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무라 사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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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무라 사오리의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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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external/www.volleywood.net/Saori-Kimura-The-Best-Japanese-Volleyball-Player-3.jpg
기무라 사오리
木村 沙織 | Kimura Saori

출생
1986년 8월 19일 (37세)
국적
[[일본|

일본
display: none; display: 일본"
행정구
]]

출신지
사이타마현 야시오시
가족 관계
여동생 기무라 미사토[1]
포지션
윙스파이커 (레프트)
신체 조건
신장 185cm, 체중 65kg
점프 높이
스파이크 높이 308cm, 블로킹 높이 300cm
국가대표
일본 여자 배구 국가대표팀 (2003~2016)
소속팀
도레이 애로우즈 (2005~2012, 일본)
바키프방크 SK (2012~2013, 터키)
갈라타사라이 SK (2013~2014, 터키)
도레이 애로우즈 (2014~2017, 일본)
별명
미라클 사오링, 일본의 미래, 사오링 무한대
SNS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1. 개요
2. 상세
2.1. 고등학교 시절
2.2. 해외 진출
2.3. 국가대표 경력
2.4. 은퇴
2.5. 평가
3. 선수 경력
3.1. 클럽 성적
3.2. 국가대표 성적
3.3. 개인 수상
4. 월간 배구(月刊バレーボール) 커버
5. 여담
6.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일본의 前 여자 배구 선수. 前 일본 국가대표.


2. 상세[편집]


일본 여자 배구 국가대표팀의 에이스로 활약하였고 다케시타 요시에, 아라키 에리카 등과 함께 일본 여자배구의 황금세대를 이끌었다. 김연경과 비슷한 시기에 데뷔해 김연경터키 리그를 씹어먹기전까진 라이벌 구도가 일본 언론 한정으로 형성되기도 했다.


2.1. 고등학교 시절[편집]




배구 명문으로 유명한 세이토쿠 학원(成徳学園高校)에 진학하여 고교 배구를 제패하였다.

또한 고등학교 2학년 때 시니어 국가대표 팀에 발탁되었다. 2004 아테네 올림픽 예선전에 기용되어 첫 경기인 이탈리아전에서 14득점을 하는 인상적인 퍼포먼스로 슈퍼 여고생이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다.

파일:기무라 사오리 2005.jpg
2005년 국가대표 프로필


2.2. 해외 진출[편집]


파일:vakifbank-gunes-turkey-volleyball.jpg

일본 공격수 중 유일하게 터키리그 최고 명문 팀 바키프방크에서 한 시즌 뛰기도 했다. 일본 국가대표가 2012 런던 올림픽에서 한국을 이기고 동메달을 땄을때 일본내 여자배구 인기는 다시 한번 전성기를 맞았으며, 그 인기의 중심에 있었던 사오리의 터키 진출에 많은 일본 언론은 앞다투어 보도하며 자국의 에이스가 세계구급으로 활동하기를 기대했다. 챔스 우승에 동양인 최초로 MVP까지 받았던 김연경의 압도적인 퍼포먼스는 한국에선 배구팬들 사이에서나 아는 일이였던데 반해, 기무라는 엄청난 지원과[2] 전국적인 기대속에 터키 진출을 도모했다.

물론 활약은 매우 적었고 당시 바키프방크의 에이스 역할은 세르비아의 오포짓 스파이커 요바나 브라코체비치의 담당이였다.[3] 벤치에 앉아있는게 대부분이였으며, 간간히 원포인트 서버로 들어가긴 했다. 심지어 기량 미달로 아예 벤치에 못 앉는 경기도 빈번했다. 결국 한 시즌만에 바키프방크에서 갈라타사라이로 이적하고, 그마저도 성공적이지 않아 다시 일본으로 돌아왔다.[4]


2.3. 국가대표 경력[편집]


고등학생 때 출전한 2004 아테네 올림픽을 시작으로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까지 올림픽에 총 4번 참가했다.

