 차고 다닌다.[32] 유성룡이 현대 지식을 기반으로 풍구를 만들어내었을 때, 편하려고 만든 발명품이 오히려 백성들을 괴롭힐 수 있다[33]는 주변의 의견 덕분에 정쟁을 무릅쓰고 보급에 나서기도 한다. 덕분에 유성룡은 조식에게 일종의 책임감[34]을 느끼고, 조식이 사위를 삼고자 할 때 수락해 버린다.

유성룡이 하주도 방어전에서 활약하던 중에 사망한다. 죽기 전까지도 막내사위를 그리워했다고.

제자로 정인홍, 조헌, 곽재우 등이 비중 있게 등장한다.

2.6. 유성룡의 아내[편집]


조식의 셋째 딸. 이름은 윤(贇). 원 역사의 부인은 이씨였으나, 자신에게서 비롯된 정쟁으로 조식이 정치적 타격을 입은 것을 안 유성룡이 책임감을 느껴 혼인했다.[35] 조식이 하체파의 수장 격이기 때문에 딸도 하체가 매우 튼튼했고, 스승덕에 상체만 단련하면 그만일줄로 알았던 유성룡은 부부 생활에서 살아남기 위해 하체도 함께 단련해야 했다. 조식의 딸들이 꽤나 유명했는지[36], 유성룡의 혼인이 결정되자 상체파인 이황이 하체를 단련시키기 시작했고, 예조 관원들까지도 조식의 딸에 대한 일화는 알고 있었다.

유성룡은 처음에는 부인이 여리여리한 편이라고 생각했지만 첫날 밤 이후 살기 위해 회임시켜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러다 과거를 보고 훈도로 도망치려 한다. 하지만 과거시험에서 유성룡이 세필로 답안을 제출한 일[37] 때문에 열받은 예조에서 보복으로 가장 가까운 강화도로 배정해 버린다. 예조에서는 이 미친놈이 성균관에 들어오면 친히 조지려고 했지만 훈도로 지망해서 낙담하던 차였는데, 이 놈이 남편 킬러인 조식의 딸과 결혼한 것을 알게 되자 왜 훈도를 지망했는지 알아채고 가장 가까운 곳으로 꽂아넣어 버린 것이다.[38] 예조 관원들은 훈도가 경기도까지 배정된다면 아예 경기도 광주로 배정했을 것이라며 아쉬워했었고 강화도로 배정된 속뜻을 알아차린 유성룡은 더더욱 하체 단련에 매진하였다.

유성룡이 워낙 대외 활동이 활발한 인물이다보니 안사람인 부인은 크게 부각되지 않았고 외방 근무가 잦더라도 크게 내색하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유성룡이 휴가를 가도 일거리를 만들어내고, 문관 주제에 최전방 전선에도 나가고, 영의정에 환갑이 되어서도 일에 미쳐 사는 꼴[39]을 보자 참다못해 편백나무 몽둥이로 남편을 두들겨팬다. 이 때 밝혀진 유성룡의 경력은 관직생활 40년 중 외방 근무 19년,[40] 그리고 나머지 21년간 평균 출퇴근 시간이 새벽 4시 출근에 오후 9시 퇴근, 두번 전쟁때 모두 최전방으로, 신혼 때를 제외하면 40년 결혼 인생의 대부분을 거의 과부나 다름없게 살았다.

물론 부인도 양반가 출신이었고 입신체비를 익힌 사람인지라 유성룡이 충신이고 옳은 일을 한다는 것을 이해했다. 그렇기에 휴가에 가족여행을 나와서도 일거리를 만드는 정말 못 봐줄 일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꾹 참고 유성룡을 지지했다. 그러나 영의정까지 된 양반이 또 머나먼 북방까지 가서, 차라리 큰 성을 가라고 사정사정을 했는데도 굳이 작은 성을 건드려 또 일폭탄을 터뜨리자 설움에 받쳐 유성룡에게 매타작을 놓은 것. 유성룡도 자신이 잘못한 것을 잘 알았기에 아내의 구타를 겸허히 받아들인다.

그래도 유성룡에 대한 사랑과 존중이 꽤나 지극했는지, 유성룡이 죽자 이틀 내내 울었다고 한다.

2.7. 율곡 이이[편집]


유성룡의 직장 상사이자 동료. 유성룡보다 고작 여섯 살 많기 때문에 조선 기준으로 충분히 친구 먹을 수 있고 이이도 그러자고 제의했지만, 원 역사처럼 장원을 밥 먹듯이 하고 능력도 출중해 너무 빨리 벼슬이 오르는 탓에 유성룡은 그냥 존대를 한다. 작중 초반, 유성룡이 이황의 집에서 입신체비를 배우던 당시에 이황의 집에 손님으로 방문해 이야기를 나누던 도중, 모종의 이유로 이황이 격노하고 대성일갈하였고 이이도 흥분해 얼굴을 붉힌 상태로 나가다가 소리를 듣고 찾아온 유성룡과 스쳐지나가는 장면으로 첫 등장한다.

이 당시 이이는 입신체비의 대표적인 두 당파인 이황의 상체파나 조식의 하체파에 속하지 않은데다 겉보기엔 마른 체구를 지니고 있는데다 3대 운동이 유생으로서 겨우 체면치례한다는 510근밖에(?) 되지 않는 이례적인 케이스였고, 작품 초반 입신체비에 부정적인 입장을 보여 어떻게든 근육에 갈려나가기 싫었던 유성룡은 이를 보고 이 근육의 미친 땅에 보기 드문 운동을 싫어하는 사대부라고 판단, 얼굴을 트고 동료로 삼고자 노력했으며 나중에는 이이를 앞에 주고 입신체비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나가자는 식[41]으로 꼬드기려 했다.

그러나 이이의 마른 체구는 사실 페이크[42]고, 원균과의 시비에 얽힌 이이가 상의를 벗어 던지면서 극도의 커팅과 감량을 거친 어마무시한 조각근육의 소유자 였다는 것이 밝혀진다. 과거 이이는 태생적으로 근육이 잘 붙지 않는 체질이였고,[43] 입신체비를 제대로 하지 못하는 스스로를 불효자라 생각하며 괴로워하고 있었다. 어떻게든 근육을 불려보고자[44] 방황하던 중 벌크업(양생)만이 답은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후, 무리하게 근육을 불리는 대신 절육과 분절에 극한으로 심혈을 기울여 순수하고도 압축된 압도적인 근육질 몸을 지니게 되었다. 운동 루틴에서 벌크업의 비중이 적었던 탓에 체구가 작아 보인 것. 이런 상체를 본 유성룡이 무의식 중에 이소룡이라고 중얼거린 것을 듣고 자신의 별호를 소룡이라 정한다.

그리고 이러한 절육과 분절에 치중하는 입신체비를 남들에게 쉽게 공감받지 못하고 있던 차 자신에게 관심을 보였던 유성룡을 이런 소룡식 입신체비의 동반자라 착각하며 쉴새없이 굴려서 유성룡은 결국 이황과 조식, 그리고 이이의 삼대 입신체비 비법을 모두 전수받게 된다.[45] 이연 국왕 하에서는 영의정 자리에 앉아 있으며, 업무를 위해서는 파격도 감수하는 유성룡과 다르게 다소 보수적이고 원칙주의적인 입장이다.

2부 후반부에서는 영의정까지 지낸 후 건강상의 이유[46]로 은퇴한 뒤, 유성룡이 도량형 개선을 위해 유물 보존을 한다는 명목으로 또 만들어낸 일인 박물관장에 취임하게 된다. 유성룡이 생을 마치기 조금 전에 세상을 떠난다.

원역사에서는 아예 절연했던 아버지 이원수는 담배를 약으로 알고 피우다 몸이 상해 관직에 늦게 올라가고 윤원형의 패악질에 휘말리는 등 다소 고생하긴 했지만 장악원에서 적성을 찾아 그럭저럭 근무한다. 그 덕분인지 원 역사와 달리 가족관계는 원만한 듯 보이며 이이도 사신단으로 명나라를 가면서 이원수 몫의 선물을 챙기는 등, 아버지로서 존경하고 있다. 어머니 신사임당은 1573년까지 살아있으며, 원 역사와 마찬가지로 회화로 명성이 드높은 모양.

2.8. 이순신[편집]


1부 외전에서 광화문에 세종대왕 동상만이 있는걸 본 최영직이 근육조선 역사에서 이름을 떨치지 못했나 싶어서 아쉬워한다. 하지만 작가의 말에 따르면 이순신 동상은 해군사관학교에 있으며, 박물관 에피소드에서 조선 중기 당시 군사적 사건들을 설명하면서 바뀐 역사에서도 이순신의 클래스는 여전함을 드러냈다.

2부에서는 주 조연 중 하나로 등장. 어렸을 때에는 유성룡의 형 유운룡이 키우던 닭을 서리하다 덜미를 잡혀 호되게 회초리를 맞는 등 철 없는 모습을 보여주었지만 나이를 먹고 어른이 되면서 본래 역사처럼 엄격하고 진중한 성격을 지니게 된다[47].

장성하고 군문에 들어서면서 친구인 유성룡이 자신의 건축학적 지식과 사람 병 걸리게 만드는 게임에서 익힌 경험을 바탕으로 장난삼아 끄적인 병법서인 "수성전수방략"[48]의 초안을 우연히 보고, 탄도학에 눈을 떠서 이를 집중적으로 연구한다. 무과에 급제한 이후로도 선호 병과인 기마 대신 비선호 병과인 화포(포병)에 자원[49]한다. 그리고 끊임없는 자료 수집과 혹독한 훈련으로 조선시대에 전장포로 사격제원을 만들고 곡사사격으로 저격에 가까운 정밀한 포격을 퍼붓는 정예병을 육성하게 된다.

강직하고 엄격한 성격과 태도는 근육조선에서도 똑같다. 규율을 어긴 병사들에게 얼차려로 스쿼트 200회를 시키면 자기도 모범이 되겠다며 옆에서 똑같이 하고 있고, 진상품 품목을 구하겠다고 현대 함선으로도 위험한 베링해까지 나아가며, 찌는 듯한 더위의 필리핀에서도 갑옷을 벗지 않는 지옥의 원칙주의자. 게다가 자신에게 엄격하고 자신을 과소평가하는 성격도 그대로라, 매번 "유성룡같은 천재적인 친구가 자신을 위해 이렇게 애쓰고 있으니 나같이 평범한 사람은 더욱 노력해야 한다"는 식으로 생각한다. 궁지에 몰아놓은 적이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무작정 돌진을 하는 것을 보고 의표를 찌르는 발상이라고 감탄해 거기서도 배울 점을 찾고, 남들이 보기에는 대승을 거둔 직후에도 '완전하지 않은 승리'라고 하며 바로 전훈 분석에 들어간다. 작중 유성룡의 말을 빌리자면 "이순신을 상대로 정신을 똑바로 차리면 피해를 모면할 수 있지만, 이순신 기준으로는 보통 사람은 뇌수가 비어 있기에 정신을 차리지 못한다" 라고 평한 바 있다.

작중 이순신이 이뤄낸 업적은 모두 이런 엄격함에서 비롯된 것이다. 다른 장수들이 기존 사격 훈련 결과를 복붙하거나 대충 쏘고 보고할 때 이순신은 오히려 더 높은 기준을 잡아[50] 더 많이 쏘고 그 결과로 사표를 만들었으며, 지옥같은 훈련으로 군의 평균 학력과 훈련도를 극도로 높여 포병은 물론 노 젓는 격꾼들까지도 명령을 차질없이 이해하고 수행할 수 있게 만들었기에 이런 지휘가 가능했던 것이다. 사실 이게 가장 단순하고 효율적지만 가장 어려운 방법[51]이기 때문에, 다른 국가의 첩자들이 조선 수군을 염탐해도 별로 소용이 없다.

임진왜란 대신 일어난 을유왜변에서는 퇴각하는 히데요시를 막아선다. 20척의 주력 함선으로 600척의 일본 함대에 돌격하여 안택선 대신 세키부네에 숨어 있던 히데요시를 배의 움직임으로 파악하고, 히데요시 외에도 적장의 기함을 모조리 찾아 도륙내었다고 한다.[52] 돌격 중 총탄을 맞으나, 갑옷과 입신체비로 강화된 대흉근이 총알을 막아 근육에 힘을 조금 주자 탄환이 빠져나오면서 경상으로 마무리된다. 조선 역사상 최고의 사망 플래그를 근육으로 이겨냈다. 마지막에는 익사한 히데요시의 시체를 건져올리면서 전쟁의 끝을 장식한다. 이후로는 일본 원정대의 총 사령관이 되어 일본 열도를 말 그대로 유린하고 있다고 한다.

영국 해적 캐번디시의 메카 습격 이후로는 함대의 중간 기착지를 예상, 초승달만 뜬 어두운 밤에 등화관제를 내린 함대를 분산 운용해 모리셔스를 기습한다. 통신이 없는 당시 기준으로 등화관제까지 내리면 함대를 통제할 수단이 사실상 없는데, 이런 함대를 2개나 운용하며 해안 순찰선을 몰래 나포하고, 횃불을 목표로 정밀 포격을 감행하는 엽기적인 지휘 능력을 보여 준다. 당대 명 제독 중 하나인 프랜시스 드레이크마저도 그의 전술과 부하들의 숙련도를 도저히 가늠하지 못할 정도다. 때문에 드레이크를 포함한 영국 해군 지휘관들이 캐번디시와의 전투를 분석해보려 하였지만 도저히 답이 나오질 않아 조선 수군의 비결을 알아내기 위해 드레이크의 부하인 갈포드를 미주로 파견해 영국 선박 및 설계도를 팔아 영국식 선박건조 노하우를 제공하는 대신 조선 수군의 훈련을 참관할 수 있는 기회를 얻어내기도 하였다.

