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관수(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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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관수
金寬洙

창씨개명
기시모도[A]
岸木寬
출생
미상
사망
미상
분야
연극
가족
형 김인수[A]

1. 개요
2. 생애



1. 개요[편집]


일제강점기 시기의 인물.


2. 생애[편집]


1935년 극단 황금좌의 사업부에서 일하다 연극과 연을 맺었다. 이후 동양극장에서 활동하며 친일 연극단체의 구성과 활동에 깊이 관여했으며, 1940년 11월 조선총독부 경무국 경부과장 야기가 연 간담회에서 연극신체제협의회(가칭) 조직위원으로 뽑혔다. 이후 12월 조선연극협회의 상무이사에 올라 실무를 총괄했다.[B]

조선연극협회 소속의 이동극단이 결성되자 상무이사로서 지휘했으며, 소개글을 써서 신문에 실기도 했다. 1942년 7월 조선연극협회와 조선연예협회가 통합된 조선연극문화 협회에서도 상부이사로 있었다. 이후로도 연극인들의 협력을 요구하는 글들을 썼으며, 미소기 연성회를 이끌기도 했다. 광복 후에도 우익 진영 문화예술계에서 일하면서, 예술단을 꾸려 파리 국제민속예술페스티벌에 참여하려 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공금횡령 등이 들통나 연극계에서 자취를 감췄고 동시에 행방도 묘연해졌다.[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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