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호동(성동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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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호동
金湖洞 | Geumho-dong
파일:금호동 법정동 지도.png
법정동 경계
파일:금호동 행정동 지도.png
행정동 경계
1. 개요
2. 역사
3. 상세
4. 행정구역
4.1. 금호1가동(금호동1가)
4.2. 금호2·3가동
4.2.1. 금호동2가
4.2.2. 금호동3가
4.3. 금호4가동(금호동4가)
5. 지리 및 환경
6. 상권
7. 주요 시설
7.1. 주거
7.2. 학군
8. 교통
8.1. 도로
8.2. 대중교통



1. 개요[편집]


서울특별시 성동구의 한 지역으로, 법정동 금호동1가, 금호동2가, 금호동3가, 금호동4가와 행정동 금호1가동, 금호2.3가동, 금호4가동으로 구성되어 있다. 성동구의 서남부에 위치하고 있다. 서쪽으로는 옥수동중구 신당동, 북쪽으로는 하왕십리동, 동쪽으로는 행당동응봉동에 접한다.

2. 역사[편집]



삼국시대 ~ 후삼국시대
475
고구려
북한산군(北漢山郡)
553
신라
신주(新州)
557
북한산주(北漢山州)
568
남천주(南川州)
604
한산정(漢山停)
660
한산주(漢山州)
757
한주 한양군(漢州 漢陽郡)


고려시대
995
관내도 양주목(關內道 楊州牧)
1018
양광도 양주목(楊廣道 楊州牧)
1067
남경(南京)
?
양광도 양주목
1104
남경(南京)
1308
한양부(漢陽府)


조선시대
1395
경기좌도 양주군(京畿左道 楊州郡)
1397
경기좌도 양주부(京畿左道 楊州府)
1413
경기도 양주부(京畿道 楊州府)
1424
한성부 남부(漢城府 南部)
1751
한성부 남부 두모방 수철리계 수철리동
(漢城府 南部 豆毛坊 水鐵里契 水鐵里洞)
1895. 5. 26.
한성부 남서 두모방 수철리계 수철리동
(漢城府 南署 豆毛坊 水鐵里契 水鐵里洞)


일제강점기 ~ 현대
법정동은 파란색, 행정동은 분홍색
1910. 10. 1.
경기도 경성부 남서 두모방 수철리계 수철리동
(京畿道 京城府 南署 豆毛坊 水鐵里契 水鐵里洞)
1911. 4. 1.
경기도 경성부 두모면 수철리
(京畿道 京城府 豆毛面 水鐵里)
1914. 4. 1.
경기도 고양군 한지면 수철리
(京畿道 高陽郡 漢芝面 水鐵里)
1936. 4. 1.
경기도 경성부 금호정
(京畿道 京城府 金湖町)
1943. 6. 10.
경기도 경성부 성동구 금호정
(京畿道 京城府 城東區 金湖町)
1946. 10. 9.
서울특별자유시 성동구 금호동
(서울特別自由市 城東區 金湖洞)
1947. 6.
금호북부동
(金湖北部洞)
금호남부동
(金湖南部洞)
1949. 8. 15.
서울특별시 성동구 금호동
(서울特別市 城東區 金湖洞)
1955. 4. 18.
금옥동(金玉洞)
1959. 10. 31.
금북동(金北洞)
금남동(金南洞)
1964. 2. 1.
금호동1가
(金湖洞一街)
금호동2가
(金湖洞二街)
금호동3가
(金湖洞三街)
금호동4가
(金湖洞四街)
1970. 5. 18.
금호1가동
(金湖一街洞)
금호2가동
(金湖二街洞)
금호3가동
(金湖三街洞)
금호4가동
(金湖四街洞)
2008. 8. 11.
금호2.3가동
(金湖二三街洞)

본래 지명은 수철리(水鐵里)라 부르는 지역이었고, 금호동이라는 지명은 1936년 경성부로 편입되어 정(町)이 될 때에 새로 붙은 지명이다. 수철리라는 본래의 지명과는 한자만 다르지, 뜻 자체는 그대로 이어받은 것이다.

