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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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군》
70 김태균 · 71 이강철 [[감독#s-1.1|

]] · 72 김강 · 75 장재중
· 76 박기혁 · 82 제춘모 · 84 최만호 · 87 전병두
· 92 유한준 · # 김호'''
《2군》
74 홍성용 · 77 김태한 · 79 이준수 · 80 박정환
· 86 김연훈 · 90 조중근

《육성/재활군》
85 이성열 · 89 백진우 · 91 배우열 · # 곽정철

코칭스태프투수포수내야수외야수군입대선수등록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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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강의 수상 경력 / 역대 등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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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kt wiz 우승 엠블럼 V1.png
KBO 리그 한국시리즈
우승코치
2021



파일:KBO 퓨처스리그 엠블럼.svg
2008, 2010 KBO 퓨처스 남부리그 타점왕

{{{#fff [[한화 이글스|한화 이글스]] 등번호 33번}}}
신종길
(2005~2006)

김강
(2007~2008)


이양기
(2009~2010)
{{{#fff [[한화 이글스|한화 이글스]] 등번호 96번}}}
결번

김강
(2009)


정대욱
(2011)
{{{#fff [[한화 이글스|한화 이글스]] 등번호 52번}}}
김태균
(2003~2009)

김강
(2010~2011)


김태균
(2012~2020)
{{{#fff [[두산 베어스|두산 베어스]] 등번호 10번}}}
최준석
(2007~2013)

김강
(2014~2016)


박세혁
(2017~2022)
{{{#fff [[두산 베어스|두산 베어스]] 등번호 0번}}}
이찬기
(2016)

김강
(2017)


김승후
(2018)
{{{#fff [[두산 베어스|두산 베어스]] 등번호 92번}}}
김민혁
(2016~2017)

김강
(2018)


안준
(2019)
{{{#fff [[kt wiz|kt wiz]] 등번호 72번}}}
김진욱
(2017~2018)

김강
(2019~)


현역



파일:김강2023.jpg

kt wiz No.72
김강
金剛 | Kim Kang

출생
1988년 10월 16일 (35세)
광주광역시
국적
[[대한민국|

대한민국
display: none; display: 대한민국"
행정구
]]

학력
광주화정초 - 무등중 - 광주제일고
포지션
1루수
투타
좌투좌타
프로입단
2007년 2차 3라운드 (전체 21번, 한화)
소속팀
한화 이글스 (2007~2011)
두산 베어스 (2012~2016)
지도자
두산 베어스 2군 타격코치 (2017~2018)
kt wiz 1군 타격보조코치 (2019)
kt wiz 1군 타격코치 (2020~)
병역
상무 피닉스 야구단 (2012~2013)
응원가
한화 시절: 우루사 CM송[1][2]

1. 개요
2. 선수 경력
2.1. 아마추어 시절
2.2.1. 2010 시즌
2.2.2. 2011 시즌
3. 지도자 경력
4. 여담
5. 연도별 주요 성적
6.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대한민국의 前 야구선수. 現 kt wiz 1군 타격코치. 현역 시절 포지션은 1루수.


2. 선수 경력[편집]



2.1. 아마추어 시절[편집]


중학교 시절부터 투타 양면에서 모두 두각을 드러냈던 선수이며, 그때부터 연고 팀 KIA 타이거즈의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이후 KIA의 성골이라 할 수 있는 광주제일고등학교에 입학해 고교 생활을 하면서 중심 타선으로 자리를 잡게 된다. 특히 2학년 당시 황금사자기에서 0.538의 맹타율을 보이며 팀 우승에 일조해 두각을 드러냈었으며[3], 2006년 세계청소년야구선수권대회에서 대한민국이 우승할 당시에도 4번 타자 겸 팀의 주장으로서 활약했다. 고교 시절의 김강은 박병호같은 스타일의 파워 히터가 아닌 김현수같은 스타일의 중장거리 히터에 가까웠다. 좋은 결의 스윙에 힘이 좋아 장타를 양산하는 스타일.

