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문의 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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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도 막부 말기 주요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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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3년 7월 8일
쿠로후네 사건
1854년 3월 31일
미일화친조약 체결
1858년 7월 29일
미일수호통상조약 체결
1858년 ~ 1859년
안세이 대옥
1860년 3월 24일
사쿠라다 문 밖의 변
1862년 2월 13일
사카시타문 밖의 변 (坂下門外の變)
1862년 5월 21일
사쓰마 번 지사 숙청 사건 (薩摩藩志士肅淸事件)
1862년 8월 21일
나마무기 사건
1863년 8월 15일 ~ 1863년 8월 17일
사쓰에이 전쟁
1863년 9월 30일
8월 18일의 정변 (八月十八日の政變)
1863년 ~ 1864년
시모노세키 전쟁
1864년 7월 8일
이케다야 사건
1864년 8월 20일
금문의 변
1864년 8월 24일 ~ 1865년 1월 24일
제1차 조슈 정벌
1866년 3월 7일
삿초 동맹
1866년 7월 18일 ~ 1866년 10월 8일
제2차 조슈 정벌
1867년 11월 9일
대정봉환
1868년 1월 3일
왕정복고 (王政復古)
1868년 1월 27일 ~ 1869년 6월 27일
보신 전쟁




금문의 변
禁門の変


파일:禁門の変MAP-1024x1024.gif

일시
1864년 8월 20일 (겐지 원년 7월 19일)
장소
일본 교토 시내, 교토고쇼 주변
원인
8.18 정변, 이케다야 사건
교전 세력
파일:도쿠가와 가몬.svg 에도 막부
파일:external/x181.secure.ne.jp/35203.gif 조슈 번
파일:도쿠가와 가몬.svg 에도 막부
파일:도쿠가와 가몬.svg 아이즈 번
파일:사츠마 시마즈 가문 문장.svg 사쓰마 번
파일:도쿠가와 가몬.svg 구와나 번
파일:도쿠가와 가몬.svg 오와리 번
파일:도쿠가와 가몬.svg 미토 번
파일:도쿠가와 가몬.svg 기슈 번
파일:도쿠가와 가몬.svg 후쿠이 번
파일:Hikone-tachibana.png 히코네 번
파일:600px-Japanese_crest_Tosa_kasiwa.svg.png 도사 번
파일:external/x181.secure.ne.jp/35033.gif 구마모토 번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688px-Japanese_crest_Tuta.svg.png 쓰 번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766px-Flag_of_Shinsengumi.svg.png 신센구미
파일:도쿠가와 가몬.svg 교토 미마와리구미
파일:external/x181.secure.ne.jp/35203.gif 조슈 번
탈번 낭인들
지휘관[1]
파일:도쿠가와 가몬.svg 도쿠가와 요시노부
파일:도쿠가와 가몬.svg 마츠다이라 카타모리
파일:사츠마 시마즈 가문 문장.svg 사이고 다카모리
파일:h13.png 오하라 텟신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766px-Flag_of_Shinsengumi.svg.png 곤도 이사미

파일:external/x181.secure.ne.jp/35203.gif 후쿠하라 에치고
파일:external/x181.secure.ne.jp/35203.gif 쿠사카 겐즈이
파일:external/x181.secure.ne.jp/35203.gif 키지마 마타베†
파일:external/x181.secure.ne.jp/35203.gif 쿠니시 시나노
파일:external/x181.secure.ne.jp/35203.gif 마스다 우에몬노스케
파일:1024px-Hidari_mitsudomoe.svg.png 마키 이즈미
병력
약 50,000명
약 3,000명
피해
60여 명 전사
400여 명 전사
결과
막부 측의 승리, 조슈 번의 철수
영향
조정의 조슈 번 조적 선언 및 조슈 정벌 칙허 하달

1. 개요
2. 상세




1. 개요[편집]


금문의 변(禁門の変). 하마구리어문의 변(蛤御門の変)이라고도 불린다. 8.18 정변으로 교토에서 쫓겨난 조슈가 하마구리 문 전투를 시작으로 교토에서 일으킨 반란. 처음엔 조슈가 우세를 점하는 듯 보였으나, 사츠마아이즈가 교토의 황궁을 방어하는데 성공하면서 이내 패배하게 된다. 이는 제1차 조슈 정벌의 원인이 된다.


2. 상세[편집]


고메이 덴노가 양이 토벌의 명령을 내리면서, 존황양이 사상이 일본 내에 퍼지게 된다. 그러면서 존왕파와 양이파의 세력도 불어나는데, 그 중에는 사츠마와 조슈가 대표적이었다. 그러나 조슈는 시모노세키 전쟁과 8.18 정변, 그리고 뒤따른 이케다야 사건까지 겹치면서 권력의 중심에서 완전히 밀려난 상태였고, 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하여 정변을 일으켜 쇼군의 권력을 천황에게 되돌리려는 계획을 세운다.[2]

조슈번은 1864년 8월 20일 교토의 하마구리 문을 공격하며 반란을 일으켰다. 처음에는 막부군을 상대로도 우위를 점하는 것처럼 보였으나 이내 사츠마와 아이즈가 연합하여 교토의 황궁을 성공적으로 방어하면서 수세에 몰리기 시작한다. 이 때 조슈가 퇴각하는데 시간을 벌기 위하여 교토에 불을 질렀는데,[3] 이 불이 번지면서 타카츠카사 가[4]의 저택이 불타기도 한다.

반란은 진압되었고 조슈는 교토에서 완전히 퇴출된다. 그러면서 천황의 국사어용계(国事御用掛)[5]였던 나카야마 타다야스[6]가 책임을 지고 교토에서 쫓겨나게 되기도 한다. 그리고 막부는 이 일을 계기로 제1차 조슈 정벌을 계획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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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표는 전사, ‡표는 처형, +표는 병사.[2] 그러나 천황에게 권력을 되돌리는 것보다도, 천황을 이용하여 다른 파벌에 대하여 정치적인 우위를 점하려는 목적이 컸다고 볼 수 있다.[3] 퇴각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전투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서 질렀다는 설도 있다.[4] 고셋케 중 하나인 공가.[5] 막부 말기에 국사를 논의하기 위하여 설치된 관직[6] 고메이 덴노의 첩이자 메이지 덴노의 어머니 나카야마 요시코의 아버지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