수철리는 본래 무수막, 혹은 무쇠막이었던 것을 한자로 표기한 것이다. 조선시대에 이곳에 대장간이 많다 하여 '무수막' 또는 '무쇠막'이라 불렸는데, '무쇠 마을'이 한자로 변환되면서(물水+쇠鐵+마을里) 수철리가 되었다는 것이다.[1] 금호동의 옛 이름인 무쇠마을, 무쇠말, 무수말, 무수막이나 수철리(水鐵里)는 이처럼 무쇠로 물건을 만들던 대장장이들의 마을이라는 유래에서 왔다는 설이다. 무쇠솥, 농기구들이 대표적인 산품이었다고. 현재 서울 지하철 5호선 신금호역의 이름으로 한 때 무수막역이 선정되기도 했다.

다른 설로, 무수막은 대장간, 무쇠 마을에서 온 말이 아니고 '물가의 마을'이라는 뜻에서 왔다는 설이 있다. '무수'는 말이 변화해 온 과정을 거꾸로 유추하면 폐음절인 '뭇'인데, 이는 '물'을 일컬으며, '막'은 마을을 뜻하며 '수'는 특별한 뜻이 없고 글자를 연결하는 문법적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원래는 뭇막으로 불렸는데 이 뭇막이 무수막, 무쇠막으로 발음하게 되었다. 전국에 무수막, 무쇠막, 무수리, 수철리란 지명이 여러 개 발견된다. 다들 물가와 멀지 않은 곳이다. 무수막이 한자로 무수리(無愁里,아무런 근심이 없는 마을)로, 무쇠막이 한자로 수철리(水鐵里)로 뜻바꿈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수철리란 이름은 현재 금호동 뿐만 아니라 현재 마포구의 신수동, 구수동도 당시엔 역시 수철리라 불리었기에[2], 이와 구분하여 인근 주민들이 수철리의 '철(鐵)'에서 '금(金)'을, '수(水)'에서'호(湖)'를 인용하여 이곳을 금호[3], 또는 동무수막이라고 하였다고 한다.

고려시대에는 양주목(楊州牧)에 속했다. 1067년(문종 21년)에 양주목이 남경(南京)으로 승격하자 그에 속했는데, 얼마 가지 않아 남경이 다시 양주목으로 격하되었다. 1104년(숙종 9년)에 다시 남경이 설치될 때에 그에 속해 쭉 유지되었다.

1395년(조선 4년)에 개경에서 한양으로 천도할 때에 한양도성 내부만 한성부가 되고 그 외 지역은 모두 양주군에 속하게 했는데, 지금의 행당동 지역도 양주군에 속하게 되었다. 1424년(세종 6년), 한양에서 떨어져 나온 지 29년이 지나서 다시 한성부 성저오리(城底五里)에 편입되어 남부에 예속되었다. 영조 27년인 1751년 이루어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한성부 남부 두모방(豆毛坊)에 예속되어 수철리계(水鐵里契)가 되었다.

조선시대의 금호동은 동소문 밖으로 나와 가장 가까운 지역 중 하나였는데, 특히 이 동소문이 시구문(屍口門)이라는 별칭으로 불린다. 시구문은 그야말로 도성 안에서 죽은 사람의 시신을 성 밖으로 빼는 역할을 했는데, 시신이 시구문 밖으로 나와 향한 곳은 대개 지금의 황학동과 금호동 산비탈 지역이었다. 이외에도 조선시대 한양 인근의 공동묘지로는 이태원, 아현동 공동묘지였는데, 이태원 공동묘지는 1936년에 없어졌고, 금호동 공동묘지는 이태원에서 이장된 묘까지 받아 더욱 커지며 1960년대까지 존속하게 되었다.