광주제일고 2학년 당시만 해도 당연히 KIA에서 1차 지명을 할 것이라 예상했으나 3학년 때 이렇다 할 좋은 성적을 보여 주지 못한 탓에 밀렸다. 일설에는 변화구 대처 능력이 심각하게 떨어져서 오랜기간 그를 지켜본 KIA에서 그냥 포기했다는 설이 있다고는 하나, 보다 정확한 이유를 들라면 자존심이 센 김강과 김강 아버지의 기질을 들 수 있다. 실제로 2차지명 1라운드 밑에서 지명되면 대학에 가거나 어떻게든 미국에 가겠다고 했다는 소문이 돌 정도였으니….


2.2. 한화 이글스 시절[편집]


파일:/image/109/2011/02/21/201102211750773810_2.jpg

2007년 1차 지명에서도 밀려났고 2차 1라운드에서도, 2차 2라운드, 3라운드에서도 고향팀인 기아에서 지명받지 못하고 밀려났다. 그리고 고향 팀에게 지명받지 못했던 그를 한화 이글스가 2007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2차 3라운드로 지명하면서, 프로 생활이 시작된다.[4]

비록 지명 순위는 밀려났지만 워낙에 창창했던 유망주였기에 1군에서 곧 얼굴을 볼 수 있으리라 생각됐지만 오직 검증된 선수만을 쓰는 김인식 감독의 특성상 신인이었던 김강이 다이너마이트 타선으로 대표되는 한화 이글스에서 설 자리는 없었다. 그렇다고 김인식 감독을 깔 수도 없는 것이, 당시 한화에선 어느 별명 많은 야구 선수가 미친듯이 별명 숫자를 늘려가던 중이었다. 태산이 버티고 있으니 유망주로서는 답답할 노릇. 거기다가 백업으로 김태완이라는 만만찮은 오른손 거포가 동일 포지션에서 대기하고 있었으니 김강은 그저 2군에서 묵묵히 인내의 세월을 보낼 뿐이었다. 그러는 동안 2006년 세계청소년야구선수권대회 우승 동기 중 김광현은 팀의 제1에이스로 우뚝 섰고, 양현종 역시 팀의 에이스로 활약하고 있으니 본인도 답답해 미칠 지경. 소문에 의하면 본인이 자청해서 입대하려 했으나, 팀에서 군대에 가는 것을 뜯어말렸다고 한다.

여담으로 2군에서 인내의 세월을 보내던 이 시기 다큐멘터리 3일에 출연하기도 했다. 한화 2군 선수들을 다룬 에피소드에서 주연으로 출연한 것. 외모도 그럭저럭 괜찮은 데다 타지 출신으로서 고향을 떠나 고생하는 스토리성, 한화 2군에선 가장 대형 유망주인지라 조만간 1군에서 활약할 것이란 드라마성까지 3박자를 갖추어 주연이 될 수 있었던 것. 이 당시 김강이 얼마나 주목받는 유망주였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다.


2.2.1. 2010 시즌[편집]


2009 시즌을 끝으로 김태균이범호일본프로야구에 진출하여 팀을 떠났고, 등번호도 53번이 아닌 김태균의 번호인 52번을 달 정도로 한화의 기대주로 떠오르며 김강에게도 기회가 오나 했다. 그러나 신임 한대화 감독은 김태완을 주전 1루수로 기용했다. 그래도 백업의 기회라도 있지 싶었는데 그 해 6월 8일 3:3 트레이드로 장성호가 이적해왔다. 결국 김강은 2군에서 세월아 내월아 기다리며 묵묵히 기회만을 기다렸다.

그래도 2군에 관심 없는 한화 이글스에서 어느 세월에 빛을 보나 했지만 김강은 2군 남부리그 85경기에 출장해 312타수 86안타, 타율 0.276, 14홈런 61타점으로 남부리그 홈런 및 타점왕에 오르며 물먹은 다이너마이트 타선이 된 한화 이글스의 유망주로 떠올랐다.

결국 시즌 말 엔트리 확대 제도의 혜택을 받아 9월 드디어 1군에 합류했다. 장성호의 부상과 김태완의 부진을 틈타 14경기에 출장해 24타수 10안타 타율 0.417의 경악할 타격을 보여주었다. 시즌 말이고 14경기 한정이긴 하지만 규정타석을 채운 타자 중 3할 타자가 딱 1명인 2010시즌 한화 이글스로서는 진흙 속의 진주인 셈.


