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관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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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왕릉
금관총

金冠塚


조성형태
돌무지덧널무덤
피장자
이사지왕
조성시기
신라 6세기 초

파일:금관총 구조.jpg
금관총 구조

파일:이사지왕.png
디지털로 복원한 금관총 피장자인 이사지왕의 모습

파일:유네스코 세계유산 로고(흰 배경).svg
유네스코 세계유산
이름
경주역사유적지구[1]
Gyeongju Historic Areas /
Zones historiques de Gyeongju
국가·위치
대한민국 경상북도 경주시
등재유형
문화유산
등재연도
2000년
등재기준
(ii)[2], (iii)[3]

1. 개요
2. 발굴 경위
3. 무덤의 주인
4. 나무위키에 문서가 생성된 주요 출토 유물



1. 개요[편집]


金冠塚

경주시 대릉원에 위치한 노서동 고분군에 있는 대형 고분. 신라 왕 또는 왕족 및 귀족으로 추정되는 이사지왕의 무덤이다. 신라시대 유물의 대표격으로 알려진 금관이 최초로 발견되어 금관총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대릉원 고분 아니 지금까지 발굴된 신라의 적석목곽묘 무덤 및 돌무지덧널무덤 중 유일하게 피장자의 이름이 확인된 무덤이다. 연구성과들을 기초로 500년 전후에 축조했다고 본다.

금관총에서는 대한민국에서 최초로 발견된 금관인 국보 제87호 금관총 금관 및 금제 관식, 국보 제88호 금관총 금제 허리띠 등 4만 여점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금관과 금제허리띠 외에도 금제관모, 금제관식, 금제팔찌, 금제반지, 금제귀걸이, 금동신발, 유리잔, 청동제초두 등의 부장품이 함께 발견되었다. 장식에 사용된 곡옥(曲玉) 등 구슬류는 3만 점이 넘으며, 사용된 금의 총량은 7.5kg에 달한다. 위 유물들은 모두 국립경주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다.

1921년 9월에 일제에 의해 실시된 최초 발굴 이후 2015년 3월부터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경주박물관이 재발굴조사를 실시하였고, 조사 이후 천마총처럼 무덤 내부를 관람할 수 있게 보존 전시 공간을 건립하였다.[4] 무덤 북쪽 공터에는 신라고분정보센터가 위치하고 있다. #


2. 발굴 경위[편집]


파일:external/dimg.donga.com/70265213.1.jpg

일제강점기였던 1921년, 위 사진에서 보다시피 경주에는 많은 옛 왕릉들 바로 옆까지 민가가 가득 들어차 있었는데 당시에는 대부분 단순한 언덕 정도로 치부했다고 한다. 석침총 등 몇 군데 발굴조사를 하긴 했지만 예산 문제로 큰 관심은 없었다. 그러던 중 한 집이 증축공사를 하고 있었는데 공사의 여파로 약간의 구슬이 굴러다녔고, 아이들이 이걸 가지고 노는 것을 지나가던 순사가 발견해 자세히 살펴보다가 이게 단순한 언덕이 아니라 금은보화가 들어찬 고대의 무덤임을 알았다. 이후 긴급히 유물을 수습하고 조사를 시행했는데 여기서 금관과 수많은 금 장신구, 그릇, 투구를 비롯한 4만여 점의 유물이 나왔다. 그러나 갑자기, 우연히 발견된 것이라 고고학자에 의해 정식으로 발굴한 것이 아니라서 유물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많이 얻지 못했다. 금관총보다 나중에 발굴된 다른 무덤들은 그나마 낫지만 금관총은 나흘 만에 해치웠다고 한다.[5]

금관총의 발견으로 경주의 수많은 신라 왕릉들의 가치를 모두가 알게 되었고, 당시 세계 고고학 잡지의 표지를 장식하게 되자 일본인들은 서양 중심의 고고학 판도에서 자신들이 한 자리 차지할 수 있다고 여기고 관심이 커져 1921년 조선총독부에 고적조사과가 신설되고 서봉총, 금령총 등 다른 근처 대형 고분들도 잇따라 발굴하는 유행이 일었다.

일제도 미리 준비계획하고 시작한 발굴이 아니었던데다 시대가 시대라 지금 기준으로 보면 졸속 발굴되었기 때문에, 2015년 국립중앙박물관은 금관총을 재발굴했다. 일제 강점기 당시의 졸속한 발굴의 한계 및 오류를 바로잡고, 돌무지덧널무덤의 원형을 복원하기 위함이었는데 여기서 아래에 나올 무덤의 주인에 대한 단서인 이사지왕 명문, 돌무지덧널무덤의 축조 과정에서 목조가구를 세우고 강돌을 채웠다 사실 등 새로운 발견이 있었다.


3. 무덤의 주인[편집]


파일:국립경주박물관 금관총 이사지왕.png
국립경주박물관의 금관총 설명.

2013년 발견된 검에서 이사지왕이라는 글이 확인되었고, 2015년 금관총 재발굴에서 '이사지왕도' 라고 새겨진 칼집부속구가 추가로 확인되고, 금관총에서 출토된 이사지왕 관련 명문 환두대도 3점의 실존이 모두 확인됨에 따라 금관총=이사지왕의 무덤으로 거의 확실시하는 분위기가 되었다. 단 이사지왕이 신라의 '국왕'인지, 귀족인지, 남성인지, 여성인지 등 논란이 많다. 이사지왕 문서 참조.


4. 나무위키에 문서가 생성된 주요 출토 유물[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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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석굴암, 불국사, 양동마을 제외[2] 오랜 세월에 걸쳐 또는 세계의 일정 문화권 내에서 건축이나 기술 발전, 기념물 제작, 도시 계획이나 조경 디자인에 있어 인간 가치의 중요한 교환을 반영[3] 현존하거나 이미 사라진 문화적 전통이나 문명의 독보적 또는 적어도 특출한 증거일 것.[4] 2022년 8월 16일에 시범 전시회가 열렸고 2023년 3월에 완전 개방하였다.##[5] 비슷하게 우연히 발견되어 졸속으로 하루 만에 조사를 완료해버린 무령왕릉도 있다. 초기 한국의 열악한 고고학을 짐작할 수 있는 부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