1895년 5월 26일, 갑오개혁의 일환으로 행정구역 개편을 단행하며 수철리계 예하 수철리동(水鐵里洞)이 신설되었으며, 경술국치 이듬해인 1911년 4월 1일에는 경기도 경성부 두모면 수철리가 되었다. 1914년 4월 1일에는 경성부 관할구역 중 성외 지역을 고양군에 이관하게 됨과 동시에 두모면과 한지면이 통합되어 한지면이 되었다. 이때 수철리는 고양군 한지면 소속이 되었다.

1936년 4월 1일에는 경성부에 다시 편입되어 금호정(金湖町)으로 개칭되었고, 이것이 현재의 동명으로 굳어지게 된다. 이보다 1년 전인 1935년에 지금의 금호나들목 인근에 수철리역이 개통되었는데, 1년이 지나 이 일대가 금호정으로 개칭되었지만 수철리역은 1944년 태평양전쟁으로 인한 물자공출로 폐역이 될 때까지도 금호역으로 바꾸지 않았다.[4]

1943년 6월 10일, 구제가 시행되며 경성부 성동구에 속하게 되었다. 해방 이후인 1946년 10월 9일에 지금의 행정동 제도의 전신인 동회제도가 시행되어 금호북부동회(金湖北部洞會)와 금호남부동회(金湖北部洞會)가 설치되었다. 금호북부동회는 지금의 금호동1가와 금호동2가 지역을, 금호남부동회는 지금의 금호동3가와 금호동4가 지역을 관할하였다.

1955년 4월 18일에는 동회제도가 폐지되고 행정동 제도가 시행됨과 동시에 금호북부동과 금호남부동, 옥수동이 통합되어 금옥동(金玉洞)이 되었다.[5] 이 문서를 본 일본인 깜놀

6.25 전쟁 이후 정부가 서울로 환도하면서 각지에 있던 피란민들이 서울로 몰렸다. 이들은 대부분 사대문안이 아니라 지금의 도봉구, 강북구, 성북구, 동대문구, 성동구, 용산구와 같은 곳에 판잣집을 짓고 정착했는데, 금호동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 지역들은 대부분 주거환경이 열악한 산비탈임에도 불구하고, 서울의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바람에 주거지가 계속해서 산으로 산으로 밀고 올라가다가 마침내 산등성이 하나가 아예 주거지로 뒤덮이는 '달동네'를 형성하게 된다.

금호동은 이때 인구가 많이 늘어 금옥동 하나의 행정동으로는 도저히 담당할 수 없게 되었고, 계속해서 행정구역을 분할하기에 이른다. 이에 1959년 10월 31일, 서울특별시조례 제165호에 의하여 금북동, 금남동, 옥수동의 3개 동으로 다시 분할되었다. 이때의 금북동과 금남동의 관할 구역은 전에 있었던 금호북부동, 금호남부동의 영역과 같았다. 1964년 2월 1일에 서울특별시조례 제320호에 따라 법정동 금호동이 4개의 법정동으로 분할되었는데, 금호동1가, 금호동2가, 금호동3가, 금호동4가로 나뉘었다.

1970년 5월 18일, 서울특별시조례 제613호에 의해 금북동과 금남동이 폐지되고 각 법정동마다 행정동을 신설하였다. 금호1가동은 금호동1가 지역을, 금호2가동은 금호동2가 지역을, 금호3가동은 금호동3가 지역을, 금호4가동은 금호동4가 지역을 각각 관할하게 되었다.[6]

1990년대에 들어 금호동 지역은 인구 증가세가 멈추고 다시 인구가 줄어들게 되었다. 2008년 8월 11일에는 금호2가동과 금호3가동이 통합되어 금호2.3가동이 되었다.