2.2.2. 2011 시즌[편집]


결국 그대로 1군에 자리박는데 성공하여 2011 시즌에 별다른 일이 일어나지 않는 이상 1군에서 시즌을 보낼 것으로 보인다. 장성호는 부상으로 복귀가 늦어지고 있고, 김태완은 2010 시즌 후 공익근무요원으로 복무하고 있었기 때문에 1루수 주전경쟁에서 무리 없이 이길 것으로 보인다. 다만 감독이 신인 스위치 타자 김용호에게 김강보다 높은 평가를 주고 있어서 이번에도 밀릴 위험도 없지 않아 있다. 시범경기에서 별 임팩트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어 그럴 가능성이 상당히 농후해지고 있었으나 최종적으로 낙점받아 개막전에 선발 출장하게 된다.

그리고 충격과 공포의 응원가가 나왔다. 모두 함께 들어보자. 그리고 이 응원가를 예견한 성지가 있다. 게다가 이 짤은 뉴스도 탔다! 역시 한화는 응원가밖에 없다! 참고로 간때문이야를 개사한 응원가는 넥센 히어로즈김민우 선수에게도 있다.

그렇게 신뢰를 받으며 밀어줬지만 개막전, 그것도 류현진 등판일에 만루상황에서 1루쪽 타구를 못 잡아내어 류현진 강판의 빌미를 제공하는 바람에 한화 이글스 갤러리에서 역적 수준으로 까이고 있다. 사실 이건 수비코치 잘못이긴 하지만... 1군 6경기에 나와서 17타수 2안타에 0.118이라는 처참한 타율에 삼진 6개를 기록했다. 경기 때마다 어떨땐 어설픈 트리플악셀 스윙으로 폭삼을 당하고 어떨 땐 그냥 데꿀멍상태로 삼진을 당해 버리니... 물론 투수 유망주보다 야수 유망주 키우는 게 훨씬 힘들다는 걸 보여 준 반면교사이기도 하지만... 특히 야구 인생 내내 1루수를 봤음에도 1루 수비가 지옥급이다. 결국 4월 11일자로 2군으로 강등당했다.

그리고 5월 5일 어린이날에 1군으로 돌아와 그 날 SK전에서 1루수로 선발 출장했으나, 1회초 1아웃 상황에서 역시 1루쪽 타구를 못 잡아내어 김혁민이 적시타와 쓰리런 홈런을 맞는 빌미를 제공한다. 덕분에 김혁민4실점 무자책으로 패전 투수가 되었다. 그리하여 다음 날 5월 6일 다시 2군으로 강등당했다. 이후 정원석이 1루를 안정적으로 보고 있고, 장성호지명타자로 중압감을 더해 주면서 김강이 설 자리는 다시 사라졌다. 결국 그 날이 한화 이글스 1군에서의 마지막 출장이 되었다. 2011 시즌 종료 후 나이도 있기 때문에 군 문제를 먼저 해결하기 위해 상무에 지원하여 합격했다.

나름 이때 유입 한화팬과 고정 한화팬을 가르는 척도 같은 선수기도 했다. 한화가 몰락하기 전에 김강은 한화팬들 사이에서 분명 터질 거라고 믿던 유망주였으나, 결국은 터지지 못한 채 두산으로 이적했다.


2.3. 두산 베어스 시절[편집]


파일:/image/109/2014/02/11/201402111333770687_52f9a86bcda1d_59_20140211135502.jpg

2011년 11월 22일 2차 드래프트 2라운드 13순위에서 두산 베어스의 지명을 받아 이적하였다. 이제 강때문이야 응원가를 못 듣는 것인가 당시 2차 드래프트 때 한화 이글스에서 보호선수 명단에서 제외하여 올린 선수들 중 유일하게 지명을 받아 팀을 옮겼다. 그만큼 한화 이글스의 열악한 2군 현실을 보여 준 셈이었다. 다만 일주일도 안 되어 김강 본인은 11월 28일에 발표된 상무의 최종 합격자에 포함되어 군 복무를 시작하게 되었으므로, 실질적으로 두산 베어스의 유니폼을 입고 뛰는 것은 2014 시즌부터이다.

