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문고량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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臺灣的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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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금문고량주.jpg

金門高粱酒

1. 개요
2. 역사
3. 특징
4. 생산
5. 음용법
6. 한국에서의 구매
7. 여담


1. 개요[편집]


대만 진먼섬에 위치한 국영 양조공장인 '진먼주창(金門酒廠)'에서 생산하는 백주를 말한다. 일반적으로 도수 38%와 58% 두 종류가 많이 팔린다.

대만의 국민백주이자 대표명주로 보아도 무방할 정도로 대만 사람들에게 두루 인기가 있는 술이다. 금문고량주는 대만 백주 시장의 80%를 점유하고 있다.

2. 역사[편집]


다른 백주에 비해 역사가 그리 오래되지는 않은 술로 1949년 진먼 포격전을 계기로 생겨나게 되었다.

금문고량주는 당시 진먼섬의 주민이자 싱가포르 화교 출신었던 예화청(葉華成)이 자택에서 소규모로 술을 만든 데서 시작한다. 이 예화청이라는 인물은 원래 사업가로 양조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는데 중화민국 국군에서 퇴역한 양조기술자들로부터 기술을 배워 양조 사업에 뛰어들었다.

예화청은 1950년 진청진(金城鎭) 진먼청촌(金門城村)에 양조장 터를 잡고 '진청주창(金城酒廠)’을 세워 금문고량주의 기틀을 다졌다. 그리고 진먼섬에 주둔한 군에 군납용으로 술을 납품하기 위해 인맥을 통해 중화민국 국군 제19군 복지기구에 위탁판매를 할 수 있는 납품계약을 맺어 금문고량주의 판로를 열게된다.

당시 중국 인민해방군과의 전투로 인해 작은 진먼섬에는 10만명의 군인이 주둔해 있었는데 진먼 포격전 당시 진먼섬으로 포격이 날아오면 병사들이 모두 지하벙커로 피신해야 했다. 한번에 수백발의 포탄이 떨어지는 극한 상황에서 병사들을 진정시키기 위해 일반 백주보다 훨씬 독하면서도 맛이 좋았던 금문고량주는 인기가 많은 편이었다.[1]

그러던 와중 진먼방위사령관이자 중화민국 푸젠성의 주석으로 진먼섬의 전권을 쥐고있던 후롄(胡璉) 장군이 19군 소속 연대장의 추천으로 금문고량주를 맛보게 되면서 상황이 크게 달라진다.

평소 진먼섬의 군대와 지역주민이 소비할 술과 쌀을 모두 대만 본토에서 들여오고 있다는 점이 마음에 들지 않던 그는 진먼섬이 수수를 재배하기 아주 좋은 환경이라는 것을 알아차리고, 현지 주민들에게 수수 재배를 맡겨 수확된 수수를 군 보급품인 과 맞바꾸고 백주를 현지에서 생산한다는 계획을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섬 주민들은 쌀밥을 먹으면서 섬에서 생산한 술을 마실 수 있게되어 결과적으로 군과 민간인 사이의 화합을 도모할 수 있었다. 또한 부산물인 수숫대는 연료로 사용할 수 있으면서 본토에서 술을 들여오는 운임비도 지출할 필요가 없어졌으니 정말 일거양득이라는 말로는 부족할 정도로 많은 점이 해결되는 방안이었다.

그리하여 1952년, 후렌 장군은 군을 동원해 예화청의 '진청주창’을 일방적으로 흡수하고 군이 직접 운영하는 양조장인 '주룽장주창(九龍江酒廠)'을 설립한다. 더불어 예화청을 기술책임자로 영입해 병사 중에 중국 본토의 주창에서 술을 만든 경험이 있던 병사들과 함께 금문고량주를 생산한다. 당시에 예화청은 꽤 불만이 있었으나 언젠가는 되찾을 가능성이 있던 양조장이 군을 통해 성장할 것으로 예상되고 기술과장으로서 고액의 연봉을 보장받아[2] 큰 반발없이 넘어갔다고 한다.

1953년부터는 금문고량주의 대량생산 체계를 갖추었으며 1956년엔 지금의 이름인 '진먼주창(金門酒廠)'으로 회사의 이름을 바꾸게 되었다. 1992년 들어 진먼섬의 계엄령이 해제되면서 대만 정부는 군대가 소유하고 있던 진먼주창을 진먼현정부에 귀속시켰고, 진먼현정부는 1998년에 시장 경쟁력을 높이기 위하여 주식회사 체제로 양조장을 독립시켜 금문고량주의 생산과 판매를 전담하게 했다.