3. 상세[편집]


파일:1970년대 금호동.jpg
파일:/image/112/2008/01/08/200801080054.jpg
1970년대
2000년대

전 지역이 대규모 아파트 단지와 다세대 주택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본래는 옥수동과 더불어 달동네로 유명했던 곳이지만, 1990년대부터 차츰 재개발 계획을 세우고 2000년대 들어 상당 부분이 아파트 단지로 변모했다. 저 위의 사진도 10년은 훨씬 넘은 사진이고, 지금은 저 지역도 아파트 단지가 들어선 상황이다.

2000년대에 금호동 벽산아파트금호동 대우아파트를 시작으로 재개발되면서 신금호파크자이, e편한세상 금호, 래미안 금호 하이리버, 서울숲 금호 힐스테이트 등 값비싼 고급 아파트들이 상당수 들어서 현재는 높은 집값으로 서울의 신흥 부촌으로 변모했다. 현재도 재개발은 꾸준히 진행되고 있어 머잖아 금호동에서 다세대 주택은 보기 힘들게 될 것이다.

4. 행정구역[편집]



4.1. 금호1가동(금호동1가)[편집]


성동구행정동
금호1가동

金湖一街洞 | Geumho 1(il)-ga-dong

성동구법정동
금호동1가

金湖洞一街 | Geumho-dong 1(il)-ga





광역자치단체
서울특별시
기초자치단체
성동구
법정동코드
1120010900
행정표준코드
3030048
하위 행정구역
25통 182반
면적
0.46㎢
인구
15,006명[A]
인구밀도
32,621.74명/㎢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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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옥희 (재선)

엄경석 (재선)

주민센터
행당로 15 (금호동1가 127-2)
금호1가동 주민센터
금호동에서 가장 북쪽과 동쪽을 관할하는 법정동행정동으로, 금호로 이북과 이동 지역이다. 신금호역 교차로 동쪽 일대부터 금호동 벽산아파트 단지에 이르는 지역을 포함하며, 대현산배수지공원(舊 호당공원)의 남쪽 절반이 금호동1가에 걸쳐 있고, 북쪽 절반은 하왕십리동 소속이다. 신금호역에서 금호로를 따라 북쪽으로 올라가면 있는 금호여자중학교부터는 중구 신당동에 속한다. 난계로를 따라 북쪽으로 올라가면 하왕십리동으로 이어지며, 논골사거리부터는 난계로가 행당동과의 경계를 이룬다. 동쪽은 대현산을 따라 응봉동과 경계가 맞닿아 있다.

본래 이 지역은 단독주택, 다세대주택이 혼재한 지역이었고, 현재의 벽산아파트 자리에는 무허가 주택들이 대현산 자락을 뒤덮은 모습이었다. 1980년대부터 금호, 행당, 응봉동 일대 낙후지역에 재개발 계획이 수립되었고, 응봉동은 1980년대 중반에서 90년대 초반이면 재개발이 완료되고 그 후속으로 행당동과 금호동 지역이 1990년대에 공사를 시작했는데, 금호동1가의 벽산아파트는 금호동 일대에서 처음으로 재개발이 완료된 곳이다. 한편, 판자촌이 밀집되어 있던 금호1-7구역은 모두 철거한 뒤, 2009년 12월에 독서당공원이 되었다.

IMF의 여파로 이미 80년대에 정비계획이 수립되었던 구역들의 재개발 진행이 차질을 빚었으나, 2010년대에는 모두 재개발을 완료하고 현재 금호동1가는 아파트단지가 9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이 동의 90%를 차지하고 있는 금호동 벽산아파트e편한세상 금호의 경우 일반분양분, 재개발분양분, 재개발임대분(SH공사 소유)이 같은 아파트 이름을 사용하고 있으나, 담장조성 및 동번의 차이를 두고 관리사무소 또한 별도로 존재하는 희한한 단지 구성을 보이고 있다. 임대분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중산층이 거주를 하고 있다.