2013년 9월 군 복무를 마치고 제대하였으며, 9월 30일 고양 국가대표 야구훈련장에서 열렸던 두산 베어스 2군과 동아시아경기대회 야구 국가대표팀과의 연습경기를 통하여 백넘버가 없는 두산 베어스 유니폼을 입고 첫 선을 보였다. 어차피 시즌이 끝나갈 시점이고 11월 22일에 룰5 2차 드래프트가 있기 때문에 등록하지 않고 군보류로 묶어 놓은 듯하다. 그 연습경기에서 한때 상무에서 함께했던 투수 서진용을 상대로 홈런을 쳤다. 그리고 좌완투수 정대현 등과 함께 더그아웃에서 하이파이브를 하는 사진이 기사에 실렸다.

2016년에는 2군에서 최영진[5]과 함께 자주 나오고 있는데 심지어 어떤 분의 대타로도 나온다.

그러나 두산 소속으로는 단 한번도 1군 무대를 밟지 못하고 2016년 9월 구단 공홈의 선수단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10월 19일 조인식 기자의 트위터를 통해 오장훈, 김명성, 최영진과 함께 웨이버 공시된 것이 확인되었다.


3. 지도자 경력[편집]


은퇴 후 2017년부터 두산 베어스의 2군 타격코치로 선임되면서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다. 이로써 2017 시즌 기준 KBO리그 최연소 코치로 기록되었다. 코치로 선임되고 난 뒤인 2017년 초 결혼했다.

2018년 11월 13일, 이강철kt wiz의 신임 감독으로 선임됨에 따라 그도 이강철 감독을 따라 kt 코치로 옮겨가기로 하면서 두산 베어스를 떠나게 되었다. kt에서는 1군 보조 타격코치를 맡으며, 1군 메인 타격코치로 영입된 샌디 게레로 코치를 보좌한다고 한다.

2019년 골든글러브 시상식에서, 멜 로하스 주니어 선수를 대신해 골든글러브를 수상하였다. 배영수호세 대리수상을...

2020년부터 게레로 코치가 재계약하지 않고 미국으로 떠나게 되자 1군 메인 타격코치로 승격되었다.# 아직 나이도 30대 초반으로 젊은데다[6] 코치 경력도 짧은 그를 1군 타격코치로 선임한 걸 봐서는 상당히 파격적인 시도로 보인다. 다만 팬들은 게레로 코치가 팀을 떠날 당시 불만이 많았지만 기사에도 나와있듯이 게레로 코치가 타격코치를 맡았을 때도 세부 코칭은 김강이 도맡았었다고 한다. 기사가 나간 이후 팬들의 불만은 어느정도 사그라들었으며 기대를 받고 있다.

2020년 kt wiz의 타선이 그간의 고통 끝에 리그 최고 수준의 강타선이 되며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김강 코치의 합류 전까지의 kt wiz는 모두가 알고 있었던 리그 최하위급 타선이었기 때문에 그의 지도력이 더욱 두드러지고 있다. 6월 3일 기준으로 리그 팀 득점 10개 구단 중 1위에 팀 wRC+ 리그 1위, 팀 홈런 리그 2위에 리그 최다 2루타에 리그 최소 병살, 그리고 팀 타격 WAR에서 리그 1위를 기록하고 있다.

2020년 골든글러브 시상식에서 멜 로하스 주니어를 대신해 골든글러브를 대리수상하였다.

그러나 2021년 kt에서는 특히 9월 이후로 심각해진 타선의 침체를 들어 김강의 지도력에 대한 의문이 다시 제기되고 있다.

10월 24일 삼성 라이온즈와의 마지막 경기에서 0 : 4 패배로 KT는 1위를 삼성에게 내주었다. KT팬들은 부진하고 있는 타격 관련에 대해서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는 이강철 감독과 이숭용 단장을 비판하는 여론이 늘어나고 있다. 김강 타격코치는 내년에 교체 1순위 대상이라고 팬들의 여론이 높아지고 있다.

한국시리즈이후 침체되었던 팀 타격이 살아남면서 3차전까지 승리하면서 팀의 창단이후 첫우승에 1승을 남겨두었다.

4차전에서도 팀타격이 폭발하면서 팀의 창단 첫 통합우승에 기여하였다.