이후 도원수를 지내며, 의정부의 핵심 인사로 근무한다. 잘하면 무관으로서 종1품까지 오를 수 있었다니 (원 역사에서는 정2품까지만 가능) 여하간 끝까지 특급 대우를 받고 갔다.

유성룡의 가장 친한 친구로서, 지독한 원칙주의자임에도 불구하고 감이 좋지 않다는 이유만으로 업무를 팽개치고 안동으로 내려왔고, 그 예감이 적중해 유성룡은 이순신 앞에서 숨을 거뒀다.

아쉬운 점이라면 임진왜란보다 훨씬 일찍, 훨씬 조그맣게 을유왜변이 일어났다 보니 원 역사의 수군 전우들의 분량이 매우 적다는 것이다. 특히 원 역사의 이순신의 오른팔 권준은 아예 안 나온다... 비중 있는 인물은 미주 개척에서 공과 과를 동시에 거뒀던 배흥립, 그리고 공돌이 기질을 유감없이 발휘한 나대용 정도. 그 외 이영남, 입부 이순신, 송희립 등이 단역으로 등장한다.

2부 외전에서 그의 이름을 딴 420mm(16.5인치) 주포를 장착한 전함과 동형함들이 등장하며 에리히 레더가 지휘하는 크릭스마리네를 갈아버렸다.


2.9. 이회[편집]


이순신의 장남. 2부의 미주 개척단에 합류하는 것으로 처음 등장하였다. 장수로서의 재능은 그저그렇다고 평해졌으나 평가를 한 사람이 이순신인만큼 그를 본 유성룡은 아버지보단 못해도 비범한 재능을 가졌을거라 추측하였다. 원리원칙을 칼같이 지키는 아버지의 성격을 물려받아서 근무 중에 태만한 모습을 보이는 미주지역 수군을 보고 철저히 굴리겠다고 선언했다.


2.10. 권율[편집]


본래 역사에서는 40이 넘어가도 반백수로 있었지만, 근육조선 세계관에서는 산에 숨어서 책만 읽는 선비를 그다지 높이 쳐주지 않고 오히려 일찍 출사해 경험을 쌓는 전통이 있다 보니[53] 20대라는 젊은 시절에 빠르게 관직에 출사하게 되었다.

정철, 유성룡과 함께 강화도 훈도직에 부임하게 되면서 친분을 쌓게 된다. 의표를 찌르는 발상과 잡기에 능한지라 유성룡이 해결책을 못 찾고 막힌 부분을 해결해 주기도 한다. 이후 유성룡이 거쳐간 파양군[54]에 감무로써 부임하는데 남부 수리가오 호족들의 침공에 맞서 유성룡이 설계한 파양군 시가지의 특성을 적극적으로 이용하여 엄청난 교전비로 훌륭히 격퇴하면서 시가전의 기초를 세우게 된다. 일본의 침공 당시에는 양산을 방어하는데, 공은 1등공신 못지않으나 요지 중의 요지는 아니라서인지 논공행상 때는 2등공신의 첫째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55]

그 외에도 통치나 전쟁에 있어서는 재능이 충분하지만, 완급조절이 부족해 외교적 능력은 다소 달리는 편. 그래서 유럽행 사절단에는 유성룡을 추천하고 자신은 호주 개척단에 지원하여 조정의 전폭적인 지원하에 호주 개척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이순신과는 원 역사보다 이른 시기에 인연을 맺게 된 여파로 대등한 친구 사이다.

유성룡이 사망하기 직전에 권율의 49제가 진행중이라고 언급되었다.


2.11. 이일[편집]


원 역사에서는 이순신을 몇 번 모함한 일 때문에 평가절하되나 의외로 대 여진족 전문가로 능력 자체는 상당한 인물이었다.
여기에서는 원리원칙주의를 지키는 군인[56]으로, 이순신과 다른 점이 있다면 이순신은 원칙을 응용해 변칙을 만들어내는 능력이 있지만 이일은 그 정도는 아니라서 교과서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면이 있다는 것. 유성룡이 말하길 맨밥에 간장 종지를 준다면 맨밥에 간장으로 밥 먹는게 전부인 사람. 참고로 권율은 김치도 꺼내썰고 김도 굽고 반찬도 내와 칠첩반상을 차릴 사람이고 이순신은 밥이 갑자기 구첩반상으로 변하고 간식까지 챙겨먹을 사람이라고. 스페인 원정대의 남경 공격(경진만란) 때 상황을 제대로 보고하지 않은 이각의 상관으로서 파직당하고, 추후 복직하지만 온갖 불이익을 당하게 된다.


2.12. 신립[편집]


원 역사랑 마찬가지로 저돌적인 기병대장. 원래는 신립이 이순신보다 한참 선배였지만, 본작에서는 이순신이 일찍 급제하면서 동기가 된다.

첫 등장은 이순신이 무과 급제 후 본격적으로 보직을 정할 때 스쳐 지나가며 몇 마디 한 게 전부[57]고, 이후 한참 지나 큐슈편에서 유성룡과 함께 하주도로 가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등장한다.

본래 역사와 마찬가지로 성미가 급하고 병사들을 조련할 때 당근보다 채찍을 선호하는 성향 탓에 유성룡의 우려를 사는데 아니나다를까 히데요시가 쳐들어와 전쟁이 한창인 와중 히데요시의 함정에 빠지게 되지만 본인의 무력이 워낙 강했던 탓에 다행히 최소한의 피해로 빠져나온 뒤, 주의를 받고 나서는 적당히 사리면서 활약을 펼쳐 실수를 만회한다. 이후 전투에서는 큰 실수 없이 본신의 무력을 십분살려 맹활약한다. 본인도 이에 도취했는지 본인의 궁술을 태조 이성계에 비유할 정도.
이는 신립의 허세이기도 하지만 작가의 말에 따르면 현재 조선 최강의 장수이며 궁술은 태조 이성계와 비견될 정도 라고 언급했으니 사실상 작가공인 2부 최강의 맹장이다. 작중 서술에서도 이성계가 그 말을 들으면 시건방지다고 뒤통수를 한대 후린 뒤에 궁술 시합을 벌렸을거라는 언급은 덤.


2.13. 이지함[편집]


관료로 일하고 있었으나, 윤원형 사건과 연루되어 파직되면서 처음 등장한다. 이후 풍구 논쟁에 휘말려 외방을 전전하고, 경관직을 뜸뜸이 거치다가 은퇴한다.

유성룡이 빙의 후 처음으로 만난 역사적 인물이기도 하고, 유성룡에게는 자신을 여러 모로 도와 주는 삼촌같은 인물이자 아들의 스승인지라 유성룡이 각별하게 생각한다. 그랬기에 유성룡이 현대인의 지식 중 하나인 피뢰침의 개념을 은근슬쩍 알려주었고 이지함은 이를 이용해 대추나무 밭에 피뢰침을 설치하여 무당들에게 파는 것으로 수익을 창출하기도 하였다. 이후 유성룡이 이 일화를 이용해 피뢰침을 발명해내며 공을 돌려 피뢰침의 창시자로 알려진다.

본래역사와 마찬가지로 잡학에 능한 것은 물론 산가지와 주역을 이용한 점괘에도 심취하였는데 너무나 용한 나머지, 점을 쳐도 수양대군 빙의로 인해 역사가 바뀐 인물에 대해서는 바뀌기 이전의 결과만 내어놓곤 하였다.[58] 나이가 들어 심근경색으로 오늘내일 하는 와중에도 이 알 수 없는 점괘에 의문을 품고 있었으나 사후 영이 되어서야 수양대군에 깃든 객이 조선의 운명을 바꾸었기에 자신이 낸 점괘가 틀어졌다는 진실을 깨닫는다.[59] 마찬가지로 유성룡에게도 객이 깃든 것을 알게 된 이지함은 그와 바둑을 두면서 또 한 번 조선의 운명을 바꿀 것을 부탁한다. 이 때 그가 예언한 조선의 미래는 경신대기근을 버티지 못하고 중국을 공격, 천명을 차지하는 데는 성공하나 다른 수많은 이민족처럼 중국에 동화되는 것이었다.

죽기 전 유언으로 살아생전 피뢰침으로 나무들을 괴롭혔으니 자신의 무덤 위로 벼락이 지나갈 것이라 하였는데, 유언을 전해들은 유성룡은 주변 지형을 살펴보고 훗날 송전탑이 세워지기 딱 좋은 위치임을 파악해 이지함의 예언능력에 감탄하기도 하였다. 아들 이산두는 피뢰침을 이용한 벽조목을 양산하여 수익을 거두고 있으며, 왕 이연이 명을 엿먹일 작정으로 근정전에 일부러 벼락을 유도할 때 자문으로 참여하기도 했다.

유성룡이 죽었을 때 마지막으로 나타나 바둑을 한 판 두고 간다. 유성룡의 장례식이 펼쳐지는 풍경을 이승을 직접 내려다보지 못하는 유성룡을 대신해 보아주며, 앞으로도 조선이 발전한 것이라는 점괘를 알려준다.

2.14. 상이경 ★[편집]


1부 당시 건너왔던 유럽 예술가들 중 상갈로 가문 출신과 조선 여인이 혼인하여 나온 혼혈 가문 비륜[60] 상씨[61]의 후손.
서양 피가 1/8밖에 섞여있지 않지만 매우 서양인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다. 첫 등장 당시 강화도 도호부사로써 훈도이던 유성룡의 일폭탄을 만들어내는 능력을 처음으로 직면한 관리이기도 하다. 이 때 유성룡의 능력이 나름 인상깊었는지 이후 본격적으로 관직에 나선 유성룡을 밀어주기도 하였는데 덕분에 운 좋게 자신의 정치적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62] 외국인 핏줄이기 때문인지 유성룡이 필리핀으로 발령될 때쯤 외교 전담 부서인 외조에서 판서로 근무하였다. 중후반부에서 혈통의 근원인 상갈로 출신 인물이 조선을 방문하자 눈물을 흘리며 맞이한다.


2.15. 정철[편집]


권율, 유성룡과 함께 강화도 훈도에 부임하면서 인연을 맺게 된다. 원 역사처럼 글만 잘 쓰지 술 좋아하고 게으르고 까칠한 비호감적인 인물. 입신체비도 정말 체면치레 할 수준인 500근으로만 하면서 절육도 하지 않는다. 성격적으로 워낙 상극인데다 현대인 김성원이던 시절 관동별곡을 못 외워 자주 맞았던 기억도 있어, 유성룡은 그를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다.

선조가 정철에게 술 작작 먹으라는 의미로 술잔을 하사했는데 그걸 두들겨 펴서 대접으로 만들었다는 일화[63]도 그대로인데, 국왕이 이렇게 넓힌 은잔을 압수하고 백자 술잔을 다시 하사해 버린다.

이렇게 골치덩이였기 때문에, 유성룡은 정철더러 지방의 술이랑 음식이나 먹으면서 작문 실력을 살리라는 의도로 백과사전에 대한 아이디어를 줘서 쫒아낸다. 마침 조정에서도 정철이 하는 짓을 좋게 보지 않았는지, 사고뭉치지만 작문은 끝내주게 잘하는 정철과 일은 못하지만 글씨는 기가 막히게 잘 쓰는 한석봉을 세트로 묶어 보내 버린다. 이 백과사전은 정철이 북방과 여송(필리핀)까지 다녀온 끝에 '개원요람'이라는 이름으로 완성되었다.

이후로도 관청에 앉혀놓으면 사고만 치지만, 술만 주면 명문장을 쏟아낸다는 인식이 박혀 아예 요람(백과사전) 전문 집필자가 되었다. 그런데 호주 개척단에 참여했을 때 싹난 감자로 증류주를 만들다가 걸려서, 총책임자였던 권율이 대노한다. 당시 조선에서는 이런 감자를 짐승에게 먹이고 있었기 때문에, 하다하다 짐승 여물까지 술로 만드는 놈이라는 인식이 박혀 버린 것이다. 유성룡의 생각으로는 차라리 식량으로 쓰는 메밀로 이랬다면 나았을 것이라고. 결국 공좌 2000번 이상을 하는 벌을 받았고 이 여파로 퇴직이나 승진은 꿈도 못 꾸게 되었다.

미주에서는 책임자 유성룡이 아예 정철의 문장 실력을 써먹을 생각으로, 도수 높은 주정[64]을 무제한으로 제공하고 안주 전담 요리사로 허균을 배정했다. 새로운 요리에 대한 탐구욕이 가득한 허균과 죽이 잘 맞아 미주의 넘쳐나는 물자를 기반으로 각종 리큐르를 만들어냈고 여기에 유성룡의 아이디어를 더해 온갖 종류의 칵테일 제작을 시험하고 있어 술꾼으로서 더할나위 없는 행복을 누리고 있다. 그리고 조선에 들어와서는 유성룡이 주도하는 복수자전 집필진으로 참가한다.

유성룡이 사망하기 얼마 전에 뇌일혈로 사망한다. 유성룡은 정철이 그렇게나 술을 퍼먹었는데도 간 문제로 죽은게 아니었다는 걸 알고 어이없어했다.

관동별곡은 쓰지 않았지만, 호주별곡, 미주별곡과 각 별곡의 속편이 4~6개, 그리고 미주별곡 분량만 12관동별곡 수준이라고 한다. 근육조선 세계관 수험생들의 앞날은 어둡기만 하다.


2.16. 김성일[편집]


이황의 제자. 원래 유운룡과 친구였지만 유성룡과도 나이 차이가 얼마 나지 않아[65] 친구가 된다. 유성룡이 오만 가지 업무로 갈려나가느라 정치 따위는 포기한 것과 달리 정계에 투신해서 활약하며, 말빨이 좋아 장거정 탄핵 국면에서 중책을 맡는다.