동이 남북으로 길게 늘어져 있지만 단일 대단지, 아파트단지 여러 개로 이루어져 있어서 크게 생활권이 갈라지거나 주변 동네와 생활권을 공유하거나 하지는 않는다. 북쪽의 신당동의 경우과는 가로막고 있는 능선이 너무 험준하고, 하왕십리동행당동 경우는 극동미라주나 풍림아이원, 행당대림아파트의 학생들이 서울금북초등학교로 배정 받아 통학을 하긴 하지만, 극동미라주나 풍림아이원이 논골사거리 상권인데에 반해 행당동 대림아파트는 행당역 역세권에 종속되어 있는 편이다. 마찬가지로 응봉동 역시 독서당로로 이어져 있긴 하지만 그래도 서로 중심가가 매우 멀고 사이에는 독서당공원과 주택가만 있어서 생활권을 공유하지 않는다.

서울금북초등학교가 이 동에 위치하고, 금호여자중학교는 비록 이 동에서 벗어나 있지만 바로 옆에 위치한다. 금호동에는 원래 인문계 고교가 없고 지역을 성동구로 넓히더라도 무학여고 외에는 인문계고등학교가 없어 남학생들은 종로구나 중구 등 고등학교로 원거리통학을 했으나 금호고등학교가 2017년 3월에 개교되어 원거리 통학의 부담이 줄어들었다.


4.2. 금호2·3가동[편집]


성동구행정동
금호2.3가동

金湖二.三街洞 | Geumho 2(i).3(sam)-ga-dong





광역자치단체
서울특별시
기초자치단체
성동구
행정표준코드
3030049
관할 법정동
금호동2가, 금호동3가
하위 행정구역
34통 291반
면적
0.64㎢
인구
22,202명[A]
인구밀도
34,690.625명/㎢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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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센터
무수막18길 1 (금호동2가 1212)
금호2·3가동 주민센터
금호동2가와 금호동3가를 관할하는 행정동으로, 독서당로-장터길 이북, 금호로의 이남과 이서 지역이다. 금호동 중앙 부분에서 중구 신당동과의 경계가 되는 금호동고개 일대까지가 이 지역에 속한다. 서북쪽에 있는 금호산에서 동남쪽의 응봉산 방향으로 뻗어내린 산줄기가 이 지역을 관통하며, 이 능선 가장 위에 있는 무수막길을 경계로 금호동2가와 금호동3가가 남북으로 갈린다. 본래 법정동 금호동2가는 행정동 금호2가동이, 법정동 금호동3가는 행정동 금호3가동이 관할하고 있었으나, 2008년 8월 11일에 법정동 금호동2가를 관할하던 금호2가동과 법정동 금호동3가를 관할하던 금호3가동이 통합되어 금호2.3가동이 되었다.

앞서 말했다시피 금호2.3가동 일대는 산줄기가 관통하는 지형인지라, 주택가가 산등성이를 완전히 덮는 모양으로 생긴 지역이다. 따라서 산동네로 유명한 금호동 안에서도 경사가 대단히 급한 편에 속하는 곳이다. 1970년대 서울의 난개발 풍경으로 자주 나오는 사진 중 하나가 바로 이 일대를 찍은 사진인데, 산등성이 하나를 아예 빼곡하게 채운 주택가 지역이었고, 그건 현재도 별반 다르지 않다.

대부분 주택가 지역이고, 남쪽에 있는 금남시장이 최대 상권이다. 북쪽은 신금호역 생활권인 데에 반해 남쪽은 금호역 생활권에 가깝다. 또한, 이 지역은 금호동에서 재개발 진척이 가장 느린 곳인데, 절반 정도는 재개발 완료되었고, 절반 정도는 아직 주택가로 남아 있다. 금호1가동과 금호4가동은 이미 어느 정도 재개발이 완료되어 금호동에서 재개발을 할 곳이 현재로서는 금호2.3가동만 남아 있고, 관내에 금호16구역, 금호21구역 등이 현재 재개발을 추진하고 있다.