2012 런던 올림픽에서 메달 획득에 성공하고 비록 실패였지만 염원의 해외리그 진출까지 한 기무라는 2013 그랜드챔피언스컵을 마지막으로 국가대표 은퇴를 결심했으나, 마나베 마사요시 감독이 끈질기게 설득해 결국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까지 국가대표 주장을 맡았다. 마나베 마사요시는 이에 대해 "일본의 주장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다케시타아라키의 뒤를 이을 수 있는 것은 올림픽 3회, 세계선수권 3회 출전한 기무라밖에 없다"고 전했다. #


2.4. 은퇴[편집]


파일:img_4a2b1eca0f135449a59f6ee4f61f20b1268774.jpg
2016-17시즌 도레이 애로우즈에서 은퇴식

2017년 현역 은퇴했고 결혼했다.

은퇴 후 출연한 일본 닛테레(日TV) 어나더 스카이 다큐에서 자신이 가장 다시 방문하고 싶어했던 스위스 몽트뢰를 여행했는데, 그때 "왜 일찍 은퇴했는가?"라는 동행하던 아나운서의 질문에 "항상 나에게 모든 주목이 모이는 것이 부담되었다. 배구는 나 혼자만의 스포츠가 아닌데, 항상 나에게 '에이스니까 해줘'라는 것이 부담이였고 '에이스, 에이스'라는 단어에 '모두 열심히 하는데 왜 나에게만 그러는 거야?'라는 생각이었다. 배구는 정말 사랑하지만, 이제 내 가슴 속에 배구 선수의 마음은 없다. 배구 선수들의 옆에 있는 것 보다는, 선수들의 뒤에서 바라보고 싶다. 배구 선수가 아닌 밖에서 배구를 보는 것이 현재 너무 즐겁다. 이제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건 배구가 아니라 가족과 주부로서의 삶이다."라고 밝히기도 했다.

2.5. 평가[편집]


비록 해외에서는 실패를 하고 돌아왔지만, 은퇴할때까지도 일본의 국가대표 에이스 취급을 받았다. 비록 공격력으로만 따졌을때는 라이트 나가오카 미유 등 더 뛰어난 선수들이 있음에는 분명하지만, 리시브와 디그 등 수비 또한 매우 훌륭한 선수로서 역대 일본 레프트 중 실력과 신장을 갖춘, 가장 올라운드한 선수임에는 분명하다. 은퇴한 현재도 일본이 패배할때마다 심심찮게 "기무라가 좋았어.."라며 추억팔이를 하는 글이 일본 웹사이트에서 많이 보인다.

올림픽 메달, 세계선수권 메달, 월드그랑프리 메달, 그랜드챔피언스컵 메달, 일본 리그 우승, CEV 챔피언스 리그 우승, 터키 리그 우승, 터키컵 우승 등 선수로서 모든 걸 이루긴 했다.[5] 하지만 기억해야할건 당시 일본은 장신화 성공과 더불어 레전드 세터 다케시타 요시에와 레전드 리베로 사노 유코등 전 포지션이 다 뛰어났다는 점이다. 기무라 사오리 혼자로는 절대로 이루지 못했을 성적임은 분명하다.[6]

3. 선수 경력[편집]



3.1. 클럽 성적[편집]




3.2. 국가대표 성적[편집]


  • 2005 AVC 아시아선수권대회 3위
  • 2006 도하 아시안 게임 은메달
  • 2007 AVC 아시아선수권대회 우승
  • 2009 AVC 아시아선수권대회 3위
  • 2010 FIVB 세계선수권대회 동메달
  • 2011 AVC 아시아선수권대회 준우승
  • 2012 런던 올림픽 동메달
  • 2013 AVC 아시아선수권대회 준우승
  • 2013 FIVB 월드그랜드챔피언스컵 3위
  • 2014 FIVB 월드그랑프리 준우승
  • 2015 몽트뢰볼리마스터스 준우승


3.3. 개인 수상[편집]




4. 월간 배구(月刊バレーボール) 커버[편집]


파일:81+j3koGjHL.jpg
파일:71ZCJK08D3L.jpg
파일:71yY5WeM7TL.jpg
파일:71lleVh01NL.jpg
파일:월간배구기무라1.jpg
파일:4910075270474.jpg

일본의 대표 배구 잡지 월간 배구(月刊バレーボール)의 커버를 수차례 장식했으며, 여기 올라온 사진은 새발의 피일 정도로 일본의 배구 선수 중 가장 많은 횟수를 장식했다. 이를 통해 얼마나 인기가 많은 선수였는지 알 수 있다.