2.17. 원균[편집]


바뀐 조선의 군관답게 입신체비를 익히고 있었으나, 절육(커팅)을 하지 않아 근육돼지인 인물. 원래 역사처럼 뺀질거리는 성향에 남의 공을 강탈하는 것도 서슴치 않는 부패한 군관이라 언급된다. 절육을 하지 않은 것도 욕심 많은 성격 때문에 절제를 못해서이기도 하지만, 유성룡은 체중빨로 무게를 높게 치려는 의도도 있다고 판단한다. 그래서인지 이이에게 입신체비 관련으로 승부를 내려다가 이이의 충격적인 근육 상태와 그의 실력에 바로 굴복하고 만다.

다만 아직은 계급이나 인맥이 미비해서 검소한 척 하면서 기회를 노리는 표리부동한 모습을 보이는 중이다. 우연히 원균과 만나게 된 유성룡이 원균을 어떻게든 처리하기 위해 케틀벨로 저글링을 하는 걸 입신체비랍시고 가르쳐 줬는데,[66] 그것을 자신이 새롭게 개발한 입신체비라고 자랑하면서 하고 다니다가 결국 유성룡이 북방에 있을 때 머리에 케틀벨을 맞아 사망했다고 한다.[67] 작가의 덧글에 적힌 바로는, 자신의 부족한 실력으로는 역겨움을 표현하기 힘들어서 빨리 보내버렸다고... 현대인이 빙의한 유성룡이야 그의 민낯을 알고 있었지만 부패한 속내를 드러내기도 전에 죽으면서 사고로 일찍 죽은 무장 정도로 기억되는 것이 아이러니라면 아이러니.

원균의 가족들도 작중에 등장한다. 아버지 원중량은 꼰대 기질이 있는 성격, 동생 원연은 안타깝게(?) 요절한 형님을 존경하는 멀쩡한 인물이다.

2.18. 고란 ★[편집]


1부 외전에서 운명/위대한 명령에 등장하는 영령인 '백정 고란'으로 잠시 언급된 인물.
니탕개의 가문인 하마 니씨의 식객으로 있었는데, 류성룡이 외조부와 연이 있어 니씨 가문에 들렀을 때 호위무장으로 추천받아 유성룡과 함께한다. 신체도 건장하고 서양 핏줄도 약간 섞여 있어 아놀드 슈왈제네거를 연상케 하는 외모라 유성룡이 만도라는 호를 지어주고 몸을 단련시킨다. 육체의 경지는 이미 완성되고도 남았으나[68] 머리가 나빠 글을 떼지 못해 무과 급제는 사실상 물건너간 상황이었는데, 뛰어난 무용을 본 이순신이 데려가 부장으로 삼는다. 덕분에 지독한 원리원칙주의자인 이순신 밑에서 죽을 고생을 한다.[69]

하지만 고생끝에 한 사람분의 무장으로 성장했으며, 경진만란 당시 도주하는 적장 로베르트와의 백병전을 벌인다. 완력은 고란의 우위였지만 전투 경험은 로베르트의 우위였기에 서로 결정타를 날리지 못하고 싸움이 길어지며 점점 밀리기 시작하자, 일부러 하체의 방어를 포기하고 로베르토를 유인, 이 함정에 제대로 낚인 로베르트는 고란의 허벅지에 철퇴를 날렸으나 허벅지 근육의 힘으로 철퇴를 버텨내고 역으로 로베르트의 팔을 자르는 대활약을 펼친다. 이후 재활치료 중 유성룡의 12제자를 만나는데 과거의 자신처럼 무인이 글을 배울 필요가 있냐며 볼멘 소리를 하는 모습을 보고 과거의 유성룡과 이순신이 했던 충고를 그대로 말해준다.

일본과의 전쟁이 끝나고 다테 마사무네가 쇼군으로 오른뒤에 조선에서 지원해준 북인기병을 이끌고 타치바나 무네시게와 함께 다테 마사무네를 보좌하고 있는 중이지만, 바지사장에 불과한 다테 마사무네이기에 보좌라기보단 필요하니까 도와준다는 정도이다. 50줄이 다 되도록 큰 전공을 세우지 못해 불만이 있는 차에 유성룡이 미주에서 스페인과 충돌할 것을 예상하고 고란을 이 곳으로 보내주었는데, 그에게 내려진 밀명은 스페인 등 유럽 개척단을 피해 피난올 아메리카 원주민들을 보호하기 위해 유럽 개척단을 습격할 것이였다. 이에 가상의 아메리카 원주민 대전사 코만도로 분장하고[70] 도난품을 가장한 4연발 작렬신기전 등의 화기를 들고 아메리카 원주민 전사들을 이끌며 게릴라 전술로 유럽 개척단을 박살내고 있는 중. 후일 게임에 등장할 정도로 유능한 무장으로 남은 걸 보면 이 곳에서 큰 공을 세우고 '백정'이라는 별명을 얻게 된 것으로 보인다.

현대시점의 조선과 미국에서는 유성룡, 세스페데스와 함께 동상을 세워 기리고 있으며 아메리카 대륙에서의 활약을 영화로 만들기도 했다. 고란에게 시달린 스페인 개척단의 후예인 아메리카국 역시 고란을 영화에 넣기도 했는데 역사적인 앙심을 가득 담아서 조선과 미국의 이미지와 기록을 상당히 왜곡해 피와 살육에 굶주린 무식한 인간백정으로 묘사했다. 반대로 미국에서 만든 영화에서는 그런 고증을 살려 분장한게 살짝 벗겨져나왔다.

2.19. 김지[편집]


원 역사에서 승자총통을 개발한 무관. 군기시에 소속되어 화포 연구를 하고 있다. 화약에 지나치게 심취하여 우연히 뇌홍을 발명하는 댓가로 손가락 일부를 날려먹은 희대의 화력덕후.
더 많고 강한 화포를 원하여, 수성의 전문가인 유성룡과 창-방패의 대결을 벌이기도 한다. 덕분에 조선은 원 역사에서의 천자총통이 현자총통으로 격하되고, 천자총통 위에 다른 포 등급이 추가되는 동시기의 어떤 나라와도 비교할 수 없는 미친 화력을 자랑할 수 있게 되었다. 2부에서 진주성 방어전에 쓰이고 고란이 들고다니는 4연발 작열신기전도 이 양반의 작품.
그리고 그의 제자들은 그 스승에 그 제자인지라 미주 대륙에 와서는 유성룡이 미주에서 넘쳐나는 구리를 도배해 요새 강도를 비약적으로 증가시키는 돈지랄 모습을 보고 강력한 화포를 버텨낼 포대 제작에 응용하겠다며 발벗고 나설 정도.[71]

2.20. 임차손 ★[편집]


유성룡의 친구이자 임꺽정의 아들. 젊은 시절부터 육체적으로 두각을 나타내어 무과에 응시했으며, 오위의 기병을 거쳐 내금위장이 된다. 아버지 임꺽정이 군관으로 근무하던 중 만주 도적에게 살해당했기 때문에 만주 도적에 대한 원한을 가지고 있다.

우에스기 겐신을 돕기 위해 일본에서 근무한 적이 있어 일본어도 뛰어나다. 임꺽정의 굴강한 육체를 이어받아 온 것은 물론 본인이 노력한 점도 있어, 마상무예에 있어서는 조선 전체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강력한 모습을 보인다. 다만 원 역사 이상의 전공을 쌓으며 승승장구하는 친구 이순신이나 이순신 밑에서 처절하게 굴려지며 공을 세우고 있는 고란과 달리 공을 세울 기회도 없었고 그나마 유일하게 공을 세울 기회였던 우에스기 겐신의 지원은 겐신이 급사하고 전쟁에서 패배하면서 물러났기에 본인이 생각하기로는 운이 지지리도 없다고 한다. 애용하는 무기는 수양대군이 사용하던 대역기봉을 잘라 만든 편곤으로, 조식이 반으로 잘라 가지고 있던 것을 유성룡이 물려받아 임차손에게 반쪽을 나누어 준 것.[72] 1부 외전에서 박물관에 유물로 전시된 모습으로 먼저 등장한 바 있다.


2.21. 기대승[편집]


원 역사에서 이황과 사단칠정논변을 펼친 사람. 이현전의 실무 수장으로 처음 등장하며, 유성룡이 관직 생활 초년기에 가져오는 업무 폭탄을 가장 먼저 감당하는 위치에 있다. 유성룡이 삼각함수를 이용해 삼각측량의 아이디어를 제시할 때 기반이 미비하다는 이유로 반려하지만, 생각한 바가 있었는지 이순신에게 삼각함수를 이용해 사표를 제작할 계기를 제공한다.


2.22. 이양원[편집]


원 역사에서 종계변무에 참여했으며 해유령 전투에 참전했으나 선조의 조선 탈출 소식을 듣고 단식하다 생을 마친 사람. 예조에서 일하다가 유성룡이 소과 시문을 깃펜으로 적은 탓에 업무가 폭증하여 짜증을 낸다. 이황의 문하생으로서 유성룡에게 합격증을 줄 때도 다른 합격자와 달리 짜증을 팍팍 내고, 머지않아 유성룡이 아내와의 의무방어전을 피해 훈도로 지원하자 집에 자주 돌아가 버리도록 가까운 강화도에 꽂아버린다. 이후로도 유성룡이 업무폭탄을 터뜨릴 때마다 매번 고개를 내저으며 등장. 그래도 요동 우역 사건에서는 관찰사로 유성룡과 적극 협력한다. 북인들이 요동 도적에게 감정을 분출할 수 있도록 몰래 무기고 열쇠를 떨어뜨려 주기도 한다. 세스페데스의 입신체비사로 등장하기도 한다.

2.23. 이이첨[편집]


조선이 스페인에 사절단을 보내기로 정한 후 선물로 무엇을 들고갈지 정하는 회의에서 첫 등장하였다. 이 회의에서 금강앵무 깃털로 만든 점취라는 장신구를 만들어 보낼것을 제안하였고 이게 유럽에서 잘 먹혀서 여송도(필리핀)에 만들어진 앵무새 농장의 책임자로 임명되었다. 여기서 일하던 중 앵무새가 얼굴을 할퀴어 흉터가 생기기도 하였다.

2.24. 이항복, 이덕형[편집]


권율의 호주 개척단에 합류하면서 본격적으로 등장하였으며, 이 후 유여의 제안으로 에뮤들을 근육하는 일에 동참해 에뮤 떼를 내수린으로 두들겨팼다.

이후 이항복은 영의정에 오른 유성룡이 주도하는 소설 집필작업[73]에 참여하게 되었고 본래 역사와 마찬가지로 특유의 재치와 유머감각을 이야기 구성에 잘 녹아내면서 복수자전이라는 소설의 공동저자로 활약하였다.[74] 말년에는 에뮤를 기르는 자연보호구역 비슷하게 변한 남이섬에 자리잡고 살았으며, 천재 송시열이 선생으로 모시기도 한다.

2.25. 허준[편집]


특별히 중요한 역할을 하지는 않지만, 당대의 명의로서 군데군데 등장한다. 첫 등장 장면은 강물에 납이 퍼지자 인근 마을을 이주시킬 때 기지를 발휘해 납이 몸에 쌓이면 안 선다고 말하며 주민들을 설득하는 장면으로, 처음에는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던 광부들이 그 말을 듣자마자 자기부터 진료해달라며 아우성을 친다.

본디 우에스기 가문에 파견되어 수장인 우에스기 겐신의 주치의로 일했지만 짠 음식과 술을 자제하라는 권고를 수차례 했음에도 이를 무시한 겐신이 고혈압으로 사망하자 귀국한다. 이때 겐신의 사체 주변에 주향이 남은 토사물이 있어서 책임문제에서 벗어났고 역으로 주군을 말리지 못한 다른 가신들의 멱살을 잡았다고 한다(...).

이후 유성룡의 제안으로 전쟁에서 패배한 뒤 피폐해지면서 천연두가 창궐한 일본 땅에서 우두의 효능을 시험하였고, 우두가 천연두 예방효과 뿐만이 아니라 이미 걸린 환자도 치유할 수 있다는 사실도 밝혀내면서 세운 공적으로 품계가 2단계 오르고 군호를 하사받았다. 원 역사와 마찬가지로 동의보감을 저술중에 있는데 기존의 한의학 관련 내용에 해외에서 들여오는 각종 약재에다 제로니모와 협업하여 익힌 외과분야 지식 및 종두법 등의 방대한 의학지식을 담은 의학서가 만들어지고 있다. 나중에는 이 동의보감을 통해 조선의 의술을 배운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총상치료 등 아주 능숙하게 외과수술을 실시하는 모습이 나오기도 하였다.


2.26. 신주랑 ★[편집]


이현전에서 근무하는 아메리카 원주민 중 마이두 부족 출신 관료. 이현전 출신 관료로서 수학과 측량 솜씨가 매우 뛰어나다. 아메리카 원주민으로서의 원래 이름은 '달리는 늑대'이므로 주랑(走狼)이라는 조선식 이름이 지어졌다. 호는 창산(蒼山).

윤원형의 악행으로 어머니가 천연두에 걸려 사망한 뒤 미주 관찰사의 임기를 마치고 귀국하는 조식을 따라 조선으로 이주하였으며, 이황과 조식의 승근도 대결 당시 유성룡과 처음 조우한다. 유성룡이 필리핀으로 발령될 때 따라가 시행착오 끝에 옥수수 재배에 성공한다. 이후 유성룡의 부관으로 아메리카 대륙 개척에 따라가 조선과 아메리카 원주민을 잇는 중계인 역할을 하고 있다. 이지함이 점을 쳤을때 만군을 이끄는 장군이라는 점괘가 나왔는데, 원 역사에서는 유럽 침략자를 상대하는 저항군의 우두머리 같은 것이 되었을 듯하다.