4.2.1. 금호동2가[편집]


성동구법정동
금호동2가

金湖洞二街 | Geumho-dong 2(i)-ga





광역자치단체
서울특별시
기초자치단체
성동구
법정동코드
1120011000
소속 행정동
금호2.3가동 일부
면적
0.30㎢
인구
9,835명[B]
인구밀도
32,783.33명/㎢
금호2.3가동에서 무수막길을 경계로 북쪽에 있는 법정동. 신금호파크자이, 금호자이1차, 래미안하이리버 등의 아파트 단지가 금호동2가에 속하며, 서울금호초등학교가 이곳에 위치한다. 이 일대는 신금호역 생활권에 가깝다.


4.2.2. 금호동3가[편집]


성동구법정동
금호동3가

金湖洞三街 | Geumho-dong 3(sam)-ga





광역자치단체
서울특별시
기초자치단체
성동구
법정동코드
1120011100
소속 행정동
금호2.3가동 일부
면적
0.33㎢
인구
12,442명[B]
인구밀도
37,703.03명/㎢
금호2.3가동에서 무수막길을 경계로 남쪽에 있는 법정동. 두산아파트, 한신휴플러스, 금호1차푸르지오, 금호자이2차 등의 아파트 단지가 금호동3가에 속한다.

동의 남쪽에 있는 금남시장은 1949년에 설립되어 7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재래시장이다. 성동구 일대에서는 나름 규모가 꽤 큰 재래시장으로, 주말이 되면 많은 사람들이 방문한다. 그렇다 보니 금남시장 앞을 지나는 독서당로와 장터길은 가뜩이나 좁은 도로인데 노점과 노상주차로 길이 더 좁아져 통행에 굉장한 불편을 겪는다. 한남동, 옥수동에서 응봉동, 왕십리역 방면으로 가려면 필히 이 앞을 지나야 하는데, 시장에 방문하는 차량들과 뒤엉켜 정체가 늘 빚어지는 곳이기도 하다. 이에 성동구청은 시비 총 228억 원을 들여 장터길을 확장하는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금남시장 서쪽으로는 서울 지하철 3호선 금호역이 있다. 다만, 금호동2가 일대가 신금호역을 중심으로 상권이 있는 것과는 다르게, 이 일대는 금호역이 중심에서 조금 벗어난 위치에 있는 관계로, 금호역 일대가 중심지가 아니라 금남시장 일대가 중심지이다. 독서당로와 장터길 남쪽에 있는 금호동4가도 같이 금남시장 생활권을 공유하고 있다.

e편한세상 옥수 파크힐스 단지 내에서도 본래 이 동의 관할인 땅이 동쪽에 조금 있었는데, 재개발 이후 동 경계가 조정되며 약간의 땅이 옥수동으로 편입되면서 금호동3가와 옥수동의 경계는 현재 동호로를 지나고 있다.


4.3. 금호4가동(금호동4가)[편집]


성동구행정동
금호4가동

金湖四街洞 | Geumho 4(sa)-ga-dong

성동구법정동
금호동4가

金湖洞四街 | Geumho-dong 4(sa)-ga





광역자치단체
서울특별시
기초자치단체
성동구
법정동코드
1120011200
행정표준코드
3030051
하위 행정구역
22통 176반
면적
0.84㎢
인구
14,177명[A]
인구밀도
16,877.38명/㎢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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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원 | 중구·성동구 을

박성준 (초선)
서울특별시의원 | 성동구 제1선거구

박중화 (재선)
성동구의원 | 가 선거구

박성근 (초선)

양옥희 (재선)

엄경석 (재선)

주민센터
독서당로46길 26(금호동4가 803)
금호4가동 주민센터

금호동에서 가장 남쪽에 있는 행정동으로, 법정동 금호동4가와 일치한다. 한강변에 위치하여 전망이 좋은 관계로 고급아파트들이 많이 들어서고 있다. 서울옥수초등학교와 서울금옥초등학교가 이 동에 위치한다.

