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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공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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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1. 벽동군 출신 독립운동가[편집]
김공섭은 1895년생이며 평안북도 벽동군 출신이다. 그는 일찍이 만주로 망명하여 봉천성 관전현에서 대한광복군총영(大韓光復軍總營)의 영원(營員)으로 항일활동을 수행했다. 그러나 1921년 12월 9일 석주자 소재 노영준(盧永俊)[1] 의 집에 은신하다가 일제 경찰의 습격으로 피살되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1년 김공섭에게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2. 중화군 출신 독립운동가[편집]
김공섭은 1866년생이며 평안남도 중화군 하도면 법화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1919년 3월 3일 중화 읍내에서 발발한 독립만세시위에 참여했다가 체포된 뒤 1919년 6월 10일 평양복심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형을 받고 “민족자결을 기회로 독립만세를 부른 것인데 보안법 위반으로 처벌한 것은 부당하다”며 상고하였으나 1919년 7월 24일 고등법원에서 기각되어 4개월여의 옥고를 치렀다. 이후의 행적은 기록이 미비해 알 수 없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5년 김공섭에게 대통령표창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