2.27. 나대용[편집]


본 역사에서 거북선 개발을 주도한 인물 중 하나로, 근육조선에서도 젊어서부터 배에 미쳐 살았다.
조립식 용골로 함선을 만들어 보겠다고 호기롭게 나섰지만 그 배가 결국 침몰하는 바람에 인명 손실은 없었다지만 결국 이에 대한 책임을 지고 미주로 좌천되어 있는 상태였고, 유성룡의 의뢰로 하와이의 돛대 제작 및 운용 노하우를 접목한 사막배를 제작하여 미주지역 개척에 지대한 공헌을 하였다.
이후 조선수군의 노하우를 습득하기 위한 대가로 영국에서 판매한 선박과 설계도에 담긴 지식을 흡수하고 미주지역에서 넘쳐나는 물자를 활용하여 새로운 선박건조에 열성적으로 임하고 있다.


2.28. 김충선[편집]


본 역사에서는 임진왜란 당시 항복한 일본의 장수였지만 근육조선에서는 1부의 조선-일본과의 전쟁 이후 아소 가문의 가신이였던 조상이 조선에 귀화하면서 웅본 김씨의 성을 하사받아 조선에서 가문을 이어나갔기에,[75] 혈통을 제외하면 모태 조선인으로써 생활하고 있다. 유성룡이 미주 관찰사로서 미주 개척에 나설 당시 군관으로 참가하여 철광을 찾아내기도 하였다.


2.29. 산시양 ★[편집]


유성룡이 경원지역 임기를 마치고 복귀할 때 유성룡의 후임으로 온 관원으로 조선 영토인 큐슈의 하주도에서 온 일본인 출신이다.[76] 유성룡이 젊었던 시절에 그와 얽힌 일이 있어서, 유성룡이 만들어내는 어마어마한 업무 폭탄을 피하고 가늘고 길게 당상관만 찍고 퇴직할 생각을 하고 있다.

이후 한동안 언급이 없다가 유성룡이 개발한 승자기를 개량하는 작업을 관리하게 되었는데, 심한 업무 스트레스로 인해 화끈하게 일을 저지르고 파직당하려고 하지만 오히려 품계가 오르는 사태가 발생하곤 한다. 승자기 반죽에 아라비아 고무를 갈아서 섞어버렸는데 오히려 내구도가 좋아져서 승진하고, 일이 너무 많아 국수로 점심을 때우게 되자 왕의 수라상에 올라갈 난면틀(국수틀)까지 가져왔는데 유성룡과 왕에게 찍혀서[77] 오히려 승진하게 된다. 황희, 한명회와 마찬가지로 약점을 잡히는 바람에 죽을 때까지 일하게 된 것. 차라리 가만히 있었으면 유성룡이 불쌍해서라도 퇴직을 준비해 줬을텐데, 혼자 빠져나가려고 하니까 상관에게 찍혀서 더 고생하게 된 케이스다.

나중에는 유성룡이 개발한 피뢰침을 시험하기 위해 시도때도 없이 벼락이 내려친다는 빅토리아 호로 파견을 나가기도 하였다.

후에는 퇴직하겠다는 마음을 버리고 이왕 된거 관직에서 뽕을 뽑자라는 일념으로 일에 전념중이라고 한다. 그래도 유성룡이 태국에서 학질로 죽을뻔한 일 덕분에 환갑 넘은 관료들을 배려해주는 법률이 제정되어 나이 먹고 외방 나갈 일은 없어졌다고 유성룡에게 고마워했다.


2.30. 허임[편집]


원 역사에서는 침술의 대가로 허준선조에게 "침술은 자신보다 허임이 낫다"라고 하며 추천을 한 기록이 있는 의관으로 근육조선에서도 외과수술을 간단히 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해당 특기를 잘 살리는 모습으로 묘사가 된다.

근육조선 세계관에서는 원 역사와 비슷하게 허준이 유성룡에게 추천하여 처음으로 호주에서 종두법을 실시하는 의관으로, 이후 허준과 함꼐 일본에서 우두의 효능을 시험하여 (묘하게 대학원 실험실에서 교수님(허준)과 교수님의 이론을 토대로 임상실험을 하는 대학원생(허임)의 관계와 유사하다.) 허준의 종두법의 이론에 기여를 한다. 이후 미주에 가서 주민들에게 종두를 접종하고, 유성룡이 미주 원주민들을 회유하는데 사용되는 우두를 만들기도 한다. (유성룡은 이를 명약이라고 미주 원주민을 회유한다.)



3. 왕실[편집]


수양대군의 빙의 이후로 계유정난은 아예 일어나지도 않은 사건이 되고 원 역사에는 없는 이홍위(원역사의 단종. 근육조선에선 세조) 직계가 이어졌다.
따라서 2부 시점의 왕과 대군들은 모두 가상 인물들이다. 심지어 하성군조차도 실제로는 원 선조의 8촌 혈통이다.[78]


3.1. 작중 시점 이전의 왕 ★[편집]


  • 환종 ★ : 유성룡 빙의 시점에서 25년 전 죽은 전대 왕. 문종의 손자로 세조 이홍위의 뒤를 이은 왕으로 보인다. 백성들 사이에서 할아버지 문종과 마찬가지로 환종대왕이라 칭하고 있으며 "아국에 귀의하고 싶은 뜻을 품은 자는 아국의 말을 배우고 아국의 풍습을 따르면 아국 사람과 다를 바 없다." 는 대외방침을 남긴 어진 왕. 이 방침은 군에도 적용되어 조선에 귀의할 뜻을 품은 자가 조선군에 지원하면 받아준다고 한다.[79] 그 외에도 사대문 안의 모든 가택은 화재 예방을 위해 벽돌과 기와로 짓게 하였으며 그 비용은 내수사를 통해 지원하였다.[80]

  • 경종 ★ : 환종의 아들, 평종의 아버지. 원 역사 조선의 경종과 한자는 같다. 입신체비의 과열을 우려하여 스승을 두는 행위를 나이가 찼을 때 가능하도록 정했다.


3.2. 평종 (平宗) ★[편집]


유성룡이 관직에 진출할 시점의 조선 왕. 이름은 이호(李昦). 첫 등장 당시에 이미 50을 넘겼지만 여전히 무관급으로 건장한 몸을 지니고 있다.

유성룡이 소과 응시 당시 세필폭탄을 날려 예조 관원들의 혈압을 올릴 시절부터 유성룡을 주목하고 있었다.
유성룡의 대과 답안에서 지나치게 많은 재주가 드러난 탓에 이곳저곳 돌려 시험하고 갈고닦기 위해 일부러 장원을 주지 않는 결정을 내린다. 이후 세월이 흘러 자신이 늙고 세자가 장성하자 안정적으로 양위하고 상왕으로 물러나며, 대중 전략에 대한 조언을 구하는 이연에게 중국을 먹으려단 오히려 먹히니 차라리 중국을 분열시켜라라는 조언을 해준다.[81]

유성룡이 미국에 가서 개척을 준비하는 사이 사망하고 평종이라는 시호가 붙었는데 그의 치세기간동안 외적을 압도하고 평온한 통치를 이어나갔기에 붙여진 시호이다.


3.3. 이연 ★[편집]


이호의 장남이자 첫 등장 시점 세자. 원래 영해대군이라 하다가 당초 세자인 형이 폐렴으로 세상을 등지며 세자가 되었다.

나이가 차서 조금씩 국정에 나서기 시작했는데 아버지가 주목하는 인재인 유성룡에게 일을 맡겼다가 동궁전 지붕이 뜯기고 다시 지어지는 수모(?)를 겪기도 한다. 이후 이호에게 양위를 받아 왕이 된다. 나이를 먹어 신중한 이호와 달리 아직 젊고 혈기왕성한지라 절육 기간의 삭막한 식단을 못 견디고 꼼수를 부려 닭갈비를, 그것도 닭기름 가득한 국물에 밥을 볶아서 먹으려다 이균한테 걸린다거나 이호 앞에서 중국 정벌 의견을 내놓는다거나 하는 실수들을 저지르기도 한다. 다케다 가문에서 보낸 얼토당토않은 국서를 보고는 극대노해 용상을 들어다 집어던질 정도.[82]

성격이 불같기는 하지만 지략, 지휘 능력, 정치 감각 모두 뛰어나다. 일본과의 전쟁 때는 히데요시의 전략을 저 멀리 한양에서 귀신같이 예측하고 대비책을 수립하면서 본토에 상륙한 일본군을 격퇴하기 위해 지휘관으로서 직접 친정에 나섰고, 명이 붕괴되는 과정에서 명의 권위를 깎아내고 자신의 권위를 세우기 위해 자연현상인 태풍과 벼락을 이용하는 모습도 보여준다. 유성룡이 서행사로 나갈 때는 제갈량을 패러디해 급할 때마다 열어볼 다섯 주머니를 건네주기도 한다. 작가의 언급에 따르면 선조보다 정치력이 좀 부족하고 자만심이 강하지만, 똑똑하고 책임감 넘치고 인격이 좋은, 선조를 근육적으로 개조한 완전체라고 한다.

나이가 들어서는 젊은 시절의 혈기가 많이 줄어든 대신 그동안 쌓아온 경험으로 상당히 노회한 군주가 되었으며 명나라를 분열시키기 위해 유성룡에게 은연중에 암시를 주었고, 이지함의 일화를 전해듣고 유성룡에게 벼락을 막아낼 수 있는 기물을 만들어낼것을 명하고 일부러 날씨가 궂은 날을 택하여 하늘에 지내는 제사를 시행하던 중 3번의 벼락을 맞았지만 멀쩡한 모습을 보여주어 막강한 권위를 세우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였다.[83]

조선이 본격적인 미주개척을 위해 유성룡을 관찰사로 보냈는데 유성룡이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마음을 휘어잡으면서 복속을 청하는 동시에 이연을 대추장으로 추대하였기에, 대추장을 겸직하는 최초의 조선 임금이 되었다.

2부 외전에 나온 고란의 동상의 설명에서 광조(光祖)라는 시호를 받았다고 한다.

3.4. 진해대군 ★[편집]


이호의 아들이자 이연의 동생. 순수한 성품의 소유자로, 이 때문에 친구인 양반가 자제들이 비리를 저지르는 것을 알지 못하고 함께 사업에 참여하는[84] 등 순진한 모습을 보인다. 이후로는 마음을 잡고 유성룡한테 배우며 건축 쪽에 매진하게 된다. 나이를 먹고 장성하자 다른 대군들이 그러하듯 대명외교에 나서게 되는데, 유럽 원정대와 해적의 침공으로 남경이 위험한 와중 해적들이 들끓는 위험한 장강에서 정보를 수집해 지원온 조선 수군에게 넘겨주는 의외의 깡을 보여준다.

일본의 침공 당시에는 만력제에게 지원을 얻어오는 데 성공한 공로로 1등공신 3명 중 하나로 들어간다. 사실 직접적 공로만 따지면 1등공신 급은 안 되지만, 자금 지원해 준 물주 만력제에게 립서비스하는 의미에서 1등공신까지 올라가게 되었다.

아들은 장남으로 창원군(昌原君), 차남으로 상원군(商原君)이 있다. 상원군은 왕권 강화의 일환으로 스페인행 서행사의 정사로 발탁된다. 갓 결혼한 꼬맹이라 실질적 대표는 이이지만.


3.5. 순흥군 이윤 ★[편집]


예진원 대제학. 하성군의 전임. 어릴 적의 유성룡이 회령군에게 배우기 시작할 때 행한 내수린에서 처음 등장한다. 명예가 막강해 판서급 인사인 회령군마저도 존대를 하지만, 순흥군 자신은 예의가 바르고 어린이라도 충분히 존중할 줄 안다. 유성룡의 묘사로는 이윤기의 전성기 모습이라 한다. 이황과 조식이 승근도로 겨룰 때 심판을 보는데, 두 학파의 거두가 싸우는 자리에 중재자로 나오니만큼 대제학의 무게를 알 수가 있다.

원래 아들 진안군이 대제학을 물려받을 예정이었고, 실제로 진안군은 입신체비 기구를 여럿 개발하는 유능한 인물인데다 소비오래 성당의 보수를 도울 만큼 품성이 (현대적으로도 근육적으로도...) 좋은 사람이었으나 통풍이 발병하여 하성군에게 대제학 자리를 물려준다. 대신 진안군은 이이를 도와 그리고 유성룡을 굴려가며 입신체비 연구에 진력한다.

3.6. 하성군 이균[편집]


원역사에서 선조가 되었던 사람. 원래 역사의 개차반 성격은 여전했는지 개성 읍내에서 까불다가 군관이였던 임꺽정한테 얻어터진 일도 있다고 한다. 이때는 언급만 되었고 직접 등장은 세월이 한참 지나 유성룡이 장성하고 관직에 진출한 지 좀 되고 나서인데, 족친위에서 근무하며 임차손을 찾아가 아버지에 대한 무례를 진심으로 사과하는 등, 조금은 정신 차린듯한 모습을 보여준다. 이때는 왕족에서 추방되었는지라 자신을 "그냥 군관"이라고만 소개한다.

이후 왕족으로 복귀하며[85] 하성군이 되고, 역사대로(?) 예진원 대제학이 된다. 작중 보여주는 모습은 깐깐하기 그지없는 트레이너 그 자체로 꼼수나 다름없는 어명으로 절식 기간에 닭갈비 국물에 밥을 볶아먹은 이연을 보고 대경실색하고 쓴소리를 했으며 휴가를 보냈더니 일을 늘리는 유성룡을 단단히 입신체비하라는 이연의 어명에 따라 약관시절 때 처럼 쉴새없이 굴리기도 했다. 이 와중에 선조인 수양대군의 저서인 영직서와 며느리인 군부인 한씨의 일기를 보여주며 유성룡이 수양대군의 정체를 눈치채게 하는 계기를 만들기도 했다.

아버지는 순흥군의 형 진흥부정이다. 그런데 이 사람도 성격이 개차반이었는지, 장남인데도 대제학 자리를 물려받지 못했다고 나온다. 아들이 얻어터진 후 임꺽정을 파직하라고 난리를 피웠다고 한다.