현재 팀 내에서도 현역으로써 한창일 나이[7] 에 1군 타격코치가 되었으며 팀의 고참들인 박경수황재균보다도 나이가 어리다. 자신과 나이 차이가 꽤 있는 최고참인 유한준은 2021년을 끝으로 은퇴했지만 박병호가 FA로 입단하면서 본인보다 나이가 더 많은 팀 내 선수는 현재 세 명이나 된다. 보통 코치들은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선수라도 그냥 선수라고 부르는 경우가 흔한 편인데 김강은 코치이면서도 현역인 박병호에게도 편하게 병호형이라고 부른다. 박병호도 역시 자신보다 나이는 적지만 코치인만큼 김강에게는 코치님이라고 정중하게 예우한다고 한다. 애초에 선수는 코치 앞에서는 항상 갑과 을의 관계이니 당연한 수순이지만.

2022 시즌에는 에이징 커브가 아니냐며 많은 이들의 의심을 샀던 박병호에게 적극적으로 스윙할 것을 주문했고, 이에 박병호가 전반기 27홈런으로 화답하면서 또 한번 코칭 능력이 빛을 발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도 잠시 저번시즌처럼 후반기에 접어들며 팀 타선이 다시 침체기에 들어가자 김강 코치에 대한 비판이 늘어나고 있다. 연속 위닝 기록을 세우던 8월에도 타격 기록이 좋다고 할 수는 없었는데[8] 9월이 시작하자마자 2경기 연속 무득점이라는 심각한 타격 능력이 나타나면서 김강 코치의 지도력에 다시 의문을 표하는 여론이 높아지는 중.

2023 플레이오프 NC 다이노스와의 1,2차전 홈경기에서 kt 타자들이 NC의 선발투수 에릭 페디, 신민혁상대로 제대로된 공격이 안되면서 kt 팬들은 내년시즌에 새로운 타격코치를 영입을 해야한다는 비판여론이 커지고있다.

4. 여담[편집]


  • 광주제일고 3학년이었던 2006년에 현 소속팀 감독이면서 광주일고 선배인 이강철의 은퇴식에 참석하여 꽃다발을 전하기도 했다. 두산 2군 코치 시절도 그렇고 이런 연으로 현재 kt 1군 타격코치를 하는 것도 있는 듯.


5. 연도별 주요 성적[편집]


역대 기록
연도
소속팀
경기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장타율
출루율
2007
한화
1
2
.000
0
0
0
0
0
0
0
0
.000
.000
2008
1군 기록 없음
2009
7
6
.500
3
0
0
0
0
0
0
0
.500
.500
2010
14
24
.417
10
2
0
0
4
2
0
2
.500
.462
2011
8
19
.105
2
1
0
0
1
0
0
4
.158
.261
연도
소속팀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장타율
출루율
2012
두산
상무 피닉스 야구단에서 복무
2013
2014
1군 기록 없음
2015
2016
KBO 통산
(4시즌)
30
51
.294
15
3
0
0
5
2
0
6
.353
.368


6. 관련 문서[편집]



[1] 강 때문이야~ 강 때문이야~ (김강!) 승리는 강때문이야~ 강 때문이야~ 강 때문이야~ (김강!) 한화의 강때문이야~X4[2] 김강이 kt 1군 타격코치로 올라간 이후 kt에서도 팀 응원가로 쓰이기 시작했다.[3] 우승 당시 3학년 강정호, 나승현, 김성현이 주축이었다. 준우승팀은 이천웅, 임치영, 빡코가 있던 성남서고.[4] 재미있게도 2년 뒤 마찬가지로 중학교 시절에 광주지역에서 두각을 드러낸 뒤 광주일고에 진학하나 기대치만큼 성장하지 않아 마찬가지로 연고 팀에게 지명받지 못한 투수한화에 지명된다. 또 거기서 2년 뒤 그해 최대어인 같은 학교 후배가 두각을 드러내면서 그해 드래프트 최대어가 되어 한화에 1차 지명을 받게 된다. 현재 광주일고 3인방 중 살아남은 건 장민재 뿐.[5] 삼성에서 지금 슈퍼백업으로 뛰고 있는 그 최영진 맞다.[6] 당장 팀 내 베테랑 타자들인 유한준, 박경수, 황재균보다도 어리다.[7] 알다시피 1988년생으로 김광현, 양현종, 손아섭과 동갑이다.[8] 8월 23경기 19승 4패 기간 동안 평균 득점은 4.9점이었고, 평균 실점은 3.4점으로 선발투수의 호투와 박영현과 김재윤의 힘만으로 승수를 쌓았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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