3. 특징[편집]


일단 백주 분류법에 따라 청향형 백주에 속한다고 보기도 하지만 워낙 금문고량주 특유의 풍미가 있다보니 '금문향'이라는 기타향형으로 아예 따로 분류하는 경우가 많다.

중국 본토와 다르게 술을 빚을 때 화강암반에 있는 지하수를 사용하기 때문에 사용되는 물의 불순물이 적어 숙취가 다른 백주에 비하여 적은 편이다.

금문고량주는 모든 제품이 고도수라 유통기한이 무기한이다. 모든 제품에 병입일자를 표기하고 프리미엄 제품은 증류일자와 병입일자를 모두 표기한다. 금문고량주는 5년 이상되면 가격이 상승하는데, 병입 후에도 알콜성분이 안정화되면서 술맛과 향이 좋아지고 목넘김이 부드러워지기 때문이다. 예전 진먼주창의 회장은 신문사와의 인터뷰에서 대만 사람들에게 은행예금하지 말고 금문고량주를 구입해 소장하라고 한 적도 있다. 은행 금리보다 금문고량주의 가격 상승폭이 크기 때문이다.

4. 생산[편집]


수수, , 화강암반수 세가지 천연재료만으로 중국 전통명주를 만드는 기법인 고태법으로 발효하여 증류한 후 숙성 과정을 거친다. 특이하게도 냉전시기에 건설된 지하방공호에서 술을 숙성시킨다.

이렇게 만들어지는 금문고량주의 도수는 38도와 58도 두 가지가 있다. 국영기업이라 국가의 행사나 주창의 기념일에 기념주를 생산하는데 기념주는 대부분 53도로 만든다. 금문고량주의 프리미엄과 하이엔드급의 제품은 56도로 생산한다.

소비량이 받쳐주니만큼 금문고량주의 제품 다양화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이는데 단순히 도수를 다르게 한 것부터 고급화시킨 버전이나 기념주까지 20종 내외의 다양한 금문고량주가 생산된다. 대만 까르푸같은 대형마트의 고량주 코너를 보면 여러 종류의 금문고량주가 한 면을 채우고 있다.

5. 음용법[편집]


도수가 도수인만큼 독주이기 때문에 소주처럼 잔에 있는 것을 한번에 벌컥 마시면 목이 타는 느낌을 받기 쉽고 계속 먹기도 힘들다. 코로는 고급 고량주 특유의 과일향을 느끼면서 천천히 소량을 조금씩 먹는 것이 좋다.

6. 한국에서의 구매[편집]


2018년부터 한국에 금문고량주 58, 즉 58도짜리가 수입 허가되어 시판중이다. 아직 66도짜리 원조대국주는 한국 국세청이 허가를 해준다한들 대만 측에서 수출 허가된 품목이 아니기 때문에 수입이 불가한 품목이다. 대한민국에서 주세때문에 술의 시판허가는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아니라 국세청에서 담당한다. 그래서 66도짜리는 대만에 직접 가서 먹는 수밖에 없다.

66도 짜리가 수입되지 않는 점도 있지만 일반적인 58도 짜리도 본토에선 일반 상점보다 비싼 편의점 가격 기준으로도 750미리에 600NTD면 사는 물건을 한국에선 9만원에 판매 중이다. [3]

7. 여담[편집]


  • 펑리수와 함께 대만여행 기념품으로 많이 애용받는 물건이다. 대만 현지에서 구매하면 한국에 수입된 금문고량주를 사는 것보다 훨씬 싸게 구매할 수 있기 때문에 선물용으로든 개인의 소비용으로든 많이 구매해간다.
  • 진먼섬에 위치한 진먼주창 공장에는 특이하게도 대형 금문고량주 조형물이 입구에 2개, 내부 공원에 1개 세워져있다. 워낙 거대한 크기라 공장을 방문하는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역할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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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원래의 금문고량주는 66도짜리다. 58도와 38도짜리는 나중에 상품화하면서 추가된 것.[2] 수령하는 월급이 당시 공장장 월급의 3배 이상이었다.[3] 금문고량주는 수입시 관세 = CIF 가격의 30%, 주세 = (CIF 가격 + 관세 )의 72%, 교육세 = 주세의 30% 가 부과되어 가격이 비쌀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