3.7. 회령군 ★[편집]


안평대군의 증손. 유성룡의 첫 과외 선생[86]이다. 이지함이 회령군의 제자였으며, 무계정사로 찾아가 유성룡을 소개해준다. 70대가 넘어 가까스로 주상의 인재 레이더에 벗어나 번아웃 증후군에 빠져 지내던 회령군은 처음에는 나를 또 일하게 만들 작정이냐며 분노하고 심드렁한 태도로 일관하나 유성룡이 안평대군의 로마 그림을 알아보는 것을 보며 그 재능을 직감하고 다시금 의지를 내게 된다.

정2품 공조판서까지 지낸[87] 높은 사람인지라 학생들에게 웬만한 지원은 다 해줄 수 있다. 수많은 빈객을 불러 다양한 공부를 시켜주며, 유성룡이 인력거를 고안하자 한 달도 안 돼서 매우 괜찮은 시제품을 만들어주고, 원하는 걸 길러볼 땅도 마련해준다. 능력 자체도 직접 부각은 안되지만 꽤 유능한 듯하다. 청계전 근처 도시계획이 회령군의 작품이며, 안평대군의 후손답게 회화, 특히 연필화로도 명성이 있는 듯.

유성룡이 한창 때인 1565년 세상을 떠났지만, 유성룡이 현대 기술을 끌고 올 때 "회령군에게 배웠다"라는 핑계를 대면서 은근히 존재감을 발휘한다. 특히 석회가 발명될 때 회령군의 군호를 따 영회라고 부르는데, 유성룡이 발명 계기를 공식적으로는 회령군이 비슷한 기술을 쓰는 것을 생각하다 만들었다고 말했기 때문.

3.8. 기타 종친 ★[편집]


  • 영흥부정: 금성대군의 5대손으로 남명 조식의 큰사위. 허리가 뒤틀려져 3개월간 정양했다는 그 인물. 4대보다 더 아래이니 엄밀히 따지면 종친은 아니고 그냥 전주 이씨 사대부로써 그냥 평범하게 살고 있었다. 아랫동서인 유성룡을 찾아와 조씨와의 결혼생활에서 살아남기 위한 보충제로써 하늘소 애벌레를 준다. 이후에는 세스페데스의 입신체비 스승 중 하나로써 거쳐갔다고 언급이 된다.
  • 영천대군 이숭: 이호의 동생. 딱히 특출난 재주도 없고 나이도 이호랑 11살 정도 차이나는지라 별 존재감 없이 중국행 사신단의 얼굴마담이나 하며 지내고 있다. 그래도 일단 왕족인지라 3대 800근 정도는 칠 수 있을 만큼 건장하다는 듯. 이연이 왕위를 물려받고 진해대군 등 젊은 세대가 나서기 시작하자 존재감이 없다는 첫 등장 당시 소개문 그대로 잊혀져 버렸다.
  • 창원부정: 순흥군의 동생. 전문 내수린꾼으로 새로운 내수린인 살수대첩을 만들어 보여 주는 식으로 등장한다.

3.9. 이준 ★[편집]


유성룡이 은퇴하고 박물관의 관장으로 임명되었을 무렵에 이연이 양위하여 새로 보위에 오른 세자. 휘는 준(浚)이며 즉위 당시 29세.

아유타야 왕국나레쑤언크라 운하를 파기 위해 유성룡을 보내 달라는 요청을 하자, 자존심을 세우기 위해 노령의 유성룡을 태국으로 파견시킨다. 그러다 유성룡이 말라리아에 걸려 건강이 크게 악화된 상태로 복귀하자 정치적으로 큰 타격을 입을 뻔한다. 작중에서 야근과 외방근무로 생고생하는 모습만 나와서 그렇지, 유성룡은 엄연히 입신체비의 살아있는 상징[88]이자 선왕 대부터 공을 세워 온 명신이고, 해외에 이름이 퍼져 있을 정도로 명성높은 인물이다. 이런 거물을 고작 자존심 때문에 객사하게 만들 뻔했으니 자칫하면 즉위하자마자 왕권이 땅에 떨어지는 대참사를 겪을 뻔했다.[89] 다행히 유성룡이 자신의 상태에 대해 입을 닫음으로서 큰 타격은 입지 않고, 대신 유성룡이 제시한 대로 환갑이 넘은 신하는 야근과 출장을 제한하는 법을 만드는 것으로 타협한다. 후에 2부 외전에서 시호가 현종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4. 기타[편집]



4.1. 윤원형[편집]


관료로써 제법 승승장구하다가 김안로한테 탄핵당한 뒤 복권에 실패하자 상회를 차려 미주까지 진출하였는데, 미주 원주민들이 천연두에 대한 저항력이 없다는 것을 악용해 원주민들에게 천연두를 퍼트리고 주변 마을이 도망가면 사금을 캐내다 암행어사에게 걸려 거열형에 처해진다. 보통 죄인은 형무소에 갇히고 그보다 악질이면 대만의 유황 광산으로 가는데, 중간 절차를 생략하고 바로 사형에 처해진 것이니 반역죄에 가까운 취급을 받은 것이다.

상회 설립 허가자부터 군선 매각 담당자, 건축물 설립 허가자까지 당시 담당자들은 모조리 파직당했고, 유성룡이 고작 10대일 때 일어났지만 30년이 지나 유성룡 본인이 관찰사로 미주에 부임할 때까지도 영향력이 남아 있는 어마어마한 빅 스캔들이었다. 얼마나 국가 공인 쌍놈이 되었던지 손자를 포함한 모든 작중 인물들이 윤원형을 부를 때 "윤가놈"이라고만 부른다.

4.2. 윤광영 ★[편집]


윤원형의 손자. 정확히는 윤원형이 처벌당하기 전 양자로 들인 고아가 장성하여 가진 아들. 윤원형이 거열형에 처해지면서 삼족이 연좌죄로 몰락하는데, 이 와중에 어린 나머지 절연이라는 방식도 모르던 고아는 혈혈단신으로 역적의 아들이라는 딱지가 붙어 이곳 저곳을 떠돌아 다니다가[90] 당시 미주 관찰사가 불쌍히 여겨서 관아에 머물게 되어 노비로 살아가며 가진 아이가 바로 윤광영. 과거를 볼 생각도 있었으나, 답안지에 조부 이름을 적어야 하는데 "윤원형" 석 자를 적는 순간 응시할 마음을 접었다고.[91]

머리 하나는 똑똑하여 노비 신분인데도 스물 안팎밖에 안 됐는데 사서삼경을 떼었으며 가공하기 힘든 아까시 나무를 가공하는 끈기까지 지니고 있어서 유성룡이 자기 사람으로 만들 생각을 하고, 다른 파평 윤씨쪽으로 족보를 이관시켜주기로 한다. 정작 족보를 이관하려던 파평 윤씨 노인은 역적의 손자라는 소리에 얼굴을 찡그렸으나, 은자를 좀 쥐어주니 순식간에 족보를 이관받았다고. 그리고 유성룡 밑에서 배우며 그 재능을 꽃피우고 있는 동시에 처절하게 갈려나가고 있는 중으로,[92] 베드로 대성당을 본따 만들었기에 완공까지 50여 년이 걸린다는 만천서원의 성당을 평생 동안 짓게 될 운명이 되었다.[93] 유성룡이 과로로 쓰러진 후 영종에게 반 협박으로 60 넘은 사람을 출장보내지 말라는 규정을 만들게 한 덕분에 노년은 편했을거라고. 그가 만천서원을 짓는 동안 머물렀던 집이 만천서원 내에 유적지로 현대 시점까지 남아있었다.

4.3. 니당개[편집]


원 역사에서는 조선에 대항하여 니탕개의 난을 일으켰던 여진족 추장이었지만 1부 시절에 여진족들이 조선화되면서 그 영향으로 그냥 조선 사람이 되어버렸다. 연해주 저 멀리 있는 애단현으로 유성룡이 부임받자 외할아버지[94]가 도움을 주고자 소개해 주며, 북방에서 대장간을 운영하며 나름 위세를 떨치는 지역 유지로써 현감으로 부임한 유성룡에게 비장으로 고란을 소개시켜준다.

그가 운영하는 대장간에서 생산하는 철은 코크스를 사용하는 등 현대의 제철기술과 유사한 기술로 제련되어 품질이 매우 뛰어나 조선 내에서도 경원(현대의 훈춘)지방에 있는 하마 니씨의 대장간을 최고로 쳐주고 있으며, 경진만란에서 포로로 잡힌 스페인 출신 대장장이가 여기서 생산된 최고급 철을 보자 눈이 돌아가 검을 만들어주고, 본국으로 귀국할때 조선산 철과 다마스쿠스 강 1천근을 받는 대가로 제자들까지 가르칠 정도이다. 반면 가장 낮은 품질의 철은 일본에서 사가는데, 일본에서 생산되는 사철이 무기로 쓰기 어려울 정도로 저질이라 경원 지역의 최하급 철도 일본산 철보다 훨씬 품질이 뛰어나기 때문에 아주 잘 팔린다고 한다.[95]

2부 후반에는 유성룡이 고구려 유적 발굴을 명분으로 요동을 개발할 때 불려와 철광 및 제철로 건설에 대한 의견을 나누기도 하였다.

4.4. 곽재우[편집]


원 역사처럼 관직에는 욕심이 없는 대신[96] 유곡 입신체비장의 체장으로써 내수린을 익혀, 자신의 부를 적극 이용해[97] 36명씩이나 되는 대규모 내수린단을 꾸리고 있었다. 일본의 공격 때 의병을 조직, 붉고 노랗게 칠한 풀 플레이트 메일을 입고 야습을 감행해빨간 갑옷 입고 나쁜 놈들 근육하는 부자니까 딱 맞네 미신을 믿는 일본인들에게 '철갑괴인', '철귀(테츠오니)'로 불린다.[98] 종전 후 논공행상에서 유성룡에게 귀띔받은 이연이 관직을 주는 대신 은상과 이번 전쟁에서의 활약을 철갑귀전이라는 내수린극으로 각색할 수 있는 권한을 받았다. 3대운동 800근이 넘는 사람들에게는 자신이 직접 제작한 옷을 입혀주는 모습을 보인다.[99]


4.5. 서산대사[편집]


일본의 조선 공격 때 문화재가 파괴되는 것을 염려한 유성룡이 전장을 경주가 아닌 진주성 쪽으로 유도하자, 이에 감사하며 승려들을 동원하여 게릴라 전술로 일본군을 공격한다. 덕분에 수양대군이 왕위에 오르지 않아 세워지지 않은 원각사에 해당하는 사찰 건립을 허가받는다.


4.6. 톨가 ★[편집]


조선 개척단 중 탐험대를 이끄는 몽골인. 소빙하기가 다가오면서 겨울을 보내기가 나날히 힘들어져 고민하던 중 호주 개척에 대한 소식을 듣고 조선 개척단에 합류하였다. 호주 개척편에서는 본의 아니게 큰 공적을 두 개나 세웠는데 호주로 가는 길에 멀미로 인해 우연찮게 토끼우리를 바다에 빠뜨려 토끼로 인해 초래될 재앙을 막아냈다는 것과,[100] 도망가던 영국인 범죄자 출신 노예를 잡아들이던 도중에 노예로부터 우두가 감염되었던 것. 이 때 걸린 우두는 천연두 치료법을 찾던 유성룡의 간언으로 조선으로 전해져 종두법을 개발하는 계기가 되었다.

원주민들에게 자신을 소개할때 조선 소속 탐험대 대장으로 칭하고 조선인은 물론 마사이인, 영국인과도 자연스럽게 조선말로 대화하는 등 사실상 조선사람 다 되었지만 몽골의 기마민족으로서의 자부심은 그대로 유지하고 있으며, 호주로 이주한 뒤엔 탐험대로 일하면서 얻은 보상과 노천 광산에서 캐낸 금과 은 덕분에 매우 부유하게 살고 있다.[101]


4.7. 원영국 ★[편집]


원동산(아이신기오로 충샨)의 후손이자, 원 역사에서 청나라의 시조가 되는 누르하치의 가장 가까운 친척이다. 다만 근육조선 세계관에서는 누르하치의 직계 조상인 충샨의 3남이 요절해버려서 누르하치는 태어나지도 못했고, 충샨도 1부에서 이미 조선에 귀부한지라 본인도 평범한 조선인으로 호주 개척단에 참가해서 광산을 운영하고 있다. 호주가 워낙 오래된 땅이고, 원주민들도 광맥을 채굴할 만한 기술력이 없다보니 광맥이 여기저기 널려 있어서 본인은 만족하는 중이다. 자기 선조가 나름 한 끗발 하던 사람이라는 걸 알고는 있는 거 같은데 그닥 관심은 없는 듯.[102]


4.8. 허균[편집]


원 역사에서 홍길동전을 쓴 인물.[103]
1부 에필로그에서 그의 호를 딴 교산(蛟山)식 닭갈비[104]가 언급되면서 처음 언급되었으며 이후 미주 개척단의 일원으로 합류함으로서 직접 등장하였다. 원 역사대로 재주는 있지만 오만한 성격에 꽤나 급진적인 발언을 서슴치 않아서 나중에 탄핵당하기 딱 좋다는 유성룡의 평가는 덤. 그리고 원 역사에서처럼 미식가였던지라 유성룡의 형 유운룡에게 인정받고 그 밑에서 요리를 배운적도 있다. 요리 실력은 마요네즈 레시피를 응용한 기름기를 줄인 새로운 음식을 만들어낼 정도이며 미식에 대한 애착도 남달라서 음식과 관련된 일이라면 누가 시키지 않아도 직접 나설 정도이다.
정철이 미주로 온 뒤엔 유성룡이 정철의 작문능력을 극한까지 뽑아내기 위해[105] 허균을 정철의 안주담당 요리사로 배정하였다. 정철과 처음 대면했을 때는 정철이 어리디 어린 허균을 못마땅해 하는 듯한 표정이지만, 유성룡은 왠지 모르게 둘이 서로 친해질 것 같다고 평했다. 그리고 유성룡의 예상대로 새로운 요리+술이라면 환장하는 두 사람의 사이는 급격히 친해져서 온갖 종류의 칵테일을 시험하고 있는 중.
홍길동전의 저자답게 문장은 빼어나고, 특히 깔끔한 대화문을 쓰는 것에 능하기에 유성룡이 주도하는 복수자전 소설 집필의 공동저자로 활동하였다. 말년에는 뛰어난 자질을 지닌 송시열의 스승으로 이항복을 추천해주고 호주로 건너가 식문화를 개선하는 데 여생을 바쳤다고 한다.