금호역과 금호사거리을 잇는 장터길은 독서당로와 더불어 이 동의 주요도로로서, 독서당로보다도 더 붐빈다. 중간에 금남시장이 껴있고, 응봉동 방면에서 오는 차량을 금호역까지 바로 이어 동호로로 연결되는 도로인데도 불구하고, 아직도 2차로 도로다. 이렇게 중요한 도로다보니, 마을버스와 시내버스가 뒤엉켜 들어오고, 차량들이 출퇴근 시간이 아니라도 항상 막혀있다. 2~30년 전부터 정치인들이 확장을 공약했으나 아직 이뤄진바 없고 여전히 이 지역 숙원이다.

여담으로 방송인 전현무가 이곳에 산다. 전현무 말로는 "카페가 있는데, 거기가 방송국 대기실처럼 연예인들이 많이 다닌다. 연예인이 많이 산다"라 카더라.


5. 지리 및 환경[편집]


매봉산, 금호산, 응봉산 등이 위치한 대체로 지대가 높고 경사가 있는 지역으로, 길이 구불구불하고 난개발지역이 많은 동네라고 할 수 있겠으나, 최근 들어 재개발이 이루어지며 동의 절반은 아파트단지로 바뀌었다. 남은 곳도 재개발이 진행 중이거나 추진되는 지역이 많지만 일부는 주민들 반대로 무산된 곳도 있다. 그래도 예전과 비교해 경관이 많이 달라졌다.


6. 상권[편집]



7. 주요 시설[편집]



7.1. 주거[편집]


  • 삼산건설 삼산아파트 - 1975년 12월 입주.
  • 두산건설 금호동 두산아파트 - 1994년 9월 입주.
  • 대우건설 금호동 대우아파트 - 2001년 5월 입주.
  • 삼성물산 금호삼성래미안아파트 - 2001년 10월 입주.
  • 벽산건설 금호동 벽산아파트 - 2001년 12월 입주.
  • 롯데건설 금호동 롯데아파트 - 2003년 1월 입주.
  • 금화이앤씨 금화신금호아파트 - 2003년 3월 입주
  • 대우건설 금호1차 푸르지오 - 2005년 5월 입주.
  • 한신공영 금호한신휴플러스 - 2005년 7월 입주.
  • 두산건설 신금호 두산위브 - 2006년 3월 입주.
  • 이수건설 금호브라운스톤1차 - 2007년 3월 입주.
  • 대우건설 서울숲푸르지오1차 - 2007년 7월 입주.
  • 이수건설 금호브라운스톤2차 - 2010년 1월 입주.
  • 삼성물산 래미안 금호 하이리버 - 2012년 5월 입주.
  • GS건설 금호자이1차아파트 - 2012년 5월 입주.
  • GS건설 금호자이2차아파트 - 2012년 7월 입주.
  • 대우건설 서울숲푸르지오2차 - 2012년 8월 입주.
  • GS건설 신금호 파크자이 - 2016년 4월 입주.
  • 현대건설 힐스테이트 서울숲리버 - 2018년 2월 입주.
  • 대림산업 e편한세상 금호 - 2018년 3월 입주.
  • 제이앤이건설 금호 14-1구역 - 입주 미정.
  • 현대건설 금호16구역 - 입주 미정.


7.2. 학군[편집]


관내
타 지역 배정 가능
초등학교
서울금북초등학교

서울금호초등학교
서울금옥초등학교
서울옥수초등학교
중학교

금호여자중학교
대경중학교
무학중학교
옥정중학교
광희중학교
고등학교
,배정 가능성은 일반계고만 기재,
금호고등학교
성동고등학교

무학여자고등학교
초등학교는 관내에 4개나 있어서 타 지역으로 배정될 가능성은 없다. 특이한 점은 서울옥수초등학교가 옥수동이 아닌 금호동4가에 위치한다는 점. 특히 금호초등학교 내에는 성동구립 체육센터가 있는데 수영장도 있다.