5. 여담[편집]


  • 국내 커뮤니티에 일본배구의 에이스 기무라 사오리가 은퇴를 결심했던 이유라는 제목으로 자주 올라오는 글의 원본영상을 여기서 볼 수 있다. #
파일:기무라 김연경 비교.png

  • 2010년 당시 대한민국 축구대표 주장이였던 박지성과 뜬금없이 결혼설이 나기도 하였는데, 바로 근거없는 소식으로 밝혀졌다. 애초에 일면식도 없는 사이라고. 이에 대해 박지성은 인터뷰에서 자신보다 키큰 여자는 이상형이 아니라고 밝히기도 했다.

  • 여동생인 기무라 미사토 역시 프로 배구 선수이며, 기무라 사오리가 활동하였던 도레이 애로우즈에서 뛰고 있다.

파일:saori_kimura_ja_jp_spot.jpg

  • 김연경과 일본 V.리그에서 함께 뛸때 라이벌 구도가 형성되기도 했었지만, 사적으로는 꽤 친한 사이라고 한다. 둘다 터키에 있을 동안에는 서로의 집에 놀러가며 밥을 먹는 등 교류가 많았다고.
파일:김연경과 사오리.jpg
김연경의 집에서 기무라 사오리, 사노 유코, 김연경

  • 2011년 11월에 출판된 기무라 사오리의 자서전에 김연경이 보내준 편지가 실리기도 했다.
안녕 사오리, "사오리"의 출판을 진심으로 축하해.
니가 책을 쓴다는 말을 듣고 이렇게 너에게 편지를 쓰게 되네.
내가 일본에서 2년동안 배구생활을 하면서 너와 나는 라이벌이라는 소리를 징그럽게 들었었지.
그러면서 서로 성장해 나갔고 이제 너는 일본의 에이스로서 없어서는 안될 선수가 됐네.
우리는 앞으로도 많이 적으로서 싸워야 하는 사이지만 같은 배구선수로서...
같은 아시아를 대표하는 선수로서 너나 나나 서로 세계로 뻗어나가는 그런 멋진 선수가 됐으면 좋겠다.
은퇴하기 전까지 다치지말고 꼭 한번은 같은 팀에서 경기해보자.
마지막을 한번 더 축하하고 이 책이 대박나기를 기원합니다. ||
파일:285695_356706741087948_1876312389_n.jpg

  • 기무라 사오리의 은퇴 당시 김연경이 인스타그램에 이런 글을 올렸다.
파일:C7x9W1fUwAAJX87.jpg


6. 관련 문서[편집]




파일: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__CC.pn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3-11-15 15:13:54에 나무위키 기무라 사오리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

[1] 여동생 또한 도래이 애로우즈 소속 배구선수로 활동했다. 신장 161cm로 현역 시절 리베로였다.[2] 당시 바키프방크에서 주는 연봉의 일부를 일본배구협회가 담당했다. 또한 통역가겸 매니저가 모든 경기와 심지어 연습까지 따라다녔다. 반면에 김연경은 모든것을 혼자서 해결하였다고. 심지어 2012년 같은 해 김연경의 원 소속구단 흥국생명는 이런 선수를 다시 국내로 데려오려고 혈안이였으니... [3] 바키프방크가 김연경 영입에 실패하고 JT 마블러스에서 뛰던 요바나 브라코체비치를 영입했는데, 공교롭게도 요바나 브라코체비치김연경이 두시즌간 V.리그에서 활약하며 두번의 정규리그 우승, 한번의 챔피언결정전 우승을 이끈 후 터키 리그 진출을 하자 그 빈자리를 대신한 용병이었다. 김연경과 달리 소속팀의 우승을 이끌지는 못하였다.[4] 김연경에 대한 일본 언론의 평가가 동시에 올라간건 덤.[5] 물론 당시 벤치멤버로 바키프방크의 우승에 기여한건 매우 적다(...)[6] 반면 김연경은 클럽 우승을 제외하고는 메달이 하나도 없다는걸 생각했을때, 배구가 얼마나 모든 팀내 모든 포지션의 능력치와 나라의 지원이 중요한 스포츠인지 알게되는 부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