4.9. 사명대사[편집]


조정에서 승려들의 아메리카 대륙 출입을 허가한 이후 유성룡이 있는 휴스턴 지역으로 찾아오는 것으로 처음 등장하였다. 서산대사와 마찬가지로 산탄총을 활용한 게릴라 전술로 승리에 기여하였으며, 유성룡의 부탁으로 아메리카 원주민들에게 보총 사용법 및 게릴라 전술을 전수하는 역할을 맡게 되었다. 이때 가르친 일부 원주민들은 불교에 귀의하였는지 스페인 탐험대와의 전투에서 해탈, 탄압(彈壓)[* 일본과의 전쟁에서 서산대사가 처음 언급한 단어로 탄환으로 적을 사살 제압한다는 뜻이다. 일본군이 말한 조선 불계가 탄압받고 있다는 소리에 반박하며 나온 말.], 삼계 등 불교와 관련된 말을 외치며 싸우는 모습이 나오기도 하였다.

유럽에서 온 천주교 신부들이 입신체비에서 벗어나려고 해서 열받은 유성룡과 관료들 및 세스페데스 신부 때문에 신부님이라면 3대운동 1천근은 기본으로 해야한다고 믿는 아메리카 원주민 천주교 신자들과 함께 우람한 근육을 자랑하며[106] 신부들을 입신체비로 굴리기 시작했다.


4.10. 이철 ★[편집]


이름은 전주 이씨의 철(鐵)이라는 이름을 지닌 서생으로, 호는 유허(遺墟)……라는 프로필만이 알려져 있으며, 현재 조선에서 가장 큰 인기를 누리는 복수자전이라는 신소설의 작가. 선비 출신인데 당시 조선에서 천대받던 소설을 쓰는 것을 부끄러워해, 정체를 밝히지 않고 유성룡을 통해 소설을 출간한다. 복수자전의 흥행성공으로 백성들의 정음 교육열이 대폭 증가하였기에, 국왕 이연도 그를 칭찬하며 동시에 정체를 캐지 말라는 어명을 내렸다.

하지만 그 정체는 스토리 작가 겸 최종 주석 담당 유성룡, 집필 정철, 문체교정담당 허균, 편집자 이항복으로 구성된 4인 집단 집필팀. 이름과 호는 이 넷의 이름에서 한 글자씩 따와서 음이 같은 한자로 재구성한 것으로, 성룡, 균, 항복, 정로 모여서 유허 이철이 된 것.[107]

순식간에 조선 전역에 사본이 퍼지는 등, 엄청난 인기를 끌게 되었는데 이에 그치지 않고, 조선 주교구에 온 유럽 신부들도 복수자전에 푹 빠져 밤세워 읽을 정도이고 유성룡에게 제발 이 작가에게 방을 붙여서 기독교 소설좀 쓰게 해 달라. 번역은 우리가 해서 유럽에 알리겠다고 사정사정할 정도로 인기를 끌게 된 모양이다.[108]