사립 동산초등학교는 대경중학교 바로 옆에 있다. 그만큼 금호동에서도 통학하는 학생들이 많고, 성동구와 중구 일대에서 많이 지원하는 곳이기도 하다. 바로 옆으로 대경상업고등학교가 있다.

관내에는 중학교가 없어서 인근 지역으로 배정된다. 금호여자중학교대경중학교는 금호동1가와 중구 신당동의 경계에 있지만 주소는 중구 신당동이다. 거리가 가까운 만큼 금호동1가와 2가는 그쪽으로 배정이 되는 편이다. 벽산아파트 같은 경우는 행당동무학중학교로도 배정된다. 남부의 금호동3가와 4가 지역은 옥수동옥정중학교응봉동 광희중학교로 배정되는 편. 다만 무학중학교, 옥정중학교, 광희중학교는 걸어서 가기에는 다소 먼 거리에 있다.

금호고등학교 개교 이전에는 금호동 관내에 고등학교가 하나도 없었다. 현재도 관내에 금호고등학교 한 학교가 금호동 전체를 커버하는 상황으로, 나머지는 성동고등학교무학여자고등학교로도 많이 빠진다.


8. 교통[편집]



8.1. 도로[편집]


동의 남쪽으로 강변북로, 두무개길이 있으며, 서쪽에 동호로가 있다. 난계로, 금호로가 종으로, 독서당로, 행당로가 횡으로 동의 중심도로가 되고 있다.


8.2. 대중교통[편집]


철도 / 지하철
관내
파일:Seoulmetro3_icon.svg 금호역
파일:Seoulmetro5_icon.svg 신금호역
인접 지역
파일:ITX-청춘 BI.svg 파일:Seoulmetro3_icon.svg 파일:GJLine_icon.svg 옥수역
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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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10
수도권 전철 3호선 금호역이 금남시장 근처에 있어 동 남부 주민들이나 인근 주민들이 많이 이용하며, 수도권 전철 5호선 신금호역은 동 북부 주민들에 의해 많이 이용되고 있다. 금호동4가 지역은 옥수역도 인접해 있지만 금호역이 더 가까워서 많이 이용하지는 않는다. 사대문안강남역 바로 중간에 끼어 있는 모양새다.[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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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무쇠(=주철=선철)의 어원은 확실하지 않다. 물렁물렁한 무른 쇠라는 뜻에서 무쇠라는 이름이 붙었다는 설이 있고, 철 함량이 많은 주철(鑄鐵,cast iron)은 너무 강하다보니 연성이 부족해 잘 깨지므로 완전히 액체로 녹여서 주물(鑄物,casting)을 만드는 데 많이 쓰이다 보니, 물처럼 녹이는 쇠라고 하여 '물쇠'라고 부르던 게 무쇠가 되었는 설이 있다.[2] 각각 신수철리, 구수철리로 불렀다.[3] 금호란 이름은 일제강점기 1936년 이후 금호정(金湖町)이란 명칭으로 처음으로 공식적으로 나타난다[4] 마찬가지로 한강리역도 1936년에 한강리(漢江里)가 한남정(漢南町)으로 개칭되었음에도 한강리역이라는 역명을 바꾸지 않았다.[5] 법정동 금호동과 옥수동은 그대로 있고, 행정동 금옥동이 법정동 금호동과 옥수동을 통합하여 관할하게 된 것이다.[6] 법정동과 행정동의 이름이 다르다. 보통 법정동에서는 ○○동1가 등으로 칭하며, 행정동에서는 ○○1가동 등으로 칭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금호동1가 주민센터가 아니라 금호1가동 주민센터라고 하는 것이다.[A] A B C 2023년 2월 주민등록인구[B] A B 2022년 10월 주민등록인구[7] 금호역에서 지하철로 북쪽으로 2 정거장 가면 한양도성, 남쪽으로 2 정거장 가면 강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