2부 외전에서 밝혀진 바로는, 유허 이철이라는 이름이 가명이라는 것까지는 알려지고 후보군에 유성룡, 허균, 이항복, 정철은 들어가 있으나, 집단 집필진이라는 건 알려지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사관도 따돌리고 진행한 비밀 국책사업[109]이니 넷 모두 집필진에 대해 이야기했을 리 없고,[110] 문장과 문체로 알아보자니 넷의 협업이라 누구의 것인지 알아볼 수 없다. 그리고 세월이 지나면서는 사람마다 각자 생각하는 이철의 모습이 있다보니, 미래로 돌아온 김성원이 호주에서 (당연히 본인은 진실을 알고 있기 때문에) 대충 4인이 합작한 것이 아니겠냐고 말했다가 순식간에 호주 사람들까지 끼어든 대규모 논쟁으로 발발, 사문난적[111]이라고까지 불리면서 그대로 내수린에 끌려갔을 정도로 지금도 의견이 분분한 모양.
[1] 디스크와 비만 때문에 군대도 면제고, 스트레스 때문인지 탈모도 있었다.[2] 성원은 헬스나 역사 부분에서 영직을 떠올리곤 하고, 영직은 건축 같은 분야에서 '전통 건축 하는 친구'를 떠올리곤 한다. 이들 사이의 또다른 친구로는 공무원 하는 사람이 있다는데, 언급 이상으로는 나오지 않는다.[스포일러] 2부 중후반 즈음, 하성군을 만나 영직서를 보고 정체를 알아차리게 된다. 이 영직서는 최영직이 후대인들이 자신을 빙의자라고 생각하지 못하도록 모든 내용을 그 시대 사람이 할 법한 애매하게 틀린 정보로 채워 넣은 도서였는데, 사람들이 읽기 어렵게 한답시고 중간중간 아재개그를 섞어 놓았다. 그런데 여기에 쓰인 아재개그 중 체중 200근(130kg)이 넘는 성원이 관련 농담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현대에 돌아와서 최영직을 떠 보고는 정체를 확신한다.[3] 이 영직서는 쉬라고 했더니 일거리를 만드는 유성룡을 혼내기 위해 여럿 동원되었는데 하성군은 이론적인 부분으로 갈구려고 동원된 인간인데 유성룡의 머리가 워낙 좋다보니.... 어쩔수 없이 당시에 제대로 외우던 인간이 없는 영직서를 동원한것이다.[4] 그냥 별 생각 없이 효율만을 추구해 만든 필리핀의 도시는 우연찮게 시가전의 무대가 되자 그 효율이 드러나게 된다. 작정하고 방어를 생각하고 만든 요새는 원거리 포격으로는 답이 없는 성형 요새를 베이스로, 해자에 말뚝을 박고, 성벽 밑에는 석회로 벽을 세워 땅굴 작전을 막았다. 게다가 우회를 막기 위해 두곳에 설치한 보조 요새들은 엽기적인 방어력으로 유명한 삼년산성을 레퍼런스로 한지라 오히려 공격한 쪽에서 겁에 질려할 정도의 방어력을 보여줬다. 이를 본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아예 수성에 미친 새끼라고 욕할 정도다. 도요토미도 어설픈 수준이 아닌 공성 전문가라고 해도 되는 수준인데. 답이 안나온다.[5] 에드워드 제너의 경우 이 중 우두 접종 하나만으로 위인으로 취급되고 있다. 또한 미국 단위계의 도래를 원천 차단한 것도 노벨물리학상을 받아도 될 정도의 업적이다.[6] 1부 최영직은 중반 이후부터 현대의 기억을 점점 까먹기 시작해서, 뭔가를 해결하려 할 때마다 빙의 직후에 현대 지식을 써놓은 서책을 찾아 들여다 봐야 했다. 반면 김성원은 빙의 초기에 혹시 몰라 현대기억을 좀 적어놓긴 했는데, 빙의하고 수십 년이 지나도록 이걸 꺼내보기는커녕 뭘 까먹었다는 묘사조차 나오지 않는다.[7] 사실 위에 나오듯 김성원으로 살 당시에도 지독한 일벌레였다. 본인은 가족 때문이라고 말했지만 결혼전에도 야근수당을 노렸다지만 맨날 야근을 뛰었다고 하거나 환생 후의 모습을 보면 그냥 원래 이런 사람이었던 셈.[8] 당시 글쓰기는 세로쓰기였으니 세로드립이 아닌 가로드립을 쳐야 한다.[9] 사실 처음에는 떡메로 때리려 했는데, 유성룡의 하인이 아무리 그래도 이건 너무하다 생각했는지 떡메에 흠을 내 놔서 금방 부러졌다.[10] 이 인기가 어느 정도냐면, 조선령 일본인들은 아메리카 대륙 개척단 합류에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다가, 유성룡이 모집한다는 사실을 알자마자 살던 땅을 정리하고 개척단에 지원하려고 모여들었다. 덕분에 5천명 정도 예상하던 개척단에 3만명이나 몰려 유성룡이 골머리를 싸맸다. 이 개척단에 대한 묘사는 그야말로 매드 맥스: 분노의 도로워보이에 필적한다. 관찰사님이 날 보셨어![11] 수양대군의 경우 자신에 의해 벌어질 일에 대해서 우려를 표하고 최소화하려고 노력했다.[12] 특히 아메리카 대륙 개척 당시 유성룡은 인근 부족과 무력 충돌을 일으킨 이후 이들을 전부 복속시키고, 조선과 스페인의 국제 협약을 어겨 가며 멋대로 영토를 넓혀 개척을 단행하고 알박기로 요새까지 지었다. 또한 원주민들에게 역병을 전파한 역적 윤원형의 양자를 중용하였다. 다른 신료가 이런 짓을 했다면 독립 국가를 선포하려는 의도가 있었다 해도 할 말이 없을 정도로 선을 넘은 자치권을 사용했고, 실제로 이연은 이 소식을 접한 이후 다수의 암행어사를 파견해야 했다. 물론 진짜 유성룡을 의심해서가 아니라 유성룡에게 역심이 없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라고 보는 것이 합당한데, 어사들이 하나같이 유성룡이 충신이었다고 증언하자 "유성룡이니까 이렇게 한 거지 다른 사람들은 따라하지 말아라"는 요지의 이야기를 하며 유성룡을 우의정으로 승진시켜 혹시라도 공격당할 여지를 원천차단해 주었다.[13] 태국에 파견을 갔다가 말라리아로 죽을뻔 했고 이 치료를 위해 키니네를 과다하게 사용하여 간이 혹사당한 나머지 간손상으로 인해 남은 수명이 3년 미만이라고 허준에게 진단 받았으며, 이때 어마어마한 근손실이 발생하고 피부도 확 늙어서 보는 사람마다 기겁을 했다고 한다. 만약 유성룡이 거기에서 자신의 상태를 조정에 폭로하게될 경우 당시 입신체비의 3대 계파인 상초충, 하초충, 소룡식 입신체비를 모두 깨우친 유학자중의 유학자이자 두번의 전란을 최전방에서 막아냈고 어마어마한 식민지 개척 및 각종 이윤사업으로 조선의 수준을 몇단계 높여준 신하를 자신의 자존심으로 사지에 보낸 왕이 되어 왕권이 한순간에 박살날 뻔했지만 그걸 본인도 잘 알았기 때문에 그것에 대해 함구하는 대신 자신의 사직과 향후 이런 일이 없게 해 달라는 청원을 하는 수준에서 끝냈다.[14] 작중 유일하게 유성룡을 압도한 이는 정말로 죽은 후 귀신이 되어 나타난 이지함뿐이다. 하지만 유성룡이 사망 후 같은 귀신이 된 후 만났을땐 이지함도 상대가 되지 않았다.[15] 작가가 작가의 말에 허 도령 탈의 사진을 남겨뒀는데, 꽤 흡사하다.[16] 웃음이 최고의 약이다, 죽을 만큼의 고난은 사람을 미치게 만든다 등의 대사를 언급하는 것을 보면 호아킨 피닉스의 조커보다는 히스 레저의 조커를 염두에 두고 연기한 듯. 호아킨 조커는 1부 홍윤성이 선점했다. 둘의 공통점은 과로[17] 그리하여 필명은 각자의 이름에서 한 자씩 따오고, 주상전하의 재가를 받았다는 점에서 전주 이씨 출신의 유(성룡)허(균) 이(덕형)(정)철이 되었는데, 작가의 말에 따르면 이철이란 이름은 스탠 리를 염두에 둔 것이라고.[18] 거기에 복수자전을 읽느라 밤을 새 입신체비를 제대로 못 할 지경이 된 가톨릭 신부들이 가톨릭적인 이야기를 써달라고 청한 것을 받아들여 벤허까지 써버렸다.[19] 칠순 잔치 한 달 전에 이순신과 바둑을 두던 중 사망했다고 했으므로 만 69세 10개월~11개월 사이에 사망했다.[20] 귀환하고 반나절 뒤인 다음날 오전까지 진행된 에필로그의 답변에 최영직이 돌아오기까지 2.5일 남았다는 작가의 답변이 달렸다.[21] 예를 들면 선 긋는 단축키는 원래 Line의 'L'이지만, 여기에서는 '선'의 'ㅅ'키로 바뀐다.[22] 원래 업무 시일을 연장하면 계약 변경에 여러 가지 귀찮은 소요가 발생해서 보통 야근으로 때운다. 하지만 근육조선에서는 반대로 야근을 하려면 관공서에 신청서를 제출하고 승인을 받아야 한다.[23] 어감이 조금 거시기하지만 엄연히 창고의 출납을 기록하는 관리직이다. 물론 작중에서도 이 단어를 가지고 유성룡이 깨알같이 드립을 치긴 한다.형님이 고자라니![24] 사실 숙제는 핑계고 만들어진 요리를 직접 검수한다는 명목으로 닭요리를 시식하기 위한, 고통스러운 절육 기간을 꼼수로 빠져나가려던 이연의 노림수였다. 여기에 남은 닭갈비로 볶은 밥을 먹으려던 찰나 하성군에게 딱걸려서 한 입밖에 못먹기도 하였다.[25] 독초로 취급하던 토마토, 가축사료로 취급받는 도토리감자, 버터을 만들고 남은 우유 찌꺼기로 만든 리코타 치즈.[26] 작가가 답변에서 엘랑 알리먼츠가 노블 알리먼츠를 이기지 못한다며 간접적으로 이름을 제시했다.[27] 2부 후 외전에서 약간 나오는데, 푸아그라를 끓는 버터에 데쳐서(?) 먹는 샤브샤브(?)와 대창 안에 대창을 다져서 집어넣은 소시지 같은 정체불명의 기름덩어리들이 음식이라고 나온다(...) 작가의 말에 따르면 푸아그라의 실제 조리법중에 버터와 섞어 정육면체 형태로 만들어서 차게 내놓는 조리법이 있고, 곱창 속에 곱창을 넣은 앙두예트(Andouillette)라는 소시지가 있는데, 이걸 조금 더 기름지게 과장한 거라고. 덕분에 프랑스로 유학을 간 대한 공화국 사람들이 프랑스 요리를 못견뎌서 도망나왔다며 몸서리치기도 하였다.[28] 19세기에 들어왔던 원역사와 달리 유성룡이 사절단에 속해 유럽으로 갔다오던 때 솔로몬 제국이 호주로 진출하면서 호주 내 운송수단으로 삼기 위해 웃돈까지 주며 대량으로 유입시켰다. 이후 잘 써먹다가 원역사처럼 자동차나 철도 등이 낙타를 대체하면서 남아돌던 낙타는 자연스레 늘어난 것으로 보인다.[29] 정확하게는 상체의 무게를 받쳐줄 도구로서 하체를 존중한다. 이황 자신이 절대로 하체가 약하지 않았으며, 유성룡이 실전 근육으로 하체를 만들어놓은 상태로 이황의 문하로 들어왔기 때문에 처음에 칭찬을 많이 받기도 했다.[30] 군사부일체가 기본인 유교에서 직계 스승의 장례식에 참석하지 않는건 근육조선 세계에서 제일 흉악한 행위로 불리는 불효와 다름없기 때문이지만, 유성룡이 항상 일때문에 바쁘고 그 일을 해야 조선이 발전한다는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31] 유성룡이 처음 이황의 가치관에 대해 들었을 때 "그럼 이황 라이벌인 조식은 드러내지 않는 효도가 진심이라 여겨 하체라도 단련하나?" 라고 생각했는데, 그 편의 작가의 말이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32] 이 대역기봉은 원래 수양대군이 만들었던 물건이다. 이후 조식이 생을 마칠 때 유성룡에게 넘겨주며, 유성룡이 이를 반으로 잘라 나중에 하나는 이순신의 지휘봉으로, 하나는 임차손의 편곤으로 쓰인다.[33] 원래 백성들은 쌀겨가 많이 섞인 곡식을 세금으로 내서 세금 내는 양을 줄였고 정부도 이걸 어느정도 묵인하고 있었는데, 풍구 도입으로 쌀겨가 다 날아가면 오히려 세금이 늘어나는 것. 당시만 해도 약관의 청년이었던 유성룡은 이런 큰 문제에 대해서 어쩔 방법조차 없으니, 조식 같은 고위 관료가 문제를 제기해 정쟁으로 만들어버리면서 커버를 친 것이다.[34] 이때 자신이 섣불리 미래의 지식을 통해 바꿔나가는 것에 대해 조금씩 신중한 모습을 보였다.[35] 사실 유성룡이 혼인을 거절했으면 조식도 크게 신경쓰지 않았겠지만, 유성룡 입장에서는 그렇게 쉽게 끊을 수 없는 일이기도 했다.[36] 큰사위인 영흥부정은 척추가 틀어져 석 달을 정양해야 했고, 둘째 사위는 피골이 상접해 가다가 탐라도 현감으로 자원도망했다고 한다.[37] 과거 답안을 세필로 빼곡하게 작성해 버렸다. 과거시험같은 논술형 문제는 글자를 많이 적을수록 유리하기 때문(논술형 문제에 글자수 제한이 있는 것도 이런 이유다). 당시에는 필체를 통한 부정채점을 막기 위해 예조에서 과거 답안을 필사해 채점했다. 그런데 유성룡이 세필로 답안을 작성해 장원급제를 해 버리는 선례가 나와버렸으니 당장 다음 과거부터 같은 방식이 유행할 게 뻔했다. 예조에서 세필로 답안을 작성하는 걸 금지해달라고 요청했지만 윗선에서는 '평범한 사람들이 따라하다간 답지를 다 못채워서 자멸할 것'이라며 대수롭지 않게 넘겼기 때문에 일 지옥 확정이었다. 당연히 원흉인 유성룡은 예조에서 이를 갈고 있었다. [38] 유성룡 또한 본인이 찍혔음을 알기에 훈도를 신청하면 가장 먼 곳으로 배정되어 의무방어전 회피가 가능하리라 여겼고, 실제로 그렇게 될 뻔 했으나 엿을 먹은 예조 관원 중 이황의 직계 제자가 있어서 가장 가까운 강화도로 옮겨 배치했다.[39] 심지어 부인이 '당신 일복 넘치는 거 아니까 차라리 큰곳 한군데만 발굴하라'고 부탁했는데, 유성룡이 굳이 '작은 곳으로 하겠다'고 고집을 부려 간 곳이 하필 안시성이었다.[40] 심지어 유성룡은 외방 중에서도 지역적으로는 최전방으로만 골라다녔으며, 큰 전쟁만 해도 2번이나 참여했고 그 외에 위험한 현장에 가는 경우가 많았다. 당연히 아내 입장에서는 속이 타들어갔을 것이다.[41] 사실 말이 새로운 지평이지, 실은 적당적당하게 운동하는 식으로 튀려고 했다.[42] 복선이 어느 정도는 나와 있었다. 당시 입신체비 사상이 중심인 사회상도 있어서 원래 역사에서 구도장원공이라 불렸던 이이 정도의 능력과 깐깐한 성격 이라면 남들보다 더하면 더했지 절대로 입신체비를 덜 하지는 않았을 거라는 추측도 있었고, 결정적으로 두 사람은 같이 입신체비장에 간 적이 없기 때문에 유성룡은 이이의 정체에 대해서 알지 못했던 것. 물론 이황이 이전에 이이에 대해 탄식하며 내뱉은 말에 선입견(입신체비에 부정적인 사람이군ᆢ)을 가지고 있었기에 그런 것도 있었다.[43] 사실 거의 처음 율곡 이이가 언급되던 무력에 입신체비가 효과없다는 말을 했다는 언급이 나온다. 이때 유성룡은 입신체비에 부정적인 견해를 지녔다고 생각하나, 실제론 (자신에겐) 입신체비가 효과가 없다는 한탄이었던 것.[44] 이이를 보다못한 신사임당이 닭가슴살을 비롯한 고기란 고기를 먹이는 것은 물론이고 아버지 이원수도 온갖 좋은 약재까지 수소문하며 먹였다고 한다. 나중에는 하늘소 애벌레까지 집어삼키기도 했다. 이이 본인이 자평하길, "고향 땅의 하늘소 애벌레 일할은 아마 자기 뱃속에 다 들어와 있지 않을까" 라고.[45] 이황의 직계 제자라 상체 조지고, 하체파 수장인 조식의 사위라 하체까지 조지는 데다, 이제는 절육,분절에서 극의를 보이는 이이와 함께하는 수준이라 어지간한 수준으로는 따라가기 힘든 정도다.[46] 소룡식 입신체비의 극한으로 치닫는 운동 방식에 대해 직접 전해들은 이황은 아예 호통을 칠 정도로 대경했으며 진정하고 난 후에도 성공하면 이름을 떨칠 것이나 자칫하면 목숨이 위험할 것이라며 탄식하였다. 실제로 이이가 나이가 들자, 젊은 시절에 근육을 늘리기 위하여 단백질을 과하게 섭취하고, 그 뒤 소룡식 입신체비를 완성하기 위해 기절을 감수할 정도로 무리했던 것이 반동으로 돌아와 몸이 상하게 되었다. 좀 호방한 성격의 인물이었다면 5~60대쯤 되어서 근육과 관절이 쇠하는 것은 당연한 결과라고 생각했겠지만, 완고한 성격의 이이는 '젊은 시절의 치기로 나이가 들어서 불효를 저지르게 되었다'라고 자책한다.[47] 다만 어릴때의 성격도 딱히 고증오류는 아니다. 이순신하면 정의롭고 진중한 이미지가 떠오르지만 과거의 이순신은 온갖 사고를 치는 말썽쟁이였다. 본인에게 참외를 주지 않았다며 말을 끌고 와 참외밭을 밟아 망가뜨리거나 시각장애인 친구의 동아를 서리해먹고 그 친구를 지붕위에 올려놓은 채로 도망갔으며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서 어른들에게도 활을 겨누었다는 기록이 존재한다.[48] 원래 역사에서는 '증손전수방략'이라는 병법서를 보내준다. 아쉽게도 현대에는 유실된 서적이라 내용을 알 수는 없다.[49] 현대로 따지자면 육군사관학교를 갓 졸업한 생도가 굳이 진급이 가장 널널한 보병이 아니라 포병을 지원한 느낌이라 할 수 있다. 자원받을 때 성적순으로 자리가 정해졌는데도 이순신의 차례에는 기마 두 자리가 남았으나, 이순신이 굳이 화포를 선택하자 자원 내역을 정리하던 관료도 동기 신립도 의아해한다.[50] 한번은 이순신이 유성룡 앞에서 자신이 다른 장수보다 명중률이 낮다고 한탄한 적 있다. 그런데 알고 보니 명중 반경을 훨씬 좁게 잡은 탓에 오히려 실제 명중률은 압도적으로 높아져 유성룡이 뜨악해한다...[51] 실포 사격을 동반한 훈련을 몇 년이고 계속할 수 있는 예산, 몇 년 동안 지치지도 않고 같은 훈련을 반복해 병력을 숙달시킬 수 있는 끈기 있는 지휘관이 동시에 필요하다.[52] 이 때의 일화를 전해들은 프랜시스 드레이크는 입에서 불을 내뿜고 손으로 번개를 가르는 자가 아니면 절대 불가능한 일이라며 믿지 않는 모습을 보였고, 나중에 이순신을 직접 마주하자 반항하면 죽는다는 생존본능이 발동해 순순히 협조하게 된다.[53] 1부 시점이면 몰라도 2부 시점에서는 책만 읽는 선비는 산림이라고 하여 자기들끼리도 부끄러워하는 호칭이라 여길 정도다. 그나마 유성룡의 외조부인 김광수처럼 실제로 높은 자리까지 오른 산림은 존경받는 편.[54] 현 필리핀 민다나오섬의 수리가오 근처에 새운 금광과 항구를 겸한 거점도시[55] 엄연히 따지면 1등공신에 배정되는게 옳고 실제로도 그에 준하는 대접을 받았다. 2등공신이 된 진짜 이유는 막대한 지원을 내린 만력제의 기분을 생각해서 그 지원을 받아 온 진해대군을 2등공신에서 1등공신으로 올리며 한 단계가 밀려난 것.[56] 작품 초반에 이런 문제 때문에 유성룡과 살짝 갈등이 있었다.[57] 당시 이순신은 유성룡이 북방으로 가면서 비운 집에 대신 살게 되었는데, 이때 유성룡이 쓰다만 병법서를 보고 화포쪽에 관심이 꽂혀 그쪽으로 지원하게 되었다. 여담으로 이순신은 급제자 중 14위인데 신립은 급제자 2위다.[58] 정황상 원래 역사에서 존재하지 않는 인물들에 대해서는 정확하나, 기존 역사의 행적이 있는 인물에 대해서는 기존 역사대로 나오는 것. 그래서 본인도 끼워 맞추려고 해도 아예 틀에 들어가지 않는 이들이 부기지수로 많다고 한다. 대표적으로 이이의 모친, 신사임당의 점괘를 보았는데 이미 죽은 사람(원래 역사에서는 사망했을 시기)이라고 나온다.[59] 1부에서 PTSD로 인해 여러 사찰에 시주를 하며 돌아다니던 수양대군(최영직) 역시 뛰어난 고승에게 찾아가 관상을 보게 되었을 때 나온 이야기.[60] 佛倫, 피렌체의 음역인 비륜제의 줄임말.[61] 원래 성씨인 상갈로의 앞자를 음차하였다.[62] 오다 노부나가가 몇 번이나 조선의 공주와 자기 아들을 결혼시켜달라고 생떼를 쓰자 격노한 조선에서 항의의 국서를 보낼 사신단의 대표였는데, 그 때 다케다 신겐과 오다 노부나가의 전쟁이 벌어지고 있어서 전쟁터를 피해 신중하게 가느라 시간이 지체되어 도착해보니 노부나가는 패배해 사망한지 오래라 제대로 국서를 전달하지도 못한데다가, 승려로 위장한 아케치 미츠히데에게 속아서 노부나가의 손자를 조선으로 망명시켜줬다. 나중에 속았다는걸 알고 극대노해 아케치를 때려죽이려다가 내수린으로 적당히(?) 근육해주는 선에서 끝냈다고 한다. 이 실책으로 파직당할 뻔 하다가 외조판서가 교체되면 막 거양군으로 파견되어 개척중이던 유성룡이 고난을 겪을 수 있다는 이유로 겨우 살아남았고, 그 유성룡이 거양군의 개척을 성공적으로 완수하여 실책을 만회하는 데 성공했다. 덕분에 너무 고마워서 일을 마치고 돌아온 유성룡에게 수레 가득 선물을 담아서 보내줬다.[63] 일단 실물이 남아 있긴 한데 진짜로 하사품인지는 알 수 없다. 비슷한 일화가 성종 시절 손순효에게도 있을뿐더러, 정철은 속 좁은 선조에게 찍힌 상황이었는데 그 상황에서 왕이 하사한 술잔을 훼손한다? 자살행위나 다름없다.[64] 다른 곳에서는 이런 주정을 만들면 술 만들게 뻔해서 일부러 어성초 등 쓴 재료를 섞어 못 먹게 만들었지만, 미주는 워낙에 각종 물산이 무제한으로 나와서 가능했다.[65] 예전에는 상팔하팔이라 해서 위 아래 8살 차이면 친구를 했다. 이건 현대 시점에서도 마찬가지였는지 마물리와도 이걸 언급하며 친구 하려 했으나 그걸 적용해도 나이 차이가 많아 그냥 형 동생 하기로 한다.[66] 과거 1부 주인공인 영직이 직접 김성원에게 자랑삼아 보여준 기행으로 영직 본인도 잘못 하면 큰 부상으로 이어질 수 있는 위험한 행위라고 단단히 경고한 적이 있다. 웃긴건, 그 최영직도 술자리에서 썸녀에게 케틀벨로 저글링을 했다는 것. 근데 그걸 본 썸녀가 기겁하면서 전화번호까지 차단했다고 한다... 쇳덩어리를 그것도 술자리에서 알콜 좀 들어간 김에 그런 짓을 했으니 기겁을 안하고 배길 리가 없다.[67] 사실 유성룡의 의도는 살인교사를 노린것은 결코 아니고 저글링하다 발등이라도 작살나고 무관을 때려치게 만드는 것이었다. 하지만 의도대로 발이 박살나긴 하는데 정작 원균이 그걸 내려다보는 사이에 던졌던 케틀벨이 뒤통수에 찍혀버리는 바람에 사망한 것.[68] 다만 상체 위주로 근육이 발달되고, 등과 하체가 상대적으로 좋지 않아 당시에는 대성하기 어렵다는 평가를 받았다.[69] 실제 유성룡의 추천을 받아 여송에 도망갔다가 상관으로 이순신이 부임해오자. 서툰 글씨로 "살려줘"라고만 쓴 편지를 유성룡에게 보낸다. 물론 유성룡의 반응은 '여해에게 내가 좋은 부장을 보냈구나!'정도.[70] 유성룡에게서 이어받은 대전사 칭호를 놓고 코만도와 사투를 벌인끝에 패배해 넘겨준뒤 고란 본인은 부상치료를 위해 칩거중이라는 거짓 이야기를 꾸며냈다.[71] 구리는 화포를 만드는데 필수적으로 들어가는 자원이라 조선에서도 구리를 확보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는 상황이라 함부로 쓸 수 없는 상태였다. 유성룡도 조선 본토에서 이 짓을 했다간 신료 전원에게 탄핵당했을게 뻔하다고 생각했을 정도. 미주에서 근무하던 허균도 빙요(빙햄) 구리 광산의 존재를 알기 전엔 미주 백성들이 사소한 식기류에도 구리를 펑펑 쓰는걸 보고 사치풍조가 만연하고 있다고 유성룡에게 보고할 정도였다.[72] 나머지 반쪽은 이순신이 받아 지휘봉으로 사용한다고 한다.[73] 영의정의 주요 업무 중 하나가 교육에 관한 것이였기에 백성들의 교육열을 끌어올리기 위한 수단으로 백성들이 쉽게 접할 수 있는 소설 집필에 손을 댄 것이다.[74] 현대인의 무궁무진한 소재를 바탕으로 한 설정 및 스토리 담당 유성룡, 집필 담당 정철, 문장 교정 이항복, 대사 교정 허균의 당대 최고의 드림팀으로 구성되어있다.[75] 일본 본토에는 차남에게 분가(分家)하여 조선과 일본 양쪽에서 가문을 이어나가고 있다고 언급되었다. 조선쪽 가문은 전라도 지역을 간척하여 얻은 넓은 농토에서 거둬들이는 재산이 상당하기에 일본쪽 가문에 금전을 지원해주기도 하는 모양.[76] 2부 시점에서 하주도는 조선의 영토가 된지 100여년이 지나, 이 지역 주민들은 혈통만 일본인이지 조선말을 쓰고 조선의 문물에 익숙한 사실상 조선인들이다. 산시양 본인도 일본식 이름은 야마모토(山本)이였지만 조선인이 된 후에는 산본이라는 로 쓰고있어 2부 후반에는 산본 대감으로 불리고 있다.[77] 유성룡이 '산시양이 국수틀로 반죽을 잘라서 대량생산하는 방법을 고안했다'고 해 버린다. 그런데 이게 성공해 버리는 바람에 또 일폭탄이 떨어진다. 물론 실패했으면 괘씸죄로 일폭탄이 떨어질 예정이기는 했다.[78] 이렇게 된 이유는 원 역사에선 젊은 나이에 요절한 수양대군의 장남 도원군이 근육조선에선 건강히 장수한데다, 장손 월산군이 자리를 이어받게 되면서 잘산군의 혈통은 종친에서 멀어져 평범한 전주 이씨 사대부가 되었기 때문이다.[79] 그래서 조선수군의 비결을 캐기위해 호주의 조선수군에 영국인과 네덜란드인 첩자들이 지원하였다. 다만 훈련을 못따라가서 3개월만에 그만둔 사람이 더 많다고 한다.[80] 기존에는 조그맣게 공방을 만들어 쓸거만 조금 만드는 정도 였는데 환종이 대규모로 공방을 만들어 대량 공급해서 자연스럽게 벽돌과 기와로 집을 짓게 만들었다.[81] 이때 이를 기록하던 사관이 놀라서 멈칫했다.[82] 작품 속 세계관에서 조선의 임금은 기본적으로 우락부락한 근육질이므로 그 무게를 지탱하기 위해 용상의 크기와 무게도 만만치 않은데다 이미 몇번 내던져진 전적이 있어서 바닥에 못을 박아 고정되어 있는 구조였다. 그걸 뽑아들어서 던져버렸다는 말이니...[83] 유성룡이 극적인 효과를 위해 이연의 머리 위에 벼락이 꽂히게끔 피뢰침을 설치하였기에 처음 벼락을 맞았을때는 놀란 모습을 보이기도 하였고, 제사가 끝난 다음에는 유성룡을 슬쩍 노려보며 일을 더 얹어주는 뒤끝을 보이기도 하였다.[84] 그래서 이걸 보다못한 유성룡이 감리 제도를 도입하게 된다.[85] 원래 예진원을 이을 후계자였던 진안군이 통풍에 걸려 자리를 내놓으면서 후계자를 구했는데, 이때 이균이 발탁되었다.[86] 공식 사제 관계는 장성해야 맺을 수 있기 때문에(물론 입신체비 때문이다) "스승" 말고 "선생"으로 부르게 한다.[87] 2부 조선에서는 종친사환금지법이 없다. 제한은 있지만 정2품까진 가능하다고. 덕분에 판서 자리에서 10년 가까이 재직해, 퇴직한 상태였던 2부 초반에도 아직 자문위원으로 공조에 영향력이 있는 듯하다.[88] 상초충의 거두 이황의 직계 제자이며, 하초충인 조식의 사위에, 이이와 함께 소룡식 입신체비를 창안한 동반자이다. 조선 중기의 입신체비의 양대 학파를 마스터하고, 새 학파를 창시한 공동창립자이니 그야말로 조선의 중기 입신체비 그 자체라 할 수 있는 사람인 셈.[89] 왕이 되자마자 역사에 남을 워낙에 근육적이고 강대해 어떻게 죽일지 엄두도 안 나기까지 하는 명신을 죽인 왕이라고 백성과 신하들에게 두고두고 씹혔을 것은 물론이고, 신하들을 조금이라도 압박하려 하는 순간 "서애 유성룡의 일을 잊으셨나이까!"라는 무적의 논리로 반발당할 수 있다. 신료들이 이를 조금만 악용해도 정치적으로 아무 것도 못 하는 상황에 놓일 수도 있었다.[90] 원래 조선 법률에서 연좌죄는 매우 어린 아이에게는 면제되며, 죄인과 절연하고 가까운 다른 친척에게 의탁하여 다른 가문의 호적에 올리는 식으로 회피하게 된다. 그런데 당시 6살이던 이 고아가 그 방법을 알 방도도 없고, 안 그래도 원래 고아라서 다른 가문의 호적에 오르려고 해도 아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휘말려 든 것.[91] 덕분에 자기 이름만 적으면 되는 미주 공무원 고시는 부담없이 치를 수 있었다.[92] 문피아에 연재된 이 에피소드(2부 26장 6화)에 '관료1 : 역적 윤가놈의 손자라고?! 관료2 : 서애대감이 부리겠다고 합니다. 관료1 : 그건 너무한 형벌 아닌가.' 라는 댓글이 달렸는데, 이에 작가가 '관료3:나같으면 그냥 머슴 생활을 계속하겠네. 출세가 뭐가 중요하단 말인가.' 라는 답글을 남겼다. 추가로 윤광영에게 입신체비를 가르치기 위해 유성룡이 하와이 출신 입신체비사들을 붙여줘서 업무 외적으로도 갈리는 상황.[93] 다만 이런 상황이 족보를 옮겼어도 역적의 후손이라는 딱지가 남아있어 다른 일을 하기가 힘든 윤광영 본인에게는 위대한 건축물을 만들어낸 건축가로 역사에 이름을 남길 기회가 될 수 있다.[94] 원 역사처럼 김광수(金光粹). 산림의 일원이며 극초반에 어린 유성룡에게 조선의 생활을 주로 해설해준다. 산림이지만 높은 자리를 지낸 적 있어서 주변 사람들에게 꽤 존중받는다.[95] 일본도의 처참한 강도에 대한것은 본문을 참고.[96] 그래서 그를 가르친 남명 조식은 재능은 있는데 출세욕이 없는 제자가 있었다며 유성룡에게 푸념하기도 하였다.[97] 작가의 말에 따르면 현대 기준으로 재산이 천억 원 이상으로 추정된다고 한다.[98] 일부러 동료들에게 같은 갑옷을 입혀서 쓰러지면 분신을 부른다고 믿게 만든 건 덤.[99] 인터넷 밈인 3대 500 이하 언더아머(작중에서는 이너아머로 언급된다.) 금지의 패러디. 영직을 통해 언더아머 밈을 알고 있던 성원, 즉 성룡이 "그럼 단속반도 있냐?"라고 물어보니 "어떻게 아셨습니까?"라 답하는 곽재우가 압권이다.[100] 미안하다고 하기 쪽팔리니 토끼의 번식력을 가지고 변명했는데, 이걸 들은 권율이 그 위험성을 깨닫고 비슷한 생물을 모두 제외한다. 다만 영국인이 자리잡은 태즈메이니아 섬은 원 역사와 같이 토끼 전쟁을 겪고 있다.[101] 낙타 한 마리당 은 200냥에 사들이겠다는 제안을 받은 드레이크가 당장 갖다바치겠다고 할 정도로 비싼 값을 제시하였으며 납품받을때까지 추가로 캐낸 금과 은으로 약속한 금액에 웃돈을 얹어줄 정도로 어마어마한 재산을 축적하였다.[102] 톨가가 '이렇게 광산이 잘 되면 자네 집안을 다시 일으킬 수도 있겠는데? 선조가 동방 삼왕간가 뭔가하는 명문가라며?'라며 농을 건네자 '그게 언제적 일인데요? 난 엄연히 북인이고 조선의 일원'이라며 무심하게 대꾸할 정도다. [103] 1부에서 등장한 홍길동이 상회의 주인으로 성공한 인생을 살았던만큼 근육조선의 역사에서는 홍길동전이 쓰여지지 않았다.[104] 다른 하나는 최초로 닭갈비를 만든 유운룡의 호를 딴 겸암식이 있다. 둘의 차이점은 철판에 볶느냐 숯불에 굽느냐의 차이로, 철판에 볶는게 겸암식. 숯불에 굽는게 교산식이다.[105] 미주의 풍요로움을 널리 알려서 사람들을 불러모아야 했기 때문인데 유성룡 본인은 작문능력이 영 아닌지라 정철을 써먹어야 하는 상황이였다.[106] 근육조선 세계관에선 승려들이 시주받은 닭가슴살을 먹으며 입신체비에 매진하기에 선비뿐만이 아닌 승려들도 상당한 근육질의 몸매를 지니고 있다. 직접적인 언급이 나온건 아니지만 근육조선의 조선에서 백성들에게 어필하기 위해서라도 입신체비에 몰두한 것으로 추정된다. 마침 대부분의 사찰이 산 속에 있고 닭가슴살 시주가 잘 들어와서 입신체비하기에 좋은 점도 있고 입신체비가 유학이 기반이긴 하지만 그중 효에 기반을 두고 있으니 불교를 신봉하는 스님들도 거부감이 덜한듯...[107] 이철 → 철 이 → Steel Lee 로 스탠 리의 패러디.[108] 이를 들은 유성룡은 전차 경주를 하는 영웅의 이야기 등을 염두에 두고 관련내용을 정리하기로 마음먹었고 후에 마차격전이라는 제목으로 출판되었다.[109] 백성들의 문맹률을 낮추기 위해 백성들의 교육열을 끌어올리기 위한 수단으로 채택한 것이 쉽게 접할 수 있는 정음으로 쓰여진 소설인 것이다. 실제로 복수자전이 흥행하면서 소설을 직접 읽기 위해 글을 배우겠다는 백성들이 늘어나고 있는 상황.[110] 다만 임금인 이연과 유성룡의 아내 등 극히 일부에게는 누구의 작품인지 알려진 상황이다.[111] 원래의 사문난적은 유교를 어지럽히는 적이란 뜻이지만, 여기에서는 유허 이철의 저작 전체를 한 명이 아닌 여러 명으로 어지럽히는 적이라는 뜻이라고..

파일:CC-white.sv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근육조선/등장인물/조선 문서의 r107에서 가져왔습니다. 이전 역사 보러 가기
파일:CC-white.sv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다른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
[ 펼치기 · 접기 ]
근육조선/등장인물/조선 문서의 r107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파일: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__CC.pn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3-11-15 04:50:12에 나무위키 근육조선/등장인물/조선/2부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